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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황홀, 역사의 무게

등록일 2025-08-05 19:39 게재일 2025-08-0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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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 지역의 특별전시를 알리는 포스터들.

 6월 10일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는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날의 목적지는 교토국립박물관이지만, 그 전에 기요미즈데라와 주변의 골목길인 샨넨자카와 니넨쟈카를 먼저 가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샨넨자카 돌계단에 앉아 바라보는 야사카 오층탑을 좋아합니다. 6세기 말 쇼토쿠 태자가 만든 후에, 1440년에 재건되었다는 이 목탑을 바라볼 때면, ‘정말로 내가 교토에 왔구나’라는 실감이 들고는 합니다. 이날은 우산을 받쳐 든 사람들로 인해 무척이나 붐볐지만, 오래된 집들과 탑의 검은 빛만은 더욱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샨넨자카를 내려와 1.3km 정도 떨어진 교토국립박물관으로 가기 위해, 구급맵을 켜자 근처에 귀무덤(코무덤)이라는 지명이 나타났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이 무덤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베어간 조선인의 귀와 코로 만든 무덤임을 직감할 수 있었는데요. 코무덤(귀무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인인 도요쿠니 신사 앞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이 일대30만 평은 과거 도요토미의 ‘성역’이었다고 하네요. 죽어서 신이 되고자 한 도요토미는 산정에 특별한 방식의 무덤을 만들고, 그 산기슭에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도요쿠니 신사를 만들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높이 19미터의 대불까지 있었다고 하는데요. 오늘날 일본에서 크기로 유명한 도다이지 대불이 15미터이고 가마쿠라 대불이 11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이 대불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 조선인의 귀와 코로 만든 무덤이 있다는 사실은, 일본이라는 ‘타자’가 생생하게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로 인해 더욱 무거워진 심신을 추스르며, ‘일본, 미의 도가니:이문화 교류의 궤적’이라는 전시가 열리는 교토국립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오사카·간사이 만국박람회 개최를 기념하여, ‘문화 교류’라는 키워드로 일본 미술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회였는데요. 이 전시에서는 야요이 시대(기원전 5세기-기원후 3세기)부터 메이지 시대(1868-1912)까지의 회화, 조각, 묵적, 공예품 등 200점의 문화재를 엄선하여 일본 미술의 빼어남을 전세계인에게 발신하고 있었습니다. 전시의 포인트는 수백 점의 작품 하나하나가 이문화와의 교류로 창조된 것이며, 일본 미술의 고유성이란 동서고금의 다양한 문화를 녹여낸 ‘도가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시는 ‘프롤로그:만국박람회와 일본 미술’, ‘제1부 동아시아 속 일본의 미술’, ‘제 2부 세계와 만난 일본의 미술’, ‘에필로그:문화의 벽을 넘는 것은 누구인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롤로그:만국박람회와 일본 미술’이었는데요. 일본은 만국박람회에서 미술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1900년의 파리만국박람회에서는 일본의 첫 번째 미술사 책을 프랑스어로 화려하게 만들어 전시했는데요. 이듬해인 1901년에는 이 책의 일본어판이 간행되었고, 이후 일본의 공식적인 미술사로 자리잡아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일본 미술사는 근대 서양이라는 타자를 경유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예술은 한국, 중국, 유럽 등의 ‘다른 문화’와 교류하며 형성된 것임을  수백점의 예술품들은 실물로서 증명해 보이고 있었는데요. 특히 한국과의 교류는 6세기 중반 무렵에 한반도에서 불교가 전래된 것,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의 도자기 기술이 서일본 각지에 뿌리내린 것, 에도시대(1615-1868)에 조선통신사와의 교류로 수많은 시와 회화 등이 탄생한 것 등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전시의 키워드가 ‘이문화 교류’여서인지, 관람객 중에도 외국인이 특히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어쩌면 일본 예술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란 결국 다른 문화와의 교류를 통해서만 꽃피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술(창조)의 본질이 새로움에 있다면, 그 새로움은 분명 타자와의 대면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교토 국립박물관을 나오며, 불과 몇 시간 전에 본 조선인들의 코무덤이 떠올라 마음이 계속 무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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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조선인 코무덤(귀무덤).

다음날인 6월 11일에는 나라국립박물관에 갔는데요. 이곳에서는 개관 130주년을 맞아 ‘초국보:기도의 휘황함’이라는 전시가 펼쳐졌습니다. 이때의 ‘초(超)국보’라는 의미는 ‘매우 뛰어난 보물’이라는 의미와 함께, ‘시대를 넘어(超)’ 선조들로부터 전해진 마음과 그 마음을 계승하는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람객이 어찌나 많은지 인파(人波, 사람의 물결)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였는데요. 출렁거리는 인파에 몸을 싣고 수백 점의 ‘초국보’를 관람했습니다. 고대의 수수께끼를 온전히 품고 있는 ‘칠지도’를 실물로 보고, 작년 호류지에서 저를 눈물짓게 했던 ‘백제관음’을 유리창 없이 직접 바라보며 커다란 감흥에 젖어든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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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숭실대 교수

6월 12일에는 오사카시립미술관의 ‘일본국보전:일본의 국보, 오사카에서 빛나다’를 보러 갔는데요. 평일임에도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입장까지 무려 1시간 정도를 밖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135점의 국보를 소개하는 이 전시회에서는, 특히 오사카와 관련된 국보를 따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파리만국박람회 등에 출품된 쇼조칸 소장의 작품을 따로 전시하여 만국박람회와 국보의 관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간사이에서 보낸 3박 4일은 일본인들이 수천년에 걸쳐 낳은 최고의 보물에 둘러싸여 보낸 황홀한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돌아오는 도쿄행 신칸센에서까지 코무덤(귀무덤)이 환기시킨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번민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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