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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입추, 가을이 온다는데…

윤영대수필가 입추(立秋), ‘가을이 들어선다’는 절기이다. 그런데 연일 35도를 넘는 폭염과 열대야로 가을을 마중하기 어렵고 기후변화와 온난화에 대한 미래에의 두려움만 커지는 듯하다.그동안 열기를 띤 도쿄올림픽 경기를 늦은 밤까지 보며 더위를 잊곤 했지만 이제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 어게인’을 외치며 열심히 싸운 선수들의 땀방울을 생각하며 10위권을 벗어난 결과는 잊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축하하자.입추의 첫 닷새 초후(初候)는 서늘한 바람이 불고 중후에는 흰 이슬이 진하게 내리고 말후에는 쓰르라미가 운다고 하지만 어림도 없는 듯한 요즈음이다. 중국 남동해에서 발생한 제9호 태풍 루핏이 먼 남쪽 바다를 지나게 되는 말복쯤에는 이 무더위도 엎드리려나…. 가을의 첫 결실인 노란 옥수수 한 소쿠리 사서 삶아 먹으며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한가함으로 바캉스 못 가는 마음이라도 달래야겠다.코로나19의 4차 유행 열기로 전국 일일확진자는 1천800명을 돌파하여 기록을 경신하였고 이에 질세라 포항도 24명을 넘어 최대 기록을 세우고 거리두기 3단계의 2주 연장에 들어갔다. 이러한 사태에서 백신 접종도 온라인 예약으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지만 8월 중순부터 접종하게 되는 18세 이상 49세까지의 국민에게도 가능한 빠른 기간 내에 백신 접종을 마쳐 좀 편한 마음으로 이 더위를 이기고 맑은 가을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역병 창궐에 따른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머리에 두고 가족의 무병과 국가 사회의 안전을 위해 자중자애하는 정신으로 여름 휴가철을 현명하게 보내야 할 것이다.집에서 종일 에어컨 틀고 TV 보며 에너지를 낭비할 게 아니라 가까운 문화복지 시설에서 책이나 읽으려고 찾았더니 여의치 않아 내친김에 시골집으로 갔다. 무성하게 자란 뽕나무 가지에 덥힌 접시안테나가 TV 화면을 어지럽히기에 잠시 작은 가지를 치고 나니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고 팔뚝엔 풀모기에 물린 빨간 자국들이 가득하다.해거름 무렵 마음을 털려고 형산강 둔치로 가서 포항운하관을 둘러보고 송도 끝 모래사장에 갔더니 바다를 나는 패러글라이딩 모습이 활기차다. 큰 전구 모양의 바다전망대인 투명한 워터폴리 안으로 올라가면 송도 바다 전망과 찬란한 포스코의 야경이 가슴에 찬다. 모래사장 복원을 하는 송도해변을 지나 포항운하를 따라오다가 동빈다리를 건너니 ‘그린웨이 프로젝트’인 학산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이 한창이다. 빨리 친환경 녹색도시가 만들어져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일그러진 시민의 숨결을 고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영일대 해수욕장으로 가서 발열 검사 후 모래밭으로 내려서면 ‘생명의 노래, 물결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샌드아트 패스티벌이 꾸며져 있다. 가까이 살펴보니 표면에 모래를 입힌 섬세한 조각품들이 사랑스럽다. 입추의 저녁 바람에 밀려오는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모래의 간질임에 되돌아보니 샌드아트 ‘바다의 여신’이 웃으며 속삭인다. ‘곧 가을이 올 거예요.’라고.

2021-08-08

변화·혁신·도전, 군민들과 함께한 민선7기 취임 3주년

김학동예천군수 ‘경북의 중심, 도약하는 예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뚜벅뚜벅 황소와 같이 흔들림 없이 현장을 누빈지 벌써 3년이 지났다.‘경북의 중심, 도약하는 예천’이라는 슬로건에는 예천군으로 경북도청이 이전해오고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예천군이 반드시 ‘경북의 중심도시’로 성장해야 한다는 목표 설정과 함께,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예천군 행정이 전심전력하겠다는 다짐과 결의가 담겨져 있다.공직자들 모두가 경영마인드로 무장하고 변화와 혁신으로 도전적인 행정을 추구해온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면 정말 다사다난했다.지난해는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19로 매우 힘들고 어려운 한해를 보냈다. 군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고, 예천군은 군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튼튼한 방역위에 경북의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모든 역량을 결집시킨 결과 예천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의미있는 성과들을 만들어냈다.아시아육상연맹이 주최하는 2022년 아시아U20육상선수권대회를 군 단위 최초로 유치했으며, 대한육상연맹의 육상교육훈련센터 유치로 교육 및 훈련 인원이 매년 2~3만 명으로 예상되며 기존 전지훈련 및 각종 대회 인원을 모두 합하면 약 16만5천여 명이 예천을 방문할 것으로 보여 수백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유발돼 지역경기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공영주차장 조성, 전선지중화, 간판정비, 도시 재생사업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살기 좋은 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신도시복합커뮤니티센터 착공, 주민자치센터 개소, 도시공원 조성, 등산로 정비사업을 추진해 좋은 호응을 얻었다. 또한, 국도비 공모사업에 적극 대응한 결과 총 2천억 이상의 예산을 확보하는 유례없는 성과를 달성, 성취감이 매우 컸고 제2농공단지의 성공적인 기업 유치와 ‘부자 농촌’을 만들기 위해 농업시설 현대화, 예천한우 브랜드화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왔다.지난해 중앙 및 경북도로부터 40개 분야에서 우수 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괄목할만 성과를 거뒀다. 지역의 인재들이 다양한 호기심과 경험으로 미래 꿈나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미래교육지구 지정과 함께 교육소외지구 교육여건 개선 사업 등으로 명품교육 1번지 예천을 만드는데 초석도 다졌다.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역 교육 사업에도 적극 지원했다.이러한 결과로 2021년도 대학입시에서 관내 3개교 졸업생 290명 중 95.9%인 278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성과를 거두었다.이제 남은 1년의 임기 군정은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소중한 시간이다.예천읍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도시재생뉴딜사업, 전선지중화사업, 도시미관개선사업 등에 속도를 더하고, 한천과 남산·개심사지 오층석탑 공원과 폐철도부지를 집중 개발하고, 그 중심에 박서보 화백 미술관을 건립해 예천관광의 거점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명품 도청신도시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2022년 6월까지 복합커뮤니티센터를 완공하고, 신도시 2단계 개발 계획에 중학교 신설과 병의원 유치, 생활체육시설 확보 등 신도시민들의 요구 사항이 반드시 수용되도록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하고 있다.군민들의 소득 증진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인구유입을 위해 군유지에 대형 프로젝트 사업을 유치하고 제2농공단지 분양을 조속히 완료하고 제3농공단지 조성사업을 앞당겨 지역경기활성화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농축산업 현대화와 유통 구조 개선을 통한 지역농산물 경쟁력 확보 및 판로 개척으로 농가 소득 증대에도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예천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화합을 위한 친절·미소운동, 뚜벅이 걷기운동, 클린예천 만들기 등의 ‘예천사랑운동’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변화를 당한다는 생각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군민들과의 약속인 공약사항을 군정 최우선 과제로 삼아 지난 3년 동안 차곡차곡 실행했다. 이제는 예천군의 잃어버린 50년을 되찾아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도록 남은 1년 임기는 ‘마부작침(磨斧作針)’ 자세로 매진할 것을 약속한다.

2021-08-08

친구가 보내온 사진 한 장, 이태리타올에 ‘다 때가 있다!’라는 글귀가 적혔다. 몸에 끼인 때와 삶에 걸쳐진 시간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말이라 슬쩍 웃음이 난다. 때는 때 맞춰 씻어내야 하니 더 적절한 표어 같다.시시때때로 꽃이 핀다. 대한민국은 꽃공화국이라고 할 만큼 일 년 내내 다른 도시에 뒤질세라 꽃축제가 이어지고, 카페도 커피 맛보다 정원에 핀 꽃이 더 손님을 불러들인다. 수국 맛집, 야생화 맛집, 해바라기 맛집에서 찍은 사진들이 sns를 통해 내게 당도한다. 꽃공화국 시민답게 보는 즉시 길을 나선다.꽃의 절정을 보러 갔다. 백일동안 붉은 꽃이라 백일홍이라 이름 붙여진 배롱나무 군락지 명옥헌에 가려고 새벽길을 나섰다. 포항에서 담양까지 이동 거리가 만만치 않다.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나선 길이니 가보자하고 대구를 지나 전라도 경계선에 들어서니 다행히 서서히 비의 양이 줄었다. 담양은 가로수조차 배롱나무라 길 양옆으로 마중 나와 붉게 손을 흔들며 우리를 맞았다. 명옥헌 주차장에 내리자 보슬비가 오락가락했다.비를 흠뻑 머금은 정원이 더 붉었다. 꽃잎에 물방울이 맺혀서 색을 더 진하게 만들었다. 정원 연못에 떨어진 꽃잎이 한가득 떠다녀 꽃무늬 카펫을 덮은 듯했다. 나무에 열린 꽃이 반, 세찬 비에 떨어진 꽃이 반이었다. 떨어진 꽃이 비 덕분에 오래 촉촉하니 제모습 그대로였다. 비가 와서 꽃의 절정을 보는 게 어려울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8월 중순의 강렬한 햇살을 비가 가려주어 꽃을 더 오래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좋은 풍경을 보러 매년 가자고 손가락 걸며 약속했다.벌써 4년 전 일이 되어버렸다. 3년 전에는 나서다가 어긋나 대구 화목정 백일홍을, 다음 해는 안동 병산서원 백일홍으로 대신했다. 지난해 이맘때의 백일홍이 절정이었으니 하고 찾아가면 한철이 이미 지난 끝물이다. 며칠 더 먼저 와보리라 하고 다음 해 오늘 찾아가면 봉오리가 미쳐 열리지 않기 일쑤다. 절정인 날에 걸음 하기가 내 마음처럼 쉽지 않다.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곳은 때를 맞추기 쉽다. 8월에 들어서면서 오며 가며 살펴볼 수 있어서다. 명옥헌의 경험으로 비가 오는 날이면 얼른 길을 나서리라 마음먹고 기다렸다.올해 점찍어 둔 곳은 종오정이다. 조선 영조 때 학자인 최치덕의 유적지이다. 영조 21년에 돌아가신 부모를 모시려고 일성재를 짓고 머무를 때, 학문을 배우려고 따라온 제자들이 글을 배우고 학문을 닦을 수 있도록 귀산서사(龜山書社)와 함께 건립한 것이다. 8월이면 연못에 연꽃이 한껏 꽃대를 올리고 둘레에 백일홍이 가지를 늘어뜨려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소나기 예보가 있던 주말 오후, 비가 아직이지만 집을 나섰다. 천북쪽 하늘이 뿌옇게 보였다. 넓은 들에서는 소나기가 몰려오는 것이 보인다. 어릴 적엔 들 끝에서 달려오는 소나기보다 걸음이 느려 힘껏 달려가도 집에 다다르기 전에 몸이 흠뻑 젖곤 했다. 이젠 천리마 같은 차를 가졌으니 소나기를 따라잡기도 하고 비를 피할 수도 있다.천북 무궁화 가로수가 끝나는 지점에 길섶으로 들어서면 금방 종오정이 나타난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붉은 백일홍이 가득한 고택이 눈에 들어오고, 꽃소식을 들은 사람들로 작은 동네가 수런거렸다. 집 주변으로 보랏빛, 분홍빛의 어린 배롱나무도 색을 보태고 있었다. 연꽃은 아직 절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연못 옆에 까치발을 한 백일홍은 홍조 가득한 새색시처럼 바알갛게 가지를 물들였다. 그 아름다움에 화룡점정을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소나기가 찍어두었다. 화라락 떨어진 꽃잎으로 꽃그늘이 가득 만들어졌다. 흠…. 깊은 호흡으로 잠시 꽃멍을 때렸다.돌아오는 길에 서산을 보니 언제 비가 왔나 싶게 노을이 진다. 시(時)를 맞춰 갔더니 때마침 뭉싯한 구름이 꽃처럼 붉어지는 하늘에 시(詩)를 적는다. 장관이다. 다 때가 있다. /김순희(수필가)

