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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안의 이상한 앨리스

정미영 수필가 연일 내린 비가 잦아들자마자 오어지 둘레길을 걷는다.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는 둘레길을 이제껏 한 번도 무결하게 걸어본 적이 없다.고즈넉한 오어사 경내를 둘러보고 원효교를 지날 때까지는 호기롭게 걷지만, 둘레길의 반 정도에서 발걸음을 되돌려 나오기 일쑤였다.오늘은 겨울 끝자락의 비바람에 대비해 모자를 쓰고 장갑을 챙기면서 기필코 끝까지 걷겠다고 다짐한다.얼마 전, 포스코갤러리에 다녀왔다. 특별기획전 ‘숲에서 발견한 위로 : 이너피스’전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전시실을 산책하듯 여유롭게 거닐었다. 첫 번째 여정인 사유의 숲을 지나 두 번째 여정인 치유의 숲에 도달했다. 실제 연주자 없이 빛과 소리가 어우러져, 피아노에서는 드뷔시의 ‘달빛’이 연주되고 첼로에서는 생상의 ‘백조’가 흘러나와 공간을 채웠다. 건물 안에 따뜻한 공기의 질감이 느껴지는 듯하더니, 공기 입자가 관람객을 따라 리드미컬하게 춤을 추는 것 같았다.내 마음에 젖어든 ‘숲’의 기운을 음미하며, 마지막 여정인 동화의 숲에 다다랐다. ‘나만의 앨리스’를 찾아보라는 문구를 시작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치미술이 조성되어 있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의 모험을 통해 자기 발견을 하는 여정이 펼쳐진다. 다양한 인물과 일을 경험하면서 자아를 찾고 자신의 용기와 삶의 지혜를 키워나간다.문득 한 달 전에 남미 등반을 다녀온 옛 제자가 떠올랐다. 그는 대학 산악부 소속으로 남미 아콩카구아를 등반하기 위해 5명으로 YB원정팀을 꾸려 가족과 산악대원들의 응원을 가슴에 간직한 채 한국을 떠났다가 무사히 귀국했다. 나는 A4용지로 30쪽이나 되는 등반보고서를 운 좋게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첫날의 여정을 살펴보니 인천공항을 떠나 아디스아바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멘도사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50시간의 비행 후에 땅을 밟을 수 있다고 했다. 시작부터 그들의 비행시간에 입이 떡 벌어졌다.등반보고서를 다 읽었을 때쯤에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혼쭐이 났다. 베이스캠프에서의 고된 생활과 고소증을 피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노력, 컨디션 난조로 몸과 마음이 지친 모습, 날씨를 살피며 등정 일정을 계획하느라 무작정 기다리던 일, 아콩카구아 정상을 밟은 자와 고소 증세로 정상을 밟지 못한 자들의 심리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광경을 상상해본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등반보고서 말미에 적힌 글이 인상 깊었다. “산악부에 참여한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선배님들의 뒤만 쫓아가기 바빴던 파키스탄 PK39 BC트레킹부터 대장을 맡은 북알프스 종주, YB 아콩카구아 원정대의 일원으로 등반까지. 그 외에 산악부에서 보낸 크고 작은 순간이 쌓여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산악부가 제 삶의 전반을 바꾸었습니다. 산악부에 몸담으며 세상을 이겨 낼 훌륭한 무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니 성실하게 노력하겠습니다.”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의 모험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켰다. 이상한 동물들과 마주했던 경험을 통해 자신을 향한 믿음과 용기를 되찾고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 그도 산악부의 일원으로 등반에 참여하면서 예상치 못한 시련에 부딪혔을 때 슬기롭게 극복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성장시켰을 것이다.내 삶의 궤적을 돌이켜본다. 나는 인생의 숱한 고비마다 어떻게 건너왔었나? 삶에서 생겨나는 문제의 답은 대부분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의 혼돈과 두려움이 싫어 회피하려던 순간이 떠오른다. 만약 앞으로 나에게 고난이 찾아온다면 앨리스처럼, 옛 제자처럼, 자아의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용기를 내어 현명하게 대처해야겠다. 또한 나의 가능성과 역량을 시험해 보는 일에 새로운 시각으로 도전하리라.나는 지금, 내 안의 이상한 앨리스를 찾기 위해 둘레길을 묵묵히 걷는다.

2024-03-06

세상은 누구의 작품인가

장규열 고문 프랑스 작가 시몬 등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세상은 남자들의 작품이다’라고 비꼬았다. 중요한 권력은 모두 남자들이 쥐고 있으며 구체적인 경제 실천과 사회 운영도 거의 모두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고발하였다. 그리된 까닭을 이모저모 들어보려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미사여구일 뿐 그 어떤 적절한 설명도 가당치 않다고 꼬집었다.미국 작가 캐롤라인 페레즈(Caroline Perez)도 저서 ‘보이지 않는 여성(Invisible Women)’에서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의 입안과 수립 과정이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에 점령당했다고 지적했다. 기초자료로 사용되는 통계자료들도 ‘여성의 존재’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아서 여성이 거기에 있었음조차 도외시되곤 한다는 것이다. 도시계획과 디자인의 과정, 사회문화정책의 논의와 입안 등에 있어 여성의 시각이 누락되지 않아야 할 것을 지적한다.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Inter national Women’s Day 2024)’이다. 올해의 슬로건으로 ‘여성을 위한 투자(Invest in women: Acc elerate progress)’에 방점을 둔다. OECD가 발표한 성별 간 임금격차는 평균 12퍼센트에 달한다. 잘 산다는 나라들에서조차 아직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12퍼센트를 덜 받고 있다는 것이다.한국은 그 격차가 무려 31퍼센트로 회원국 가운데 꼴찌가 아닌가. 우리의 누이들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남자들에 비해 31퍼센트나 덜 받고 지낸다는 발견은 놀랍지 않은가.여성의 존재가 무시될 뿐 아니라 가치마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있다는 현실은 우리가 21세기를 살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성경은 이미 2천 년 전에 ‘신 앞에서 남자와 여자는 같은 존재임’을 선포하였다. 그럼에도 아직껏 우리 기독교 일부 교단은 ‘여성이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정한다. 남자만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를 일이다. 세상이 저렇게 변했는데, 남자 목사들끼리 모여앉아 저따위로 결정하는 배포가 놀랍지 않은가.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어찌할 것인가. 남성이 지배하면 당연하고 여성이 들어서면 이상하다 여기는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 아닌가. 남녀 간에 물리적으로 다른 것을 인정하더라도 인격과 인권 면에서 무시되고 소외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남성과 평등하게 여겨지며, 아예 성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무시당하고 값싸게 취급되며 폭력까지 감내할 양이면, 우리의 누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아니다. 관련 과제들이 갈 길이 멀지만, 이제는 여성만의 몫이 아니다. 그동안 누리면서도 몰랐거나 무심했던 남성들이 나서야 할 차례가 아닌가. 인류의 나머지 절반이 세상을 함께 구하도록 소매를 걷어야 하지 않을까.올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을 위한 투자, 정책과 실행에 실천적인 제안과 역할이 논의되었으면 한다. 보부아르의 지적이 매서운 나침반이 되어 여성의 존재와 하는 일에 모두의 관심이 살아나야 한다. 여성이 살아야 세상이 일어선다.

2024-03-06

세계 최고 병원과 지방 병원

홍석봉 대구지사장 뉴스위크가 뽑은 ‘2024 세계 최고 병원’ 순위에 서울 아산병원 등 17개 한국 병원이 250위 내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 의료 수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하지만, 235위에 오른 대구가톨릭대병원 1곳을 제외하면 모두 ‘수도권 병원’이다. 지방 국립대병원은 단 한 곳도 없다. 한국 의료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일본은 지역 국립대 5곳이 이름을 올렸다. 250위 권에 든 병원의 절반이 지방 병원이다.최근 의사 정원 확대를 둘러싸고 반발하는 의사 파업 속에 우리나라 지방 의료의 현실이 뉴스위크가 매긴 수치로 확인됐다. 서울은 의사와 환자가 넘쳐나는 데 지방은 의사를 못 구해 난리다. 지방 의대 출신 수련의들도 대부분 서울로 간다.환자들은 서울 원정 진료에 나선다. 속칭 서울 ‘빅5’ 병원은 환자들이 몰려 시장판을 방불케 한다. 의료 서비스가 지방과는 천지 차이다. 게다가 많은 환자를 돌보면서 풍부해진 임상경험 등 의사 실력도 차이가 난다.이렇다보니 지방에서는 시간과 돈을 허비하며 기를 쓰고 빅5 병원을 찾는다. 병원 인근에 방까지 얻는 형편이다. 지방에도 실력 있는 의사들이 많다. 하지만 더 나은 의사에게, 더 나은 진료를 받으러 서울로 간다. 서울 빅5는 밀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수 개월씩 진료 대기가 일쑤다. 서울과 지방 간 의료 격차는 점점 벌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대구에서 정원 확충 등을 통해 지역 인재 중심의 의대가 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국립 의대와 지역 의대에 대한 시설 투자도 약속했다.의사 파업 속 세계 최고 병원 반열에 오른 한국 의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3-06

주간계획표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매년 3월과 8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시간표를 만드는 일이다. 네모난 표에 여러 개의 칸을 만든다. 구획된 칸 안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야간 9시 30분까지, 한 학기 동안 수업할 강의명과 강의실까지 상세히 적어 넣은 시간표다. 매주 책임져 강의해야할 시간은 보통 9시간인데 많으면 주 12시간이 넘기도 한다.강의의 종류는 서너 종류가 때론 버겁기도 하다. 그럼에도 강의시간을 피해 적당한 시간을 잡아 학생과의 면담 가능시간도 반드시 정해 넣는다. 내가 연구실에 없을 때 찾아오는 학생들을 위해서 연락처도 꼭 적어둔다. 석 장을 프린트해서 연구실 바깥문에다가 붙이고, 내가 앉은자리에서 시선이 닿는 바로 앞 벽에도 붙인다. 하나는 집에 가져가 냉장고에 붙여놓는다. 이렇게 25년 동안 시간표를 한 해 두 번씩 만들던 습관은 나의 머리와 몸에 깊이 배어있었나 보다. 3월이 시작되자 시간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실은 2월경부터 조바심이 났다.코로나로 인해 은퇴 후의 버킷리스트를 거의 실행하지 못했다. 코로나를 벗어났어도 마찬가지였다. 2년 동안 손주들의 유치원 등하원 지원을 해주면서 버킷리스트는 자연 유예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월 23일자로 손녀가 유치원을 졸업하는 날, 드디어 나만의 시간표를 만들 수 있겠다며 생각하자 유예해 두었던 버킷리스트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목록을 꺼내 살폈다. 우선 건강을 위해 꾸준히 해야 할 것들을 찬찬히 훑었다. 요가, 필라테스, 실내클라이밍, 자전거 타기…. 주위의 강한 권유가 있어 수영을 선택하고, 마침 코로나로 문 닫았다 재단장하여 문 연 집 가까운 수영장을 바로 찾았다. 적당한 시간을 정하고는 매일 가야하는 빡빡한 일정을 만들어 버렸다. 처음엔 혹사일지 몰라도 몸에 배면 괜찮겠지 마음을 다잡는다.또 하나는 한글서예를 배우는 것이었다. 서예는 실은 작년 7월 시작했다. 그러나 손주들의 일정이 우선인지라 시간 빼기가 쉽지 않았다. 또는 손주 등하원 지원이 쉬운 일이 아니었던지 종종 허리를 다치거나 감기를 앓는 등, 몸이 이기지 못할 경우가 생기자 자주 빠지게 되었다. 아예 해를 넘겨 좀더 자유로운 때를 기다려 미루기로 했던 거였다. 재도전으로 결심을 굳혔고, 집에도 연습 공간을 만들 여건이 되자 3월 1일부터 바로 시작하였다. 이제 매일 저녁 한 시간의 수영과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세 시간 정도의 한글서예 시간이 확정되었다. 그러고도 메워야할 시간표의 빈 칸이 남아있다. 급히 먹는 밥에 체할라 우선 2개 과목으로부터 준비운동을 본다. 새 시간표에 적응하여 여유로워지면 내일배움카드로 유튜브아카데미도 등록할 참이다. 명절이나 가족 모임이 있으면 일정계획을 세우고, 음식리스트를 작성하고, 맛집을 찾는 등 계획표를 만들곤 하는 나를 본 며느리가 말했다. 어머니는 MBTI가 J형인 거 같아요. 맞다. 난 정보를 수집하고 세부계획 짜서 실행하는 조직적인 성향인 ISFJ이다. 그런 성격이 다분하기도 하지만 실은 25년을 정해진 강의시간표에 맞춰 산 경험과 이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2024-03-06

