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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국민은 숨이 막히는데

장규열 한동대 교수 ‘나라의 말이 중국과는 달라서 한자만으로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여도 제 뜻을 바로 실어 펼치지 못한다. 내가 이를 가엾게 생각하여 새롭게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무두 쉽게 배워 날마다 쓰므로 편하게 하려 함이다.’ 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하면서 세종은 생각을 이렇게 요약하였다. 지구상에 헤아릴 길 없이 많은 언어들 가운데 스스로 문자를 가진 민족이 채 서른도 되지 않는다. 그들 가운데 대개는 영문 알파벳을 빌어 표기한 경우가 많아서 우리 한글은 독특하기가 견줄 데가 없다. 그런 글자를 만들었던 까닭이 글쎄 ‘어린 백성의 불편함’을 알았기 때문이며, 글을 ‘사람마다’ 쉽게 배워 쓰면서 편안하길 바랐던 것이었다니!놀라울 따름이다. 군주로서 더할 나위 없는 ‘백성사랑’이 아니고 무엇인가. 보통 사람들의 불편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왕의 진심’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백년도 훌쩍 넘는 시공간을 사이에 두고 궁궐 밖 시민들의 삶을 걱정하는 지도자의 아픈 마음이 거의 보인다. 고루한 신하들의 격렬한 반대를 예상한 그는 한글을 거의 혼자서 만들었다고 한다. 반포하면서 저렇듯 절절하게 백성을 염려하는 왕의 마음을 기록한 것은 속좁은 관료들의 꽉 막힌 심사를 넘으려 했음이 아닐까. 진심으로 백성을 생각하여 왕이 손수 쉬운 글자를 만들었으니 신료들은 그리 알고 다른 말씀을 마시라. 왕과 백성이 하나로 묶이는 경험을 우리는 576년 전에 한 셈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만나는 지도자와 백성의 모습은 어떠한가.정치에서 우리는 진심을 읽을 수 있는가. 그들은 우리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국민을 마음으로 생각하는 정치가 보이는가. 아니면 정략과 술수로 겨우 피하기만 하는 말싸움의 아수라가 아닌가. 그만하면 보일만도 한데, 국민이 만난 어려운 상황과 고단한 일상은 누구도 헤아리지 않는다. 물가가 뛰고 이자가 춤추며 환율이 올라가도 정치판은 오히려 복지부동이 아닌가.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일이 이 판에 무에 그리 급한지 알 길이 없다. 난관을 헤치며 하루하루를 사는 국민은 답답할 뿐이다. 누구도 돕지 않는 처절한 나날을 2022년에 만나고 있다니! 한글날을 맞으며 정치는 세종의 속마음을 다시 한번 읽었으면 한다. 무엇으로 세상을 바꿀 것인지, 누구를 위하여 정치를 하고 있는지. 최소한 당신 자신의 영달을 위함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하지 않을까.역사는 앞으로만 나아가는가, 아니면 때때로는 뒤로도 흐르는가. 말로만 국민을 주워담는 정치는 이제 그만 보았으면 한다. 당신들이 아무리 ‘국민’을 떠들어도 국민은 당신의 마음을 이미 읽고 계신다. 공천과 당선에만 관심이 있어 일신의 안위만 생각한다는 걸. 아니라면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공감과 배려가 보여야 한다. 오늘 만난 어려움에서 국민의 어깨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져야 한다. 사이다 발언도 이제는 식상하다. 국민은 숨이 막히는데, 정치는 국민을 생각하라.

2022-10-05

물고기의 반란

홍석봉정치에디터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철이다. 그런데 가을 전어가 사라졌다. 제철이 됐지만 남해안에서 전어가 잡히지 않는다. 수온 상승이 원인이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어장 환경이 바뀌고 있다. 수확량도 크게 줄었다. 전어가 ‘금전어’가 됐다.지난 7월 영덕 장사해수욕장에서 죽은 참치 1천여 마리가 발견됐다. 어민들이 버린 것이었다. 피서객들이 썩은 참치 악취에 시달렸다. 피서객들은 최고급 횟감인 참치가 해안에서 버려진 채 썩어가자 어리둥절해 했다. 참치 포획량은 국제협약으로 정해져 있다. 이에 할당량을 초과해 잡은 참치를 버린 것.수온 상승과 해류 변화로 동해에서는 잡히지 않던 참치가 최근 다량으로 잡혀 폐기되는 일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어부들은 참치 포획량을 확대하거나 어쩔 수 없이 잡은 참치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우리나라 바다에서 명태와 꽁치가 사라진지는 오래됐다. 국산 명태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급기야 2014년 해양수산부 등이 나서 현상금(?)까지 걸고 명태 수배령을 내렸다. 명태 복원작업이 시작됐다. 이제 동해에서 조금씩 잡히고 있다고 한다.찬 바다에서 사는 명태와 꽁치는 종적을 감추고, 따뜻한 바다에서 사는 고등어와 멸치 등은 더 많이 잡힌다.물고기의 반란은 기후 변화가 주요인이다. 지구 온난화는 사람이 주범이다. 온난화로 우리나라 바다 수온이 지난 54년 동안 1.35도 올랐다. 전 세계 평균 상승 폭의 5배다. 2050년에는 최대 2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바다 생태계의 변화로 어느날 괴물 물고기가 밥상에 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업보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0-05

