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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의 추억 한 꼭지

등록일 2022-12-07 18:12 게재일 2022-12-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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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낙률시인·국악인
오낙률 시인·국악인

과일은 다 익은 후에 오히려 그 모습이 변형되지 않고 오래도록 유지 보관된다. 사람 또한 그러한 것 같다. 우리 동네 경로당을 오고 가시는 필자의 유년 시절 이웃집 아주머니 모습에서나, 동네 친구 어머니의 얼굴에서나,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을 느낄 수 있으니 사람 또한 과일처럼 나이가 들어서야 오래도록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면 필자의 유년 시절 풍경은 오십여 년이 지난 기억 속에서도 꽤 또렷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가끔 동네에서 구십 줄에 든 이웃집 할머니들의 모습을 뵐 때면 유년 시절에 뵙던 동네 남자 어르신의 생전의 모습 하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네 골목, 그리고 크고 작은 동네일을 앞장서서 하시던 동네 어른들의 생전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수묵화나 흑백 영화처럼 필자의 뇌리에 영상이 되어 떠오른다. 아마도 그것은, 어머니께서 나의 탯줄을 묻어주신 곳이자 내 유년의 추억이 석류알처럼 촘촘히 뇌리에 박혀있는, 이곳 출생지에서 사는 행복이 아닌가도 싶다.

내 유년 기억의 시작은 초등학교 다닐 무렵인 60년대 중·후반쯤부터이다. 계절적으로 이맘때의 그 시절은 가을걷이가 모두 끝나고 초가집 마당마다 여름내 보이지 않던 ‘볏짚 가리’하며 ‘뒤주’가 마치 새로운 건축물처럼 생겨나던 시기이다. 그리고 동네 아저씨들이 대여섯 명씩 모여서 이 집 저 집 다니며 이엉을 엮어주던 시기이다. 이엉이란, 일년내내 비와 햇볕에 의해 썩어 가는 묵은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새 지붕으로 단장하기 위해 새 볏짚을 촘촘히 엮어서 만든 일종의 볏짚 거적 같은 것인데, 둘둘 말아서 마당 한쪽에 수십 개씩 쌓아두었던 이엉 하나의 길이는 짐작으로 삼십 미터는 족히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꾼 중에서 가장 솜씨가 좋은 아저씨 한 분쯤은 이엉과는 확연하게 모양이 다른 용마름을 도맡아 엮으셨다. 용마름이란 밑에서부터 이엉으로 지붕을 이어 올라갈 때 맨 마지막 지붕 꼭대기에 올리는 일종의 마감재라 할 수 있는데, 요즘의 기와지붕 꼭대기에서나 볼 수 있는 용마루에 해당한다. 그렇게 이엉 엮기가 끝나면 묶은 초가지붕을 털어내고 새 이엉으로 갈아주는 작업을 차례로 하였는데, 동네가 온통 노랗게 새 초가지붕으로 단장된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마치 동화에서나 봄 직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저고리 소매에 코가 묻어 번질번질 한 옷을 입고도 마냥 즐겁던, 동네 아이들이 설빔을 갈아입고 세배를 드리려 늘어선 모습 같았다.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 시절이 지금보다 더 풍요를 누리던 시기는 아니었을까. 툭하면 광장에 모여드는 작금의 사람들처럼 여럿이 모여서 시위와 파업을 하는 게 아니라 여럿이 모여서 행복을 도모하던 시절, 여럿이 모여 한 사람을 쓰러뜨리려 않고 여럿이 힘을 합쳐 한 사람을 돕던 시절, 여럿이 모여 하나를 나무라지 않고 여럿이 모여 한 사람을 사랑하던 시절,

어쩌면 그 시절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의 지수가 높고 정서적 풍요를 누리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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