이쁘게 살을 빼자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다시 또 봄이 찾아왔다. 여름을 이쁘게 보내려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세상엔 수많은 다이어트 방법이 있지만 결론은 하나다. 적은 칼로리를 먹고 많은 칼로리를 내보내면 된다. 절대 진리다. 가끔씩 많이 안먹는데 살이 안빠진다는 분들이 있는데 집요하게 물어보면 이것 저것을 먹는 경우가 많다. 적게 먹고 많이 내보내면 살은 빠진다. 그러나 살을 뺄 때 어떻게 먹느냐 어떤 운동을 하느냐에 따라 같은 3킬로를 빼도 누군 이쁘게 빠지고 누군 그렇지 않다.살을 뺄 때는 잘 먹으면서 빼야 한다. 대부분은 극단적으로 식사량을 줄이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렇게 살을 빼면 건강도 나빠지고 살을 빼도 이쁘지 않고 금방 요요가 온다. 식사량을 줄여서 살을 빼는 방법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식사를 잘하면 자연스레 식사량이 줄고 근육은 유지된다.식사를 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고기를 먹고 탄수화물을 줄이면 된다. 식사를 하는 순서는 고기나 생선 혹은 단백질을 먼저 먹고 채소가 있으면 같이 먹어도 좋다. 탄수화물인 밥과 국수 빵은 먹지 않는다. 먹다가 물리면 숟가락을 놓으면 된다. 국은 절대 먹지 않는다. 물도 목이 마르지 않으면 일부러 많이 먹지 않는다. 밥과 국이 없이 고기와 채소만 먹으면 자연스레 음식이 적게 들어간다. 이렇게 한 달을 먹으면 자연스레 3~5킬로가 빠진다. 과일과 술은 먹지 않는다.운동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이뻐지려면 해야 한다. 나갈까 말까 고민하지 말고 옷도 고민하지 말자. 그냥 나가서 걷자. 아무 옷과 아무 신발을 신고 나가서 걷는다. 20~30분 정도 걷는 게 익숙해지면 한번 전력 질주를 해보자. 숨이 턱밑에 닿을 때까지 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배가 고프면 먹자. 라면 밥 국물 빵은 절대 안 된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구워서든 쪄서든 양념해서든 먹으면 된다. 소금 충분히 치고 양념 발라서 맛있게 먹으면 된다.그리고 헬스장에 다니는 사람은 근력 운동을 병행하면 좋다. 근육 커지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는데 실제로는 몸이 이쁘게 다듬어진다. 여자들은 보디빌딩 수준으로 하지 않는 한 절대 근육이 커지지 않는다. 어떤 부위든 하면 된다. 재미가 없으면 사이클을 하자. 다리가 힘들고 땀이 나올 때까지 하면 된다. 이렇게 살을 뺄 때 음식조절과 더불어 운동을 하게 되면 더욱 큰 효과를 볼 수 있다.정리하면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면서 근력 운동과 적당한 유산소 운동을 하면 된다. 제일 중요한건 음식 먹는 방법을 바꿔야 하는 것이고 바로 고기 위주의 식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고기가 아니라 밥과 빵 라면이 범인이다. 과일은 살을 찌우는 공범이다. 국물은 먹지 않는다. 물도 입이 마르지 않는 이상 많이 먹지 않는다. 물을 먹고 붓는 사람은 물을 많이 먹으면 붓고 살찐다. 안좋은 다이어트 방법이다.힘이 들면 한의원에서 다이어트 한약의 도움을 받으면 좋다. 검증된 방법이고 요즘은 다이어트환으로 나와 저렴하다. 부작용이 제일 적고 효과 높고 만족도가 높은 다이어트 방법이다. 입맛이 떨어지고 붓기가 빠진다. 식이요법 운동과 병행하면 최상의 효과를 낸다.

2024-03-06

‘태산명동서일필’

우정구 논설위원 국민의힘 TK 공천을 보고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태산이 떠나갈 듯 요동을 쳤으나 뛰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 뿐이라는 뜻)이 떠오른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사자성어도 떠올랐으나 그보다는 ‘태산명동서일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중국의 고사 중에 ‘태산명동서일필’은 특이하게 서양에서 그 근원을 찾고 있다. 로마시대 계관시인 호라티우스가 “산들이 산고 끝에 우스꽝스러운 생쥐 한 마리를 낳았다”고 한 말을 중국 한문으로 의역한 것으로 전해진다.요란하게 떠벌였으나 결과는 사소하고 보잘 것 없다는 뜻이다. TK 공천을 앞두고 조사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현직의원을 바꿔야 한다는 대답이 대부분 60%가 넘었고, 경우에 따라 80%도 나왔다. 그래서 다른 곳은 몰라도 TK지역은 현직의원 물갈이 폭이 커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었다. TK의원들의 긴장감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인요한 혁신위원장도 “와이프와 자식말고 다 바꿔야 한다”고 말해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TK 중진의원의 희생론도 부상했다.당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TK 현역의원에 대한 시도민의 불신도 컸다. 의원직 수행 만족도 50%를 넘기는 의원이 별로 없었다. 존재감이 없거나 무능하다거나 비만 고양이 소리까지 듣는 비판도 나왔다.TK지역 4월 총선 후보 교체율이 역대급이 될 거라는 전망은 빗나갔다. 이유야 어쨌든 ‘태산명동서일필’꼴이다. 현재까지 현역 절반 이상이 생존했고, 재선 이상은 100% 공천을 받은 것이다.대폭 물갈이를 원했던 여론과는 상반된 결과에 유권자의 실망도 당연히 클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맞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3-05

동대구역 ‘박정희 광장’, 아이디어 좋다

심충택 논설위원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근 “대구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할 때가 됐다. 예컨대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고, 그 앞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공감이 가는 구상이다.시장 개척을 위해 해외에 자주 나가야하는 지방정부 단체장들에겐 해당 도시를 대표하는 유무형의 자산에 대한 홍보 방법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해외 출장을 가보면 외국인에게 나를 소개할 유일한 수단인 ‘명함 콘텐츠’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때가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TK(대구경북)의 대표적인 홍보 자산이다.아직까지 우리나라 지방 정부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자치단체를 잘 대변하고 품격도 높일 수 있는 고유의 브랜드를 사용하는 곳은 별로 없다. 광주시가 컨벤션센터 등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을 네이밍(이름짓기)하는 정도가 전부인 것 같다.TK지역도 이제 세계 각 도시로 향하는 관문(공항이나 역, 항만) 명칭을 새롭게 브랜드화하는 작업을 할 때가 됐다. 새마을운동과 한국근대화의 산실인 TK지역은 박정희 브랜드가 해외에 이 지역 정체성을 홍보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다.나는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해 가장 함축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서울 현충원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44주기 추도식에서 “박 대통령의 ‘하면 된다’는 정신은 우리 국민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불어넣어 줬다. 웅크리고 있는 국민의 잠재력을 끄집어내서 위대한 국민으로 단합시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취임한 이후 전 세계 92개국 정상을 만나 봤지만 모두가 박 대통령께서 이루어낸 압축 성장을 부러워하고, 위대한 지도자의 결단에 경의를 표했다”고 했다.박정희를 해외 정상들이 모두 기억하고 인정해줄 정도로 역량이 뛰어난 인물로 브랜드화한 감동적인 추도사다.홍 시장은 지난 2021년 9월 대선후보 시절 “TK통합신공항을 ‘박정희 공항’으로, 부산 가덕도신공항은 ‘김영삼 공항’으로, 호남 무안신공항은 ‘김대중 공항’으로 명명해 대한민국 4대 관문공항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었다. 비수도권 도시의 하늘길에 전직대통령의 브랜드를 붙여 세계적으로 홍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후 ‘박정희 공항’은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전에서도 단골 메뉴가 됐다. 지난해 가덕도신공항 이름을 ‘이순신 국제공항’으로 결정해달라는 내용의 대정부 건의안을 낸 경남도의회도 처음에는 ‘박정희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을 고민했다고 한다.세계 각국이 역사적 위인들의 이름을 공항 명칭 등으로 사용해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은 일반적인 추세다. 홍 시장의 제안에 대해 대구지역 시민단체인 박정희정신계승사업회(단장 김형기 경북대 명예교수)도 적극 환영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공항이나 역광장을 새롭게 네이밍하는 절차는 그렇게 까다롭지 않은 모양이다. 대구시민의 합의만 이뤄진다면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2024-03-05

봄 마중 섬 산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이른 봄 마중을 하듯이 새벽같이 남도로 향했다. 만물이 깨어난다는 경칩 즈음이라 이런저런 봄 채비로 바빠도, 통영에서 불어오는 봄빛 바람을 쐬니 부드럽고 여유롭기만 했다. 기온이 살짝 올라가는 틈을 타 미세먼지가 복병처럼 도사려 안경에 서린 김 마냥 시야를 희뿌옇게 하는가 싶었었는데,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아갈수록 해풍의 희석 때문인지 수평선과 섬들의 전망은 대체로 선명한 편이었다.갈매기들의 어설픈 외침이 환호처럼 들리고 바다의 흰 포말이 배웅으로 이어지는 뱃길을 달려 접안한 곳은 바다 위에 핀 연꽃 같은 섬, 연화도(蓮花島)였다. 경남 통영항에서 남쪽으로 24㎞ 해상에 위치한 연화도는 말 그대로 연꽃섬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실제로 북쪽 바다에서 바라보는 연화도의 모습은 꽃잎이 하나하나 겹겹이 봉오리 진 연꽃을 떠올리게 하는 모양새다. 섬 중앙에 연화봉(212m)이 솟아 있고 동남쪽 해안에는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하여 연화포구를 둘러싼 사방이 기암절벽으로, 용이 대양을 향해 헤엄쳐 나가는 모습의 용머리 바위가 통영8경의 하나일 정도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연꽃 고이 접어/물 위에 띄어 놓고//자비로운 부처님/품 안에 안고//망망대해/흘러흘러 와 자리잡고//오늘도/누구를 기다리나//물 위에 떠 있는/연꽃잎’ - 최용순 시 ‘연화도’ 전문연화도항 서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연꽃잎 속으로 스며들듯 서서히 등산을 시작했다. 초입부터 가파른 비탈길이 만만찮았지만, 이내 연화도항과 북쪽의 우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에서 숨결을 고르며 조망하는 경관은 섬산행의 설렘을 부추겼다. 울산과 마산 등지에서 왔다는 등산객들로 한적한 등산로가 붐비고,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들과 가볍게 대화하며 오르다 보니 금세 정상에 이르렀다. 넓직한 연화봉 정상에는 보기 드물게 아미타대불이 연화사를 향해 우뚝 서있고, 그 뒤로는 활달한 행서체의 주련이 걸린 팔각정이 망망대해의 운치를 더해주는 듯했다.정상에서 동남쪽으로 그림처럼 펼쳐진 용머리 해안은 연화도 절경의 압권이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는 하얀 파도의 포말이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오는 듯하고, 올망졸망 이어지는 연화열도는 마치 승천하려는 용의 용틀임같이 힘찬 기세를 모으는 듯했다. 반대쪽인 용두마을의 해변은 밋밋하고 고요의 바다에서 파도 한 점 일지 않아 길쭉한 용머리 능선을 사이에 두고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었다. 자연의 양면성은 이렇듯 보채거나 서두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로 품고 보듬으며 제각각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인간사회에서는 매양 매시 바람 잘 날 없이 아웅대고 티격거리며 갈등양상이 멈추지 않으니 ‘자연을 법으로 삼는다는 도(道法自然)’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수년 전 주마간산 격으로 다녀온 연화도를 다시 찾아 산행과 아울러 싸목싸목 걸어가며 주위를 살피니 보이고 들리는 것이 많았음에라! 산이나 강, 섬이나 뭍을 찾는 곳 어디에나 늘 반기며 기댈 수 있는 심신의 안식처, 자연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병원과는 멀어지지 않을까 싶다. 망중한의 여유로 자연을 즐겨 찾자.