내 그림자에 가려 빛을 잃은 키 작은 꽃을 위해

오낙률 시인·국악인 가히 꽃의 붓다라고 불릴만한 연꽃은 잎과 꽃이 너무 크고 화려한 탓에 다른 꽃들에 그늘을 드리울까 봐 아예 물에서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백련도 홍련도 가시연꽃도 그 차가운 물에서 평생을 사느라 일 년 중 가장 무더운 칠월에서야 꽃송이를 피우는지 모를 일이다. 연꽃의 꿈속에 ‘내가 꽃으로 살면서 내 꽃그늘에 가려 빛을 잃고 사는 나보다 키 작은 꽃을 살필 줄 아는 꽃이 있다면 그에게 온 계절을 다 맡겨 세상을 꽃밭으로 가꾸게 하리라’는 신의 계시가 있어 연꽃은 그 여름 물속에서 수행의 꽃송이를 가꾸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무릇, 아름다운 꽃이란 그 빛깔도 빛깔이지만 고개라도 살짝 숙여 필 줄 아는 꽃이어야 그에게서 아름다운 향기와 풋풋함과 청초함이 배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가끔 꽃길을 걷다가 다소곳이 고개 숙인 꽃을 만날 때면 그 모습에서 오랜 자연생활에서 유전형질처럼 이어온 참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그리고 그 느낌은 날로 자기중심적으로 변해 가는 우리네 사회상과 비교하여 생각하면 각별한 느낌이라 할 수 있겠다.인류가 생존을 위한 먹거리 조달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오늘날의 문명사회로 더불어 사는 모습을 활짝 핀 꽃밭에 비유하기도 한다. 무릇 꽃밭이란 수많은 종류의 꽃이 어우러져 피어야 비로소 꽃밭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꽃밭 같은 세상에 살면서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이라고 자만하며 군림하려는 꽃이 있다면 그는 이미 향기를 잃은 꽃이거나 어느 집 창가에 놓인 꽃병에서나 볼 수 있는 외로운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 사회가 꽃의 가치를 판단하는 보편적 시각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왜 모든 동물이 배설하는 분변은 구릴까. 그것은 한 동물의 몸에서 배출된 분변은 이미 더 이상의 효용 가치가 없으니 자연에서 빨리 분해되라고 체내에서 분해물질에 해당하는 암모니아 효소 처리를 하여 내보내니 그럴 수 있겠고, 또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네가 살면서 먹고 마시는 행위가 늘 이렇게 타자의 희생에서 얻어지는 구린 짓이니 잘 살피며 살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어느 날 껌을 씹다가 그만 입술을 깨문 기억이 있다. 단물 다 빠진 껌을 습관처럼 너무 오래 씹은 것이었다. 피가 멈추고 혓바닥으로 내 치아를 더듬어보니 나는 너무 날카로운 치아를 지니고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내 날카로운 치아에 물려 피를 흘린 이웃은 없는지 살피며 살 일이다.커다란 가마솥 안에 삶은 돼지고기에서 설설 김이 피어오르는 그 시간이 세월이고 그 모습이 세상이 아닐까 싶다. 개라는 동물은 꼬리 칠 줄 안다는 이유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지녔음에도 인류의 가장 밀접한 반려동물 위치까지 올랐다. 그것도 개의 입장으로 보면 종족생존의 한 방편이 되는 줄 알지만, 항간의 정치권에는 자신이 지키는 울타리 주인에게 충성하기 위해 앞뒤 분별없이 무참히 타자를 물어뜯는 인간이 너무 많은 것 같다.

2022-10-05

국군의 날 기념식 논란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국군의 날 기념식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10월 1일 건군 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소개된 영상이 문제가 됐다. 행사가 마무리될 즈음에 국군의 결의를 담은 영상이 소개됐는데 중국 인민해방군의 장갑차가 돌연 출현한 것이다. 해당 영상에 나오는 장갑차는 ‘중국 92식 보병전투차(ZSL-92)’로 알려졌다.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동영상 제작 과정에서 잘못된 사진이 사용된 것을 시인했다. 또 온라인 영상에 대한 해당 부분 수정을 각 방송사에 요청했다. 그럼에도 파장이 줄어들지 않자 결국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유감 표명으로 이어졌다. 이 장관은 4일에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죄송하다. 이런 일이 없도록 챙기겠다”고 답변했다.국군의 날 기념식에 대한 논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부대의 경례를 받은 후에 ‘부대 열중쉬어’를 하지 않고 연설을 하려고 했다. 현장 지휘관이 작은 목소리로 부대 열중쉬어 구령을 대신했지만, 야당에서는 연설 내내 장병들을 경례 상태로 세워 둘 참이었느냐며 비판을 했다.6년 만에 계룡대에서 거행된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이런저런 해프닝이 발생한 것이 안타깝다. 물론 행사를 치르다 보면 실수가 생길 수는 있다. 그렇지만 국방에 있어서만큼은 작은 실수라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북한과 대치 중인 우리나라의 엄중한 안보 현실 때문이다.북한은 국군의 날에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4일에도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에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은 한때 홋카이도와 아오모리현에 피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북한은 올해 탄도미사일을 21차례 발사했는데, 현 정부 출범 이후로만 9번째이다.‘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가 말했던 것처럼,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어느 한쪽의 적극적인 행동은 힘의 긴장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 실험은 휴전 상태인 우리나라에 지속적인 긴장을 야기시키고 있다. 국군의 날 기념식 해프닝에 여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지난달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항에 침수 피해가 발생했을 때 등장했던 장갑차가 있었다. 해병대 1사단에서 출동시킨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KAAV)’였다. 물바다를 이룬 포항 시가지에서 시민 구조에 나선 장갑차의 모습에 전 국민이 주목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군의 존재를 실감한 순간이었다.국군의 날 기념식 영상에 포항에서 활약했던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가 나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등장했던 장갑차는 국군의 존재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국군의 날 기념식 영상에 난데없이 나타난 중국 장갑차를 보면서 다시 한번 떠올려 보게 된 우리 장갑차의 모습이 반갑고도 든든하다.

