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흰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절기라 늦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도 차가운 ‘손돌바람’에 낙엽을 떨구느라 정신이 없는 듯하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지난 8월에 국가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된 포항 두 곳의 조선 후기 정자(亭子) 용계정(龍溪亭)과 분옥정(噴玉亭)을 둘러보러 단풍이 곱게 물든 시골길을 달렸다. 포항에는 문화유산 보물이 12곳이 있는데 이번에 지정된 용계정과 분옥정 이외에, 보경사에 8개, 오어사와 상달암에 각각 1개씩 있다고 한다.
먼저 용계정을 찾아간다. 기계읍을 지나 북쪽으로 20여 리를 달려 여강 이씨 향단파 집성촌인 덕동문화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부터 용계정 보물 지정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마을 둘레길을 따라 걷다 덕동민속전시관 덕연관(德淵館)에 들어갔다. 이곳에는 여강 이씨 문중에서 소장 중인 고문서를 비롯한 67점의 유물이 문화재 552호로 지정돼 있다.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전시된 문방사우, 가재도구, 놋쇠 그릇, 베틀, 농기구 등 수많은 민속품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물과 공기가 새지 않도록 장독 윗부분을 오목하게 덧붙인 단지 설명과 함께 보물로 지정된 용계정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관장의 안내 설명을 듣고 나오면서 이 많은 문화재를 더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관을 크게 넓혀주는 문화재 관리지원을 건의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시관 앞마당에는 ‘제4호 기록사랑마을’ 표지석이 눈에 띄고 그 옆에 덕연구곡(德淵九曲) 비문도 마음에 담고 기북오덕 전통 고택을 보러 마을 길로 들어갔다. 몇 개 쌓아둔 기왓장과 작은 반송이 예쁜 애은당(愛恩堂)을 보고 흙돌담길을 걸으면 민속자료 문화유산인 여연당(與然堂)과 사우정(四友亭) 고택을 만나는데 둘 다 임란 의병장 정문부(鄭文孚)의 흔적도 있는 곳이다. 그 안쪽의 근대한옥을 기웃거려 보고 나와서 문이 닫힌 덕계서당을 담 넘어 보니 강의재가 생각보다 작다. 조용한 골목과 채소밭을 지나니 회나무 우물과 도송(島松) 숲을 끼고 있는 작은 연못 호산지당(護山池塘)을 만난다. 초록색 연잎들이 수면을 덮고 있다.
숲속의 누운 소나무 밑을 지나 개울가로 내려가니 단풍 가지 사이로 이층 누마루 용계정이 맑은 개울물에 모습을 비추고 있다. 농재 이언괄의 4대손인 사의당 이강(李<58C3>)이 착공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일자(一字)형 팔작지붕의 아름다운 누정(樓亭)은 보물로 지정될 충분한 가치가 있겠다. 계곡의 둔덕으로 올라가서 노란 낙엽이 소복이 깔려있는 옆문을 지나 올라가 보니 붉은 대들보와 기둥, 그리고 화려한 장식의 누마루가 예술품인 듯하고 난간에 기대어 내려다보니 연어대(鳶魚臺) 바위 절벽이 와룡암과 합류대를 지나온 맑은 냇물을 지키듯 우람하게 버티고 있다.
아름다움에 취해 한참을 멍때리다가 정자를 나오니 얼굴 없는 불상이 앉아있는 세덕사(世德舍) 터에 조선 말의 서원철폐령에 뜯겨버린 서원을 그리듯 높다란 은행나무가 황금빛 잎사귀를 뿌리고 있다. 숲과 개울, 계곡과 정자가 어우러진 덕동 300년, 그 민속 마을 입구의 전통문화체험관을 살펴보고 나오며 제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대상)을 받은 덕동 숲이 국가 문화재 명승 81호의 명예를 안고 마을 수구막이 숲으로 잘 보존되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