2024-03-05

화요일 첫 비행기는 뜬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매주 화요일 김포공항에서 포항으로 가는 첫 비행기는 뜬다. 서울 여의도에 본사를 두고 있는 포항 청하면에 위치한 스테인리스 가공 회사인 D사는 2013년 동반성장이란 이름으로 포스코의 지원을 받았다. 스테인리스 후판 고객사인 D사는 민주노총 계열의 포항에서 보기 드문 1년 파업을 한 사업장이고 그 피해에 대한 법적 소송에 패하여 노조 간부와 조합원은 3년째 급여를 차압 당하고 있었다. 여기에 혁신을 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서울 경기지역과 해외를 지원하고 있던 필자는 경영자문 역할의 스테인리스 부문장과 혁신 컨설턴트로 배치되었다. 사장과 첫 인터뷰에서 4가지 약속을 했다. ‘사장부터 빗자루를 든다, 혁신 인재를 양성하고, 매월 현장 Top 진단, 직원 변화관리 교육을 지속한다’였다. ‘부하직원들은 상사의 등을 보고 배운다’라는 속담이 있다. 얼어 붙은 조직분위기를 해동하는 데는 Top의 빗자루를 드는 리더십이 필요했다. 본사가 서울에 있었지만 사장은 매주 화요일은 어김없이 첫 비행기로 포항 사업장을 찾는다. 현장 개선활동 격려와 솔선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사장부터 빗자루를 들고 공장 청소를 시작했고 직책보임자도 함께 나와 쓸고 닦았다. 처음에 현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 달이 지나고 3개월이 지날 즈음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한 현장을 위한 문제해결 4개월 프로젝트의 활동 리더 인재양성을 하며 요소요소에 혁신의 불씨를 심어 나갔고, 현장 즉 실천 14팀의 Top 진단을 통해 ‘대화의 장, 격려의 장, 코칭의 장’을 만들어 가며 스스로 개선하는 조직 분위기를 조성했다.Top 진단 시 담배꽁초가 보여도 사장은 잔소리하지 않았고, 개선 내용을 경청하며 3개를 칭찬하면 1개 정도 코칭을 한다. 일로서 직원과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숨어버리던 조직분위기는 어느 시간부터 직원들이 운전실을 나와 사장의 팔을 잡고 개선 활동 장소로 가는 변화가 일어났다. 전 직원 교육을 할 때 사장과 직책보임자도 참석했다. 노조 간부들 프로필을 소개 받았지만 선입견 없이 하고자 지웠고 그들의 입장과 그들이 쓰는 언어를 사용하며 대화하듯 변화 관리 교육을 했다. 사장과 직원들이 하나의 방향을 보고 같은 생각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달라지고 사장과 직원들의 생각이 다를 때 긍정적인 조직 문화는 요원한 것이다.말이란 인간만이 누리는 선물이다. 말 한마디로 자신을 세우기도, 넘어뜨리기도 한다. 한마디 말에 일의 성패와 흥망이 걸려 있기도 하다. 사장의 열린 마음과 따뜻한 말 한마디에 직원들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조직문화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인생은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 데, 그 힘은 바로 말에 있다. 말솜씨에 따라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D사의 혁신 성공의 비결은 사장의 진정성 있는 솔선 리더십과 직원 관점의 소통으로 신뢰를 쌓고 미래의 꿈을 심어준 결과다.

2024-03-05

“아이고 문디야”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시도 재밌어야 한다. 메시지 전달을 너무 강하게 의식하면 시는 관념화하거나 교훈적이거나 독자를 계도하고 가르치려는 부담을 주게 된다. 시가 교훈적이거나 이념을 강요하는 시를 오탁번 시인은 시적 문맹이라며 시답잖다고 판단한다. 한때 시에다가 무슨 사상이나 이념이나 철학을 담아내어 제법 그럴듯하게 꾸며 독자를 현혹시켜는 사이비 위장전입한 시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발로 차지마라”는 메시지는 가난하고 짓밟혀 사는 사람들을 발로 차지 말라는 엄청난 감동을 일으켰다. 그런데 과연 시인 자신은 연탄재를 발로 차며 사는 변두리 사람이었을까? 타자와의 일체성을 잃어버린 위장자의 입장에서 서민을 교화하려는 허위성을 안고 있는 언어는 아닐까? 오히려 곡진한 고어나 변두리 사람들의 말 속에서 건져올린 말도 안 되는 우스개 수준의 시가 시적 허위의 엄숙성을 내치는 좋은 수단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요 엄창 큰 비바리야’(2007)에 실린 권기호 시인의 시‘아이고 문디야’는 ‘보리문디’ 경상도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관용어 “아이고 문디야”가 시어로 화려하게 변신하여 재미있게 읽히는 시다.“태백산 돌기로 내려온 지판은 오래전 문경암층 방향 틀어/ 바람소리 물소리 이곳 음질 되어 영일만 자락까지 퍼져있었다.// 어메요 주께지 마소 나는 가니더 미친년 주것다 카고 이자뿌소/ 부푼 배를 안고 부풀게 한 사내 따라/ 철없는 딸은 손사래치며 떠나는데// 아이고 저 문디 우째 살라 카노 아이고 저 문디 우째 살키고/ 인연의 삼베끈 황토길 놓으며 어메는 목젖 세하게 타고 있었다.// 호박꽃 벌들 유난스런 유월 느닷없이 남의살 제 몸에 들어와/ 노을빛 먹구름 아득히 헤맨 딸에게 어메는 연신 눈물 훔치며/ 맨살 드러낸 산허리 흙더미 내리듯이 마른 갈대소리 갈대가 받듯이/ 토담에 바랜 정 골짜기에 쌓을 수밖에 없는데// 세월 흘러도 신생대 암층 고생대 지층이 받쳐왔듯이/ 풍화된 마음 먼 훗날 만나게 되면// 아이고 이 문디 우째 안죽고 살았노 아이고 어메요/ 우리 어메요/ 맨살 부비는 산허리 소리 반갑게 울부짖는 것이다.”이 시는 경상도에서도 아주 무지한 사람들의 살아있는 곡진한 목소리를 시어로 불러내었다. 태백산 줄기를 타고 문경에서 영일만까지 경상도의 음질이 된 사투리의 생생한 현장성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철없는 딸년이 아이를 배어 집을 떠나는 서사적 사연을 엮어낸 시적 대사는 농경시대 어두운 시절의 그림처럼 혹은 한 편의 연극처럼 슬프긴 하지만 내쳐버리지 못할 질긴 운명의 서사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보리밭처럼 밟혀 사는 무지랭이들의 육성이 마치 귀에 들리는 듯하다. 바람이 나서 부모 몰래 아이를 밴 딸년은 어메에게 “나는 가니더 미친년 주것다 카고 이자뿌소”라고 내뱉는다. 그에 화답하는 어메는 “아이고 저 문디 우째 살라 카노, 아이고 저 문디 우째 살키고”라며 모녀간의 이별을 통곡한다. 안 죽고 살아서 다시 만나는 모녀의 관계는 마치 태백산맥의 지층이 영남의 역사와 공간을 유지해온 것과 묘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다.알몸으로 살아온 사람들, 농경제 공동사회에서 ‘문디’는 보리밭에서 아이들 간을 빼내먹고 산다는 나환자를 이르는 말이지만 경상도 방언에서는 ‘문디’는 항상 ‘아이고’라는 감탄사와 함께 호응을 이루어 원통하거나 한스러울 때 상대를 호명하는 경상도 사람들의 심성을 담고 있는 울림의 관용구다. “연탄재 발로 차지 말라”며 독자들에게 단호하게 명령하는 시인의 눈높이가 아니라 가난하고 무지한 농촌의 어메와 원초적 본능에 충실한 딸년의 눈높이로 자세를 낮춰야 들리는 세상의 소리다.시인은 놀라운 통찰력으로 영남 방언의 음운변화와 아래아의 역사적 변천의 잔존형까지 시어로 녹여내었다. “맨살 부비는 산허리 소리 반갑게 울부짖는 것이다.”라며 무지한 딸년이 남자를 만나는 광경을 산허리의 바람 부는 소리로 전환해내는 시어의 놀라운 위력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시인 권기호가 들려주는 투박한 경상도 소리가 과거의 시공간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온다. 딸년의 무지하고 원초적인 성은 도덕을 뛰어 넘어 어둠조차 견뎌내게 만드는 축제적인 제례임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무슨 혼탁한 윤리나 도덕이 개입할 여지가 있을까?

2024-03-04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세상

지난 1월 16일 비즈니스 호텔에서 눈을 뜬 저는 호텔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공기가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눈이 부실 정도였는데요. 이날은 작가 오시로 사다토시 선생님이 우리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오시로 사다토시는 1949년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시 창작으로 시작해, 이후에는 소설로 장르를 확대하며 지금까지도 맹렬하게 활동하는 오키나와의 대표적 문인입니다. ‘저승의 목소리’ ‘게라마는 보이지만’ ‘1945년 비통한 오키나와’ 등의 소설은 환상적인 기법을 통해 오키나와전의 비극을 표현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지요.그의 소설에는 늘 전쟁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는 정신, 억울한 망자들의 못다한 말을 담아내는 마음, 사라져가는 오키나와 말(시마고토바)을 쓰려는 의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키나와 소바를 파는 식당에서, 오키나와전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는 말씀을 드리자, 선생님은 바로 제 손을 잡으며, 우리는 ‘친구’라고 뜨겁게 말씀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진정한 문학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오시로 선생은 우리 일행을 오키나와의 대표 언론사인 ‘오키나와 타임즈’로 안내했는데요. 오키나와는 인구 150만 정도의 섬이지만, ‘오키나와 타임즈’의 규모는 한국의 그 어떤 언론사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이런 언론사가 나하시에 하나 더 있다는 말을 들으며, 오키나와가 차지하는 사회·역사적 위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키나와 타임즈’에서는 시로마 아리 기자가 안내를 해주었는데요, 시로마 기자는 류쿠 대학 시절 오시로 선생님의 제자였으며, 현재는 ‘오키나와 타임즈’의 출판콘텐츠부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저희에게 ‘일본 복귀’ 50주년을 기념하여 2022년에 출판한 ‘반복귀론을 다시 읽다(‘反復帰論’を再び読む)‘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 책은 ‘오키나와 타임즈’가 발행했던 잡지 ‘新沖縄文学’ 18호(1970.12)와 19호(1971.3)에 수록된 ‘반복귀론(反復帰論)’ 관련 논문 8편을 수록한 것인데요. 그 중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가 쓴 ‘오키나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沖縄の友人への手紙)’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직접 통치 아래서 여러 가지 고통을 겪던 오키나와인들은 미국의 군사지배보다 일본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72년에 ‘복귀’를 쟁취하였으나, 몇몇 사람들의 우려처럼 ‘복귀’의 실제 모습은 기대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약속한 복귀의 대전제는 오키나와에 존재하는 미군기지가 조금의 손상도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그 결과 미국의 군사기지가 그대로 남은 것은 물론이고 신기지가 건설되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일본 국토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는 재일미군기지 전용시설의 74%가 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기지는 섬 전체 면적의 2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지금도 오키나와 경제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은 관광과 기지 관련 수입이라고 합니다.‘오키나와 타임즈’를 나온 우리 일행은, 오시로 선생님의 안내로 1959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오키나와시사출판사’를 방문하였습니다. 오키나와의 사정을 일본 본토의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 출판사는, 오늘날 아동용 도서 출판으로 유명한데요. ‘오키나와시사출판사’ 견학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소학교(우리의 초등학교) 3,4학년용 교재였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 것들인데요.오키나와 어린이들은 자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키나와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발 딛고 사는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교과서로 배우며, 일본인으로 성장한다는 것인데요. 어쩌면 국가의 역사와 문화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향토에 대해서부터 배우는 것도, 올바른 세계시민이 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1월 17일에는 후텐마 기지, 헤노코 기지와 함께 오키나와의 대표 미군기지인 카데나 미 공군기지를 방문했는데요. 카데나 미 공군기지는 베트남전 당시 전략폭격기 B-52가 수시로 뜨고 내렸던 곳으로도 유명하죠. 기지 건너편에는 4층 건물의 카페나 휴게소가 있었습니다. 그곳의 전망대에서는 드넓은 기지와 3,700m에 이르는 쭉 뻗은 활주로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잠시 머무는 사이에도 미군기가 뜨고 내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전망대에 설치된 소음측정기에 나타난 숫자는 무려 100데시벨을 넘어서고는 하여 우리를 놀라게 했는데요.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보통 110데시벨 정도라고 하니, 근처에 사는 오키나와인들은 경적 소리와 함께 일상을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어쩌면 평화란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소곤소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라는 소박한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2024-03-04

