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학생들과 강의를 하다 보면, 종종 정해져 있는 길에서 벗어나 도저히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질문을 의도적으로 던질 때가 종종 있다. 문학 전공의 소설론 수업에서 늘 그렇듯 진행되기 마련인, 소설의 플롯이나 시점 같은 이야기들에 학생들이 더 이상 눈을 빛내지도 않고, 선생 역시 슬슬 이야기가 지루해질 때쯤이 되면, 슬며시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 흘러가고 있는가. 그것은 어떤 형태인가, 또 어떤 색깔인가. 그래, 지금 이 지루한 이야기를 들으며 어딘가 너머에 있는 세계를 더듬으며 딴 공상을 하는 바로 이 순간.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물길처럼 흘러가고 있을까? 아니면 제멋대로 메모를 붙여놓은 메모판처럼 얼룩덜룩한 상상들이 겹쳐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을까? 세상 많은 것이 그렇듯, 이 질문에는 정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속은 모두 제각각이고, 누구도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
다만 이 물음은 어느새 지루해져 버린 소설에 대해 강의하는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어딘가 저 먼 상상의 세계를 떠돌고 있던 마음들을 끌어모아 자기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의 마음속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정답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호기심이 사라지거나 포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궁금해진다. 우리가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 생각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지금 무심코 생각이 흐른다고 쓰긴 했지만, 생각이 흐른다고 하는 것도 인간 사고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였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제안했던 ‘의식의 흐름’ 같은 것이 그런 모델이었다. 생각이 흐른다고 한다면, 인간의 사고가 문장처럼 머릿속에서 순서대로 떠오르고 사라져 가는 장면이 상상된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인간의 마음속이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어로만 사고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희부윰하고 불투명한 이미지들이 마음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과정들이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과정이다. 그 이미지는 사진이나 영상처럼 시청각적인 것일 수도 있고, 음악처럼 순수하게 청각적인 것이기도 하며, 때론 가려움 같은 촉각적 상상이나, 달콤함 같은 미각적 상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인간이 꾸는 꿈이 그렇듯, 인간의 마음속에서 떠올리는 생각도 아마 제각각일 것이다. 내용에 따라,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일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받게 된다면, 불행하게도 인간인 우리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수단은 아직 언어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마치 인간의 마음이 온통 언어로 되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라는 것도 있다고 하지만, 대체 말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을 말하지 않으면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또 누군가의 책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 나 역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인간의 마음이 언어로만 되어 있지야 않겠지만, 아직은 언어를 통해서만 우리가 타인의 마음속에, 혹은 자신의 마음속에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이다.
답이 없는 물음에 답하고 있자니, 잠시 모였던 학생들의 마음이 또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해 떠나고 있다. 나 역시 오늘의 강의를 마무리하기 위해 급한 마음을 재촉하기 시작한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