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가 직장인 밴드 공연을 한다며 초대를 해 주어 응원을 하러 다녀왔다. 친구는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함께 졸업 이후에도 인연을 이어가며 즐겁게 음악생활을 해 나가고 있었다. 많은 밴드 동호회가 그러하듯 밴드의 멤버는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여러 명의 보컬리스트들이 번갈아 노래를 부르고 또 여러 연주자들이 교대하며 다채로운 구성으로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내가 평소 일을 하며 보게 되는 프로연주자들의 무대와 비교하자면 약간의 인간미가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취미생활임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이 많은 노력을 해왔고 그들이 오랫동안 끈끈하게 합을 맞추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부분도 있어서 흥미롭게 구경을 잘 하고 왔다.
아무래도 공연을 할 때 내 포지션이 보컬리스트이다보니 무대에 오르는 여러 보컬리스트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이 갔던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크게 다가온 부분은 역시 우리나라에 노래 잘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무대에 올랐던 보컬리스트들 모두 수준급의 실력을 뽐내 주었다.
악기연주자는 악기를 구매해서 숙련의 과정을 어느 정도 거치지 않으면 밴드에 참여할 수 없지만 노래는 사실 아무나 다 부를 줄 안다. 그 사람들 중에서 밴드의 보컬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으려면 동호인 사회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역량은 갖추어야 할 테니 가창력 면에서 특별한 부족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 무대를 보면서 두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하나는 비슷비슷한 수준의 가창력을 가진 그 보컬들 중에서도 눈과 귀를 더 사로잡는 구성원이 있었는데 그 차이는 어느 지점에서 발생하는가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어떤 프로들과 비교하자면 나을 수도 있는 가창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그들을 동호인처럼 보이게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의 실체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무대를 한참 지켜보다가 공연이 끝날 무렵쯤 나는 그것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어떠한 역할을 잘 수행해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좋은 보컬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보컬리스트가 무엇인지 깊이 고민을 해 봐야 하는 것이다.
보컬리스트는 물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노래를 잘 불러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그게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대부분의 밴드에서 보컬리스트는 한복판에서 무대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 프론트맨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과 함께 내가 어떤 무대를 만들 것인지 상을 그려내는 능력도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동작과 시선, 멘트, 호흡까지 하나하나 디자인해나가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날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났던 보컬리스트가 한 명 있었는데 그 분이 다른 분들에 비해 훌륭하게 보였던 점은 이러한 프론트맨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했던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프로 보컬리스트와 아마추어 보컬리스트가 다르게 보이는 상황도 그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있고 없고의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 모두 사회에서 밴드의 멤버들처럼 저마다의 포지션을 하나씩 점유하고 각자의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앞서 이야기 한 역할에 대한 고민은 사회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전문직 종사자들도 자신의 전문영역에서의 기술적인 역량과 동시에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수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전반에 대한 이해를 갖추어야 하고 그 안에서 기술적인 것 외에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다양한 부분들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축구 경기를 뛰는 스트라이커는 골을 넣는 사람이지만 슛을 차는 것 외에도 다양한 움직임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야구장의 4번타자도 홈런을 치는 일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작전을 수행하고 공수교대 이후에는 수비를 견고히 하는 일까지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좀 더 발전시키자면 직업적인 것 외에도 개개인이 맡고 있는 다양한 역할에 적용시킬 수 있는 생각이다.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 나의 역할은 아빠다. 돈 잘 벌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아빠의 역할이겠지만,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나 아이에게 정서적인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그리고 엄마에게 좋은 남편이 되어주는 것까지 모두 고민해야 진정으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좋은 아들도, 좋은 친구도, 좋은 선후배도 모두 그런 고민 이후에 될 수 있는 것이리라.
뜨거운 조명 아래서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해준 공연을 훌륭하게 보여준 직장인 밴드 ‘씨즌’ 멤버들과 내 친구 하헌재 덕분에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