믿음이 무너지면 모든 걸 잃는다

김규인 수필가 아시안게임 4강전에서 유효 슈팅 하나를 기록하지 못한 졸전 끝에 대한민국은 요르단에 졌다. 선수들의 개인기에만 의존하는 클린스만 감독의 무전술과 뒤이어 터져 나온 선수들의 다툼이 벌어진 것을 알고는 팬들은 크게 실망했다. 이강인이 주장인 손흥민 선수와 다툼으로 손흥민은 손가락을 다쳤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 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특히 위계질서가 강한 운동선수의 하극상은 좀처럼 드물다. 결과적으로 무참한 경기 성적에 앞으로의 경기를 염려하는 지경에 이른다. 국가대표는 말 그대로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다. 경기력은 기본이고 태도도 중요하다. 특히 축구는 열한 명이 뛰는 단체경기가 아닌가. 서로 간의 호흡과 생각마저도 읽어주어야 하는 경기다.경기 결과는 무참했고 능력 미달의 감독은 경질되었고 문제를 일으킨 이강인 선수는 팬들의 비난에 휩싸인다. 그를 내세워 광고하는 회사마저 광고를 취소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팬들의 비난으로 마음이 황폐해지면 경기력도 떨어진다. 이런 사정으로 이강인은 소속팀에서 출전 시간도 점차 줄어든다. 프로구단은 경기력과 상품 가치가 떨어진 선수는 언제든지 내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개인주의 사회인 유럽에서 성장한 이강인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도가 지나친 행동은 언제든 자신에게 결과가 돌아온다.그나마 선배들을 찾아 적극적으로 사과한 건 천만다행이다. 영국에 있는 주장 손흥민을 찾아 사과하고 다른 선배들에 직접 사과하여 문제를 수습하는 노력을 보인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운동하는데 생각이 많아지면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경기력은 떨어지고 몸을 다칠 가능성은 늘어난다.인생은 짧고 운동선수의 경기 출전 시간은 더 짧다. 그 기간에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려면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젊을 때는 이 기간이 영원할 것 같지만 금방 지나간다.국가대표를 안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팬들에게서 멀어지면 자신의 축구 인생도 끝나는 것을 젊은 선수들은 알아야 한다. 축구장에서 안 보이면 국민과 팬들의 마음에서 멀어진다. 팬들에게서 멀어진 선수의 상품 가치는 땅에 떨어진 것이고 그런 선수에게 프로구단은 돈을 투자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축구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는 경기다. 팀을 믿고 팀에서 내가 할 일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를 내세우기보다 팀을 앞세워야 한다. 나 하나만 잘한다고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팀이 하나가 될 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마다 원팀을 강조하고, 원팀을 이루기 위해 반복 훈련하는 것이다. 선수들은 반복 훈련을 통해 서로에 대한 믿음을 다지게 된다.축구경기에서 팀이 선수 개인보다 항상 앞에 있음을 감독도 선수도 깨달아야 한다. 나 자신을 앞세울 때 믿음도 팀도 무너진다. 불신의 참혹한 결과를 우리는 요르단전에서 보았다. 믿음이 사라지면 팬도 구단도 광고도 사라지고 비난만 남는다. 믿음이 무너지면 모든 걸 잃는다.

2024-03-04

국가란 무엇인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지난 2월 22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전국교수연대회의가 주최한 ‘무학과 무전공’ 반대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기자회견은 전국교수연대회의에 참여한 각 교수 단체 대표들의 발언과 기자회견문 낭독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교수 단체 대표의 발언이 이어지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시위 진압 차량이 나타나고 경찰의 불법 집회라는 경고 방송이 나왔다. 나중에 알았다. 기자회견으로 신고된 행사에서 참가자들의 구호 제창은 불법이라는 사실과 삼십여 명 규모의 구호 제창은 보통 그냥 넘어가지만, 중간에 울려 퍼진 ‘퇴진하라!’는 구호가 문제가 됐다는 점을 말이다.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정해진 장소에서 외치는 구호에 놀라 시위 진압 차량까지 등장하는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정부의 의대 정원 이천 명 증원 발표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지 3주가 지났다. 정부와 의사들이 각자의 논리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이에 맞선 의사들의 투쟁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서 국민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는 어느 쪽의 시각이 옳은 것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기사에서 읽게 된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이번 사태에 대한 시각은 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관계자 발언의 요지는 의대 정원 증원의 결정은 지역의 의견을 들을 수 있지만 국가가 내린다는 것이었다. 법적 절차에 따른 합리적 발언일 것이다.그렇다면 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지금의 구조에서 국가란 국민의 직접 선거로 뽑은 대통령과 대통령이 임명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를 말한다.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정책을 시행하며 시스템을 만든다. ‘무학과 무전공’, ‘의대 정원 증원’은 교육 시스템을 새롭게 만드는 정책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의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이게 내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이다.하지만 지금은 협의와 토의 과정은 모두 생략한 채 국가가 가고자 하는 길에 잔소리 말고 따르라는 식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사장에서 대통령에게 의견을 전하려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경호실 직원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쫓겨난 사건이나 한국과학기술원 학위 수여식장에서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항의의 목소리를 내던 대학원생이 강제로 쫓겨난 모습은, 현재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법적 절차에 따르는 것이 정답이라면 이해당사자 간의 협의는 애초에 필요 없는 것이다.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3월이 되었다. 그리고 설렘과 두려움을 품은 2024학번 새내기가 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학생들과 우리 사회의 이슈를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토론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다. 토의 과정을 익히지 말고 권력을 손에 넣으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민주주의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2024-03-04

공무원 공부모임

홍석봉 대구지사장 경북도에서 시작된 ‘화요일에 공부하자’, 이른바 ‘화공’이 일선 지자체로 확산하면서 공무원 공부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 구미시는 ‘수공’, 울진군엔 ‘목공’도 있다.최근엔 예천군이 가세했다. 예천군은 ‘퇴근길에 공부하자!’라는 야학을 만들었다.예천야학은 경북도청의 ‘화공’을 벤치마킹했다. 공무원들이 급변하는 시대 흐름을 이해하고 군청 각 부서장 등 능력 있는 관리자를 육성하려는 의도에서 마련됐다. 월 1차례씩 연간 10회 진행한다.울진군도 지난해부터 ‘굿모닝 목요특강’이라는 이름의 공부모임을 시작, 공무원과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경북도의 ‘화공’은 ‘경북의 발전을 위해 공무원부터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시대적 흐름을 주도해 공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공부모임이다. 지난해 화공은 모두 56회 진행됐다. 경제·산업·과학기술분야와 공공정책·혁신분야 등 온갖 분야를 아우른다. 인문소양·소통분야도 있다.그중 가장 많이 열린 분야가 경제·산업·과학기술 분야다. 경북도의 관심 분야와 일치한다. 화공에서 논의된 주제는 후속 연구와 공부를 통해 실질적인 정책 개발로 이어진다. 강사 대부분이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보니 공무원들이 안계를 넓히고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정책에 반영, 톡톡히 효과를 보는 것이다.공무원의 머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부모임을 통해 배우고 남의 머리를 빌리는 것이 빠르다. 공직자들의 사고를 일깨워 주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얻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공무원들에게 소양 교육도 시키고 정책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공부모임의 확산을 기대한다. 그게 누이 좋고 매부도 좋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3-04

미셀 들라크루아(Michel Delacroix)

방민호 서울대 교수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데, 또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미셀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가 있다고 했다. 내 의지로는 지금 갈 수 없는 형편, 사람에 이끌려 외출을 감행했다.들라크루아라면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낭만주의 화가밖에 알지 못한 나였다.그 오랜 프랑스혁명의 지지자의 그림을 보러 가야 하나? 그런데 아니다.미셸 들라크루아는 1933년 2월 26일 출생해서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화가. 구글에서 이 화가를 검색하면 “the ‘naif’ style”(나이브한 스타일)의 프랑스 화가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naif’는 프랑스말, ‘naive’로도 쓰며, 영어의 ‘naive’와 같은 말이다. ‘naive’는 우리말로도 “저 사람 참 나이브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그 ‘나이브’다.블로그 ‘형설지공’에 이 프랑스말 ‘naive’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다. 이 말은 라틴어 ‘nativus’, ‘태어난, 타고난, 자연적인’ 등의 뜻을 가진 말에서 나왔다.이 말은 “태어난 상태 그대로 다듬어지지 않아 단순하고 세련되지 않다”는 뜻이다.이른 봄, 아직은 추운 오후 네 시 반의 어스름을 뒤로 하고 한가람 미술관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아주 놀라고 만다. 거기에, 화가 자신이 ‘벨 에포크’(Belle Epoque·아름다운 시대)라 부른 유년기의 파리의 풍경이 가득히 흐르고 있다. 미셸 들라크루아는 풍경화가이고, 파리와 그 인근의 거리 풍경을 평생에 걸쳐 그려온 사람이다.원래 ‘벨 에포크’는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의 유럽, 평화를 누리며 경제나 문화가 급속히 발전한 유럽의 한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다. 그런데 화가인 미셸 들라크루아는 자신의 유년 시절,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파리, 나치가 점령하기도 한 전쟁 중의 파리가 포함된 시기를 ‘벨 에포크’라 불렀다고 한다.유럽사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려는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를 이른바 ‘30년 전쟁기’라 부른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벌어진 종교전쟁이 본래의 ‘30년 전쟁’(Dreißigjahriger Krieg)이라면, 이 새로운 ‘30년 전쟁’은 유럽 현대사를 보다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용어인 것이다.화가인 미셸 들라크루아는 이 전쟁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말일까? ‘나이브’한 스타일의 화가라는 설명처럼 그는 사회·역사적인 흐름에는 그토록 둔감했단 말인가?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전쟁의 참상에 주목할 때, 어떤 사람은 전장을 헤치고 흐르는 삶의 온기, 활기 같은 것에 주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전시실 가득히 피어난 파리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우리는 삶을 이렇게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사회적 관계망에 주목할 때 삶은 힘겹다. 하지만 각각의 개체들의 생명의 온기, 활기에 눈을 맞추면 삶은 아름답고 따뜻한 것이 된다. 이 다르게 보는 각도에 삶의 숨은 희망이 있다.

