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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누구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진주에서 서울 고속버스터미널까지는 편도 3시간 45분이 걸린다. 최종 목적지의 위치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진주 집에서부터 목적지까지는 어림잡아 5시간이 소요된다. 왕복 10시간이 걸리는 당일치기 일정은 피로감을 동반하지만 1박2일 일정은 잘 잡지 않는 편이다. 다음 날까지 허비되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5년 전 진주에 처음 내려오고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는 학술대회 발표·토론, 각종 회의 참석을 위해 한 달에 평균 1회는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서의 만남은 학교라는 좁은 틀을 벗어난 학계 활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작은 토론 제안도 감사한 마음으로 수락하고 상경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찾아온 회의감이 서울에 가는 횟수를 줄이게 했다. 서울에서의 몇 시간 일정을 위해 10시간을 왕복하는 내 상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하고는 생각이 바뀐 것이다.나에게는 2022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북토크 팀이 있다. 격월로 도서를 1권 선정하여 저자를 초청하는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혹은 오프라인 북토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해야만 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점점 서울 가는 것이 버거워졌지만 힘듦을 말하기 어려웠다. 제주도에서 상경하는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분은 오프라인 북토크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2023년 초에는 우리 대학의 한 연구소에서 발간한 책이 북토크 도서로 선정되어서 팀원들 일부가 진주에 내려왔다. 제주도에서 서울에서 오신 선생님들과 진주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여름방학에는 제주도에서 북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제주도 북토크를 위해 더 많은 선생님이 바다를 건너왔다.나는 제주도에 거주하시는 선생님께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수도권에 거주하는 선생님께 진주와 제주를 거부감 없이 다니는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물리적 거리감을 극복한 2년이 넘는 시간을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간 선정된 도서에서 배운 점 이상으로 이 분들과의 만남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뒤늦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진주에서 서울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는데 들어가는 경제적 비용과 물리적 시간, 그리고 육체적 힘듦에 대한 어떤 보상을 생각했다. 학술대회 발표를 위해서는 서울에 가고, 단순한 회의를 위해서는 가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기회비용을 따지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정상적인 사고라 할 수도 있겠지만, ‘관계’를 결정짓는 이러한 정상성이 만든 현재 우리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이 정상성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행사의 성격을 따져 상경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이제 설 연휴가 지나고 개강이 눈앞에 다가왔다. 새 학기부터는 익숙한 관계 맺기의 방식을 벗어나서 좀 더 많은 사람과 자주 만나야겠다. 이해관계가 아니라 마음이 연결되는 사람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24-02-19

마타요시 에이키의 소설을 경건한 마음으로 읽는 이유

오키나와는 17세기 초부터 일본(정확히는 사쓰마번)의 침략을 받았고, 19세기에는 일본에 편입되었으며, 1945년에는 지옥과도 같았던 오키나와전을 겪었고, 이후에는 미국의 군사적 지배를 받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된 이후에는 섬의 상당 부분을 군사기지로 내주어야 했습니다.이러한 역사를 지닌 오키나와에 대한 서사는 대부분 오키나와인의 ‘피해자 의식’을 강조하고는 했는데요. 마타요시 에이키(1947~)는 이러한 ‘피해자 의식’을 넘어 오키나와인 역시 욕망과 의지가 있는 ‘인간’이며, 가해자들 역시 양심과 선의지가 있는 ‘인간’일 수 있음을 형상화하는 문제적 작가입니다. 특히 ‘긴네무집(ギンネム屋敷)’(1980)은 오키나와에 사는 조선인 남자를 통해, 오키나와인의 ‘피해자 의식’을 성찰하는 문제적 작품입니다.마을에는 긴네무로 둘러싸인 집이 하나 있습니다.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그곳에는, 서른 전후의 조선인 남성이 혼자 살고 있는데요. 유키치는 ‘나’와 요시코의 할아버지를 꼬드겨서, 조선인 남자에게서 돈을 뜯어내려고 합니다. 실제로는 자신이 요시코를 겁탈했으면서도, 조선인 남자가 요시코를 겁탈했다고 거짓말을 하여 협박하려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할아버지나 ‘나’도 조선인을 경멸하고 무시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그런데 미군의 엔지니어라는 직업은 조선인 남자의 위상을 애매하게 만듭니다. 조선인 남자가 미군의 엔지니어로 일하기에 ‘나’를 비롯한 유키치나 할아버지가 조선인 남자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선인 남자는 그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합니다. 남자는 다른 미군 엔지니어들이 사는 “철망 안 미군 하우징”도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현재 살고 있는 긴네무집에 대해서도 “제 것이란 느낌”은 갖지 못하니까요.‘긴네무집’에서는 조선인 남자와 그의 연인이었던 조선 여인 고샤리(コシャリ)를 통해 오키나와에 살았던 조선인의 기구한 처지가 잘 드러납니다. 본래 조선에서 남자는 고샤리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곧 징용에 끌려갑니다. 요미탄에서 비행장 건설 강제 노동을 하던 남자는, 일본군 대장(隊長)과 함께 있는 고샤리를 발견하는군요. 이후 오키나와전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남자는 미군의 포로가 되어, 연안을 따라 숨어 있는 일본군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방송을 하기도 합니다.남자는 오직 오키나와에 고샤리가 살아 있다는 확신 하나로 살아왔는데요. 종전 이후 팔 년이 더 지난 후에야 남자는 매춘소에서 고샤리와 만나게 됩니다. 성병에 걸려 미군에게도 버려진 고샤리는 거지꼴을 한 오키나와 사람들이나 찾아오는 매춘소에서 꿈틀대고 있었던 겁니다. 실로 고샤리는 “일본 병사, 미군 병사, 오키나와인”에게 능욕당한 존재였던 거네요.남자는 고샤리를 낙적시켜 긴네무집에 데려오지만, 고샤리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으며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습니다. 남자는 고샤리에게 “한마디라도 해봐!”라고 애원하지만, 샤리는 비명을 지르며 남자의 얼굴에 침을 뱉을 뿐입니다. 결국 남자는 샤리를 목졸라 살해합니다. 남자는 언제고 죽을 기회가 있었던 전쟁 중에는 고샤리를 떠올리며 살아남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죽을 염려가 없어지자 고샤리를 간단히 죽여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샤리는 일본 병사, 미군 병사, 오키나와인에게 능욕당한 것은 물론이고, 조선인 남자에게도 능욕당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오키나와에서 나고 자라 오키나와에서 평생을 살아온 마타요시 에이키는 ‘오키나와인’과 ‘외지인’을 결코 ‘선인/악인, 약자/강자. 피해자/가해자’라는 구도에 가두지 않습니다. 그 곡절 많은 역사가 만들어낸 수많은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펼쳐진 인간군상의 천변만화를 담담히 그려낼 뿐입니다.그렇기에 오키나와인 마타요시 에이키는 조선인 남자의, “당신들은 뼈는 오키나와 주민 것이거나, 미군 것이거나, 일본 병사의 것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지요. 그럼 수백 수천 명에 이르는 조선인은 뼈마저도 썩어 버린 것일까요.”나 “경찰은 한 번도 오지 않더군요. 아마, 피해자가 조선인 매춘부라서 일겁니다. 아니면, 가해자가 미군 엔지니어 조선인이라서 일까요?”와 같은 말을 들려줄 수 있는 것이겠죠. 결국 조선인 남자는 자살하고, 그는 모든 재산을 “친구”라는 이유로 오키나와인인 ‘나’에게 남깁니다. 아마도 작가는 오키나와인에게는 갚아야 할 조선인의 유산이 남아 있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원래 인간은 자신의 피해자성과 타인의 가해자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는 합니다. 그러한 경향은 개인이 아닌 국가나 민족과 같은 공동체의 경우는 더욱 강해지는데요. 만약 자신의 피해자성만 기억하게 되면, 우리는 폭력과 복수를 정당화할 수도 있으며 나아가 스스로를 영원한 타자로 전락시킬 수도 있습니다.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이 인간, 즉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역사의 상흔을 온몸으로 받아낸 오키나와인이면서도, 자신의 (비)인간성을 함께 성찰하는 마타요시 에이키의 소설은 늘 집이 아닌 절이나 교회, 혹은 성당에서 읽고 싶습니다.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4-02-19

‘잘코사니’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북에서 핵으로 남쪽을 불바다를 만든다고 위협할 때 남에서는 부랴부랴 거창한 베를린 구상으로 아부를 했다. 그러면 다시 “가을 뻐꾸기 같은 수작”을 부리지 말라며 북의 김여정은 남한의 국가 원수를 “삶은 소대가리”라고 한 방 날렸다. 북에서는 묘한 가을 뻐꾸기를 불러와서 모욕을 주는데 남한의 최고 지도자는 평화를 위해 자존심을 다 버렸다. 온 국민의 자존심도 짓밟았다. 낱말의 선택은 이렇게 정치외교에서처럼 궁뚱망뚱한 언어로 쓰는 것이 아니다. “가을 뻐꾸기”에 대응하여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적장의 이마빡에 명중하면 전쟁은 끝이 난다.”며 화답한 시인이 있다.지난 연말 세상을 떠난 오탁번 시인은 잊혀가는 우리말을 지극히 사랑했다. 동자승 같이 살던 글쟁이 오탁번이 쓴 시집 ‘두루마리’(태학사)를 읽어보면 어떻게 요렇게 야물딱지고 찰진 오래된 우리말과 변두리 방언을 잘도 이용했을까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의 시 어느 언저리에도 한 푼어치 섞인 허위를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시는 순수하고 정직한 영혼의 흔적이 아닌 것이 없다. 필자와는 깊은 인연은 아니나 그가 쓴 옛 책 ‘헛똑똑이의 시 읽기’라는 책에 방언을 사랑하던 내 이름을 번듯하게 올려준 인연으로 늘 그의 문적을 헤적이고 있다.그의 시나 소설은 모두 따뜻하면서도 진중한 맛을 갖추었기에 읽는 내내 빠져들게 된다.그의 마지막 시집 ‘비백’에는 좁쌀처럼 흩트러진 고어와 방언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스스로 “말 하나를 가지고 별별 오두방정을 떠는 철부지 시인이다.”라며 겸손을 부렸지만 필자가 보기엔 그는 우리말의 깊은 뿌리와 말맛을 찾아 시를 남긴 보기 드물게 당당했던 시인이다.그의 작품 ‘노루잠’이라는 시를 읽었다. “괭이잠이라는 말은 알았지만/노루잠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는 잠/노루목, 노루발, 노루꼬리, 노루종아리/사전을 찾아보니까/예쁜 우리말이 깡충깡충 뛰논다….”이 시에 나오는 ‘노루종아리’는 말 그대로 노루의 다리 마지막 긴 마디를 뜻하는 줄 알겠지만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노루종아리’는 소반의 상다리의 마지막 부분 매끈하게 흐르는 부분, 또는 문살에서 가로 살은 성기고 세로 살만 촘촘한 부분이라고 풀이했다. 진짜 익은 우리말, 변두리에 내쳐진 말 하나를 건져내어 준 그가 ‘별별 오두방정을 뜨는 철부지 시인’일까. 우리말의 숨과 결을 이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시인이 우리 곁에 있었다. 한때 방언시가 유행한 때가 있었다. 욕지거리에 가까운 변두말로 쓴 시를 방언시라며 낯 두껍게도 방언시집이라 한 시인도 있었다. 시가 가지고 있는 예민한 현을 연주하기도 전에 다 터뜨려버린 그런 시들은 진정한 우리말의 맛깔을 호도한다.그런 면에서 오탁번 시인은 모국어의 원형을 고이 복원하기 위해 몇몇 날밤을 새우며 각고의 노력을 한 시인이다. 미궁과 같은 자리에 방언을 꼭 집어넣어 살짝 깔아 놓으면 시가 낯설어지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고단위 영양제 역할을 한다.그가 쓴 ‘겨우살이’라는 시를 들쳐보자. “쥐코밥상 앞에서/아점 몇 술 뜨다가 만다/저녁은 제대로 먹으려고/밥집 찾아 들랑날랑하지만 늙정이 입맛에 영 아니다/다 버리고 고향을 찾아왔는데/입은 서울을 못 잊었나 보다/야젓하게 살고 싶지만/뭘 먹어야 살든 말든 하지//강풍경보가 발령된 겨울밤/몰아치는 눈보라에/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요란하다/다 낡은 분교사택/지붕도 몽땅 날아가겠다/낙향하여 선비처럼 산다고?/그래 잘 살아라/쌤통!/잘코사니”.그가 이 시를 쓴 이유는 바로 ‘잘코사니’(고소하게 여겨지는 일·주로 미운 사람이 불행을 당한 경우에 하는 말이다.)라는 낱말 때문이다.‘쥐코밥상’, ‘아점’, ‘야젓하게’와 같은 지난 결의 사라져가는 언어들도 절묘한 빛을 발휘한다.오탁번 시인이 정년을 하고 고향 제천 산골마을에 문학관을 세워 겨울을 보내는 전경이 눈에 훤하게 들어온다.서사적으로 기상천외하게 계급과 이념의 극단을 늘 끌어들여 당혹스럽게 했던 창비와 같은 이념의 문풍시대에도 고결하게 글쓰기 명줄을 놓지 않은 살가운 글쟁이 오탁번 시인이 보고 싶다.

