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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위기의 대한민국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는 사라져가는 이 나라를 위해/ 애써 ‘대한 만세’라고 작별인사를 보낸다./ 그래, 한 국가로써 이 민족은 몰락하고 있다./ 어쩌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말없이 마음이 따뜻한 이 민족에게/ 파도 너머로 작별인사를 보낸다./ 지금 나의 심정은/ 마치 한 민족을 무덤에 묻고 돌아오는/ 장례행렬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착잡하기만 하다….”독일인 선교사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1911년 우리나라를 다녀가면서 쓴 글이라 한다. 한일합방으로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이듬해이니, 망해가는 나라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서려 있는 글이다. 일본이 소위 대동아전쟁을 일으키고 진주만을 기습해서 미국의 원자폭탄을 맞고 패망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일본 영토가 되고 우리는 모두 일본인이 되었을 것이다. 베버 신부가 본 것처럼 우리에게는 일제의 손아귀를 벗어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당시에 우리나라를 다녀간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구한말의 백성들은 가난에 찌들어 누추하고 무력한 모습이었다. 일본이나 중국인에 비해 체구도 크고 성품도 좋아 보였지만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려 몹시 피폐한 생활상이었다는 것이다. 의욕을 가지고 노력을 해봤자 부패하고 악랄한 한 관리들에게 수탈의 빌미를 줄 뿐이니 가난과 체념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거였다. 여행가 헤세 바르텍은 ‘조선, 1894년 여름’이란 책에서 당시 서울(한양)의 모습을 이렇게 적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거리로 하수가 흘러들어 도랑이 되어버린 도시가 또 있을까? 한양은 산업도, 굴뚝도, 유리창도, 계단도 없는 도시, 극장과 커피숍이나 찻집, 공원과 정원, 이발소도 없는 도시다. 집에는 가구나 침대도 없으며, 변소는 직접 거리로 통해 있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주민들이 흰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다른 곳보다 더 더럽고 똥 천지인 도시가 어디에 또 있을까? ….”그랬던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선 것은 무엇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6·25 전쟁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을 때 미국을 위시한 유엔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난 것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때 중공군의 개입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훨씬 더 부강한 통일국가가 되었을 텐데 천추의 한이 아닐 수 없다. 오로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산업화에 매진한 박정희 대통령의 통찰력과 추진력도 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새마을 운동’으로 다잡아 의욕과 희망을 가지게 한 것도 인류역사에 남을 혁신적 혜안이고 쾌거였다.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가 피땀으로 쌓아올린 공든 탑을 일시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좌파정권이 보여주었다. 좌파세력들의 집요한 세뇌공작으로 국민 대다수가 무의식중에 좌파성향을 갖게 되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패망의 길을 걷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2022-01-06

호랑이 꼬리에 서다

윤영대​​​​​​​수필가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검은 호랑이 해에는 동물의 왕처럼 강인한 정신력으로 어려움을 이겨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바닷가에서 붉은 태양을 보고 싶었지만 올해도 해맞이 행사가 취소되고 일출명소는 폐쇄되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있다가, 사흘 후 새벽 호미곶으로 차를 몰았다. 포스코 불빛을 보며 영일만의 희끄무레한 여명을 뚫고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 섰다. 잠시 후 수평선에 태양이 솟는다. 백여 명쯤 되는 관광객의 환호 속에 ‘상생의 손’은 ‘화합하고 화해하며 서로 도우며 살라’는 의미를 담아 붉은 해를 떠올린다. 나도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두 손을 모았다.호미곶 한민족해맞이축전행사는 취소됐지만 포항시장은 사자성어 ‘임난용지(臨難勇智)’를 펼쳐 들고 ‘어려운 일에 임할 때 용기와 지혜로 극복하자’는 새해 인사를 전하며 시민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했고, 경북도는 ‘호랑이 기상으로 당당한 경상북도’를 신년 화두로 삼았다. 호미곶, 대보(大甫)는 육당 최남선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이라고 했고, 격암 남사고는 한반도를 호랑이 모양으로 보고 백두산은 코, 이곳을 ‘범꼬리’라 하여 호미등(虎尾嶝)이라 했다. 호랑이 꼬리는 바로 힘, 지도력의 표시다.광장으로 올라오면 왼손 모형 앞의 성화대 ‘천년의 눈동자’에는 새천년이 시작될 때 변산반도 해넘이, 호미곶 해돋이 그리고 독도와 태평양 피지섬의 햇살로 채화한 ‘영원의 불씨’가 타고 있어 기쁘지만, 새해 첫날 많은 관광객에게 떡국을 끓여주었던 국내 최대 가마솥은 뚜껑이 닫혀있어 아쉽다. 연오랑세오녀가 마주 보며 반기는 조각상을 보고 부부의 정을 생각해보며 새천년기념관 옥상에 오르면 하얗게 빛나는 태양의 난반사가 고운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국립등대박물관과 등대역사관, 국내 최대의 호미곶등대를 둘러보노라면 광장과 바다전망대의 돌문어 조각 두 개가 미소를 자아낸다.검은 돌이 파도에 씻기는 바닷가 해파랑길 옆 낮은 해송 숲속에서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를 찾아 시도 읊조려 보고 ‘영일노래비’에서 옛 이름 ‘도기야’와 영일(迎日)의 뜻도 새겨본다. 과메기 말리는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대보항을 둘러보고, 고금산 정기 받은 호미곶과 보리향기 그윽한 구만리 벌판을 노래한 호미곶면가를 되새기며 언덕을 넘으면 흑구문학관 뒤쪽으로 넓은 청보리밭이 펼쳐지는데 아직은 파란 새싹들이다. 청어를 갈고리로 끌었다는 ‘까꾸리개’에는 일본 실습선 쾌응환(快鷹丸) 조난비가 있고 그 아래 신비로운 독수리바위가 영일만을 지키려는 듯 고개를 쳐들고 있다.호미곶은 원래 ‘말갈기 같다’고 장기곶(長鬐串)이라 했는데 학창시절에 토끼꼬리라고 배웠고 이제는 호랑이 꼬리다. ‘호랑이 꼬리에 나무를 심자’는 호미수회의 열정이 담긴 호미숲터에서 소맷돌 ‘악어바위’를 내려다보며 호랑이 꼬리 만지듯 지나 본 새해 아침, 청보리 푸른 3월 지나 노란 유채꽃 넘치는 5월도 지나면 청포도 익는 7월엔 청포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려니… 호랑이 기상을 받아 국운의 상승과 국태민안을 이루는 큰 손님을 맞이하고 싶다.

2022-01-06

또 높인 출산장려금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예측 발표한 2025년 국내 합계 출산율 0.52명은 실로 충격적 수치다.세계적으로 0명대의 합계 출산율을 보이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국가 장래인구 추계에서 0.52명까지 빠르게 급락할 것으로 예측된 통계청의 이날 자료는 놀라움을 넘어 국가적 위기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자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결혼과 출산이 지연되는 추이를 반영한 자료라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인구절벽의 속도가 급전직하하고 있음을 뜻하는 내용이다.OECD 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합계 출산율 3.1명이다. 이스라엘 여성 한 명이 3명의 자녀를 낳을 때 우리나라 여성은 한 명도 낳지 못한다는 통계다.이스라엘의 출산율이 높은 것은 가족중시 문화와 유대교, 출산장려제도에 전적으로 기인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 중 특이한 것은 체외수정과 수정란 동결보존 등의 생식보조 의료를 의료보험으로 보장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 880만명 중 체외수정이 연간 4만 건이 넘는다. 인구대비 체외수정 건수는 세계 최고다. 신생아의 5%가 체외수정을 통해 태어난다고 한다.우리나라도 소멸위기를 느낀 자치단체마다 경쟁적으로 출산지원금을 지원하며 출산율 높이기에 전전긍긍하나 효과는 맹탕이다. 감사원이 지난해 저출산 고령화 대책과 관련한 감사에서도 인구가 적은 시군이 지급하는 출산장려금이 해당 시군의 인구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복지부가 올해부터 우리나라 신생아에게 지급하는 출산장려금 등 각종 지원금을 연간 680만원까지 크게 높였다. 돈만 준다고 애를 많이 낳지는 않을 텐데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1-06

코로나 방역에 지친 경산보건소 인력 충원 절실

심한식 경북부 경산시보건소 직원들이 지역 내 확진자가 발생한 2020년 2월 19일 이후 2년 가까이 방역 일선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경산은 대구시와 인접한 지리적 특성과 교통 편의성으로 지역 간 왕래가 활발해 인적 접촉 빈도가 매우 높다. 10개 대학과 5개 산업단지 입지 등으로 유동 인구가 많아 감염병 확산 위험률이 높아 코로나19 대응 업무강도 또한 타 지자체에 비해 현저히 높다.경산지역 확진자는(5일 오전 8시 기준) 2천878명으로 경북도 확진자 1만5천733명 중 18.29%를 차지해 경북도내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2020년 2월부터 12월까지 자가격리자는 5천681명이었지만 확진자 급증으로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자가격리자는 1만6천486명으로 지난해 대비 3배 가까이 증가했다.경산시 선별진료소 검사 건수는 총 43만7천229건이고, 확진자가 급증한 최근 12월 검사 건수는 4만7천366여 건으로 하루 평균 1천500여 명을 검사하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한파와 코로나19 확산세에 선별진료소 직원의 고충이 깊어지고 있다.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전환을 목표로 무증상·경증 확진자의 재택치료를 위해 지난해 11월 재택치료 TF팀이 구성됐다. 40명이 치료 중이며, 87명이 공동격리 중이다.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보건소 직원을 중심으로 의료방역대책본부 14개 팀을 구성했다.확진자 발생 시마다 쏟아지는 민원 전화응대, 확진자 역학조사와 접촉자 파악, 집중 방역 소독, 백신 예방접종, 임시선별검사소 운영 등 지난 2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현재 직원들은 본연의 업무를 포함,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2, 3개 업무(선별진료, 사례조사, 야간검체 등)를 겸임하고 휴일 없이 밤늦도록 근무하고 있음에도 줄어들지 않는 확진자 숫자에 체력적인 한계와 정신적인 피로감을 나타내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시는 감염병의 전문적인 대응을 위해 역학조사관 임명, 감염병대응팀 신설, 전국 최초 코로나19 PCR검사 보건소 자체 실시 등 감염병 대응 역량을 높이고자 노력했고, 이를 인정받아 최근 경북도에서 주관하는 ‘코로나19 대응 우수시군 선정 평가’에서 대상을 받았다.하지만 한정적인 인력과 자원으로 코로나19 대응을 2년간 했기에 직원들은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이에 지속되는 코로나19 유행과 향후 신종 감염병의 출현에 대비해 보건소 직원 인원 확충과 감염병 전담 조직(과) 신설, 예산 확대 등 감염병에 대응할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다./shs1127@kbmaeil.com

2022-01-05

구미에서는 7급 승진보다 4급 승진이 쉽다?