2024-03-04

선거법을 의원들에게 맡겨놓아야 하나

김진국 고문 참 어이가 없다. 공천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지난달 29일에야 선거구가 정해졌다. 4·10 총선을 겨우 41일 앞둔 시점이다. 공직선거법 제24조의 2 ①항에 “국회는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해 놓았다. 바로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이다.워낙 선거법 개정이 늦어 문제가 생기자 2015년 이 조항을 집어넣었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 18대 총선(2008년) 때는 선거 47일 전, 19대 총선(2012년) 때는 선거 44일 전에 선거구가 정해졌다. 이 조항을 만든 뒤, 20대 총선(2016년)에는 42일 전, 21대 총선(2020년)에는 39일 전으로 더 늦어졌다.선거구만이 아니다. 이번에는 중대선거구제로 갈지, 소선거구제로 갈지, 비례대표 선출을 준연동형으로 할지, 병립형으로 할지, 선거법의 근본 틀부터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현역 의원들은 어떻게 되든 지난 선거를 기준으로 준비하면 된다. 지역구를 옮기든지, 없어져도, 변명할 여지가 있다.정치 신인은 그렇지 못하다. 온갖 연고를 끌어대 예비후보로 등록했는데, 지역구가 바뀌면 의도하지 않게 ‘철새’ 꼴이 된다. 처음부터 지역 유권자에게 점수를 잃는다.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데 선거구로 바뀌면, 돈만 들여 헛고생한 게 된다. 그렇다고 인지도가 낮은 신인이 가만히 기다릴 수도 없다. 현역 의원들만 유리하다.가장 비겁한 것이 위성정당이다. 4년 전에는 촉박한 시간에, 처음 도입한 제도를 놓고 당황해 잘못했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얼마나 흉악한 짓인지 잘 알면서 저질렀다. 시간도 충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위성정당을 막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어떤 선거제도로 갈지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 그런데 위성정당보다 더 위험한 선택을 했다.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할 때는 봉쇄조항이라는 게 있다. 이해하기 쉽게 ‘문턱조항’이라고도 한다. 일정 정도의 표를 얻지 못하면 의석을 주지 않는다. 극단주의 정당이 의회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장치다. 대표적인 비례대표제 선거를 하는 독일은 문턱이 5%로 높다. 나치를 경험해 극우정당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우리는 3%, 혹은 지역구 의석 5석이다. 2%를 넘으면 한 석 줘야 하지만 3%로 막아놓았다. 그런데 민주당이 자신들의 정책보다 훨씬 강경 좌파들을 끌어모아 위성정당을 만들고, 비례 의석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지역구도 단일화로 밀어준다. 민주당이 보증은 섰지만 어떤 후보가 나오든 상관하지 않고, 책임도 안 진다. 애플에서 조악한 휴대폰에 아이폰이란 이름을 붙여 아이폰과 함께 팔아놓고, 성능도, 에프터서비스도 책임을 안 지겠다는 것과 같다.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다. 그런데 이건 무책임정치 아닌가.선거구 획정 과정도 기가 막힌다. 중앙선관위에 설치된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제안한 것은 서울·전북에서 1석씩 줄이고, 인천·경기에서 각 1석씩 늘리게 돼 있었다. 나머지는 해당 시·도 안에서 조정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자신들의 텃밭이라고 생각하는 전북 대신 부산에서 1석을 줄이라고 요구하면서 버텼다. 결국 만만한 비례대표 의석을 하나 떼 전북에 붙여주는 것으로 끝났다.지역구 국회의원 254명을 시·도별 인구 비율로 나눠보면 경기(-7석)·인천(-1)에서 8석을 빼 서울(+2석)·부산(+2석)·울산(+1석)·광주(+1)·전남(+1)·전북(+1석)에 나눠준 모양새다. 서울이 인구 19만5507명 당 의원 1명이다. 이것을 지수 100이라고 할 때, 경기는 116.2, 대구·경북은 100.8(19만7009명), 광주·전남·북은 90.9(17만7637명)이다. 서울이나 대구·경북보다 의원 10%를 더 받았다는 의미다. 특히 민주당이 비례대표를 줄이면서까지 지역구를 지킨 전북은 89.7(17만5292명)로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적은 인구로 의원을 만든다. 서울보다 지수가 높은 건 경기(116.2)·인천(109.6)·제주(115.0)와 충청(101.4), 대구·경북(100.8)이다. 선거법을 의원들이 주무르게 하는 건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기는 꼴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03

강진군의 출산장려책

우정구 논설위원 전남 강진군은 1차산업 비중이 70%인 전형적인 농어촌지역이다. 1965년 12만여 명이던 인구가 지금은 3분의 1도 안되는 3만2천여 명으로 줄었다. 노인인구 비중도 37%나 된다. 2021년 행안부가 지방소멸이 예상되는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다.작년 전국 226개 시·군·구 중 출생아 수가 늘어난 곳은 48곳으로 집계됐다. 그 중 강진군이 신생아 증가 수에서 전국 1위를 차지했다.지난해 강진군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모두 154명. 전년보다 61명(65%)이 증가했다. 작년 국내 합계출산율 0.72명과 비교하면 놀라운 증가다.이에 대해 강진군은 2022년 시작한 육아수당이 성과를 낸 것으로 분석했다. 군은 2022년 10월부터 소득수준, 자녀 수에 상관없이 아이가 태어나면 7세까지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매월 60만원씩 지급한다. 7년동안이면 5천4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아동수당과는 별개다.실제로 수당을 주기 시작한 2022년 10월에서 2023년 8월 사이 태어난 아동은 128명. 전년보다 45명의 신생아가 더 많이 태어났다.또 강진군이 조사한 육아수당 성과 분석 설문조사에서도 “육아수당이 출산에 영향을 주었다”는 질문에 66%가 긍정 답을 했다. “육아수당이 도움이 돼 자녀를 더 낳고 싶다”는 답변도 49%가 나왔다.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를 기록하면서 나라가 저출산 쇼크에 빠져 있는 가운데 강진의 출산장려책은 단연 돋보인다.인구 3만의 농어촌 도시의 출산장려책이 전국적으로 똑같은 효과를 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강진군의 정책에서 배울 것은 없는지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3-03

혼자인 삶은 없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 달포 전에 이장님이 전화한다.“김 교수, 집에 땔나무 충분한가?!”몇 차례 구들방에 불을 넣으면 나무는 바닥이었다. 어차피 겨울도 끝나가는데, 대충 넘어가야겠네, 하던 참에 걸려온 반가운 전화였다. 엔진 톱 가진 이가 산에 널브러진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기로 했다면서 환하게 웃는 목소리로 전화는 끊겼다.날이 가고 달이 바뀌어도 어찌 된 영문인지 소식은 없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전화한다. 톱 임자가 과수원 전지(剪枝)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조만간 그이를 만나 일정을 잡아보리라는 언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소득이었다. 마침내 그날은 오고 말았다.3월 초하루 바람이 매섭고 기온이 뚝, 소리 나게 떨어진 날 오전에 구들방에 마지막 나무를 넣고 있는데, 대문이 소란스럽다. 경운기에 나무를 가득 싣고 이장님이 등장한 것이다. 오전 10시도 되기 전인데 어디서 저리 굵은 나무를 가져온 것일까?! 칠순이 넘은 이장님 내외가 이웃 마을에서 우리 집까지 손수 나무 배달에 나선 것이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는가?!하지만 이것은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 오후 1시에 이장님 경운기 뒤에 타고 뒷산에 오른다. 장발에 붉은 얼굴을 한 풍류남아가 엔진 톱을 들고 우리를 기다린다. 문제의 톱 주인이다. 그가 나무를 잘라낼 때 우리는 복숭아나무 전지로 잘려 나온 크고 작은 나뭇가지를 경운기에 한가득 싣고 집으로 내려온다. 벌써 두 대의 경운기 분량 나무가 마당에 부려진다.여기 더하여 다시 두 대 분량의 경운기에 소나무와 감나무 둥치가 차례로 실리고, 나의 발길은 한층 더 분주해진다. 전화기가 웅, 소리를 낸다. 옆 마을에서 나를 도와주러 강 농부가 출동한 것이다. 그 역시 엔진 톱을 가지고 왔다. 집 마당에서는 그가 차분하게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그사이에 나와 이장님은 뒷산을 오르내린다.마침내 경운기 네 대 분량의 나무가 마당에 몸을 푸니 마음이 뿌듯하고 온몸에 온기가 도는 듯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장님이 총총히 귀로에 오르고, 강 농부가 바지런하게 손을 놀려 톱질을 계속한다. 읍내 근처에 자리한 횟집에 광어회를 주문하고, 서둘러 장을 봐서 조촐한 상을 마주하고 강 농부와 마주 앉는다.“촌에서는 절대 혼자 못 삽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농촌에서는 상상할 수 없지요.” 강 농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화양(華陽)에 스며든 지 어언 10년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 동안 나는 실로 여러 사람의 신세를 지고 살아오고 있다. 만약 그분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안온한 삶은 정녕 불가능했을 터였다.요즘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참 많고, 그들은 하나같이 혼자 잘 나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며 우쭐댄다.‘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덕으로, 누군가에 힘입어, 누군가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이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인간의 도리를 상실하고 육축(六畜) 수준으로 전락한다. 그것을 잊지 말고 살아가면 좋겠다. 봄 시샘 바람이 제법 차다!

2024-03-03

이강인 사태로 보는 교훈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축구스타 이강인 선수(파리 셍제르맹)의 문제로 시끄럽다.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사임 요구까지로 불똥이 튀고 있다.아시안컵 축구대회 기간 중 이강인 선수가 손흥민 주장 선수에게 대들고 선배 선수들에게 하극상을 보인 이 선수의 태도를 놓고 엄청난 비난과 후폭풍이 불고 있다.2001년생 20대 초반의 이강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난이 쇄도하고 여러 계약이 끊겼고 팬들의 사랑이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이강인 선수는 “한국축구의 미래”로 여겨졌다. 해외 클럽에서 성장하여 공격적이고 빠른 해외 축구를 배웠기에 그가 아시안컵 예선 기간 중 보여준 결정적 골과 활약으로 팬들은 열광했다.그러나 그런 열광이 한순간의 거품으로 사라졌다.그를 광고 모델로 기용한 한 치킨회사가 이제 이 선수와 계약 연장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이 회사는 이강인을 모델로 발탁하며 ‘이강인 치킨’으로도 알려지면서 마케팅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었다. 결국 이 회사는 자사 홈페이지에서 이강인의 광고 영상을 내렸다.이강인을 모델로 기용한 K 통신회사 등도 프로모션 포스터를 내렸고 축구를 단독 중계하는 방송들도 이강인 출전을 내세우면서 마케팅을 하다가 그의 사진을 중계방송 공지에서 내렸다.이런 가운데, 이강인이 영국 런던으로 가 손흥민에게 직접 사과했다고 전해진다. “지난 아시안컵 대회에서 저의 짧은 생각과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흥민이 형을 비롯한 팀 전체와 축구 팬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드렸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SNS에 게재했다.이강인의 사과를 받아들인 손흥민도 같은 날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이강인을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손흥민은 이강인과 어깨동무를 한 채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 “그 일 이후 강인이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한 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달라. 대표팀 주장으로서 꼭 부탁드린다”고 했다.이를 두고 두 파로 갈려 용서와 질타가 또 이어지고 있다.“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어디서든 행복 축구하시길”, “반성하고 사과했다니 다행이다. 앞으로 더 좋은 선수가 되어달라” “국민의 관심을 받는 선수인 만큼 앞으로는 실수하지 않길 바란다” 등 좋은 댓글도 달렸지만, “개인 간 사과, 용서와 별개로 팀에 분란을 일으킨 팀원에 대해선 규정대로 징계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이런 와중에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이강인의 부모님, 그리고 뻔히 알면서 방향과 길을 알리려 애쓰지 않은 저 역시 회초리를 맞아 마땅하다”며 한국 축구계를 향한 조언을 남겼다.차 전 감독은 한 축구 행사에서 “축구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 멋진 사람, 주변을 돌볼 줄 아는 큰 사람이 돼야 한다고 당부하고 이야기해왔다”며 아시안컵 기간 불거진 축구대표팀 내 갈등 사건을 언급했다.그는 “아시안컵을 마친 뒤 스물세 살의 이강인이 세상의 뭇매를 맞고 있다”며 “스페인이나 프랑스에서는 대수롭지 않던 일이 한국 팬을 이렇게까지 화나게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동양적 인간관계야말로 우리가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무기이자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차 전 감독은 이런 예절이 박지성과 자신이 선수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친 비결이라고 언급했다.그러면서 “설사 아이들이 소중함을 모르고 버리려고 해도, 아이들이 존경받는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어른들이 다시 주워서 손에 꼭 쥐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차 전 감독은 이날 행사에서 상을 받은 선수들의 학부모를 향해 “이 자리에 계시는 부모님들은 어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품위 있고 진정한 성공을 위해 무엇이 중요할지 우선 생각해야 한다. 꼭 부탁드린다”고 하였다.정말 이강인 사태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보여준다.그 하나는 한국과 외국의 문화의 차이이다. 해외에서 성장한 이강인은 해외의 문화에 익숙해서 이런 사태를 가져 왔을 것으로 본다. 선후배 관계가 그렇게 강하지 않은 해외 문화로 그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교수들이 해외에 연구년을 갔다가 자녀를 해외에서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도 이와 유사한 문제에 부딪힌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는 존댓말 자체가 없어서 어른이나 아이나 평등하다는 개념을 갖고 있기도 한다.그러나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교육을 잘 받은 미국인들은 여전히 부모와 선배에게 예의있게 대한다는 사실이다. 문화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문제로 귀결된다.그래서 여기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차범근 전 감독의 말처럼 부모가 한국적 예의를 잘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중 이렇게 한국적 예의를 잘 가르치는 부모도 많다. 그건 아름다운 전통이기도 하다.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국제적이라는 말도 있다. 한국적 예의는 해외에서도 아름답게 보고 있고 그것이 한국을 끌어가는 힘일 수도 있다.