2024-02-19

스포츠와 인간성

홍석봉 대구지사장 스포츠는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스포츠의 규칙과 규율을 지키며 팀원과의 협력과 융화 속에 승부를 겨루는 것이 기본 덕목이다. 스포츠는 인간애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축구와 같은 단체경기는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더더욱 선수 간의 배려와 양보, 화합이 필요하다.한국 축구의 스타 이강인이 큰 사고를 쳤다. 그것도 아시안컵 결승전을 앞두고 발생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선수 간 내분은 전 세계 매스컴을 장식했다. 국제적인 망신살이 뻗쳤다. 불매운동 등 광고계까지 불똥이 튀었다.요르단과의 4강전 바로 전날 주장인 손흥민과 이강인이 시비 끝에 멱살잡이와 주먹질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손흥민이 손가락 부상을 입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시안 컵이 끝 난지도 1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관련 속보가 쏟아지고 있다. 이강인이 SNS를 통해 사과했지만, 축구팬들의 분노는 숙지질 않고 있다. 이를 방치한 외국인 감독은 경질됐다. 축구협회가 나서 사태의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축구계 일각에서는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생활한 이강인이 성장통을 겪고 있다며 이해를 바라는 의견도 없지는 않다. 감독과 협회장의 무능과 방관이 가져온 사고라는 것이다. 하지만, 공을 잘 차는 것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인간성이 발라야 한다. 선수로서의 최소한의 도리와 예절은 알아야 한다.이번 축구대표팀의 사태를 보면서 국민은 경악하고 있다. 스포츠의 일탈행위는 단호한 처벌이 필요하다. 일벌백계로 축구대표팀의 총체적 난맥상을 바로잡아야 한다. 차제에 국가대표에 대한 인성교육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2-19

마지막 학술대회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난 수요일부터 등이 독한 벌레에 물린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벌레에 물린 줄 알았다. 빈대가 새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뉴스의 기억이 오래되지 않았다. 지구 온난화라니, 사람들 모르는 벌레가 상륙할 수도 있었다.피부과에 가야 하지만 여유가 없었다. 설날 연휴, 돌아가신 지 일 년 되신 아버지 기일, 미뤄 두었던 만남들, 밀린 논문, 비평의 원고들. 무엇보다 금요일 날 학술대회가 있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학술대회를 잘 마치고 보자는 심산이었다.금요일이 오자 새벽부터 일찍 집을 나섰다. 여러 손님들을 초빙한 대회였다. 오전에는 드크레센조라고, 프랑스 마르세이유 대학의 한국학 전공 교수 분이 발표를 하기로 했다. 창원의 시낭송대회 때 이 분 발표가 참 경청할 만했다. 국립국어원 원장으로 가신 장소원 선생님도 모처럼 학교에 오셔서 발표해 주신다. 오후에는, 국회의원 김종민, 우리 과 선배인데다 내게는 동아리 선배이기도 하다. 바깥의 시국이 어지럽기는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3.0’ 시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다. 언론에게 알리지 않는 비공식 초청이다. 영국 추리소설가협회던가에서 수여하는 대거상 번역소설 부분의 수상자 윤고은 작가가 와주기로도 했다. 마지막, 김남일 작가, 내가 1994년 등단해서 알게 된 작가 가운데 이렇게나 솔직, 소박, 성실한 사람이 있을까 싶은 선배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그린 오수연 선배의 ‘황금지붕’을 가지고 발표를 해주기로 했다.그밖에도 발표자가 많았다. 이번 학술대회는 특별히 통상적인 학계의 범위를 넘어서는 사람들을 초청해서 ‘한국 어문학의 미래’를 주제로 삼아 이야기하기로 했다. 특별히 ‘미래소설’들을 다룬 세션을 둔 것도 이제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화두로 삼아 보자는 취지에서였다.일요일인 오늘 결국 대상포진으로 판명이 났다. 침인지 칼인지로 등을 쿡쿡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견디며 가급적 맨 앞자리를 지키려고 했다. 여러 생각이 났다.스무 해 가까이 어떤 과제의식에 쫓기듯 살아온 것이었다. 정체성은 자유이지만 구속이기도 하다고 밀었다. 그래도 뭔가 이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긴 시간이었다. 어렵게 ‘BK21’ 지원 프로그램을 따냈지만, 중간평가에서 밀렸다. 앞으로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 것인가? 돈이 없으면 움직이기도 어려운 오늘의 연구 환경이다.한국학 연구는 나의 터전이고, 내가 아무리 창작에 관심이 있다 해도, 떠날 수도 없고 버려서도 안되는 터전이다. 그리고 이제 막 포스트 콜로니얼조차 벗어나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게 된 참이다. 당혹스러운 상황이다.착잡한 심중에서 한 가지 생각이 인다. 이제는 나 개인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는. 연구팀이다, 학회다, 를 넘어 홀가분한 상태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든, 글쓰기든 해야 할 때라는 것.그러고 보면 놓치는 것은 얻는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일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듯, 나쁜 일도 모든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2024-02-19

‘이재명의 민주당’이 총선 목표인가

김진국 고문 공천 작업이 한창이다. 52일 뒤면 총선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마음이 급한지 급발진한다. 그는 “떡잎이 져야 새순이 자란다”라고 말했다. 물갈이에 대한 여론은 나쁘지 않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워낙 깊어서다. 혁신하겠다는 것이니 박수를 받을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가깝지 않은 사람은 자르고, 자기 계파를 내리꽂아 당을 장악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용된다면 다르다. ‘비명’(非이재명)계는 그렇게 의심한다.민주당이 대선에서 진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누가 뭐래도 가장 큰 책임은 후보자 본인 몫이다. 국민은 후보를 보고 표를 찍었다. 민주당에 대선 패배 책임론이 불거졌다. 그런데 이 대표 책임론은 없다. 몰래 만든 대선 백서에도 이 대표의 책임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후보를 제외하면 전임 정부 책임도 크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가 투표에큰 영향을 미쳤다. 국정을 잘 운영했으면 국민의 다시 표를 줬을 테고, 정권을 재창출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그런데 최근 거론된 책임론은 그것과 전혀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후보가 될 기회를 왜 주었느냐고 따진다. 왜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고, 임기 중 파면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한다. 부동산 정책 실패나, 불공정, ‘내로남불’로 국민 신뢰를 잃었다고 책임을 따지는 게 아니다.윤 대통령이 여론 지지를 받았던 건 검찰총장이어서가 아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불공정·내로남불과 대비돼 ‘공정’ 아이콘이 됐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을 만든 ‘공로’ 내지 ‘책임’은 전 정부 인사 가운데 조국·추미애 전 장관에게 가장 많다. 유인태 전 의원이 지적한 대로다.그런데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먼저 꺼낸 사람은 바로 추 전 장관이다. 그는“석고대죄해야 할 문재인 정부의 두 비서실장(임종석·노영민)이 총선을 나온다고 한다”라면서 “책임감과 정치적 양심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출마하지 말라는 말이다. 심지어 그는 문 전 대통령 책임까지 거론했다.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도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 정권 탄생의 원인을 제공하신 분들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라고 맞장구쳤다. ‘친명’ 진영의 의견인 셈이다.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을 방문해 “우리는 명·문(이재명·문재인)정당”이라는 말을 끌어냈다. 그러나 인사치레에 그쳤다. 공천은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가고 있다.‘올드보이’를 밀어낸다고 한다. 그런데 올드보이는 누구를 말하나. 임종석 전비서실장은 올드보이고, 박지원·정동영·추미애 전 장관은 ‘영보이’냐고 묻는다.여론조사도 의심받고 있다. 이 대표는 당 공식 조사 결과라며 문학진 전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문 전 의원은 “당 후보 측근을 점찍기 위한 조작”이라며 경선을 요구하고 있다. 여론조사라는 것이 워낙 미덥지 않지만, 조사기관 자체도 불투명하다. 하필 곳곳에서 이 대표의 측근들이 내리꽂히고 있다. 이 대표가 여기저기 직접 전화해 사퇴시킨 것도 말썽이다.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처신이다.도덕성 문제는 더 큰 걸림돌이다. ‘새 술’을 찾는 명분은 혁신이다. 도덕성이다. 그러나 집에서 돈다발이 발견돼 재판 중인 노웅래 의원은 출마 의지를 밝혔다. 이 대표도 재판 중인데 출마한다. 노 의원을 포기하라고 설득할 명분이 없다.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에 연루된 의원들에게도 할 말이 없다.이언주 의원은 7년 전 친문 패권을 비판하며 민주당을 탈당했다.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 바른미래당을 거쳐 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갔다. 한때 극우성향까지 보였다. 이제 “함께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하자 이 대표가 받아들였다. 기준이 모호하다. 친문 부활을 막자는 건지, 경쟁자의 싹을 자르겠다는 건지.거대 양당이 지배하는 한국 선거에서 양당의 공천은 당선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당선 보증수표다. 진영대립 탓이다. 한 사람의 방탄, 대권욕을 위해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2-18

혁신 활동의 공감 필요성, 왜(Why)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필자는 90년대 포스코 현장에 입사했을 즈음에 현장 혁신 활동으로 QC 분임조 활동을 하였다. 이 활동은 품질관리(Quality Control) 활동으로 회사 설립 초기인 72년대부터 진행하고 있는 활동이라 들었다. 이때만 해도 이런 혁신 활동은 본업 외의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업무다’라고 인식하고 열심히 묵묵히 활동하던 시절이었다.지금은 컨설턴트로 QSS(Quick Six Sigma)란 현장 혁신 활동을 기업에 전파하고 있고, 많은 직원에게 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꼭 필요한 활동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옛날에 비해 직원들에게 땀 흘리는 현장 혁신 활동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끌어내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특히 MZ세대는 왜(Why) 자기 자신이 해야 하는지, 하고 나면 자신에게 무엇이 좋아지는지를 명확히 이해해야 하며, 필요성을 공감해야 함께 활동하는 세대이다. 사례로 구글은 ‘측정 가능한 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론’으로 OKR(Objectivekey Results) 방식’을 적용하였고 이 OKR 방식은 목표가 선명하고, 활동 후 성과에 따라 보상을 명확히 하여 MZ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는 평을 받았다.이처럼 혁신 활동 방법론에 대한 공감도 변해야 한다. 필자는 주로 혁신의 필요성에 대해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이 지구상에 살아남은 종족은 가장 강한 종족도 아니고, 가장 지적인 종족도 아닌 가장 환경변화에 잘 적응하는 종족이다.”, 맥킨지의 ‘Creative Destruction’ 중에서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과거 방식을 고집하는 기업은 언제나 시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망한다.”라고 하면서 당위성을 강조하였었다.하지만 P사 임원은 왜(Why) 혁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첫째 회사의 발전, 성장이 없으면 자신에게 더 어려움이 온다. 회사는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서 돈을 많이 벌고 지속 생존하여 안전한 일자리와 더 많은 급여를 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혁신은 지식근로자 양성에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로봇처럼 단순 운전하는 일보다는 혁신을 통해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지식근로자가 되어야 한다. 이 사람은 자긍심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더 좋은 승진·보상의 기회가 주어지며, 동종업계로 가더라도 더 좋은 일자리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셋째 혁신 활동을 통해 자신이 일하는 일터가 더 안전하게. 더 깨끗하게, 더 편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터를 후대에 넘겨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직원 관점에서 혁신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위에 필자의 설득 방법은 틀린 말은 아니나 MZ세대에게 공감을 얻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P사 임원의 말은 직원의 관점에서 설득하여 마음을 얻고 공감을 얻을 만하다고 본다. 이제 우리는 왜(Why)를 외치면서 본질이 무엇인지 찾아야 할 때이다.기업의 흥망사를 분석하였던 지브랏의 “잘 나가는 대기업이나 작은 기업이나 생존 확률은 같다”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왜(Why)를 되새겨 본다.

