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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항과 세계 최고 철강사

김유복전 포항뿌리회 회장 지난 8일과 9일 이틀 동안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제36차 글로벌 철강전략회의(Steel Sucess Strategies)에서 글로벌 철강전문분석기관인 월드 스틸 다이나믹스(WSD)가 발표한 글로벌 철강사 경쟁력 평가 결과, 대한민국 포항에 본사를 둔 포스코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뽑혔다는 내용이 국내 언론사의 주요 기사로 보도됐다. 12년 연속으로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보도에 의하면 포스코는 고부가가치제품, 가공비용, 기술혁신, 인적역량, 신성장사업, 투자환경, 국가위험요소 등 7개 항목에서 2년 연속 만점을 받았다. 특히 올해는 2018년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취임 이래 강조해온 미래성장동력을 위한 선제적 시재확보, 부채비율 감소 활동 등을 통한 재무건전성 항목 또한 만점을 기록하며 8.54점(10점 만점)으로 종합 1위를 했다.1999년 설립된 WSD는 매년 전 세계 주요 35개 철강사들을 대상으로 23개 항목을 평가하고 이를 종합한 경쟁력 순위를 발표해 오고 있다. 이 순위는 글로벌 주요 철강사들의 경영 실적과 향후 발전가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참고지표가 된다. WSD는 올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를 선정하며 포스코의 실적 회복, 친환경 소재 기업으로 변신, 세계 철강업계 탄소중립 추진 리더십 등을 높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포스코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글로벌 철강 수요산업 침체로 유례없는 경영위기를 겪었으나 지난 3분기 연결기준 매출 20조 6천억 원, 영업이익 3조 1천억 원을 기록하며 1968년 창사 이후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포스코는 올해 친환경 철강 제품 판매 강화, 이차전지소재 및 수소사업 확대 등 친환경 소재 전문 메이커로 사업구조를 전환해 나가고 있다. 지난 10월 철강업계 최초로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논의하는 수소환원제철 국제포럼을 성공적으로 주최하는 등 세계 철강업계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협력 방안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이렇듯 포스코의 괄목할 만한 성장 기저(基底)에는 CEO를 비롯한 전임직원들의 열정적인 헌신과 피땀 흘린 노력의 결과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임직원들의 헌신, 노력뿐만 아니라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창업정신과 함께 53년의 긴 세월동안 굳건한 믿음으로 상생해 온 지역사회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포스코가 세계최고 철강사로 자리매김하는 동안 우리 지역 또한 지속적으로 성장했음은 사실이다. 조국근대화를 이룩하는 산업화의 일등 공신인 포스코가 철강산업을 일구어 온 역사와 함께 포항의 역사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50만 대도시 면모를 갖춰 온 것은 틀림이 없다. 12년 연속 세계 최고 철강사로 선정된 포스코의 영광에 박수를 보내며 반세기의 역사를 넘어 100년 기업으로 지속 발전하기를 포항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세계최고 철강사를 둔 포항도 그에 못지않은 도시로 거듭나기를 소망해 본다.지난 18일 포항 환호공원에 333m 하늘길을 걷는 ‘스페이스 워크(Space Walk)‘가 준공식을 가졌다. 2019년 포스코 창립 50주년 기념사업으로 포스코가 117억 원을 기부해 만들어진 국내 최초. 최대 체험형 조형물이 철강도시 포항의 랜드마크로 멋진 경관을 자랑하며 시민들에게 공개됐다.‘클라우드(Cloud, 구름)’라는 작품명으로 세계적 작가의 설계로 건립된 ‘스페이스 워크’가 포항과 포스코 상생의 상징으로 길이 남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 같아 고맙다. 포항이 세계 최고 철강사 포스코와 함께 최고 도시가 되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이 곳곳에 느껴지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살아나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지역경제가 어젯밤 영일만을 훤히 밝힌 포항국제불빛축제의 불꽃처럼 찬연히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포스코가 기업시민의 기치를 높이 내걸고 ‘With Posco’, ‘With Pohang’으로 함께하며 세계 최고 철강사의 영예를 포항시민과 공유해 포항이 더욱 살기 좋고 행복한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한편으로 세계 최고 철강사를 가진 포항은 철강산업의 굳건한 바탕위에 수소, 이차전지, 바이오, 의료산업, AI 등 첨단산업을 융합하여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역량을 결집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또한 연구중심 의과대학 설립도 경북도와 포스텍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렇듯 포항과 포스코가 동반 성장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시민들과 하나 되는 협력정신이 세계 최고 철강사와 최고 도시가 가져야 할 덕목 중의 하나일 것이다.포항 발전이 포스코를 더욱 성장시킬 수 있는 굳건한 발판이 됐음을 공감하고 ‘포스코 사랑, 포항 사랑’의 아름다운 공생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포스코의 세계 최고 철강사 선정을 축하드린다.

2021-11-21

구미 ‘비밀의 정원’을 깨우다

장세용 구미시장 고즈넉한 가을의 끝자락, 수북이 쌓인 낙엽 위를 걷고 싶은 계절이다. 언제든 찾아갈 자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코로나19 팬데믹 위기는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도시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현대사회에서 녹지공간은 시민의 삶과 도시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교통이나 치안보다 공세권과 숲세권(공원과 녹지 주변)을 주거 공간 선택에 있어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최첨단 산업도시라 자부하는 구미시 역시 신성장산업 육성 못지않게 녹지공간 조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비단 구미뿐 아니라 현재 대다수의 도시들이 도시공간구조를 재편하고 도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 중이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녹색생태 도시로의 전환 말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질병, 기후, 경제 위기 등 도시와 인류가 직면한 시대적 요구와 무관치 않다.최근 구미시는 산림청과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이 실시한 녹색자금 지원 ‘치유의 숲’ 전국 공모 사업에 최종 선정되면서 선산 산림 휴양타운 조성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32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제법 큰 산림 프로젝트다.이번 사업은 무엇보다 지방정원 조성이 핵심이다. 선산읍 노상리 일원 30ha 부지에 들어설 물소리정원, 시민참여 정원, 빛의정원 등의 6개 테마 정원은 우리 구미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형태의 숲속 지방정원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그동안 사업의 예산 확보를 위해 산림청과 경북도 관련 부서를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모른다.한때 우리는 정원을 집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 정도로 인식했지만,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 박람회 개최 이후 정원의 위상은 현저히 달라졌다. 정원법이 생기고 관련 정책들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국내 등록 정원도 늘어나 현재 순천만 국가정원과 태화강 국가정원을 비롯한 지방정원 2곳 등 전국에 등록된 정원이 총 44곳이다. 조성 중인 정원도 20여 군데가 넘는다니 정원에 대한 관심과 성장은 가히 폭발적이다. 정원이 개인의 영역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진화하는 중이다.구미는 정원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 산업이 발달한 첨단도시지만 구미의 이면에는 천혜의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자원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 해답을 찾아 정원도시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현재 구미시는 2007년 사용이 종료된 구포매립장 상부 버려진 공간을 활용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차별화된 테마정원을 조성하고 있다. 주민참여형 치유정원과 숲을 품은 자연친화 에코정원, 감각적 놀이 활동이 가능한 감성정원은 도시민들에게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우고 지역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다른 한 곳은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찾아오는 해평습지다. 비옥한 농경지와 배후습지가 발달돼 다양한 철새들이 찾아오는 해평습지는 경북을 대표하는 생태습지로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필자는 해평습지가 순천만 국가정원이나 태화강 국가정원에 버금가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지방정원조성을 시작으로 해평습지를 국가정원으로 만들기 위한 큰 그림을 그려나가려 한다. 낙동강 인근에 분포되어 있는 해평습지 일대를 복원해 수변생태공간과 두루미 서식지, 시민들을 위한 생태체험 공간 등 구미의 자연과 문화가 살아 있는 거점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마침 정부가 추진하는 두 축인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의 맥락으로도 정원조성의 경제·사회적 가치는 실로 엄청나다. 구미의 정원조성사업은 이제 막 시작 단계다. 행정의 노력만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 시민과 경북도민의 협조와 참여가 필요하다. 이제 숨어있는 구미 비밀의 정원을 깨울 때다.

2021-11-21

왕릉 가는 길

늘 지나쳐 가기만 했었다. 경주 산림연구원에서 통일전으로 달려가다 보면 헌강왕릉이란 표지판이 휙 다가왔다 사라진다. 산기슭으로 오르면 능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는데 매번 모른 척 지나왔었다. 오늘은 사람 없는 조용한 곳으로 산책가자 하니, 그곳이 떠올랐다.역사 선생이란 이름으로 평생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린 남편에게 헌강왕은 신라 몇 대 왕이냐 물었다. 검색해 보아야 안다고 하니, 역사무지랭이인 나와 다를 바 없네 하고 놀리니,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중요한 업적도 없는 왕까지 어찌 아느냐고 받아친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신라의 왕이 몇 명이었는지 배운 기억이 없다. 조선시대는 ‘태정태세문단속 예성연중집단속’ 이러면서 운율까지 넣어 외웠지만, 삼국시대는 먼 나라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경주 가까이 살아서 그 유명한 선덕여왕이 27대 왕으로 첨성대를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삼국 통일에 힘쓴 이들을 모신 통일전에 차를 세웠다. 지난주 노랗던 은행잎 가로수 길은 겨우살이 준비를 끝낸 듯 빈 가지만으로 손님을 맞는다. 주차장 가에 ‘동남산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섰다. 교촌마을에서 시작해 서출지까지 걷는 코스인데, 헌강왕릉을 지나가도록 길을 표시해 두었다.헌강왕릉을 향해 가다 보니, ‘정강왕릉’이란 표지판이 먼저 우리를 반겼다. 표지판의 손짓을 따라 올려다보니 살짝 오르막길이었다. 소나무들이 도열한 병사들처럼 능까지 이어져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걷기에 좋은 산책로였다. 소나무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곳에 철모르는 진달래 두 송이가 폈다. 늦가을 숲에 봄처녀 진달래가 길을 잃었나 싶어 가까이 가서 눈맞춤을 해줬다. 갈바람에도 떨지 말고 잘 견디라고 속삭여주었다.정강왕릉은 추석에도 벌초를 받지 못한 듯 억새를 머리에 가득 이고 있었다. 둘레에 복원하다 남은 석재들이 누워 제자리를 찾아주길 기다린다. 둘레솔 덕분에 그래도 능이라는 모습을 잃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형의 능으로 가려면 왔던 길을 내려가야 하나 싶었는데, 헌강왕릉으로 가는 길이 옆으로 나 있다. 가을 햇살이 따가운데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 길을 가니 참 좋다. 누런 솔잎이 떨어져 걷는 이에게 푹신한 발걸음을 안겨준다. 소나무 사이로 늦가을 들을 지나오며 서늘해진 바람이 스친다. 마른 잎들이 바스락 몸을 떤다. 길 곳곳에 망개 열매가 빨갛게 익었고, 건너기 상거러운 골짜기에는 나무다리도 놓아 300m 거리에 형이자 선왕인 헌강왕릉까지 숲길이 이어졌다. 숨이 차기도 전에 봉긋한 능이 나타났다. 동생이 누운 자리에 비해 사람의 손길이 더 갔는지 봉분이 멀끔하다. 양식이나 크기는 두 능이 거의 똑같지만 정강왕릉에 경주시의 관심이 덜 미친 것 같다.삼국사기에서는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고 하는데 현재 경주 남산동에 있는 이 능을 현대 학자들의 연구 결과 실제 정강왕의 능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무덤의 양식은 9세기 말엽에 재위한 정강왕 때보다 좀 더 이전 시기의 양식이기 때문에 제47대 헌안왕의 무덤이 아닐까 했다. 그러면 정강왕이 묻힌 무덤은 어디일까? 진덕여왕릉으로 알려진 고분 뒤에 있는 대형 봉토분을 왕릉으로 본다면 헌강왕과 정강왕의 능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다른 곳이라 해도 형제의 능은 지금처럼 꼭 붙어 있다. 우리의 무관심을 형제애로 이겨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동남산 가는 길로 길을 잡았다면 숲으로 꼭 오르길 바란다. 많이도 말고 5분이면 능에 다다른다. 일타쌍피, 한꺼번에 두 개의 능을 만날 수 있으니까. 날이 좋은 날은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어 좋고, 바람이 많은 날은 숲이 온화하게 감싸주어서 좋다. 여러 날 중에 가장 좋은 날은 사진작가들이 새벽녘에 찾는다는, 비 온 다음 날 아침이다. 안개가 소나무 사이로 거닐다 능 앞에서 하늘로 오르는 멋진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주말에 비가 온다는 소식이다. 안개에 둘러싸인 왕릉을 볼 좋은 기회이다./김순희(수필가)