2024-03-03

안락사와 존엄사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안락사(安樂死)를 뜻하는 ‘euthanasia’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eu’는 좋다(good), ‘thanasia’는 죽음(death)을 뜻한다. 즉, 좋은 죽음이라는 의미다.안락사는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고통을 덜어준다는 명분하에 생명을 단축해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이다. 사망에 이르는 방법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나눈다. 적극적 안락사는 적극적인 행위에 의해 예를 들면 약물 등을 사용하여 환자를 사망하게 하는 것이고 소극적 안락사는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행위에 의해 환자를 사망하게 하는 것이다.존엄사(尊嚴死, death with dignity)는 무엇인가. 회생 가능성이 없는 사망 임박 단계의 환자가 연명 목적의 치료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죽는 과정으로서 생을 마감하는 행위이다.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 다 환자의 연명치료(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는 없으면서 임종 기간만 연장하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존엄사는 연명치료 이외의 영양분, 물, 산소 등의 공급을 중단할 수 없지만, 안락사는 영양분, 물, 산소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안락사는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방치해 생명을 단축해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이지만, 존엄사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임종의 과정을 인위적으로 늦추지 않겠다는 것이지, 죽음을 앞당긴다는 것이 아니다.존엄사에서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럽게 죽을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사망에 이르게 할 조치를 하는 ‘안락사’와는 다른 것이다.사실 안락사는 기본적으로 제삼자가 죽음을 원하는 사람의 죽음을 돕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조력 타살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필자는 안락사라는 네이밍(naming)이 미화돼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라는 더 미화된 표현으로 바꿔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는 의료진이 약물 등을 마련해주고 환자가 자신에게 직접 그 약물 등을 투여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의사조력극단적인 선택(physician-assisted suicide)’도 존엄사라 부르기도 한다.우리 모두가 긍정하는 가치가 담긴 존엄사라는 네이밍은 긍정의 가치를 실현하는 행위로 인식될 수 있어 사회적 논의를 할 때 ‘존엄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주의해야 한다. 존엄사의 선택에 의한 연명치료중단이라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가치판단에 따른 자의적인 선택이고 타인으로부터 강요받지 않는 자유로운 동의(free consent)여야 한다. 연명치료를 중단한다는 것은 한 생명의 불씨를 끄는 것일 수 있으므로 환자가 자의적으로 선택했다 하더라도 선택을 번복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의 자의에 의한 선택이라 하더라고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가치판단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최근 우리나라에서 소위 ‘조력존엄사(의사조력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지난 2022년 6월 15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내 최초로 ‘연명의료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소위 조력존엄사법)’을 대표 발의했고 지난 2023년 7월 12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조력존엄사(의사조력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인권적 쟁점과 대안에 관한 토론회를 정부기관 최초로 개최했다. 조력존엄사(의사조력 극단적인 선택)는 소생 가망이 없는 환자가 의사에 의해 처방된 약물을 직접 복용 또는 투약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조력존엄사(의사조력 극단적인 선택)’가 인정된다면 스스로 죽을 권리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만약 스스로 죽을 권리가 인정돼 더욱이 약물을 투입해 인간 생명을 단축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생명 경시 풍조가 조장될 수 있다.또 완치를 위해 정성을 다하기보다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조력존엄사’는 “생명을 최대한 존중하고, 의학 지식을 인륜에 어긋나게 쓰지 않을 것”을 서약한 의사의 역할과 “의사는 환자가 자신의 생명을 끊는데 필요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환자의 극단적인 선택을 도와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의사 윤리에 근본적으로 배치된다.이어 ‘조력존엄사는 품위있는 죽음을 돕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문제 같은 외적 상황이 영향을 미침으로써 가족과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해 보라는 압박으로 내몰 수도 있다.정말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라면 ‘조력존엄사법’이 아니라 임종의 시간이 오기까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완화해 보다 편안한 삶을 유지하고 남겨진 시간의 의미를 발견해서 그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배려하는 생애 말기 따뜻한 돌봄을 위한 완화의료와 호스피스 강화와 지원이 우선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극단적인 선택률 1위 국가이다.‘조력존엄사법’을 허용할 경우 국가가 극단적인 선택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단적인 선택을 조장하고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다. ‘조력존엄사법’이 아니라 ‘극단적인 선택 대책기본법’이 우선이다.

2024-03-03

위대한 기업의 조건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의 데이비드 시로타 조직행동학 교수는 10년 동안 89개국 237개 기업의 직원을 대상으로 동기부여 방안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가 지역 성별 인종 나이 직무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이 노력한 대가로 공정한 임금과 안정을 원했고 동료와의 협력과 친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또한 근로자들은 어떤 상황에 있든 자신의 3가지 욕구 즉 공정성, 성취감, 동료애를 만족시키려 하며 이 세가지 욕구가 충족되면 조직의 목표 달성의 열의가 생겨난다고 한다.이런 측면에서 보면 포스코의 현장 혁신 방법론인 QSS(Quick Six Sigma)활동이 근로자의 3대 욕구인 공정성 성취감 동료애를 모두 만족하게 하는 좋은 활동이라 할 수 있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18년 이상을 지속해온 비결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활동 초기 만들어진 철학은 자기자신, 동료, 회사를 사랑하라이며 사상은 전원이, 스스로, 제대로, 꾸준히 실행한다이다.철학의 첫째인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제조 현장의 본질인 기업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조과정에서 일과 낭비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고 낭비를 발굴하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성장하며 성공 체험을 통해 성취감과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성장이 곧 동료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으로 동료 사랑이며 더 나아가 낭비 제거로 회사의 성과에 기여하게 되므로 회사사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 출발점이 성공 체험을 통한 성취감이다.직장에서 가장 많은 불만 요소 중의 하나가 공정성에 대한 부분이다. 누구는 일이 많아 고생하는데 누구는 일이 없다거나 누구는 활동을 하는데 누구는 안 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QSS활동은 공장 내 신입사원부터 공장장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원이 참여한다. 그러기 위해 공장에서 관리해야하는 설비를 조직의 최소 단위인 반 단위가 서로 합의하여 나누어 담당하고 전원이 목표를 설정하여 설비성능복원과 과제 활동을 실시한다.이렇게 최소 조직 단위인 반에서 본인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담당 구역과 설비를 새것처럼 복원하고 개선하여 일상에서 유지하기 쉬운 상태로 만드는 과정은 매우 힘들다. 서로가 쉬는 시간과 휴일을 양보하고 다같이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간을 활동을 할 때마다 작업복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기름때를 묻혀가면서 함께 노력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같이하면서 자연스럽게 짙은 동료애가 형성되며 변화된 모습을 보고 성취감과 만족감은 극대화된다.지금까지 20년 가까이 포스코는 전원이 참여하여 이러한 현장 혁신활동을 통해 위대한 기업이 갖추어야 할 공정성 성취감 동료애를 지속 발전시켜왔고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부터는 이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같이 공감하고 동참하여 지속 발전시켜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24-03-03

총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의 출산 정책을 보며

유영희 작가 두 딸이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출산을 하지 않았다. 더 미루다가는 임신이 안 될까 걱정하면서도 선뜻 결정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둘 다 직장에 다니다 보니, 육아 부담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치러지는 총선에서 거대 양당의 출생률 높이기 정책에 눈길이 더 간다.통계에 따르면, 작년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이다. 2022년만 해도 0.78명이었는데 1년 사이에 더 훅 떨어진 것이다. 2005년부터 저출산 대책을 시행했지만 이제는 젊은이들이 결혼은커녕 연애도 포기한다고 하니, 출생률 높이기는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설문조사에 의하면, 이렇게 초저출산이 계속되는 것은 경제적 부담과 육아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옛날에는 더 가난해도 아이만 잘 낳았다는 ‘라떼 레퍼토리’가 나올 법하다. 그러나 작년 12월에 발표된 경제연구원이 조사한 결과를 보니, 한국 젊은이들의 형편이 얼마나 열악한지 눈물이 날 지경이다.2022년 현재 25∼39세 고용율을 보면, OECD 평균은 87.4%인데 우리나라는 75.3%이고, 그나마도 청년층 비정규직 비중이 2003년 31.8%에서 2022년 41.4%로 증가하였다. 이런 물리적 조건을 보면, 우리나라 MZ세대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생활비 우려와 재정 상황 불안도 45%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글로벌 MZ 세대의 불안도는 32%라고 한다. 반대로 재정에 대해 안정감을 느끼는 한국의 MZ세대는 31%이고 글로벌 평균은 42%이다. 우리나라 도시인구 집중도는 431.9로 OECD 평균 95.3의 4배가 넘고, 우리나라 여성 고용은 OECD평균 87.2%에 비해 매우 낮은 75.8%다. 게다가 OECD 육아 가능 기간과 이용률은 61.4인데, 우리나라는 10.3이다. 이러니 출산하는 사람이 신기할 지경이다.각계 전문가들이 진단한 초저출산 원인과 대책을 살펴보니, 각자 자기 전공에 치중하는 느낌이 든다. 육아 전문가는 아이가 소비재로 전락한 현상을 원인으로 들고, 인구학자는 대도시 집중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 안정이다. 고용이 안정되면, 주거 문제도 해결되고 육아 부담도 완화된다. 지방에서 고용이 창출된다면 인구도 분산된다.그런데 양당의 저출산 대책을 보면, 현금 지원성 대책이 많다. 여당은 10조원, 야당은 28조원의 예산을 잡고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외치며 만든 여당의 ‘늘봄’ 정책은 부모와 아이가 ‘늘못봄’ 정책이라며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고, 제1야당의 1억 대출 역시 미봉책이다. 도대체 그 1억을 10년 만에 어떻게 갚을 것인가? 그보다 세수 감소로 올해 각종 예산도 다 삭감한 마당에 이런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법률적 부부에게만 지원하는 정책만으로는 출생률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선진국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총선을 앞둔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면하려면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해주기 바란다.

2024-03-03

이불 빨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이사한 김에 이불을 빨았다. 몇 년전부터 흰 시트의 오리털이불만 고집하는 남편 때문에 잔잔한 꽃무늬가 있거나 색깔 있는 이불들은 거의 버리고 없다. 흰 이불의 껍데기를 벗겨 세탁기에 넣어 빨고 삶고 건조기로 돌려 말리기만 하면 되니 빨래가 쉽다. 속통도 건조기의 이불털기나 살균 기능으로 돌린 후 뜨거운 채로 꺼내 손바닥으로 탁탁 쳐서 부풀리면 다시 뽀송뽀송해진다. 따끈한 햇빛과 바깥바람을 쏘여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 지 꽤 오래 된 듯하다.50년도 더 전이었다. 우리 삼남매는 모두 큰 도시로 가 자취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원래 살던 읍내에도 중고등학교가 있으나 교육열이 넘쳤던 부모님의 판단에서였다. 주말이면 셋 중 한 명이 번갈아 일주일치 반찬을 가지러 집에 갔다. 차비 문제도 있지만 주말에도 공부하라는 오빠의 엄한 단속에 나와 남동생은 엄마가 보고 싶고 집밥이 그리워도 참을 도리밖에 없었다.중학교 2학년쯤 화창한 봄날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온 나는 이웃의 친구를 찾았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집안일을 도우다 곧 대도시의 공장에 취직할 거라는 친구였다. 친구는 같이 강으로 가서 빨래를 하자고 했다. 빨래를 집에서 하지 않고 어디를 가냐는 내 말에 큰 빨래는 강에서 하면 더 좋다며, 소풍같이 바람도 쐴 수 있다고 했다. 못 가게 하는 엄마를 졸라 거죽에 빨간 깃을 댄 겨울이불의 광목호청을 뜯어 양철함지박에 담았다. 빨래방망이와 비누를 챙기고, 양은도시락에 밥과 김치도 야무지게 쌌다.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친구 따라 한참을 걸어 간 강가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적당하게 넓적하고 평평한 돌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물에 적신 이불호청은 열서너 살의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웠다. 그렇게 큰 빨래를 해 본 적도 없었다. 능숙하고 요령있는 친구를 힐끗거리며 낑낑대니 친구가 많이 도와주었다.빨래터 한쪽엔 불을 피워 커다란 드럼통에 빨래를 삶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약간의 돈을 주면 되나 보았다. 알 턱이 없었던 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빨래까지 삶을 수 있었다. 빨래를 가져다주면 물이 펄펄 끓는 드럼통에 넣어 기다란 막대기로 휘휘 저으며 푹푹 삶았다. 건져 함지박에 담아주면 물가로 가져가 방망이로 탕탕 두들겨 비눗기를 뺐다. 어쩌면 양잿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보얗게 흰 호청을 친구랑 맞잡고 둘둘 말아 짜서 자갈이 깔린 강가로 나간다. 많은 빨래들 틈에 자리를 봐서 빨래를 펴두고 돌멩이로 네 귀퉁이를 눌러 이불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까지 꼼꼼한 친구를 따라했다.빨래가 마를 동안 쨍쨍한 땡볕 아래 따끈한 돌밭에 앉아 싸간 도시락을 먹으며 한참을 친구랑 수다를 떨었다. 나는 학교 얘기, 외국인 영어선생님 얘기를, 친구는 곧 취직할 공장이 있는 대도시의 삶에 대해 꿈꾸듯 얘기하였다. 뜨거운 돌멩이 덕에 빨래는 쉬 말랐다. 네모반듯하게 개어 함지박에 담았다. 머리에 이고 돌아오면서도 한껏 물오른 우리의 수다는 끝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코피를 쏟아 엄마 속을 태웠다.

