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경산지식산업단 내에 자리 잡은 중소기업인 창원정공 공장을 방문했다. 이 업체의 지난 6월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니 계약전력은 600kWh이고 피크전력은 318kWh, 한 달 사용량은 4만5천kWh였다. 2년 전 신축한 공장으로 공장 사무실이 어떤 오피스빌딩 못잖게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다. 공장 내부도 높은 천장에 LED 투광등이 가지런히 설치되어 있는 등 어느 한구석 손댈 것이 없어 보였다. 마침 공장 지붕에 370kWh, 사무동 지붕에 80kWh, 총 450kWh의 태양광을 설치하겠다는 제안서를 받아 놓고 검토하는 단계였다.
현대자동차가 RE100을 2050년에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는 내용을 지난번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ESG(환경보호, 사회공헌, 윤리경영) 경영에서는 대기업의 경우 본사 RE100(scope1)뿐 아니라 협력사·하청업체(scope2), 운송·보관(창고)업체(scope3) 모두가 RE100을 달성해야 한다. 1·2차 벤더를 비롯한 협력업체의 RE100도 아주 중요해진 셈이다.
방문한 공장은 신축공장이라 당장 봐서는 에너지 절감이나 효율을 높이는데 손댈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20~30%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이 공장 전기요금은 월 950만~1천250만 원, 전력 사용량은 4만5천~6만kWh 정도였다. 특히 겨울철에는 난방 때문에 전기 사용량이 많고 일조량이 적은 것을 감안해, 소형 풍력발전으로 보완해야 할 필요성도 있어 보였다.
전기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을 통해서 매월 1만3천500~2만kWh의 전력량을 절감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따라서 매월 3만1천500~4만kWh의 신·재생 에너지가 필요한데 최대 450kWh 태양광을 설치하면 매월 평균 5만4천kWh의 전력 생산이 가능하니, 이것만으로 RE100 달성이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창원정공 사례를 보면, 중·소 규모 공장들도 우선 에너지 효율을 높인 뒤 상황에 맞춰서 태양광 발전시설과 소형 풍력발전시설을 설치하면 얼마든지 RE100 달성이 가능하다.
대기업이 손 놓고 있다고 해서 협력업체나 중소기업들도 RE100에 손 놓고 있으란 법은 없다.
다만, 대기업은 자금력이 있고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비해, 중소기업들은 이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가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 특히 각 기업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RE100 전담팀’을 만들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중앙정부는 RE100을 달성한 기업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서라도 RE100 확산 풍토를 우선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나 테슬라, 구글 같은 글로벌기업만이 ESG경영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나 SK,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이 ESG경영에 미온적이다 보니, 하청업체인 중소기업들도 덩달아 손 놓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언론에서 ESG 기준을 강화한 유럽의 ‘공급망실사법안’ 시행을 앞두고 국내 수출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독일은 내년 1월부터 공급망실사법을 시행한다. 법안내용은 ‘전체 공급망을 대상으로 ESG경영평가 기준에 따라 점검하여, 발견된 문제를 공개하고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요구하겠다’는 내용이다. 핵심 내용은 RE100달성 여부이며, 실사대상에는 원청회사와 자회사, 공급업체, 하도급사까지 모두 포함된다.
지난 17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수출기업의 공급망 ESG 실사대응과 현황과제’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52.2%가 ‘ESG경영 미흡으로 고객사(원도급사)로부터 계약·수주가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했다. ‘ESG 실사 대비수준’을 묻는 항목에는 ‘낮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77.2%(매우 낮음 41.3%, 낮음 35.9%)였다.
대구지역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공급망실사법 시행 이전에도 유럽 기업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까다로운 편이었는데 이제는 더욱 힘들어질 것 같다. ESG 경영이 필수지만 비용이 만만찮아 걱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창원정공처럼 공장과 사옥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매년 8천여만 원씩 20년간 전력 판매소득도 발생한다. 설치비를 제외하고도 기업에 상당한 이익이 되고, 동시에 RE100도 달성할 수 있어 ESG 요구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경산지식산업단지는 전체적으로 신축공장들이 들어서 쾌적하게 보였지만, 그보다도 공장 지붕에 가지런히 설치된 태양광 패널들이 ESG 경영에 앞서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해서 인상적이었다.
이제 ESG경영과 RE100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당장 시행해야 할 냉엄한 현실이다.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어렵고 복잡한 것도 아니다. 창원정공 사례가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