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설이라는 매혹
요즘엔 문학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신소설’이라는 단어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으실 것만 같다. ‘신소설’이란 이인직의 ‘혈의누’나 이해조의 ‘빈상설’, ‘월하가인’, 최찬식의 ‘추월색’ 같은 소설들처럼 대략 1906년 무렵부터 10~20년 정도를 풍미했던 소설 양식을 가리킨다. 학창 시절 문학 수업에서 들었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실 분들도 계실지 모른다.
애초에 뉴웨이브, 새로운 바람을 의미했던 ‘신파(新派)’가 낡디낡고 판에 박힌 멜로드라마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조선 이래의 고소설과는 차별되는 새로운 ‘신소설’이 이제는 백 년도 더 지난 하염없이 낡은 소설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어 버린 것은 시간이란 어떤 것인가를 새삼스레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이미 백 년 이상 전에 유행했던 ‘신소설’과 함께 그 소설이 출판된 단행본을 가리키는 ‘딱지본’이라는 단어 역시 생소하신 분들이 많으실 것이다.
요즘엔 헌책방에 가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지만, 예전에는 구석에서 심심찮게 찾을 수 있던 겉표지가 화려한 원색으로 된 손바닥만하고 얄팍한 출판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표지가 색색으로 된 원색으로 ‘딱지’ 같다고 해서 얻게 된 별칭이다. 앞서 이인직의 ‘혈의누’나 ‘귀의성’ 같은 소설들은 신문에 연재되고 난 뒤에면 어김없이 이 딱지본으로 출간되곤 했고,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언론 통제의 시대에 마땅히 연재할 신문을 얻지 못했던 수많은 무명작가들은 자신이 쓴 원고를 당시 출판사 격인 서방(書房)이나 서관(書館) 등에 매절 계약으로 넘겨 이름 없이 딱지본으로만 소설을 발표하는 일도 흔했다.
신소설 작가 중에서 잘 알려진 이인직이나 이해조는 신문 지면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딱지본으로 출판할 수 있던 운 좋은 작가였고, 김교제나 최찬식 등은 신문 지면을 얻지 못했으면서도 딱지본 출판 소설만으로 유명해졌던 저력 있는 작가였다.
딱지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역시 그 화려하게 노출된 표지 그림에 있었는데, 이전까지 한국식 제본이나 서구식 양장 제본에서 표지에 그림을 노출하는 일이 드물었던 것을 감안하면, 꽤 파격적인 시도였다.
아무래도 당시의 기술로 컬러로 조금 두꺼운 표지에 인쇄한 것이다 보니 인쇄 상태나 제본 상태에 허술한 부분도 없지 않아,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금방 읽고 치우는 대중적인 소설에 가장 어울리는 출판양식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딱지본 표지들을 보고 있자면, 당시 서점들 서가에 이처럼 울긋불긋한 그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독자를 유혹하는 장면들이 생생하게 상상된다. 사실 이같은 딱지본의 표지가 아니더라도 이 속에 담긴 신소설의 내용들은 대부분 당시의 독자들의 감수성을 지극히 자극하는 것들이었다.
악인의 음모에 빠진 주인공이 세상사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결국에는 행복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는 권선징악의 주제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신소설의 다양성은 줄거리의 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루고 있던 기차나 기선, 담배 등의 새로운 문물과 화성돈(미국 워싱턴)이나 해삼위(블라디보스톡), 묵서가(멕시코), 포와(하와이) 등의 국외 공간을 그려내는 방식에 있었다. 누군가의 음모와 위협으로 인해 죽을 위기에 처했던 주인공이 기차나 기선을 타고 태평양을 넘나들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얻게 되거나 잃었던 가족과 만나게 되는 과정은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쾌미를 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이제 막 세계에 대한 지리적 지식이 갖춰지기 시작했던 당시의 독자들에게 있어서 내 딸 같고, 내 아들 같은, 또는 내 누이 같고, 내 형님 같은 주인공들이 태평양 너머 어딘가에서 고난을 겪으면서도 학교를 졸업하고,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는 것을 보는 경험은 그야말로 지극한 즐거움은 아니었을까.
/홍익대 교수 송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