2022-10-05

아르바이트? 안 합니다

최근 아르바이트 구인난이 심각하다. 단계적 이상회복으로 인해 영업 시간이 늘어나고 주문량 또한 증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할 사람이 없어 많은 자영업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구인공고를 올려도 몇 달째 연락이 없는데다 전보다 시급을 올려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어 오죽하면 자영업자들은 고용을 포기할 지경이다. ‘손님보다 더 귀한 알바생’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구인구직 전문 포털인 ‘알바천국’이 실시한 설문 결과에 의하면 전체 고용주 113명 중 79.1%가 알바생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원자 수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78.9%로 1위로 꼽혔으며, 올해(2022년) 알바생 구인 체감 난이도는 매우 어렵다(44.4%)로 조사되었다.약 115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표 카페인 ‘아프니까 사장이다’ 에서도 ‘구인난’ 키워드가 쓰인 글이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구인에 어려움을 겪는 사장님들은 시급을 1만 2천원에서 최대 2만원까지 내걸어도 사람을 구할 수 없어 강제휴무와 강제 영업시간 단축, 홀 규모 줄이기 같은 방법을 택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구인난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더해져 발생하고 있다. 현재 20대 청년들의 노동은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차량공유서비스 운전자나 배달 라이더, 물류 센터 등의 플랫폼에 집중되고 있다. 2021년 11월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1년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 실태’ 자료 조사에 의하면 플랫폼에 종사하는 긱워커(단기로 계약을 맺은 일회성 근로자)는 22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20대 청년들은 그때그때 상황과 필요에 따라 계약을 맺어 노동을 제공하고 그만큼의 대가를 받는 형태를 지향한다는 것이다.또한 많은 구직자들은 그간의 ‘시간 쪼개기’ 고용 형식을 거부하고 있단 것을 보여준다. 시간 쪼개기는 주휴수당 조건인 주 15시간을 초과하지 않기 위해 알바생 여러 명을 상대로 3-4시간 정도로 짧게 고용하는 형태다. 선택권 없는 짧은 노동시간, 높은 업무 강도, 그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급여 때문에 많은 이들이 술집이나 식당, 카페에서의 근무를 꺼려하는 것이다. 몇몇 자영업자 사장님들은 이 문제점을 알고 급히 인건비를 인상하고 인력 확보를 위해 그간의 고용 프로세스도 바꾸어 보지만 많은 구직자들의 마음을 돌려 세우기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나는 19살부터 많은 알바를 해왔다. 일식집과 베이커리 겸 카페, 족발집, 화장품 가게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해봤지만 사실 좋은 기억이란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3-4년이 지난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특히 개인 사장님이 계시는 작은 규모의 가게에선 난처한 일이 많았다. 교육 기간을 핑계로 3개월간 최저시급조차 주지 않는 곳이 대다수였고, 당시 3개월이 지나면 가게나 개인 사정을 핑계로 습관처럼 자르는 곳이 빈번했다. 5인 미만의 사업장은 법적인 책임을 묻기도, 부당함을 해소하기 어렵단 점을 교묘히 이용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르바이트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하지만 이런 점을 다 제외하고도 제일 힘들었던 점은 아르바이트생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음 자를 수 있다는 고용주의 태도였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2년 넘게 기쁜 마음으로 일을 했던 곳도 있었다. 최저 시급에 집에서 약간 거리가 먼 일식집이었다. 그곳의 사장님은 늘 다정하고 따뜻한 말로 안부를 물어봐주시지만 도를 넘어서 사생활에 대해 캐묻진 않으셨다. 그릇이 부족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날엔 입은 옷이 다 젖을 정도로 하루 종일 설거지만 하던 적도 있었다. 일의 강도는 높았지만, 그럼에도 2년 내내 큰 불만 없이 오래 다닐 수 있었던 건 사장님의 친절한 언행와 나의 노고를 알아주는 섬세한 배려 덕분이었다. 오히려 일을 그만 두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많은 경험을 했고, 그 경험 덕분에 낯선 사람을 만나 친절히 대하는 데에 익숙한 편이다.아르바이트 근무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좋은 자영업자도 있을 것이다. 근로자의 필요성과 요구를 조금 더 헤아려 더 나은 근무 조건과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좋은 환경과 보상이 만들어진다면 최저 시급임에도 많은 아르바이트 근로자들이 모여들 것이다. 물론 자영업자의 노력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측면에서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할 것이고, 결국은 모두가 장기적으로 고민하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 문제다.

