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0일 윤석열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이 발표되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년마다 수립되는데 이번에 발표된 초안은 전략환경영향평가, 관계 부처 협의 등을 거친 뒤 올 연말께 확정될 예정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요약하면, ‘원전 확대, 신재생에너지 축소’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기본계획은 지난해 문재인 정부 시절 내놓은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완전히 뒤집은 것으로 평가된다. 2021년 9월 30일 발표한 NDC 상향안에서는 신재생에너지가 30.2%로 가장 높게 설정됐고, 그다음 원전 23.9%, 석탄 21.8% 순이었다. 그런데 8월 30일 발표된 기본계획 초안에서는 원전이 32.8%로 8.9%포인트 늘어났고, 신재생에너지는 8.7%포인트 줄어 21.5%가 되었다.
신재생에너지가 대폭 감축된 것은 한국 지형 특성상 태양광·풍력설비 등을 대폭 늘리기 어려운 데다, 원전 대비 불안정한 비용 문제, 발전 설비 인근 주민들의 거부감 등이 고려됐다고 한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속도와 송배전망 건설비 등 현실적인 어려움도 감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을 예로 들어서 국제적인 신재생에너지 비중 증가 속도를 살펴보자. 독일은 199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1.0%다. 2000년에 들면서 6.6%이던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2020년에는 44.9%까지 올라갔다. 독일의 2030년 신재생에너지 목표는 65%이고 2050년에 80%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영국의 경우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2000년 초 2.7%에서 2020년 42.3%까지 증가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0년 1.5%에서 2020년 6.4%로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독일은 매년 250억 유로 즉, 34조 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하여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있다. 현재 선진국과 우리나라와 신재생에너지 격차는 현재 무려 20년에 달한다.
유럽 여러 국가가 신재생에너지 공급에 집중하는 이유는 RE100(신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약속하는 글로벌 캠페인) 때문이다. RE100은 각 정부가 주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 기업들이 국제단체와 함께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기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사용하고 거래 기업도 100% 신재생에너지를 쓰도록 하겠다는 자발적인 협약이다.
벌써 30여 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들이 RE100을 달성했고, 주요 글로벌 기업 대부분이 2027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EU에서는 2026년부터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을 실시하여 EU로 수출하는 국가에 탄소국경세를 징수하겠다고 선언했으며, 미국도 곧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법안을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는 무역이 GDP에서 60%나 차지할 정도로 해외교역을 통해 먹고사는 나라다. 따라서 RE100이든, CBAM이든,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될 수 있는 나라다.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22% 넘어선 미국조차 향후 하나의 완결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468조 원을 투입하고 있다. 이 돈은 태양광·풍력에 대한 투자, 새로운 송·배전망 구축, 전기 충전소 신규 건설, 전기자동차 보조금 지원 등에 소요되는 자금이다.
이런 국제적인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전 정부에 비해 오히려 축소하는 것은 충격적이다. 요즘 산업현장에 가보면 대부분 기업들이 RE100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인데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는 곳은 거의 없다. EU에서는 2026년부터 발효하기로 한 CBAM을 2025년으로 앞당기려는 움직임이 있고, 미국도 곧 시행할 태세여서 조만간 우리 국가 경제가 난관에 봉착할 수 있는데도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외면하는 것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나라 지역 특성이 신재생에너지 축소 이유로 거론된다고 하는데,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독일의 경우 국토의 대부분이 위도 50° 이상, 우리나라는 위도 38° 이하에 위치해 있어 햇볕 양이 우리나라가 훨씬 풍부하다. 우리나라가 하루 평균 햇볕을 쬘 수 있는 시간은 약 3.9시간이고, 독일은 약 2.8시간에 불과하다.
풍력에너지도 한국은 3면이 바다로 형성돼 있어 독일에 비해 비교적 풍부한 나라이다. 부지 또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으로 표현되는 오랜 농경 정책을 유지하다 보니, 식량안보라는 이름으로 농지에 태양광을 쉽게 설치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신재생에너지를 설치할 부지가 부족할 뿐이다.
한국환경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주요국이 신재생에너지를 25%씩 증가시키는데 17년~30년 걸린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부터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2배 내지 3배의 속도로 신재생에너지를 공급해야 겨우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한다.
이제 신재생에너지 시대를 맞아 자원 빈국인 우리가 ‘신재생에너지 자립’만큼은 반드시 이뤄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자립’을 위한 충분한 햇볕과 바람, 토지가 있다. 선진국이면서 제조업 강국인 독일을 모델로 해서 최단기간 내에 ‘신재생에너지 자립’을 달성하는 것이 우리나라가 국제무역을 통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윤석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축소는 기후 위기 대응과 기업의 수출 경쟁력까지 동시에 포기하는 정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