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가자고, ‘K-Book 페스티벌’도 참관하고,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도 간다고 했다. 외국여행 간다기보다 모처럼 사람들 만날 기회를 버리기 싫었다.
2박3일, 일정은 짧았다.‘새벽 출정’처럼 다섯 시 반에 집결했으니, 멀리 속초나 춘천에서 온 이들 가운데 공항에서 날밤을 새운 경우도 있었다. 일곱 시 반 출발 예정이었는데 여덟시 넘어 떠나는 연착 비행이었고, 나리타 공항에 내리자마자 마이크로 버스에 나누어 타고 한참을 달렸다. 예정보다 늦어 점심 밥을 먹고 또 버스를 타고 가 무사시노의 카도카와 문화박물관에 가 닿을 즈음 우리는 모두 기진맥진 상태였다. 갔다 와서 찾아보니, 이 박물관은 “아트, 문학, 박물 등의 장르를 뛰어넘어 모든 지식을 재편성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박물관”이라 했다. 8미터가 넘는 거대한 책장에 빛의 폭포가 쏟아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박물관의 위용보다 비로소 쉴 수 있음에 안도했고, 박물관 맞은편으로 지는 석양빛을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시련’은 계속되었다. 숙소까지 우리는 거의 두 시간을 더 달렸던 것 같다. 저녁식사는 식은밥이었고, 호텔 방은 모든 것이 ‘축소지향형’의 나라에 온 것처럼 비좁았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와세다대학으로 향했다. 그곳에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 있다고 했는데, 나로 말하면 벌써 여러 번째 이 도서관의 존재에 관해 듣고 잔뜩 호기심에 차 있던 나였다. 와세다대학의 은행나무 단풍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양옆의 가로수 길을 따라가 드디어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을 찾아냈다. 생각보다 아담해서 좋았던 이 독특한 라이브러리의 1층과 지하층은 온전히 하루키 문학을 위한 것이었고, 윗층은 다른 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길디긴 하루키 문학 연표였다. 1979년에 그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상을 받으며 창작을 시작했다. 그 사이에 그는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쓰고 또 썼다. 우리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그는 이 상에서 몇 걸음 멀어졌지만 장인적인 작가로서 그는 어떤 부족함도 없어 보인다.
점심밥은 네 사람씩 짝을 지어 맛을 찾아냈고, 모처럼 배를 불린 우리는‘K-book 페스티벌’이 열리는 진보초의 출판그룹 빌딩으로 향했다.
과연, 페스티벌다웠다. 한국 작가 책을 낸 출판사들이 모여든 책 잔치는 좁지 않은 공간이 꽉 찰 정도로 찾아온 일본 독자들로 인해 잔칫집 분위기를 연출했다. 모르는 사이에 한국문학 작품들에 대해서도 일본 출판계는 결코 게으르지 않은 듯했다.
우리는 또 아동과 소년 책들을 내는 대표 출판사 쇼가쿠칸(小學館) 빌딩으로 가 일본 문학인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이분들의 안내를 받으며 헌책방들이 운집해 있는 간다 고서점가를 걸었다. 나는 기회를 엿보아 이경재 선생이 알려준 고양이책방(‘네코당’)으로 빠져나가기도 했다. 이날 하루가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없었다. 본 것도, 재미있는 것도 많았다. 그러나 정작 다음날 귀국 여행길에 오르자, 새삼스럽게 귀하게 느껴진 것은, 함께 떠났다 돌아오는 열여섯, 일곱 한국의 작가, 시인들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잘 모르다가 세상에 나가고서야 그네들이 그렇게 귀하게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