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일본 오사카에서는 세계 박람회가 열리고, 이를 기념하여 간사이 지역 곳곳에서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평소에 볼 수 없는 귀한 전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6월 9일부터 6월 12일까지 간사이 지역을 답사하기로 했는데요. 6월 9일 오후에 도톤보리 근처 작은 호텔에 짐을 푼 저는 우선 오사카의 이쿠노구(生野区)부터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쿠노구는 과거 이카이노라 불리던 곳으로, 재일한인의 성지와도 같은 장소입니다.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이민진의 ‘파친코’(2017)에서 주인공 선자가 고향인 부산 영도를 떠나 일본에서 정착한 곳이 바로 오사카의 이카이노입니다. 이카이노(猪飼野, 돼지 기르는 곳)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고대부터 돼지를 기르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20세기 들어서는 재일한인들이 이 곳에서 돼지를 길렀다고 하는데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듯이, ‘파친코’에서는 이카이노에 도착한 선자가 이카이노는 동물 냄새가 “화장실 냄새보다도 더 지독하게” 나는 곳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본격적으로 이카이노에 조선인들이 몰려든 것은 오사카가 ‘동양의 맨체스터’라고 불릴 정도로 공업도시로 발전한 것과 관련됩니다. 1910년대 히라노강 굴착 공사가 시작되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수요에 맞춰 조선인 노동자들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왔던 것입니다. 특히 제주도와 오사카 사이에 정기항로가 생기면서, 이곳에는 제주도 출신들이 많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폭증한 재일한인으로 인해, 1930년대 초에는 이미 이 지역에 ‘조선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1933년에 발행된 ‘아사히그라프’에는 ‘백의와 돼지머리로 가득한, 오사카의 명소 조선시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을 정도입니다. ‘파친코’에서 남편이 투옥되며, 집안의 가장이 된 선자도 커다란 김치 항아리를 나무 수레에 싣고 이카이노의 노천시장에 가서 장사를 시작합니다. 과거 ‘조선시장’으로 불리던 상점가는 거리 정비를 거쳐, 오늘날의 ‘오사카 코리아타운’으로 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현재 ‘코리아타운’은 연간 200만 명이 방문하는 오사카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코리아 타운’으로 가기 위해 난바역에서 지하철을 탄 저는 쓰루하시역으로 향했는데요. 쓰루하시역 앞에도 재일한인의 자취는 강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쓰루하시 역의 개찰구를 나와 미로같은 골목에 들어서자, 한식 특유의 매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곳곳에서 풍겨 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상표나 음식들 사진도 가득했는데요.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쓰루하시 ‘국제시장’이었던 겁니다. 1945년 패전 후 쓰루하시역 부근에는 암시장이 생겼고, 이곳에서 조선인 노점상들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의 암시장이 모태가 되어 오늘날의 쓰루하시 ‘국제시장’이 형성된 것입니다.
‘국제시장’을 구경한 저는, 10분 정도 걸어 일본 내 최대 규모의 재일한인 마을이라는 ‘오사카 코리아타운’으로 향했는데요. ‘백제문’을 지나자 오색 문양으로 꾸며진 400미터 거리의 ‘오사카 코리아타운’ 거리가 펼쳐졌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한글 간판이 가득했고, ‘민속촌’이나 ‘광장시장’ 같은 낯익은 이름의 상호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습니다. 한류의 인기를 반영해서인지 곳곳에 ‘케이(K)-컬쳐’ 관련 가게들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는데요.
무엇보다도 ‘오사카 코리아타운’의 한복판에 있는 ‘오사카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이 유익했습니다. 2023년에 설립된 이 역사자료관은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재일한인과 코리아타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귀한 자료를 알뜰하게 모아 놓고 있었습니다. 크게 ‘인트로덕션’, ‘현재-1988년’, ‘1988년-1945년’, ‘1945년-고대’, ‘알면 더 재미있는 코리아타운’이라는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오랜 시간 꼼꼼하게 전시자료들을 살펴보니, 재일한인의 역사는 물론이고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오랜 역사가 손에 잡힐듯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재일한인의 성지와도 같은 이곳에는 민족교육을 행하던 오사카시립미유키모리소학교(1923년 설립)와 오사카조선제4초급학교(1946년 설립)도 있었는데요. 특히 오사카시립미유키모리소학교는 2012년에 유네스코의 평화와 국제적 연대라는 이념을 실천하는 학교로 인정되어 ‘유네스코 스쿨’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학교는 학생 수의 감소 등으로 2021년 3월(오사카시립미유키모리소학교)과 2023년 3월(오사카조선제4초급학교)에 각각 폐교된 상태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평일 오후여서인지,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한 ‘오사카 코리아타운’을 걸으며, 재일한인 앞에 펼쳐진 새로운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