2021-08-08

여야 대선 예비후보의 ‘원팀’ 실종

김영태 대구취재본부 부장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다.최근 대선 예비후보들의 행보는 폭염과 열대야에다 동남아 스콜이 복합된 날씨만큼이나 정제되지 않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특히 여야 대선 예비후보들 모두 이른바 ‘원팀’을 내세우면서도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모양새를 달리하면서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도출되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은 당내 경선을 앞두고 명목상 ‘원팀’을 강조하면서 이재명·이낙연 두 예비후보를 필두로 후보 검증이라는 말로 이전투구를 넘어 과열 비방전 상태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에서 ‘도덕성 검증’이라는 이름하에 이낙연 전 대표 측은 이재명 경기지사를 공격하는 배우 김부선씨를 선거판에 출연시켰고 이 지사 측은 이 전 대표와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의 친분설을 제기하며 당내 강성 지지층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등 네거티브 비방전으로 가열됐다.여당 내 대선 예비후보 중 양강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의 삐거덕거림은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잡다한 집안싸움으로 비치기 충분하다.후보들 간 선을 넘은 상황에서 원팀이라는 구호가 아득하게만 보이는 것은 불문가지다. 과거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들이 서로 적자임을 강조하며 밥그릇 싸움을 하던 양상과 거의 비슷하게도 보인다.국민의힘 대선주자들도 이같은 행보에 동참했다. 4일 국민의힘은 대선주자들의 제1호 행사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생수와 마스크, 삼계탕 등을 전달하는 봉사활동을 실시했다.이 자리에 김태호·안상수·원희룡·윤희숙·장기표·장성민·하태경·황교안 등 8명의 대선주자만 참여하고 나머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박진 의원은 개인사정 등을 이유로 불참했다. 다만, 최 전 원장은 부인인 이소연씨가 대신 참석했다.당 대선 경선 과정의 일환으로 마련한 이번 행사에는 이준석 대표와 서병수 대선 경선준비위원장도 함께 했지만, 5명의 대선주자 불참으로 당내 첫 대외행사는 결국 반쪽짜리로 전락하고 마는 결과를 도출하게 됐다.이에 하태경 의원 등은 SNS를 통해 불참한 대선주자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등 ‘원팀’이미지가 사라졌음을 알렸다. 여야 할 것 없이 이같이 당내 대선 주자들 간 엇박자 행보는 결국 당내 경선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자신만의 정치일정을 버릴 수 없다는 점이 노출된 셈이다.여당은 서로 친문의 적자라는 점을 내세우기 위한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된 상태고 국민의힘은 당보다는 개인의 일정이 우선되는 아이러니를 표출해 ‘뭐가 중한디’라는 말이 나오기 충분하다. 이런 정치권의 모습은 결국 대선이나 지방선거 등은 국민과는 상관없는 ‘자신들만의 리그’라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 여야 모두 요즘 날씨처럼 뜨거운 열기만 있고 오락가락하는 행보가 아니라 자신들이 주장하는 구호처럼 당내에서부터 먼저 정립돼야 유권자들로부터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그동안의 선거가 증명했다.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투표로서 말해줄 일만 남았다.

2021-08-05

아, 대한민국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올림픽 개막식에 각국의 선수들이 입장하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총 206개 참가국 가운데 참가선수의 규모만도 12번째이고, 역대 메달획득 성적도 1984년 이후로는 대부분 10위권 내에 들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올림픽을 치른 1988년에는 메달성적이 세계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스포츠 경기가 국위를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지만 참가선수의 규모와 성적의 우위는 국력의 뒷받침이 없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200여 국가 중에 상위 5% 내에 든다는 건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일이다. 그런데 그런 국격에 오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MBC방송이 이번 올림픽 개막식을 중개하면서 몰상식한 짓을 저질러 세계인의 지탄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에 분노를 더하고 있다. 그것은 몰상식한 정도를 넘어 비열하고 사악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우크라이나를 소개할 때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아이티를 소개할 때는 시위대 사진과 대통령 암살사건을 내보낸 것처럼 그 나라들이 대한민국을 소개할 때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과 광주사태의 영상을 내보내면 뭐라고 할 것인가. 좌파노조가 장악한 방송이 온갖 편파방송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더니 급기야는 온 세계에 내놓고 나라망신을 시키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일제의 식민통치와 6·25전쟁의 참화로 세계 최빈국이었던 시절을 겪어온 세대로서는 세계 10위권에 든 대한민국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른다.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열악한 부존자원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맨주먹과 피땀으로 일군 나라였다. 다른 나라의 구호물자로 허기를 때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경제뿐만 아니라 스포츠까지 세계 상위권에 드는 강국으로 보무당당하게 입장하는 걸 보고 어찌 가슴 벅차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감회가 없을 것인가.한편으로는 올림픽조차 참가를 못 하는 세계 최하위권 빈민국인 북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겨레가 이렇게도 극명하게 엇갈리는 분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한스러움이 북받친다. 그것은 곧 한사코 통일을 가로막는 만고역적 김일성 일족의 세습체제에 대한 원한과 분노이기도 하다. 통일이 시급하고 절실한 이유는 우선 기아와 폭정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들을 구해내야 하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뭉치면 세계 굴지의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일단은 김일성 일족의 세습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 통일의 첫걸음이라는 걸 모르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 체제를 비호하고 동조하는 정권이나 세력들은 민족의 반역으로 엄단하고 척결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흥망의 기로에 서 있다. 심각한 것은 국민의 상당수가 위기의식이 없다는 것이다.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 현실로나 사회주의·전체주의로 가면 패망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투철한 반공정신을 기반으로 한 때문이라는 걸 패망 직전의 북한이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지금의 좌파 정권은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은커녕 정체성마저 부정하고 폄훼하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국민들이 정신을 차려야 나라가 산다.

2021-08-05

성공의 비결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야권 통합을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야권통합은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에게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다.지난 2017년 대통령선거를 봐도 그렇다. 당시 보수층은 두 후보를 지지했다. 한 명은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을 기반으로 한 홍준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후보였고, 또 한 사람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였다. 보수의 분열은 패배를 불렀다. 보수층이 지지한 홍 후보와 안 후보의 득표수를 합해보니 문재인 당선자의 득표수를 뛰어넘는다는 사실이 가장 뼈아픈 회한으로 남았다.그런데 이번에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있다.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합당무산론이 떠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힘 표현을 빌리면 아예 ‘요란한 승객’으로 몰리고 있다. 국민에게 야권대통합을 약속했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양당 통합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이 준 지상과제로, 이것을 거스르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며 합당을 압박했다.이 대표는 특유의 화법으로 “예스(Yes)냐, 노(No)냐”라고 을러댔다. 이에 맞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지금 여권 대선주자들의 지지율 합이 야권보다 높아 야권이 위기 상황이고, 이대로 가면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고 ‘야권 위기론’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 ‘플러스 통합론’을 설파했다. 중도 성향의 국민의당이 국민의힘에 흡수돼 소멸하는 방식의 합당으로는 외연 확장 효과를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다. 달리 말해 당별로 경선후보를 확정한 후 단일화하자는 제안인 셈이다. 이 모두가 합당을 둘러싼 힘겨루기의 일환일 수 있다.그러나 이 대표와 안 대표간 감정싸움은 우려스럽다. 안 대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영국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낼 때 ‘예스까? 노까?(항복할래? 안 할래?)’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 대표의 태도가 고압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 역시 “친일몰이를 넘어서는 전범몰이는 신박하다”고 비꼬았다. 이대로라면 안 대표가 독자출마하겠다 해도 이상치않다. 하지만 극적 타결 가능성은 남아있다. 안 대표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했던 것처럼 정권교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겠다”고 지난 서울시장 선거 사례를 들었으니 두고볼 일이다.물은 100℃에 이르지 않으면 결코 끓지않는다. 99℃에서는 절대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시험도 1점 차이로 합격·불합격이 갈린다. 올림픽에서도 불과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바뀐다. 더 이상 길이 없다 싶을 때 한걸음 더 내딛어야 변화가 온다. 피겨요정 김연아는 훈련을 하다보면 근육이 터져버릴 것 같고, 숨이 목끝까지 차올라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올 때 그 순간을 참아낸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했다.국민들은 내년 대선에서 여야간 멋진 승부를 기대하며 야권통합 논란을 지켜보고 있다. 야권이 대통합을 위한 마지막 1도를 어떻게 올릴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2021-08-05

“졌잘싸”

코로나로 관중 없이 진행되는 도쿄 올림픽에서는 유난히 페어플레이 선수나 팀이 주목을 받는 일이 많다.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아예 언론에 노출되지 못하던 과거의 모습이 줄고 스포츠 정신을 살린 선수나 팀이 언론에 자주 부상한다.우리나라도 금메달리스트만이 스포트라이트 되지 않았다. 열심히 시합을 준비한 선수의 피와 땀과 눈물이 관중을 감동시켰다. 여자배구의 김연경 선수를 세계가 극찬한 것도 메달 획득을 염두에 둔 칭찬은 아니다.이번 올림픽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남자 럭비팀이 그러했다. 참가 12팀 중 꼴찌를 했으나 열악한 여건에서 처음 본선에 진출한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꼴찌’란 칭찬이 뒤따랐다. 유도 중량급의 조구함 선수가 비록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승자의 손을 번쩍 들어주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관중의 박수는 쏟아졌다.“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을 “졌잘싸”라 부른다. 과거 한국 축구팀이 세계 강호를 만나 좋은 경기를 펼쳤을 때 졌지만 잘 싸웠다고 했던 것이 유래가 돼 이렇게 불리게 됐다고 한다. 예상을 뛰어넘어 잘 싸운 선수를 격려할 때 “졌잘싸”란 말을 자주 쓴다.전쟁에 비유한다면 계백장군이 국가 명운을 걸고 결사항전했던 황산벌 전투 같은 것을 “졌잘싸”라 부를 수 있다. 비록 백제는 망했으나 황산벌 전투의 계백장군 기상은 오랫동안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도 금메달보다 잘 싸운 선수를 격려하고 스포츠 정신에 충실한 이를 칭찬하는 문화가 정착해 기분 좋은 모습이다. 스포츠 정신이란 승리에 연연하지 않고 정정당당히 승부하는 것에 있다. 승자는 겸손하고 패자는 예의바른 태도를 보일 때 품격이 있는 것이다. 네거티브에 빠진 우리 정치권도 “졌잘싸” 문화를 본받으면 어떨까./우정구(논설위원)

