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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 멀어지고 있는 속도는 초속 몇 미터일까

등록일 2021-11-29 18:36 게재일 2021-11-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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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영역으로만 간주되었던 과학기술의 영역이 어느 샌가 알아챌 수도 없는 사이, 우리와 가까운 거리로 성큼 다가와 버렸다. 생각해 보면, 모든 변화란 그렇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저 멀리 보일 때는 아직은 실현되기에는 한 없이 먼 아련한 꿈만 같다가, 변화를 눈치 챌 쯤에는 어느새 주위를 가득 채워버려서 마치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처럼 생각된다. 아직은 소설이나 영화 속 환상에 불과하리라고 생각했던 인공지능이나 자율주행, 메타버스 등의 기술들이 단지 기호가 아니라 하나 둘 실현되어 인간에게 실질적으로 유용한 도구가 되고, 우주를 오가는 일 같은 것도 가시화 되는 것을 보면, 문득 변화를 체감하게 된다.

사실, 이미 우리는 기존의 세계와는 다르게 과학 기술에 의해 새롭게 구조된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대학에서 과학이나 공학 수업은 몇몇 관심 있는 학생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필수적인 교양이 되고 있으며, 가장 인간적인 사유에 바탕을 둔 언어, 문학, 예술 등에 바탕을 둔 인문학의 개념은 점차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를 그 바탕에 두는 방향으로 변동해 나갈 것이다. 예의 그렇듯이,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의 속도로 변화는 우리 주변의 공기를 가득 채운다.

최근 과학소설의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불과 조금 전 SF, 즉 ‘사이언스픽션’이라는 특별한 장르로,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중심으로만 조금씩 읽히고 있던 과학소설은 지금 새롭게 진화하여 널리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배명훈, 김보영, 김초엽 등 단지 SF라는 장르문학의 작가로서만이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는 점이 지금 과학소설 붐의 가장 흥미로운 점일 것이다. 과연 우리가 과학소설을 좀 더 많이 읽게 된 것은 우리가 어느새 과학기술에 익숙해져서일까, 새로운 주제를 다룬 소설들이 등장해서일까.

지금까지의 과학소설은 물론 폭넓은 외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대개 아직 실현되지 않은 기술이 실현된 미래상을 보여주는 데 주력해왔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것이 유토피아가 되었건, 디스토피아가 되었건, 과학소설에 드러난 도래할 미래는 독자에게는 선명한 스펙터클로 작동하면서 환상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나 필립 K. 딕 등이 보여주었던 미래의 풍경은 고스란히 영화로 재현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소설을 쓸 당시에는 안드로이드나 홀로그램, 행성 간 여행 등의 아이디어는 구체화되었을 뿐인 순수 아이디어였을지도 모르지만, CG나 모션캡쳐 등이 가능한 영화 예술에서 그 과학기술이 보여주는 미래상은 시각적으로 재현될 수 있다. 대개 과학소설의 독자가 갖게 마련인 과학기술이 구현한 미래 풍경에 대한 환상은 그렇게 촉발된다.

어쩌면 과거의 SF와 지금 나와 일반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는 과학소설들이 갖는 중요한 차이는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사이언스픽션이 신기한 미래의 풍경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그러한 세계가 점차 도래하고 있는 와중에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기계의 단순한 알고리즘과 반복의 단위들, 그리고 복잡성에 기반을 둔 학습가능한 체계로서 기계를 규정할 때, 인간을 바라보는 자리는 새롭게 마련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 노멀이 아닌 기계와 공존하는 새로운 노멀을 살아가고 있는 와중인 셈이다. 우리의 관계가 서로 멀어지고 있는 속도는 초속 몇 미터일까. 이것이 단지 문학적 비유가 아닌 세계 속에서 요즘 과학소설은 읽히고 있는 것이다.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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