2024-02-18

나와 너를 살리는 잠깐 멈춤

유영희 작가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반칠환(1964~)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전문이다. 얼핏 보면 알 듯도 한데, 썩 개운하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이 시를 인용해서 칼럼을 쓴 작가도 씀바귀꽃과 제비만 언급하고 있으니, 시인이 왜 노점상 할머니나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나를 다시 걷게 한다고 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강의 시간에 이런 의문을 말하니, 칼럼을 소개한 글벗은 그 대상들이 나의 감각을 깨웠다는 뜻인 것 같다고 한다. 눈이 번쩍 뜨였다. 실제로 감각이 깨어나면 활력이 생긴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대부분 알고 있다. 무기력하면 무감각해지고, 무감각해지면 무기력해진다.그런데 시인의 말대로 이렇게 감각이 깨어나기 위해서는 잠깐 멈춤이 꼭 필요하다. 다만,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큰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도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을 멈춰 세울 수는 없다. 멈추게 하는 힘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잠깐 멈춤은 개인에게도 필요하지만,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며칠 전, 지난 2021년 서울대 휴게실에서 숨진 청소 노동자의 유족에게 법원이 8천6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숨진 노동자는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혼자 날랐고, 그런 노동자에게 학교 측에서는 필기시험까지 보게 했다. 학교 건물 이름을 한자로 쓰라거나, 자신이 속한 조직을 영어로 쓰라는 문제도 있었고, 건물이 몇 년도에 지어졌는지도 물었다고 한다. 일이 끝나고 회의를 할 때는 정장에 구두를 신고 오게 했다고 한다. 법원은 이런 서울대의 방침이 갑질이라고 판결한 것이다.서울대 측은 이것을 갑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울대 측이 청소 노동자에게 요구한 것은 지식인에게는 당연하고도 쉬운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엘리트의 독단일 뿐이다. 잠깐만 멈출 수 있었다면, 그래서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질질 끌고 가는 청소 노동자를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런 요구가 당연한 것도 쉬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청소부가 맡은 일이 과중하지 않아서 퇴근 후에는 문학 작품도 읽고 정장을 입고 음악회에도 갈 수 있기에 행복하다는 동화를 문학적 상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청소 노동자에게 강제로 한자와 영어를 익히게 하고 정장을 강요하는 것은 잠깐 멈춤을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3년간 송사를 하느라 서울대도 괴로웠을 것이다. 멈추어 바라볼 줄 알았다면 괴로울 일도 없었을 것이니, 멈출 줄 알면 남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산다. 이번 판결이 잠깐 멈춤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2024-02-18

밤하늘의 비행기를 보면서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봄기운이 완연하다. 경북대의 성질 급한 홍매와 백매(白梅)가 환하게 세상과 만나고 있다. 화양(華陽) 들판 마당에도 영춘화(迎春花) 노란색이 화사하다 못해 화려하다. 춘하추동 사계 가운데 유독 봄이 기다려지는 것은 분명 까닭이 있는 셈이다. 대상을 본다는 행위, 즉 봄은 우리를 전연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정령인지도 모른다. 하되, 무엇을 본다는 말인가?!저녁 산보(散步) 나갔다가 천상에서 세 대의 비행기가 삼각 편대를 이루고 남쪽 창녕으로 날고 있음을 본다. 드문 현상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새삼스러운 장면으로 남는다. 그럴 즈음, 남산 하늘 한편에 작은 불꽃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다른 비행물체가 천상을 가르며 질주하고 있다. 비행체는 망설임 없이 신속하게 하늘을 주름잡고 내게 날아온다.비행기는 서둘러 오리온자리 사각형 좌측(左側) 상단(上端) 모퉁이를 직선으로 관통하여 나의 정수리 위를 지나간다. 나는 손을 흔들며 비행기를 전송한다. 비행기의 좌측 위쪽으로 상현(上弦)의 환한 월광이 천상을 감싼다. 여기서 궁금증이 솟구친다. ‘저 비행기 승객 가운데 누가 오리온자리와 반달과 지상의 나를 보고 있는가?!’지상의 낮은 곳에서 비행기와 별과 달의 세 가지 대상을 보면서 나는 사유를 진척하고 있는데, 훨씬 높은 고도의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과 나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경계를 생각하다가 문득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나가르주나(용수 보살)의 인식과 사유로 생각이 달려간다. 아, 삶이란 얼마나 신비한 것이냐?!양자 물리학 연구자이자 서책의 지은이 카를로 로벨리는 인도의 중관(中觀) 사상 대표자 나가르주나를 인용하여 사유와 인식의 지평을 확장한다. 나가르주나의 ‘공(空)’을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물은 자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 덕분에, 다른 것의 결과로, 다른 것과 관련하여, 다른 것의 관점에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비어 있다.”양자 물리학자의 설명으로 나는 지난 4년 나를 결박한 ‘오온개공(五蘊皆空)’의 족쇄에서 벗어난다. 관자재보살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온(五蘊)이 왜 모두 공하다고 했을까, 하는 미해결의 과제를 하나의 문장으로 풀어낸 나가르주나를 소개하는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라니! 일상적인 행위에 담긴 비자립성과 상호의존성 그리고 인과율과 상호 연관성으로 오온의 실체에 담긴 ‘공’의 본질을 포착하고 깨우치는 아름답고 절제된 문장!여기서 나아가면 아인슈타인의 물음이 문득 유치해진다. “내가 달을 보고 있지 않다면, 달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당연한 이야기다! 달을 보고 있는 나는 우주를 구성하는 숱한 사물 가운데 하나일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달 사이의 인과성과 의존성 그리고 연관성을 뛰어넘는 대승적인 철학적-인간학적 통찰이 슬며시 다가온다.관계와 역사적 맥락을 제외하면 우리는 우주의 먼지와 다르지 않다. 고로, 우리는 이미 공한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것을 밤하늘 비행기가 전해주며 날아가고 있었다!

2024-02-18

결혼은 선택?

우정구 논설위원 얼마 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소년은 “결혼은 반드시 해야한다”는 물음에 30%만이 “그렇다”고 답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2년도 같은 질문에 73.2%가 긍정적 대답을 한 것과 비교하면 11년만에 반토막이 난 셈이다. 전국 초중고생 7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여서 우리나라 청소년의 결혼관이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결혼이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라면 인구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당연히 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50년 후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유소년 인구보다 7배나 많아질 것이라 했다. 현재의 인구구조 추이를 근거로 한 조사 결과지만 우리나라 청소년의 결혼관과도 무관하지 않은 예측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인구증가와 국가경제 성장은 비례한다. 특히 생산가능 인구인 젊은층의 인구증가는 국가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 경제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생산가능인구 1%가 감소하면 GDP는 약 0.59%가 줄어든다. 지금과 같은 인구 추세라면 2050년 우리나라 GDP는 2022년보다 약 28%가 떨어질 것이라 했다.국내총생산인 GDP는 한 나라의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기간동안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시장가격으로 평가하여 합한 것이다. 한 국가의 경제발전을 가늠하는 척도다. 지난해 한국의 GDP는 1조6천억달러로 세계 13위였다. 2021년보다 3단계가 하락했다.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는 청소년의 결혼관부터 바꿀 국가 차원의 획기적 대책이 나와야 한다. 국가적 인구소멸 위기감을 청년 세대도 공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2-18

‘건국전쟁’ 열풍의 의미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영화 ‘건국전쟁’이 열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개봉 보름이 지나 관객 50만을 넘어 다큐영화로는 드물게 큰 흥행을 보이고 있다. 필자도 소문을 듣고 몇 일 전 관람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옆에 있는 아내는 계속 울고, 영화가 끝난 후 관중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이러한 열풍과 돌풍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동안 특히 진보정부아래에서 이승만은 폄하되었고 심지어 런승만이라고 하여 6·25전쟁 당시 비겁한 대통령으로 포장한 것은 진보정부였다. 진보파 영화로 다큐 영화가 많이 생겨날 때 ‘건국전쟁’같은 진정 역사를 바로 알고 애국적인 다큐영화가 돌풍을 일으키는 현상은 참으로 주목할만하다.영화를 관람한 많은 관객들이 감동을 받고 박수를 보낸 것은 위대한 업적을 이룬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너무나 역사적으로 푸대접을 받아왔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그의 업적에 대한 감동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다큐 영화 ‘건국전쟁’은 소중한 현대사 교과서로 손색이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김덕영 감독은 이를 위해 3년반을 자료 수집의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이승만 전 대통령과 건국과정에 대해 왜곡되어 있거나 잘못 알려진 내용을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바로잡아 주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 교과서는 학생들이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 남한에서는 반공이념으로 인해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대한민국정부수립의 탄생 자체를 폄훼해 왔다.한반도 분단과 관련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46년 6월 ‘정읍발언’을 들어 이승만 책임론을 거론하는 내용도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하다.그러나 다큐 영화 ‘건국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초기 내각 명단을 비교해 오히려 북한이 친일파를 더 많이 기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또한 이 영화는 한강 인도교 폭발과 관련해 피난을 가던 주민들이 다수 사망했다거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자신은 도망가면서 국민들을 향해서는 국군들이 선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의 방송을 했다는 소위 ‘런승만’ 보도는 가짜뉴스라고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한국전쟁 막바지 휴전 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반공포로를 석방은 이승만의 신의 한수로 여겨진다.미국을 당황하게 만들고 한국전쟁 종식을 공약한 미국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경제원조 등을 이끌어 낸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놀라울 정도로 다양히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관련해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한, 국내외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사실에 기반한 내용을 전달하려고 노력한 제작자의 의도가 잘 반영된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작년에 고교 졸업 50주년 기념으로 단체 부부여행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를 관람한 후 화진포로 이동하던 기억이 떠올랐다화진포에서 한국 건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별장을 관람하고, 그리고 김일성 별장이라는 곳을 관람하게 되었다.이승만 별장을 구경하면서 생각보다 낡은 모습의 별장이 유지되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구현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나,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 관리 자체가 부실해 보였다. 옛 역사를 구현하려면 어쩔 수 없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김일성 별장을 관람하면서 바뀌어 갔다. 그곳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남북한 교류의 사진들과 홍보로 가득하고 이승만 별장보다는 훨씬 최신식 건물로 지어져 있었다. 과거 역사의 건물이라기보다는 홍보관 같은 느낌이었다. 왜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하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옛날 모습이 구현되지도 않았고 구현할 필요도 없는 건물이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돼 있었다. 누구에 의해서 어떤 정부에 의해서 이런 건물이 세워지고 이렇게 명명됐을까?참으로 그러한 명명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캐나다 선교사들의 예배당으로 명명하는 게 맞지 어떻게 김일성 별장으로 이름을 지었을까? 김일성이 잠시 머물렀다고 하여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하는건 정치적 상업적인 냄새가 너무 나는듯했다. 실제로 당시 모습도 구현되지 않았고 남북교류의 홍보물로 가득한 건물이었다.진보정권 시절인 2005년 새단장을 하고 그 예배당을 김일성의 별장이라고 명명했다고 하는데 전쟁의 원흉인 김일성을 기념할 아무런 이유도 없어 보였다. 이승만 별장은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습한 냄새 나는 건물로 남겨두고, 김일성 별장은 에어컨이 돌아가는 시설로, 두 별장은 운영조차 차별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일반인들이 별칭으로 김일성 별장이라고 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공식 명칭을 그렇게 부르는 건 역사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전쟁의 원흉 김일성을 그렇게 대접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영화 ‘건국전쟁’의 열풍의 의미는 이제 더 이상 한국의 건국 대통령을 소위 진보파들이 폄하하지 말라는 대 반격의 신호로 보인다.공과가 있을 때 과만을 크게 부각하고 한국의 건국을 부정하는 진보파들이 설자리는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한다.우리는 자유대한민국의 뿌리를 견고히 찾아야 한다.‘건국전쟁’의 열기는 이제 이러한 우리의 의지를 확고히 보여주고 있다.