2021-11-21

포항 과메기

과메기는 11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가 제철이다. 이때가 지나 과메기를 맛보려면 또 한해를 기다려야 한다. 제철 음식이 좋은 것은 싱싱하고 맛있고 영양가도 높기 때문이다.포항은 과메기 집산지다. 전국 과메기 생산의 95%가 이곳에서 이뤄진다. 경북 동해안 일대에서 생산되는 과메기가 전국으로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지금은 어디를 가나 겨울철 밥상이나 식당에 과메기가 등장할 만큼 대중화 단계에 들어섰으니 격세지감이 있다. 주생산지인 포항도 과메기 덕분에 과메기 도시로 유명해졌다. 과메기가 음식으로 고안된 것은 내륙지방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만들어진 것과 비슷하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에 안동에서 생선 맛을 보려면 소금으로 간을 쳐 잘 보관해야 가능하다. 안동의 고등어 간잡이는 생선을 소금으로 절여 숙성시키는 기술자란 뜻이다. 생선을 주로 먹는 나라마다 간잡이가 있다.과메기도 겨울철에 많이 잡히는 청어나 꽁치를 오래 두고 먹고자 고안한 방법이다. 꽁치를 그늘에 늘려두고 바닷바람에 얼렸다 녹혔다 하며 말린 후 먹는 요리다. 일본 내륙지방 교토에서도 청어의 피와 내장을 제거하고 훈제와 말리는 과정을 거쳐 만든 ‘미가키 니싱’이란 과메기와 비슷한 음식이 있다. 과메기는 말리는 과정에서 맛이 담백해지고 영양가도 높아진다.포항 구룡포과메기 서울홍보 및 체험행사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다. 올해는 ‘과메기 도시락에 날개를 달다’를 주제로 했다. 코로나로 등장한 배달트렌드에 맞춰 언제 어디든 과메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콘셉트로 삼았다. 지난해는 코로나로 인해 판매가 잠시 주춤했다. 올겨울은 위드 코로나와 함께 포항 과메기가 다시 대박났으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1-21

유력 대선후보들의 ‘열린귀’ 아쉽다

심충택 논설위원 신라 제48대 경문왕 때 경주 도림사 대나무 숲속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렸다는 삼국유사 설화는 정치권력의 ‘막힌 언로(言路)’를 풍자한 글이다. 현 정권의 메인스트림인 586세대도 대학시절 언론의 자유를 목말라했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에게 거의 유일했던 의사표현의 도구는 신문방송이 아니라 대자보였다. 그러면 그들이 180석 국회의석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한 현 정부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열려 있는가.지난해 한 대학생이 대학 구내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법원이 유죄(벌금 50만원) 판결을 내린 것은 현 정권의 언론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정부 비판 대자보를 붙인 것에 무단침입 혐의를 씌워 기소를 하고, 법원이 독재 정권에도 없었던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왔다.더불어민주당이 또다시 언론장악을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연말까지 가동하는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위에서 언론에 대한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을 비롯해 신문법, 방송법 등 언론 관련 법안을 패키지로 논의한다고 한다. 정상적인 언론사의 취재행위를 법으로 차단하고 대자보시대를 열자는 것과 다름없이 생각된다. 문제는 차기 유력 대통령후보들의 언론관도 현 정치권력과 다름없다는 점이다.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최근 자신에 대한 언론보도와 관련 “우리가 언론사가 돼야 한다. 저들의 잘못을 우리의 카톡, 텔레방 댓글로 커뮤니티에 열심히 써서 언론이 묵살하는 진실을 알리자”고 했다. 이 후보는 지난 14일 경남 거창군청 앞에서도 지지자들에게“기울어진 운동장, 나쁜 언론 환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즉흥연설을 했다. 이 후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한창 논의 중일 때 이 법안에 대해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은 약하다.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언로가 막혀 소통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변의 충고를 듣는 것을 꺼려해 중진급 국회의원들도 그의 방을 찾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윤 후보가 기자들과의 접촉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소리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언론 인터뷰 등을 최소화하고 기자들이 캠프사무실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대선 경선기간 동안 그의 캠프는 ‘서초동 캠프’라고 불렸다. 캠프가 마치 검찰청처럼 폐쇄적이고 관료화돼 있다는 의미다.유력 대통령 후보 모두 우호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은 가까이하고, 비판언론은 멀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언론의 근본적 기능이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자이자 비판자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비판을 감당하는 것은 정치인의 숙명이다. 언론은 권력자들의 홍보도구가 아니다.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에게 언론에 대한 거부감이나 적대감을 버리고 언론의 견제 비판 기능을 즐길 줄 아는 철학을 가지길 권한다. 권력자가 비판의 소리를 포용하는 역량이 없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고, 역사적으로도 뒤끝이 좋지 않았다.

2021-11-21

선비가문의 전통, 양동마을

윤영대수필가 경주 양동마을은 500년 전통을 가진 역사 마을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설창산을 업고 넓은 안강 들판의 정기를 안으며 기와집과 초가집 150여 채가 하늘의 별처럼 어울려있는 성라고택촌(星羅古宅村)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를 중심이 되어 처가입향으로 집성촌을 이룬 씨족 마을이며 우재 손중돈(愚齋 孫仲墩)과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등 많은 유학자를 배출하였다.먼저 이향정(二香亭)에 갔으나 안뜰의 향나무를 보지 못하고 내려와 마을체험관에서 여러 가지 전통문화 체험을 하고 나온 학생들과 섞여서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인 심수정(心水亭)으로 올라갔다. 농재 이언괄(聾齋 李彦适)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고 ‘마음을 고요한 물 같이 가져라’는 뜻이다. 우람한 느티나무 숲 정자에서 바라보는 마을 정경 또한 일품이다. 근처 강학당을 보고 큰길을 따라 거림(巨林)까지 올라가서 안골로 들어갔다.큰우물에서 두레박도 올려 보고 능선 바로 아래 지어진 근암고택과 상춘헌, 사호당 등 이씨 집안 고택을 살펴보았다. 전통적 남녀유별 생활상이 엿보이고 사랑채와 화단이 멋있게 배치된 뜰을 기억하며 내려와서 깨끗한 마을 길을 걷는 마음은 평온하다. 서백당(書百堂)이 새겨진 큰 바위 옆 흙담 길을 오르면 경주 손씨의 대종가로 이 마을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襄敏公 孫昭)가 지었다는 송첨종택(松7C37宗宅)이 있다. 대학자 손중돈과 이언적이 태어난 명당 터라기에 사랑채 쪽으로 들어가니 밑둥치부터 세 가지로 자라서 혼자 숲을 이룬 500년 된 향나무가 풍성한 품을 내어준다. 서백당 누마루에서 사진을 찍고 ‘참을 인(忍)’자 백번 쓰며 인내를 기른 선비의 가르침을 되새겨본다. 고택 이름들은 옛날 살았던 주인의 호를 땄단다.옆 언덕의 낙선당을 들렀다가 앞쪽 산길을 올라가니 안계 댐 공사로 이곳까지 옮겨온 경산서당(景山書堂)이 대문을 열어 반긴다. 조용한 안뜰로 들어가면 높은 기단 위 강단의 마루에 걸린 현판들의 가르침이 훌륭하다.안골 언덕에 올라 성주봉을 보면 고즈넉하고 멋스런 기와집 26채를 품은 마을은 아직도 후손들이 살고 있는 ‘정주형 문화유산’이다. 물봉골 대성헌을 보고 양동마을의 대표적 저택인 보물 제411호 무첨당(無5FDD堂)에 갔다. 깨끗하고 커다란 사랑채 마루에 걸린 많은 현판 중에 ‘좌해금서(左海琴書)’란 특이한 글씨체는 ‘영남의 대표 가문’이라는 대원군의 죽필(竹筆)로 쓴 글이다.국화꽃이 고운 큰길 개울가 연못에는 선비들의 마음처럼 수련이 자라고 있다. 보물 제412호 향단(香壇)길은 한양으로 올라간 형을 대신해서 동생 이언괄이 노모를 모셨다는 곳, 독특한 화려함이 돋보이는 고택이다. 마지막으로 앞 언덕에 있는 보물 제442호 관가정(觀稼亭)으로 갔다. 누마루가 멋있는 청백리 손중돈의 간결한 살림집이다. 향나무들이 허리 굽혀 넘보는 담장 밖으로 나와 평화로와 보이는 마을을 나서면 안강 들판을 씻어온 형산강둑엔 하얀 갈대가 하늘대고 있다.

2021-11-21

기억과 망각의 싸움

조현태​​​​​​​수필가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자 대문 우편함에 눈길이 갔다. 자질구레한 자동납부 통지서와 얇은 책 한 권이 꽂혀있었다. 이미 납부된 요금은 이메일로 확인한 내용이었다. 따로 영수 통지서를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매번 우편으로 발송되니 본척만척하고 휴지통에 던졌다. 이런 통지서를 모두 생략한다면 엄청난 종이와 재원이 절약될 텐데. 책만 가지고 들어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뒤적거렸다.두어 시간 지났을 때, 전화할 일이 있어 휴대폰을 찾으니 없었다. 아차! 자동차 거치대에 두고 왔구나. 그새 부재중 착신이 네 개가 떴다. 차례대로 전화를 했더니 하나같이 전화도 받지 않고 뭐가 그리 바쁘냐고 타박이었다. 여차저차 하였다고 설명하자 정신을 어디다 두고 그러느냐는 핀잔까지 했다. 근래에 깜빡증이 점점 늘어난다.살다보면 이러한 깜빡증이 아니라 영원히 잊어버렸으면 더 좋을 일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반세기가 지나도 또렷이 남아있으니 오히려 애석하다. 특히 가슴깊이 새겨졌던 아리고 쓰린 생채기에 대한 기억은 왜 잊어버릴 수 없을까. 어쩌면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애꾸눈이라고 놀림 받던 기억, 삼층 옥상에서 추락하여 죽지 않고 발목만 박살났던 사건, 애인 빼앗기고 사기 당해도 대거리 한 번 못하고 풀이 죽어 술만 퍼마시던 아픔…. 차라리 야생동물처럼 몇 초 만에 잊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듬어보면 뼈아픈 추억이 쉽사리 되살아나는 감정은 그 당시에 새겨진 상처가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불행이 싫어서 얼른 잊고 싶은 반면 행복은 좋아서 오래 기억하고 싶을까. 그러면 행복도 사라지지 않는 상처만큼 평생 동안 잊지 못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았던 행복은 상처만큼 오래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노력하는 만큼 행복이 보장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아팠던 것만큼 오래 간직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좀 더 행복하고픈 욕심이 작용하니까. 그래서 더욱 노력해야 할 터이다. 다시 말하자면 행복은 항상 미완성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욕심’을 빼면 ‘미완성’도 없어지는 계산이 된다. 그렇다면 빨리 잊을수록 좋을 것 같은 아픔은 왜 미완성이 없을까. 당연히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행복이 되려면 더 이상 행복하려하지 않아야 하리라.휴대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사소한 일이든, 생명을 잃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든 망각했다는 것은 같다. 하찮은 일은 용서되기 때문에 또 잊어버려도 되고, 대단한 일은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좋았던 것은 기억할수록 좋고, 나빴던 일은 잊을수록 좋지 않은가.기억과 망각이 맞서 싸운다면 어떨까. 싸워서 이긴 자의 쾌감보다 패배한 자의 처절함이 훨씬 더 진할 터이고, 패배는 쉬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싸움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을 바에는 질 것을 염려해야 할 터이다. 여차하면 시비나 걸고 상대를 깔아뭉개야 내가 살아남는다는 삶의 방식이 너무 식상하다. 기억과 망각이 손잡고 미완성에 도전하는, 그래서 끝없이 노력하고 삶을 경영하면 좋겠다.