2022-10-04

관크와 인공지능, 그리고 아우라

지지난주 주말 서울 예술의전당 회원 음악회에 다녀왔다. 매년 가을마다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것)의 뿌듯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2년씩 세 번, 6년째 예술의전당 골드회원을 유지 중인데, 회원 음악회 한 번이면 연회비 10만원이 아깝지 않다. 아니 황송할 정도다.거장 정치용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세계적인 플루티스트 최나경과 협연했다. 1부는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 기도’와 메르카단테 ‘플루트 협주곡 e단조’, 2부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으로 꾸려진 무대였다.음반과 유튜브로만 듣던 월드스타 최나경의 연주를 눈앞에서 보니 쥐떼들이 왜 피리 소리 따라가다 연못에 빠져 죽었는지 알겠다. (내가 또 쥐띠다) 메르카단테 협주곡 1악장 플루트 솔로의 첫 음이 울리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음악은 세계를 여럿으로 분리하기도 하고, 이미 갈라진 세계를 하나로 합하기도 한다.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내는 걸까, 넋 놓고 들었다. 현악단의 합주 때 악기를 내려놓고 독주를 기다리는 그녀 표정과 몸짓도 다 음악이었다.앙코르로 연주한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은 그저 경이로움이었다. 플루트를 모르지만, 플루트로 할 수 있는 모든 기교를 다 본 것 같았다. 특히 바이올린의 피치카토 주법을 플루트로 소리 낼 때마다 무슨 마술을 보는 기분이었다.2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은 곡 자체가 지닌 격정적이고 강렬한 에너지와 그것을 차분하게 통제하고 조율하고 극대화시키는 정치용 지휘자 사이의 상응이 아름다웠다. 2악장은 다른 교향곡들의 4악장 이상으로 세게 치닫고, 4악장은 몇 개의 클라이맥스가 있는지 다 셀 수 없을 정도. “불행한 결혼에 몹시 고민하던 시기의 산물”이라는 곡 해설을 읽고 미혼이지만 이해 완료되었다. 음악 듣고 결혼과 더 멀어진 느낌이랄까.모든 현악기가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3악장에서도, 태풍처럼 몰아치는 4악장의 격랑 속에서도, 앙코르곡 슈트라우스 ‘관광열차 폴카’의 경쾌함 가운데서도 단원들 표정은 편안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유쾌했다. ‘소통’을 중시한다는 정치용 지휘자의 부드러운 리더십은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연상케 했다. 커튼콜 때 각 파트 단원들을 일일이 일으켜 박수 받게 한 다정함 역시 아름다웠다.단 하나 아쉬운 건 역시 ‘관크’(타인이 영화나 연극 등을 관람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뜻의 신조어. 관객+크리티컬의 줄임말)다. 플루트 협주곡 마지막 3악장이 무르익을 때 내 옆옆 자리서 울려 퍼진 스마트폰 인공지능 음성, “음악을 찾지 못했어요. 주변 소음이 너무 심하지 않은지 확인해주세요” 소리가 크기도 했고, 오래 지속되기까지 했다. 지난 3월 크리스티안 짐머만 내한공연 때도 똑같은 관크가 발생했다고 한다. 본인도 당황했겠지만 한 사람이 느낀 당혹감은 2천명 관객이 빼앗긴 감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발레리를 인용하자면 “음악의 세계와 소음의 세계는 분명히 갈라져 있다. 하나의 소음이 하나의 고립된 사건임에 비해 하나의 음악은 저 혼자서 우주를 만든다. 연주회장에서 한 악기가 떨어 울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하나의 시작이라는 느낌, 한 세계의 시작을 갖게 된”다. 그런데 “어느 연주회장에서 교향악이 울려 퍼져 위압하는 동안에 만일 의자 하나가 넘어진다든가, 누가 기침을 한다든가, 문이 닫혀진다든가 하는 일이 생긴다면, 당장에 우리는 무언지 모를 파열의 인상을 갖게 된다. 그 순간 베니스 유리와도 같은 본성의 그 무엇이 깨어지거나 금간 것”이다.완벽하게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데, 인공지능은 음악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심지어 음악을 소음으로 인식했다. 내가 어제 연주회장에서 본 것은 기술복제시대의 한계다. 모든 걸 데이터화해 무한 반복하는 기술복제는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 즉 아우라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날 콘서트홀에 울려 퍼진 인공지능의 음성에도 최나경의 아우라는, 음악의 한 우주는 조금도 깨지지 않았다. 음악이 이겼다. 인간이 기술을 이겼다.연주회가 끝나고,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린 음악당 광장을 걸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좋았다. 멀리 있는 것이 잠시 가까이 온 그 느낌, 아우라였다.