2024-02-18

반기문 전UN사무총장의 호소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얼마 전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짧은 연설을 듣게 되어 옮겨 보고자 한다. 이 글은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용인시에서 강의한 내용으로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발전하는 도시를 만들 수 있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이다.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지금 Global Boyling(뜨거워서 펄펄 끓는 지구)시대를 살고 있다. 탄소중립, 기후위기에 대한 적절한 장치를 갖추고 살아야 한다. 시민들에게 Climate friendly한 삶을 살고 실천하기를 당부한다.반 사무총장은 UN사무총장 10년 재임기간 업적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을 꼽으라면 다음 네 가지라고 했다.첫째,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파리기후협약 체결. 둘째,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지속가능하게 잘살아갈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한 지속가능발전계획 17가지 선포. 셋째, 청소년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기초를 마련하고 청소년 특사 제도를 제정. 넷째, 여성의 공평한 지위부여와 지위향상.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지구가 기후위기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UN 역사상 UN193개 회원국이 한마음 한뜻이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후딱 2번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첫째는 지속가능발전 채택이고, 두 번째가 기후변화협약 채택이라고 한다.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없앨 수 있는 것이 기후변화다. 어느 누구도, 어떤 나라도 자연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나 나라는 없다고 했다.북극이 녹고 있고, 남극이 녹고 있다. 얼음 산 남북극이 산업혁명 후 배출된 매연으로 인해서 지구가 더워지기 시작해 지금은 남북극이 녹고 있다. 2000년까지 해수면이 60cm-2m 상승했다. 당장 기후변화에 대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인간이 지구에 살 수가 없게 된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인도네시아는 수도를 옮긴다. 피지는 나라를 옮긴다.태양에서 오는 열이 땅에 부딪혀 복사열이 생기는데 이 복사열이 하늘로 올라가서 없어지면 땅의 열이 내려가는데, 산업혁명 후 발생한 매연으로 인해 하늘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매연 층에 부딪혀 다시 땅으로 내려와 지구를 달구게 되어 지구 온난화 현상이 생겼고 지금은 글로벌 보일링(펄펄 끓는) 상태가 된 것이다.우리가 만일 2050년까지 1.5도 이내로 지구 온도 상승을 막지 못하면 인류에게는 희망이 없어진다. 이것은 UN기상전문기구로 2천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근무하고 있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서 나온 경고다. 현재 이미 1.15도까지 올랐다고 한다. 비상사태다. 이제 남은 0.35도를 가지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만들어야 한다.우리나라는 부자로는 세계 13등이나 탄소 배출로는 G7(7대 강대국)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4번째로 2030년까지 2018년 기준 탄소를 40% 줄이겠다고 국제사회에 선언했다. 그리고 국회에서 입법을 하여 법제화를 했다. 그러나 실행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산업체나 시민들이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 전체 탄소배출을 100이라고 할 때 탄소 12%가 포스코 한 회사에서 나온다. 두 번이나 포스코를 찾아가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하고 설득해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하겠다고 선언하게 했다. 석탄 공법에서 수소 공법으로 바꾼다.현대자동차도 회장을 만나서 현대자동차 “이렇게 하면 희망이 없다”고 설득하여 2035년까지 전부 전기자동차로 만들기로 했다. 2035년이 되면 현재 상태로는 하나도 수출을 못하게 된다.국제사회가 특히 유럽, 미국 이런 선진국에서 탄소가 1%라도 들어가면 과도한 세금을 부담시키기 때문에 할 수없이 현대자동차가 2035년부터 전기차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모든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를 쓰겠다고 선포를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청년들의 장래가 없다. 젊은 여러분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시도지사, 시장, 군수를 뽑을 때 기후위기에 대한 정확한 의지가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2019년 UN총회에서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각국 정상들 앞에서 “나는 절대로 UN과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겠다. 내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 기후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면. 빨리 해결하라!” 하고 호통을 쳤다. 우리 젊은이들이 이러한 기개를 가져야 한다.앞으로 100년 내에 대 멸종(Mass Extinction)이 온다. 모든 생물의 70%가 없어진다. 과거 5차 대멸종은 6천500만 년 전에 있었다. 공룡이 다 죽었다. 인간이 없어질 수 있다. 인간의 역사 30만년도 채 안되는데 100년 안에 멸종하면 억울하지 않은가? 여러분의 책임이고 우리의 책임이다. 젊은이들 여러분이 실천해서 기후위기 극복에 앞장서야 한다.시민 개개인의 생활 태도, 습관을 바꿔야 한다. 수돗물 한 방울 종이 한 장이라도 낭비를 없애야 한다. 에너지와 관련해서 모두가 청정에너지를 써서 기후위기를 극복하도록 솔선수범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생활을 Climate Friendly(기후 친화적으로) 하게 해야 한다.지속가능한 세상,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기후위기부터 극복하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2024-02-18

낙하산 공천의 셈법

홍석봉 대구지사장 윤석열 대통령은 4·10 총선 공천 심사를 앞두고 ‘공정한 공천’을 강조했다. 정부 고위직과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특혜를 바라지 말라”고 했다. 용산 출신도 예외는 없다는 입장이다. 윤심 공천 논란으로 공천 탈락후보들에게 공격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의도다.인요한 전 비대위원장도 ‘용산 공천’에 대해 “그것은 스스로 죽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여야의 4·10 총선 공천 작업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텃밭인 TK(대구·경북)의 국민의힘 공천신청자들은 16, 17일의 TK후보자 면접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이번 TK 총선의 관심사는 ‘용산발’ 낙하산 공천 여부다. 윤석열 정부와 여권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TK 지역에 전략공천을 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첫날 국민의힘 공천신청자 면접 후 3선 이상 중진들의 지역 재배치가 이슈가 됐다. 부산·경남(PK)에선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됐다. 험지가 없는 TK가 문제였다. 당사자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공천관리위원회가 바로 다음 날 한발 물러섰다. 지역구의 인위적인 재배치는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당에도, 선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작용했다. 이제 TK 공천신청자들의 눈과 귀는 공관위의 불출마 종용과 컷오프로 향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전화로 불출마를 종용한 방식이다. 어떤 형태든 교체지수가 높고 지역내 여론이 좋지 않은 현역들은 걸러내야만 하는 판국이다. 물갈이 폭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현역 컷오프는 공천 기준만 지켜 시행하면 별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컷오프 이후다. 현역 의원이 물러난 자리에 누구를 앉히느냐는 복잡한 셈법이 적용된다. 심사를 기계적 잣대에만 맞출 수는 없을 터다. 용산발 낙하산은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검찰과 고위 공직자 출신 비중도 감안해야 한다. 탈락자가 개혁신당으로 옮기거나 무소속 출마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용산은 여당이 다수당이 되길 굴뚝같이 바랄 것이다. 국정 동력을 확보하면 가장 좋다. 하지만 과반 의석에 못 미치더라도 조기 레임덕을 막기 위한 국회 기반은 필요하다. 용산 출신이 요소요소에 포진하면 국정 운영이 한결 수월할 수 있다. TK 전략공천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TK에는 대통령실 참모진과 고위공직자 등 10명이 공천을 신청했다. 전략공천은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그래야 후유증도 적고 국민의 지지도 이끌어낼 수 있다.TK에는 3선 이상 중진과 초·재선 국회의원이 적절하게 조합된 균형 잡힌 판을 짜야 한다. 총선 때마다 되풀이한 파행 공천과, 낙하산 공천을 배격해야 할 것이다. 지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천이 돼야 한다.지난 21대 총선 참패의 원인이 된 ‘진박 공천’의 치욕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TK가 공천 희생양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이 필요하다. 정영환 공관위원장이 강조한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천”을 기대한다.

2024-02-15

연두색 번호판

우정구 논설위원 올해부터 법인이나 관공서 등에서 고가의 차를 구입하면 연두색 전용 번호판을 달도록 하는 제도가 생겼다.국토교통부는 고가의 슈퍼차를 법인 명의로 구입해 놓고 사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에 따라 법인 등이 8천만원 이상의 차를 구입하면 연두색 번호판을 달도록 조치한 것이다.이에 따라 올 들어 전국적으로 1천661대의 차가 연두색 번호판을 달았고, 대구와 경북에서도 120대의 법인 차가 연두색 번호판을 단 것으로 집계됐다. 아직은 많지 않아 낯선 번호판을 보기가 쉽지 않다.작년까지만해도 법인 명의로 차량을 구입하면 차량 구입비와 보험료, 유류비 등을 모두 법인이 부담하고 연간 최대 1천500만원까지 경비 처리도 가능했다. 이런 점을 이용해 법인 명의로 차량을 구입해 놓고 실제로는 회사 대표 가족 등이 차를 몰고 다녀 사회적 물의가 잦았다.연두색 번호판의 개시로 이같은 사적 이용이 앞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이나 제도 정착에는 의문도 없지 않다. 제도 시행을 하면서 기존의 법인 차량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을 하지 않았던 점 그리고 일부 법인에서는 제도 시행전 서둘러 차량을 구입해 제도 시행의 효과가 반감됐다는 지적도 있다.또 8천만원 이하 중·저가 차량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법인 차의 사적 사용이 사실상 제한적이란 평가도 있다.정부는 제도를 소급 적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사회적 자율규제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했다고 밝혔으나 정부 기대만큼 자율 분위기 조성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처음 시행하는 제도인 만큼 부작용은 보완하고 제도가 안착할 수 있도록 정부 당국의 지속적 관리가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2-15

끝나지 않은 ‘건국전쟁’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세간의 화제다.이승만이란 인물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이념이나 정파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린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국부(國父)라는 평가도 있지만, 그보다는 독재자에다 미제의 앞잡이요 친일파로 매도하는 국민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상영 중인 영화 ‘건국전쟁’이 화제인 것은 바로 그런 대다수 국민들의 인식에 상당한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조선이 패망하고 일제의 식민지를 거쳐 대한민국이 탄생하는 과정에 이승만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등장은 한편의 영웅신화를 연상케 한다.무엇보다 그는 한반도 오천년 역사에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한 사상가요 지도자였다. 그가 아니었으면 남한의 해방정국은 지리멸렬 분쟁을 하다가 결국 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에 휩쓸리고 말았을 것이다.그러지 않아도 6·25 남침으로 패망직전까지 간 것을 이승만의 활약으로 겨우 막아내지 않았던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까지 이승만은 혈혈단신 적진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하는 장수와 같았다. ‘건국전쟁’이라는 영화의 제목도 그래서 붙여진 게 아닐까 싶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지만, 자유대한민국의 기반과 초석이 되는 어느 것도 이승만을 통해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정부의 수립과 시장경제체제 도입을 기반으로 안보를 확보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사유재산제도를 일반화한 농지개혁법 시행, 초등교육 의무화와 해외유학 장려 등의 교육개혁으로 80%의 문맹률을 22%로 낮추었고,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지원과 원조를 이끌어 냈으며 충주 비료공장, 문경시멘트, 원자력발전 기획 같은 경제적 기반도 마련했다.대한민국 국민 중에 이승만 대통령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의 업적을 알고 기리기는커녕 대다수 국민들이 혐오와 저주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막힌 노릇인가. 그렇게 된 제일의 원인은 그가 투철한 반공주의자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잔재하는 좌경화 세력들이 끊임없이 세뇌하고 선동한 결과였다. 특히 교육계에 침투한 좌파 운동권 세력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사상을 주입하여 국민 대다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좌경화 된 것이다.대한민국의 완전한 건국은 통일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다. 거기에 이르는 길은 아직 멀고 험해 보인다. 그러나 절실한 염원과 굳은 의지가 있고 부단한 노력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번 4월의 총선은 그 과정에 놓인 한 고비가 될 것이다. 좌파 정권에 의해 와해의 길로 들어섰던 자유민주주의 정체를 수호하고 재정비한다는 의미에서 제2의 건국이 될 수도 있는 선거다. 아직은 끝나지 않은 건국전쟁이지만 예감과 징조가 나쁜 것은 아니다. 아무쪼록 이승만 대통령의 정신과 업적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국민들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는 하나의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24-02-15