2021-11-21

킹메이커

로저 스톤은 부동산 재벌에 불과했던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인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그는 정치인이자 타고난 선거 전략가로 평가를 받았지만 권모술수에 능란해 워싱턴 정가에서는 정치 자문가인 동시에 ‘더러운 사기꾼’으로도 통했다.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는 로저 스톤의 탁월한 전략이 있었다. 그는 트럼프와 30년 지기로 같이 활동하면서 그의 개인 정치고문 역할을 줄곧 해왔다. 둘은 여러 면에서 궁합도 잘 맞았다고도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톡톡 튀는 발언 가운데는 로저 스톤의 조언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그의 정치적 신념을 엿보게 하는 말로 그가 자주 쓴 표현 중 “완전 무명보다는 악명이 낫다”는 말이 유명하다. 그는 스스로 스톤의 법칙을 만들어 그 룰에 따라 정치 전략을 구사했다. “잘못을 인정하지 말 것” “모든 것을 부정할 것” “공격당하면 반격할 것” 등이 핵심이다.그의 정치 역정은 미국 넷플릭스에서 ‘킹메이커’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영되기도 했다.그는 2019년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돼 40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트럼프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이용, 그를 감형한다. 사상 최악의 부패행위라는 비난 여론이 있었지만 트럼프는 그해 11월 실시될 선거에 그의 정치 전략이 필요했었다는 분석이다.우리 정치사에도 킹메이커가 등장한다. 노태우,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김윤환 전 의원과 김대중 대통령을 당선시킨 김종필 전 총재 등이 그들이다. 내년 대선을 두고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이해찬 전 대표의 킹메이커 역할론이 등장했다. 선거 열기 속에 그들의 대결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1-18

아수라 vs 내부자들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내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 과거 개봉한 영화 두 편이 화제다. 바로 영화 ‘아수라’와 ‘내부자들’이다.두 영화는 모두 국산영화로 정치권력의 부패를 다룬 영화인데, 묘하게도 현재 여야 후보인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를 겨냥한 듯한 설정이어서 공교롭다고 해야할 지, 선견지명이 있다고 해야할 지…. 전여옥 전 국회의원은 최근 SNS에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1위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장동 특혜 의혹’을 거론하면서 “이름하여 ‘대장동 개발사업’ 아주 이상하기 짝이 없는 ‘아수라’의 악취가 풍긴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영화 ‘아수라’를 빗대어 이재명 후보를 공격한 것이다. 김성수 감독이 연출한 ‘아수라’는 2016년 개봉한 영화다. 가상의 도시 안남시를 배경으로 부패한 박성배(황정민)와 시장의 비리를 캐내려는 검사 김차인(곽도원), 그 사이에 낀 형사 한도경(정우성)의 물고 물리는 정치범죄 스릴러물이다. 영화에서는 안남시의 부동산 개발사업과 이를 통해 시장 박성배가 각종 이권을 챙기고 범죄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화 배경이 된 안남시라는 도시명부터 이재명 후보가 시장으로 재직했던 성남시를 연상시키는 데다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을 받고 있는 이 후보를 겨냥한 듯한 영화 줄거리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경선단계부터 시작해 ‘아수라’ 영화를 적극 소환해 이재명 후보를 공격하는 소재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양상이다.민주당에서는 영화 ‘내부자들’을 공격소재로 소환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이 영화에 나오는 부패 정치인 장필우와 겹친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라디오에 출연해 윤 전 총장을 향해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대선 후보 장필우처럼 ‘X라 고독하구만’ 대사를 반복하며 소주 드실 날이 머지않았다”라고 했다.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내부자’들은 2015년 개봉했다.기 의원이 언급한 장필우는 부패 정치인으로 재계, 언론과 결탁해 대권을 넘보는 인물로, 과거 조폭과의 전쟁에서 이름을 날린 검사 출신이기도 하다. 장필우는 결국 각종 비리가 드러나 파멸의 길을 걷는 데, 영화 말미에 쓸쓸하게 소주를 마시며 “X라 고독하구만”이란 대사를 내뱉는다.정치 권력의 부패를 다룬 두 영화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크게 주목받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 그동안 정치권의 부패와 해악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적지않았지만 유달리 두 영화는 영화배경이나 인물설정이 현 여야 후보와 닮은 꼴이라 공교롭다.이런 영화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마 정치에 대한 환멸이나 염증,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제작자의 의도야 정치권력의 부패를 정면비판하고, 이런 정치인들을 정치판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생각이었으리라. 하지만 두 영화가 그린 인물이 무작정 비현실적이란 단정을 내리기도 어려웠다.그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이,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영화를 불러들이니 그게 서글플 따름이다.

2021-11-18

지방대가 어때서?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최근 모 국회의원이 자기가 나온 대학을 “지방대”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세간의 비판을 받고 있다. 해당 대학 학생과 졸업생들은 모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고 의원실로 연일 항의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그 대학은 사실 수도권에 있어서 지방이라고 말할 수 없는데도 소위 세간의 ‘인서울’에 대한 우열감으로 지방대로 분류하고 있는 모양새이다.해당 의원은 과거에도 ‘지방대 출신임에도 KBS 아나운서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취지의 표현을 사용한 사실이 있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SNS를 통해 ‘블라인드 채용법’ 발의를 예고하며 지방대를 졸업했지만 블라인드 채용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선의로 해석하면 ‘블라인드 채용법’의 취지를 강조하여 국회를 통과하기 위한 열성에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출신 대학을 낮추고 자신의 성취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해당 의원의 지방대 차별화는 그것이 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당연시 받아들여져서도 안 되고 공개석상에서 비하 발언을 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비하 발언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과거 모 대학 교수님도 국회 증언에서 “지잡대”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어 큰 파문을 일으켰던 기억이 있다. 국회에서 이러한 단어가 나왔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다. 우리는 사실 지방대는 물론 지방이란 단어 자체를 쓰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서 지방이란 단어는 열등하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지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지방정부, 지방공무원, 지방대학, 지방신문…. 지방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단어이다. 서울이라는 중앙에 대응하는 단어로서의 지방은 그 본래의 의미는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방이란 단어가 한국에서 중앙에 대한 대등한 개념이 아닌, 열등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방대’란 단어다.세계화 시대에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져야 할 필요가 없는 나라이다.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거의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 국토에 걸쳐 사람들이 퍼져 살고 있다. 그만큼 좁은 나라다.좁은 나라의 미래의 번영은 세계화에 있다. 우리는 일체 ‘지방대’는 물론 ‘지방’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말아야 한다.지방에 있다고 열등한 것도 아니고 중앙에 있다고 우수한 것도 아니다. 각 지역의 객체들은 세계로 도약하며 각개 약진을 해야 한다.지방대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단어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파괴시키고 한국의 고절적인 이분법을 고착시킨다.한마디 묻고 싶다. 도대체 “지방대가 어때서?”

2021-11-18

합리적 추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인생에는 합리적 추론이 필요할 때가 많다. 사람의 심리는 복잡 미묘하고 안팎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리학이나 논리학, 정신의학 등에서 합리적 추론에 관련된 연구를 해왔다. 물론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영역 말고도 상식적 수준에서의 합리적 추론은 일상생활에서 다반사로 있는 일이다. 사람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시시각각 분별하고 판단해서 삶을 영위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합리적 추론이 필수적인 요건이 아닐 수 없다.추론(推論)이란 이미 알고 있거나 확인된 정보로부터 논리적 결론을 도출하는 행위나 과정을 말한다. 즉 어떤 판단을 근거로 다른 판단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나 자료가 이치에 맞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합리적 추론의 과정이 필요하고, 합리적 추론을 위해서는 기왕의 사실이나 정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개인적 호불호나 이념적 편향에 등에 따른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정보의 수용에서부터 왜곡이나 오류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여당 대선 후보 배우자가 한밤중에 낙상(?)을 해서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 사건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여당에서는 가짜뉴스에 강력 대처하겠다며 유포자 두 명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가짜뉴스의 확산에 빌미를 준 것은 사고경위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는 낙상사고라고만 했다가 나중에는 구토 설사 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열상을 입었다는 해명이 뭔가 미심쩍은 뉘앙스로 받아들여진 거였다. 병원 진료기록에는 오심 구토 설사 의식소실이라고 적혀있다니 일단은 그것을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그런데 그날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야근을 마치고 퇴근했다가 다시 불려나가 질책을 당했다고 한다. VIP의 사건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이유란다. 누가 시청의 익명게시판에 올린 그 사실이 일파만파로 퍼져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사고 당사자가 VIP일 경우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데다, 그게 어찌 퇴근한 사람을 불러내어 문책할 만큼 다급하고 중대한 일인가. 다음날 출근을 하면 불러도 충분한 일인데,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퇴근한 구급대원을 서둘러 불러낸 것에는 필시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아마도 그 상급자는 어디로부터 무슨 지시(?)를 받지 않았을까, VIP의 사건을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문책이란 구실일 뿐이고, 그날 그 사고현장에서 구급대원들이 보고들은 일체의 사실에 대한 함구령을 내리려는 것이 화급히 불러낸 진짜 이유가 아닐까.대선정국에는 온갖 가짜뉴스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거짓으로 꾸며서라도 자기 편 후보는 미화하고, 상대편 후보는 어떻게든 흠집을 내기 위해 흑색선전에 혈안이 된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이 합리적 추론에 따른 올바른 판단으로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이번 선거는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한판 승부다.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 오로지 국민들의 판단과 결정에 달렸다.

2021-11-18

존재의 용기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랍비이며 사회 운동가인 마커스는 부켄발트 강제수용소에 숨겨져 있던 904명의 아이들을 발견하고 이들을 구출하는데 힘썼다. 그때 구출 받은 아이 중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엘리 위젤이 있었다. 위젤은 유대인들이 교수대에서 죽어갈 때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라고 탄식소리를 듣는다. 신의 부재는 위젤이 수용소에 있는 동안 내내 던진 질문이었다. 그 순간 그는 “나는 교수대에 죽어가는 저들과 함께 있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신이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부재를 깨닫고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를 구출하는데 힘쓴 마커스는 아들이 소아마비로 죽자 절망 가운데 아인슈타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때 아인슈타인은 “아들이 더 이상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식이 불러오는 ‘착시적 망상’에 불과하며 존재의 방식을 달리할 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했다. 틸리히는 죽음이 가져오는 절망은 존재하던 것이 없어지는 ‘비존재의 충격’때문이며 만일 죽음이 비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을 달리하는 것으로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고 하면서 이를 ‘존재의 용기’라 했다. 비존재는 절망을 가져오지만 존재는 희망과 용기를 불러온다는 공통된 생각이었다.

