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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한복판에서 맞이한 8.15

등록일 2025-09-30 18:13 게재일 2025-10-0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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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발행된 일본의 5대 신문.

8.15 광복절은 뜻 깊은 날입니다. 특히 광복 8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2025년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 2025년의 광복절을 저는 도쿄 한복판에서 맞이했습니다. 8월 15일만 되면 늘 동아시아를 뜨겁게 달구는 야스쿠니 신사에 가보기로 했는데요. 

 

야스쿠니 신사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자들을 합사(合祀)해 기리는 곳입니다. 매년 8월 15일이면,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전몰자들의 영령을 추모하는 의식이 진행되고, 여러 단체들의 집회나 행사가 펼쳐지는데요. 야스쿠니 신사는 A급 전범 합사 문제, 일본 총리 및 고위 정치인들의 참배 문제, 전쟁 박물관 ‘유슈칸’의 역사 인식 문제, 2만 명이 넘는 조선인 희생자들의 합사 문제 등으로 동아시아 역사 갈등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입니다. 

 

게이오선을 타고 시부야역에 간 저는 수많은 인파로 유명한 스크램블 횡단보도 옆에 자리한 신문 가판대에서 일본의 5대 일간지를 모두 샀습니다. 종전 8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일본의 여론을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요미우리신문’은 ‘80년 기억 계승의 무게’라는 제목으로, 8월 15일 일본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를 건조한 목소리로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아사히 신문’은 ‘80년 마음에 새기는 부전(不戰, 전쟁을 하지 않음)’이라는 제목으로 8월 15일의 행사를 알리면서도, 8월 15일을 “사망자를 추모하고 부전(不戰)에 대한 맹세를 새롭게 하는 날”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은 ‘미래에 전하는 종전 80년’이라는 제목 아래 자국 이기주의가 심해지는 세계정세와 기억의 계승이 어려워지고 있는 일본의 현실을 우려하면서도, 전쟁의 기억을 미래에 계속 전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는 만주국 신경에서 패전을 맞이한 일본인의 비극을 그린 기야마 케이헤이(木山捷平)의 소설 ’대륙의 오솔길(大陸の細道)‘만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산케이신문‘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는데요 논설위원장 사카키바라 사토시(榊原智)가 쓴 사설은 한국인인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했습니다. ‘일본단죄로부터 결별하고 싶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위령(慰靈)과 표창(表彰)을’이라는 중간제목이 달린 이 사설에는 “전례 없는 대전을 이어간, 전사자를 위로하고 표창하고 싶다. 그것이 후손으로서의 임무”라는 말도 있었고, 아베 신조 이후 중단된 총리나 각료의 야스쿠니 참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구단시타역 1번 출구로 나섰을 때는 10시 30분이었는데요. 수많은 사람들로 길을 걷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숙소에 돌아와 거기서 받은 유이물을 살펴보니 종교단체 홍보물, 중국내 위구르족의 참상을 알리는 유인물, 법륜공(法輪功) 선전물, 중국 공산당 비판 유인물, 일본 국기와 국가의 유래와 의미를 알리는 유인물, 현행 헌법의 무효화와 ‘대일본제국 헌법의 복원·개정’을 주장하는 유인물 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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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인파 속을 헤치며 야스쿠니 신사로 들어갔습니다. 간혹 헌법개정을 반대하는 푯말이나 가슴에 ‘No Hate, No War’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도 보였지만, 군복을 입거나 욱일승천기를 든 사람들이 훨씬 많이 보였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크게 제1 도리이, 동상, 제 2도리이, 신문, 배전, 본전, 그리고 산문 오른쪽의 유슈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검은색 제1 도리이는 높이가 약 46m로 신사의 첫인상을 위압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높이 3.3m의 동상은 일본 최초의 서양식 동상으로서, 야스쿠니 신사의 전신이었던 초혼사를 처음 발의한 인물이자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무라 마수지로를 조각한 것입니다. 1934년 대만에서 가져온 회나무로 만든 산문과 이어지는 배전을 지나자, 약 246만 명이 합사된 본전이 나타났습니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길 건너편 쇼와관으로 향했습니다. 쇼와관은 일본의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역사박물관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인들의 생활에 초점을 맞춘 전시로 유명합니다. 이 날 쇼와관에서는 ‘사회를 비추다 움직이다–포스터에 나타난 국책선전의 모습’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는데요, 이 기획전의 전시물은 2차 대전 당시의 포스터로 전쟁을 독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쇼와관을 나와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 갔습니다. 이곳에서는 ‘쇼와 100년’과 ‘종전 80주년’을 맞이하여, ‘기록을 열다 기억을 쌓다’ 특별 전시가 열렸습니다. 이번 전시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일본 근대미술을 통해 전쟁 기록과 기억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기획이었습니다. 전쟁 기록화를 포함한 미술관 소장품과 외부 기관에서 대여한 작품 등 총 280점의 회화, 포스터, 잡지, 영상 등을 전시했는데요. 미술이 시대를 기록하는 도구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그 기록이 어떻게 후대의 기억으로 재구성되는지를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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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숭실대 교수

어둠이 내린 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가는 제 머리는 80년 전 끝난 전쟁의 기억으로 가득했는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쟁이란 결코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 되는 현재 진행형이었습니다. 어쩌면 인간 세상의 디폴트(기본값)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는데요. 인류가 ‘나(우리)’만을 존귀하고 위대하며 소중하다고 여기는 한, 전장에서의 허무한 죽음마저도 미화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한, 전쟁은 결코 멈추지도 사라지지도 않으리라는 슬픈 예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하루였습니다.
/이경재(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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