세시풍속의 변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설 연휴를 가족들과 보내고 이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오니 그 며칠간의 모습들이 잔잔한 기억으로 가라앉는다. 차례상도 간소하게 하였고 떡국 올려서 조상님께 한해의 복을 빌어보았다. 자식들에게 세배를 받으며 덕담도 해주고 깨끗한 봉투에 마련해 둔 세뱃돈을 주고 보니 또 한 살 더 먹었다는 세월을 가늠해 보기도 한다.옛 같으면 형제자매가 설날에 다 모여 북적대며 즐거웠을 텐데 가족 수가 줄어드는 요즈음 그나마 모두 자기들의 생활을 찾아 훌쩍 떠나버리면 허전한 가슴엔 때때옷 입은 손주들의 웃음소리만 귀에 아른거릴 뿐…. 더욱이 이웃 어른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옛날 설날에는 가족들 모두 모여 앉아 윷놀이도 하고 밖으로 나가 들판에서 연날리기도 했었지만 이제 모두 바빠서인지 세시풍속을 즐겨야 할 마음의 여유를 찾기가 힘이 든다. 전통 명절이 조금씩 쇠퇴해 가는 느낌이다.14일은 밸런타인데이(St. Valentine’s Day)- 여자가 남자 친구에게 초콜릿을 선물한다는 날, 근래 들어 청소년들 사이에서 새로운 세시풍속으로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유래는 3세기경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병사들은 황제의 허락 없이는 결혼할 수 없었는데,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안타깝게 여긴 성인 발렌티노는 몰래 결혼식을 주례해 주었으며 그 죄로 처형을 당했고, 그 후 순교한 이날을 축일로 기념해 오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일본에서 유입됐다. 조선시대에도 ‘연인의 날’이 있었고 경칩(驚蟄)과 칠석(七夕)이 우리의 풍속이다.밸런타인데이에 주로 초콜릿을 선물하는 것도 1936년 일본의 어느 제과업체가 광고하고 나서라고 한다. 요즘이야 연인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친구나 가족에게도 뜻있는 선물을 하며 새로운 세시풍속이 되고있는 현실이니 농경사회의 뿌리 깊은 전통을 융합해 가며 청소년들의 감각에 맞는 명절로 자리하는 것도 나무랄 수 없겠다. 이날을 계기로 3월 14일은 남자가 여자에게 답례하는 ‘화이트데이’가 있고, 또 4월 14일은 위의 두 날을 기념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짜장면을 먹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블랙데이’도 있다. 이러한 날들이 마케팅 목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비난도 받지만 젊은이들 사이에는 매달 14일에 이름을 붙여 ‘포틴 데이’로 즐기고 있다고 한다.또 24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라 이것을 숨기려 했다는 ‘일본 음모론’도 있지만 겨울을 보내는 음산한 계절에 사랑을 담은 꽃다발을 건네며 달콤한 초콜릿을 선사하는 맑은 마음을 가지는 것도 좋겠다. 작년 밸런타인데이는 코로나의 사회적 거리가 해제되어 마스크를 벗은 날이었고 올해는 전국 곳곳이 20도 안팎으로 역대급으로 더운 밸런타인데이가 되어 홍매도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이제 입춘첩을 붙여둔 문간에 봄비가 내리고 햇살 받는 창가에 동백꽃 향기가 넘치면 각급 학교의 졸업식도 있고 3월의 개학 준비도 해야겠지…. 세시풍속은 해마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전통대로 반복 거행하는 의례적인 생활행태이지만 세월 따라 조금씩 변하며 새로운 것이 탄생하기도 한다.

2024-02-15

[기고] 난세의 영웅, 대한민국의 국부 이승만

김소현 경주시의원 ‘건국전쟁’영화가 지난 1일 개봉 이후, 2주도 안돼 박스오피스 2위, 누적관객 38만명을 돌파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던 대한민국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를 다룬 객관적인 사실 기반의 영화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고 살아가야 하는 미래세대와 대한민국 정치가 리셋(reset)되기를 바라는 이들은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역사적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현재 대한민국의 젊은 층들은 한국정치를 바라보며 저마다 ‘자기의심’을 하기 시작했다.지금도 이승만정권 타도라고 외치는 북한 공산정권과 진보라 일컫는 전교조, 주사파 및 운동권들이 만든 역사적 프레임, 언론 및 교육의 테두리에 갇혀있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내가 배운 것이 맞는 걸까?’‘내가 믿어 왔던 것을 의심하는 것이 맞을까?’‘내가 지금까지 배운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이는, 그 너머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합리적 사고의 시민들이 움직이고 깨어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그동안 알고 있던 것, 배우며 사고했던 것들이 모두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직면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극심한 국민 갈라치기와 이념적 배타성이 팽배한 한국사회에서는 결코 쉽지않다는 것도 비극적이다.그럼에도 왜곡된 역사와 그동안 내가 믿고 있었던 신뢰의 체계에 직면하는 ‘자기검열’의 시간은 진정한 애국심과 공명심을 가진 국민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한다. 더 이상 경제 민주화, 지식의 민주화를 외치는 변질된 반대한민국 사상으로 문화세뇌를 시키는 좌파세상이 대한민국의 주류층이 되게 놓아둘 수는 결단코 없지 않은가.이제는 대한민국의 기반이 되는 사상과 건국의 뿌리, 근․현대화 및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으로 나라를 일으켰던 시대적 소명의 지도자들을 새롭게 만나야 한다.영화‘건국전쟁’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건국 과정의 배경이 그토록 치열하고, 경이로웠던 것은 시대적 소명을 가진 절대적이고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지도자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두었던, 지난 시간에 가슴이 먹먹할 정도의 애통함과 미안함을 불러일으킨다. 짧지 않은 101분의 러닝타임이 주는 몰입의 힘은 실로 굉장하다.우리가 살고있는 이 땅, 대한민국의 많은 동료 시민들이 역사적 상징성을 가진 영화‘건국전쟁’을 반드시 관람하길 염원한다.

2024-02-15

공부에 때가 따로 있을까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인공지능 AI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앞서 이끌어가는 첨병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가 하면 인간의 소외와 고통에 더욱 그림자를 드리울 흉물이라는 부정적인 예측이 함께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그게 무엇이든 알아야 한다는 것. 제대로 배워 깨우친 다음에야 분석과 예측이 가능하고 활용이든 거부든 결정이 된다.사람은 언제까지 배워야 할까. 6세에 시작하는 교육과정을 16년 정도 거치며 어른이 된다고 이해하였다. 초-중-고-대로 이어지는 교육모델은 충분했을까. 근대적 교육개념이 정리되기 시작하던 아주 초반에 만들어졌다. 구한말 교육개혁을 시도했던 이래 일제를 거쳐 해방 후 1951년에 이 학제가 교육당국에 의해 정책적으로 결정되었다. 여러 논의가 있었으나 기본골격은 아직껏 그대로다. 그러는 사이 세상은 변하였고 우리 사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대학을 나오는 청년들은 어떤 미래를 기대하는가. 획득한 학사학위는 그들의 삶에 어떤 약속을 하고 있을까. 20대 초중반에 대학교육을 마치면 앞으로 펼쳐질 60년도 넘을 여정에 충분한 준비가 된 것일까. 무엇인가 더 배워야 할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당연히 더 배워야 한다.빌게이츠(Bill Gates)는 그의 책 ‘The Road Ahead(미래로 가는 길)’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투자는 바로 ‘교육’이라면서 ‘교육의 목표를 학위를 받는 것으로부터 평생 배우는 일(Lifelong Learning)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유네스코(UNESCO)는 통합적 평생교육을 21세기 교육의 중요한 정책 목표로 삼아 산하에 평생교육원(UIL)을 두고 성인 교육에 방점을 둔 국제적인 재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독일 시민들은 이미 평생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교육적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미국은 지역 대학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시민들이 끊임없이 교육의 기회를 가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중국은 ‘정교한 평생교육제도의 구축’을 핵심 교육정책 목표로 삼고 국민 모두를 위한 평생교육을 구현하려 시도하고 있다.우리는 어떤가. 지역에는 평생교육을 지원할 어떤 자원들이 있는가. 평생교육은 이제 정부 교육당국에만 의존할 수도 없게 되었다. 지역에서 실질적인 평생교육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대학이 나서야 한다. 대학이 해야 할 일들이 여러 가닥이지만 소재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지역의 발전을 가져올 가장 좋은 통로는 평생교육이다. ‘지역협력’ 슬로건을 슬기롭게 구현할 방법도 평생교육이 아닌가. 언제까지 지역에 존재하면서 정부의 지원만 바라보며 지낼 것인가. 소규모로 진행하는 문화교실 성격의 연성(軟性) 평생교육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본격적인 지식습득이 일어나고 실질적으로 다시 배우는 경성(硬性) ‘평생교육’이어야 한다.대학이 지역사회와 공존상생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 발전에 기여하며 함께 성장하는 모델을 만들어 낼 열쇠는 ‘평생학습’에 있다. 대학이 언제까지 20대 청년들만 가르칠 것인가.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하는데.

