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공정한 사회와 자존감

등록일 2022-07-27 19:43 게재일 2022-07-28 18면
스크랩버튼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번 달 13일에 사상 초유의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을 단행했다. 그런데 최근 금융감독원이 가계 대출 차주의 상환 능력에 대해 분석한 내용은 심각하다. 가계 대출 평균 금리가 7%로 오르면 190만명이 소득의 70%를, 120만명은 90%를 빚 갚는 데 써야 한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부채보고서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올해 1분기 주요 36개국 중에서 가계 부채가 국내 총생산보다 더 많은 유일한 나라이다.

빅스텝을 밟은 지 하루 만인 14일에 금융위원회는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을 발표했다. 금리 인상과 금융 대책을 하루 차이로 발표한 것을 보면 정부의 다급한 마음이 엿보인다. 그런데 금융위원회의 대책이 나오면서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상환 여력이 없는 부채자에 대한 원금 감면과 주식·가상자산 투자에 실패한 청년에 대한 이자 감면 방안 등이 도덕적 해이 논란을 촉발시킨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취약층 채무 조정은 빚투한 실패자를 위한 대책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해명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부채 상환이 어려운 분들을 좀더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해 주고 도와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성실하게 빚을 갚고 있는 채무자에 대한 공정성과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세금으로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도 있다.

미국의 철학자인 존 롤스는 자신의 저서 ‘정의론’에서 정의의 원칙을 “공정한 최초의 상황에서 합의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최소 수혜자의 처지가 개선됨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될 때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차등의 원칙’을 제시했다. 현재 부채의 늪에 빠진 채무자들이 롤스가 말했던 차등의 원칙에 부합하는 최소 수혜자인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정의론과 대화하기’라는 책을 펴낸 서울시립대학교의 목광수 교수는 존 롤스를 이해함에 있어서 ‘자존감’이라는 의미를 강조했다. 목 교수는 최근 학술 발표회에서 “사회적 협력이 이루어지려면 사회 주체들 간에 자존감 형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제나 혜택을 받는 소수의 사람과 그렇지 않은 다수의 사람 모두 자존감이 상처받지 않고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자존감은 수혜자에 적용되는 원칙이 공정한 제도로 운영될 때 고양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 사회’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면서 집권했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모토의 진정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공정(公正·justice)’이 실현되는 과정으로서의 ‘공정(工程·process)’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갚기 힘든 빚을 진 사람을 구제해 주는 방안에 대해서는 국민의 공감과 합의라는 절차가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예측 가능하고 투명한 제도를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노승욱의 세상쓰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