김락현​​​​​​​​​​​​​​경북부 최근 들어 구미시 젊은 공무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발언이 “구미에는 7급 승진보다 4급 승진이 더 쉽다”이다.겉으로 보이는 이유는 이번 신년 정기인사에서 국장(4급) 승진은 총 4명인데, 국장 승진 요인을 갖춘 대상자가 5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그나마 구미시가 승진 요인을 갖춘 5급 대상자를 늘리기 위해 정기인사를 오는 13일까지 미뤘기에 5명까지 늘었다. 당초 대상자는 3명에 불과했다.구미시가 승진 대상자를 늘리기 위해 노력을 했음에도 ‘7급 승진보다 4급 승진이 더 쉽다’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단순히 현재 대상자들 간의 경쟁이 없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구미시의 국장은 보통 5∼8개 과를 통솔하게 되는데 그러한 막중한 자리에 경쟁도 없이 승진요인을 갖추었다는 이유만으로 승진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은 아닐까.더욱 깊이 들어다보면 현재 대상자들이 국장직을 맡기에 능력이나 인성이 부족하다는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현재 국장 승진 대상자조차 “만약 이번 국장 승진 대상자가 2배수라도 됐다면 현재 대상자들은 나를 포함해 아무도 승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이러한 상황으로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에서도 국장자리를 공석으로 둬야한다는 지적도 있다.경쟁자도 없이 단순히 승진요인, 즉 순번이 됐다는 이유로 국장으로 승진한다면 자칫 공직사회가 일하지 않는 분위기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더이상 국장을 공석으로 두긴 힘들어 보인다. 국장 승진요인을 갖춘 대상자도 있는데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 현직 시장도 출마하기 때문에 국장자리를 비워두기에는 행정공백이 우려된다.결국, 국장에 승진하는 인사들이 자신들의 부정적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다.또 구미시는 10여 년 전부터 전문가들이 지적한 ‘베이비 붐 세대들의 정년 시대’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해 벌어진 이번 경쟁력 없는 국장 승진인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처럼 되긴 위해선 최소 10년은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고 인사를 해야 할 것이다./kimrh@kbmaeil.com

2022-01-05

대통령을 선택하는 프레임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2022년, 임인년(壬寅年)이 밝았다. 육십간지 중 서른아홉 번째로 ‘검은 호랑이의 해’이다.올봄에는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올해의 흑호(黑虎)가 되기를 바라는 여야의 후보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호환마마(虎患媽媽)가 가장 무서웠다. 그런데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호환보다 더 무섭다. 천연두는 박멸됐지만 코로나바이러스는 변화무쌍하다. 아직도 호환마마가 옛이야기만은 아닌 듯하다.나라를 안전하고 부강하게 만들어 준다면 유권자들은 기꺼이 한 표를 던질 것이다. 팬데믹 여파에도 마스크 쓰고, 비닐장갑 끼고 지난 총선 때 투표했던 국민들이다. 이번에는 정말 잘 뽑아야 한다면서 마음을 다잡지만, 올해 대선은 역대 최악의 대선으로 불리고 있다. 대권을 거머쥔 후보가 구원의 빛을 비춰줄지, 호랑이보다 무섭게 괴롭힐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그래서 투표에 나서는 이들은 저마다 ‘프레임(frame)’이라는 안경을 걸쳤다. 심안의 시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지만 때로는 테두리 안에 마음이 갇히기도 한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이 달라지면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도 바뀐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거철엔 유권자의 무의식을 선점하기 위해서 프레임 전쟁이 벌어진다.대통령을 선택할 때 상당히 효과적인 프레임이 있다. 그것은 ‘최초 타이틀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은 단순해 보이지만, 시대정신과 결합하면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낸다.최초의 인권 변호사 출신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화를, 최초의 대기업 CEO 출신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 성장을 감성적으로 상징화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는 데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도 한몫했다. 전직 대통령 탄핵 후 집권한 첫 대통령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겹쳐 있다.현재 거대 양당의 두 여야 후보들은 어떤 프레임으로 보여지고 있을까? 여당의 이재명 후보는 일 잘하는 행정가의 면모를 내세운다. 그는 최초의 민선 도지사 출신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야당의 윤석열 후보는 적폐 수사를 지휘하며 정권에 맞섰던 결기를 부각시킨다. 그는 최초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두 후보의 최초 타이틀 프레임에 벌써부터 흠집이 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윤석열 후보는 고발 사주 의혹에 휘말렸다. 최초 타이틀의 감성 스토리가 퇴색하고 있다.이쯤 되면 새로이 보여줄 프레임도 군색해진다. 앞으로 네거티브 공방이 거세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처뿐인 영광으로 최초 타이틀을 달성할 것이다. 대권을 잡은 승자는 최초 타이틀에 깃든 시대정신은 꼭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투표자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 그도 아니면 최악을 피하자는 심리가 있다.선택이 어려울 때는 또 다른 프레임을 찾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다는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을 내려놓고 “누구?”가 아닌, “왜?”의 프레임으로 자문자답하는 시간을 가져볼 때이다.

2022-01-05

달빛조각 춤사위

양태순수필가 겨울 밤하늘은 시푸르다. 파랑물을 잔뜩 머금은 무명처럼 시린 차가움으로 깊이를 더한다.툭 건드리면 물방울이 아니라 은가루가 좌르르 쏟아질 것만 같다. 피터 팬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날아가는 웬디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자꾸 하늘을 더듬는다. 그럴 때면 내 머리에 숨어있던 기억들이 말랑말랑 파랗게 살아난다.달이 나를 따라다닌 적이 있다. 친구 선이집을 찾아가는 길이나 배꼽마당에 숨바꼭질 할 때, 뒷간에 볼일 보러 갈 때면 나를 따라왔다. 떡하니 나서서 내가 너를 지켜준다는 자랑이 아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은근하게 동무해준다. 든든하게 지켜주니 밤마실이 무섭지 않아 자주 친구집을 찾고는 하였다.섣달 보름날 달빛의 촉감은 벨벳 같았다. 절기상 엄청 추울 때인데 구름의 두께가 두꺼워진 푸근함이 있었다. 둥두렷이 떠오른 달의 주위에 오리온자리, 황소자리를 비롯한 별자리가 선명했다. 마치 땅으로 내려올 것처럼 가까웠다. 손을 뻗으면 공기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그 달빛이 가장 장관을 이룬 곳은 장독대였다. 마당 귀퉁이 장독대에 다다른 달빛은 교교했다. 둘레를 감싼 보송한 빛에 의해 검은 항아리는 은가루가 묻은 듯 은빛이 돌았다. 어머니께서 떠놓은 정화수에 별들이 내려왔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바람조차 살곰 지나다녔다. 그 무엇도 깨뜨릴 수 없는 신성함이 깃든 장소였다.나는 거미줄에 낚일 곤충을 기다리는 거미처럼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너무 신비스러워 숨이 막혔던 풍경은 감동이었다. 그후 고요하다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그밤의 장면이 재생되고 재생된다.그날부터 달은 그저 달이 아니었다. 뭔가 내가 모르는 비밀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아득히 먼 조상들부터 정화수를 떠 놓고 기원하던 의식이 단순히 무속적인 행위만은 아닐 거라고. 과학의 진실과는 별개로 작용했다. 성년이 되어 하늘 보는 날이 거의 없었지만 어쩌다 달빛이 창으로 스미는 날이면 두근거리며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밤 이후로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며칠 전 바닷가를 걷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한 곳에서 은빛 군무가 벌어지고 있었다. 저 멀리 밤바다는 검게 누워서 가는 코골이를 하듯 가릉거리는데 등대 주위에서 날비늘 같은 것이 파닥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물결에 음표를 걸어두고 엷은 날개를 파르르 흔드는 빛무리였다. 넋을 놓고 보았다. 심장 소리가 들릴까 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조각조각 나뉘어 희게 반짝이는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하늘에는 분명 달이 있었다.수십 년이 지난 섣달 보름이 다시 소환되었다. 그밤이 고요의 대명사라면 이밤은 바다에 생을 펼친 이들에게 축원을 바라는 신성한 춤사위였다. 욕심을 닦아낸 각자의 원을 조각에 담아 하늘로 올리는 숭고한 기원제 같았다.긴 세월 달은 하늘에 있었다. 믿지 못할 전설이 이어져 왔고 별자리에 얽힌 영웅들의 이야기도 전해 왔다. 그 모두가 이야기로만 끝난다면 우리의 가슴에는 물기가 마르고 심장은 딱딱해지지 않을까.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세계와 과학이 풀지 못하는 상상의 공간이 있으므로 인간은 보다 겸손해지리라 생각해본다.나는 두 번의 신비한 경험을 했다. 이제 달하면 달나라에 가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신성한 무엇으로 기억되는 달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무엇을 담아 달을 보는지에 따라 그 형태는 무수히 변할 것이다. 때로는 신령함이나 엄마를 대신할 포근함이 될 것이나 더러는 무시무시한 심판관으로 다가올 것이다.가슴에 새겨본다. 달이 조각으로 나뉘어 쏟아져도 빛의 형태가 변하지 않듯 마음이 조각으로 나뉘어 여럿에게 가더라도 마음은 줄어들지 않고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내게는 아직 감염되지 않은 싱싱한 마음이 있다. 아까워하지 말고 두루두루 나눠줘야겠다.

2022-01-05

① 임인년(壬寅年), 희망과 생동의 바다

바다가 좋아 십수 년 째 바닷가 근처를 헤매며 살고 있다. 선박검사 기관에서 일하며 바다에 매료됐다. 국제학 전공 때에도 바다의 광활함에 이끌렸다. 망망대해의 신비를 여러분과 함께 바라보고자 한다. ‘정현미의 바다이야기’는 격주 목요일마다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검은 호랑이’로 불리는 임인년은 희망과 생동의 기운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일상을 회복하는 길목에서 만난 임인년의 물상(物象)은 그래서 더욱 반가운 지도 모른다. ‘위드 코로나’를 향해 나아갔지만 결국 미완의 자리에서 멈춰야했던 신축년(申丑年). 잃었던 기회를 되찾고, 평범한 일상을 기대하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길 바라본다.명리학에서 임인년(壬寅年)은 지혜와 성장을 표상한다. 천간인 임(壬)은 오행상 수(水)에 배속되어 차가운 겨울바다이자 응축된 생명력, 지혜 등을 내포한다. 지지인 인(寅)은 오행 중 목(木), 그 중에 양의 기운을 가진 인목(寅木)으로 성장과 동력을 의미한다. 결국 임인년(壬寅年)은 태초의 공간에서 탄생한 생명력과 그 존재의 성장을 함축하고 있다. 어둡고 차가운, 미지의 바다에서 태동하는 생명력을 그려낸 임인년의 물상(物象)은 코로나 일상에 갇힌 우리에게도 깊은 혜안을 던져준다.생명을 잉태한 바다는 암흑의 이미지다. ‘자원의 보고’이자 ‘삶의 터전’이라 불리는 지금의 바다와는 사뭇 다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각인된 바다는 절망에 가깝다. 조업 나가는 어민들의 뒷모습은 그래서 더욱 쓸쓸하다. 양망기에 잘린 손가락으로 무심히 그물망을 정리하던 노쇠한 어르신의 모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풍어와 만선의 포부는 그저 젊은 한 때의 추억일 뿐, 뱃일은 그저 숙명으로만 존재한다.어촌마을은 늘 조마조마하다. 평생 해 온 뱃일에 인이 박혔지만, 낡은 어선과 조악한 어로 장비는 제 기능을 못할 때가 많다. 매년 100명 안팎의 어민들이 조업 나가 돌아오지 못한다. 부상과 실종까지 합치면 500명이 넘는다. 열악한 조업 환경은 생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20년 전 25만 명에 이르던 어가 인구도 지난해 9만 7천명으로 줄었다. 만 65세 이상 인구는 이미 전체의 44%를 넘어섰다. 어촌마을의 내일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기후 변화는 또 다른 형태로 어촌마을을 위협한다. 기상 예측은 어민들의 안위와 직결된다. 자원 고갈은 어민들을 먼 바다로 내몰고, 심해는 더 거친 야성을 드러낸다. 기상이변까지 겹치면, 결국 해양사고로 안부가 전해진다. 매년 증가하는 해양사고 발생률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그럼에도 우리는 바다에서 희망을 품는다. 제철 수산물로 일상의 원기를 돋우고, 문학작품에서 긍정을 긷는다. 문학작품에서 만나는 바다는 막강하다. 주인공은 항전을 불사하며 바다를 넘어서거나 응축의 기운으로 받아들인다. 결말은 한결같다. 결국 일어서고 나아간다. 신화와 역사도 마찬가지다. 기록의 범주에서 만나는 바다는 존재의 변이를 돕는다. 주체는 확장하고 성장한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가 전 세계 청소년의 필독도서인 이유다.어촌마을의 바다는 전변의 시기를 겪는 중이다. 연근해 어업은 양식업과 수산가공업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인 수산 강국들은 이미 진행 중이고, 우리는 짧고 굵게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고령의 어민을 위협했던 영세하고 열악한 어업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정현미작가 일상의 바다는 지역의 전통과 음식 문화를 주도하며 살아 숨 쉰다. 각기 다른 제철 수산물은 마을 전통음식으로 전승되고 동시에 낚시꾼과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어촌마을의 명맥은 방문객들로 이어져 변형, 계승된다. 코로나 이전인 2017년, 연안 여객선 이용객은 1천600만 명을 넘어섰다. 역대 최고의 기록이다. 섬을 오가며 만나는 바다에서 위로받고 기운을 얻는다.올해로 코로나 팬데믹 3년째를 맞는다. 존재는 희미해지고 관계는 단절됐다. 생동하는 기운이 낯설다. 하지만 우리는 직감한다. 팬데믹은 엔데믹으로 바뀌고, 곧 평범한 일상이 찾아올 것이다. 미지의 바다가 생동하는 에너지를 품고 있듯이, 우리 앞에 놓인 칠흑 같은 현실도 곧 북적거리는 일상으로 변할 것이다.그러니 오늘의 일상을 당당히 마주해보자. 나아가는 용기는 크게 발복하는 기운으로 다가올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소중한 오늘이 곧 도래하길 기원해본다.※정현미 작가 프로필-前 매일신문사 취재기자(46기)-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국제학 석사(국제물류 및 항만 전공)-前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 대외협력실 홍보작가