2022-10-04

구미시에는 복지직만 부족한가

김락현 경북부·구미 구미시에서 복지직 수를 증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사회 전체적으로 복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만큼 복지직 수를 늘려가야 한다는 것에 이견을 가질 수는 없다.하지만, 구미시의 경우 공무원 1인당 주민수가 224명으로 경북도내에서 가장 높다. 복지직 공무원만 부족한게 아니라 공무원 전체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그럼에도 시의원들은 앞다퉈 복지직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열린 구미시의회 2022년도 행정사무감사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시의원들은 복지직렬 국장이 포항은 2명, 안동·경산·문경·김천에 각 1명씩 있는데, 구미에는 5급 복지직공무원의 수가 3명에 불과하다며 조례상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A시의원은 구미시 복지직 공무원 1인당 복지대상자수가 1천600명으로, 김천시 1천190명, 상주 990명보다 많다고 지적했다.과연 시의원들의 주장처럼 구미시에는 복지직 공무원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걸까.구미시에 따르면 공무원 총정원은 2012년 1천586명에서 2022년 9월 1천824명으로 238명(15%)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행정직은 660명에서 771명으로 111명(17%), 시설직은 171명에서 209명으로 38명(22%)이 증가했고, 복지직은 77명에서 155명으로 78명(101%) 늘었다. 최근 10년동안 복지직 증감율이 가장 높다.5급 복지직 수도 구미시와 인구가 비슷한 도시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구미시(인구 41만) 3명, 의정부시(인구 46만) 3명, 파주시(인구 49만) 2명, 김포시(인구 48만) 2명, 경기도 광주시(39만) 2명으로, 낮은 수치는 아니다.복지직 공무원 1인당 복지대상자수도 구미시가 1천600명, 김천시 1천190명이라고는 주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복지업무 대부분이 행정업무이기에 복지직렬만 복지대상자수에 비교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다. 복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행정체계도 이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늘어나야 하지만, 특정 직렬만 언급하거나 강조하는 것은 맞지 않다.이제라도 경북도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구미시 공무원 1인당 주민수를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kimrh@kbmaeil.com

2022-10-04

포은선생의 충절과 학덕의 창조적 계승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선선한 바람 결에 코로나19의 지긋지긋함을 털기라도 하듯 크고 작은 축제가 각처에서 열리면서 문화의 달을 실감케 한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영주세계풍기인삼엑스포 등이 성황리에 마쳤거나 열리고 있으며, 진주남강유등축제 등이 다음 주부터 열릴 예정이라서 모처럼만의 가을축제가 활기를 띠는 듯해 다행스럽다.포항에서는 포은(圃隱) 정몽주 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는 ‘제13회 포은문화축제’가 당초 9월초에 개최될 예정이었이나, 난마 같은 태풍의 무자비한 내습과 피해복구로 인해 잠정 연기된 상태다. 태풍의 상흔은 좀체 가시질 않지만, 언제까지 탄식만 하고 주저앉을 수 없는 일이라 주변을 추스르며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인적, 물적인 피해가 컸었던 오천읍 지역은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자취가 서린 영일정씨의 본향이기도 해서 동방이학(東方理學)의 비조(鼻祖)인 포은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충효와 학문을 재조명해 계승, 발전시키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그 일환으로 최근 포은선생 추모백일장을 열고 오천서원 일대에 포은선생의 시문을 석각(石刻)한 비림(碑林)이 국내 최초로 제막돼 의의를 더해주고 있다. 포은의 본향에서 선생의 충효정신을 기리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성현의 사상과 업적을 일깨워 꿈과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 열린 백일장은 서원향교 활용화사업 차원에서도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향유하며 숨결을 불어넣은 계기가 돼 이채로웠다. 또한 오천서원 경내에 국내의 저명 서예가들이 포은선생의 시와 명문을 필묵(筆墨)으로 남기고 돌에 새겨 만세(萬世)에 전하려는 비림 조성사업은 우리의 전통 서예문화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연차적으로 입비(立碑)를 추진함으로써 서원에 학자와 예술인들이 즐겨 찾고 머물면서 격조 높은 문화공유와 후학들의 인성지도·정서함양에 도움을 주는 한편, 전통과 현대의 퓨전문화로 재창출, 전파할 수 있어서 사뭇 주목된다.그에 더하여 5일까지 포항문화예술회관 전관에서 열리는 ‘제5회 포은서예국제대전’과 교류전은 세계 11개국 서예 지망생들과 저명작가들이 출품하여 포은선생의 학맥과 자랑스러운 기풍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역량있는 신진작가들을 발굴하는 기회와 예술적인 교감을 도모해 한결 고무적이다. 각 지역이나 특색에 따라 공모전이 넘쳐나는 시대에 포괄적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국제교류전과 문화예술로의 소통은 문화도시 포항을 한층 고양시키며 한국의 예술문화를 단계적으로 글로벌화시키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싶다.역사적인 인물이나 배경이 되는 유적을 생각하고 돌아보며 학문과 사상을 널리 알리고 진작시키는 것은 문화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며 가치를 부여하는 지역민들의 의식과 지자체의 안목에 달려있다. 그것은 곧 그 도시나 지역의 문화적인 품격과 자산이며 비전이기도 하다. 포은선생이 남긴 대쪽 같은 절의와 충·효·예의 정신문화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이 꽃피고 포항이 포은 정몽주의 고장임을 각인시키며 미래지향적인 문화도시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2022-10-04