2024-02-14

청도 소싸움의 운명

홍석봉 대구지사장 문화재청이 ‘소싸움’을 올해 새롭게 무형문화재 지정 대상에 포함했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매사냥, 울산쇠부리소리 등 8종을 신규 조사 대상으로 발표했다. 그러자 동물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동물 학대 지적을 받는 소싸움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전통 보존이 아닌 학대라고 주장했다. 깜짝 놀란 문화재청도 조사와 심의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동물 학대 논란은 ‘투우 경기’가 국기(國技)로 되어 있는 스페인에서도 일고 있다. 스페인의 식민지배 영향으로 투우 경기가 열렸던 중남미의 멕시코와 콜롬비아 등에서도 중단 사례가 잦다고 한다. 잔인하게 소를 죽이는 경기가 비윤리적이며 동물권을 침해한다는 여론을 수용한 것이다.‘동물권’은 1975년 윤리철학자인 피터 싱어에 의해 시작됐다는 것이 통설이다. 인간이 아닌 동물도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개념이다. 불교에서도 동물의 살생을 금하고 있다.지난 설 연휴 이틀간 진행된 청도소싸움 경기장에 1만2천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가족 나들이를 겸한 관람객들이 싸움소의 거친 숨소리와 박진감 넘치는 경기에 함성을 쏟아냈다고 한다.지난해 10월 전북 정읍의 소싸움 대회가 27년 만에 폐지됐다. 소싸움을 하는 전국 11개 지자체 가운데 처음이다. 개식용금지법도 올 초 국회를 통과했다. 2027년부터는 개 식용이 전면 금지된다. 소싸움 놀이도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이다. 동물권의 확대와 사회 분위기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에 민속경기의 하나로 사랑받아온 청도 소싸움 대회도 존치가 위협받고 있다.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른다. 세태의 도도한 흐름과 추이는 거부할 수 없을 터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2-14

까치설날에

윤명희 수필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가 여느 날보다 더 반갑다. 하필이면 단대목에 프린트기가 말썽이란 말인가.“큰댁에 가셔야 할 텐데 죄송해요.”“어디 요새 설이 설입니까? 아침에 잠시 가서 절이나 하고 오면 한나절도 안 걸리는데요. 어디 보자, 빨간 잉크 분사가 잘 안 되는 모양인데.”어디까지 가셔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프린트기를 열어젖히며 말했다.본가가 저기 강 건너 산 아래 있는 집성촌이거든요. 지금이야 타성이 조금 있긴 하지만, 뭐 그래도 아직 우리집안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요즘 촌에 젊은 사람 있기나 한가? 나이 많은 어르신들뿐, 쉰 중반인 내가 가장 젊다니까요. 강 너머지만 가까이 살다보니 집안대소사 총무 일을 여태껏 맡고 있어요.우리 집안은 선산 한 귀퉁이가 도로 확장에 들어가는 바람에 집안 경비 통장에 돈이 많거든요. 1년 이자만으로도 해마다 봄에는 꽃놀이 가고 가을에는 단풍놀이 가고 했지요. 이제는 모두 나이가 많아서 어디 관광 가는 것보다 모여서 먹고 노는 걸 더 좋아합디다. 지난 연말에 큰 식당 빌려서 집안 어른들 다 모셨거든요. 분위기 띄우는 것도 내가 해야지 누가 하겠습니까. 부모 맞잡이 되는 형님 형수도 있고, 막내 형수가 나보다 댓살이나 많을라나. 술 분위기가 한껏 올라가는데, 평소에는 입도 잘 띠지 않던 막내 형수가 느닷없이 올해부터 제사는 각자 지내자고 하대요. 코로나도 끝났는데 그렇게 말하는 건 우리 집안에서는 반란이거든요. 얼른 옆에 앉아있는 대장 형수 표정부터 살폈지요. 무슨 소리냐며 탁자부터 칠 형수가 ‘그래, 그러자’는 말로 일축하는데 더 놀랐지요. 여기저기 형수들이 무슨 단합을 했는지 이젠 그래야 한다고 웅성거립디다.프린트기를 들여다보는 내게 그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말했다. “잉크선 중간에 생긴 기포 때문이네요. 이런 건 간단합니다.”그는 잉크와 연결된 호수의 기포를 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뒷이야기가 궁금해 ‘그래서?’라고 추임새를 넣었다.형님들이 화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아무 말 없이 술잔만 비우더라고요. 빈 술잔을 채워주면서 큰형님한테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지요. 그 형님이 어떤 사람인 줄 아십니까? 명절이면 아침 댓바람부터 갓 쓰고 도포자락 휘날렸거든요. 윗대 제사부터 지내고 우리 집 제사까지 오자면 오후 2시가 넘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는 법이 없었어요. 집안의 제사 참석으로 존재감을 보이는 양반이었다니까요.그런 양반이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시절 따라 가는 거지 뭐.’라고 하는데 이건 뭐지? 싶더라고요. 그날 그 장소는 의논하는 자리가 아니라 선포하는 자리였단 말입니다. 알게 모르게 그동안 집집마다 많은 얘기가 있었겠지요. 누가 말을 꺼내주기만 기다린 분위기라는 게 느껴집디다. 물론 그동안 형수님들 힘들었지요. 집사람도 명절 지내고 나면 몸살 나는데요. 다들 그랬다 아닙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여겼지요. 코로나라는 복병이 나만 고마운 게 아니었더라고요. 단 얼마동안이었지만, 내가 안하려고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코로나가 못하게 했으니 사실 나는 마음이 편했거든요.안하면 큰일 날 것처럼 이어왔지만, 코로나가 굳이 안 해도 괜찮더라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총대를 메는 걸 두려워하거든요. 내 대에서 안 한다? 나 때문에 그렇다? 그런 말 듣는 거 자체가 쉽지 않아요. 그 역할을 코로나가 해결해 준 거 아닙니까. 사회적인 핑계가 되어 줬지요. 형님 말씀처럼 시절에 맞춰 갈 수밖에 없어요. 변화의 계기가 아닐까요? 그렇다고 설을 없애자는 건 아니고 우리 식구끼리 새로운 설날 문화를 잘 만들어가야지요.“자, 이젠 프린트가 깨끗하게 잘 되지요?”컴퓨터 가게 아저씨가 명절 잘 보내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 문을 나선다. 나 또한 명절 이틀 전부터 큰댁에 가야했고, 종숙 댁에서 지내는 제사까지 참석해야 했다. 설날 아침에나 잠시 왔다가라는 큰댁 형님의 전화가 반가우면서도 섭섭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2024-02-14

스마트 세상의 이모저모: 교차로와 신호등

인류의 문명사에서 디지털 기술의 역사는 20세기 중반 이후 불과 100년이 채 안 된다. 문명사의 시작 지점을 20만 년 전 정도로 본다면 100년은 그 중 0.05%에 불과한 시간이다. 그런데도 디지털 기술이 현대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가장 중요한 발명으로 꼽힌다는 것은,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실감케 한다.디지털화의 물결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세대로서, 디지털이 없는 인류의 삶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어느새 우리 삶 속 깊숙이 자리를 잡아 마치 만능 해결사처럼 여겨지게 된 디지털 기술. 그러나 디지털 세상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한계점이 드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필자는 앞으로 몇 편의 연재를 통해서 현재 도시 생활 속의 불편한 부분을 살펴보고, 미래 세상이 얼마나 더 똑똑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그러려면 우리는 물속에서 구조된 후 봇짐을 내놓으라고 말했다는 속담 속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디지털이 가져다준 편리함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이제 당연하게 여기고, 그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기대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인류는 과거에도 그런 방법으로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일상을 살아가다 크고 작은 불편을 겪게 되면, 그 불편을 해소해 줄 새로운 도구를 원하게 되고, 새로 도입한 그 도구로 인해 내 삶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경험을 하고 나면, 이후에는 그것이 없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이것이 인류를 도구의 인간으로 불리게 만든 인간의 본성이다.디지털의 21세기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스마트 기술도 이런 인간의 마음을 토대로 창조되고 진화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마치 보도블록 사이에서 돋아나는 새싹처럼 불편함이 있는 곳에서 작은 틈새를 비집고 나와 우리 삶 속에 점점 더 큰 자리를 차지한 후 어느 순간 그것이 없이는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까.그 첫 번째 순서로 함께 살펴보고 싶은 것은 출퇴근길이다. 예를 들어, 차가 전혀 없는데도 건널목 신호에서 보행신호가 켜질 때까지 한참을 혼자 서서 기다려야 할 때. 버스를 놓칠까 열심히 달려갔지만, 정류장에 대기 줄이 엄청날 때. 버스가 도착했지만, 만원이라 탈 수 없어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할 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회사 엘리베이터 앞,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문이 열렸나 싶었는데,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서 타지 못하고 결국 지각하게 될 때 등등. 지구촌의 직장인이라면 출퇴근길에 누구나 겪을 법한 불편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이런 불편들을 줄여줄 수 있는 스마트 기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스마트 기술의 도움으로 똑똑해진 교차로와 건널목이 차량과 보행자의 위치와 속도를 감지하여 신호등과 LED 조명을 제어한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길을 건너려 서둘러 달려오는 사람이 있다면, 차가 없는지 살펴보고 교차로 신호등을 보행신호로 슬쩍 바꿔줄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분이나 초등학교 앞 등굣길에 아이들이 귀엽게 재잘거리며 길을 건너고 있다면, 건널목 보행신호를 몇 초 더 늘려주는 따뜻한 배려도 가능하겠다. 도로가 건널목을 건너려 다가오는 보행자를 감지하여 우회전하려는 운전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준다면, 안타까운 우회전 건널목 교통사고를 줄일 수도 있다. 곽지영 태재대학교 데이터과학과 인공지능학부장 사실 운전자로서도 교차로 신호 체계가 불만스럽긴 마찬가지다. 출퇴근길 아파트 단지나 회사 앞 진출입로처럼, 유독 좌회전 차량만 길게 줄을 선 교차로를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는 차가 없는데도 신호등은 우직하게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일정 간격으로만 운영되니 이런 현상이 생긴다.교차로 신호등이 스마트 기술의 도움을 받으면 대기 중인 차량의 수를 감지해서 신호등 간격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게 된다. 교차로 신호등의 운영 주기가 보통 3분 내외인데, 이 틀 안에서 수요에 반응하는 신호체계를 가변적으로 운영한다면 전체적인 교통 흐름을 개선할 수 있다.스마트하지 않은 교차로와 건널목은 마치 말이 잘 통하지 않고 우둔하며 꽉 막힌 벽창우 고집쟁이처럼 사람들 마음속에 짜증이나 분노를 유발하게 되니 시민들의 정신 건강에도 해롭다. 급한 마음에 차선을 바꾸거나 이번 신호를 놓치면 안 된다며 무리하게 지나가 보려다 대형 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치 노련한 교통지도 경찰관이 배치된 것처럼, 교통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유연하게 차량을 이동시키는 똑똑한 교차로와 건널목이 도시에는 꼭 필요하다. 이를 통해 도시는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를 보장하고, 교통 혼잡도 줄일 수 있게 된다.

2024-02-14

흉곽출구 증후군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한번씩 팔이 저려 내원 하는 환자 중에 흉곽출구 증후군인 환자들이 있다. 증상은 목디스크로 오인을 제일 많이 하고 가끔씩 오십견이나 회전근개 어깨 근육 문제로 듣고 내원 하는 경우가 있다. 주된 증상은 팔저림이고 팔에 힘이 없다 팔이 아프다 목이나 어깨도 저리고 아프다 등을 호소한다.흉곽출구 증후군은 선천성이거나 외상이 아닌 경우 대부분 잘못된 자세로 인해 발생한다. 대부분 현대인들이 취하는 잘못된 자세인 굽은등과 둥근어깨 거북목으로 목과 어깨에 부담이 가면 경추 흉추 쇄골 및 견갑골 등의 틀어짐으로 상완신경총과 같이 지나가는 쇄골하 정맥 동맥이 흉부쪽의 구조에 눌려서 발생하는 질환이다.상완신경총은 경추 신경과 연결되어 있고 팔로 내려 가면서 분지를 해서 요골 신경 정중신경 척골신경 등으로 분지되어 팔로 내려온다. 이게 흉곽쪽에서 눌리면 팔과 손이 저리는 증상이 유발된다. 가슴 쪽으로 가는 신경을 누르면 팔 뿐만 아니라 가슴에도 통증이 오는데 여성들의 경우 유방암이 의심될 정도로 심한 가슴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영상 검사상 목디스크가 아주 심한 경우가 아닌데 지속적으로 팔저림이 발생하고 치료를 오래 받았음에도 큰 호전이 없다면 흉곽출구 증후군을 의심해 볼만하다. 그러나 사실 처음 왔을 때 스퍼링 테스트와 애드손 테스트 라이트 테스트 등을 통해 높은 확률로 목디스크 문제인지 아니면 흉곽출구쪽의 문제인지 알 수 있다. 대부분은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난 후 디스크는 심하지 않다고 듣고 오면 애드손 테스트나 라이트 테스트를 해 바로 파악이 가능하다.치료는 경추와 목옆쪽의 사각근 그리고 틀어진 쇄골교정 쇄골 근처의 소흉근과 대흉근이 뭉친 것을 푸는 등 복합적으로 목 어깨 상완골을 풀어 줘야 한다. 한의원에선 습부로 어혈을 제거한 후 침과 약침으로 근육을 풀고 추나로 약간씩 틀어진 부분을 미세 교정한다. 쇄골과 견갑골 교정이 효과적이고 경우에 따라 상완신경총 중 요골 정중 척골 신경의 압박이 테스트로 확인되면 추나로 풀어준다. 증상에 맞는 추나가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경우는 그 즉시 혹은 한두 번 만으로도 증상의 개선이 나타난다. 수개월 수년에 걸쳐 고생하던 질환이 금방 좋아지는걸 보고 별거 아닌 질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실제로는 발견도 어렵고 발견한다고 특별한 치료법이 없는 경우가 많아 알아도 고생하는 병이다. 그래서 치료가 잘되면 한두 달은 꾸준히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목 디스크의 경우에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나 심한 목디스크는 훨씬 강한 팔저림과 아둔한 감각 등을 호소하고 치료의 시간도 더 오래 걸린다. 치료는 흉곽 출구 증후군과 마찬가지로 치료를 하고 좀더 목의 교정에 중점을 둬서 치료를 한다. 디스크든 흉곽 출구 증후군이든 결국엔 구조적인 문제이고 원인 파악이 되고 어떤 구조에 문제가 생겼는지 판별만 되면 치료는 시간과 돈만 들이면 되는 문제다. 이미 병이 확인 됐는데 안 낫는다고 계속 검사를 하는 것보단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다. 잘 안 낫는 질환이 있으면 가까운 한의원에 내원해 제대로 원인을 확인 후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2024-02-14

