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라는 자본주의 문화상품으로서 출판된 책을 가리키는 개념들은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서점의 서가에 요즘 많이 읽히는 책들에는 관심을 갖게 마련이지 않는가. 도시 중심의 커다란 서점에서 많이 팔린 순위대로 진열해둔 책들을 보면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여론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한 것들로 구성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가늠할 수 있던 지금보다 조금 더 단순한 시대에 베스트셀러의 의미는 좀 더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를 말해준다, 는 인식이야말로 베스트셀러의 시대를 지탱하던 가장 큰 밑바탕의 사고는 아니었을까. 가끔은 그렇게 조금 더 단순했던 시대가 그리울 때가 있다. 사실 그때보다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글을 읽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무엇을 읽고 있는가 하는 것은 지금도 활발하게 스마트폰 속 인간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저장하고 있을 구글의 서버밖에 알지 못한다. 포털의 검색어 순위가 제공해주는 요즘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단어들은 너무나 직접적이고 말초적이어서, 베스트셀러들의 순위가 주는 낱말과 낱말의 연결로서의 서사, 그 속에 들어 있는 독자와 독자들 사이의 얽힘과는 전혀 다르다.
이제는 책에 대한 홍보 수단으로서의 의미밖에 찾기 어려운 베스트셀러가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였을까. 베스트셀러는 결국 그 책이 얼마나 팔렸는가 하는 기준에 따른 것이니, 그 책이 얼마나 팔렸는가 하는 것을 계산할 수 있는 도구로서 판(edition)이나 쇄(printing) 같은 개념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근대적인 출판 이전에 베스트셀러를 거론하기는 어렵다. 조선시대에도 필사본이나 방각본 등으로 발간된 소설들이 세책가를 통해서 활발하게 읽혔다고는 하지만 이들을 베스트셀러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최초의 근대적인 의미의 베스트셀러라면 결국 한국에서 근대 출판이 시작된 이후인 딱지본으로 출판된 책들을 그 시작으로 거론해야 할 것이다. 딱지본이라고 하면, 1907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해 해방 무렵까지 이어졌던, 손바닥만한 작고 가벼운 페이퍼백 형태의 울긋불긋한 표지를 가진 출판물을 가리킨다. 페이퍼백과 비슷한 형태라고 해도 당시 한국에는 서양식의 코덱스(codex) 제본의 하드커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드커버에 대비되는 페이퍼백은 아니라 보통 입구화로 사용되는 컬러 그림을 표지로 끌고 나와 간소하지만 화려한 표지로 꾸민 책을 가리킨다.
문학사에서 소설의 양식으로 거론하는 새로운 소설이라는 의미의 ‘신소설’이란 사실 문학의 양식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 이 딱지본으로 출판되는 과정에서 전래의 ‘구소설’과 대비되는 창작소설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었다. 일제 강점을 전후로 새로운 창작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이인직이나 이해조 등이 신문 연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가였다면, 최찬식이나 김교제 등은 딱지본 출판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작가였다. 이인직이나 이해조의 창작소설들도 신문 연재 이후 딱지본으로 출간되어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이해조의 베스트셀러는 다름 아니라 ‘심청전’을 각색한 ‘강상연’이나 ‘춘향전’을 각색한 ‘옥중가인’이었다. ‘강상연’은 12판 정도, 옥중화는 17판 정도를 냈다. 사실 당시에는 판(edition)이라는 개념을 지금의 쇄(printing) 개념으로 썼기 때문에 인쇄 활자에 큰 변화가 없어도 판 교체를 표시하였다. 당시 서점(출판사)으로서는 이 정도 베스트셀러를 갖고 있다는 것이 큰 자부심이었기 때문이다. 신소설, 즉 창작소설로서 최초의 베스트셀러는 바로 최찬식의 ‘추월색’이었다. 22판 정도가 확인된다. 읽으며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근대적인 대중소설 양식이 탄생했던 것이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