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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음악의 가을 마중

등록일 2022-09-19 18:05 게재일 2022-09-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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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가을을 시샘하는지 또 다른 태풍이 지나갔다. 비록 한반도 아래쪽으로 비껴가긴 했지만, 2주 전에 휩쓸린 태풍피해가 워낙 커서 바짝 긴장과 조바심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태풍으로 인한 풍수해의 상흔이 곳곳에 아직 생채기처럼 남아 있는데, 가공할 태풍이 연이어 위협하게 된다면 설상가상(雪上加霜)의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에 정부에서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태풍 대비에 적극적인 행정조치를 시행하는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선제적이고도 실효성 있는 현장 대응활동을 지원하며 만전을 기했다.

계절의 바뀜이 예사롭지 않음을 익히 알고 있지만, 수십년 전부터는 복병 같은 태풍이 가을날의 길목에서 산천을 할퀴고 들판을 쓸고 가니 천지간에 무엇 하나 순탄치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만큼 지구의 환경이 변하고 세상이 달라져서, 에너지의 순환이 점차 거칠어지고 만물의 움직임이 급작스레 코로나19같은 돌연함으로 치닫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난마 같은 기상이변도 계절의 수레바퀴 한 켠에서 무모한 듯 솟아오르는 상사화의 꽃대를 누르지는 못하고, 구절초와 쑥부쟁이의 흰눈 같은 하늘거림을 멈추게 할 수는 없으리라.

마치 가을을 마중이라도 하듯이 일제히 긴 목을 뽑아 붉은 꽃을 피운 상사화가 초록에 어우러진 한켠에서 지난 주말, 시와 음악의 향연이 꽃무릇의 운치 마냥 멋스럽게 피어나고 들꽃 같은 문학 얘기가 도란도란 엮어졌다. 온갖 나무와 화초들이 자연스러운 모양새로 자리잡아 가지런하고, 새들의 지저귐 따라 바람 결에 수런대는 잎새들도 함께하며 반겨맞는 그곳은 포항시 북구 청하면에 소재한 기청산(箕靑山)식물원이다. 이야기가 있는 박물관식 식물원에서 경북문화재단이 주최하고 공감놀이터 ‘어링블’에서 주관한 ‘이정록 시인 초청강연·시낭송·노래가 된 시’를 테마로 시와 음악의 콜라보를 선보인 ‘붉은 상사화 음악회’가 싱그러움 속에 이채롭게 열린 것이다.

시낭송과 수필 낭독이 차분한 음색으로 흐르고 성악과 악기 연주가 우렁차면서도 매끄럽게 울려 퍼지는가 하면, 어링블 꿈다락 어린이들의 이정록 동시집 ‘지구의 맛’ 동시 낭송은 맑은 목청과 고운 표정으로 자연사랑과 환경보전을 환기시켜서 의미가 있었다. 또한 선한 눈길과 맑고 밝은 언어로 많은 독자들과 호흡해온 이정록 시인의 구수한 입담과 해학적인 표현으로 ‘쑥은 쑥스럽게, 바람은 바람직하게’라고 말하는, 인문학적인 감성으로 짧으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며 더욱 아름다워지고 바르게 되는 계기로 시를 쓰게 된다는 세상을 보는 너른 시선이 인상적으로 여겨졌다.

상사화 피는 때에 맞춰 소소하고 수수하게 열린 숲속 음악회가 조금이나마 태풍의 상처와 코로나의 상심을 보듬고 다독이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의 삶이 복잡하고 힘에 부칠수록 자연과 예술을 찾아 교감하며 마음의 안정과 위무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시와 음악으로 가을 마중하듯이, 공감과 치유의 마음 마중으로 정갈한 가을을 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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