2021-08-05

떠난 자리

배문경 수필가 사람들로 웅성거리던 자리에 먼지가 내려앉았다. 번화했던 거리의 가게들이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았다. 가까운 은행도 이 환난을 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예전처럼 붐비지 않는다. 은행을 찾기보다는 집에서 손가락으로 인터넷 뱅킹을 이용했고 그 편리함으로 인해 은행을 찾는 횟수는 차츰 줄어들었다. 그래서일까. 영업이 어렵다던 은행은 결국 쇠문을 굳게 닫았다. 한여름 절규하듯이 우는 매미소리가 오히려 적막하게 들린다.몇 년 전, 병원 일층에 있던 은행이 길 건너편으로 이전을 했다. 큰 도로 하나를 건너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감수할 정도의 불편함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큰 글씨로 ‘임대, 매매’라고 써놓았다. 이 비싼 빌딩에 이만한 평수를 임대해서 운영하는 일이 만만찮았을 것이다. 빈 은행에는 버려진 집기류와 은행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홍보물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의 흔적이 사라지니 사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둠 속으로 고요히 사라진다.사라진 것은 은행만이 아니다. 근무지의 응급실이 문을 닫았다. 밤늦도록 흥청망청하던 술꾼들이 사라지고 잡다한 사고가 줄어들자 찾는 이도 많지 않았다. 그로인해 응급실의 밤은 전등만 환했다. 십여 년 같이 근무한 동료가 일자리를 잃었다. 권고사직으로 얼마 동안 실업수당은 받겠지만 갑자기 직장을 잃은 그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다. 24시간 환하던 공간이 저녁 6시면 자물쇠로 채워지니 가슴이 답답하다. 다들 어디로 내몰리는 것일까.십년이 넘도록 사용하던 사무실 문을 마지막으로 닫고 돌아섰을 때, 창가에 두었던 화분 속 꽃들도 말라비틀어졌다. 울컥했던 그 시간이 지나가서 차라리 다행이다. 과장실을 혼자 사용하다 직원이 여러 명인 검진실로 옮기며 그동안 사용했던 집기류와 살림살이를 꺼내놓자 구석구석 박혀있던 짐들이 두 세배로 늘어났다. 버리려고 내놓은 손때 묻은 물건들을 보며 지난날을 떠올렸다.삶이란 내려놓을 때 성숙해지는 것일까. 내가 존재하는 이 공간과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님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직원이 다 빠져나간 후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 은행에서 수명이 다한 물건 서너 개를 가져왔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앉았던 고객용 패브릭소파와 버리기 아까운 소품 몇 개를 챙겨왔다. 자물쇠로 채워진 서랍장의 열쇠가 한 꾸러미다. 열쇠에 매달린 종을 빼자 뎅그렁 소리가 울린다. 마술처럼 여기저기 닫혀있던 문이 열릴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것 같은 쑥부쟁이가 그려진 기왓장도 챙겼다. 쑥부쟁이 가득한 들판으로 나비 서너 마리가 날갯짓을 하자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듯하다. 버려진 기억이 누군가의 추억에 편입되었다.누군가가 떠나야만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선다. 물건도 낡아 버려야만 새 물건이 그 자리를 메운다. 하지만 사람이 일하던 자리를 때론 로봇이 차지한다. 좀 더 편리하고 쉽게 일하고자 만든 기계가 사람의 자리를 메우고 일자리를 빼앗는다. 나의 자리 너의 자리가 안전하지 못하다.많은 것을 잃고 헤매는 지금의 이 상황들이 가상의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일로 끝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존을 위한 일자리가 있어야만 그나마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이 소박한 바람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사치가 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지금도 은행 문을 열고 들어서면 환한 미소와 친절한 목소리로 직원이 내게 말을 걸 것만 같다. 혹여 그들이 떠난 자리가 깨끗이 정리된 후 AI가 나를 맞는 것은 아닐까?“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나태주 시인의 ‘떠난 자리’가 생각난다. “나 떠난 자리 너 혼자 남아 오래 울고 있을 것만 같아 나 쉽게 떠나지 못한다. 여기 너 떠난 자리 나 혼자 남아 오래 울고 있을 것 생각하여 너도 울먹이고 있는 거냐? 거기.”

2021-08-04

기웃기웃, 누구를 기다리시는가

산들 어디에나 초록이 짙다. 여름이 깊디깊었다는 말이다. 꽃자리 다투며 피는 봄꽃이 한바탕 지나가면 여름꽃이 하나둘 피기 시작한다. 나무 위에서 매미 울음소리 울창한 여름날, 담장 위로 바깥을 내다보는 꽃이 있다. 능소화다.능소화는 담쟁이 넝쿨처럼 덩굴식물이다. 빨판이 나와 어디든,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달라붙는다. 주로 시골의 돌담에 피어 고즈넉함을, 도시의 시멘트 담에 올라 따스함을, 붉은 벽돌담까지 친근하고 익숙하게 기어오른다. 그리고는 담장에 올라 치렁치렁 꽃줄기를 간드러지게 늘어트린다.꽃의 색깔이 붉지도 노랗지도 않아 ‘붉노랑’이라고나 할까. 원뿔 모양의 꽃차례에 붙어 많이 필 때는 담장을 모두 뒤엎을 정도다. 한 번 피기 시작하면 초가을까지 피고 지기를 이어간다. 그러다가 꽃은 햇볕 무더기, 한 무더기 안고 통째로 댕강 떨어진다. 능소화의 꽃은 땅에 떨어져도 볼만하다. 꽃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고 오랫동안 화려하게 그대로 있다.능소화 꽃말은 기다림이다. 간절한 기다림을 모티브로 문학에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원이 엄마의 편지’는 1582년 31세의 나이로 죽은 이웅태의 아내 원이 엄마가 남편에게 쓴 편지가 일부 공개되어 많은 사람이 눈물을 쏟았다. 소설은 능소화꽃을 배경으로 이들은 능소화가 곱게 피던 날 만났고, 꽃이 만발하던 날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능소화를 피워 남편이 찾아올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이다.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남편을, 아내를 향해 어떠한 마음을 가지는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배우자를 유심하게 살펴보자. 밥벌이를 위해 이곳저곳 다니느라 한쪽으로 닳은 남편의 구두, 자존심 하나만으로 당당할 것 같았지만 세상에 타협하느라 갈수록 처진 어깨, 맑고 영롱하게 꾸었던 꿈이 언제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빛을 잃어가는 눈빛을. 그런 배우자를 향하여 능소화 같은 사랑 한 송이 피우는가.능소화의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소화라는 이름의 예쁜 궁녀는 임금님과 하룻밤의 인연을 맺었다. 그 후로 임금님은 소화를 다시 찾지 않았다. 소화는 행여나 임금님이 이곳을 지나갈까, 소화를 찾아올까, 매일 담장 너머에 고개를 빼서 임금님을 기다렸다. 후궁인 소화가 임금님을 그리며 한평생을 보내다 궁궐 담장 아래에서 꽃으로 피었다. 그 꽃이 소화를 닮아 능소화라고 한다. 얼마나 기다리고 그리웠으면 꽃으로 피어날까, 얼마나 보고 싶으면 한여름에 지치지 않고 예쁜 꽃으로 보여 줄까, 한결같은 짝사랑은 꽃으로 피어나기도 하는가 보다.친정집 담장에도 능소화는 피어 있었다. 아버지는 늘 자식을 기다렸다. 설핏 불어오는 바람에도 화들짝 놀라며 밖을 내다보았다. 담장에서 떨어지는 꽃잎 하나에 몸은 대문을 향했고 마음은 마을 어귀에서 서성였다. ‘쯧쯧, 누구 기다린다고 저리 곱게 앉아 있누,’ 담벼락에 기댄 능소화를 향해 아버지는 중얼거렸다. 객지로 떠난 자식들은 서쪽 하늘에 해가 누울 때쯤 드문드문 전화했다.자식들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향해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헛기침으로 표현했다.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자식들은 소홀했고 늘 데면데면했다. 어머니가 가꾸던 마당 한쪽의 텃밭은 날이 갈수록 쪼그라들었지만, 대문 옆 담장 위로 능소화는 줄기차게 꽃을 피웠다. 이순혜 수필가 아버지는 떠났지만, 시골집 담장에서 능소화의 기다림은 그치지 않았다. 꽃잎 하나를 떨어뜨리고 안방을 기웃대도 인기척이 없다. 동트는 시간에 텔레비전 켜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저녁 무렵에 마당에서 들리는 슬리퍼 끄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내일이면 아버지가 기다리던 자식들이 대문을 들어설까 기대해 본다. 숱한 날 해가 뜨고 지기를 반복했지만, 시골집은 적막이 집어 삼켜버렸다. 능소화도 지칠 대로 지쳐 몇 해 만에 시들어 말라버렸다.능소화는 무엇을 보려고 저리도 애쓰는 것일까. 솔개그늘 하나 없는 담장위에서도 화려한 꽃을 피워 놓는다. 작달비가 내려도 천둥 번개가 내리쳐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고개를 쭈욱 내민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꽃은 떨어지고 말지만, 떨어져도 전혀 추해 보이지 않고 예쁨이 그대로다. 목이 잘려 떨어져도 그리움은 한 송이 꽃으로 남는다.저기, 세월의 담 너머로 목을 뺀 채 바깥을 기웃거리는 당신, 이 여름에는 또 누구를 기다리시는가.

2021-08-04

백신 탐구생활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 ‘처음’이라는 단어의 유의어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근심, 걱정, 무서움,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설렘, 바람, 기대, 희망 등의 긍정적인 어휘들도 있다.지난주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물론 처음이다. 그 처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희망보다는 두려움이었다. 백신 접종 날짜가 정해지고부터는 필자는 거의 모든 시간을 백신과 관련한 정보를 검색하는 데썼다. 검색된 정보 중에서 유독 필자의 마음에 쌓인 것은 백신 부작용과 관련된 기사였다. 특히 백신 접종 사망 기사는 필자의 마음에서 긍정과 관련된 모든 감각을 지워버렸다.이미 접종을 마친 지인들이 필자를 위로했지만, 필자의 우울은 더 심해졌다. 급기야 우울은 무기력을 불렀고, 그렇게 한동안 필자는 병적인 무기력과 우울 속에서 지냈다.그때만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때는 세상 모든 머피 법칙이 필자에게만 일어날 것 같았다. 필자는 선택적 지각(知覺)이라는 말의 의미를 그때 확실히 알았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그래서 심각한 왜곡(歪曲)을 초래하는 선택적 지각! 곧 마음의 어리석음!백신 접종 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 필자는 너무도 멀쩡하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마음의 간사함을 이기지 못하고 백신 접종 직전까지 떤 오두방정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짐작(斟酌)과 뜬 소문만으로 모든 것을 단정해 버린 무지함. 그것이 필자의 본모습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지금도 계속해서 심하게 무너지고 있다.그래도 다행인 것은 코로나 예방 백신 접종 덕분에 필자의 단점과 본모습을 제대로 알았다는 것이다. 아직 2차 접종이 남았지만, 필자의 몸에는 감사하게도 백신 보호막이 쳐졌다.백신 접종 이후부터 필자에겐 필자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것은 선택적 지각의 오류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 방법은 누구나 안다. 그것은 편견과 아집, 독단과 독선,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이 방법 또한 우리는 잘 안다, 나를 내려놓고, 나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것!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때 우리는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코로나19 4차 대유행, 돌파 감염 등 세상은 아직 바이러스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백신이라는 단어가 있는 한 이 또한 곧 지나갈 것을 알지만 마음이 불안한 이유는 뭘까!우리는 많은 것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속을 보면 우리는 우리 몸 하나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절대 빈곤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 빈곤을 채워준 것이 백신(vaccine)이다. 백신의 효과를 잘 알지만, 그래도 우리 몸속에 인위적으로 바이러스를 주입하지 않고는 자유롭게 살 수 없는 백신 만능 시대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찌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그러면서 간사한 마음은 또 생각한다, 성적에 미친 이 나라 어른들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구할 교육 백신은 언제 나올지를!