2021-11-17

모성의 순례지

백후자수필가 가을이 만든 하늘·바람·빛을 먹은 이파리에 물이 든다. 초록이 빛을 잃으며 노란 물이 오른다. 노랑이면 단연 은행나무다. 은행나무를 찾아 떠난 길, 바알간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 밭을 지난다. 나지막한 산길을 따라가서 다다른 곳은 청도 적천사다.일주문 대신 은행나무가 마중을 한다.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바람소리만 스칠 뿐 고요하다. 발소리를 죽이며 둘러본다. 젊은 부부 한 쌍이 공양미를 올린다. 둘은 부처님 앞에 공손하게 삼배를 올리고 한참 머물다 나간다. 어느 한때 내 모습을 보는 듯하여 저절로 눈길이 따라간다. 법당을 나선 부부는 천왕문을 나서서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나란히 걷는다.적천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천년에 가깝다. 고려 명종 5년, 보조국사 지눌이 오백 명의 수도승을 머물게 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절을 중건할 당시, 절 부근 숲속에 도적이 들끓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조국사가 가랑잎에 범 호(虎)자를 써서 신통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풀어 놓으니, 도적이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한다. 당시 보조국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곳에 은행나무가 자랐으니 천연기념물 제402호, 적천사 은행나무다.적천사 은행나무는 삼 미터까지는 하나의 줄기이다. 그 위로 세 개의 가지로 나뉘어 자란다. 높이 이십팔 미터에 둘레가 십일 미터 가량으로 암나무이다. 바로 옆에 또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수령은 다르나 비슷한 키 높이로 견준다. 두 나무는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늘어뜨려 맞잡으며 나란히 서 있다. 두 은행나무의 다정한 모습에 부부 은행나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둘 다 열매가 맺히는 걸로 봐서 암나무이다.적천사 은행나무의 특별함은 유주(乳柱)이다. 유주는 오래된 은행나무에 생긴다. 은행나무의 줄기에 상처를 입으면 은행나무는 스스로 치유하는데, 그것이 바로 유주이다. 특정의 방어물질이다. 대체로 동글동글하게 생긴 것이 모유의 줄기인 유두와 흡사하다. 그런데 적천사 은행나무의 유주는 모양새가 독특하다. 굵직하고 기다란 고드름처럼 생긴 것, 짧고 뭉뚝한 방망이처럼 생긴 것, 둥근 혹처럼 생긴 것도 보인다.유주는 여인네의 젖가슴과 닮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글자 그대로 ‘젖기둥’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근과 더 닮은 이유로 예로부터 아들을 낳고자 하는 여인네들의 등살에 도려져 나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적천사의 은행나무 유주는 길쭉한 생김새가 남근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남아를 잉태하고자 하는 이들의 순례지가 되었다.법당에서 보았던 젊은 부부가 은행나무 밑으로 간다. 두 손을 꼭 모으고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가만히 유주를 쓰다듬는다. 아이를 간절히 바랐던 때가 있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젊은 부부를 가만히 지켜본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원하는 곳에 가닿기를 바란다.불투명한 일, 내가 가진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 있다. 마치 막다른 골목에 선 것 같을 때 인간은 신앙을 찾는다.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일지라도 내가 믿으면 신앙이다. 내 안의 울분을 토해낼 수 있는 곳, 내 안의 답답함을 기탄없이 다 들어주는 곳. 있는 자 없는 자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해주는 곳, 그것이 바로 신앙이다.모든 건 마음에 있다. 내 마음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은행나무 아래 서서 유주를 바라보며 간절히 바란다면 그것 또한 신앙이다. 토테미즘이면 어떻고 샤머니즘이면 또 어떤가. 그 또한 마음이 가는 곳이다. 간절함의 끝에 닿으면 통한다고 했다.백 년도 채 못사는 인간이 천년 은행나무 아래에 선다. 울룩불룩 올라온 유주가 눈에 들어온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두 손이 저절로 모아진다.

2021-11-17

눈 내린 날 우리는

우리네 강산은 아름답다. 봄에는 새파란 잎과 들꽃,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바다가 펼쳐진다. 가을에는 온 산에 단풍, 겨울이면 하얀 눈이 세상을 덮는다. 사계절이 순환하고 계절마다 자기 풍경을 펼치는 자연이 있어 우리네 삶도 다채롭다.함박눈 : 함박꽃 송이처럼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눈. 가루눈.싸라기눈 : 빗방울이 갑자기 찬바람을 만나 얼어서 떨어지는 쌀알 같은 눈.가랑눈 : 조금씩 잘게 내리는 눈.눈설레 : 눈과 함께 찬바람이 몰아치는 현상.도둑눈 : 밤에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살그머니 내린 눈.떡눈 : 물기를 머금어 떡처럼 척척 달라붙는 눈송이.살눈 : 얇게 내리는 눈.설밥 : 설날에 오는 눈.숫눈 : 눈이 와서 덮인 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눈.길눈 : 한 길이 되도록 쌓인 눈.눈석임 : 쌓인 눈이 속으로 녹아 스러짐.소나기눈 : 폭설.자국눈 : 발자국이 겨우 날 정도로 적게 온 눈.잣눈 : 잔 자쯤 온 눈.풋눈 : 초겨울에 약간 내리는 눈.우리에게는 눈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첫눈 내리는 날 어디서 만나자. 손톱에 들인 봉숭아 꽃물이 첫눈 오는 날까지 남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꿈은 눈처럼 순수했다. 꿈은 눈 녹듯 눈석임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날까지 기다리는 설렘이 있었다.‘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첫눈 오는 날 만나자/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팔짱을 끼고/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더러 사먹기도 하면서/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첫눈 오는 날 만나자/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에 성에가 하얗게 끼어 있었다. 뙤창문을 입김 호호 불어 닦아, 바깥을 내다보면 밤새 도둑눈이 함박 내려 마당이 온통 하얬다. 문을 열면 낯설고 환한 세상이 펼쳐졌다. 바깥으로 나가 신발을 신고 처마를 나설 때, 숫눈 위에 차마 첫발을 내디딜 수 없었다. 뽀드득 한 발 뽀드득 두 발, 발자국을 찍는 감촉이 참 좋았다. 그렇게 첫 발자국은 길이 되었다. 발자국은 사립문을 지나 고샅으로 나가 이웃과 이웃을 이었다.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공터에 모였다. 눈을 수박만하게 뭉쳐 굴렸다. 이쪽으로 굴리고 저쪽으로 굴리고, 눈덩이는 점점 커졌다. 힘에 부쳐 더 굴릴 수 없을 때, 다시 눈을 뭉쳐 굴렸다. 굴린 눈덩이가 적당히 커지면 큰 눈덩이 위에 올렸다. 헌 양은 대야를 씌우고 숯덩이로 눈코입을 만들고 솔가지를 꺾어 수염으로 붙였다.집집마다 골목마다 눈사람이 섰다. 곰방대를 물고 담배 피는 할아버지 눈사람, 큰 냄비를 쓰고 나무 창을 든 병정 눈사람, 이제 걸음마를 뗀 자식 같은 눈사람, 자기 멋대로 생긴 눈사람, 참말이지, 할머니 같고 동생 같고 가족 같았다. 밤새 추위에 떨까 봐 목도리를 둘러주기도 했다.서너 명씩 패를 짜서 눈싸움을 했다. 눈을 뭉치고 던지고 날아오는 눈뭉치를 피하다가 눈 위에 나동그라졌다. 그렇게 뒤섞여 뛰어놀면 어느새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평소 쌓인 감정을 실어 눈덩이를 던지기도 했다. 눈싸움, 눈사람, 눈썰매, 눈미끄럼틀, 함께 뛰어놀면 묵은 감정은 다 날아가고 개운한 웃음만 남았다.눈 오는 날에는 아이고 어른이고 다 순수해졌다. 눈밭에서 뒹구느라 옷을 다 버려도 어른들은 나무라지 않았다. 마음껏 뛰어놀아야 크고 또 그렇게 저절로 커야 사람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추위를 이기고 체력을 키우는 데 그만한 놀이가 없었다.종일 뛰어놀았으니 몸이 나른했다. 아랫목에 누워도 눈밭에서 뛰어놀던 그림이 지워지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면 잠도 꿈도 눈송이처럼 포근했다. /수필가·문학평론가

2021-11-17

남극의 ‘인천빙하’

남극에 ‘인천 빙하’가 생겼다.영국 남극지명위원회가 최근 서남극 갯츠 빙붕(Gets Ice Shelf)에 연결된 빙하 9개 중 1개의 이름을 ‘인천 빙하(Incheon Glacier)’로 지었다고 인천시가 밝혔다.위원회는 서남극에서 아직 이름이 없었던 빙하 9개에 주요 기후 회의를 개최했던 전 세계 도시 9곳의 이름을 붙였다.인천시는 2018년 10월 제48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를 개최한 인연으로 빙하 이름을 부여받게 됐다.남극지명위는 인천 외에 제네바·리오·베를린·교토·발리·스톡홀름·파리·글래스고 등 총 9개 도시 이름을 서남극 빙하 9개의 새 이름으로 명명했다.빙하에 도시 이름을 붙인 것은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는 점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조치다.올 2월 한국 극지연구소와 영국 리즈대, 스완지대 등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번에 이름이 새로 붙은 9개 빙하 등 서남극의 14개 빙하는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14개 빙하가 녹으면서 남극 바다로 떠내려가는 속도가 1994년과 비교했을 때 25년 만에 23.8% 빨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인천 빙하’의 이동 속도는 25년간 2.9% 빨라지는 데 그쳐 14개 빙하 중 변화 폭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논문에 따르면 인공위성 관측 결과 1994년부터 2018년까지 약 3천150억t의 얼음이 이 지역에서 사라졌다. 이는 전 세계 해수면을 약 0.9mm 높일 수 있는 양이다.인천시는 ‘인천 빙하’이름이 생긴 것을 계기로 더 적극적으로 탄소 중립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지구온난화,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1-17

