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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태행위-살금살금

등록일 2022-09-18 17:56 게재일 2022-09-1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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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포항의 대안공간 ‘space 298’에서 ‘어떤, 생태행위’라는 콘셉트로 2022년 하반기 릴레이 전시를 하고 있다.

첫 전시는 판화작가 이윤엽의 ‘둥질(nesting)’이다.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7일까지 진행된 이번 전시에서는 판화, 드로잉, 회화, 오브제 설치, 공동체 미술 등 다채널에서 활동하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이윤엽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면모를 담담하게 조명하였다.

경기 수원 원천(현재 광교신도시), 화성 목리 창작촌(현재 동탄 신도시), 평택 대추리(현재 캠프 험프리스), 그리고 현재 안성 남풍리에 정착하기까지 지역의 변화와 삶의 행복과 지속의 문제는 이윤엽 작업에서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윤엽은 그가 만난 사람들, 이웃이었던 사람들, 그들의 힘, 같이 먹은 밥, 농사짓는 땅, 같이 겪어 낸 계절을 그린다.

이번 전시 안내책자에 둥질은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여 공동체를 꾸리며 진화해가는 생태학적 관점에서의 삶의 과정과 양상을 일컫는다’고 한다. 진화를 한다는 말에 ‘어떻게?’라는 의문이 생겨 오래 전시를 둘러보고 책자를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나는 ‘왜가리’란 작품에 붙인 작가의 글에 꽂혔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진화’이야기를 들려주는 삼촌을 만났기 때문이다. 망치자루가 녹아내리는 목판에 ‘일자리가 녹고 있다’는 제목을 붙이고서는 ‘그게, 포스트 휴먼이에요?’라는 글을 보태며 미래의 인간에 대한 담론에 못질을 하더니 ‘왜가리’에서는 ‘인간이 새와 이렇게 한통속일 수 있다’며 자신이 생각하는 진화 된 인간, 포스트 휴먼을 퍼포먼스로 보여준다.

상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작가가 우유를 사러 시내에 가다보니 논에 왜가리가 가만히 서 있는 걸 보았는데 미꾸라지나 개구리를 기다리려니 하고 지나쳤는데 올 때보니 그대로여서 뭔가 수상쩍었단다.

가만히 보니 다리에 줄이 감겨서 날아가지 못하고 있더란다. 그래서 풀어주려고 다가갔는데 왜가리가 웬 짐승이 자신을 공격하는 줄 알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 근처에 가지를 못했다. ‘어떻게 할까’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왜가리처럼 가만히 서있기로 했단다. 한걸음 다가가서는 또 가만히 서있고, 또 한걸음 다가서서는 서고 그렇게 살금살금 조심조심 다가가니 왜가리가 공격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줄을 풀어줄 수 있었고 왜가리는 푸드덕거리며 날아갔다는 이야기다.

전시를 기획한 이병희 space 298 디렉터가 말하는 이윤엽 작가의 작업특징은 ‘리더미컬한 자율’이라고 한다. 아, 맞네. 살금살금, 조심조심. 얼마나 리더미칼한가! 그리고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자신이 우연히 발견한 일에 가담한 것 아닌가!

리드미칼한 자율적인 움직임으로 그는 왜가리와도 한통속인 인간으로 진화해 인간들이 버린 줄에 구속된 왜가리의 줄을 풀어 주었으니 ‘어떤 생태행위’가 아닌가! 심지어 ‘고마워요’라는 왜가리의 인사말까지 들었다고 생각한다니 얼마나 행복했을까!

이렇게 잘 이해가 되는 전시라니!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가 운영한다는 유튜브에서 띵까 띵까 춤추며 작업시작 준비운동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아하 인간의 진화가 쉽네’라고 생각했다.

지구가 불타고 있다. 기후위기가 아니라 지구가열이다. 가뭄을 보라, 폭염을 보라, 폭우를 보라. 산불을 보라, 태풍을 보라. 고래 뱃속을 보라. 바다가 화가 났다. 인간이 욕망을 줄이고 ‘공생하는 인간 호모심비우스’로 진화하지 않으면 2050 탄소중립을 이뤄내지 못하면 여섯 번째 대멸종, 6도의 멸종이 올 것이다는 온갖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바닷물 수위가 올라가니 바닷가나 지하, 지상 1층의 부동산은 구입하지 말아야하나? 이 암울한 지구에 내가 내 자식들을 살게 할 수는 없으니 결혼과 출산은 고려해 봐야하나? 그래도 이 정도에서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정말 큰 일이잖아’

우리가 답답해하고 있는 그런 지점에 이윤엽 작가는 ‘뭐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아’라며 시큰둥하니 우리 앞에 왜가리판화를 내밀어 보여준다. 고도성장 이후의 우리의 삶이 우리인간이 진화해 가야할 하나의 방향을 본 것 같아 반갑고 고맙다.

작고하신 이어령 선생은 마지막 노트에 지금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눈물 한 방울’이라고 쓰셨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남아있는 눈물. 인간은 이미 피의 논리, 땀의 논리를 가지고는 생존해갈 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며 눈물은 ‘희망의 씨앗’이라고 하셨다.

눈물 한 방울로 뜨거워진 지구를 식힐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그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인간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고래의 지느러미에 걸린 그물을 풀어주고 바다사자 목에 걸린 줄을 풀어줄 수 있는 인간으로 진화할 것이다. 살금살금, 찔끔찔끔, 우리도 그렇게 매일 조금씩 진화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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