2021-08-04

성공한 탈북자와 실패한 탈북자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이런 저런 사유로 탈북자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많다. 이들 탈북자들은 북한 이탈주민, 새터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탈북민들의 남한 사회 통합 과정은 통일 국가의 미래라 볼 수 있다. 이들의 남한 사회 정착이나 사회 적응 문제도 주요 정책적 과제가 되어야 할 시점이다. 탈북자들은 입국 후 12주간 하나원 교육과정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우선 교육을 통해 남한 사회를 배우게 하려는 목적이다. 교육 수료 후 이들은 전국 각지에 배정되어 첫 출발을 한다. 이들도 대개 서울 경기 등 수도권 배치를 희망하지만 지방에도 많다.내가 만난 새터민 중에는 남한 사회 정착에 성공한 사람이 많다. 대부분 남한의 자유 경쟁체제에 빨리 적응하여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엔 북한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토대로 남한에서도 출세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직접 만나 대화까지 나눈 황장엽 선생은 상당한 예우를 받다 돌아가셨다. 식사를 같이한 조명철 의원은 통일교육원장을 거쳐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다. 현 국회에도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의원과 지성호 비례대표 의원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남한 정치인 이상의 정치 감각을 보인 점이다.일전에 내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탈북민 출신 두 명의 발표를 들은 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남한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북한 경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탈북자 중에는 이곳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 나도 교수 재직 시 북한의 교수 출신 C의 멘토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그 역시 식당 알바 등 고난을 거쳐 학위취득 후 서울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탈북자 중에는 주식에 성공한 사람도 있고, 북한 음식으로 서민 갑부가 된 사람도 있다. 이들이 3만5천명 중 남한 사회 정착의 성공적인 모델인데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탈북자 중에는 이곳에 정착하지 못하고도 방황하는 사람이 상당수다. 이들 중엔 임대 아파트에서 단순노동을 하면서 기초 생활 지원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남쪽의 지나친 경쟁체제에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그 중 20여명이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북한의 일류 김책공대 출신이면서 단순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미국 이민계획이 성공했는지 알 길이 없다. 평양 출신 여성 K는 중국에서 브로커에 속아 남한에 왔다면서 재입북을 공개 요구하고 있다. 모두 남한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이다.서독은 과거부터 동독 탈출자의 경력을 인정하여 서독 취업을 적극 알선해 주었다. 600여만 명의 동독 출신의 서독 탈출 행렬이 독일 통일의 토대가 되었다. 탈북민들은 “북한에서는 배고파서 못 살겠고, 중국에서는 잡혀갈까봐 무서워서 못 살겠고, 남한에서는 몰라서 못 살겠다”고 토로한다. 탈북민들은 남한 사람들의 그들에 대한 의심과 오해가 더욱 괴롭다고 호소한다. 그들 중엔 외국인 노동자 보다 대접 받지 못한다고 불평하면서 조선족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이들의 남한 정착을 돕기 위한 정부와 시민 단체의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

2021-08-04

왼 뺨도 돌려 대어라고?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잘 알려진 예수의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비실제적이고, 피학적이고 자멸적이다. 이것을 비폭력무저항주의라고 하기도 하고, 무한히 양보하는 사랑이라고도 한다. 이 가르침의 해석을 위한 배경을 미쉬나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가르침은 불의한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관계를 상정한다.미쉬나에는 동급신분에서 손바닥으로 상대방의 뺨을 때리면 200일에 해당하는 품삯을, 손등으로 때리면 400일에 해당되는 품삯을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고 했다. 손등으로 치는 행위는 모멸감과 수치를 주기 위한 것으로 육신의 상처보다 더 깊은 상처를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에 손등으로 뺨을 치는 행위는 노예나 아내나 자녀나 여자나 피지배국의 사람에게 모욕과 수치를 주는 행위로 지배자의 차별적 힘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이 경우에는 벌금이 주어지지 않았다. 예수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피지배국이었고 이들은 계급, 인종, 성별, 연령, 신분의 차별을 받고 종종 지배권력자들에 의해 손등으로 뺨을 맞고 멸시와 수치를 당하였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오른 뺨을 손바닥으로 치려면 왼손을 사용해야 한다. 당시 왼손은 불결한 일을 할 때만 사용하였다. 쿰란 공동체 생활규칙에는 왼손으로 손짓만 해도 열흘간 속죄 고행을 처벌로 받았다.결국 오른손을 사용해야 하는데 오른 뺨을 오른손으로 치려면 손등으로 칠 수밖에 없기에 오른 뺨을 치는 행위는 주로 피지배자에게 굴욕감을 주려 할 때이다. 그런데 예수는 오른 뺨을 맞은 뒤 오른 뺨을 한 번 더 대어 주어라고 하지 않고 왼 뺨을 대어 주라고 했다. 왼손 사용이 금지되어 있기에 왼 뺨을 치려면 오른 손바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미쉬나에는 손바닥으로 치는 행위는 같은 신분의 경우일 때이다. 결국 왼 뺨을 치는 행위는 피지배자를 동등한 관계로 인정하는 셈이니 결국 왼 뺨을 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왼 뺨을 대어 주는 행위는 계급, 인종, 성별, 연령, 신분의 차별을 고발하고 동등함을 주장하는 약자의 비폭력무저항 운동이다.간디는 비폭력항의에 대해 “모든 굴욕감을 주려는 것에 대한 비폭력적 저항”이라 했다. 피지배자인 인도인들이 끝없이 줄을 지어 맞고 쓰러지고 또 맞고 쓰러지는 행위를 보고 지배국의 영국기자는 오히려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했다.결국 왼 뺨을 돌려대는 행위는 지배자들의 차별에 대한 저항이요 불의한 지배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비폭력무저항운동이다. 갑질과 언어폭력이 난무한 우리 사회에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가르침이다.

2021-08-04

당신은 정치를 왜 하려 하는가

장규열한동대 교수 대선 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프리드먼(Milton Rose Friedman)의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인용하면서 ‘저소득층이 기준에 못 미치는 식품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서 소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시장경제주의자인 프리드먼이 ‘과도한 규제가 자유로운 시장기능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소비자들이 살아가면서 결정하는 데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적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그가 설파한 내용은 ‘아무 거나 다 괜찮다’고 주장할 만큼 부실했을까.그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전면에 나서서 주도적으로 규제하기 보다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방법들로 업계의 자율규제, 소비자의 주권의식, 업계의 상도덕 등을 들고 있다. 길게 보아 아담스미스(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작동할 것이므로 시장에 맡기는 게 좋겠다는 정도다. 시장의 자유와 소비자의 선택 가운데에서 시장은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고 소비자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아는 게 없다. 가격의 차이만 눈에 보일 뿐 속속들이 내용을 알 길이 없다. 상품의 안전도와 위험 수준에 대해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소비자가 과연 있을까. 소비자가 취약한 경제여건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을 ‘무엇이든’ 소비할 수 있게 한다면 위험천만한 결과를 빚을 것이 뻔하지 않을까.경제활동에 그같은 자유를 과도하게 허용한 끝에 맞을 수 있는 부작용으로는, 개인의 건강과 복지를 해칠 뿐 아니라 거시적으로는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쳐 물과 공기의 질마저 낮아지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있다. 프리드먼 자신도 ‘정부의 규제가 필요없다’는 데 방점을 두기보다 ‘깨어있는 시민의 소비자의식과 업계의 수준 높은 상도의’가 먼저 있어야 함을 동시에 강조한다. 경제활동에 있어 업계의 자유와 시민의 자유를 견주어 볼 때에도 누리는 자유를 통하여 업계는 번창하게 되는 반면 시민은 같은 자유를 누리면서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만 떠안게 되는 것은 아닌지 짚어야 한다.정치는 왜 하는가. 국가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적정수준에 미달하는 재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소비하게 하기보다는, 국민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양질의 소비활동이 가능하도록 돕는 게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가난한 사람도 사람다운 생존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도와야 하는 게 아닌가. 정보의 비대칭이 가속화되어 가는 지식정보화사회를 맞아 시민들에게 가격 이외의 정보도 투명하게 전달되고 경제활동에서 불확실성이 제거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게 당신이 고민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시민의 복리와 안전을 확보하고 공동체의식이 살아나도록 살피는 일을 정치의 제일 과제로 삼아야 한다.학자도 사람이다. 그가 한 이야기를 맹목적으로 인용하기 보다 시민을 위한 무거운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고심하는 정치를 만나고 싶다. 시민도 물론 깨어있어야 한다.

2021-08-04

자동차 선팅이 필요한 이유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자동차 실내온도는 80도 이상까지 올라간다. 이때 차 안에 무심코 놓아둔 라이터나 캔 음료, 휴대용 배터리 등은 폭발 위험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특히 플라스틱 생수병 등은 ‘돋보기’ 같은 역할을 해 햇빛이 특정 부위에 집중되면서 화재를 유발한 경우도 있으니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곳에 주차할 때는 창문을 약간 열어두는 게 좋다.자동차에서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틴팅 필름’을 사용해 ‘선팅’을 한다. ‘선팅’이라는 용어는 해를 뜻하는 ‘sun’과 ‘틴트’(tint)를 한다(~ing)는 의미의 합성어다.필름은 차단 원리에 따라 흡수식과 반사식으로 나뉜다. 과거엔 필름을 고를 때 무작정 가시광선 투과율이 낮은 제품을 선호했지만 최근엔 ‘기능성’이 선택 기준이다.틴팅 필름에서 먼저 살필 숫자는 가시광선 투과율(VLT)이다. 5%·15%·35%·50% 등으로 표기하며, 수치가 낮을수록 필름 색이 짙다. 다만 이는 사생활 보호 등을 위한 투명도의 문제일 뿐 열차단과는 큰 관계가 없다.앞유리와 1열 창문의 지나친 틴팅은 밤길이나 주차장 등 어두운 곳에서 안전을 위협하므로 단속 대상이다.전면은 30% 이상을 권장하고 있다. 2열부터는 짙은 필름 시공이나 색유리가 허용된다. 측면 틴팅농도는 15%가 적당하지만 더 진하게 하고싶다면 2열과 열선유리만 5%를 해도 좋다.최근 출시 제품은 자외선(UV) 차단능력이 대부분 99%에 가깝고, 열 차단능력도 향상돼 제품에 따라 열 차단 성능이 30%에서 최대 90%까지다.폭염 속 자동차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서도 자동차 선팅이 꼭 필요한 이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8-04

그 많던 관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일요일 오후, SNS 친구 신청이 하나 와 있었다. 보통은 허위 계정만 아니라면 별 고민 없이 수락 버튼을 누르는데, 낯익은 이름이어서 잠시 손이 멈췄다. 분명 어디서 본 이름이었는데 누구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프로필 사진은 이십대 중반의 남자. 한참동안 들여다보고서야 누구인지 기억해냈다. 학부시절에 아르바이트로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가르쳤던 아이였다. 많이 까불던 아이라 다른 선생들이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녀석도 어른이 되었지만, 예전의 장난기 어린 눈빛이 남아 있었다.녀석은 요즘 말로 하면 ‘관종’이었다. 수업이 진행될만하면 말장난을 해서 아이들을 웃겼다. 그때만 해도 학원가에 체벌이 아직 남아 있을 때라, 녀석이 있는 반 옆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다른 선생들이 몽둥이로 그의 엉덩이를 때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녀석은 맞으면서도 친구들을 웃기려고 희한한 소리를 냈다.나는 그 아이가 좋았다. 사실 나도 관종 기질이 조금 있다. 그래서 지금도 내 이름을 내걸고 하는 직업들을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중고등학교때는 내성적인 편이라 마음껏 까불지는 못하고, 그 녀석처럼 나서서 친구들을 웃기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 아이의 말장난이 웃겼다. 시답지도 않은 언어유희들이었는데 은근히 센스가 있었다. 가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강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사실 그 아이를 다루는 방법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만큼의 관심을 주면 되는 것이었다.“너, 웃겨봐.”“네?”“나 진짜 너 웃겨서 그래. 오늘은 웃길 거 없어?”“아, 당황스럽게 왜 그러세요~”“왜? 좀 웃겨줘. 다들 기다리잖아.”나는 아예 녀석에게 마음껏 웃길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는 쭈뼛대던 녀석이 나중에는 학교에서 있었던 웃겼던 일, 같은 반 친구의 부끄러운 일, 아니면 되지도 않는 인터넷 유머를 가져오게 되었다. 나와 반 아이들은 웃기는 천재라며 한없이 추켜 세워주었고, 안 웃긴 날에는 ‘그럼 그렇지’하며 가차없이 놀리곤 했다. 아이는 우리 반 분위기 메이커가 됐고, 다른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나는 녀석이 꼭 개그맨이나 배우 같은 직업은 아니더라도 무언가 자신의 유쾌한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해서 크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반가운 마음에 녀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어이, 오랜만이네.”“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그럼, 잘 지내지. 제자님은 어떻게 지내는가? 대학 졸업할 때 되지 않았나?”“저 진작에 졸업했어요. 지금은 부사관 하고 있어요.”아이는 군인이 되어 있었다. 취업도 힘들고 일자리의 안정성도 적은 요즘 같은 때 많이들 권장 하곤 하는 길을 걷고 있는 셈이었다.“이야, 의외네. 군인이라니. 상상도 못했어.”“그쵸, 저도 제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저희 아버지도 군인이셔서 많이 낯설진 않아요.”“나는 네가 좀 더 까불 수 있는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거기선 안 까불지?”“군대에서 까불면 큰일 나죠. 저 옛날이랑 많이 달라졌어요, 선생님.”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우리는 한참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채팅창 옆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도 나는 내 대화 상대가 그 옛날 그 녀석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너무 진중해진 모습을 보며, 나보다 더 철이 들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옛날 철딱서니 없었던 그 모습이 그리워졌다.가만 생각해 보니 어릴 때 통통 튀고 재미있었던 친구들이 철이들며 그런 발랄함을 잃어버리는 것을 그동안 많이 봐왔다. 재기발랄함보다는 점잖음이 미덕인 나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철 좀 들라고, 어른스럽게 굴라고 타박을 했을 거다. 누군가는 그들을 관종이라며 비난하기도 했을 것이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자랐더라면 적당히 철들면서도 여전히 유쾌하고 재미난 어른으로 성장했을 친구들이 나이를 먹으며 하나같이 진중하기만 한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상에는 까불까불 하는 사람들도 필요한데. 그 재기발랄함에서만 나올 수 있는 가치들도 존재하는 것인데.