2022-01-05

핵융합시대 오나

화석에너지가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면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핵융합이 부상하고 있다. 핵융합이란 가벼운 핵들이 결합해 더 무거운 핵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 철원자 핵보다 가벼운 핵은 핵자당의 결합에너지가 질량이 작을수록 낮아서 더 무거운 핵으로 될 때 더 안정한 핵이 될 수 있다. 이때 결합에너지의 차이는 질량결손으로 나타나며,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한다.핵융합 발전은 태양의 에너지 생성 방식을 본뜬 것으로, 우주에서는 수소로 이루어진 거대한 가스 덩어리가 높은 열을 받아 헬륨으로 변하는 핵융합이 끊임없이 계속된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핵융합을 지구에서 실현해내는 기술이 인공태양이다. 인공태양은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연료로 사용해 섭씨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생성하고, 이를 자기장을 활용해 가두는 장치다.이러한 핵융합 기술을 이용하면 바닷물 1ℓ로 휘발유 300ℓ에 달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최근 관영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과학원 허페이 물질과학연구원은 핵융합 실험로‘이스트’(EAST)를 이용해 지난해 말 1억 2천600만도의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를 1056초(약 17분 6초) 동안 유지하는데 성공해 세계기록을 경신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지난해 6월 1억2천만도 초고온에서 101초간 유지하는데 성공, 세계 기록을 달성했다.한국은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 2020년 11월 인공태양 ‘케이스타’(KSTAR)를 1억도에서 20초 동안 운행하는데 성공한 바 있다. 지구 온난화를 막고, 인류에게 닥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하루빨리 핵융합기술이 완성돼 새로운 에너지 시대가 도래하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1-05

국운이 다했을까

장규열한동대 교수 하루종일 놀란 가슴으로 지켜보았다. 대선판에 나선 제1야당의 모습으로는 믿기 힘들도록 어지러웠다. 떠난다는 사람, 비난하는 목소리, 해체당한 대책본부, 나는 못 나간다는 외마디 반발과 사라져 보이지 않는 후보까지. 온종일 뉴스거리들이 관심을 끌었지만, 정치권의 갈등과 정치인들의 거취가 대상이었을 뿐 나라와 국민은 보이지 않았다. 정치는 왜 하는 것일까. 경제는 기업이 하고 교육은 학교에서 하며 나라는 군인들이 지키는데, 정치는 어떤 생산적인 일에 복무하는 것일까. 선거에 나선 이들이 ‘공약’을 내걸며 약속을 하지만 신실하게 지켜낸 약속이 얼마나 될까. 오죽하면 ‘공약이 그런 거 아니냐’며 스스로 깎아내리는 대선후보마저 있지 않았던가. 정치의 효용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정치는 국민을 배반하는가. 선거판에 나선 후보들이 선거일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세상에서 가장 후한 얼굴로 온갖 약속을 한다. 당신만 뽑아주면 세상이 핑크빛으로 물이 들도록 멋진 약속에 기대를 걸고 표를 던졌지만, 선출된 후에 돌아온 것은 실망과 낙담이 아니었던가. 정치는 믿지못할 것의 대명사가 되고 정치인은 거짓말의 명수로 치부되었다. 신기한 일은, 그래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선거 때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는 얼굴들을 보고도 국민은 다시 또 속아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배반당하는 느낌에 길이 들었을까, 이제는 투표일이 한참 남았어도 믿기보다 속아주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거짓에도 흥분하지 않고 내로남불에도 노하지 않는 유권자가 되어버렸다. 공정과 상식을 외치는 그가 불공정하고 몰상식하여도 문제삼는 일은 거의 없다.선거대책기구를 흩어놓았던 이는 개인이나 정당을 비난함을 넘어 국민을 향해 ‘국운이 다하였다’고 악담하였다. 나라의 운명이 다했다는 게 아닌가.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일이지만, 정치인에게 국운이 들먹거려지는 일을 용납해야 하겠는지. 그래봐야 어느 정당의 후보 한 사람을 도왔을 뿐이면서 그 일이 여의치 않았기로 ‘나라의 운명’을 탓하며 돌아서는 일은 용서하기 어렵다. 당신같은 소인배 한 사람의 험담에 나라의 운명이 기울지 않는다. 국민의 긴장이 느슨할 때면 저런 정치인들의 경솔한 행태와 가벼운 입담에 국민이 어지럽다. 나라와 국민의 내일을 생각하는 비전을 한 자락도 내어놓지 못하는 그들이 함부로 처신하고 입을 놀리도록 놓아둘 수는 없다. 정치가 올바르고 정직하게 나라와 국민을 섬기려면 국민이 깨어날 수밖에 없다.국회에도 삼백에 이르는 의원들이 있다지만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정치권을 넘나드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려고 그 언저리를 돌고 있는 것일까. 개인적 욕망에 기댄 일신의 영달에만 관심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함량미달이다. 슬그머니 돌아온 갑부의 정치복귀 소식도 적잖이 거슬리는데, 정치권이 깨끗해지려면 국민이 불꽃같은 경계심을 세워야 한다. 민주주의는 ‘보통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지향하는 게 아닌가. 국운은 갈 길이 아직도 멀다.

2022-01-05

호랑이가 되자

새해가 밝았다. 2022년 임인년은 호랑이의 해다. 호랑이만큼 아름다운 동물이 또 있을까? 커다란 근육질의 몸, 석양이 흘러든 주황빛 털, 묵죽을 친 것 마냥 거침없이 뻗은 검은 줄무늬,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화톳불 안광까지…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말은 오직 호랑이에게만 유효하다. 그는 무리 짓지 않고 단독생활을 즐기며 무려 1000제곱킬로미터 밀림을 다스리는 왕이다. 코끼리, 코뿔소, 악어도 호랑이 앞에서는 한낱 잡짐승에 불과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 중 호랑이만이 영웅의 이미지를 갖는다.어느 시리얼 회사 광고처럼 모두에게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 우리 모두 호랑이가 되자! 코로나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쓰러트리고, 불황의 머리를 찍어 누르고, 불행과 불운과 좌절 따위 포효 한 방에 쫓아버리는 호랑이가 되자. 생각해보면 호랑이가 인간이 되길 포기하고 동굴을 뛰쳐나온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인간이 돼서 뭐 하나? 인간답지 않은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아수라장, 인간으로 살기 참 힘든 세상이 아닌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인간보다 호랑이가 되고 싶다. 그게 어렵다면 물속의 범인 쏘가리라도 되어야겠다.호랑이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시인들이 많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1794년에 “호랑이, 호랑이, 밤의 숲속에서 밝게 타오르는, 어떤 신의 손 또는 눈이 너의 무서운 균형을 빚어냈을까”(‘호랑이’)라고 예찬했다. 호랑이라는 압도적 생물에서부터 장엄함, 숭고함을 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보르헤스의 시다. “한 마리 호랑이를 생각하네. 어스름은 분주하고 광대한 도서관을 예찬하고 서가를 아득히 멀어지게 하네 (…) 나는 상징들의 호랑이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진짜 호랑이를 대비시켜 보네”(‘또 다른 호랑이’)라는 문장을 읽을 때마다 전율이 인다. 보르헤스는 지식과 기술의 현대문명이 인간을 즉물적 세계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을 비판하면서 체험이 결여된 상징과 상상, 유약하기 짝이 없는 합리적 이성 대신 피 냄새를 풍기며 무심하게 사냥하고, 교미하고, 그러다 무심하게 죽는 야생 호랑이의 자연 본능을 동경했다.장석주 시인은 “페 깊숙이 차가운 공기를 빨아들인다/ 내 핏속에/ 야생의 호랑이는 살아 있다 (…) 게으름과 잡식에도 불구하고 호랑이는 살아 있다/ 내 핏속의 호랑이는/ 가끔은 영감과 상상을 낳는다”(‘내 핏속의 야생 호랑이’)라고 노래했다. 보르헤스의 ‘호랑이’가 원시적 자연 세계를 상징한다면 장석주 시인의 ‘호랑이’는 보편적이고 획일적인 도시 삶, 자본논리, 대중주의 등과 맞서는 예술가의 정신성 그리고 고독한 반골기질을 은유한다. 한편 홍성식 시인은 “다시 생겨난다면 신림동 독신가구주가 아닌 아무르 강변 어슬렁대는 호랑이로 살고 싶다. 포수 총에 맞고도 제 울음만으로 산천을 떨게 하는”(‘신림동 사람들’)이라고 기도했는데, 이는 무통문명의 보호 안에서 오히려 기쁨을 잃고, 삶의 의미를 잊고, 괴로움과 아픔도 모른 채 가축처럼 평온함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을 향한 포효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호랑이처럼 살아야 할 이유는 많다. 어떤 상대와도 두려움 없이 맞서 싸우는 용맹함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끊임없이 걷고 달리고 나무를 오르며 육체를 단련하는 성실함 또한 배워야 한다. 함부로 무리 짓지 않으며 단독자로 살아가는 고고함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무엇보다 호랑이는 쑥과 마늘 먹기를 거부한 채 동굴 밖으로 나와 자기존재를 보존한 진짜 승리자다. 보편사회가 나만의 고유한 기질과 개성, 취향을 포기시키려 할 때, 참을성이니 끈기니 ‘노오력’ 따위를 강요할 때, 남들 다 하는 거니까 너도 해야 한다며 겁박할 때 우리는 호랑이처럼 저항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나’로 살아야 한다. 획일적 가치에 종속당한 인간이 일평생 제 집과 일터를 벗어나지 못할 동안 호랑이는 무려 1000제곱킬로미터 반경에 영역 표시를 한다. 우린 협소한 삶을 벗어나 호랑이처럼 경험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새로움에 도전해야 한다.난 지금 인간이 호랑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아득한 신화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엉뚱한 제안은 결국 우리를 둘러싼 모든 구속과 억압, 제약을 찢어버리자는 얘기다. 고여 있는 우리 삶의 적폐들을 날려버리자는 것이다. “나는 내 모든 것들이 찢어지는 순간, 이 세계의 썩어 있는 것들이 표표히 흩어지는 것을 본다”(이병일, ‘호랑이의 숲’)고 시인은 말했으니, 나는 새해 첫날, 영화 ‘록키3’ 주제가를 들으면서 얼어붙은 안양천변을 달려야겠다. ‘Eye of the tiger’, 호랑이의 눈으로!

