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이면서 초겨울인 11월. 가을의 끝자락이 비로소 겨울로 치닫는 ‘미틈달’이다. 어중간하다 해야 할까, 머뭇거린다고 해야 할까, 보내기 싫은 사람처럼 아직은 잡고 싶은 가을이고, 선뜻 맞이하기엔 이르고 낯선 계절이 서로 밀고 당기는 듯하다. 산자락엔 아직도 초록의 잎새들이 진을 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지만, 산마루에서 하루가 다르게 번져오는 꽃불의 위세(?)에 잔뜩 긴장하는지도 모른다.
조락(凋落)의 초목이 무언의 곡조를 타며 장고(長考)에 들어가고, 새들은 비껴서 날아오르며 음표를 그리는 듯하니, 보이고 들리며 느껴지는 것들이 어쩌면 모두 시(詩)의 결이고 여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율곡선생은 ‘숲 속 정자에 가을이 깊으니/시인의 생각은 한이 없어라(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고 읊었던가. 시의 날(11월 1일)로 시작된 11월이 시의 향기 속에 나날이 깊이와 울림을 더해 가고 있다.
11월 들어서 시를 읽고 노래하며 시낭송을 즐기는 행사가 유난히 많아졌다. 서울에서는 제37회 ‘시의 날’을 맞아 ‘광화문에서 시를 노래하다’를 주제로 시낭송과 무용, 시집·시 카드 배부 등 푸짐한 시 나눔 행사가 다채롭게 열렸고, 부산에서는 이번 주말 전국 시낭송대회가 대대적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도 크고 작은 시낭송 콘서트가 다양하고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시를 단순히 읽고 감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시의 의미와 여운을 목소리의 음색과 영상·음향효과로 표현하는 시낭송이 시민들의 호응을 받으며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포항지역에서도 예외 없이 시낭송 콘서트와 보기 드문 시조창 발표회까지 열리게 돼서 한결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대한시조협회 포항시지회가 주최·주관하는 제6회 시조창 발표회는 회원들이 평소 갈고 닦은 시조창 솜씨를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로, 20여명의 회원들이 장구와 대금의 반주에 맞춰 평시조·우시조·각시조·남창질음·여창질음·엮음질음·시창 등 우리 고유의 정가(正歌)를 독창 또는 합창으로 부르면서 깊어 가는 가을밤을 구성지게 수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포항시낭송가협회와 맥시조문학회가 콜라보로 마련하는 ‘詩가 되어 밀려오는 삶의 바다’ 시낭송 콘서트는, 바다와 어촌 주제의 맥시조 회원의 창작시조를 시낭송과 시창, 시극으로 다양하게 각색, 연출될 것으로 보여져 시낭송의 매력을 더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이번 시낭송 콘서트에는 맥시조 회원 3~4명도 출연하여 시낭송을 함께 하고, 또한 공연장 입구에서는 맥시조 회원들이 지난 여름날 손수 그리고 쓴 시화작품도 반짝 전시될 예정이라서 한결 이색적이고 푸짐한 시 나눔 마당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활자로 된 시나 시조를 목소리의 예술로 표현하고 노래로 부르는 것은 시의 근원적 본질이자 전통인 노래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시와 시조의 운율 속에 내재된 음악성을 바탕으로 목소리의 리듬과 고저강약의 장단을 맞춰서 유창하게 낭송하고 시조창으로 부를 때, 시적인 감흥과 생명력이 살아나 낭송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항상 열려 있고 오래도록 들을 수 있는 귀를 통해 마음의 숨결 같은 시낭송으로 시의 묘미를 흠뻑 느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