기업 소통의 바람직한 매개체, 혁신활동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소통으로 완성되는 기업의 문화’를 근간으로 이번 칼럼에서는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기업 소통 환경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우선 경영진이 소통을 잘 하고 싶다면 직원들의 건의사항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직원들의 소통은 단지 윗사람이 자신의 소리를 잘 들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또한 직원의 입장에서 경영진과 소통을 잘하려면 경영진이 관심있는 과제에 대해서 스스로 참여해야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경영진이 관심있는 부분에 대해 성공사례를 만든다면 경영진은 그 직원들의 말에 반드시 귀 기울일 것이다.일반적으로 경영진은 일상적인 루틴(routine)한 업무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다.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깨끗한 현장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고장 없고 불량 없는 현장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돈 되는 현장을 만들 것인가에 관심이 높다. 따라서 직원이 힘을 모아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현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혁신활동을 통한 소통 성공 사례로는 포스코를 빼놓을 수가 없다. 포스코의 QSS(Quick Six Sigma) 혁신활동으로 쌍방향 소통을 실천하였다. QSS활동 전 직원들은 경영진이 현장 방문에 모두 숨었다. 괜히 잘못 걸려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QSS활동을 하고 난 후 경영진이 현장을 방문하면 모두 나와서 자신이 개선한 것을 자랑하게 되었다. 변명보다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신바람나는 조직 문화가 된 것이다. 이 QSS활동에는 솔선활동, 격려활동이라는 강력한 소통 무기가 있기 때문에 더욱 활성화 된다. 솔선활동은 경영진이 QSS활동을 먼저 체험하여 전원참여를 이끌어 내고,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며, 격려활동은 경영진이 주기적으로 현장을 방문하여 직원들의 혁신활동 내용에 대한 칭찬, 격려, 대화를 통해 직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경영진의 소통 목적과 직원들의 소통 목적은 다르다.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소통이 안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본다. 윗사람이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소통 전달율은 90% 수준으로 높지만 반대로 직원들이 경영진에게 전달하고픈 소통 전달율은 10%수준 밖에 안된다고 한다. 따라서 쌍방향 소통으로는 QSS혁신활동 만한 것이 없다.소통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위 사례에서 소개한 포스코의 QSS처럼 소통창구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 시스템에 대한 상호 신뢰도가 높을수록 소통이 잘되는 조직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기업의 좋은 문화는 진정한 소통으로 완성된다고 본다. 진정한 소통은 혈구지도(7D5C矩之道)에서 답(答)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는 공자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어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로 “윗사람이 내게 해서 싫은 것을 아랫사람에게 하지 말고, 아랫사람이 내게 해서 싫은 것을 윗사람에게 하지 않는 것이 바로 혈구지도라고 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처럼 자신을 척도로 삼아 남을 생각하고 사례 깊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한사람의 직원이라도 마음의 문을 스스로 열고 나올 수 있도록 혈구지도를 나부터 실천하길 바란다.

2022-10-04

洪시장이 화두로 던진 ‘대구의 폐쇄성’

심충택 논설위원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주말 국민의힘 대구시당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대구사회의 폐쇄성과 기득권 카르텔을 언급해 주목받고 있다.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민선 대구시장이 대구사회의 주류집단과 시민의식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홍 시장은 취임 이후 대구의 GRDP가 전국에서 꼴찌고, 시민소득이 울산의 3분의 1에 그칠 정도로 쇠락한 것에 대해 안타깝다는 말은 더러 해 왔지만, 공식석상에서 그 원인이 대구시민의 폐쇄성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홍 시장은 이날 “대구는 인재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구에 와서 성공했다는 인재가 없고, 대구에 와서 성공했다는 사업가가 없다”고 했다. 아마 홍 시장의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구는 오래전부터 ‘굴러온 돌을 경계’하는 도시문화 때문에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인사에서 가장 기피하는 도시로까지 지목돼 왔다.사실 대구는 도시규모만 커졌지 사회문화는 여전히 전통사회다. 대구에서 처음 근무하는 공공기관 임원들을 만나보면, 대구시내 유명호텔에 조찬모임이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다른 대도시 호텔과는 달리 손님과 아침을 먹기 위해 예약을 해 보면 대부분 조찬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대구시민들도 그 흔한 조찬기도회나 조찬세미나를 경험하기가 힘들다. 반면 동창회다 향우회다 해서 끼리끼리 모이는 저녁모임은 많아 도심 곳곳이 불야성을 이룬다. 그만큼 대구사회가 외부세계와 단절돼 있다는 방증이다. 홍 시장은 “심지어 대구는 TK에서 자라나서 서울에 올라간 사람도 ‘서울 TK’라고 하며, ‘대구 TK’와 분리해서 대접을 한다”고 했다.대구시민들은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서도 ‘코이의 법칙’을 가슴에 새기며 ‘열린 도시’를 추구해야 한다. 코이는 비단잉어다. 어항에서 키우면 10cm이상 크지 않고, 연못에서 키우면 30cm이상 크지 않는다. 그러나 강이나 호수에서 자라면 120cm까지 큰다. 같은 물고기지만 사는 곳에 따라 크기가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법칙이다. ‘한국의 시간’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김태유 박사는 “자라는 아이에게 새총을 주면 산에 가서 참새를 많이 잡는 꿈을 꿀 것이고, 엽총을 주면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를 사냥하는 꿈을 꾼다”고 했다.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대구의 사회환경을 바꿔주는 역할은 사회지도층이 중심이 돼서 해야 한다. 그러나 홍 시장도 언급했듯이, 대구를 이끌어온 기득권 세력들은 학맥, 인맥으로 카르텔을 형성해 자기들끼리 먹고 사는 도시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사는 아이와 기득권세력이 카르텔을 형성한 폐쇄적 도시에서 사는 아이가 한평생 누리는 행복수준은 같을 수가 없다. 대구시장이 공개석상에서 대구의 폐쇄성과 기득권 카르텔을 비판한 것을 계기로 해서, 지금부터라도 대구는 열린도시를 지향하며 4차 산업혁명시대를 준비했으면 한다.

