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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머릿속을 맴돌며사라지지 않는 그 노래의 멜로디처럼

등록일 2021-12-13 18:58 게재일 2021-12-1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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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장은 읽고 지나간 뒤에 계속 우리를 붙잡고 끝내 놓아주지 않는다. 어제 잠깐 들었을 뿐인데 오늘 하루 동안 내 주변을 맴돌면서 사라지지 않는 노래의 멜로디처럼.

아니,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지금 머릿속에 자동반복이라도 틀어놓은 듯 울리고 있는 노래가사의 멜로디는 마치 귀로 듣고 있는 음향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지만, 어제 읽었던 어떤 문장은 마음 깊숙하게 들어 있는 무언가를 건드려 상처를 내든가 해서, 오랫동안 다시 생각나고, 생각나고 한다. 피가 난 상처가 아물어 완전히 나아도 아렸던 그 상처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떨쳐내고자 하는 기억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어떤 글귀에 한 번 붙들린 인간은 그곳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도 인스타나 페북 같은 SNS에 따옴표로 인용된 문장들이 대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분명 누군가의 글 속에 들어있었던 그 문장은 이제 누군가의 마음속을 붙들고 놓지 않으면서 나를 표현하는 피와 살이 되었다.

영국 밴드 비틀즈의 곡 ‘엘레노어 릭비(Eleanor Rigby)’를 하루 종일 흥얼거렸던 어떤 소설 속 인물처럼, 어떤 멜로디나 가사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야 어쩌면 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문장이 우리를 붙드는 것은 이처럼 바쁜 시대에는 흔하지 않은 만큼 강렬하고 충동적인 경험이다. 우리가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라면, 주로 그 멜로디가 반복적이고 그래서 중독적인 까닭일 테다. 하지만, 어릴 때 전혀 신경 쓰이지 않던 어떤 노래의 가사가 새삼스럽게 우리의 마음 안쪽에 슬쩍 들어오기도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역시 어떤 문장이 우리를 붙드는 것은 그 문장이 지금 나의 현재로 슬며시 들어와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하기 때문일 것 같다. 그렇게 우리가 여기저기에서 읽고 지나갔던 문장들은 어느새 나의 지금 마음의 풍경이나 바람을 표현하는 소중한 문장으로 바뀐다. 잡다한 금속이 귀중한 금으로 바뀌는 연금술 같은 경험이다.

고백하자면 어렸을 때는 무수히 읽었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계절의 변화를 노래하는 시들이었다. 아마 어릴 때의 나는 계절의 변화 같은 당연한 것들, 눈이 내리고, 싹이 움트고, 하늘이 높아지는 모든 변화들을 그저 당연하게만 생각했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제는 세계에서 계절이 변화해가는 모습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나이가 되니, 예전에는 심상히 지나쳤던 그 시들이 묘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교과서로만 배우고 가르쳤던 ‘국화 옆에서’조차 새롭게 다가온다. 문장이 변했을 리 없으니, 내가 변한 것이고, 때가 되어 그 문장이 나를 붙들게 된 것이다. 인간은 무언가를 읽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지만, 언제나 그것을 붙들리는 시기는 따로 있다.

시의 경우만은 아니다. 소설처럼 읽고 있다 보면 어느새 지금 내가 문장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고 소설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스토리의 내용에만 집중하게 되기 마련이다. 헌데 가끔씩 어떤 소설의 문장은 유독 존재감을 과시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씩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 한 번의 숨이 소중한 것처럼 말이다. 작가가 공들여 상징으로 수놓은 문장이 아니라고 해도, 그저 여느 소설에라도 있을 법한 투박한 문장이라도 그것을 읽고 있을 때의 나의 마음으로 인해, 그 문장은 나를 붙드는 것이다. 묘하게 기억 속에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어떤 문장은 읽고 지나간 뒤에도 계속 우리 주변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를 내기도 하고, 그것을 봉합해주기도 한다. 지금 내가 흥얼거리는 노래의 멜로디처럼, 말이다.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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