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골목길이 가장 미국적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1949년 미국 텔레비전아카데미가 시작한 에미상(Emmy Awards)은 그 성격이 조금씩 바뀌어오긴 했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최근에는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OTT 상영물까지 담게 되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그런 시점적 트렌드를 잘 타기는 했어도, 누가 보아도 스토리에 담긴 향수와 긴장감, 상상력과 도발성으로 장식한 콘텐츠가 강렬했다. 에미상의 남우주연상과 감독상을 비롯하여 무려 6개 부문을 획득하였다. ‘기생충’, ‘미나리’와 함께 칸영화제,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거치며 인정을 받아 K-콘텐츠는 이제 글로벌 기준이 되었다. 이런 성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실력. 어려움과 힘든 시간을 거치며 지치지 않고 쌓아온 내공의 힘이 아닐까. 스크린쿼터제를 썼어야만 했을 정도로 한국영화는 가시밭길을 거쳐왔다. 깊은 수렁을 지나면서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집요함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인고의 시간이었다. 탁월한 재주가 물론 마지막 빛을 발하지만, 바닥에 도도히 흐르는 집념이 이룬 결과가 아닐까.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역사를 만들었다’고 고백하였다. 진심이 아니었을까. 한국 드라마가 가장 미국적인 상을 받았다는데, 실제로 그 옛적 동네 골목길 이야기들로 글로벌시장을 승부한 셈이 아닌가. 우리에게만 있는 스토리베이스가 세계 천장을 뚫은 셈이다. 문화원형의 또다른 승리다. 우리만의 이야기가 또 무엇이 있을까 돌아보아야 한다.
전 미국을 통틀어 텔레비전 수상기가 5만도 채 안 되던 시절에 에미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겨우 걸음마를 떼었을 텔레비전이라는 뉴미디어의 오늘같은 성공을 상상이나 했을까. 씨앗도 그런 씨앗이 없었을 터에, 그 작은 성공의 가능성에 물을 주고 거름을 댄 사람들이 있은 다음에 74년이 흘러 오늘이 되었다.
미국 텔레비전이라고 좋기만 했을까. 수다한 부침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을 미국인들의 집념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어떤 노력도 쉽게 펼쳐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영화를 한다는 생각도 한때는 얼마나 허무맹랑했을까. 문화와 예술은 단번에 피어오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과 창의가 고단하고 집요한 노력을 만나 지치지 않고 길고 긴 시간과 싸움을 한끝에 겨우 조금씩 솟아오른다. 떼는 발걸음마다 무거웠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지켜보는 눈길은 또 얼마나 아슬아슬했을까.
잘 만들어야 하지만, 또 잘 알려야 한다. 아무리 멋진 스토리도 누군가 알아채지 못하면 보러올 재간이 없다. 기획과 제작, 홍보와 실행에 이르기까지 통합적인 전략이 구사되어야 작은 성공이라도 거둘 수 있다. 고집과 집념이 상상과 창의를 만나도록 이끌어야 한다. 지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문화와 예술이 일어나면 사람이 모인다. 서울거리에는 외국인들이 북적인다고 한다. 가능성의 싹을 본 김에 문화로 승부했으면 한다. 정치보다 나아도 훨씬 낫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