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6일은 본격적인 제 75회 조선학회 발표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텐리역 앞에 새로 지은 비즈니스 호텔에서 간단히 조식을 먹은 저는, 동료 학자들과 함께 학회가 열리는 텐리(天理)대학으로 향했는데요. 텐리대학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한국어 교육을 시작한 대학으로, 한국학 연구의 뿌리가 깊은 곳입니다. 이것은 텐리대학이 일본의 신흥종교인 텐리교의 해외 포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텐리외국어학교의 후신인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텐리교는 1838년 가정주부였던 나카야마 미키(中山美伎, 1798∼1887)가 계시를 받아 일본 나라현 텐리시에서 창시한 일본의 대표적인 신흥종교입니다. 텐리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인류가 즐겁게 사는 것이며, 그래서인지 기관지의 이름도 다름 아닌 ‘陽氣(양기)’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텐리는 도시 전체가 텐리교의 교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곳곳에 텐리교 시설이 있었습니다.
이 날은 총 3개 부분(문학분야, 어학분야, 역사학·고고학·문화인류학)에서 열일곱 명의 발표가 있었고, 제가 속한 문학분야에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총 네 명의 발표가 있었는데요. 이 날 발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텐리대 구마키 츠토무 교수의 ‘김동명의 시와 검열’이었습니다. 김동명은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로 시작되는 ‘내마음’(조광, 1937.6)이라는 시로 유명하죠. 구마키 츠토무 교수는 식민지 시대 여러 자료를 치밀하게 검토한 후에, 본래 김동명이 발표하려던 시의 많은 부분이 일제의 검열로 인해 삭제되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일제가 삭제한 부분은 민족의식이나 조선의 문화를 절절하게 표현한 것들이었는데요. 구마키 교수에 의하면, 김동명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비유(특히 은유) 등의 방법을 활용하여 검열된 부분을 새롭게 표현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김동명 시의 특징으로 고평되는 부분은, 대부분 일제의 검열로 인해 탄생한 비유라는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김동명의 예술혼이 불후의 명작을 낳았다는 것인데요. 김동명이라는 시인의 숭고한 정신은 물론이고, 시대와 예술의 아이러니한 관계 등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학회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우리 일행은, 교토에 있는 우토로 마을로 향했습니다. 우토로는 2차 대전 중 ‘교토 비행장’ 건설을 위해 모집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살면서 생긴 마을입니다. 당시 ‘국책사업이라 징용에 안 가도 된다’, ‘살 곳도 있다’라는 소문을 듣 고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이곳에 모여들었다고 하는데요. 일본의 패전으로 교토 비행장 건설공사는 중단되었고, 조선인 마을이 된 우토로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본국제항공공업의 후신인 닛산차체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우토로 마을의 조선인들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였으며, 심지어 이 곳에는 수돗물조차 공급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우토로 마을의 퇴거 재판은 역사적 배경을 무시한 채, 철저히 민간인 사이의 토지 소유권 분쟁 차원에서만 진행되었는데요. 그 결과 일본 대법원은 우토로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마을을 명도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반전은 이때부터 본격화되는데요. 이후 주민들과 지원자들은 더욱 열성적으로 노력하고, 여기에 한국 정부의 지원과 한일 양국 시민들의 모금이 더해지면서 우토로 마을의 토지 일부를 매입하게 됩니다.
반세기가 훨씬 넘는 동안 불안한 삶을 견뎌야 했던 우토로 주민들에게도 안주할 땅이 드디어 생기게 된 것이죠. 2015년 8월에는 한국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우토로 마을을 촬영하면서, 한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제가 우토로를 찾았을 때는, 제가 일본에 머문 날 중에 가장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지난 시절 재일 한인들이 겪은 아픔을 상징하는 우토로 마을이지만, 제가 방문했을 때는 2018년 1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우토로 시영주택과 2022년 4월에 개관한 ‘우토로 평화기념관’이 말끔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맞아주었습니다.
‘우토르 평화기념관’은 3층 건물인데요, 1층은 ‘교류를 위한 다목적 홀’, 2층은 ‘우토로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상설 전시실’, 3층은 ‘기간별로 다양한 내용을 소개하는 기획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 평화기념관은 참으로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어, 누구라도 찬찬히 둘러보면 재일 한인의 어두웠던 역사와 그에 굴하지 않고 빛을 향해 나아갔던 뜨거운 발자취를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요.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것 같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우토로 평화기념관’을 나서며, 저는 두손 모아 한일간의 밝은 미래와 재일 한인의 행복을 기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