2021-08-03

첫사랑 이야기

더위가 기승이다. 몸도 마음도 흐물흐물 녹아가는 날씨에 교실의 아이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재밌는 소설을 읽어도 분위기가 축 처지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때 한 학생이 외쳤다.“선생님, 첫사랑 이야기 들려주세요!”과연 고등학생다운 진부함이었다. 나 역시 학창 시절에 젊은 남자 선생님을 당혹하게 하기 위해 같은 말을 던진 적이 있었으니. 그러나 역으로 내게 이런 질문이 다가오자 십 년 전의 그처럼 당황하고 말았다. 동시에 고민에 빠졌다. 숱한 연애를 해왔다. 그중에서 나의 첫사랑이라고 호명할 수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고민 끝에 떠오르는 얼굴을 붙잡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낀 대상. 그건 다름 아닌 나와 함께 사는 강아지였다.다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나는 동물애호가는커녕 동물을 낯설어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인터넷을 떠도는 강아지나 고양이의 귀여운 사진을 봐도 어떤 감흥도 생기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생명체였다. 우리에게 교집합 따위는 없었다. 그런 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연한 기회로 내 삶에 끼어든 작은 개는 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우리가 만난 첫날을 기억한다. 부산에서 구조되어 4시간의 여정 끝에 마침내 내 품에 당도한 개는 코를 킁킁대더니 집 안 구석구석에 오줌을 갈겨놓았다. 그도 모자라 잔뜩 흥분한 상태로 잡히는 것을 모조리 물어뜯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개의 만행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개는 이렇지 않았다. 인간에게 다정하며 사랑스러운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기대했었다.하지만 눈앞에 놓인 개는 이빨을 드러내며 온몸으로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개를 거실에 두고 방문을 닫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시 거실로 나오니 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우리를 감싸 안았다. 나는 낯선 생명의 동그란 눈동자를 마주했다.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생명. 낯선 환경에 무섭고 두렵고 불안해하는 아이. 나는 조심히 개의 곁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나를 경계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 개의 곁에서 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우리의 거리는 어제보다 조금 가까워져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다.이제 우리는 서로의 습관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 나는 이 작은 개가 배가 고플 때나 밖으로 나가고 싶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안다. 몸이 아프거나 행복할 때 내는 소리의 차이를 안다. 언제나 내 곁을 지키며 사랑한다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을 듣는다.동시에 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토록 좋아하던 즉흥적으로 떠나는 여행도, 밤새워 술을 마시는 일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아도 집을 비운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그런 것은 괜찮다. 정말로 괴로운 것은 이 작은 개로 인하여 또 다른 세계를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복날을 앞두고 동물보호소에 있던 유기견들이 사라졌다는 기사를 접한다. 강아지를 도로에 버리고 가는 사람들의 무정함을, 자동차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는 강아지의 애달픈 걸음을 본다. 학대당하는 개를, 그런 아픔을 겪었으면서도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이를 향해 꼬리를 흔드는 바보 같은 개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던 현실의 한 토막이었다. 이제 이 끔찍한 이야기는 나를 괴롭게 만든다. 분노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행동하게 만든다.나는 사랑에 환상을 품은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사랑은 너희가 상상하는 것만큼 즐겁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말이다.그러니까 사랑은 끊임없는 자기모순을 경험하는 것. 마주해야만 하는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 그에 따른 슬픔까지 기꺼이 껴안고 마는 것.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 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나는 그 사실을 이 조그만 생명을 통해 알았다.

2021-08-03

소원

김규종경북대 교수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소원 한두 가지는 있는 법. 도선사 명부전 오르는 길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 거기 올려진 무수한 작은 돌멩이를 보자니 마음이 짠하다. 다른 사람들이 보든 말든 간절한 소원을 담아 올려놓은 돌멩이들. 염천의 작열(炸裂)하는 태양 아래 온몸을 드러낸 채 천둥벌거숭이로 소원을 갈구하는 인간군상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사자처럼 용감하고 바람처럼 자유로웠으며 연꽃처럼 깨끗했던 청춘의 날들에 내 소원은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이었다. 신혼여행 길에서 맞은 동해 일출을 보면서 나는 소원을 간절하게 희구했다. 한 주에 한 번꼴로 일출을 볼 수 있다던 커피 상인의 말이 거짓처럼 느껴졌던 그 날의 기막힌 일출. 고교시절 배운 의유당의 ‘동명일기’가 절로 떠올랐던 장관(壯觀)의 일출!새털처럼 수많았던 날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동안에도 내게는 소원이 있었다. 임권택의 영화 ‘장군의 아들’을 보면서 아, 역시 조폭이 멋지네, 하고 생각했다. 새파랗던 20대에 시인이 되지 못했음을 한탄하던 백면서생이 어느덧 물리적 폭력을 열망하는 30대가 된 것이다. 40대에 우연히 마주친 트럭 운전사의 고독한 얼굴에서 읽히는 자유인의 표상이 흐뭇해서 1만2천킬로미터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트럭 운전사가 돼보리라 하는 꿈도 있었다.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자들이 대통령 한답시고 들먹거리는 시점이 오자 소원도 모습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래, 세상을 바꿔보자! 세상을 바꿀 힘은 글에 있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50대에 내가 품은 소원은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문필가’가 되는 것이었다. 작은 공책을 구해서 날마다 소원을 만년필로 정성껏 써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흐르고 흘러간다. 아직도 내게는 소원이 있다. 그것은 예전의 소원과 많이 다른 것이다.조직 폭력배의 멋과 낭만도 아니고, 트럭 운전사의 자유분방함도 아니며,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바람도 아니다. 세상은 언제나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되며, 내게 주어진 배역은 소소한 단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무엇보다 나 자신 먼저 바꾸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자명한 이치도 깨달았던 때문이다. 아니, 세상은 영원히 바뀌지 않은 채 굴러갈 것이기에 이러쿵저러쿵 말을 보태는 것이 허망한 노릇이리라. 그것이 사적(私的)인 소소한 것이든, 만고에 길이 빛날 장쾌한 것이든, 각자(各自)의 소원에는 고유한 빛깔과 향기가 있다. 소원은 지극히 바라는 꿈 같은 것이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살아 있으되 죽어버린 사람은 꿈이 없다. 그래서다. 면담을 신청한 학생들에게 꿈을 묻는 까닭은 거기 있다. 하지만 그들은 바라는 직장이나 회사를 말한다. 배운 것이 ‘장래희망’이니, 무슨 말을 보태겠는가?! 이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서역정토(西域淨土)로 먼 길 떠난 모친 송별하는 길에서 만난 숱한 돌멩이에 새겨진 꿈을 보면서 기원한다. ‘부디 그대들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환한 햇살 아래 능소화(凌9704花)와 비비추, 어여쁘게 부시다.

2021-08-03

4·15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강길수수필가 지금 우리 사회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중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구약성경의 유명한 이야기다. 양치기 소년 다윗은 칼과 창으로 중무장한 필리스티아의 거인 투사 골리앗과 전장에서 맞선다. 단 한 발 돌 무릿매질로, 골리앗의 이마를 맞혀 쓰러트렸다. 이로써, 다윗 편 이스라엘이 이겼다.작년 4·15총선 직후 우리 사회는 부정선거 주장이 제기되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총선 무효소송이 전국적으로 139건이었다는 보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부정선거로 국민이 뽑지 않은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어, 법과 정의가 무너지고 나라 근간을 흔들므로 총선은 무효라는 송사다. 내 눈엔 원고들이 다윗이고, 피고 조작 기획자들과 선관위가 골리앗으로 보인다.선거 후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각 지역 후보자별 득표 내용을, 전문가들이 통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언론에서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저 수치들은 조작이다!’하는 확신이 들었다. 오랫동안 직장에서 품질관리를 하며, 통계치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조작 없이 그런 변칙데이터는 결코 나올 수 없음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한국 통계전문가들의 말과 미국 부정선거 전문가 미베인 교수의 연구논문 결론도 그 궤가 같았다.투표 후 여당 전략기획위원장은 ‘광역별 판세(사전투표 보정 값)’란 선거 이전 예측 표를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득표수 집계에 보정 값이 왜 필요할까. 성취감에 취해 사전투표를 조작했다고 스스로 한 고백이자 자승자박으로 보였다. 이 때문에 나는 부정선거 진실을 밝히려 다윗처럼 고군분투하는 분들의 활동을 살펴보기 시작했다.대법원은 선거법에 정한 6개월의 선거소송 기일을 미뤄왔다. 선관위 편일까. 14개월 지난 6월 28일에야 처음으로 인천 연수구 을의 선거무효 소송 재검표가 시행됐다. 결과, 경천동지할 사실들이 드러났다는 보도다. 아래가 연녹색인 ‘배춧잎 투표지’, 두 장이 붙은 ‘자석투표지’, 관리인 도장이 뭉개진 ‘일장기 투표지’ 사전투표 용지가 아닌 ‘인쇄된 빳빳한 투표지’ 등 9종의 위조된 물증이 대량 쏟아졌다고 참관인들은 밝혔다. 선관위는 ‘투표 당일의 표 이미지 파일 원본이 없다며 사본을 제출했다’라고도 증언했다. 원고 측의 위조 표 증거 보존 신청도 5건이 이루어졌다 했다.요약하면, 기획된 4·15총선은 1, 2차로 조작됐다고 본다. 사전투표지 보관 및 운송 중 조작, 개표 시 전자 조작까지가 1차 조작이 되고, 인쇄된 가짜투표지 바꿔치기, 개표 당일 이미지 파일 대체용 가짜 복사본 제작이 2차 조작이 된다.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를 조작한다면 그 죄는 대역죄보다 클 것이다. 드러난 4·15총선 부정선거 증거들을 알고 보니 전자 계수기와 컴퓨터를 쓰기에 더 대규모 조작이 가능했다. 무서운 일이다. 결국, 선거 당시 제1 야당 대표도 ‘4·15 부정선거 특검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태가 이런데도 야당과 대형언론들은 애써 왜곡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어떤 이들이 의심하듯, 정치계, 언론계, 사법부가 국민이 모를 나눠먹기식 침묵의 카르텔이라도 맺은 걸까. 4·15 부정선거의 다윗과 골리앗 싸움은 과연 누가 이겨야 할까. 깨어 있는 국민은 미치겠다.