2022-01-04

‘한정’이라는 유혹

2022년 새해가 밝았다. 많은 이들의 새로운 마음으로 원하는 목표를 세운다거나 큰 소망을 빌었을 테지만 올해의 첫 날, 나는 자그맣고 소소한 소원 하나를 조용히 빌어 보았다.최근 회사 동료들 덕분에 한정판 운동화에 푹 빠졌다. 말 그대로 한정 수량으로 출시되는 신발이라 당첨되어야만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암만 돈이 많고 시간이 많아도 절대 구할 수 없는 희귀성 덕분에 운동화 공모(라플)은 MZ세대 사이에서 늘 핫한 이야깃거리다.할로윈 시즌, 크리스마스, 유명 가수와의 콜라보 제품 등 시기와 컨셉에 따라 출시되는 덕에 브랜드별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한정판 정보나 출시일을 공유하는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는 백만 명이 훌쩍 넘는 회원 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명 맘 카페에서도 발매 정보나 판매 매장 리스트를 활발히 공유할 정도다.한정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마음을 왜 이렇게 애간장 태우는 걸까. 비슷한 디자인으로 출시되어도 ‘리미티드’란 단어가 붙으면 괜스레 후광이 비치면서 구매욕을 자극하게 한다.물론 나도 처음엔 신발 하나에 그리 공을 들여 사는 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 괜히 더 머리 아프게 살 필요 있느냐며 코웃음 쳤으나 슬슬 한정판 운동화만의 새롭고도 묘한 매력에 빠져 들고 말았다.한정판은 브랜드를 상징하는 로고를 반대로 뒤집어 고유화 된 이미지의 틀을 깬다거나 독특한 컬러웨이를 보여준다. 운동화의 갑피, 힐탭, 아웃솔, 밑창 등 눈이 닿지 않는 부분까지 특별한 디테일이 자리하여 완성도 높은 퀄리티를 보여준다. 더군다나 간택된 이만 살 수 있단 제한을 둠으로써 소비자의 구매 심리를 자극한다.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 또한 라플의 유혹을 피해갈 수 없었나 보다. 지난해 8월 인스타그램 게시글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벼렸슴’이란 글과 함께 나이키와 미국 가수 트래비스 스캇이 협업한 한정판 운동화 사진을 공개하여 이목을 끌었다. 이 신발의 출시가는 약 19만원대지만 시간이 흐른 뒤의 거래가는 190만원을 호가했다.높은 수요에 비해 한정된 공급을 유지하니 몇 가지 인기 제품은 리셀가가 꽤 높은 편이다. 한정 운동화는 통상 정가보다 2-3배는 거뜬히 뛰는 가격대로 되팔 수 있을 정도니 슈즈+제테크의 합성어인 슈테크를 행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빅뱅 멤버인 지드래곤의 사인이 들어간 스니커즈의 판매 가격은 본래 22만원으로 출시되었지만 리셀 가격은 무려 1300만원으로 판매되기도 했다.하지만 한정판 운동화를 구하기 위한 과정은 굉장히 험난하다. 우선 수시로 해당 브랜드의 온라인 스토어를 계속해서 접속해야 한다.원하는 제품 공모를 할 수 있는 날짜와 시간 정보를 알아냈다면, 해당 날에 맞추어 접속한 뒤 공지된 조건에 맞추어 양식을 작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선 많은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한데, 접속자가 대거 몰리다 보니 꼭 인터넷 속도가 빠른 장소에서 시도해야 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겨우 운이 닿아 당첨이 되었다면 이젠 드디어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 과정 또한 조금 복잡하다.우선 정해진 매장에서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가서 사야한다. 아무렴 직접 매장에 가서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응모 가능한 매장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렇게 운이 좋아 당첨되어 매장을 찾아갔다면 이젠 운동화를 수령하기 위한 기나긴 대기 줄에 합류해야 한다.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면 인터넷으로 응모했던 회원 정보와 구매하려는 사람이 일치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본인인증이 시작된다. 신분 확인 후 마지막으로 사이즈를 체크해본 뒤 드디어 수령 받게 된다. 이런 번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웃돈을 주고서라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있다.하지만 운동화 컬렉터가 아닌 이상 굳이 프리미엄 가격을 붙여 사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라플을 하나의 놀이로 인식하여 재미로 응모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나도 여러 번 응모하다 보니 조금 욕심이 생긴 건 사실이지만, 아직까진 트렌드에 발맞추어 즐기고 있는 정도다. 그치만 해가 바뀌며 운의 흐름이 조금 바뀌었을 테니 당분간은 조금 기대해보기로 한다.

2022-01-04

나, 행복해도 돼?!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지난 해는 / 참 많이도 줄어들고 / 많이도 잠들었읍니다 하느님 / 심장은 줄어들고 / 머리는 잠들고 / 더 낮을 수 없는 난장이 되어 / 소리 없이 말 없이 / 행복도 줄었읍니다”(원문 그대로 옮김)정현종 시인의 시집 ‘나는 별아저씨’(1978, 문학과지성사)에 실린 시 ‘냉정하신 하느님께’의 1연이다. 44년 전 출간된 시집의 빛바랜 종이에 적힌 시구가 어쩌면 이렇게 올해 벽두의 상황을 그대로 그려주는지….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는 지구별의 참 많은 사람들을 잠들게 했다. 우리들의 심장은 두려움과 긴장으로 쪼그라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은 하릴없이 떨어져야 했고, 가게문은 강제로 닫혀야 했다. 행복의 총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코로나가 다시 확산되던 지난 12월 중순.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사적 모임 허용 인원이 4인으로 제한되기 작전, 지인의 회사 사무실에서 벗 몇이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가 무르익던 중 가장 연장자인 중견 기업 대표께서 둘째인 딸을 결혼시키고 난 뒤 한 달 동안 자신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였다 한다. 100%의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데 바로 얼마 뒤 연로하신 어머님께서 치매로 입원하셨고 형제 단톡방의 대화에서 어머님의 건강 문제로 인해 갑작스러운 불안감이 형제들에게 엄습하면서 자신의 행복감도 어느샌가 날아가 버렸단다.그 자리의 다른 벗이 말을 받았다. 행복하고 즐거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조차도 군부 독재 체제에 저항의식을 가지고 있던 1970-80년대 대학생들의 마음 한 켠에는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하는 자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행복할 때는 그냥 행복해 하는 것이 맞는데, 그러지 못했다고.여기저기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가 건네진다. 이 먹먹한 시대에 건네는 덕담이 공허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서로에게 전하는 희망을 감사히 받는다. 새로운 해가 뜨고 새 날이 밝았다. 새해 첫날만 그런 게 아니다. 매일 우리 앞에 해가 뜨고 날이 밝는다. 마냥 어두운 밤만의 날은 없다. 복은 하늘에 맡겨야 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행복은 다르다. 우리는 불행 속에서도 어떻게든 행복을 찾고 만들어내야 한다. 대책없는 긍정을, 속절없는 낙관을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다.정현종 시인은 앞 시집의 ‘절망할 수 없는 것조차 절망하지 말고…. - 노우트 1975’에 “행복은 행복의 부재(不在)를 통해서만 존재하기 시작한다. 행복은 불행이 낳은 천사이며 이미지이다. 그것은 항상 이미지로서 존재한다.”라고 적었다.그렇다. 행복과 불행은 반대말이지만 꼭 붙어서 오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마냥 행복할 수도 없고, 마냥 불행한 채로 허덕이지도 않는다. 옛 중국 변방 늙은이의 말 이야기(塞翁之馬)를 꺼낼 필요도 없다. 시인의 말처럼 행복의 부재는 행복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 우리 앞의 불행이 행복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보자.새날 아침, 코로나로 힘들고 일상에 지친 당신과 내가 서로 묻고 답한다.“나, 행복해도 돼?”“응. 행복해도 돼!”

2022-01-04

거짓말 좀 합시다

조현태​​​​​​​수필가 어떤 여인이 남편을 잃고 딸과 함께 살았다. 그녀는 일을 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생활비를 벌어들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딸은 어느 정도 성장하여 처녀가 되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소유한 물건을 하나씩 팔아서 근근이 끼니만 이어갔다. 마침내 남편의 집안에서 대대로 물려오던 보석 박힌 금목걸이마저 팔아야 했다. 딸에게 그 목걸이를 주며 보석상에 가서 팔아오라고 했다.딸이 목걸이를 가지고 보석상에 가서 보여주었다. 보석상은 세밀하게 감정한 후 왜 팔려고 하는지 까닭을 물었다. 처녀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어려운 가정 이야기를 했다. 보석상은 금값이 많이 내려갔으니 팔지 말고 나중에 팔면 더 이익이라고 일렀다. 그리고 처녀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며 내일부터 가게에 와서 일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처녀는 날마다 가게에 나가 보석감정을 보조하는 일을 했다. 뜻밖에 그 일이 처녀의 적성에 맞아서 빠르게 일을 배웠다. 보석감정사 자격증을 딸 만큼 실력과 기술을 익혔다. 기술과 정직성이 소문나자 고객이 훨씬 더 많아지고 보석상이 더 번창하게 되었다. 당연히 보석상은 처녀에게 충분한 임금을 지불하게 되었고 모녀의 생계가 해결되기 시작했다.몇 달이 지나 보석상은 처녀에게 제안했다. 이제 금값이 많이 올라 지금이 팔 적기라며 어머니의 그 금목걸이를 가져와보라고 했다. 처녀는 목걸이를 보석상에 가기 전에 자신이 직접 감정해 봤다. 그런데 그 목걸이는 금을 도금한 것에 불과했다. 가운데 박힌 보석도 미세하게 균열이 간 저급한 것이 아닌가. 어머니에게는 소중한 목걸이다. 지금 이것을 팔지 않아도 끼니 걱정은 없으니 잘 간직하는 편이 좋을 듯 했다.이튿날 보석상이 처녀에게 목걸이를 가져왔으면 보여 달라고 했다. 처녀는 보석상에게 배운 대로 감정을 해보니 형편없는 목걸이였다고 했다. 처음부터 그 목걸이가 값어치 없는 줄 알았을 텐데 왜 똑바로 말해주지 않았냐고 물었다. 보석상이 미소 지으며 “만약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해주었다면 내말을 믿었겠느냐? 아마도 어려운 처지를 이용하여 헐값에 사려한다고 나를 의심 했을 것이다.” 어쩌면 절망해서 살아갈 의지를 잃었을 수도 있지 않겠냐며 설명을 덧붙였다.그때 진실을 감추고 거짓말했기 때문에 얻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봐라. 지금 너는 보석감정사 기술을 얻었고 나는 너의 성실과 신뢰를 얻었다. 스스로 진짜와 가짜를 알아보는 눈은 어떤 조언보다 값지다는 교훈까지 얻었지 않느냐.이미 임인년(壬寅年)이 시작되었다. 새해 첫날의 해돋이를 보며 올해는 더 나은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그저 막연하게 복되기만 바라지는 않았으리라. 나름대로 결심하고 야무진 계획이나 자료도 준비했을 터이다.필자는 그 자료에 거짓말을 넣고 싶다. 상대방의 유익을 위한 거짓말.자신의 판단력을 가진 사람은 남을 의심하거나 절망하느라 삶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도 거짓말을 통해 처녀에게 가르쳐주었으니까.