설 명절 문자폭탄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지난해까지는 정당현수막이 난립하여 무척 불편했다. 어느 날부턴가 지역 국회의원 사진이 크게 박힌 현수막이 네거리에서 내내 펄럭거리고 있어 저이는 현수막으로 정치하나 비난했더니 그 옆에 또 다른 정당의 현수막이 질세라 걸렸다. 촌스러운 빨간색, 파란색 그리고 노란색의 굵은 글씨 현수막으로 빈틈없이 빼곡하게 둘러싸인 네거리는 차라리 음산했다.우리나라에 유독 많은 현수막을 두고 ‘현수막은 도시의 붕대’라고 누군가가 힐난한 걸 기억한다. 정치광고는 상업광고에는 비할 바 없을 정도로 지저분한 문구의 끝판왕이었다. 현수막 정쟁이요, 깎아내리기 비방 경연에 방불했다. 생업을 위한 홍보가 아닌 정치광고 아닌가. 얼마든지 디지털 시대에 맞게 삼박하게 할 수 있을텐데 현수막이라니 그 구태의연함에 기가 찼다. 내용은 또 얼마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가. 한창 글눈이 트여 간판의 글자나 거리의 글자를 보이는 대로 또박또박 읽는 6살 손녀는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글자의 뜻을 부지불식간에 물어댄다. 할머니 탄핵이 뭐예요? 친일매국 뭐예요? 민생은? 각성하라는? 대답하기 부끄러워 말꼬리를 다른 데로 돌린 적이 많았다.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구청에 신고 전화한 친구가 있었다. 정당 활동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 표시하거나 설치하는 현수막은 허가가 필요없어 함부로 붙여도 되는 법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단다. 그러면 그렇지 법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저희를 위한 법을 은근슬쩍 잘도 만들었구나 공분했다. 전국민이 같은 생각이었을 테고, 지속적인 민원이 와글와글했다는 뉴스, 인천과 광주의 지자체가 따가운 민원을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법적 공방이 있었다는 뉴스, 그 후 난립해 지저분하던 현수막이 작년 봄부턴가 좀 숙지막해진 듯했다. 국회의원 그들도 낯 뜨거워 자제하기로 했나 싶었더니 개수와 게첨 장소의 제한을 두는 가이드라인이 새로 만들어졌다나 뭐라나….4월의 국회의원 선거를 두고 작년말부터 오는 전화와 문자는 더 심각하다. 시시때때로 오는 여론 조사 전화를 차단하기 위해 스팸 차단 앱을 깔았다. 전화번호 아래에 여론조사, 혹은 선거홍보임을 알려주어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있어 유용하고 고마운 앱이었다. 그러나 가히 폭탄 수준인 문자는 차단할 방법이 없다. 광고문자와 달리 무료수신거부 전화번호가 없는 문자가 더 많다. 무작위로 보내는 것이라면 불편하고 나의 정보를 알고 보내는 것이라면 두렵기도 하다. 해가 바뀌면서 새해 인사를 시작으로 오기 시작한 문자는 설 명절 대목을 맞은 듯하다. 설연휴 잘 보내시라, 잘 보내고 있느냐, 잘 보내었냐며 나날이 알뜰살뜰 챙기는 설날 전후의 문자들. 연휴 마지막 날엔 명절증후군 없는 연휴 마무리하시고 내일 또 힘차게 시작!하란다. 수십 명의 국회의원 예비후보에게서 하루 수십 건의 문자가 쉼없이 띵똥거리는 것, 여간 큰 스트레스가 아니다. 알림 소리가 싫어 꺼 두었다가는 정작 요긴한 메시지를 놓치게 되니 켜둘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문자 폭탄의 해방구는 어디 없을까. 귀찮고도 심란하다.

2024-02-14

문경 돌리네 습지

우정구 논설위원 습지는 물이 흐르다 흐름이 정체되어 오랫동안 고이는 과정에서 생성된 곳을 말한다.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같이 물살이 세고 빠른 곳에는 습지가 잘 발달하지 않는다. 넓은 강 주변이나 하구, 갯벌같이 물이 느리고 고이는 곳이어야 습지가 발달하기 좋은 곳이다.문경 돌리네 습지가 지구촌 습지 보전을 위한 국제협약기구인 람사르 사무국이 인정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국내서는 25번째며 경북에서는 처음이다. 람사르 습지 등록은 지질·지형학적으로 희귀하거나 생물서식지로서 가치가 높아야 인정이 된다. 돌리네 습지의 생태학적 중요성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문경 돌리네 습지는 일반 습지와는 다른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엉뚱하게 산 정상부에 습지가 위치해 있고, 습지 발달이 어렵다는 석회암지대에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석회암지대에 형성된 습지로서는 국제적으로도 희귀성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 석회암지대 습지로는 유일하다.돌리네 습지는 전체 면적이 약 15만평에 이른다. 습지 둘레가 3.2km에 달하고 보통의 걸음으로 둘레를 도는데 한시간 정도 걸린다.또 돌리네 습지 일대에는 수달 등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 등 모두 932종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생태계 보존상태도 우수하다.습지는 생물에게 다양한 서식환경을 제공하고 수질을 정화하는 힘도 있어 인류에겐 유익한 생태계다. 전 세계적으로 5∼8% 정도 차지하는 습지는 대기 중으로의 탄소 유입을 막고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양도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돌리네 습지는 지난해 환경부로부터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을 받은 데 이어 람사르 습지로 등록됨에 따라 경북의 새로운 관광명소로써 주목을 받게 됐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2-13

또 다시 우려되는 ‘의료시스템 붕괴’

심충택 논설위원 새해들어 대구 수성구에서 ‘삼도부(三都賦)라는 베스터셀러로 인해 낙양의 종잇값이 올랐다’는 중국 서주시대 고사성어가 현실화하는 일이 생겼다. 수성구에 있는 일부 명문고에서 2024학년도 수능시험 전국 수석이 나오고 수도권 의과대학 진학률이 높아지자, 해당 학교주변 아파트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의대 열풍’이 낳는 특이한 현상 중의 하나다.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정부가 최근 2025학년도부터 5년간 의대 정원을 매년 2천명씩 늘리겠다는 파격적인 발표를 하자, 사회 전체가 ‘의대입시 블랙홀’에 빠지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의대정원 확대는 우리사회의 가장 민감한 이슈인 ‘사교육비 뇌관’을 건드리기 때문에, 어느 정부도 선거를 의식해 피해왔었다.정원 2천명 확대는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자연계 모집인원 총 4천882명의 41%에 해당한다. 카이스트와 포스텍(포항공대) 등 5개 이공계 특수대학 모집정원 1천600명 보다도 많다. 성적이 상위권에 속하는 자연계열 학생이면 누구나 의대진학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숫자다.사교육 시장의 큰손인 수도권 대형 입시학원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이미 ‘의대 마케팅’에 들어갔다. 그들로선 의대정원확대가 ‘황금알을 낳는 신시장’이기 때문에 정부정책에 두 손 들고 환영하게 돼 있다. 성적이 상위권인 초·중·고 학생들과 N수생(재수생 이상) 상당수는 입시학원의 새로운 수요자가 될 것이다. 대구학원가도 이미 의대반을 신설하거나 정원을 늘리고 있다. 일부 입시학원에서는 대학 재학생들과 직장인들의 의대재수 관련 문의가 급증하자 야간반 개설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과학·산업계는 우수인재들이 너도나도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면 연구인력을 어디서 구할지 걱정이고, 재학생들의 대규모 자퇴가 예상되는 이공계 대학들도 비상이 걸렸다.정부가 의대정원 확대와 함께 지역인재전형 확대 방침도 밝히자 약삭빠른 수도권 학부모들이 지방으로 자녀를 전학시키려는 움직임도 벌써 나타나는 모양이다. 2028학년도부터는 지역인재전형에 지원하려면 중학교도 해당 지역에서 나와야 한다.의료계는 지금 폭풍전야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16개 시·도 의사회는 내일(15일) 전국 곳곳에서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열 예정이다. 의사협회는 “정부가 싫증난 개주인처럼 목줄을 내던지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격한 표현을 쓰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 의료기관에서 주요 업무를 담당하는 전공의들과 응급의학과 전문의들도 집단행동에 가세할 예정이다.반면, 정부는 ‘면허 취소’라는 카드를 꺼내며 강경대응할 방침이어서 의료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하게 됐다.대구·경북 시도민은 지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의료시스템 붕괴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피부로 체험했다. 앞으로 의대정원 확대를 두고 의료계 파업과 정부 강경대응이 이어진다면 응급환자들이 진료도 받지 못하고 숨지는 사태가 속출할 수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이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2024-02-13

신(新)? 신(愼)!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설 명절이 지났다. 으레 즐거워야 할 음력설을 쇠고 나면 대한민국 곳곳에선 앓는 소리로 가득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가족, 친지를 방문했다가 덕담(?) 아닌 독담(毒談)을 한 바가지 듣고 온 탓이다. 취준생에게 취업 이야기, 입시생에게 학업 이야기, 다른 형제자매와의 비교, 결혼 이야기, 난임으로 걱정인 부부에게 출산율 이야기, 여기에 더해 본인들 자랑질까지. 풀 세트로 받고 나면 그야말로 즐거워야 할 명절이 생지옥이 돼버리는 건 당연지사. 즐거운 시간만으로도 부족한 설, 왜 이렇게 아웅다웅하는 일이 많아진, 천덕꾸러기 명절이 돼버린 것일까?설은 ‘신(新·새로운)’의 의미를 지닌 순우리말로, 한해가 시작되는 새날 곧 설익은 시간을 의미한다. 익숙했던 시간을 지나 낯선 시간으로의 첫걸음을 떼는 날인 것이다. 우리는 보통 새로움 앞에서 긴장하고 설레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안에 떨며 초조해하기도 한다. 이런 불안함은 새해 전날 잠자면 눈썹이 센다고 믿으며, 밤새는 풍속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즉 잠을 자지 않으면 날짜가 바뀌지 않을 테고, 낯선 생경함과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으리란 믿음의 결과였던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익숙한 것이 좋지 새로운 것은 두렵고 불편하다. 그 불편한 날, 우리는 바로 가장 편안하고 마음의 안정을 주는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이 설날이다. 즉,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감당하는 것,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며 설 차례도 지내면서 말이다. 미지의 시간이자 불안한 새해를 축하하되, 조상과 후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서로 소통하는 의식의 시간인 설.그렇기에 전통 사회에서는 이렇게 뜻깊은 날을 단 하루로 마감하지 않았다. 보통은 정월대보름까지 큰 신년 의례 기간으로 보았고, 이 기간에는 일월(日月)에 예를 표하기도 했고, 왕에게 도움을 준 동물들(돼지, 쥐, 말, 까마귀)에 대해 고마움으로 12띠 동물날을 정해 기념하기도 했다. 이 중 까마귀는 띠동물은 아니지만 ‘오기일’이라 하여 찰밥을 차려 특별히 고마움을 표했는데, 이 오기일은 다른 말로 슬퍼한다는 뜻의 ‘달도(601B悼)’라고도 불렀다. 이는 익숙함에서 낯섦으로 전환되는 기간의 정점인 보름까지는, 새로움에 대한 불안함으로 슬프고 걱정되니, 모든 일을 금하고 삼가 조심하며 꺼리는 ‘신(愼·삼가다)’의 기간으로 간주했음을 의미한다. 해서, 우리 선조들은 설날 호들갑스럽게 떠들거나 자랑 또는 타인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남에 대한 배려가 아닐뿐더러 스스로에게도 합당하지 않는 일이자 새해맞이 태도가 전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이렇게 편안함을 나누며 조심스레 불안함을 떨쳐야 하는 중요한 날, 덕담 아닌 독담을 주고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지들로부터라면?바야흐로 설은 막 지났다. 그러나 아직 보름까지는 며칠 더 남아 있다. 현재 여러 이유로 명절 증후군을 끙끙 앓는 많은 이들, 이 新의 시간을 스스로 삼가고 자숙하는 愼의 시간으로 되새기는 노력을 해 보면 어떨까. 아마 푸른 청룡의 해가 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니.