마스크 수능, 두 번째

장규열 한동대 교수 그 날이 왔다. 어김없이 수능의 아침을 맞는다. 대한민국 청년이 10대를 마감하며 모두 겪는 통과의례 수능 앞에 온 국민이 긴장한다. 지난 18년의 공부를 이 한 날의 시험이 결정하기에 몸보다 마음이 춥다. 수험생의 마음이 떨리고 부모는 가슴을 졸인다. ‘하루만 잘 견뎌라’ 응원하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속내가 종일 아리다. 실수없이 실력만큼만 토해내고 오기를 기원할 뿐이다. 친구들이 경쟁의 대상이 되어버린 오늘이 야속하다. 선생님들도 제자들의 이 하루가 안타깝고, 가족과 친지들마저 함께 관심을 모은다. 이날은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다. 코로나와 대선으로 어지럽지만, 수능만큼은 누구도 소홀히 생각할 수가 없다. 온 나라를 몰아넣는 절묘한 긴장에 올해도 빠져든다.그 ‘하루’가 문제다. 하필 이날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바닥인 건 용납되지 않는다.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오늘을 피해갈 수는 없다. 엄청난 경사를 맞거나 깊은 슬픔을 당해도 수능은 수능이다. 무조건 오늘 치러야 한다. 거른다면 온통 한 해를 기다려야 한다. 365일 가운데 딱 하루만 치르게 하겠다는 생각은 누가 지어냈을까. 여지껏은 그랬다 하고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교육과 관련된 시스템을 바라보는 정책적 시선은 왠지 늘 느슨하고 게으르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데 우리 수능은 언제나 그 자리다. 말랑말랑하고 총기발랄한 10대에게 일 년에 적어도 서너 차례 기회를 주어야 한다. 대학이 무슨 성역도 아닌데, 고등교육을 위한 준비상태를 체크하면서 오늘처럼 불필요한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가.수능의 역할도 문제다. 실력평가인가 소양인증인가. 대학입시제도에 설정된 관문이지만, 실력을 평가하여 줄세우기의 도구로 삼는 일은 지극히 구시대적이다. 다음 수준의 학습을 견뎌낼 수 있겠는지 기본소양을 인증하는 정도로 그 기능을 조절해야 한다.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이 놀랄만큼 다양해진 바에 수능의 결과로 학생의 실력을 평가하겠다는 발상은 오늘에 어울리지 않는다.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 스산한 아침에 목줄을 조이듯 서 있는 수능의 옛스러운 모습은 이제 그 유효기간이 지났다. 대학입학을 위한 기본소양을 살피는 새로운 수능은 일 년에 수차례 설정하여, 학생도 교사도 훨씬 편안하고 유연하게 치러야 한다. 실수를 돌아보며 수정해 가는 값진 경험을 교육과정 가운데 허용해야 한다. 일년에 딱 하루 로또처럼 만나는 수능은 이제 접어야 한다.한 번 시험을 잘 쳤던 경험을 평생 붙들고 국민 앞에 무례하게 서 있는 사람들을 목격하지 않는가. 인성과 소양의 바닥을 보았지 않은가. 제도와 시스템은 세대와 시대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오늘을 향해 달려온 수험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기울인 수고와 노력은 반드시 결실과 보상으로 돌아오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쉬지않고 꾸준히 실력을 쌓은 사람이 끝내 이기는 나라를 세워야 한다. 수능과 대입제도는 오늘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다음세대가 살아야 나라가 사니까.

2021-11-17

일본제철의 고로 폐쇄, 우리에게 던진 교훈

김영철 포항상공회의소 사무국장 일본은 철강산업에 있어서 세계 최고를 유지해왔고, 우리 포항 또한 일본의 영향을 적지않게 받아서 성장한 도시다. 최근 지역 일간신문(경북매일)을 통해 ‘일본 산업도시의 아픔 (11월 1·8일 자)’이 전해졌고, 우리 포항이 직면해야 될 상황인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이번에 소개된 히로시마현 쿠레시와 동일본 이바라키현 카시마시는 주력산업이 철강산업이며, 글로벌 경쟁력 심화와 탈탄소 압박 등의 요인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간 일본제철이 고로를 폐쇄하는 산업도시이기도 하다.일본제철은 1950년 창업하여 1970년 이와타와 후지제철이 합병하고, 2012년 스미토모금속과 합병, 2016년에는 일신제강과 합병하는 등 몸집을 불려 일본 전역에 15기의 용광로를 운영하며 세계 최대 조강생산량과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현재까지 60년 넘는 세월 동안 일본 경제를 견인해왔고, 세계 철강업계의 선두 주자였으나, 중국의 공급과잉, 우리 지역에 거점을 둔 포스코의 기술 역전 등으로 고전을 면치못하다 수익성도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일본제철은 2020년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하고 15기의 용광로를 10기로 감축하기로 하면서 두 도시는 갖가지 지원책을 제시하지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인 것 같다.쿠레제철소 폐쇄 결정은 취급품목, 생산성, 경쟁력 등을 고려한 조치이지만, 고로중단 조치로 일부 전환배치되는 인력 외 절반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이며, 제철소 근무 인력의 가족이 소비하는 지역의 상점, 음식점, 숙박시설 등에 미치는 간접영향까지 포함하여 지역경제에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예상한다.직격탄을 맞은 쿠레시는 인구감소, 세수 축소와 직면하고 다각도로 회생안을 찾지만 지역 자체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여있으며, 지역대기업에 의존하여 시대 흐름에 둔감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런 선례가 있다보니 공업용수와 수도요금 인하, 녹지율 완화 등을 지원해 온 카시마시는 100억엔 규모의 지원을 일본제철에 제안한데 이어 탈탄소 정책기조에 맞춘 수소환원제철 기술개발에 50억엔 상당의 지원안을 제시했으나 2024년 고로 폐쇄를 막을 수는 없어 비상이 걸린 상태가 되었다.고도 성장기 자부심으로 살았던 두 도시는 용광로 불이 꺼지며 도시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할 위기에 처해있고, 기업도시로 재건은 불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면 두 도시의 지역사회와 행정기관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지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은 지역사회를 지탱했고, 지역사회는 기업을 키워왔던 상황에서 상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공통점에서 우리 포항시와 지역사회도 바다 건너 일본의 상황으로 보지 말고, 가까운 미래에 직면하게 될 우리의 모습으로 인식하고 대비해 가면 좋겠다.쿠레시 신하라 요시아케 시장은 최근 “지금까지 대기업과 하청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산업의 쇠퇴를 직시하지 못했다”며 민감도가 낮았음을 시인하고 “미리 대비했더라면 지금과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 가득한 표현에서 우리 지역사회는 교훈을 삼아야 될 것이다.

2021-11-17

공직 후보자부터 법을 지키자

심한식 경북부 경산시가지가 플래카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능생을 응원하는 것부터 주택조합의 홍보용, 시정을 비판하거나 공공기관이 게시한 플래카드 등 다양하다.플래카드는 적은 비용에 홍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사랑을 받고 있지만,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운전자의 시선을 교란해 사고의 위험성도 높아 전국의 지자체들은 플래카드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올해 처음으로 등장한 시가지를 뒤덮은 수능생 응원 플래카드는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겨냥하고 있는 출마예상자들이 게시한 것이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민들이 많다.매년 수능시험이 치러졌지만 잠잠하다 선거를 위한 여론조사 등이 맞물리며 게시된 정치인들의 수능 응원 플래카드는 순수한 의도라고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더욱이 이들 플래카드가 원활한 통행과 운전자의 시선 확보를 위해 조성한 교통섬에 게시되거나 경산시가 지난 2013년 12월 조례로 지정한 플래카드 없는 거리에도 게시된 것은 큰 문제다.경산시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 거리를 만들 목적으로 시청 네거리에서 오거리 구간을 플래카드 없는 구간으로 지정했지만 1년 중 대부분 플래카드가 게시되고 있어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경산시는 현재 85곳의 플래카드 게시대를 운영하고 있지만, 수능 응원 플래카드는 교통섬의 나무와 나무를, 시가지의 전신주와 전신주, 교량의 난간 등을 이용해 도시미관을 헤치며 후보 예상자의 이름을 펄럭이고 있다.경산시는 공익 플래카드는 플래카드 게시대가 아닌 장소에도 게시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적용하고 있지만, 과연 올해 등장한 입후보 예정자들의 수능 응원 플래카드가 공익과 불법을 묻는다면 대다수 시민이 불법이라고 대답할 것이다.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법을 지키라며 불법을 동원하고 목소리를 높이면 통용되는 시대가 되었다.경산시의 시정을 이끌며 법을 지켜야 할 공직 후보자들이 앞장서서 스스럼없이 불법 플래카드를 게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후 약방문이겠지만 경산시도 법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 법의 권위, 시민의식을 높이자. 장래의 공직 후보자들이 모범으로 삼는 선배로 남는 것이 권력을 잡기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져보자.경산/shs1127@kbmaeil.com

2021-11-16

2021 포항음악제 ‘관객의 시작’

김재만 포항문화재단 문화도시사업단장 과거 클래식 공연을 기획해 본 사람으로서 첫 번째 부딪치는 문제가 “아직은!”이라는 부정적 견해이다. 그들에게 우리 도시는 대중음악에만 친화적이고 클래식 공연에는 시민들의 예술적 소양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위험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탓이다.하지만 2021 포항음악제에서 보여 준 관객의 모습은 무대에 선 최정상 아티스트들에게 역으로 감동을 선사하는 빛나는 페스티벌이었다.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로비에 들어서는 관객들은 어린 학생들이 포함된 가족에서부터 2030 청년들, 삼삼오오 모임을 이룬 4050, 더욱이 멋진 코트에 머플러까지 목에 두르고서 마치 영화 스크린에서 막 튀어나온 배우 같은 차림의 6070 세대들까지 관객들의 연령층 구성부터 완벽 그 자체였다.그러나 한 가지 고민이 남아 있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 과연 관객들은 아티스트들의 연주와 교감하고 행복감을 누릴 수 있을까? 아마도 “아직은!”이라는 사람들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고 있을 거다.마침내 폐막공연의 첫 무대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 Shostakovich)의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이 연주가 준비되었고, 객석 등이 꺼짐과 동시에 우뢰와 같은 박수가 연주자들을 무대로 등장하게 했다.“끝났다!”. 인터미션(Intermission)이 될 때까지 관객들은 ‘포항의 기억’에 녹아 있었고. 연주자들은 그 어떤 연주회보다 행복한 듯 두 번, 세 번 연달아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순간 “포항의 관객, 시민들은 위대하다!”라고 속으로 수십 번 되뇌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서 한껏 어깨가 하늘로 향했다.한때 공연연출가로 기획자로 오랜 시간 활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공연의 마지막 정점은 관객이 만들어 준다!”는 확신을 늘 가지고 살아왔다. 배우, 무용수, 클래식 연주자, 성악가 등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관객의 질에 따라서 공연이나 연주가 달라진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2021 포항음악제는 “아직은!”이 아니라, 왜 포항이 전국지자체 중 1차로 법정문화도시에 지정되었는지를 증명해주는 시민 승리의 현장이며, 내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설레임의 끝판왕이다.