2022-01-04

안전속도 5030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도심을 차로 이동하다보면 제한속도가 많이 달라져 있고 차들이 느리게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동차의 속도 변화가 우리의 삶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안전속도 5030’은 지난해 4월 17일부터 도로교통법을 개정으로 시행된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을 줄이고 보행자의 안전 확보를 위한 교통정책이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30㎞/h, 도로폭이 넓은 간선도로는 50㎞/h가 적용된다.안전속도 5030정책은 2016년부터 서울 및 부산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영됐고, 2019년 4월부터 2년간 유예 기간을 거치고 2021년 4월 17일부터 전국적으로 본격 시행되고 있다.국토부에서는 시행 100일 후 안전속도 5030 적용 후 교통사고 통계를 발표했다. 교통사고 사망자는 2020년 대비 12.6% 감소한 317명, 보행자 사망자는 16.7% 감소한 137명으로 조사됐다. 안전속도가 적용되지 않는 지역에 비해 2.7배의 큰 폭으로 감소했다.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실시한 보행자 충돌실험에 의하면 사람이 60㎞/h 자동차와 충돌 시 10명 중 9명이 중상 또는 사망에 이르고, 시속 50㎞/h 자동차와 충돌하게 되면 10명 중 5명이 중상 또는 사망에 이른다는 결과를 발표했다.즉, 충돌속도가 시속 60㎞에서 30㎞로 50% 낮아지면 중상가능성은 83.4%(92.6%→15.4%, 77.2%p) 줄어든다. 이유는 속도를 50㎞/h로 줄일 경우 제동 거리가 30%가량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속 60㎞를 50㎞로 줄일 때 보행사망가능성이 30%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제시되었으며 50㎞/h로 주행하는 경우 60㎞/h 주행에 비해 시간 차이는 평균 2분으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사고의 대다수가 차 대 사람의 사고이고 그중 사망사고가 36.7%로, 프랑스 11.6%, 미국 12.1%, 독일 14.2%나 높은 수치이다. 이는 자동차 위주의 교통체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유럽교통안전 선진국의 경우 1970년대부터 차량속도를 일반도로 50㎞, 이면도로 30㎞로 제한하고 있고, OECD 31개국에서 시행하고 있다.사람들 가운데 안전속도 5030에 대해 불편을 호소하는 분들도 있으며 교통상황에 따라 탄력적 운영을 요구하는 분들도 있다. 다변화된 도로 환경을 배제하고 감속이 사고율을 낮춘다는 방법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도로환경에 맞는 교통안전시설을 추가와 보강도 반드시 필요하다. 바닥형 보행신호등, 중앙분리대 설치, 스마트안전봉 설치 등을 통해 보행자의 안전권을 확보하고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실효성 있는 정책보완을 통해 시민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필요하다.일명 민식이 법이라 불리는 어린이보호구역 제한속도 규제가 나올 때도 운전자들은 불만을 토로하였다. 또한 이러한 법을 악용하거나, ‘민식이 놀이’가 초등학생 사이에 유행하면서 일부 부작용도 나타났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들이 가지고 오는 효과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자는 법의 취지에는 많은 분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강력한 스쿨존 보호가 시행되고 있으며 안전속도정책은 일상생활이 되어 있다.그동안 운전자 입장에서 익숙했던 교통정책들이 보행자 위주의 정책으로 바뀌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때이다. 보행자도 약자임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도로와 교통법을 제대로 알고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어야 한다.독일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자전거 면허’가 있다. 안전하게 자전거를 타는 법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교통법규에 대해 배우면서 보행자 보호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스스로 인지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 보행자보호와 안전한 교통법규에 대해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히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행자를 보호하고, 교통의 흐름에 맞는 운전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느리지만 안전하게 운전하면 초보운전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특히 여성운전자들에게는 더욱 가혹하다. 조금이라도 늦게 운행하면 끼어들기, 경적 울리기 등을 통해 운전자를 위협하는 경우도 허다하다.우리는 그동안 ‘빨리 빨리’를 외치며 바쁘게 살아왔다.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빨리 성과를 이루고, 서두르는 모습은 너무도 익숙한 우리의 삶이다. 이러한 문화로 사람보다는 자동차 위주의 교통정책에 익숙해져 있었고 경제성장이 만능인양 숨 가쁘게 달려온 치열한 기성세대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다.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여유 있게, 조금 더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한 사람의 생명이 존중받을 때 우리 사회는 삶의 질이 높아지며 진정한 선진국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22-01-04

새해 결심

사공정규 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2022년 새해가 밝았다.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이 송두리째 변한 것이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 2020년 1월 20일 이후 햇수로 3년째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코로나 블루(우울), 코로나 레드(분노), 코로나 블랙(절망) 등 정신적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우울, 분노,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을 심어야 한다.올해 말에 코로나19가 종식 될 것인지는 우리는 여전히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코로나19는 언젠가는 끝이 난다”, “어떠한 감염병도 끝나지 않았던 역사는 없다” 등 이 또한 지나간다는 것이다.우리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일상 멈춤 속의 비관적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합리적 낙관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있다.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더 나아가 희망을 맞이하기 위해서도 준비를 해야 한다.많은 사람이 새해가 되면 새로운 새해 결심을 하곤 한다.그러나 코로나19로 일상이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는 세 번째 해인 2022년 새해는 새해가 되면 새로운 새해 결심을 하곤 하는 관행도 예년 같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우리는 새해 결심을 했으면 좋겠다. 왜 희망을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그 희망을 이룰 수 있는지를 자문하고, 한 해를 출발했으면 한다.미국 예일대의 연구에 의하면 명확한 목표가 있는 사람이 목표가 없거나 구체적이지 않았던 사람보다 훨씬 좋은 성과를 보였다고 한다. 물론 새해 결심의 부작용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새해 결심을 하는 것이 새해 결심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이야기이다.오늘은 새해 결심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2가지 제언만 하려 한다. 첫째로 ‘새해 결심은 목표가 비현실적이고 너무 높은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작은 목표로 시작하라’는 것이다.성경 욥기 8장7절에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말이 나온다, 작게 시작하라. 그러면 나중에 심히 창대해진다. 영화 ‘쇼탱크 탈출’에서도 주인공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 탈출 계획을 세운다. 교도소라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며 매일 숟가락으로 벽을 파내며 희망을 잃지 않았고 결국 탈출에 성공했다. 인생은 작은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두 번째로 ‘미루지 말고 당장 시작하라’는 것이다. 새해 결심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처럼 일단 시작해야 한다.그런데 우리는 시작하지 않고 일을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 캘거리대 피어스 스틸 교수가 2만4천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가끔씩이라도 ‘미루기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95%였다라고 한다. 그럼에도 항상 일을 미룬다면, 아무 성과가 없을 것이다.일을 미루지 않고 일을 당장 시작하는 해결 솔루션으로 ‘5분 규칙(five-minute rule)’을 제안한다. ‘무언가하기 싫은 일이 있다면 그 일을 당장 시작하고 적어도 5분 동안만 해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결국 그 일 전체를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간단해 보이는 ‘5분 규칙’이 의외로 잘 먹히는 이유를 러시아의 심리학자 자이가르닉이 제시한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로 설명해 보겠다.그녀는 식당 웨이터가 많은 주문을 동시에 받아도 그 내용을 모두 기억했지만, 계산이 완료된 후에는 주문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특이해 보여 연구를 시작하다가 ‘미완성 효과’라고 불리는 ‘자이가르닉 효과’를 발견했다.‘자이가르닉 효과’는 완료한 일보다 완료하지 않은 일을 기억하는 심리적인 현상이다. 일단 시작했지만, 끝마치지 못하거나 완성되지 못한 일은 마음속에 계속 떠오른다. 그래서 결국 그 일을 다 하게 되는 것으로 다시 말해 부담스럽지 않는 5분으로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그 일은 미완의 효과인 ‘자이가르닉 효과’를 발휘해 결국에는 해낼 가능성이 높아진다.은행가이며 실업가로 유명한 ‘로스차일드’는 ‘많은 일을 하고자 하면 지금 당장 한 가지 일을 시작하라’고 했는데, 핵심을 찌르는 명언이다.로스차일드는 유태인이었기에 사회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며 자랐다. 그래서 늘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이 돼 남들이 자신을 얕잡아 보지 못하도록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엇으로 세계를 지배할까 생각한 끝에 은행을 만들기로 결심을 했다. 당장 유태인이 모여 사는 작은 거리에서 은행을 시작한 것이 그의 꿈, 그의 목표대로 세계적인 은행으로 성장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을 갖게 됐다고 한다.로스차일드의 예처럼, 새해 결심이든 자신이 원하는 꿈과 목표이든, 그 일을 미루지 말고 당장 작은 하나부터 실천해간다면 우리는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결심, 꿈,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022-01-04

경희와 베라

김규종 경북대 교수 나혜석(1896-1949)의 단편소설 ‘경희’(1918)의 주인공 경희는 러시아 최초의 여성 혁명가 베라 자수리치(1851-1919)를 떠올리게 한다. 귀족 집안 출신의 지식인이자 사회운동가 베라는 페테르부르크 경시총감 트레포프 저격 사건으로 수감된다. 만년의 투르게네프(1818-1883)는 그녀를 염두에 두고 산문시 ‘문지방(Porog)’(1878)을 쓴다.문지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베라는 선택의 기로(岐路)에 선다. 이쪽은 교양, 세련, 안락, 계몽, 행복, 가문 같은 우아함이, 저쪽은 무지몽매, 야만, 가난, 질곡, 투쟁, 배신 같은 악덕이 자리한다. 목소리가 베라에게 묻는다. ‘문지방을 넘겠느냐?’ 그녀는 넘겠다고 답한다. 마침내 담대하게 문지방을 넘은 그녀에게 두 목소리가 들린다. “성녀(聖女)!”와 “바보 같은 년!”어쩌면 식민지 조선 여성 가운데 나혜석은 최초의 수식어를 가장 많이 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양화가, 진보적 여성운동가, 소설가이자 문필가 등등. 1921년 ‘매일신보’에 실린 시 ‘노라의 집’은 나혜석의 직선적이고 노골적인 선언문이다.“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수하게 /엄밀히 막아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나주게 //남편과 자식들에게 대한 /의무같이 /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사명의 길로 밟아서 /사람이 되고저”아내이자 어머니이기 전에 한 사람의 여성으로 살아가려는 그녀의 강고한 의지가 빳빳하게 드러난 절창이다. 전통적인 가족관계에서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당연한 것으로 수용해야 했던 여성의 운명을 정면으로 거부한 나혜석. 그녀는 그것을 사람이 되는 ‘신성한’ 의무라고 규정한다. 이런 당찬 포부와 인생관으로 무장한 여성 나혜석.경희는 나혜석의 자화상이다. 1918년 당대의 엄격한 가부장제와 고루한 결혼관, 교육받은 신여성을 바라보는 세상의 냉담한 시선과 정면으로 싸우고자 했던 경희. 그녀의 투쟁대상은 일차적으로는 아버지와 친인척이며, 나아가 여성의 구실과 사회활동을 차갑고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던 식민지 조선 사회 전체였다.그녀보다 이른 시기에 러시아의 진보적 여성 혁명가 베라는 사회개혁과 인간의 길을 열기 위해 질곡의 길을 선택한다. 경희 역시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사회와 가족들의 인식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여성상을 선보인다. 그들의 풍찬노숙과 신산(辛酸)한 삶의 여정을 돌이키면서 2022년 우리 사회와 세태를 생각하노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든다.남학생들보다 높은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률, 활발한 사회진출과 성과가 우리 앞에 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허다한 난제가 있지만, 100년 전 식민지 조선 사회와 비교하면, 아니 50년 전인 1970년대와 비교하면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진보와 혁명에는 피와 눈물과 땀이 서려 있다. 안나 카레니나가 베라 자수리치와 노라 헬메르를 거쳐 다시 이경희로 옮아가는 경이로운 계보를 새삼 확인하는 새해가 환하다.