2024-02-13

밥값 하는 나잇값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평범한 일상이다. 모처럼 가족 친지를 만나 새해 인사를 나누고 차례를 지내면서 조상 섬기는 마음을 되새기는가 하면, 떡국을 먹으면서 새해의 소망과 덕담을 나누는 모습들이 정겹기만 하다. 시대적인 상황과 모바일 환경의 변화로 온라인 성묘와 원격 세배, 원격 세뱃돈, 온라인 연하장 등 설날 풍속도가 다소 달라지긴 했어도 설날 아침 떡국을 먹는 풍속은 그대로인 것 같다. 설날에 떡국을 한 그릇 먹어야 한 살을 더 먹게 된다는 말이 생겨나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이라 부르기도 한다.새해 첫날이나 설날이면 떡국을 먹고 나이도 한 살 더 먹으며 살아온 세월이 아슴푸레하고 까마득하기만 하다. 돌이켜보면 수십 그릇의 떡국을 먹으며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왔는데 과연 자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떡국이 의미하는 밥값이나 나잇값을 제대로 해왔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매일 끼니를 때우면서 가정이나 직장에서 밥 먹은 값은 제대로 했는지, 또한 지금까지의 나잇살을 먹으면서 사회와 세월에 부끄럽지 않게 나이값을 떳떳하게 해왔는지 내심 의아스럽고 걱정스럽기도 하다.사람들은 대부분 하루 세끼 또는 두 끼의 밥을 먹으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툭하면 “밥값은 했나?” 또는 “밥값은 해야지”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그만큼 삶을 지속시키는 끼니가 중요하고 밥심으로 살아가는 나날이 소중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매일 밥을 먹으면서 가족의 끼니를 책임지고 구성원들을 위해 진정한 노력과 성의를 다했는가에 대한 자조적인 말로 쓰여 지기도 하지만, 주어진 임무나 위치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는 투로 일종의 욕처럼 쓰기도 한다. 그래서 특히 정치판이나 공직사회에서 일들은 제대로 하지 않고 자기 밥그릇이나 챙기며 무사안일에 빠져있는 상황을 빗대어 얘기할 때 많이 쓰여 지기도 한다.‘밥값은 참으로 어려운 숙제 중 하나다/쌀 한 톨이 일곱 근 나가는 무게라는데/지금 밥값 못하면 다음에 밥값할 수 있을까//밥값을 해야 한다 반드시 밥값하고 살아야지/스스로 다짐하고 되새기며 밥을 먹는다/그래, 꼭 밥값은 하고 살아야지 암 살아야지//저녁에 다시 밥을 먹으며 밥값을 생각했다/더운 김 모락모락 나는 밥 냄새 맡으며/‘사람이 밥이고 밥이 사람이다’라고 써본다 -윤석홍 시 ‘밥값 했는가’ 전문밥값도 겨우 하는 사람들이 나잇값은 제대로 하고나 있을지 짐짓 궁금해진다.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나잇값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볼 때면 개탄스럽고 한심스럽기만 하다. 처세에 능하여 기회를 잘 타는 사람들보다 열심히 정직하게 일하며 밥값을 올바르게 하고, 나잇값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존경받는 사회가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 것이다.자신 있게 밥값 하고 나잇값 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닐테지만, 소리 없이 모두 밥값 하며 나이값을 해나가는 사람들로 사회가 한층 건전하고 밝아질 것이다.

2024-02-13

대통령의 소통, 무엇이 문제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윤석열 대통령은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는 이유를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항상 언론과 소통하고 언론 앞에 자주 서겠다”고 하면서 “질문 받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하지만 ‘도어스테핑’은 6개월 만에 중단됐고, 신년기자회견도 하지 않은지 2년째다. 국민은 왜 청와대를 나왔느냐고 묻고 있다.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대통령의 소통 대상이 ‘제한적이고 선택적’이라는 사실이다. MBC기자는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배제한 반면, 조선일보에는 대통령 단독인터뷰라는 특혜를 줬다.소통의 본질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내가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는데 있다. 편안한 여당, 우호적 언론만 상대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야당이나 비판언론이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고언(苦言)은 국정운영에 좋은 약이 된다. “언론과의 소통이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했던 대통령이 불편하다고해서 기자회견을 피한다면 되겠는가.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의 소통방식이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이다. 소통은 ‘민주적 대등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상호적이어야 한다.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문제에 답해야 소통이 된다. ‘홍보’와 ‘소통’의 차이는 ‘쌍방향 여부’에 있다. 국무회의의 일방적 중계는 홍보의 일환이며, 대통령실에서 기획했다는 ‘민생토론회’는 참석자와 질문자를 사전에 선별한다는 점에서 소통이 아니라 ‘쇼(show)통’이며 일종의 홍보다.소통의 요체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통한 공감능력에 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욱 중요한 까닭이다. 소통을 위해서는 ‘대화의 수평적 관계’가 보장돼야 한다.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권위적으로 대화의 주도권을 장악하면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 언론(조선일보)이 지적한 ‘59분 대통령’이라는 표현은 불통의 상징이다. 대통령이 상명하복의 검찰조직문화에 익숙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니 참모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하버마스(J. Habermas)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에 기초한 의사소통, 즉 홀로 결정하는 ‘나’가 아니라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우리’가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고 했다.소통의 최대 장애요인은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이다. 야당과 국민을 계도(啓導)의 대상으로 보면 소통할 수 없다. 군림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참모들에게 “소통을 강화하라”고 지시만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솔선수범해야 한다.재임 8년 동안 158회의 기자회견을 한 미국의 오바마(B. H. Obama) 전 대통령은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나를 단련시켰다”고 했다. 언론과의 소통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다.반면에 윤 대통령은 올해도 생방송 신년기자회견은 하지 않고 KBS와의 대담을 녹화, 편집해 3일후에 공개했다. ‘도어스테핑’을 하던 그 대통령이 아니다. 소통을 위해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2024-02-12

투표용지 길이?

홍석봉 대구지사장 지난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선거에 나선 정당은 35개다. 역대 가장 많았다. 비례대표 투표용지 길이가 사상 최장인 48.1㎝에 달했다. 투표용지가 너무 길어 자동투표용지 분류기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결국 수작업을 해야 했다.이를 두고 당시 북한 선전매체는 ‘정당 홍수가 터졌다’며 비아냥댔다. ‘괴이한 48.1㎝’ ‘역대 최장의 선거표’라고 비꼬았다.제22대 총선 투표용지 길이는 21대 총선보다 더 길어질 전망이다. 지난 총선과 마찬가지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되며 위성정당 난립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3지대 신당 등장도 투표용지 길이에 한 몫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2일 현재 등록 정당 수는 49개다.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및 비례대표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 수는 후보자 등록 마감일인 오는 3월 22일 최종 결정된다.여야는 위성정당 출범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민의힘은 오는 15일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창당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민주당은 범진보 소수정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꾸리기로 했다. 조국, 송영길 신당 등이 줄줄이 등장할 전망이다. 정치권이 개선약속은 외면한 채 4년 전의 ‘꼼수’를 되풀이 하고 있다.거대 양당 간의 비례의석 나눠 먹기와 선거법을 피하기 위한 각종 꼼수 선거운동도 재연될 조짐이다. 국민들은 정당의 실체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투표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생겼다. 국민을 우롱하는 정도가 지나쳤다. 수작업 개표 등 예산 낭비도 불가피해졌다.이번 총선에선 투표지 길이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기네스북에 올라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국제 사회에 조롱거리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2-12

함께 가는 지구촌, 정겨운 미래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지구촌에 살아가는 사람, 동물, 식물, 미생물 등 모든 생명체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원칙에 따라한 번 살다가 간다. 어떤 생명체라도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지구촌 실상은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 한나라 같은 민족 간에도 신분에 따라 차별을 받는다. 조선시대를 보더라도 양반과 상민, 천민 등 살아가는 삶의 질이 다르기도 했고 오늘날에는 선진 민주화를 통하여 누구나 성장의 기회, 존중 받는 사회가 되었다.최근 일본에 사는 외국인은 300만에 육박하고 전체 인구의 2%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한국도 중국,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외국인이 250만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 단일민족, 백의민족 하며 독자적으로 울타리를 치고 살아가는 지구촌은 소수 민족 외는 없는 것 같다. 국가의 경계선은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이미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글로벌 기업들은 투자에서부터 기업 운영체계, 이익 분배 등 자국 기업이라고 말하기에는 기업 경영이 세계화 되어 있다.필자는 코로나 이후 수 년 만에 열린 일본 오사카대학 동창회 총회에 갔다. 20여 년 전 유학중일 때와는 시내 거리와 사람들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동남아 언어를 쉽게 들을 수 있고 얼굴 색깔도 다양하다. 2차대전 후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 일본이지만 저출산으로 노동자의 손발이 부족하여 동남아 인구가 크게 유입되는 변모된 거리의 모습이다. 호텔 근처 축제가 열리고 있는 곳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중국, 베트남, 태국, 미얀마 등 일본에 사는 외국인의 축제인데 각 나라의 문화 특징을 살려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참여자 모두의 표정은 밝고 정겨움 마저 느껴졌다. 이것은 일본사회와 지역에서 이방인을 위한 사회적 배려와 친절이 몸에 밴 문화가 주는 정겨움이 아닐까.일본인은 두 가지의 국민성이 있다. 하나는 사무라이 정신에서 이어오는 ‘룰을 지키는 매뉴얼 문화’이고, 하나는 ‘혼네다테마에(本音建前)’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치켜세운다는 뜻이다. 이것을 속과 겉이 다르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고 원류의 뜻은 아닌 것이다. 상대에게 조건없이 친절하게 대하는 국민성과 사회적 제도,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가 외국인이 일본 사회에 어렵지 않게 적응하는 키가 아닐까.또 다른 사례를 보면, 일본은 문부성 주관 동경과 오사카 중심으로 나뉘어 외국인 유학생을 초청해서 ‘선상대학’ 이름으로 하루 유람선을 타고 유학생활 중 어려운 점을 서로 나누고 합당한 내용은 제도에 반영하여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는 사회 문화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외국인이 선진국에 오는 것은 유학, 일자리, 이민 등의 이유가 많다. 쉽지 않은 타국 생활에 따뜻한 미소와 배려가 어울림이 되는 것이다. 사회적 제도와 문화는 사람들의 생각에서 나오는 산물이다.문화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오랜 역사에서 흐르는 국민성과 성숙된 사회적 제도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정겨운 사람 관계를 만드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과 말투와 태도에서 나온다.

2024-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