2021-11-16

작은 생태계 소식

강길수수필가 쌓아 둔 빈 비닐 비료 포대 위를 낫공치로 마구 두드렸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반사 동작이다. 일고여덟 번쯤 두드리자, ‘아마 죽었을 테지…’하는 생각이 났다. 그제야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어 동작을 멈추었다.‘괜한 오기로 한 생명을 죽이는구나’하고 속말이 나왔다. 낫 날 끝으로 비닐 포대를 이리저리 뒤졌다. 축 늘어진 목표물은 없었다. 맨 아래 비닐 포대를 뒤졌을 때, ‘아! 그랬구나’하는 속말도 나왔다. 드러난 땅에 구멍이 나 있다. 내 반사 동작의 목표물은 구멍으로 도망간 게 틀림없다. 아마, 따뜻한 낮 기온에 먹이 찾아 나왔다가 나를 만나 줄행랑쳤으리라. 아까 현장 식탁용 판자를 들어낼 때, 달아나던 생쥐도 생각났다.주말 텃밭을 가꾼 지 다섯 해째다. 처음 시작하면서 ‘노지재배를 하자’고 아내에게 떼를 쓰듯 주장해 동의를 얻었다. 유기질 비료를 주로 쓰고, 무기질 비료는 최소한만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농약도 첫해에 모종할 때 토양에 쓰는 분해성 농약을 조금 쓴 후, 다음 해부터는 쓰지 않았다. 아내는 가끔 농약과 비닐 덮개 안 쓰면 작물이 안 된다고 들은 소리를 말했지만, 일부러 흘려들었다. 텃밭 가꾸기는 가족에게 무농약 먹을거리를 조금이라도 마련해주려 시작했기 때문이다.첫해엔 무성한 잡초를 손으로 뽑아내는 데 애를 먹었다. 이랑을 만들고, 들깨, 파, 옥수수, 고구마, 고추 등을 심었다. 작물이 자라나자 고구마, 고추는 순이 나오는 족족 고라니가 뜯어 먹었다. 옥수수도 통이 달리자, 멧돼지가 처참하게 대공까지 짓밟으며 어린 통옥수수를 다 따먹었다. 밭엔 결국 들깨와 파만 남게 되었다.아까웠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줬다 치자고 마음먹었다. 아내는 헌 현수막이라도 구해다 밭 가를 두르자고 했다. 왠지 야박하다는 생각에 그리하지 않았다. 요즈음 농촌에는 논밭을 펜스나 망으로 두르거나, 심지어 천장까지 망으로 덮은 곳이 제법 보인다. 해충이나 새, 산짐승들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한 농민들의 자구책이다. 어릴 땐 못 보던 풍경이다.텃밭엔 식용 야생초들도 많이 났다. 민들레, 왕고들빼기, 쇠비름, 질경이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식용 야생초를 뽑지 않고 적당할 때 뜯어 먹었다. 상추처럼 생으로 먹거나, 비빔밥에 넣어 먹는 재미와 보람도 누렸다. 농약을 쓰지 않으니까 무슨 애벌레, 거미, 메뚜기, 잠자리 같은 땅 위의 곤충과 굼벵이, 지렁이 등 땅속 생물들도 함께 사는 터전이 되었다.텃밭에서 일할 때면 참새, 딱새 같은 새들이나, 개구리, 잠자리 등 생물들이 일부러 가까이 찾아온다고 느낄 때가 많다. 사람 냄새나, 가져간 먹을거리 냄새, 혹은 소리나 움직임 같은 신호를 따라온 것일 터다. 저들은 사람과 더불어 살고 싶은 것일까. 더구나 논들이 텅 빈 늦가을날, 우리 작은 텃밭에서 생쥐와 뱀, 개구리, 여러 곤충, 땅속 생물들을 모두 만나다니…. 행운이다.아래, 위 두 다랑이가 모두 50평 정도인 작은 생태계 텃밭…. 농약과 비닐만 쓰지 않아도, 자연은 말없이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기쁜 소식의 현장이 됐다.

2021-11-16

대구 사람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금요일 대구 문화방송 ‘시인의 저녁’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이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대구 사람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면 어떻겠는가?’는 문제 제기. 지금까지 대구 사람들이 생각해온 기준은 혈연, 지연, 학연에 얽힌 것이라 한다. 시대가 바뀌고, 들고 나는 사람이 늘어나는 시대에 이런 기준을 재고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그가 제시한 기준 가운데 내가 동의한 대목은 이러하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 여기에 뿌리 내린 사람은 당연히 대구 사람이다. 그러나 직장이나 다른 목적으로 대구에 이주한 사람 가운데 대구에 기여하고 대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대구 사람에 넣자. 대구를 떠난 ‘출향(出鄕) 인사’ 가운데서도 대구를 그리워하고 대구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도 대구 사람 범주에 포함하자는 것이다.그의 제안은 설득력 있게 들렸다. 지금까지 30년 대구에 살면서 나는 여러 번 대구 사람의 정체성 때문에 말다툼을 했다. “말투가 여기 사람 아니네에?!”, 하면서 끼워주지 않는 부류가 대다수였다. “아니 여기서 일하고 봉급 받아 생활하는 나 같은 사람이 대구 사람 아니면, 누가 대구 사람이죠?!”하는 나의 항변은 늘 간단히 무시됐다. 나 또한 더는 우기지 않기로 했고, 앞으로도 그럴 요량이다.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왜들 그렇게 말투에 집착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이다. 중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마치고 타지로 나간 사람들은 같은 말투 하나로 이내 대구 사람이 된다. 하지만 타지에서 굳어진 말투를 가지고 들어온 사람은 대구에서 오래 살아도 대구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참 이상하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요즘 젊은 세대는 대구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그들도 언젠가는 대구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듯하다.서울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해 대구로 내려온 상당수 정치인은 언제나 대구 사람이다. 그들이 서울에 집이 몇 채 있는지, 매주 서울에 가든지 말든지, 1년에 며칠이나 대구에 머무는지 하는 문제는 아예 무시한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무장돼 있거나, 그런 생각에 익숙한 대구 사람들이 무섭다. 여기서 출발하는 이데올로기가 “우리가 남이가!” 철학이다. 말투 하나로 그들은 언제나 정치적-이념적 동지가 되어 어깨를 나란히 한다.4차 산업혁명이 한창이라는데, 대구는 툰드라의 정치적·이념적 동토가 해동되지 않은 곳이다. 젊은이들이 왜 대구를 떠나려 하는지, 관심조차 없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끼리 열심히 하면 된다는 저 강력한 의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끼리’라는 말은 매혹적이지만, 거기에는 함정이 있다. 그것은 우리만의 틀에 갇혀 배제와 적대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자신들을 제외한 사람들을 밖으로 몰아내고 거기에 순혈(純血)의 철옹성을 쌓고 안주한다. 그들은 성 바깥의 풍경이나 변화에 무심하다. 세상과 세계가 어떻게 바뀌는지에도 무관심하다. 그저 우리끼리 잘 살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당신은 정녕 대구 사람인가?!

2021-11-16

싸워야 할 때를 안다는 것

나는 유난히 말을 잘하는 아이였다. 말싸움이라고는 져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세 살 터울인 친오빠를 필두로 학교 친구들, 동네 언니들, 심지어는 선생님들과도 언쟁을 피하지 않았다.말끝마다 “왜요?” 하고 묻는 아이들의 화법에는 묘한 힘이 있다. 생각의 여지를 상대에게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혹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까닭을 제대로 설명해보아라”와 같은 말은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스스로 증명하라는 것과 같다.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과 대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식의 태도를 유지하며 말싸움을 하다 보면 상대는 제풀에 지치기 마련이었다. 그러면 나는 스스로가 아주 강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싸움의 특성에 관해서 깨달았다. 상대를 공격하면서 드러나는 무시무시한 폭력성과 뒤따라오는 허무함. 상대를 이긴다는 건 정말 이기는 일이 아니었고 일그러진 상대의 얼굴을 보면서 이겼다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했다.어떤 것도 좋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나쁜 상황만 생겨났다. 어째서 나는 이들과 언쟁하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그런 의문이 길어지자 묘한 회의감이 찾아왔다.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그만 갈등도 피해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분명한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도 그랬다.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꾹 눌러 삼켰다. 솟아오르는 감정을 외면하거나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하고 이해해버리는 방향을 선택했다.칼날은 차라리 목구멍 안에 감추고 있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누군가는 내가 점잖아졌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내가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고 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마침내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싸움의 지난한 과정이 귀찮아졌을지도 모른다.뭔가에 분노한다는 건 굉장한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 마음이 특정한 상대를 향해 있을 때는 더욱더 힘들다. 자신의 감정을 외면해버리면 끝날 일이지만 싸우려고 하면 여러모로 복잡해진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의 잘못뿐만 아니라 내 잘못까지도 자연스럽게 들춰지게 된다.누군가를 비난한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비겁하고 치졸한 인간인지 꺼내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한 과정이 힘겹고 아프고 성가실 수밖에 없다.회사 선배가 습관처럼 성차별적인 발언을 한다는 친구의 고민을 들었다. 지적하기에는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고 함부로 건의했다가는 사이가 틀어질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그분도 그럴 의도는 아니었을 거야. 그냥 좋게 생각해.”라는 말이 내 입에서 기어코 튀어나왔을 때야 나는 내가 ‘너무 쉽게’ 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시위대 때문에 꽉 막힌 도로를 바라보며 ‘아, 정말 피곤하다’라고 생각한다든지, 부당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시스템을 바꾸려는 목소리를 낼 때 ‘그도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하면서 넘겨왔던 날들. 어리석고 게으른 생각으로 점철된 시간들.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이런 나의 모자람을 친구에게 들킨 것이 창피했다.이제까지의 나의 싸움은 얕보이기 싫어서 내는 큰소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입을 다무는 건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나는 싸우지 않아야 할 때와 싸워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진정으로 싸워야 할 때를 아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꺼내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을까?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는 것일 테다. 그래야만 하니까. 누군가는 그런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그들은 기꺼이 싸운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위해, 자유와 평화를 위해,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배제된 이들의 존립을 위해. 더 나은 세계를 위해. 단 한 사람의 평온한 일상을 위해.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던 때를 떠올린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는 날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 내게는 더 많다. 이 고요한 시간은 누군가의 투쟁으로 인해 받고 있는 특혜라는 생각을 한다. 그 치열한 분투를 내가 잊지 않기를 바란다.

2021-11-16

낭만이 사라진 세계에서

한국 영화에서 ‘느와르’라는 장르는 더 이상 한때의 유행이 아니다. ‘초록 물고기’, ‘비트’에서부터 ‘친구’를 거쳐 ‘비열한 거리’, ‘신세계’, ‘차이나타운’, ‘불한당’과 ‘아수라’에 이르기까지, 범죄 조직을 소재로 하는 느와르 영화는 이미 한국 영화의 한 축이 되었다. 현실의 부정함과 비정함에 대해 폭력으로 응수하는 느와르의 문법은 우리가 현실에서 상상하지만 감히 실현하지 못하는 것을 저지르고, 비록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욕망에 끝까지 충실하고자 분투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그 속에서 유오성은 빼놓을 수 없는 배우인데, 한국형 느와르의 정점을 찍은 ‘친구’에서 준석을 통해 보여준 그의 연기는 이후 수많은 느와르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 연기의 교본이 되었다. 우정과 의리, 그리고 비정함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비극 속에서, 그의 천부적인 표정 연기는 느와르적 인물이 취해야 할 감정연기의 표본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런 그가 최근 ‘강릉’이라는 영화를 통해 느와르 장르에 다시 복귀했다. 여기에서 유오성은 그간 보여준 연기 경력을 느와르라는 틀 속에 모두 녹여낸 것 같은 표정 연기를 보여준다. 그가 연기한 길석이라는 캐릭터는 이전의 유오성식 느와르 연기와는 분명 결이 다르다. 비슷한 위치에 놓인 인물과의 정쟁으로부터 빛을 발하던 이전의 인물 연기와 달리, 여기에서 길석은 조직 내에서 든든한 아우이자 형이라는 다소 다른 인물로 제시된다. 그 속에서 유오성은 의리와 우정을 중요시 여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규율을 위해 상대를 단죄해야만 하는 인물을 충실하게 연기해낸다.여기에서도 다시금 빛을 발하는 것은 그의 표정 연기다. 첫 장면에서부터 바다를 배경으로 진한 파랑 계열의 톤 속에서 터져나오는 그의 표정 연기는 영화 전체를 압축해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무게감을 갖고 있었다. 이후로도 그의 표정 연기는 영화의 터닝 포인트마다 등장하여 그 장면의 개연성을 표정만으로 납득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해안도로의 격투 장면에서부터 리조트의 옥상 장면에 이르러서는 이전까지의 스토리란 바로 이 장면의 유오성의 표정 연기를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 속에서 유오성은 길석의 입을 빌어 ‘더 이상 낭만은 없다’고 말하며 경쟁 조직의 두목을 무참히 칼로 찌른다.영화를 모르는 평자의 평이겠으나, 사실 영화로서의 ‘강릉’은 좋은 작품이라 하긴 어렵다. 기존의 영화들을 통해 반복된 느와르의 문법에 충실하고자 노력하지만 개연성의 부족으로 인해 번번이 극적 긴장을 상실하며, 개연성의 부족을 학습된 관객의 느와르적 감각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인물의 설정과 그들 사이의 관계는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설정처럼 강제로 주입된다. 그렇다보니 인물의 성격과 심정을 유추할 수는 있으나, 몰입되지는 않는다. 이는 영화의 전체적인 플롯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영화는 관객에게 플롯이 가지는 내적인 개연성을 설명하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느와르적 문법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 가정하며 그것에 기대어 따라가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길석의 대사를 듣고 나면 왠지 그 모든 것이 사실은 하나의 의도적인 장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예컨대 우리가 기대하는 의리와 조직의 규율, 그로인해 초래되는 비극이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현실은 ‘돈’ 때문에 벌어지는 한 편의 살인극에 불과하다는 것. 영화가 여러 개연성을 위한 장면을 생략한 것은 그것을 보여주지 않은 게 아니라 더는 그와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 말이다. 우리가 느와르를 통해 기대하는 것들은 하나의 낭만에 불과하고, 현실은 돈 때문에 벌어지는 멋없고 잔인하며 무정할 따름인 피바다에 불과하다는 것, 어쩌면 그게 감독이 전달하고 싶었던 영화의 의미였던 것은 아닐까.그래서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영화의 첫 장면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유오성이 길석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표정의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 모든 의리와 우정이 낭만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린, 그런 낭만마저도 돈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세계에서 그것이 아직 건재하게 살아있다는 ‘척’을 해야만 하는 인물의 슬픔. 우리가 그나마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선 그것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진심으로 믿는 척을 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는 메타 픽션적인 교훈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신이 사라진 세계에서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리라.