2022-01-04

후지산의 분화

일본사람은 새해 첫 꿈에서 후지산(富士山)을 보면 매우 재수가 좋다고 한다. 도쿄 외곽에 있는 중상류층이 주로 사는 주택단지 중에 후지산의 조망권이 잡히는 집은 프리미엄도 붙는다고 한다.후지산은 오래전부터 일본의 상징이자 고대 신앙의 대상이다. 우리 민족이 백두산을 영산(靈山)으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본서는 신성한 산에 오를 때면 등산 대신 등배(登拜)라는 말을 쓴다. 후지산도 등배의 대상이다. 일본인이면 일생에 한번은 꼭 오르고 싶은 산이다.해발 3천776m로 일본에서 가장 높다. 백두산보다 약 1천m가 높은 산이다. 일본 관동지역 대평원에 우뚝 솟은 이 산은 맑은 날이면 100km가 떨어진 도쿄서도 보일 정도다. 2013년 ‘신앙의 대상이자 예술의 원천’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산마루에 눈이 덮인 채 고독하게 바다와 호수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화가와 시인들에게 영감을 많이 준 산으로 평판 나있다.휴화산은 현재는 화산활동이 중단된 산을 말하나 새로운 정의가 나와 휴화산도 지금은 활화산으로 분류한다. 일본의 후지산은 휴화산이었으나 바뀐 정의에 따라 활화산으로 분류된다. 후지산은 1707년 12월 마지막 분화한 이후 지금까지 화산 활동이 일어나지 않았다.최근 일본에서는 후지산이 올해 당장 폭발할 수 있다는 지질 전문가의 경고가 잇따라 일본열도가 공포감에 휩싸였다. 일부는 작년 12월 후지산 주변에서 지진 등 징조가 보였다며 “무조건 달아나는 것이 살길”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한다.후지산이 폭발하더라도 한국에 미칠 파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그래도 괜시리 걱정되는 것은 지구변화의 무쌍함을 인간이 알 수 없는 탓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1-04

격차사회,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가 발표한 ‘세계불평등보고서 2022’에 따르면 한국의 빈부격차는 매우 충격적이다. 2021년 기준으로 소득불평등을 보면 상위 10%가 전체소득의 46.5%를 가져간 반면, 하위 50%는 전체소득의 16%를 얻는데 그쳤다.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각해서 상위 10%가 전체 부의 58.5%를 차지한 반면, 하위 50%는 5.6%에 불과했다.상위 10%와 하위 50%의 격차를 비교해보면 소득 기준으로는 14배, 부를 기준으로 하면 52배나 된다. 이는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자본주의 선진국보다도 훨씬 큰 격차이다. 영화 ‘기생충’이나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다수 국민들이 우리사회의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에 공감했기 때문이다.이제 우리는 더 이상 격차사회를 자본주의·자유주의·능력주의라는 명분으로 방관해서는 안 된다. 양극화된 사회, 계층 사다리가 끊어진 나라에서는 민주주의 원칙인 대화와 타협은 무력해지고 절망과 분노, 투쟁과 쟁취가 판을 친다. 이는 결과적으로 시장경제의 존립기반을 흔들어 놓음으로써 자유민주주의체제는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사회는 롤스(J. Rawls)가 말한 ‘개인의 자율과 책임의 바탕 위에서 약자를 배려하는 공정’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격차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 특히 가진 자들의 각성과 노력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정부의 올바른 인식과 능력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정한 격차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극심한 격차는 공동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최저임금과 부동산세금의 인상으로 경제적 약자의 편에 서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빈부격차를 더욱 확대시켰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념적 편향성이 강하고 무능한 정부, 공정과 정의를 말로만 외쳤던 대통령은 약자의 고통을 가중시켰을 뿐이다. 선거에 불리하다고 시행을 앞둔 정책들까지 다시 주워 담는 대통령 후보를 보면 그가 집권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안 봐도 삼천리’가 아니겠는가?우리에게는 가진 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절실하다. 영국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면 귀족이 가장 먼저 전쟁터로 달려갔고, 프랑스에서는 나라가 어려울 때 가진 자들이 먼저 희생을 자청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의 힘으로 불의를 정의라고 강변하고, 부유한 자는 더 많은 부를 가지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강자의 갑질’에 눈물로 저항하는 ‘약자의 미투운동’이 처연하다. 대장동게이트로 수사 받던 ‘권력의 아랫선’은 죽음을 선택했는데, 그에게 지시했던 ‘권력의 윗선’은 아무런 죄의식도 없으니 기가 막히는 나라가 아닌가? 우리가 가야할 길은 나만 잘 살겠다는 ‘냉혹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공동체의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자본주의’이다. 격차사회의 극복은 가진 자들이 확고한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자 할 때 비로소 그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2022-01-03

한민족의 상징, 호랑이

임인년, 호랑이해가 밝았다. 우리나라에서 호랑이는 위험한 맹수로 무서움의 상징이나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영물, 의리를 아는 친숙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단군 신화나 ‘호랑이와 곶감’등 한국의 옛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하며, 조선시대 민화에서도 표범, 까치와 함께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한반도에 살던 조상은 산을 신성한 곳으로 여겼고, 산에 사는 강인한 동물을 영물로 신성시했다. 가장 높이 숭배한 게 산신·산신령·산군 등으로 불린 호랑이였다.‘후한서’는 동이족에 대해 “그 풍속은 산천을 존중하고, 호랑이에게 제사 지내며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고 했다.호랑이가 한민족을 상징하게 된 것은 국권이 흔들리던 구한말 일본에 대한 저항과 조선을 상징하게 되면서부터였다.1908년 ‘소년(少年)’ 창간호에 최남선이 그린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그림이 실렸다. 일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가 1903년 한반도를 토끼 모양으로 형상화한 데 대한 반발로 그려졌다. 이어 최남선은 1926년 동아일보에 ‘호랑이’라는 7편의 글을 연재하며 호랑이 관련 각종 이야기를 정리하고 “고조선 이전부터 호랑이가 민족의 토템으로 숭배받아 왔다”며 ‘조선의 표상’으로 규정했다.호랑이와 관련된 민속신앙은 아직도 남아있다. 십이지(十二支) 열두 동물의 날 중 매월 첫 호랑이 날에 가게를 열면 번창한다거나 단오에 쑥으로 만든 호랑이(애호)를 머리에 꽂거나 문에 매달면 잡귀를 막는다고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계기로 호랑이는 민족의 상징으로 재부상했으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마스코트 역시 수호랑이었다. 새해, 호랑이 같은 기상으로 살아갈 수 있길 기원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1-03

기본실천과 인간존중 그리고 스마트팩토리

신일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수석 컨설턴트 “기업은 결국 사람이다”라는 말처럼 4차산업혁명의 바람이 몰아치는 오늘날에도 기업의 성장과 혁신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분명하다. 80년대까지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압축고도성장을 하였고 ‘만들면 팔리는 시대’에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를 살아왔지만, 90년대부터 경영혁신과 신공법개발의 시대를 맞이해 ‘팔리는 것을 만드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6시그마 등 다양한 경영혁신기법은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고 고객만족의 경영을 실현하기 위해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4차산업혁명의 선언과 함께 스마트팩토리가 국내기업에 본격적으로 접목이 되고 있다.국내 10인이상 제조기업의 수가 약 6만7천개이다. 이중 약 20% 정도가 스마트팩토리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거나 적용하고 있다. 자동화에 ICT기반의 정보화를 연결하여 품질과 생산성, 원가 등 제조역량의 근본적 향상을 위해 추진되고 있으며, 2022년까지 3만개 기업으로 확산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기대만큼 업의 특성 및 기업 문화와 연계하여 성공적으로 구축된 중소기업이 많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다.대기업 및 일부 중견기업과 비교하여 중소기업의 성공사례가 적은 이유는 3가지 기본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전문인력과 기존 운영시스템의 수준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현재의 운영시스템과 인력이 부족하여 전적으로 외부전문기관과 개발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둘째, ISO에서 강조하는 지속적인 개선문화가 자리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개발과정이나 유지관리 시 시스템의 지속적 수준향상이 곤란하다. 마지막으로는 강한 제조현장과 표준체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언급한 기본 중에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기업은 바로 사상누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저자가 일본에서 지혜로운 자동화를 배우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만약 자동화된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였다. 답은 바로 인간이 문제해결과 신속한 대응을 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스마트팩토리 도입이전에 해당 공정을 운영할 수 있는 전문역량과 관리역량을 갖춘 상태여야 한다는 의미이다.그러므로 성공적인 스마트팩토리의 구축을 위해 먼저 기본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제조기업의 관리업무와 현장작업이 철저하게 표준화되어야 하며, 모든 데이터는 신속. 정확하게 기록되고 관리되어 신뢰를 확보하여야 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주체로써 인간의 지혜가 존중되어 스마트한 기계나 시스템이 인간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모든 시스템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근본이 부실한데 최종 목표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절대 없다. 기업의 성과를 창출하는 솔루션으로써스마트팩토리가 많은 중소기업에 성공적으로 낭비없이 도입되고 운영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기본의 실천과 인간존중 관점에서 사상누각이 주는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아야 할 시점이다.

