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장서벽’
지금, 우리는 책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한때 인류 지식 문명의 거의 전부였던 책은 이제는 더 이상 가장 유력한 지식 미디어가 아니다.
석판에서 파피루스를 거쳐, 양피지, 종이로 옮겨온 무언가의 빈공간에 문자를 기록해온 인간의 활동들, 그리고 그것들을 겹쳐 한쪽을 묶은 책이라는 미디어가 인간에게 남겨준 문명적 수혜는 이제 전자문명이라는 다른 종류의 문명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물론, 책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고 해서, 책이 아예 소멸될 것이라는 진단은 맞지 않다. 책은 물성을 가지고 공간을 점유하며, 인간의 손에 뿌듯하게 들어오는 감각적 대상이면서, 또 그것이 담보하는 개념을 가리키는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종이로 된 책을 아무도 보지 않는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보들이 무한히 연결되어 있는 하이퍼텍스트의 시대에도, 어떤 정보의 입구와 출구, 시작에서부터 한 없이 길게 늘어진 중간을 지나 끝에까지 이르는 개념으로서의 ‘책’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대상일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이 인쇄 출판 기술 시대의 책과 함께 성장한 책-네이티브 인간의 전형적인 새로운 시대에 대한 두려움이나 감각 지체일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그래도 인간이 인간이고, 태어나서 자라고 다 커서 소멸하는 선형적인 시간성 속에 놓여 있는 한, 인간은 시작과 끝이라는 감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책의 감각이 주는 뿌듯함이란 바로 그 완결성의 감각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아직 손가락 끝에 확실하게 걸리는 종이 뭉치의 감각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인류 역사에 있어서 ‘책’이란 언제나 실제 대상으로서의 그것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서 존재해왔다. 특히 지금의 현대 사회에 바로 연결된 시민계급의 성장에 있어서 책, 그리고 책이 담보하는 지식과 문화는 귀족들의 ‘고귀한 몰취향’과 구분해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필사된 귀중본들을 모으고 서재를 꾸미고 이를 전시해서 보여주는 책 수집가들이 등장해온 것이다.
책은 분명 문자를 통해 표현된 지식을 담아내는 수단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자기의 고상한 취향을 증명해주는 것이자, 세상 어떤 보물보다도 귀중한 골동의 대상이기도 했다.
‘보바리 부인’과 ‘감정 교육’ 등을 창작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 문학 세계를 연 작가들 중 한 명인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문자와 책의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작가였다. 그는 10세 때부터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15세 때는 책에 대한 수집가의 지독한 열망을 다룬 소설‘장서벽(Bibliomanie)’을 썼다.
이 소설은 부르주아 계급의 책에 대한 사랑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대를 풍자하는 정교한 풍자화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인 쟈코모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서점 주인인데, 그는 책을 파는 직업이면서, 책을 너무 사랑해서 팔지 못한다.
박사학위를 받고 대주교가 되기 위해 그가 가장 아끼는 책을 사려는 수도사는 그에게 거액의 돈을 제시하며 그 책을 결국 사 간다. 쟈코모는 그로부터 그에 못지않게 귀한 책의 정보를 얻지만, 사러 가보니 그 책은 이미 팔려버렸고 경매에서 사고자 했던 라틴어 성경은 경쟁자에게 빼앗겼다.
그 뒤, 그의 책을 뺏은 사람들은 하나씩 죽게 되고, 쟈코모는 경찰에 잡혀간다. 변호사는 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쟈코모가 구하려고 했던 필사본 라틴어 성경을 한 권 더 구해오지만, 쟈코모는 자신이 그들을 죽이고 훔쳤다고 고백하고, 또 하나의 성경을 찢어버려 유일본으로 만든다. 쟈코모에게 책은 자신의 목숨이나 영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었다. 바야흐로 책의 시대였던 것이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