2021-08-03

대프리카 본색

지난 7월 24일 서울의 기온이 36.5도를 기록하면서 서울이 대구보다 더 덥다는 것이 전국의 뉴스로 떴다. 이날 대구의 낮 최고기온은 33도선에 머물렀다. 전통적으로 폭염 현상을 보이는 대구지방의 더위를 서울의 더위가 이겼다는 것이다.인터넷 게시판에는 “서프리카가 대프리카를 이겼다”는 글이 등장하고, 서울의 폭염 현상을 가리켜 서우디(서울+사우디아라비아)라 부르기도 했다. 서울의 고온현상은 인구밀도가 높고 도시화 등이 진행되면서 생기는 인공열이 작용하는 열섬현상이 주 원인이다.그러나 역대 폭염과 관련한 기록을 살펴보면 서울은 대구를 한참 못 따라온다. 폭염 일수 최장 기록을 보면 서울은 1939년 47일을 기록한 반면 대구는 1994년 60일을 기록했다.폭염이 가장 빨리 찾아온 날은 서울은 5월 17일(1932년)이지만 대구는 5월 9일(1997년)의 기록을 갖고 있다. 전국을 통틀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여름 낮 기온을 보유한 곳은 대구다. 1942년 8월 1일 대구의 기온은 40도다. 전국 어디서도 이 기록을 아직 깨지 못하고 있다.우리나라 여름철 평균 기온은 1910년 22도였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난 지금은 약 2도 정도가 올랐다고 한다. 지구온난화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 한국이라고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기상청은 이번 주부터 대구의 날씨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을 유지하는 열대야로 이어질 것이라 예고했다. 지난해 대구의 열대야 일수는 16일이다. 역대로 열대야는 8월에 집중 발생했다.대구의 대프리카가 이제부터 본색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코로나 기승 속에 무더위와도 한판 싸움을 벌여야 할 것 같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8-03

폭염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얼마나 더운지 / 그는 속옷마저 벗어던졌다 / 엎드려 자고 있는 그의 엉덩이, / 두 개의 무덤이 하나의 잠을 덮고 있다….그의 벗은 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벌거벗은 육체가 아름다운 건 / 주머니가 없어서일 것이다 / 누구도 데려갈 수 없는 그 강을 / 오늘도 건넜다가 돌아올 것이다, 그는”나희덕 시인의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 2004)에 실린 시 ‘열대야’의 1연과 3연이다. 시인은 속옷마저 벗어던지게 만드는 더운 여름 밤의 풍경을 감각적이면서도 깊은 정념을 담아 그려내고 있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망각의 여신이자 죽음의 신 하데스가 지배하는 저승 세계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다섯 개의 강 중 하나인 망각의 강 ‘레테’를 벌거벗은 채 건너갔다 온다.시인의 말처럼 ‘잠은 죽음의 연습’이자 일상의 힘듦을 풀어주고 고뇌를 잊게 해 주는 시간이다. 그러하기에 매일매일 잠을 청하지만 이 무더운 여름밤, 속옷을 땀으로 적셔 가면서 혹은 속옷마저 벗어제치고도 쉬이 잠들지 못하는 것이 이즈음 우리들의 모습이다.바야흐로 8월이다. 여름의 절정이다. 폭염주의보, 폭염경보가 이어지고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폭염을 ‘매우 심한 더위’라고 간단히 정의하고 있는데, 한자의 뜻으로 보면 사나운 더위가 폭염(暴炎)이니 섭씨 30도 정도로는 폭염이란 명함을 내밀기가 어렵겠다. 실제로도 기상청에서는 최고 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날에 폭염이라는 단어를 붙여준다. 또한 최고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주의보를, 최고기온이 섭씨 35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경보를 발령한다고 한다.1973년부터 자료가 제공되고 있는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가장 오랜 폭염일수를 기록한 해는 2018년으로 31일이었고, 그 다음이 29.6일의 1994년이었다.(폭염일수에 소수점 이하의 숫자가 보이는 까닭은 전국 여러 지점의 폭염일수를 평균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 폭염이 가장 긴 해와 장소는 어디였을까? 대구와 경북 지역이 많이, 그리고 오래 덥다는 것이 통념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2018년 7월 11일부터 8월 16일까지 37일 동안 이어진 충남 금산의 폭염이 가장 긴 폭염기록이다.통계로만 본다면 아직 더위는 좀 더 참고 견뎌내야 할 것 같다. 더욱이 이 여름에 코로나19가 사나움을 한껏 더 불지르고 있다. 이 폭염에 방역복을 껴 입고 하루종일을 온몸에 땀으로 목욕하듯 보내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자. 가게문을 닫고 한숨과 눈물로 이 염천의 긴 여름을 지나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자. 눅눅한 1평 남짓 쪽방에 여윈 몸 누이고 더위먹은 이들을 생각하자. 누구 하나 에어콘 ‘빵빵’하게 틀어놓고 내 몸 하나 편하다고 만족해 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사나운 2021년 8월이 지나고 있다. 한 겨울 맹추위를 애써 떠올릴 필요도 없다. 이 여름의 폭염이 사랑과 나눔과 함께함의 뜨거움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고 말할 날이 오리라. 함께 보듬은 우리에게 폭염이 무슨 대수랴.

2021-08-03

구미시장은 재선 포기했나?

김락현경북부 최근 며칠 동안 구미에서 주변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을 꼽으라면 “장세용 시장님은 재선 포기하신거에요?”이다.장세용 구미시장이 재선에 도전한다는 것은 구미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데, 왜 갑자기 이런 말들을 하는 걸까.아마도 최근 부적합한 인사를 구미시 정무보좌관으로 임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정무보좌관은 시장의 정책결정을 돕고, 시의 역점시책 발굴과 시행에 관한 자문, 시의회와의 협의와 시민 소통창구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그래서 구미시 국장(4급)급으로 대우한다.이렇게 중요한 정무보좌관 자리에 구미시의 뒤통수를 쳤던 인사를 장 시장이 고집하다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장 시장이 고집하는 인사는 시유지 임야의 나무를 1천그루 넘게 무단으로 벌목한 사람이다.물론, 그의 말대로 그 일로 인한 징계는 이미 받았다. 그것도 제일 가벼운 처분인 ‘견책’으로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징계가 부당하다며 ‘소청’을 제기했다가 기각됐고, 대구지방법원에 구미시를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제기했었다.문제는 그 인사가 무단 벌목을 한 이유가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그 인사는 본지 기자에게 야산 정상에 정자를 짓기 위해, 산불예방을 위해, 우범지대이기 때문에 벌목을 했다고 밝혔으나,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나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앞으로도 실수와 잘못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정무보좌관은 구미시장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다. 그럼에도 이토록 많은 말들이 나오는 것은 아마도 그 인사가 실수와 잘못된 일들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세간에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사람을 장 시장이 정무보좌관으로 고집하는 모습에 시민들이 “장 시장님은 재선 포기하신거에요?”라고 응답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지 않을까. 구미/kimrh@kbmaeil.com

2021-08-02

아는 만큼 느껴지는 혁신의 힘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우리의 생활 전반에 두루 통용되고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이 말은 조선 정조 때의 문인 유한준이 남긴 ‘알아야 참으로 보게 된다(知則爲眞看)’라는 명언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첨삭하여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로 두루 알려지게 됐다.‘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기업의 현장이 바로 이와 같은 논리와 이치로 일어나는 일들을 알고 나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똑같은 현장을 둘러봐도 문제를 전혀 찾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사소한 문제라도 자세하게 파악해 많은 문제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가 바로 현장을 보는 시각 즉, 인식의 차이이다.일반적으로 10년을 넘게 혁신활동을 하는 회사들은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그들은 대부분 현장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고, 더이상 개선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큰 오산이다.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못 찾는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많이 학습하고 경험해서 관점을 달리해보면 평상시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혁신 컨설팅을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공감백배라 하지 않을 수 없다.일례로, P회사의 화성공장은 지난 10여 년 정도 꾸준히 혁신활동을 추진하여 괄목할만 한 성과를 냈지만, 더 이상의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혁신의 정체현상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이를 변화시키는 무기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설비에 강한 운전원’을 만드는데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컨설팅 총력을 펼쳤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날 무렵 직원들의 설비 이해도, 점검 능력, 문제 발견 능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고, 매월 인당 1건 이상의 문제 발굴과 개선활동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이 기업을 컨설팅하면서 느낀 ‘설비에 강한 운전원’을 만드는 학습 노하우는 첫째 ‘섬세함’이 가미된 전문적인 학습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설비를 구동시키는 구동장치, 부드러운 동작을 유도하는 윤활장치 등 기능별로 세세하게 나눠서 각각의 장치에 대해 하나하나 제대로 전문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이론이 아닌 현장의 설비로 실무학습이 돼야 한다. 조업현장에 근무하면서 다루고 있는 설비를 제대로 알아야 문제도 발견할 수 있다. 셋째 신나는 놀이마당 학습이 돼야 한다. 저·고근속 사원이 함께 원팀이 되어 학습과 개선활동을 하고, 활동 중간중간 임원의 격려와 팀원 간의 소통과 단합을 부추기며 우수한 결과를 포상해 준다면 학습과 개선활동의 촉매제가 될 것이다.아는 것이 힘이듯, 설비에 강한 운전원을 육성하는 것은 혁신의 원천적인 힘이고 강한 기업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 운전원 스스로 설비에 대한 애정과 주인의식으로 다룰 때, 분명 전과 같지 않은 현장의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

2021-08-02

두벌 꽃 능소화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동동팔월, 여름날의 절정이다. 코로나19 방역 대응이 느슨해진 어정칠월의 틈을 타고 들이닥친 4차 대유행에 수도권과 지역별 감염세가 좀처럼 꺾이질 않다 보니, 동동거릴 수밖에 없는 8월이 되고 말았다. 연일 폭염지수 경신 예보와 무관중 올림픽 경기의 열기 못지않게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초미의 관심사가 돼버린 바이러스 감염증 재확산세에 여전히 불안하고 동동거리듯 조심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화살 같은 땡볕과 난마 같은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어도 여름꽃은 쉬엄쉬엄 하나씩 피어나고 있다. 개망초와 쑥부쟁이가 청록의 캔버스를 군데군데 하얗게 수놓는가 하면 낮은 언덕 한 켠에 긴 목을 뽑아내는 산나리 꽃잎이 살랑거리고 있다. 주위로는 배롱나무 가지마다 분홍빛 꽃망울이 등불처럼 켜지고 있고, 그 너머 능소화 덩굴은 수북한 줄기와 잎새를 드리우며 작은 나팔 같은 주황색 꽃을 촘촘하게 매달고 있다. 야트막한 산자락을 배경으로 거의 매일 접하게 되는 우거(寓居)의 뒤뜰 풍경이다.대체로 7월 초부터 집 안 뜨락이며 거리, 담벼락에 누런빛이 감도는 주홍빛 꽃을 피우는 능소화는 곳곳에 공기뿌리가 나와 다른 물체를 붙잡고 생육하는 덩굴나무이다.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하는 능소화는 조선시대의 과거시험 장원급제자에게 임금이 관모에 꽂아주던 어사화로 쓰이면서 특히 양반들이 좋아한 꽃이기도 했다. 덩굴로 뻗어가며 꽃이 피고지기를 반복하고, 시들지도 않은 꽃이 통째로 떨어져 품위 있게 진다 해서 양반들이 흠모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옛날에는 선비나 양반집 담장에만 심을 수 있다고 해서 ‘양반꽃’ 또는 ‘선비화’라 불렀다고 한다.그러한 뒤뜰의 ‘양반꽃’이 올 여름엔 두벌로 피어나서 이채롭기만 하다. 분명 지난 6월초부터 몇 송이씩 피어나는 걸 보고 올해는 더위가 빨라서 좀 일찍 피는가 싶었었는데, 그렇게 2~3주 정도 맛보기로(?) 피고는 잠잠하다가 7월 하순부터 본격적으로 피는 것이 아닌가! 드문 현상이거니와 십 수년째 서옥(書屋)엘 살면서 처음 보는 일이라 희한하기만 했다. 그러고보니 무언가 유추되는 일이 있었다. 지난 5월 하순부터 필자의 서실(書室)에서는 회사의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창단한 ‘붓글씨재능봉사단’의 단원들을 대상으로 서예기초과정 단체수업을 시작했었다. 서예에 관심있는 직원들이 모여 붓글씨를 배우고 익혀서 지역사회의 필요한 곳에 재능을 기부하고 전통문화를 나누자는 취지의 강습이었다.도심 속의 서실에서 묵향을 피우며 붓글씨를 배우는 서생(書生)들의 붓놀림이 궁금해선지 뒤뜰의 능소화가 서둘러 망울을 터트린 것은 아닐까? 선비의 기품 같은 능소화가 ‘어른학생’들이 먹을 갈아 붓으로 정성껏 점과 획을 긋고 연습하는 모습이 반갑고 가상해서(?) 애써 담장을 넘어 축화(祝花)처럼 핀 것인지도 모른다. 그 무렵 때맞춰 담장 아래 붓꽃이 피어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붓은 선비의 또 다른 손이다. 코로나의 난국에도 삼복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서예기초 학습에 열기를 더해가는 수강생들에게 저만치 능소화가 넌지시 격려의 손을 흔드는 듯했다.