2024-02-28

몸 구석구석 지압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사람들은 아플 때 스스로 그곳에 손을 댄다. 아픈 것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보려고 하는 본능적인 시도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플 때 어디를 만져주면 좋은지 알아보자. 아픈 곳을 찾으면 시간이 될 때마다 수시로 지압을 하고 만져주면 매일 매일 불편한 증상들이 조금씩 개선될 것이다. 수일에서 수주동안 꾸준히 하면 좋다.우선 두통과 어지럼증 등 두부에서 일어나는 불편한 증상은 뒷목과 어깨를 만져주는게 좋다. 상부경추 위주로 모든 경추부를 압박해주고 승모근 부위를 꾹꾹 눌러 준다. 바로 눕거나 앉아서 손을 머리 뒤로 한뒤 뒷머리뼈에 붙어 있는 소후두직근 대후두직근을 만져준다. 특히 아픈 부위는 깊게 꾹꾹 눌러 준다. 많이 할수록 좋다. 티비 볼 때 앉아서 멍하니 있을 때 자기전에 누웠을 때 뒤통수 최하단 뼈 근처의 근육들을 만져 준다. 그리고 목 옆의 흉쇄 유돌근과 사각근 부위를 눌러서 아픈 부위를 만져 준다. 다음은 어깨 최상단 승모근 부위도 만져보고 아프면 풀어준다.어깨가 결릴 때는 승모근과 견갑거근 능형근을 풀어 준다. 아픈 어깨 반대쪽 손으로 어깨쪽을 만져주면 닿는다. 닿지 않으면 골프공 같은 것을 바닥에 깔아두고 잘 조준한 다음 누워서 압박을 해줘도 된다. 특정 부분에서 엄청나게 아플 수가 있다. 그 부분 근육이 뭉치고 염증이 생긴 부위라 조금 더 깊게 압박을 해주면 된다.회전근개 통증은 보통 어깨 관절통으로 나타난다. 대부분 극상근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위팔뼈와 어깨가 만나는 관절면을 눌러보다 특히 아픈 곳 주변을 깊게 꾹꾹 눌러 준다. 견우라는 혈자리 근처이고 극상근건 부착부를 검색한 다음 위치를 보고 가늠해도 좋다.다음은 허리 통증이다. 요방형근과 대둔근 중둔근 소둔근을 풀어 주면 된다. 검색으로 위의 근육들을 찾아서 꾹꾹 눌러준다. 이 부위는 주변 사람이 도와주면 더 좋다. 아래팔 척골 부분을 흉추 12번 갈비뼈와 골반뼈 사이에 넣은 다음 몸무게로 눌러 주면 된다. 조심해야 할 것은 갈비뼈를 누르면 골절 위험이 있으니 그 아래 살이 있는 곳에 척골을 넣은 다음 몸무게로 눌러야 한다. 그리고 다리가 저린 경우는 엉덩이 중간 부분에 팔꿈치를 대고 눌러 보면 아픈 곳이 있다. 보통 이상근이 있는 자리고 좌골 신경이 분지되는 곳이다 적당한 체중으로 누르면 상당히 뻐근하고 아픈데 풀어주면 다리 저림에 많은 도움이 된다.아래다리 쪽은 전경골근을 꾸욱 누르면 아픈 경우가 있다. 족삼리란 혈자리 근처를 누르면서 발까지 다리 외측을 타고 깊게 눌러준다. 무릎 뒷쪽 흔히 오금이라고 하는 슬와근 근처를 눌렀을 때 많이 아프면 그곳도 깊이 눌러준다. 무릎 통증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하지의 혈액순환이 좋아져 밤에 잘 때 쥐가 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발은 간단한 골프공이나 자갈을 바닥에 깔고 나서 발바닥을 올린 뒤 체중을 누르면 특히 아픈 곳이 있다. 인체 반사점이니 지압을 해주면 좋다. 인체 어느 곳이든 지압을 할 때는 며칠에서 수주까지 그곳의 통증이 세게 만져도 안 느껴질 정도로 하는 것이 좋고 그곳이 풀리면 주변을 다시 더듬어 아픈 곳이 생기면 반복한다. 할일 없을 때 손을 움직여 불편한 곳을 풀어 보자.

2024-02-28

잎꾼 개미

피귀자 수필가 이파리들이 찰랑거리며 간다. 잘린 나뭇잎을 지고 가는 개미떼의 모습이 팔랑거리는 날개 같다. 개미는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다양한 모양으로 잘린 잎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동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지고 갈 크기만큼 잎을 잘라 등에 지고 나른다고 잎꾼 개미, 또는 잎을 자를 때 아래턱뼈를 마치 가위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가위 개미라고도 불린다.열대종인 이 개미가 최초의 농사꾼이라니! 부지런하고 근면한 대명사가 개미지만 농사도 짓는다는 말에 저절로 귀가 쫑긋해졌다. 게다가 인간보다 5천만년 정도 먼저 농사를 시작한 종으로 평가 받는다고 하니 혀를 내두를 수밖에.개미들은 지구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동물 사회를 이룩하고 있다. 무리가 생성되고 몇 년 있으면 800만의 개체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개미학자들이 규모를 알기 위해 버려진, 어떤 개미집의 내부에 시멘트를 들이부은 결과 42평, 즉 어지간한 집 한 채 크기가 나왔다고 한다. 작은 개미들의 생활 과정이 놀랍다.우리는 종종 보이는 대로 그것에 갇혀버리는 실수를 한다.작고 보잘 것 없다고 무시하거나 마음대로 판단해 버리고, 편견과 고정관념의 방해에 전체 모습을 오롯이 바라보지 못한다. 하여 생각의 확장을 스스로 가로막고 진실을 보는 시야를 차단해버리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꽃나무처럼 순순해져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야 하리.이들이 잎을 채취하는 이유는, 잘게 찢어서 균사를 사육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균사가 이들의 주식인데, 그들이 기르는 균사와 서로 의존적인 공생을 하고 있다. 즉 균은 개미들이 있어야 살 수 있고, 개미의 애벌레들은 균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공생관계인 것이다. 개미들은 버섯 균이 새로운 식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감지해낼 수 있으며, 만약 어떤 식물이 균에 해롭다고 밝혀지면 더 이상 그 식물을 수집하지 않는다고 하니 많이 똑똑하다. 무르익은 개미들 삶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인생의 온갖 경험들이 응축되어 쌓인 지혜와 비견되어 감탄하게 된다.이들 개미의 분업화 수준은 매우 높다. 성숙한 무리에서는 몸의 크기로 대략 4계급으로 나뉘는데, 계급마다 맡은 일이 다르다고 한다. 각 계급의 이름은 정원사개미, 소형일개미, 중형일개미, 대형일개미(병정개미)이다. 머리의 직경이 1㎜가 되지 않는 정원사개미는 어린 유충을 돌보거나 버섯 농장에서 일하며, 잎을 운반하는 개미들을 기생파리로부터 보호한다. 소형일개미는 정원사 개미보다는 약간 크며 경비병 역할을 한다. 잎을 가지러 가거나 오는 개미들을 보호하며 다른 생물이 공격할 경우 제일 먼저 방어를 한다. 중형일개미는 잎을 자르고 무리로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대형 일개미는 가장 큰 개미로 무리를 외부침입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주 임무이다.개미들이 잎을 수집하고 있을 때, 잎꾼 개미 위에 다른 개미들이 올라타서 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얌체라서가 아니다. 기생파리가 이동하는 개미의 목을 공격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기생파리는 일개미 머리의 관절에 산란관을 꽂아서 알을 낳으므로, 잎을 들고 가는 정원사 개미나 소형개미가 지키면서 기생파리의 공격을 방지해준다니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하다.작디작은 개미들도 이렇게 서로 힘을 합쳐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서로 편을 갈라 공격하고 없는 일까지 만들어 험담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어떻게든 상대를 끌어내리고 내가 올라가겠다며 모여서 시위를 하고 피켓을 들고 소리치며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여러 어리석은 작태가 혐오스러울 지경이다.새해엔 잎꾼 개미처럼 맡은 일 잘하며 시기와 질투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역할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모두에게 이로운 사람, 쓸모가 많은 사람, 살아서는 기둥이 되고 죽어서는 역사가 되는 사람, 그가 있음으로 우리 모두가 더 아름답고 행복해지는 그런 사람이 늘어나 평화로운 사회가 되기를 빌어본다. 우리 모두가 이들 개미처럼 자유와 평화를 위한 달콤한 농사꾼이 되어보면 어떨까.

2024-02-28

청명(淸明)과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다섯 번째가 청명(淸明)이다. 태양의 황경이 15도에 위치하며, 올해는 4월 4일(음력 2월 26일)이다. 음력으로는 3월의 절기다.청명을 한자로 풀이하면 맑을 청(淸)에 밝을 명(明)이다. 날씨가 맑고 하늘이 차츰 밝아진다는 뜻을 의미한다. 음양오행에서도 청명에서 곡우까지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었다. 초후(初候)에는 오동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며, 중후(中候)에는 종달새가 나타나며, 말후(末候)에는 무지개가 처음 보인다고 한다. 완연한 봄빛으로 가득한 화창하고 따사로운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권5 ‘시칙(時則)’에 보면 음력 3월인 진월(辰月)에는 초요(招搖·북두칠성 자루 끝에 있는 별)가 진(辰) 방향을 가리킨다. 해질녘에 칠성수(七星宿)가 남쪽 하늘 가운데 나타나며, 새벽녘에 견우수(牽牛宿)가 나타난다. 이달의 방위는 동쪽, 수는 8, 맛은 신맛, 냄새는 누린내다.이 달은 생기가 왕성하여 양기가 활발하게 발산되고, 구부리고 있던 새싹이 모두 밖으로 나오는 때다. 그러니 묵은 곡식은 창고에 남겨둘 수 없다. 이에 천자는 관리에게 명하여 곡식 창고를 열어 가난한 자를 도와주고, 식량이 떨어진 자에게 빌려주게 하며, 재물 창고를 열어 제후들에게 예물로 보내 훌륭한 선비를 초빙하고, 어진 사람에게 예를 갖추어 인재를 구하게 했다. 또한 사공(司空)에게 봄비가 내려 낮은 곳의 물이 차오를 수 있으니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들판을 잘 살피고, 제방을 수리하며, 물길을 소통시키고, 도로를 정비하라고 명했다. 날씨가 포근해지면 해빙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재난이나 백성들의 굶주림을 살피는 것은 물론, 인재 등용을 중요하게 생각한 대목을 엿볼 수 있다.청명 다음날인 4월 5일은 한식(寒食)이다. 동지가 지나고 105일째 되는 날이다. 한식을 한자로 풀이하면 차가운 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 중 하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에 따르면 청명에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과 360개 고을 수령에게 나누어 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한다. 수령들은 한식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寒食)이라 했다.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문공의 충신 개자추가 공을 세우고도 벼슬을 받지 못하자 면산(綿山)으로 은둔했다. 나중에 문공이 잘못을 깨닫고 개자추를 나오게 하려고 불을 질렀지만 끝내 타 죽었다는 고사에서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서 찬 음식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한식은 잡귀들이 꼼짝없이 묶여있다고 해서 ‘귀신 맨 날’ 즉, 손 없는 날이라 했다. 그래서 산소에 잔디를 새로 입히거나, 비석이나 상석을 세우기도 했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도 땅에 꽂으면 잎이 돋는다’는 말이 있다. 청명 다음날인 4월 5일은 식목일이기도 하다. 한때 공무원과 학생들이 식목일에 산에 가서 나무를 심은 적도 있었다.이때는 봄을 완연히 느낄 수 있는 시기이기에 농사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볍씨 소독과 모판을 만들기 위해 논에 물을 대고, 써레질과 논둑과 밭둑을 손질한다. 청명에 날씨가 좋으면 풍년이 들고, 궂으면 흉작을 예상했다. 어촌에서도 마찬가지로 풍어를 기대한다. 한식날 새벽에 천둥이 치면 서리가 일찍 오고, 저녁에 천둥이 치면 서리가 늦게 온다는 믿음도 있었다.‘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있다. 하루 먼저 죽으나, 하루 늦게 죽으나 별 차이가 없음을 말한다. 무엇보다 우선할 것은 청명과 한식에 불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천지의 음양이 바뀌는 시기라서 기후가 불안정하고, 바람이 거세기 때문에 반드시 불조심을 해야 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명리학적으로는 청명부터 진월(辰月)이 시작된다. 진월은 봄의 마지막 달이다. 물을 머금은 토(土)다. 봄의 기운을 갈무리하여 다음 사월(巳月) 여름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계절 중에서도 가장 생명력이 강한 시기다. 그래서 진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왠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일도 잘 풀리는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명리학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면 음양의 기준으로 볼 때 춘분을 기점으로 음이 양에게 주도권을 빼앗긴다. 본격적인 양의 기운이 득세하니 꽃도 피고, 씨앗을 파종할 수 있는 것이다. 확연히 낮이 밤보다 길어진다. 봄은 젊음의 계절이고, 시작이다. 사람의 인생으로 치면 이제 신접살림을 시작하는 신혼기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젊어서 부지런히 일도 하고, 자식도 낳아 키우고,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부지런히 하듯이 말이다.청명에 우리는 자연의 이치대로 사는지 한번 뒤돌아봐야 할 것 같다. 독신주의가 득세하고, 아이 낳는 것을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젊은이를 바라보면 걱정이 앞선다. 봄에 열심히 씨앗을 뿌려야 가을에 거둘 것이 있다는 단순한 이치를 거스르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2024-02-28

