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인생 여정 (人生 旅程)이라는 말로 인간의 삶을 정의하곤 한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태어나서 걸음마를 시작한 이후, 잠자는 시간이나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 등을 제외하고는 끝없이 어디론가 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어디론가 끝없이 가야만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면 길이란 존재는 인간의 삶에서 필수 조건이 됨을 또한 부정키 어려울 것이다.
요즘 사람들의 길을 내는 방식은 예전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예를 들면, 도심이나 외곽지에 큰 도로 하나를 낼라치면 설계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이 지도위에 먼저 실선으로 표시하고 그다음은 중장비를 동원해서 길을 완성하면 끝이다. 그러나 문명이 오늘처럼 발전하기 전의 세상에서는 길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꾀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최초의 한 사람이 그곳으로 지나가고, 또 뒤를 이어 먼저 지나간 사람의 흔적을 따라 다른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고, 그렇게 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 길을 지나고서야 비로소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이 되었을 것이다. 옛날, 우마차가 다니던 길도 최초에는 그렇게 작은 길이 만들어진 다음에 사람들이 삽이나 곡괭이로 길을 넓혔을 것이다.
길은 소멸과 생성을 거듭한다. 도무지 길이 생기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새로이 커다란 길이 생기고 영원히 존재할 것 같던 길이 몇몇 사람의 기억 속에 추억만 남기고 말끔히 사라지기도 한다. 필자의 뇌리에도, 지금은 농경지 정리로 말끔히 사라지고 없는 유년 시절의 길에 대한 기억이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또렷이 남아있다. 필자 나이 대여섯 살은 되었을까? 부모님께 흰 고무신을 싸 달라고 조르며 울다가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새터 마을 고무신 점을 향해 졸랑졸랑 따라 걷던, 할아버지의 사랑 어린 길에 대한 기억이며, 동네 신작로를 놔두고도 가깝다는 이유로 꼬불꼬불 좁은 논길을 즐겨 다니던 초등학교 등 하굣길에 대한 기억이다.
인간의 삶을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 다니는 길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길이 있다. 물길이다. 세상의 길 중에 물길보다 더 중요한 길은 없다. 물길이란 자연계의 왕도로서 인간마저도 범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길이며 지상 모든 생명의 존망에 관계되는 길이다. 해서 우리나라 법령에서도 물길에 해당하는 하천법을 최 상위법에 두는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해마다 태풍철이 되면 수해 소식으로 온 나라가 초상집 분위기이다. 그렇게 해마다 나타나는 수해 현상을 인간에게 길을 빼앗긴 물의 분노쯤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몇 년 혹은 몇십 년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라 해서 가벼이 생각하고 인간이 무단으로 둑을 쌓아 점령하여 사용하고 있는 탓은 아닐까? 해마다 도시와 농촌에서 일어나는 홍수의 형태를 보면, 도심의 홍수는 대부분 하천 주변이나 하천의 하류에서 일어나고 농촌의 홍수는 계곡 주변의 농토가 유실되거나 침수되는 형태로 일어난다. 이러한 홍수 현상은 농촌 도시 할 것 없이 물이 제 길을 찾아 흐르려는 현상일 뿐, 무단으로 물길을 점령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이기심에 의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