2022-10-04

자주국방

우정구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 처음 맞는 국군의 날 기념식이 국군의 심장부인 계룡대에서 6년 만에 처음 열린 것과 괴물 미사일을 비롯 첨단무기 등이 공개된 것은 전 정부와는 대조되는 기념식 모습이다.특히 영상 공개된 이른바 괴물 미사일로 알려진 현무-5는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탄두 9t의 세계 최대급 탄두 중량미사일로, 핵무기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재래식 무기로 소개됐다. 유사시 평양 주석궁과 지하 100m 이하에 있는 김정은 벙커를 단 1발로 초토화할 수 있다고 한다.세계 각국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탄두 중량이 500kg∼1t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현무-5의 위력은 괴물이라 할 수 있다.이보다 앞서 우리 군이 개발한 현무-4는 자탄을 살포하는 확산탄을 쓰면 축구장 200개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다고 소개된 바 있다. 괴물 미사일은 중량을 줄이면 3천km 이상을 날아가는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전환할 수도 있다고 한다. 군사 소식통은 북한의 도발은 물론 중국 등 주변 강국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형 무기라는 설명을 했다.국군의 날 기념식은 우리 군의 위용과 전투력을 대외에 알리고 국군장병의 사기를 높이는 행사다. 지금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나라마다 안보 불안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자주국방이란 자국 안보를 스스로 지키는 국방력을 말한다. 그러나 각국 간 이해가 복잡한 국제정세를 보면 자국 국방력만으로 안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집단안전보장체제의 필요성이 각별히 관심을 끈다. 한미나 한미일 공조체제가 바로 그것이다.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튼튼한 국방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유비무환 정신만이 국가와 국민을 지킬 수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2-10-04