2021-08-02

불면의 밤, 머리맡에 놓아두는 몇 권의 책들

여름의 입구를 지나 그 중심으로 옮겨가는 순간, 여름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잔뜩 습기를 머금은 한낮의 더위는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저 마찬가지가 된다. 몸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뜨거운 공기에 푹 들어가 있는 듯한 한낮 더위의 느낌은 사실 32도나 36도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경험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더위는 어차피 똑같다. 숨은 쉬기 힘들고, 마음도 쉽게 지친다.사실, 여름의 한 가운데 들어왔다는 실감은 하루 종일 달궈져 있던 해가 질 무렵 그래도 불어오던 선선한 바람이 사라지는, 열대야의 후텁지근한 공기에서 찾아온다. 인간이 삶을 버텨내는 것은 그래도 힘겨운 오르막길을 넘어 조금은 평탄한 내리막이 존재한다는 바람 때문이 아닌가. 하루 종일 해가 질 무렵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만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름을 버텨내던 사람들은 해가 져도 아직 식지 않는 열기에 이제 여름의 한 가운데에 들어섰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이런 열대야 속에서는 평온한 잠자리가 사투의 현장으로 바뀐다. 쉽게 잠들 수 없는 이른바 불면의 밤이 찾아오는 것이다.에어컨을 켰다가 껐다가, 더이상 찬바람을 내지 못하는 선풍기를 켰다가 껐다가 별다른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사실 이런 불면의 밤에는 자연스레 컴퓨터나 노트북에 손을 뻗어 영화나 영상을 보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로 후덥지근한 공기에서 손을 움직여 책을 넘기는 행위조차 귀찮아져, 결국 구독하는 각종 OTT미디어 서비스(Over-the-top Media Service·인터넷을 통해 방송, 영화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옛날에 보았던 영화, 드라마를 골라보거나 동물이나 요리 영상 등을 찾아보거나 한다. 열대야로 인해 초래된 불면의 밤이 이어져 자야 할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이 같은 불면의 밤에 이처럼 눈과 귀를 편하게 자극하여 뇌를 각성시키는 영상을 보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답답한 더위가 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방해하니 해결책을 찾지 못한 마음이 무언가 집중할 가장 손쉬운 대상을 찾은 것에 불과하다. 어차피 영상 한 편을 본다고 시원해지지 않으니, 결코 한 편을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누구나 알고 있지만 불면의 밤에 쉽게 잠이 드는 방법은 몸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10~20분이라도 달리기를 하고 돌아와 씻고 누우면 긴장했던 몸이 서서히 이완되며 더위의 한 가운데에서 잠들 용기가 생긴다. 더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방법이겠지만 사실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이 같은 더운 공기 속에선.운동으로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 어렵다면 차라리 영상에 손대기보다는 머리맡에 책 몇 권을 놓아두기를 권한다. 물론 이것 역시 바깥에 무언가 있는 더 많은 실시간의 정보를 찾고자 하는 마음을 통제하고, 흰 종이 위에 쓰인 까만 글씨를 읽어내고, 상상하는 과정을 통해 정신을 혹사시키는 방법이다. 머리를 직접 자극하는 시청각이미지들이 들어오는 영상에 비해, 이미지가 적고 그 이미지가 모두 내 머리로 만든 것이니, 언제든 상상을 그만두는 것 역시 내 자유이다. 보고난 뒤 생긴 마음의 결여로 다음 편을 바로 클릭해야 하는 영상에 비해, 내가 시작할 수도 끝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여름밤의 책읽기의 장점이다. 가급적이면 너무 많은 지식이 담긴 책보다는 하나의 세계가 오롯이 담긴 소설책이 더 좋으리라.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잠들어 꿈속에서 그 세계 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홍익대 교수

2021-08-02

김유신 다시보기

‘삼국사기’는 현재 남아 있는 역사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다. 이 책은 전체 50권이며 그 가운데 왕이 아닌 인물들의 생애를 담은 열전(列傳)은 10권을 차지한다. 그 10권 중에서 3권은 김유신이라는 1명에 대한 내용인데, 이는 다른 인물을 서술한 내용에서 볼 수 없는 높은 비중이다. 이러한 인물에 대해 일제강점기 역사학자인 신채호는 그를 가리켜 지혜와 용기가 있는 명장(名將)이 아니고, 음흉하고 독살스러운 정치가이며, 음모로 이웃나라를 어지럽힌 자라고 하였다. 이 글에서는 김유신의 삶을 통해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 살펴보고자 한다.김유신의 집안은 원래 신라 출신이 아니었다. 그 조상은 금관가야 왕족이었는데 금관가야가 532년(법흥왕 19년)에 신라에 항복하면서 그 왕과 일족은 진골 귀족으로 대접받았다.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무력(武力)은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의 성왕을 죽이는데 참여했으며, 아버지인 서현(舒玄)도 군사 지휘관을 지냈다. 이에 김유신 가문은 장군 집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김유신의 이름을 지을 때 그의 아버지가 유학(儒學)의 경전을 인용하고, 중국의 유명한 인물의 이름을 본 뜬 것으로 보아 유학에 대한 지식도 있었다. 따라서 김유신 집안은 군사적인 능력과 학문적인 지식을 동시에 갖춘 문무(文武)에 조예가 깊은 가문이었다. 김유신이 종종 유학 경전의 구절을 인용하여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학문에 익숙한 집안 환경 때문이라 여겨진다.김유신이 김춘추와 결합할 수 있었던 것도 공통적인 집안 환경과 관계있을 것이다. 즉, 김유신 집안은 군사적인 능력을 통해 신라에서 진골귀족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금관가야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귀족들 사이에서 차별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김춘추는 왕족이었지만 그의 할아버지인 진지왕이 귀족들에 의해 쫓겨났다는 점 때문에 비주류로 취급받았다. 보통 김유신과 김춘추가 결합할 수 있었던 요인을 두 집안이 비주류였기 때문에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비슷한 집안 환경도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즉 김춘추의 경우 그의 이름은 공자가 지었다고 전하는 역사책 춘추(春秋)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김춘추 가문도 김유신 가문처럼 유학에 익숙한 환경이었다는 공통점 때문에 두 사람이 쉽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을 것이다.김유신과 김춘추의 결합은 이러한 측면에서 단순히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어쩌면 당시 신라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불교 중심 정치 형태를 유학에서 추구하는 왕도정치로 바꾸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불교를 완전히 배척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종교로서 남겨두고, 정치에는 유학을 지배이념으로 삼은 것이다. 즉,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것이다.647년 1월에 벌어진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의 반란은 귀족들 사이에 있었던 권력 다툼이 아니라 장차 신라 사회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정치 지향을 두고 벌어진 대립이었다. 즉 비담(毗曇)이라는 불교적인 용어를 이름으로 사용한 것으로 볼 때 그는 불교 중심적인 정치성향을 지녔고, 반대로 김유신과 김춘추는 유학적인 이념에 바탕을 둔 정치를 희망했던 것이다. 이러한 대립 이후 김유신과 김춘추가 승리함에 따라 당의 연호(年號)와 관복(官服) 도입 등 유학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추진했다. 따라서 김유신과 김춘추 그리고 비담과 염종의 대립은 권력 투쟁이 아니라 국가의 운영 방향을 둘러싼 갈등으로 볼 수 있다.김유신이 유학에 바탕을 둔 정치 이념을 추구했지만 당에 대한 그의 이미지는 항상 좋은 것은 아니었다. 즉, 백제 멸망을 전후하여 신라와 당 사이에 갈등이 나타났을 때 당에 대한 공격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사대주의자라기보다는 국익에 충실한 현실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전경효 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 한편 김유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당시 중국과 일본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이기도 했던 것이다. 660년 이후 백제와 고구려 멸망 그리고 나당전쟁 과정에서 당나라와 왜는 그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즉 당나라는 그에게 벼슬이나 많은 포상을 내렸으며, 왜는 문무왕에게 선물로 배 1척을 보내면서 김유신에게도 따로 1척을 보낼 정도였다. 당나라나 왜의 행동은 김유신이라는 인물이 신라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은 ‘풀 베는 아이와 가축을 기르는 아이까지도 그를 알고 있으니, 그의 사람됨이 반드시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러한 표현은 이 글의 앞부분에 소개한 신채호 선생의 평가와 정반대이다. 이러한 정반대의 평가와 별개로 그의 삶을 되짚어 보면 그리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과연 여러분들은 김유신을 어떠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시는지?

2021-08-02

내 안의 루시를 찾아서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루시’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날까? 2014년 뤽베송 감독의 ‘루시’가 생각날 수도 있고, 1967년 나온 비틀즈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가 생각날 지도 모르겠다. 1974년에 발견된, 350만 년 전에 살았던 최초의 인류 ‘루시’가 떠오를 수도 있다. 루시는 105센티미터에 30kg 정도였으며 20세 전후에 나무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 이후 새로운 발견으로 현재 최초의 인류는 600만 년까지 더 거슬러 올라가지만, 아직도 루시는 최초 인류의 대명사처럼 사용된다.비틀즈 멤버 존 레논은 그의 아들 줄리언이 유치원 다닐 때 그린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노래를 만들었는데, 루시 화석을 발견한 조핸슨은 자축 파티 중에 이 노래가 들려 화석의 인물을 루시라고 지었다. 이렇게 유치원생의 그림에서 비롯된 루시라는 이름은 최초 인류의 이름이 되고, 이후 문화 예술에도 많은 영감을 준다. 영화 ‘루시’의 주인공 스칼렛 요한슨의 이름도 루시이고, 그녀가 자기 뇌 능력의 100%를 사용하여 과거로 돌아가서 만난 인물도 최초의 인류 ‘루시’이다.‘루시의 발자국’은, 이 최초의 인류 ‘루시’를 빌미로 인간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미야스와 아르수아가, 두 사람이 쓴 책이다. 작가 후안 호세 미야스는 스페인의 선사시대 유적지를 다녀와서 엄청난 감동에 휩싸인다. 그는 자기 안에 선사시대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뭔가 표현하고 싶지만 막막해하던 중 고생물학자인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에게 제안하여 이 책을 완성한다. 고생물학자의 현장 강의를 소설가가 맛깔나게 버무려서 독자에게 내놓은 셈이다.아르수아가는 미야스에게 서너 살짜리 아이 발자국을 관찰하라는 숙제를 내준다. 미야스는 그 발자국 과제를 수행하면서 루시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녀의 발자국이 고딕 성당보다 더 복잡한 것을 보고 감탄하며 현대 인류의 자아가 루시보다 클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생물학자 아루수아가는 루시의 발자국과 아이들의 발자국과 정확히 똑같다는 것을 아주 상세히 묘사해주면서 두 사람의 동작이 모두 생체역학적으로 무의식적인 행동이라고 본다. 소설가와 고생물학자는 350만 년 전의 인물과 현대인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데 일치한 셈이다.그런데 현대로 올수록 인간은 성숙해졌을까? 아루수아가의 논리에 의하면, 현대인의 뇌 크기는 2만 년 전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그린 크로마뇽인보다 작아졌고, 현대인이 어린아이처럼 고분고분하게 길들여졌다는 것을 근거로 성숙해졌다고 보지 않는다.예민한 감각을 유지하는 것은 성숙의 또 다른 척도다. 늑대가 수캐보다 냄새도 잘 맡고 청각도 발달해서 더 성숙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늑대가 가축화하여 길들여지면서 다양한 변종이 만들어지고 특이한 신체변화가 나타난다고 한다. 비록 약의 힘을 빌린 것이지만 스칼렛 요한슨이 뇌 능력을 100% 활용하여 만난 사람이 루시라는 영화 ‘루시’의 설정은 나름대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이제 내 안의 루시를 회복할 일만 남은 것일까?