2022-01-03

새해 첫날의 풋기운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새해 첫날, 찬바람과 미명의 어둠을 헤치며 집을 나섰다. 흑호(黑虎)해인 임인년 새해의 첫날에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인근의 형산으로 향한 것이다. 초승달과 군데군데 새벽별이 빛나고 은륜(銀輪)의 안장을 호랑이등삼아 올라타 연일대교를 건너 국당리 쪽으로 페달을 밟으니, 역풍으로 체감온도는 낮았지만 기분은 약간 고조되는 듯했다. 형산 라이딩은 수 차례 즐긴 적이 있었는데, 새해 첫날의 해맞이로 벽두부터 오르기는 처음이었다. 여명으로 깨어나는 마을을 지나 완만하거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거친 숨을 뿜으며 업힐(uphill)하여 단숨에 산마루까지 올랐다. 먼동이 트는 동녘하늘이 주황빛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고, 밋밋한 등성이와 영일만 바다, 포스코, 시가지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얼어붙은 형산강이 무채색 원근감의 화폭처럼 펼쳐졌다. 도시와 인접한 산에서 강과 바다를 볼 수 있고 도심과 촌락, 공단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형산(兄山)이 이색적인 해맞이 명소가 된지 십수년이 된 듯하다. 코로나 상황이지만 한 해를 의미있게 맞기 위해 형산갓바위 주변으로는 벌써 많은 해맞이객들이 운집하여 동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이윽고 붉은 광채가 짙어지면서 드디어 동해에서 갓 건져진 쇳물 같은 햇덩이가 산등성이 위로 서서히 떠올랐다. 임인년 새해의 햇살이 누리에 비치면서 2022년의 새날이 마침내 밝은 것이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 주변의 사람들은 짧은 탄성을 내거나 두 손을 모아 소원과 희망을 빌면서 경건하게 기도하기도 하고, 일출장면을 카메라에 담거나 인증샷을 하며 새해 새출발을 새롭게 다지는 것 같았다. 필자는 ‘호랑이 눈처럼 매섭게 현실을 직시하고, 소의 걸음으로 우직하게 나아간다’는 뜻의 호시우보(虎視牛步) 서예 족자를 펼쳐 마음을 다잡기도 하면서 건강, 웃음, 행복 등의 글귀가 쓰여진 연하장을 주변 해맞이객들에게 나눠주며 새해 덕담을 건네기도 했었다.‘낮과 밤/어지러운 세상/긴 터널, 어둠 속/헤어나지 못할 세계/수 차례 왕복하다/너 자신을 잊어버릴지 모른다//동트는 밝은 아침/아름다운 마음/좋은 생각으로/늘 깨어 너를 지켜라//안식할 수 있는 밤과/희망의 새 아침이 있어 좋다//아침의 생각은 맑고 깨끗하여/네 영혼을 살찌우게 한다’-염정화 시 ‘새 아침’ 전문해마다 새해 첫날의 풋기운으로 새로운 다짐을 하며 보다 밝고 푸른 꿈을 그려본다.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가 않다.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뉴노멀이 되고, 미상의 바이러스 출현이 일상을 경고하며 삶과 생존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물질문명의 치중으로 잠재적인 기후변화를 초래하고, 신종변이 바이러스가 또 어딘가에서 파생하여 불안과 긴장 속을 파고들지도 모를 형국이다.그래도 새해는 따스하고 희망적으로 맞을 일이다. 올해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변화와 격랑이 예상되지만, 무엇보다도 코로나19의 종식과 불편부당, 불평등이 해소되고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으로 모두가 웃음짓는 날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개인적인 꿈과 사회적인 바람이 다운힐(downhill)하는 바이크처럼 방향과 속도 조절로 순조롭게 질주하고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2022-01-03

야트막하지만 올망졸망한 산의 입구에 언제나처럼 서 있을

박완서의 ‘나목’은 그가 40세의 나이였던 1970년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전에 당선된 등단작이다. 한국전쟁 때문에 작가가 될 기회를 박탈당했던 박완서는 결국 삶을 에둘러 돌아와 작가가 되었다. ‘나목’의 의미는 그곳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1976년 열화당에서 출판했던 ‘나목’의 표지. 오랜만에 서가를 뒤적거리다가, 박완서(1931~2011) 선생의 책을 당연한 듯 꺼내든다. 선생이 마흔이 되어서야 처음 발표했던, 등단작 ‘나목’(1970)이다. 여러 번 때를 두고 다시 읽기도 했고, 매년 학생들에게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기도 있으니, 새로울 것은 전혀 없다. 줄거리라면 당장 입으로 읊을 수 있고, 몇 개의 문장들은 그대로 눈으로 보고 있듯 선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또 다시때가 되면 이 소설을 읽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이야기가 주는 깊은 공감과 문장이 주는 묘한 안정감 때문이다.사실 박완서 작가의 문장은 언제라도 가보면 거기에 서 있는 산처럼 신뢰감이 있고, 읽는 사람이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또 새삼스러워지는 그런 맛이 있다. 물론 어떤 글이든 때를 두고 읽을 때마다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을 테니, 유독 박완서의 문장만이 그런 맛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삶에 지쳐가고 있는 느낌이 들게 되는 때, 나는 산에라도 가는 것처럼 ‘나목’에 들어 있는 이경의 이야기와 박완서 선생의 문장을 떠올린다. 그러면 또 다시 이 책을 펴들 수밖에 없게 된다.‘나목’의 주인공 이경은 세상 어디에도 붙박힐 수 없는 존재이다. 소설의 초반부를 읽어가며, 지극히 감정적이고 좌충우돌하는 이경의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거슬릴 수밖에 없는 것은 독자가 아직 그 마음속에 들어 있는 깊은 상실에 다가가지 못한 까닭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불편한 약점을 우리 눈앞의 대상에게서 발견할 때 거슬리는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답답한 현실에 대해 고작해야 거친 말로 반항할 수밖에 없는 이경의 태도가 거슬린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내 어떤 부분이 삶에 붙박혀 있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며 우리는 이경의 마음속 깊이 들어 있는 상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경이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다니며 표류하는 것은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지진과도 같은 계기가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떤 종류든 간에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 상실의 순간은 늘 불시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무리 마음의 대비를 한다고 해도 그 상실이 익숙해질 리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전쟁이라는 마치 자연재해와도 같은 타율적인 박탈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삶의 바람이나 욕망 같은 것은 현실로부터 이격되어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은 잿빛이 되는 것이다. 한 번 그런 상실을 겪은 인간은 결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다니는 이경의 모습을 통해, 크든 작든 우리의 상실을 떠올리는 것이다.소설의 초반부 독자에게는 분명 제멋대로이고 반항하는 청춘으로만 보였던 이경의 태도가 소설의 말미가 되면 한없이 안쓰럽고 딱한 존재로 바뀌게 되는 것은 이경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내재된 그런 상실의 기억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이경이 기나긴 방황을 끝내고 화가 박수근을 모델로 했던 옥희도의 그림 ‘나목’을 보면서 평온해진 것을 보며 우리 역시 그런 상실로부터 돌아와 평온해지리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그렇게, 매번 어떤 시기가 되면 이 책을 꺼내어, 당연한 듯 읽는다. 또 당연하게 이경의 제멋대로의 태도를 거슬려하다가 현실을 부유하는 이경의 상실로 인한 심연을 들여다 보고, 한 없이 그 삶이 안쓰럽고 소중해진다. 이 ‘나목’은 그렇게 박완서라는 야트막하고도 올망졸망한 산 앞에 언제나처럼 서 있는 것이다./홍익대 교수

2022-01-03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질 것이다 (Ⅰ)

지난 시절. 신문 연재소설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이제는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이 드물어진 시대. 본지는 2022년 새해 의미 있는 실험을 시작하고자 한다. 소설가 김강 씨의 작품 ‘Grasp reflex’를 주 1회, 매주 화요일 연재하기로 결정한 것. 김강 작가는 등단이 늦었지만, 독특한 세계인식과 탄탄한 문장으로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소설의 제목 ‘Grasp reflex’는 파악반사(把握反射)라는 뜻이다. “쓰는 사람인 내가 읽는 사람인 그대에게 가려 한다”는 말을 전한 김강 작가는 포항에서 활동하는 내과의사이기도 하다. 독자 여러분의 애정 어린 관심을 기대한다./편집자 주만식은 숨을 들이마셨다. 크레졸 향을 품은 따스한 온기가 가슴 깊이 들어왔다. 콧속이 조금 아렸지만 나쁘지 않았다. 가슴 깊이 들어오는 무엇, 기다렸고 반가운 것이기도 했다.-숨쉬기가 훨씬 편하실 겁니다. 인공호흡기가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들이쉬려 하시면 기계가 즉각 알아챕니다. 회장님의 늑골과 호흡근의 움직임에 맞추어 인공 폐가 확장되고 그 때 발생한 음압에 의해 공기가 들어오는 겁니다. 그 다음부터는 똑같습니다. 꽈리를 통해 산소가 들어오고 이산화탄소는 나가고. 평상시에는 그렇게 작동하다가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기계가 스스로 호흡을 시작합니다. 인공호흡인 셈이지요. 물론 억지로 숨을 참는 경우는 다를 수 있지만, 기계가 감지하는 역치를 넘기는 힘들 것입니다.퇴원 전 마지막 회진을 온 이 교수가 장황한 설명을 했다. 지나치게 설명을 많이 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일 수 있겠지만 만식은 이 교수의 방식에 만족했다. 당연히 설명을 해주어야지. 간호사나 코디네이터가 하는 설명과 의사가 하는 설명이 같을 수 있나. 만식은 인공 장기를 이식받은 경험이 많았다. 장기들은 달랐지만 전반적인 설명과 수술 이후의 주의사항은 비슷했다. 그럼에도 만식은 이 교수의 설명을 새겨들었다.-이 교수, 매사에 확실한 것은 내가 인정하지. 수술 받은 횟수로 치면 나도 전문가라면 전문가인데 말이야. 그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원칙대로 설명해주는 것, 나는 그게 좋아. 아무렴. 그래야지. 고마워요. 덕분에 한 삼, 사십 년 더 살게 되겠어.만식은 베개 밑에서 봉투를 꺼냈다. 이 교수에게 건넸고 이 교수는 손사래를 쳤다.-아닙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만식은 봉투를 접어 이 교수의 가운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누구나 마땅한 일을 하는 거야. 이 교수는 이 교수가 할 일을 하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하고 그러면 되는 거지. 간호사 선생님들, 코디 선생님들하고 맛난 것 사드시라고 주는 거야. 큰 돈 아니야. 촌스러워 보이겠지만 감사의 표시는 옛날 방식이 더 나아. 정겹잖아.이 교수는 주머니 속으로 들어온 봉투를 굳이 꺼내지는 않았다.-허허, 참. 그, 참. 감사합니다.이 교수가 감사의 말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새 폐를 이식받으셨다고 다시 담배를 피우시거나 하시면 안 됩니다. 아셨지요. 떼어낸 폐를 살펴보았는데 모양이 이상한 세포들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암은 아니지만 암 전 단계 정도는 됩니다. 너무 건강에 자신하지 마십시오. 항상 조심하고 관리하셔야 합니다.만식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네, 알겠어. 밧데리는 영구적인 거지? 설마 해마다 충전하러 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지난번에 듣기는 했는데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어서 말이야.이 교수 옆에 있던 코디네이터가 대답했다.-네, 회장님. 배터리 때문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 생체 전류를 이용해 자가 충전하는 기능이 들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영구적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저희 센터로 먼저 신호가 옵니다. 그리고 나서도 일 년 이상 작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백 년 정도 더 사시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하.코디네이터의 말이 끝나자 이 교수가 농담을 했고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었다. 만식은 손을 내젓다가 이내 같이 웃었다.-퇴원하시는 날인데 회사에서 모시러 옵니까? 벌써 와 있나요?이 교수가 물었다.-회사 인력을 사적인 일에 부리면 쓰나.-회장님이 곧 회사 아닙니까?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그런가?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말이야, 오늘은 회사 직원을 부를 수가 없어. 예고 없는 출근을 할 거거든. 평소에 어찌하는 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지. 녀석들, 많이 놀라겠지. 아들놈은 출장 갔어. 퇴원하는 날에 맞추어 출장을 가네. 몹쓸 놈. 혼자 갈 수 있어. 출근하다 무슨 일 생기면 이 교수가 책임져야지.이 교수와 일행은 병실에서 나왔다. 다음 입원 환자를 보러 가던 중 이 교수가 뒤따르던 코디네이터를 불렀다. -갑자기 기계가 멈추고 그러는 일은 없겠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제품이라 신경 쓰이는데.코디네이터는 인공 폐를 개발한 회사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었다.-그럼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환자가 다른 이유로 사망하는 일이 생겨도 인공 폐는 혼자 숨 쉬고 있을 겁니다.-그렇다면 다행이고. 아무튼, 지독한 노인네야. 그렇지 않아? 저 밑에서 일하지 않는 게 다행이지.이 교수는 만식의 몸에서 작동하고 있을 인공 심장과 인공 간, 인공 폐 그리고 인공 신장을 떠올렸다. 쉽게 죽지는 않겠군. 이 교수는 생각했다.