2021-11-16

캐스팅보트 MZ세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들 사이에 MZ세대 표심잡기가 한창이다.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여러 차례 드러났듯이 20∼40대 초반의 MZ세대의 표심이 대선후보 결정의 승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면서 이들 세대를 위한 정치권의 공략이 노골화되고 있다.MZ세대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해 이르는 말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집단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개인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소비행위를 통해 표출하는 집단이다.이들은 특히 SNS를 기반으로 하는 유통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영끌 대출로 주식시장과 암호화폐의 상승장을 주도하는 세력이 바로 MZ세대다.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세대는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다. 그러나 이들 세대가 점차 노화되면서 자산이 MZ세대로 이전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우 5년마다 1조3천억 달러 가량의 자산이 MZ세대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투지은행인 모건스탠리는 미국 인구의 4분1을 차지하는 Z세대가 2034년에 가서는 미 역사상 가장 많은 세대로 등극할 것으로 전망했다.마케팅 용어에서 유래한 MZ세대는 이제 경제, 정치, 사회 등 각 분야에 걸쳐 두루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서도 MZ세대의 적극적 투자와 소비패턴이 주목을 받고 있으며 특히 선거를 앞두고 캐스팅 보트 세력으로 떠올라 관심이다. 그러나 청년실업난, 주택가격 폭등 등 그들 세대가 안고 있는 고민 또한 적지 않다. 그들의 고민에 공감하는 정치권의 진정성 있는 노력만이 표심을 얻지 않을까 싶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1-16

순대가 비록 대순 아니지만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세상에는 / 순대라 불리는 종교가 있다. // 그 종교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 맨 먼저, 자신이 / 평생 삼켜 온 내용물 토해내고 / 전신 뒤집어야 한다. …. 세상에는 순대라는 종교가 있다. / 숱한 고난을 이겨낸 / 그를 위해 식탁 앞에는 커다란 칼과 도마가 / 함께 자리 잡고 / 전신 드러낸 그를 경배하기 위하여 / 숟가락과 젓가락 든 사람들 모여들고 / 경건한 마음으로 / 그 앞에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다.”문학뉴스 2018년 4월 16일에 게재된 박기영의 시 ‘순대론’의 일부이다. 돼지 창자 안팎을 깨끗이 씻어낸 뒤 당면, 채소, 고기 등 각종 소를 선지에 버무려 그 안에 채워넣고 쪄낸 우리 고유의 음식인 순대. 박기영 시인은 이를 종교로까지 승화시켰다. 수저 들고 ‘경건한’ 마음으로 먹기를 기다린다고 표현한 대로 한국인으로 순대 싫어하는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서울 관악구에 살던 결혼 초에는 신림동 순대타운을 즐겨 찾았고, 독립기념관을 다녀올 때면 천안 아우내 장터의 병천 순대를 먹고 오기도 했다. 마땅히 당기는 음식이 생각나지 않을 때면 학교 근처 식당으로 동료교수와 함께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 여러 부위의 돼지고기와 순대가 듬뿍 들어있는 순댓국은 서민들의 든든한 한끼 식사이다. 소주 한 잔에 얼큰한 순대술국은 하루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는 훌륭한 ‘소울푸드’도 된다.성경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고기를 피째 먹지 말라고 한다. 따라서 순대를 먹는 것은 구약 성경과 유대인의 율법에서 금기를 두 개나 어기는 행위이다. 순대가 비록 대수는 아니지만, 내가 유대교인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지난 11월 초에 한 식품업체가 지저분한 환경에서 순대를 만드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보도가 나가자마자 이 업체에는 거래를 끊겠다는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며칠 뒤에 업체의 회장은 소비자들에게 사죄문을 올렸다. “가난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맨주먹으로 오늘의 200여 명의 대가족과 400억 매출의 식품회사를 일군 제게 순대는 학교이고 공부이고 생명이고 제 삶의 모든 것”이었다며 다시 일어나 소비자들의 신뢰를 되찾고, ‘K-순대’ 세계화 시대를 개척하겠다는 약속과 다짐도 하였다.식구 모두 순대를 좋아하여 진공포장된 순대를 사서 집에서 쪄 먹곤 한다. 이 보도가 나가기 며칠 전에도 두 묶음짜리 순대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아니나다를까, 문제의 순대제조업체의 이름이 포장에 찍혀 있었다. 아내는 그 순대를 치워 버렸다. 음식을 남기지도 않고 버리지도 못하는 내가 그 순대를 먹을까 염려해서 나 몰래 버려 버린 것이다. 한동안은 순대를 먹지 못할 것 같다. 순대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도 된다.우연이겠지만 문제의 순대제조업체의 이름이 내 성의 본관과 같다. 회장의 성이 박씨이니 우리 가문과는 관계가 없을 터이지만, 왠지 사죄문에 마음이 짠하다. 부디 이 기업이 약속을 꼭 지키고 다시 일어섰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일이 우리 전통 음식과 길거리 음식의 위생 관리를 더 철저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21-11-16

詩낭송으로 피어난 ‘포항 12景’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늦가을의 언저리에 시의 향기가 그윽하게 피어났다. 툇마루 위에 달아 놓은 주홍빛 곶감이 대롱거리고, 기와 담장을 넘어선 담쟁이 넝쿨이 앙증맞게 반기는 작은 뜰에서 시와 가락의 향연이 소담스럽게 펼쳐졌다. 낭랑한 시낭송의 음색이 오후의 햇살 마냥 정갈하게 스며들고 구성진 민요와 시조창이 대금과 어우러져 흥겹게 흐르는가 하면, 피아노의 선율에 가곡이 더해지고 가녀린 듯 신명나는 춤사위까지 곁들여지니, 날아가던 새들도 감나무 가지에 다투어 내려앉고 기웃대던 오죽(烏竹) 잎새마저 서걱거리는 박수로 환호하는 듯했다.최근 포항시 남구 효자동의 한 서옥(書屋) 뒤뜰에서 열린 ‘시가 흐르는 뜨락(詩뜨락)’의 풍경이다. 시인을 초청해서 시낭송과 시 이야기를 나누고 독자와 소통하는 것이 주 테마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처럼 가락을 곁들이거나 연주를 더해 다채로운 감칠맛을 우려내기도 한다. 이러한 ‘시뜨락’은 시와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포항시낭송회의 시낭송가들과 함께 경향의 시인을 초대해서 시낭송회를 열고 시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시낭송 토크이다. 공연장이나 실내가 아닌 뜨락에서 열리는 시낭송 마당이 신선하고, 문인과 독자가 시를 매개로 만나 교류하고 공감하며 문학과 시낭송 예술의 저변확대를 꾀하는 문화사랑방인 셈이다. 2019년부터 시작된 ‘시뜨락’은 이번에 여섯번째를 맞아 기북 출신의 오낙율 시인을 초대해서 시 나눔행사를 벌였다. 마침 11월 1일 오낙율 시인의 네번째 시집 ‘포항 12景’(문학공간시선)이 출간되어 축하를 겸해 펼친 시낭송 마당이 뜻있고 정겹게 여겨졌다. 이 시집에는 오낙율 시인의 서정적 자아를 통한 자아성찰과 존재 해석을 진술하는 76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오시인은 사회 현실을 관조하고 그것을 자기 철학과 신념으로 해석하고 진술하는 시를 쓰며 탄탄한 시세계를 구축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특히 이 시집은 제목에서 시사하듯이 포항의 명소 12경을 둘러보고 소박한 소감을 형상화한 것이 주목된다. 필자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포항 12경에 대한 단편적인 시가 더러 쓰여지기도 했었지만, 연작시 형태로 ‘포항 12景’을 쓰고 시집명으로까지 내기는 처음이라고 본다. 그만큼 오낙율 시인은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며 시적 대상이 되는 사물이나 생활현장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참여한 15여 명의 시낭송가들은 저마다 낭송할 시들을 가슴으로 품으며 특유의 음색과 호흡을 가다듬어 멋들어지게 낭송했다. 춘하추동 사계의 테마로 낭송할 시들을 구분해서 3~4명씩 배경음이나 하모니카 멜로디에 맞춰 낭송한 시들은, 하늘하늘 나풀나풀거리며 만추의 뜨락에 결 고운 음률의 수를 놓는 듯했다.이렇게 포항 12경이 시로 읊어지고 시낭송으로 울려 퍼짐은 퍽 고무적인 일이다. 더욱이 일상에서 문화를 향유하여 명실상부한 문화도시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포항시에서, 이와 같이 작은 음악회를 곁들인 시낭송회와 문인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시뜨락’ 행사는 문화로 너울지는 포항 만들기의 작지만 큰 발돋음이 아닐까? 문화는 삶이고 힘이며 지속발전가능한 미래이다.

