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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낭송문화에 관한 소고(小考)

등록일 2023-04-10 19:59 게재일 2023-04-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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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낙률시인·국악인
오낙률 시인·국악인

수선화는 봄을 기다리며 살지 않는다. 다만 봄날에 피워 올릴 꽃대 하나 튼실히 준비하며 겨울을 살아갈 뿐, 그들은 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준비하느라 오히려 짧은 겨울이 아쉬울지도 모를 일이다.

수선화처럼 오늘날 많은 예술가의 삶도 그렇게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나름의 예술세계를 꽃피우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했던 삶을 고스란히 견디고 살뜰히 준비해온 예술혼이 작품에 배어 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 예술작품에서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을까도 싶다.

근래 들어 많은 사람이 시 낭송에 관심을 두면서 여기저기서 시 낭송대회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시 낭송가 중에서 시 낭송의 정체성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고 낭송에 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새로운 하나의 예술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시 낭송의 정체성에 대해서 짧은 식견이나마 더듬고자 한다.

자칫 시 낭송가를 단지 한 시인의 시를 외워서 대중 앞에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는 시인과 청중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시 낭송이란 엄연히 이 시대에 성행하는 하나의 중요한 문화콘텐츠로서, 시 낭송가는 한 편의 시를 자신의 해석과 느낌에 맞게 재구성해서 시 낭송이라는 콘텐츠로 완성하는 예술가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시를 전달하는 전달자로서의 개념에서 벗어나 또 한 장르의 창조예술을 하는 독립적인 예술가로서 이 사회에 당당히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수 있겠다.

시와 낭송의 관계를 음악에 비교한다면 악보와 연주자의 관계와 같다. 작곡가는 작곡가 나름의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고 연주자는 연주자 나름의 예술가로 사회적 예우를 받듯, 시와 낭송가와의 관계에서도 엄연히 그에 따른 예술 행위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명백히 밝혀 그에 걸맞은 사회적 칭호와 장르적 지위가 사람들의 인식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일찍이 인간은 문학을 향유 하는 방법에서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를 탄생케 하였음은 짐작으로도 알 수 있다. 시 낭송 또한 시 속의 음악적 요소를 찾아내고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퍼포먼스를 곁들여 시와 청중과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작업임은 이미 전술한 바이다. 따라서 시 낭송가는 단순히 시인이 쓴 시를 세상에 알리는 매체의 역할을 넘어 연극배우나 가수처럼 공연 예술가로 자리매김 받는 것으로, 그 칭호의 타당성을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 낭송은 낯설은 장르의 콘텐츠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시 낭송이라는 문화콘텐츠가 불꽃처럼 일어나는 것은 특정 몇 인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시 낭송이 대중에게 어필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필자만의 시각일 수도 있겠으나 시 낭송 무대에서 낭송되는 시가 대부분 함축성이 떨어지고 다소 긴 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시를 쓰는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조금의 아쉬움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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