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MoW)은 유물이 진품으로서 해당 기록물의 소멸이나 약화가 전 인류 유산을 빈곤하게 만들 정도로 독특하며 대체 불가능한 기록물임을 입증해야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는 세계사적 중요성이다. 세계적 가치는 시간, 장소, 사람, 대상과 주제, 형태와 양식 측면의 가치를 입증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 조건 외에 추가적으로 희귀성, 완전성, 위협요소의 유무 및 보존 관리 계획의 기재도 명시하도록 되어 있다.
내방가사는 위의 등재 기준을 충족하고 그 기록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11월 16일,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MoWCAP)에 등재되었다. 내방가사는 종이에 기록된 필사류 원본으로, 개별 문서, 두루마리 또는 선장본(codex)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두루마리본의 경우 10m가 넘는 기록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20m가 넘는 형태의 기록물도 있다. 통일된 유형이 없는 유일본들로, 직접 붓으로 필사한 원본들이다.
내방가사는 1794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여성들이 공동으로 창작하고 낭송하여 기록한 여성들만의 문학 장르이다. 내방가사는 개인에서 집단 창작의 형태로 넘어갈 때 남길 수 있는 다양한 기록물의 형태적 전형성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낭송과 필사 등의 재창작 과정을 통해 내용상 유사한 작품들이 다수 존재하지만, 이 역시 내방가사의 가치를 드러내는 중요한 특징이다.
내방가사는 18세기에서 20세기, 남성 중심주의가 주류였던 시대, 여성들이 그들의 주요 문자인 한글을 사용하여 여성들만의 생각과 삶을 주체적으로 표현한 여성 집단 활동의 결과이다. 또한 20세기 동아시아의 압축적인 역사변혁기에 대한 여성들만의 사회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다. 더불어 내방가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 원리가 밝혀져 있는 문자인 한글로 기록된 문학 장르이다. 한글로만 창작된 내방가사는 창제된 문자가 한국어의 특징에 맞는 문자로 창작되는 문학 장르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내방가사를 통해 우리는 창제된 문자가 어떠한 활용 단계를 거쳐 한 사회의 공식 문자가 되는지 추적할 수 있다.
내방가사는 여성 개개인의 주체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단적 문학 활동’을 통해 여성들 스스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겼다. 전승의 필요에 따라 입으로 낭송하고, 또 필요에 따라 함께 베끼고 기록하며, 새롭게 내용을 만들어갔던,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집단 창작’의 결과물이다. 어떤 내방가사는 사회와 국가 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역할과 시대적 사명까지 함께 공유하는 노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내방가사는 한글 서체 미학 관점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낭송, 받아쓰고 베껴 쓰는 과정 등을 반복하면서 지속적으로 필사되었다. 이러한 필사는 여성들의 서체 훈련 과정이기도 했고, 서예사 측면에서 다양한 한글 서체로 발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는 여러 종류의 민간 서체 발굴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동시에, 현재 한글의 사용 폭을 넓히기 위한 폰트 개발이나 새로운 디자인에 활용될 수 있는 원형 콘텐츠로서 가능성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