겨울 장마

홍석봉 대구지사장 때 아닌 ‘겨울 장마’로 농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매년 2월 말에서 3월 초, 한반도에는 계절적인 영향으로 저기압이 형성된다. 하지만, 올해는 강수량이 예년보다 훨씬 많다. 특히 2월 강수량치고는 이례적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올 들어 지난 18일부터 25일까지 대구·경북엔 평균 50㎜ 이상 강수량을 기록하는 등 평년보다 4배가량 많은 눈과 비가 내렸다. 기상전문가들은 엘니뇨 영향 때문으로 해수 온도와 기온이 모두 높고 대기층이 수증기를 다량 함유해 비나 눈이 더 많이 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월 기온이 20도가량 오르는 등 최고기온을 기록한 것과 이번의 많은 눈과 비는 극히 드문 현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올해 유례없는 겨울 장마와 흐린 날씨 때문에 ‘성주참외’가 ‘발효과’ 현상이 나타나 농가들이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이다. 참외는 3월부터 본격적인 수확에 들어간다. 하지만, 참외 성숙기에 속이 먼저 익는 현상으로 과육 내 발효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상품성이 떨어진 참외는 판매도 어렵다.일조량이 격감, 화훼와 시설 채소 및 과일 재배 농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시설 채소나 과수가 일조량 부족으로 병해와 기형 과일이 많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햇빛이 부족하면 시설 하우스 온도가 떨어지고 습도까지 높아져 역병까지 번질 수 있다. 일부 농가는 온 종일 조명을 켜고 전기보일러를 틀고 있지만, 적정 일조량에 못 미처 애태우고 있다. 늘어난 전기료 부담에 수확시기마저 놓치면서 화훼와 시설 재배 농가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에게도 발등의 불이 됐다. 환경 재앙이 현실로 닥쳤다.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2-28

끔찍한 새 학기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2월은 늘 왠지 흐지부지하다. 한 달 삼십일을 채우지 않고 끝나면서도 늘 같은 날수가 아니다. 28일이었다가 29일이었다가. 그렇게 마치는 한 달을 보내면 봄이 온다. 봄소식을 기다리면서 학교가 열린다. 아이들이 돌아오고 선생님이 돌아온다. 친구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은 신이 나겠지만, 교실을 지켜야 하는 선생님들은 삼월 개학이 천근만큼 무겁다. 교육이 본래 가볍지 않은 일이라서 마음이 무겁다면 격려하고 끌어도 올리겠지만, 요즘 선생님들에겐 교육이 아니라 존재가 무겁다고 한다. ‘왜 교사가 되었을까.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그만두면 무엇을 해야 하나. 계속한다면 무엇에 기대를 걸어야 하나.’ 월요일이 끔찍한 직장인들처럼 선생님들에겐 끔찍하다.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두렵다. 부모들에게 떳떳해야 하는데 부모들 앞에만 서면 쪼그라든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는지 누구도 답을 모른다. 순진한 아이들이야 그렇다해도, 학교를 다녀 본 부모들은 사실은 조금 안다. 교육이란 건 본디 아이들을 선생님에게 믿고 맡겨야 겨우 돌아간다는 것을. 무섭고 때로는 가혹했던 선생님이 계셔서 그래도 우리가 모두 이만큼 자랐다는 것을. 호랑이 선생님 덕분에 질서를 익히고 예절을 배웠다. 매섭던 눈초리로 지켜주신 선생님이 무서워서 한 자라도 더 배우지 않았을까. 오늘 교실은 어떤가. 선생님이 구겨진 자부심을 붙들고 존재를 의심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이들과 학부모가 두려워 교실 문을 열기가 끔찍해진 교실에 진심어린 교육이 살아있을 턱이 없다.교육이 부끄럽다. 개학을 앞두고 교실이 걱정이다. 학교의 문을 열면서 교육의 내일을 염려한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이대로 좋을까. 처음에는 ‘나라의 미래를 기른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을 젊은 선생님들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할만한 직업이 의사밖에 없는 듯이 시끄러운 세상에 교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가르치고 사람을 만드는 일에 어려움이 태산같고 박봉도 견디겠지만, 교육이 살아있는 교실을 지키지 못하면 거기 서 있을 까닭을 잃게 된다. 정상적인 수업이 펼쳐지고 온당한 교육이 진행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교육과정이 중요하고 교육 효과가 중요하지 않을까. 오늘 교육정책을 위한 담론들에는 왠지 누군가 이익집단을 챙겨주려는 저의가 숨어있는 듯하여 불편하기 짝이 없다.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새로운 다짐으로 새 학기를 열어야 한다.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는 기대로 가득해야 한다. 학기가 쌓이면서 쑥쑥 커가는 아이들이 교사들의 보람이 되어야 한다. 철없는 아이들의 비뚤어진 요청에 반듯하게 교육적으로 반응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교육의 테두리를 함부로 생각하는 학부모가 사라져야 한다. 믿고 맡길만한 교사가 되어 교육의 질서를 바로잡는 건 선생님 본인의 몫이 아닐까. 직장인의 월요일이 즐겁고 선생님의 삼월이 즐거워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마음껏 가르치고 배우는 일로만 신이 나는 새 학기가 되었으면 한다. 선생님이 살아야 교육이 산다.

2024-02-28

3월 1일의 물결을 되뇌며

경북남부보훈지청 보상과 백창훈 1931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탑골공원에 모인 인파는 하나둘 술렁이고 있었다. 독립 선언서를 낭독해야 할 민족 대표 33인의 부재, 유혈충돌을 방지하려 했던 그들의 뜻은 의심없이 순수했지만 구심점을 잃은 인파는 모두 지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그 때에 앞장선 이는 정재용 선생이었다. 그는 품속에 숨겨두었던 독립 선언서를 꺼내어 팔각정 단상 위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렇게 나비의 날개짓은 태풍이 되었고, 그가 붙인 작은 불씨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한 큰 불길이 되었다. 정계, 학계 및 종교계의 거두가 아닌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배운 지식인이 발휘한 용기와 그가 내딛은 몇 발자국이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것이다.보훈의 사전적인 의미는 갚을 보에 공 훈, 즉 공적에 보답한다는 의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공적 속에 세워졌으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 풍요의 밑바탕에 유공자들의 위업이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예외없이 해당되므로 보훈 역시 모두의 몫일 것이다. 3.1 운동에서의 정재용 선생의 역할에서 우리는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누군가가 해 주겠지’, ‘거창하고 복잡한 일이므로 제도적인 뒷받침이 수반되어야겠지’하는 마음이 아닌 우선 나 하나부터 실천하는 것이 보훈일 것이다. 마음가짐으로, 일상 속에서, 작은 것부터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유공자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대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치 3.1운동의 불씨를 지핀 정재용 선생의 실천처럼 말이다.본인은 국가보훈부에 소속되어 공무원으로서의 책무 하에 보훈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3.1운동의 이 일화를 되뇌어본 순간 공무원이 아닌 개인이자 한 국민의 일원으로서도 유공자들의 공적에 감사하고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혹시 모를 일이다. 작디작은 몸짓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실천이 3.1운동처럼 큰 여파가 되어 이 사회를 더 바람직한 모습으로 만들 수 있다. 예우받고 존경받는 유공자들의 모습, 그들을 대우하는 국가와 이 사회의 모습을 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될 테니.

2024-02-28

몰입과 성장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스키를 타고 산비탈을 질주할 때는 몸의 움직임, 스키의 위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공기, 눈 덮인 나무에 집중한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흐트러지면 눈 속에 고꾸라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이 순간, 우리는 완전한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미국 시카코대학 교수이자 삶의 질 연구소장인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은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 있는 상태다. 각각의 경험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 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에서 오는 것이고, 일과 놀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고 한다. 휴식이 새로운 에너지원을 만들듯 일과 문제만 몰입하기 보다 놀이와 병행하는 것이 건강한 삶이기 때문이다. 몰입은 생각의 연속선이고 선택과 집중을 말하기도 한다. 선택과 집중은 기업이든 개인의 삶이든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다. 한정된 시간에 경쟁 상대를 이기는 비기(秘器)는 자원과 기술, 시간을 선택과 집중하여 원하는 성과를 창출해내는 것이다.‘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모토로 전 직원이 반도체에 몰입하여 성공한 일류 기업이 오늘날 삼성이다.뉴턴은 “어떻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느냐”는 질문에 “내내 그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 라고 했다. 시인이나 수필가는 하나의 테마에 몇 달이고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고 초고가 나오면 천 번의 수정을 거쳐 명작이 탄생한다고 한다. 성공하는 스포츠인이나 기술자, 과학자 등 어떤 분야의 최고가 되는 삶의 공통점은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에 생각하고 집중하여 몰입하는 특징이 있는 것이다.아인슈타인은 “나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99번은 틀리고 100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맞는 답을 얻어낸다”고 했다. 잠자는 90%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몰입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핵심 문제가 설정되면 몰입할 수 있다. 문제 난이도는 높지만 중요해서 그것을 푸는 것이 의미가 있어야 하고, 문제를 푸는 기간을 정하면 더 몰입하여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이제는 Work Hard에서 Think Hard의 시대다. 열심히 일하면 남들보다 2배 이상 잘하기도 힘들지만 열심히 생각하면 남보다 10배, 100배까지도 잘 할 수 있다. 성공과 행복을 동시에 거머쥐고 싶은 사람이라면 열심히 생각하는 것에 인생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삶의 그림이 그려지고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나의 문제를 설정하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생각과 연구를 거듭하여 몰입에 이르게 되면 뜻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개인의 성장과 성공하는 삶은 몰입의 깊이에 달려 있고 쓰레기통에 던져 놓았던 먼지 낀 시간들을 순도 100%의 황금빛 삶으로 바꾸는 것이다. 몰입은 최고의 나를 만나는 기회이고 미래를 읽는 시간이다. 성공하는 기업들은 미래 산업의 핵심을 읽고 선택과 집중하여 승부를 건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사고 활동이 몰입이기 때문이다.

2024-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