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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있다는 믿음으로

등록일 2024-11-11 18:48 게재일 2024-11-1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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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전개되는 한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언스플래쉬

만화 ‘원피스’는 오다 에이치로가 1997년부터 연재 중인 만화다.

세계 제일의 보물이라고 일컬어지는 원피스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주인공인 루피와 그가 이끄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모험을 그린다.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을 추동하는 보물이 무엇인가에 관한 의견 또한 분분했는데, 혹자는 동료들과의 우정, 꿈과 열정같이 추상적인 개념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원피스는 실체가 있는 무언가’라고 일축하며 독자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해적왕 로저가 찾아낸 보물, 원피스의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의 성격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데, 해적왕이 원피스의 정체를 알고 폭소하였다는 것과 보물을 남긴 자가 ‘Joy Boy’라고 불린다는 것,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 해적왕이야!”라는 대사 등을 미루어 보아 생각보다 가볍고 단순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추측이다. 나아가 작가는 최근 만화가 최종장에 진입했다고 발표하였으니, 모험의 대장정이 곧 끝날 것이라는 아쉬움과 설렘으로 연재를 지켜보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안다.

거기에는 나도 포함이다. 어린 시절부터 집 앞의 만화방에 들락거리며 “아저씨, 원피스 최신 권 나왔어요?” 하고 묻던 발랄한 꼬마가 어느덧 삼십 대가 되었다.

당시 만화 한 권을 빌리는 값이 삼백 원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일주일에 천 원씩의 용돈을 받던 나는 한 시간 분량의 유희에 내가 가진 모든 돈을 투자하는 것에 거침없었다. 만화를 읽고 있노라면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 소년 만화가 건네는 특유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따지고 보면 ‘원피스’는 내 안의 의협심과 투지를 만들어 준 원료였던 셈이다.

처음 이 만화를 접했을 때 어떤 감정이었나 생각해 보면, 주인공인 루피가 해적왕이 되는 것에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바다로 나가 동료를 모으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에 흥미를 가졌으니. 여러 섬에 정박하며 많은 문제에 봉착하고 그것을 그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에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어느 순간 나는 이불 속에 누워 만화를 읽는 행위를 멈춰야만 했다. 더 중요한 일이 생긴 것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관계를 맺어야 했고 대학에 가야 했으며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동안 루피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새로운 동료를 찾았으며 많은 적을 물리쳤고 여러 존재에게 도움을 주었다. 단 하나의 꿈.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놀라워해서는 안 된다. 루피가 첫 출항을 했을 때의 나이가 열일곱이고 작중 나이가 열아홉이니 그는 그 안에서 여전한 청춘이다.

현실은 흘러가지만 이야기는 계속해서 같은 자리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밀짚모자 해적단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든 만화방으로 향하는 꼬마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사실을 실감한 순간 나는 꽤 대단한 세상의 진실을 손에 넣은 듯 우쭐해졌다.

그러니까 ‘원피스’가 어떠한 형태를 지녔든 그것은 결국 하나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젊음, 낭만이나 꿈, 열정과 같은 개념. 그저 아름답게만 들리는 이러한 상태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한 일상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 열정은 사그라지고 모험은 끝을 맺어야 한다. 종결 또한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한 그 안에서 유지되고 있는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삶의 내부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고 한 가지 인생밖에 경험할 수 없다. 언제나 가능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보물을 찾는 자의 모험을 바라본다는 것은 또 다른 체험의 방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보물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물은 숨겨져 있을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보물의 또 다른 말은 희망이다. 그것은 우리를 끝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것을 찾는 여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결국 막을 내릴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글을 쓰는 내내 당연한 사실을 떠올렸다. 우리는 아직 ‘원피스’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 그러니 마음껏 추측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사실을 떠올리면 지루한 일상도 자못 유쾌해진다.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보물이 그곳에 있다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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