2022-01-03

통합·소통의 리더십이 ‘시대정신’

새해 임인년(壬寅年)의 일정이 시작됐다. 2022년은 대통령 선거(3월 9일)와 지방선거(6월 1일)가 함께 치러지는 선거의 해다. 선거 결과는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우리 국민은 지금 역사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신년벽두는 다들 희망과 설렘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전염병이 3년째 변이를 거듭하며 대유행하고 있는데다, 우리사회 전체가 마치 전쟁하듯이 진영으로 분열돼 서로 손가락질하며 증오하는 슬픈 현실 때문이다. 여야 유력 대선후보들과 그 가족들의 각종 의혹이 터져나오면서 미래한국의 진로를 결정하는 대선판에 냉소(冷笑)만 가득하다. 네거티브와 포퓰리즘이 난무하며 정책·비전대결은 실종된 지 오래다.보수의 산실인 대구경북(TK)에서도 이상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조선일보가 지난 12월 28일부터 30일까지 전국유권자 1천1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윤 후보에 대한 TK지지율이 44.9%에 그쳤다. 역대 보수 정당 대선후보에게 8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TK민심이 크게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대선에 이어 곧바로 치러지는 지방선거도 대선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상당수 인사들은 여야 대선 선대위에서 활동하며 공천을 노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대선이슈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삼키면서 지역 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최근 국제사회는 국가경쟁력보다 도시경쟁력을 우선시하고 있다. 지역민의 입장에서보면 대선보다 지방선거가 오히려 더 중요할 수도 있다.새해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현안을 해결하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리더를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목과 증오, 분열의 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앞으로 4~5년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대통령과 광역·기초단체장, 지방의원은 국민의 통합과 소통을 이루어낼 수 있는 인물이 당선돼야 한다./심충택 논설위원

2022-01-02

1등 몰아주기 문화

강길수 수필가 매주 목요일마다 즐겨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제법 오래전부터 보아 온 것이다. ‘미스트롯 1’과 ‘미스터트롯’과 ‘미스트롯 2’ 그리고 ‘내일은 국민가수’다.트로트는 우리 정서에 잘 어울리는 대중가요이기에 처음부터 거의 보았다. 무엇보다 경연에 도전하는 이들이 무대에 나서면 하나같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하였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진한 기쁨과 감동을 듬뿍 선물해주었다. 삶의 희망과 용기도 북돋아 주었다. ‘지난날 나는 왜 저 참가자들처럼 모든 걸 쏟아붓는 삶을 살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기도 했다.그런데 끝에 톱7을 뽑고 1등을 시상하는 장면은 좋았지만,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선 시상 범위와 규모, 하필 톱 7인가 하는 점이었다. 1등에게만 큰 상금을 몰아주고 2등부터는 상금이 없었다. 세 번 진행된 미스·미스터트롯이 그랬고, 이번 주 끝난 내일은 국민가수도 그랬다. 상금을 주지 않는 2위 이하의 상위 성적자에 대한 주최 측의 배려 내용은 방송에서 밝히지 않아 모른다.우리 사회의 이런 현상은 위에 예로 든 방송프로그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신문의 신춘문예도 거의 장르별 당선자 1명만 뽑고 있다. 로또를 비롯한 복권들도 1등 이하의 등급을 두고 있지만 당첨금의 차이는 너무 크다. 올해 세계적 드라마가 된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도 1등 당첨을 하기 위한 인간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리고 있다. 물론 예술이나 스포츠 프로그램은 흥행을 위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심성에 악영향을 끼치는 게 아닐까. 1등에게만 열광하고 2등 이하는 무관심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풍조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으로 확대될 것이 우려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비대면 시대는 더 그러할 터이다. 공동체로 살아야 할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 이웃에 무관심하다면 결국 자기 생존에도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1등만 살아남고 2등부터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된다면 그 세상 모습은 어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인간을 뺀 자연이 적자생존의 법칙하에 있다지만 잘 들여다보면 생태계는 우승자 독식이 지배하지 않는다. 서로 주고받는 순환을 통해, 전체가 어우러져 함께 사는 모습이 자연의 얼굴이다. 자연은 우리가 온 고향이며, 언젠가 돌아가야 할 본향이다. 자연은 언제나 위대한 스승이다.1등에게만 열광하고 2등 이하는 무심한 현상이 확 드러나는 제도가 있다. 선출직을 뽑는 우리 선거제도다. 대통령과 단체장은 1명만 뽑아서 그렇다 치자. 하지만 기초, 광역, 국회의원의 경우는 선거구제를 바꾸는 등 개선책을 모색한다면, 1등 몰아주기를 피하면서 지역감정 같은 사회 문제를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아무튼 사회 여러 분야의 공모, 경기, 선출, 대회 등 상을 주거나 사람을 뽑는 행사의 시상이나 당선자 선정에서‘1등 몰아주기 문화’가 ‘어울림의 문화’로 승화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2022-01-02

만남과 마주침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새해가 되었다. 올해는 또 어떤 일이 있을지 한편으로는 두렵고 한편으로는 기대된다. 삶이란 수많은 만남의 연속이지만, 그 만남에는 약속한 만남도 있고 뜻밖의 만남도 있다. ‘만나다’에는 ‘두 강줄기가 만나다’처럼 물리적인 맞닿음의 의미도 있고, ‘불운을 만나다’처럼 ‘당하다’의 의미도 있지만, 앞뒤 맥락 없이 ‘만나다’만 있을 때는 사람이 일부러 가거나 와서 마주 보다의 의미가 떠오른다.그에 비해 ‘마주침’에서는 우연성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버렸네’라는 노래 가사처럼 그 우연한 만남에는 무언가 강한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충돌이라는 약간의 부정적 뉘앙스도 풍긴다. 여기서 충돌은 서로 부딪치는 것이라서 ‘당하다’와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그러나 ‘만남’과 ‘마주침’, 두 단어는 단칼에 구분할 수 없는 미묘한 관계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처럼, 만남이라고 쓰지만 마주침의 의미로 쓰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강한 감정을 일으키는 우연한 만남이라는 의미로는 아무래도 만남보다는 마주침을 더 많이 쓰게 된다.이렇게 마주침에는 혼란이 따른다. 강한 감정을 일으키는 큰일을 당할 때는 물론이고, 공동의 이익과 관련된 결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려도 합리적인 선택 기준이 무엇인지 우왕좌왕하게 된다.얼마 전 집합주택 건축을 위한 정비업체 선정 투표 과정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해당 분야 관련 실적이나 신뢰도를 가늠하는 재무 상태와 같은 객관적 평가 분야에는 70점을, 입찰 가격 평가에서 평균에 가장 가까운 업체에 점수를 많이 주는 상대 평가 분야에는 30점을 주고 두 점수를 합하여 총점을 매긴다고 한다.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업체가 우수한 업체이고 당연히 그 업체가 선정될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 투표에서는 뜻밖에도 최고 점수보다 훨씬 못 미치는 점수를 받은 두 번째 업체가 선정되었다. 그 이유는 두 번째 업체의 입찰 가격이 현저하게 낮아서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비용이 절감되었기 때문이다. 최고점이 아닌 업체가 선호도는 더 높은 이상한 결과가 나온 셈이다. 차점자 업체가 선호도가 더 높은 점수 체계를 합리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이런 채점이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점수표의 타당성을 높여가려는 노력이 더 필요할 뿐이다.대통령 선거가 두 달 남았다. 저마다 마음에 두는 후보는 있겠지만, 그 선택이 합리적인가 하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정비업체 투표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대통령직에 필요한 객관적 자격 요건을 정하여 점수를 매기고, 후보자끼리 비교할 수 있는 상대 평가 항목도 만들어 채점을 해보고 싶어졌다. 채점 항목도 많고 배점 방식도 복잡해서 쉽지는 않겠지만, 몇 가지 눈에 띄는 모습으로 결정하는 것보다는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시나 좋은 점수가 나온 후보를 선택한다는 보장이 없을지라도 그런 시도는 의미 있을 것이다.

2022-01-02

새해 지방의회의 변신 기대된다

심충택 논설위원 새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곳 중의 하나는 지방의회다.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오는 13일부터 지방의회에 정책지원관제도가 도입되고, 현재 지방자치단체장이 가지고 있는 지방의회 사무직원들의 인사권이 지방의회 의장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새롭게 선보일 정책지원관은 국회의원 보좌진처럼 지방의원들의 의정자료 수집과 조사 연구를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 인사권 독립과 정책지원관제 도입은 지방의회의 오래된 현안이었던 만큼, 이 제도 시행으로 지방의회가 새해에는 어떻게 변신을 할지에 대해 많은 국민과 언론이 눈여겨보고 있다.우리나라 지방자치제는 1991년 지방의회 출범, 1995년 민선단체장 선출로 오랜 경륜을 쌓아왔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에 대한 중앙정부의 전횡은 30년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하다. 아직도 어린학생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법률기관인 지방의회를 ‘행정안전부 지침’이라는 문서 한 장으로 좌지우지하려 한다. 지방의회의 고유권한인 조례제정권과 예산심의권도 정부지침 앞에서는 힘을 못 쓴다.정부가 지난달 지방의회에 전달한 ‘정책지원 전문인력 운영 가이드라인’을 보면, ‘지침횡포’의 전형(典型)이 뭔지를 알 수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서는 정책지원관 공모를 광역의회는 6급 이하, 기초의회는 7급 이하로 의원정수의 50% 내에서 1년 또는 2년 임기로 뽑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책지원관을 뽑되, 임기는 1∼2년짜리로 하라는 내용이다. 응시요건 지침도 까다롭기 짝이 없다. 학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의 경우 국회·지방의회·법인·단체 등에서 법무 회계·법제·감사·조사 관련 분야 1년 이상 실무경력이 있어야 응시를 할 수 있도록 했다.지방의회에서 이러한 자격을 갖춘 정책지원관을 선발하기가 어렵다는 불만의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농어촌지역에 있는 지방의회에서는 이러한 요건을 갖춘 정책지원관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집행부 공무원들이 지방의원들을 무시하는 태도도 여전히 문제다. 국회와는 달리 지자체 공무원들은 지방의회에 출석해 적당히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 위증죄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불출석에 따른 법적 제재조치가 없기 때문에 지방의회의 출석요구가 있더라도 바쁘다고 핑계 대고 나가지 않아도 상관없다.나는 지방자치의 정착을 막는 이 같은 부조리들은 중앙집권적 사고에 젖어 있는 수도권지역 언론에 많은 책임이 있다고 본다. 어떤 조직이든 비리를 저지르는 일부 구성원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일부의 일탈행위들을 모아서 지방의회 전체를 매도하는 기사를 수도권 언론에서는 주기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지방자치 정착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지방의원들은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하면서 생활정치를 실천하고 있다. 초선시절에는 아마추어로 시작하지만 재선, 3선을 거치면서 국회의원 못지않은 정치가로 자리 잡아 간다. 지방의회가 잘 정착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22-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