2021-11-15

상생과 협력의 힘, QSS동반성장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책에서 본 내용인데 소양강에서 30년간 어부생활을 한 분이 직접 목격하였다는‘뱀과 가물치’의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이야기는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가던 중 강 바로 옆나무에 매달려있는 뱀이 물속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목격한 것부터 시작된다.자세히 들여다 보니 강바닥에 병든 것처럼 뒤집혀져 있는 가물치를 물에서 건져내려고 안달복달하는 뱀의 모습이었던 것이다.놀라운 것은 뱀이 열심히 가물치를 감아서 물 밖으로 올리려는 순간, 힘이 센 가물치는 몸을 확 비틀어 빠져 나오는 행동을 반복하였고, 나중에는 뱀이 약이 올랐는지 나무에서 땅까지 내려와서 온 힘을 다해 가물치를 감으려는 순간 가물치는 후다닥 소리를 내면서 뱀을 물고 물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는 것이다.가물치는 지혜를 발휘하여 뱀을 잡은 것이었고, 최소한의 대가로 최대의 효과를 얻었던 것이었다.필자는 P사의 ‘QSS혁신활동 지원 프로그램’이 가물치처럼 ‘지혜로운 동반성장 활동’이라고 생각하여 우수사례로 소개하고자 한다.동반성장이란 경제 규모 차이가 있는 대상끼리 상생과 협력을 통해 더불어 성장하는 것으로 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져 있다.최근 상생과 협력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화두가 되었고, 많은 대기업이 동반성장 활동으로 중소기업에 금전, 장비 등의 경제적 지원을 해 주면서 중소기업 발전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하지만 일부 경제적 지원 활동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경제적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중소기업이 강한 기업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에 부딪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그러나 P사의 동반성장 활동인 QSS활동은 달랐다.QSS(Quick SixSigma)활동 지원은 P사에서 자체 양성한 컨설턴트의 풍부한 현장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의 혁신을 지원한다.이 활동은 현장의 문제를 진단하고, 솔루션(Solution)을 제공하여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꾀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필자는 직원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자신감은 더 큰 성과라고 말하고 싶다.중소기업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개선리더 등 전문가를 양성하여 컨설턴트가 나와도 스스로 운영하여 자력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바로 QSS의 매력이다.필자가 10여년 전 컨설팅하였던 P사 계열사를 최신 방문했을 때 자사 스스로 QSS혁신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자사의 협력사, 공급사, 고객사까지 계단폭포식으로 확산 전파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고 그 회사를 컨설팅한 것에 대해 정말 자랑스러웠다.사과를 따주는 활동보다는 사과나무를 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활동이 정말 더 소중하고 효과도 더 크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필자는 더불어 지속 가능한 동반성장에의 참좋은 프로그램이 QSS혁신활동 지원 프로그램이라고 보며 이를 적용하여 본원경쟁력을 높이고, 나아가 대한민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1-11-15

미스터리로 빚어낸 ‘쿨’한 세계

이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일본과 한국에 동시 발간되거나 불과 몇 달 사이를 두고 번역출판 된다. 가장 최근에 번역된 ‘백조와 박쥐’(양윤옥 역, 현대문학)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위치가 바뀐다. 쿨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세계가 조금 진지해지는 징후가 아닌가 기대한다. 외국의 작가가 쓴 작품 중에서 한국에 가장 많이 번역되고 읽힌 책을 떠올려 본다면, 일본의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사진)를 빼놓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1985년에 ‘방과 후’라는 정통 추리소설로 데뷔한 그는 매년 2~3편의 책을 꾸준히 출판해왔고, 그 대부분이 이미 한국에도 소개되고 번역되어 있으니 말이다. 매년 2~3편의 책을 출판하는 인기 작가 자체는 해외에 드물지 않지만, 그 대개의 책들이 한국에서 번역 소개된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제외하고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 편, 한 편 그의 작품이 시나브로 번역되어 나올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어느새 우리는 그가 만들어둔 세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것은 어떤 소설보다 잘 읽히고, 어떤 소설보다 인간의 감정과 호기심이 결합해 있는 마력을 가진 세계다.배를 타고 몇 시간이나 가야하는 외딴 섬에 지어진 호텔 같은 곳에 모종의 이유를 가지고 모여든 사람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다양한 방식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도저히 풀 수 없는 밀실의 트릭과 살해방법들, 사라지는 흉기들. 아마 정통적인 추리소설의 팬이라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르적 관습일 것이다. 모든 종류의 관습이 그러하듯, 이미 책을 펴든 순간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 관습과 계약을 끝낸 상태이다. 그토록 먼 곳에 왜 호텔이 있을까 라든가, 그들은 왜 거기로 가야만 했을까, 게다가 하필 왜 모든 문제를 풀어낼 탐정은 왜 일행 사이에 끼어들어 있을까 하는 중요한 질문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이 된다. 사건의 발생과 해결 사이에서, 도저히 풀 수 없을 것만 같은 범죄의 해명에 나선 탐정과 마치 공정한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은 환상만이 추리소설 독자의 유일한 게임의 규칙이다. 그러니, 앗, 하는 사이에 범인을 놓쳐버리는 아슬아슬한 시간적 지연도, 추리소설 독자에게는 즐거움일 뿐이다.지금까지 한국에서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던 것은 이처럼 미스터리로 가기까지의 비현실적인 구성이나 독자가 탐정과 지적인 경쟁을 벌인다는 추리소설 읽기의 독특한 측면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소설적 전통에서 소설은 대개 마음을 움직이거나 감정을 분출하는 것이지, 머리를 자극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적인 소설이 인기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움직여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소설이 그만큼 압도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의미이리라. 히가시노 게이고는 처음에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정통 추리소설로 소설계에 입문하여 꾸준히 추리소설을 써왔지만, 종종 다양한 장르로 확장하면서 정통 미스터리만이 아닌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거나 장르를 결합한 장르 혼종적 세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에 처음 히가시노 게이고가 알려지고 번역되기 시작한 시기가 미스터리에 기반해서 독자의 마음에 무언가 남겼던 ‘비밀’(1998년 출판, 1999년 번역)이나 ‘백야행’(1999년 출판, 2000년 번역)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두 작품의 성공에 힘입어 이른바 ‘역주행’하여 그의 정통 추리소설까지 번역되기 시작되었고, 한국에 어느새 히가시노 게이고 월드가 펼쳐지게 되었던 것이다.그가 펼쳐놓는 세계는 결코 심오하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누군가가 있다. 호텔에서도, 공항에서도, 나무신을 모신 작은 절에서도, 그리고 코로나가 한창인 지금 여기에도 사건은 발생하고, 누군가 그것을 해결한다. 그만큼 쿨한 세계는 또 없다. 세상이 어디 그런가, 싶다가도 그만 그 쿨한 세계에 스스로 들어가게 된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1-11-15

‘삼국유사’ 속 경주 남산의 스님들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보물 제2071호)과 ‘삼국유사’ 탑상편 ‘생의사석미륵’조에 기록된 미륵불상은 동일한 불상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최근 이 상과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었는데, 불상의 도상(미륵의좌상)과 석실(석굴) 봉안과 같은 특징을 고려했을 때 이 불상은 선관 수행(禪觀修行)의 목적으로 조성했다는 것이다. 승려의 수행법 중 하나인 선관은 특정한 대상을 관(觀)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선관은 몇 가지 수행단계를 거치지만, 결국 부처(미륵불)의 친견이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남산 불적의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다. 한편 ‘삼국유사’ ‘생의사석미륵’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선덕왕 때 생의(生義)라는 스님이 항상 도중사에 거주했다. 꿈에 스님이 그를 데리고 남산으로 올라가 풀을 묶어서 표를 하게하고, 산의 남쪽 마을에 이르러서 말하길, “내가 이곳에 묻혀있으니 스님은 꺼내어 고개 위에 안치해주시오”라고 했다. 꿈을 깬 후 친구와 더불어 표시해 둔 곳을 찾아 그 골짜기에 이르러 땅을 파보니 석미륵이 나오므로 삼화령 위에 안치했다. 선덕왕 13년(갑진)에 절을 짓고 살았으니 후에 생의사라 이름하였다”이야기 속 생의스님은 평소 도중사에 거주했었다. 그는 꿈에서 알려준 대로 남산에 올라가 석미륵상을 찾은 뒤 삼화령 위에 불상을 봉안하고, 선덕왕13년(643 혹은 644) 그곳에 생의사라는 사찰을 만들었다. 생의스님은 원래 왕경의 ‘도중사’ 승려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남산에 ‘생의사’를 짓고 거처를 옮긴 것이다. ‘생의사’라는 사명(寺名)에서 알 수 있듯 이 절은 생의스님을 위한, 생의스님에 의한 사찰임이 감지된다. 이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삼국유사’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조로 이어진다.“3월 3일(765년)에 왕이 귀정문의 누 위에 나가서 좌우의 측근에게 말하기를, “누가 길거리에서 위의(威儀) 있는 승려 한 사람을 데려올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이때 마침 위의가 깨끗한 고승 한 분이 배회하고 있었다. 왕이 말하기를, “내가 말하는 위의 있는 승려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그를 물리쳤다. 다시 한 승려가 납의를 입고 앵통을 지고 남쪽에서 오고 있었는데 왕이 보고 기뻐하여 누각 위로 맞이했다. 통 속을 보니 다구가 들어 있었다. 왕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승려는 충담이라고 했다. “어디서 오는 길이오?” 승려가 답하기를 “소승은 매해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달여서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공양하는데 지금도 드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이 이야기는 충담스님이 미륵세존에게 차를 공양하기 위해 남산에 갔다가 돌아오고 있는 장면이다. 충담스님은 매해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공양하러 남산에 다녀온다고 했다. 부처님께 차를 공양하는 것 역시 하나의 수행과정. 이야기 속에서 충담스님은 남산에 기거하는 것이 아니라, 왕경 사찰에 거주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즉 스님의 본사(本寺)는 왕경의 평지사찰이었고, 남산에는 특정시기에 수행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런 구성에서 평지사원과 남산 불적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삼국유사’ 기사에는 남산과 관련한 승려의 모습을 수행자처럼 묘사하고 있다.“한 거사가 행색이 남루하고 손에 지팡이를 짚고 등에 광주리를 이고 와서 하마대 위에서 쉬고 있었는데 광주리 안을 보니 마른 생선이 있었다. (경흥법사의) 시종이 그를 꾸짖어 “너는 중의 옷을 입고 있으면서 어찌 더러운 물건을 지고 있는 것이냐”라고 하였다. 중이 말하기를 “그 살아 있는 고기를 양 넓적다리 사이에 끼고 있는 것과 삼시의 마른 생선을 등에 지는 것이 무엇이 나쁘단 말이냐”라고 하고, 말을 마치고는 일어나 가버렸다. ~중략~ 남산 문수사의 문 밖에 이르자 광주리를 버리고 사라졌다. ~중략~ 경흥은 그것을 듣고 한탄하여 “대성(大聖)이 와서 내가 짐승을 타는 것을 경계하였구나”라고 하고 죽을 때까지 다시 말을 타지 않았다.” 김동하​​​​​​​경주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 “8년 정유에 (망덕사)낙성회를 베풀었는데 왕이 가마를 타고 와서 공양하였다. 한 비구가 있었는데 외양이 남루하였다. 몸을 움츠리고 뜰에 서서 또한 재를 보겠습니다”라고 청하였다. 왕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장차 재가 끝나려 하니 왕이 그를 희롱하여 말하였다. “어느 곳에 주석하는가?” 중이 비파암이라고 하였다. 왕이 “이제 가면 사람들에게 국왕이 친히 공양하는 재에 참석했다고 하지 말라”라고 말하니 중이 웃으며 “폐하도 역시 사람들에게 진신석가를 공양했다고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을 마치고는 몸을 솟구쳐 하늘에 떠서 남쪽을 향해 갔다. ~중략~ (남산의) 비파암 밑에 석가사를 세우고, 모습을 감춘 곳에 불무사를 세워 지팡이와 바리를 나누어 두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삼국유사’ 감통 ‘경흥우성’조에 기록된 내용으로 경흥법사의 사치스러움과 비교해 남산에 기거하는 거사는 남루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두 번째 역시 ‘삼국유사’ 감통 ‘진신수공’조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망덕사 낙성회에 참석한 효소왕과 비교해 남산 비파암으로 떠난 비구(석가진신)의 모습은 남루하다. 앞서 소개한 충담사의 이야기에도 위의(威儀) 있는 승려와 비교해 충담사는 초라한 모습이다.세 이야기들 속에서 감지되는 남산과 관련한 승려의 모습은 유사하다. 이야기 속 승려들은 두타행(頭陀行)을 실천하는 수행자의 모습처럼 그려졌다. 이는 당시 남산 불적이 가지는 성격의 일면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남산은 승려의 공간이면서, 수행의 공간이었다. 당시 승려는 험한 산지계곡에서 공덕을 쌓기 위해 조탑과 조상을 통한 수행을 감행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불적은 산림수행의 장소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2021-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