2021-08-02

송금 수수료 제로시대

2천만 고객을 바탕으로 은행·증권 등 전통 금융업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모바일 금융플랫폼 ‘토스’가 2일부터 ‘송금 수수료 없는 세상’을 선언했다. 모든 고객에게 돈을 보내는 송금서비스에 대해 수수료를 물리지 않는 ‘평생 송금 수수료 무료’혜택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바야흐로 송금수수료 제로시대가 열린 셈이다.그간 토스 송금 수수료는 월 10회까지만 무료였지만, 이번에 제한을 없앴다. 토스 앱의 관련 공지를 확인하면 이후 송금부터 혜택이 자동 적용된다. 토스는 송금, 결제, 투자, 보험 등 고객이 필요로 하는 모든 금융서비스를 토스 앱 하나로 제공한다는 수퍼앱 비전을 제시해왔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토스증권을 출범했고, 이르면 오는 9월로 예상되는 토스뱅크 출범을 앞두고 고객 편의성을 강화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는 게 토스의 설명이다.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현재 시중은행과 인터넷은행 18곳 중 12곳은 인터넷뱅킹을 통한 타행이체 시 건당 500원의 수수료를 받고있다. 다만 일부은행은 거래실적 등 고객 등급에 따라 수수료를 면제하는 곳이 많다. 예를 들어 농협은행의 타행 간편송금수수료는 기본적으로 건당 500원이지만 오픈뱅킹 계좌를 등록하거나 올원뱅크를 이용해 50만원 이하를 송금할 때는 건수 제한없이 수수료가 면제된다. 하나은행도 급여나 연금입금, 주거래조건을 충족할 경우 타행 송금수수료를 무제한 면제하고 있다.지난 2015년 간편송금서비스 출시 이후 토스를 통한 누적 송금액은 약 169조원에 달한다. 토스가 ‘송금수수료 무료’라는 획기적인 고객중심 금융서비스를 채택하면서 머지않아 모든 금융기관에 송금수수료 제로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전망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8-02

생로병사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산책이라도 할 생각으로 감나무 집 앞을 지나다보면 어김없이 검둥이가 무섭게 짖어댄다. 검둥이는 반들반들 윤기 나는 까만 털에다 날렵한 몸매, 매서운 눈빛을 가져 얼핏 보기에도 싸움깨나 하게 생긴 이웃집 견공이다. 내가 지나갈 때면 매번 묶어둔 쇠줄을 끊을 듯 사납게 날뛰며 짖어대는데, 무심한 듯 딴 곳을 쳐다보며 지나치곤 하지만, 그 앞을 지날 때면 언제나 서늘한 기분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속마음과 겉 행동이 한결 같지는 않은 법이다.요즘은 시낭송을 전문으로 하는 동호회가 여럿 있고, 이들이 모여서 결성한 단체도 있다. ‘시의 행간에 날개를 달아주는’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활동하는 시낭송협회는 올해가 벌써 10주년이라 한다. 시낭송협회에서 많은 역할을 하는 지인과의 자리에서 분위기가 되어 결례를 무릅쓰고 낭송을 청하였는데, ‘개싸움’이란 시를 조용히 읊조렸다. 조용조용한 그의 낭송을 들으며 행간의 의미를 새기다 ‘담벼락을 무너뜨릴 듯’이란 대목에서 불현듯 검둥이가 떠올랐다.“…. 나는 되도록 그 집을 피해 다니거나 조심스럽게 지나가지만 매번 이제 됐다 싶은 지점에서 그가 담벼락을 무너뜨릴 듯 짖어대기 시작하면 뭔가 또 들킨 것 같다. 나는 쓰레기 분리수거도 철저히 하고 적십자회비도 제때 내며 법대로 사는 사람인데 아무래도 그는 내 속의 누군가를 아는 것 같다. 그깟 개를 상대로 분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겁을 먹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것이 무엇이든 나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언짢은 일이다.”(이상국 시인의 ‘개싸움’에서)내가 ‘돌골마을’에 들어와 산지도 삼년이 지났다. 감나무 집의 목단은 올해도 화중지왕의 위용을 자랑하며 장독대를 뒤덮을 듯 수북하게 피었다가 졌고, 감나무는 성성한 가지를 담 너머로 뻗어 채 익지도 않은 감들이 길바닥에 떨어지기도 한다. 감나무에 묶여있던 검둥이는 그새 세상을 떠났고, 산책길에 그 앞을 지날 때면 습관처럼 검둥이를 떠올린다. 생로병사가 자연의 섭리니 어쩔 수 없는 일, 지금 기억해보니 참 잘 생긴 녀석이었다.곰곰이 생각해보면 동물이건 식물이건 생명이 있는 것은 그 유한함 때문에 언젠가는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도 숱한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별이 있는가 하면 더러는 울림이 큰 이별도 있다. 검둥이가 떠나고 어느 날, 대문 앞에서 떨고 있는 병약한 새끼고양이를 만났다. 깨끗이 씻기고 사료를 우유에 불려서 먹이고 담요에 잠재운 후 이튿날 동물병원에 데려가니 워낙 쇠약하여 곧 떠날 것이라 하였다. 자는 듯 곱게 떠난 그를 종이 박스에 담아와 눈물을 찍어내고 있는 딸아이에게 위로랍시고 회자정리며 생로병사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으나 아기 고양이에게 생로병사가 어찌 가당한 일이겠는가.조그만 몸을 고운 한지로 여러 겹 싸서 뒷산 양지바른 곳에 정성껏 묻어 주고 명복을 빌었다. 이틀에 불과한 짧은 인연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만남이었다.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만남과 아픈 이별을 하게 될지.

2021-08-01

집콕 바캉스를 하며 본다

윤영대수필가 대서(大暑)가 지나니 더위는 대지를 달구며 푹푹 찐다. 낮 최고 온도가 35도를 넘는 기록에 기상청은 폭염 경보를 내보내며 불볕더위에 야외활동을 삼가고 집에 있으라고 한다. 장마는 벌써 끝났기에 소나기라도 한두 차례 퍼부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에어컨을 틀고 ‘집콕 바캉스’를 할 수밖에 없다.코로나19도 기승을 부려 확진자가 25일째 네 자릿수를 기록하고 방역은 거리 두기 4단계로 올랐다. 유흥시설, 다중이용시설 등도 문 닫고 스포츠도 무관중으로 하고 재택근무도 30% 정도다. 그러니 자연히 ‘집콕’이라는 생활 패턴에 묶여 그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나만의 새로운 취미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뭐니해도 선풍기 틀어놓고 TV를 보거나 온라인 게임을 하는 일이 많을 것 같다.다행히 요즈음은 도쿄올림픽 중이라 딱딱한 뉴스 시간에도 시원스런 승전보가 들려오기도 한다. 벌써 개막된 지 10여 일, 예상대로 ‘활·총·칼’ 경기에서 선수들의 피땀 어린 훈련과 자기 극복의 결과로 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고 자랑스럽다.일본 유메노시마 양궁장에는 혼성 단체, 남·여 단체에 이어 여자 개인에서 안산 선수가 치열한 접전 끝에 3관왕이 되어 네 번째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옛 중국은 우리를 멸시하며 동이(東夷)족이라 했는데 ‘오랑캐 夷’를 보면 ‘큰大’자에 ‘활弓’자가 걸쳐있어 ‘활 잘 쏘는 오랑캐’라 부른 것이 그래도 고맙다. 그 후예들의 활약으로 양궁에 걸린 다섯 개 금메달 중 4개를 딴 것이다. 참 장하다.펜싱에서도 남녀 각 종목 단체전에서 금 은 동을 가져왔고 사격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금까지 금 5, 은 4, 동 7개로 종합순위 7위에 올랐지만 앞으로 육상과 구기 종목에서도 메달의 꿈을 꾸는 것이 이 찜통더위 속에서 집콕하는 즐거움이기도 하다.그런데 요즘 또 다른 경기도 점점 열기를 더하는 것 같다. 우리 정치권의 올림픽, 대선(大選) 경기이다. 하나뿐인 대통령 메달을 목에 걸려고 여당 팀에서 8명이 나섰다가 2명이 자격 미달인 듯 탈락했고, 야당 팀도 8명 정도가 전열도 갖추지 못한 채 선수선발전에 뛰어들고 있다. 과연 이들 선수 중에는 도덕성과 품격을 가지고 진정한 국민화합을 통해 국가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올바른 마음과 강건한 추진력을 갖추어 국민의 시상대에 오를 만한 인재가 있는 것일까? 선발전을 치르면서 서로를 비방하고 잘못을 들추어내며 민심의 과녁에 눈이 멀어 입으로 침 튀기는 ‘말 화살’만 쏘고 있는 것 같아서 그 진실성도 염려되어 안타깝다.양궁을 끝내고 웃어주고 펜싱을 이기고 상대방을 안아주며 유도에서 자기를 이긴 상대방의 손을 번쩍 들어주고,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을 지르는 선수들을 보며 왜 정치권 선수들은 남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모르겠다. 편 가르기 싸움을 보면 괜스레 짜증 나고 불쾌감이 드는 것은 나만의 심경일까.무더운 폭염 속 집안에 갇혀 가까운 이웃 나라에서 땀을 흘리며 나라의 명예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우리 선수들의 건투를 빌며 그들의 열정으로 마음을 식힌다. ‘우리도 해낼 수 있다’.

2021-08-01

인구지진(Age Quake)

우리나라 인구주택총조사는 일제 강점기인 1925년 국세조사란 이름으로 처음 시작했다. 지금은 통계청 주관으로 실시되며 조사 인원만 무려 10만명 이상 동원된다. 국가 기본통계가 모두 수록되는 조사여서 광범위한 연구영역에서 자료가 활용된다. 통계의 꽃이라 불리는 이유다.통계청이 지난주 발표한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작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800만명을 넘었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년 전보다 0.9% 포인트 증가한 16.4%였다. 초고령사회(전체 인구의 20%)에 근접한다는 조사 결과다.지난 5월 우리나라 출생아 수가 2만2천명대로 떨어져 66개월째 감소를 기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상태라면 2030년에는 지금보다 315만명의 인구가 줄어들 것이란 예측이다. 우리나라 땅에서 부산시만한 인구가 9년 후에는 사라진다는 뜻이다.우리나라 출산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는 것은 어린애도 알만큼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심각한 인구 문제가 국정 최우선 과제로 올라온 적이 없다. 이 점이 우리를 더 우울하게 한다.홍남기 부총리가 2030∼2040년부터 인구절벽에 따른 인구지진이 일어날 거라는 발언을 했다. 인구지진이란 고령화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충격이 지진보다 더 심각하다는 뜻이다.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기업의 70%가 65세 이상 노인을 고용하고 있다. 노인만 남는 동네가 늘어 슈퍼 등이 문을 닫는 바람에 차를 몰고 10분 이상 시내로 나가야 생팔품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인구절벽의 심각성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짐작케 하는 내용이다. 인구문제를 해결할 능력자가 대통령으로 뽑혀야 할 것 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