바닥에는 검은 진흙이 <Ⅲ>

영산시는 노인 복지에 있어서는 항상 다른 지역보다 한발 앞서 있었다. 노인들의 의료보험 본인 부담금을 지자체가 모두 부담하는 정책, 노인 전용 무료 급식 식당의 개설, 노인용품 바우처 제도 등의 정책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었다. 영산시에서 먼저 정책을 시행하면 주위의 다른 시에 사는 노인들이 볼멘소리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의 다른 시에서도 영산시에서 하고 있는 정책을 흉내 냈다.영산시에서 인호는 영권의 대리인이었다. 인호는 영권을 대신해서 영산시장을 만나고 정책을 건의하고 관철시켰다. 영산시에서만 다섯 번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영권의 아들, 인호의 건의는 영산시장에게는 명령과 같았다. 시장이 인호의 건의를 거부할 명분도, 필요도 없었다. 예산이 부족합니다. 시장이 이야기하면 인호는 영권을 통해 해결해 주었다. 다른 시의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영권을 찾아와 왜 영산시만 그렇게 혼자 튀려고 하느냐. 혼자 가지 말고 협의해서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 불평을 하는 날이면 영권은 인호에게 전화를 걸어 수고했다, 칭찬을 했다.영산시에서는 노인과 관련된 행사가 끊이지 않았다. 가로등과 현수막 거치대에는 거의 매일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주말이면 문화회관이나 운동장의 주차장에서는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실버 건강 걷기 대회부터 실버 마라톤, 실버 문학 대전, 실버 음악 대전, 실버 미술 대전, 실버 사진 대전, 실버 연극제, 실버 예술 주간, 실버 체전까지. 그리고 이 모든 행사들을 총 정리하는 실버 대제전까지.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도시 이름이 실버라 생각했을 것이다.영산시는 노년의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곳이었다. 노인들은 생업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다녔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산책을, 아침 식사를 한 뒤 텃밭에 물을 주고 탁구장이나 배드민턴 코트에 들러 운동을 하는 것. 노인 급식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집에서 쉬거나 작업을, 저녁은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이 그들의 하루 일과였다. 주말에는 동호회에서 만난 지인들의 다른 행사를 찾아 응원을 하고, 행사가 없는 날은 찻집에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문학기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야 살맛나는 세상이라 생각했다. 건강한 노인들의 이야기였다.건강하지 못한 노인들의 삶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정기적인 병원 방문과 약물의 복용을 도와주는 도우미들이 있었다. 그들은 병원이나 약물 복용뿐만 아니라 병을 앓고 있는 노인과 독거노인들의 식사나 잠자리 등을 살펴 주었다. 남아 있는 약의 개수를 살펴 규칙적으로 약을 복용했는지 살폈고, 냉장고의 내용물과 부식의 잔량으로 노인의 식사를 확인했다. 정기적인 산책과 일조 시간의 확보 등도 도우미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일시적인 질환, 예를 들면 장염이라든가, 가벼운 감기라 하더라도 신청만 하면 단기로 도우미들이 배정되어 서비스를 제공했다. 영산시에서 모든 경비를 감당했다.더욱 힘든 노인들, 거동이 힘든 노인들은 시에서 운영하는 요양병원 혹은 만성 질환자 관리 병원에 입원을 시켜서 치료했다. 질병의 치료만 담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노년을 관리했다. 병원 내에서도 병원 밖과 마찬가지의 활동들,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죽음의 순간을 함께 했다.건강한 노인이든 건강하지 않은 노인이든, 노인들의 활동은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었다. 병원의 운영과 도우미들, 각종 행사를 위한 기반 시설의 운영 등 공공기관을 통한 고용의 증대와 각종 행사의 개최, 각종 단체에 대한 지원금, 질환의 치료, 약물 및 입원비용의 지급 등 공공기관의 지출 증가는 결국 지역민의 소득으로 이어졌다. 사적으로는 노인들이 각종 동호회에서 배우는 각 분야에 필요한 용품들, 행사를 치르기 위한 장소들, 식사 및 뒤풀이 등. 하다못해 축하 꽃다발까지. 노인들이 움직이는 모든 지점에서 소비가 있었다. 이 모든 소비에 내가 있지. 인호는 그렇게 생각했다.중앙 정가에서 활동하는 영권과는 달리 인호는 지역사회에 밀착하려 했다. 몇몇 동호회에 가입하여 활동을 한 것 뿐 아니라 시에서 주최한 각종 강좌에 개인 자격으로 신청을 해 수강을 했다. 다른 수강생과 똑같이 연단에 나가 자기소개를 하고 수업을 듣고 질문을 하고 뒤풀이에 참석했다.그중 인문학 교실은 그가 처음부터 기획을 하고 사람을 모아 십칠 년째 유지해오고 있는 모임이었다. 주제 선정부터 강사 섭외까지 인호가 직접 했다. 졸업생이 사백여 명이 되었으니 작은 모임은 아니었다. 인호는 노인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함께 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생각했다. 틈 날 때마다 젊은 사람 어디 없냐며 모임에 참석한 노인들에게 진담 반 농담 반 섞어 이야기했다.그러게. 이, 삼십 년 전만 해도 이런 모임에 와서 자리를 둘러보면 군데군데 젊은 사람이나 가정주부들이 보였었는데 말이야. 나만 해도 그렇지. 그때는 가정주부였으니까. 아무리 바빠도 수요일 저녁은 나의 시간 이렇게 정해놓았었지. 남편한테 애들 맡기고 강의 들으러 쫓아다녔었는데. 요즘에는 이런 자리에서 애 엄마들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니까./김강 소설가

2022-10-03

첫사랑이란 아련함

가을이 되면, 우리는 언제나 팔꿈치 옆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차가움으로 계절이 변화하는 기색을 알아채게 된다. 에어컨이 만드는 인공의 바람을 제외하고는 도통 바람의 시원함이라는 것을 경험하기 어려운 무더운 여름을 이제 막 지나고 난 뒤여서인지, 그렇게 선뜻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것은 늘 반갑게 마련이다. 하지만, 서서히 열기가 올라가는 봄, 여름 사이의 시간과는 달리, 무더움에서 선선함으로 바뀌는 가을이라는 계절의 시작에서는 늘 시간의 변화가 느껴져 무언가 조금 아쉬운 기분이 되곤 한다. 가을이라고 해서 특별한 계절은 아니겠지만, 그 계절의 분위기를 유독 사색이라든가 기억과 관련해 말하는 것은 어쩌면 일 년 가운데 가장 극적인 변화를 담고 있는 계절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요즘에야 사랑의 경험이라는 것이 그렇게 절대적인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한때 어떤 사람이 가진 ‘첫사랑’의 기억이란 늘 가을과 함께 찾아오는, 가장 강렬한 기억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었다. 첫사랑이란 언제나 그것이 가진 일회성 때문에, 그리고 서툰 청춘기에 늘 실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늘 깊은 상처와 같이 각인되고 남는다. 때로 시대가 변해서 이 첫사랑에 담긴 절대적인 의미 역시 변해간다고 하더라도, 첫사랑이라는 경험은 어느 시대건 인간에게 본질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다만 그 감정이 드나드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기억의 형태로 향유되거나 기록된 글의 형태로 퍼지지 않는 것일 뿐,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사랑의 열병에 빠지고 서툴 수밖에 없는 청춘의 시기에 그 사랑에 실패하고 만다. 첫사랑이 그처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경험의 존재 형식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어린 시절 당연히 갖지 않을 수밖에 없는 서툴기 그지 없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가장 강렬한 매혹의 경험과, 어떻게든 다가가려고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말과 행동, 그것 때문에 계속 어긋나기만 하는 감정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서도 늘 한 인간의 마음속에 각인되듯 남는다.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1860)은 바로 그렇게 누군가의 기억의 창고에 항상 남아 있게 마련인 그 첫사랑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어떤 귀족의 응접실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에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여섯 살 때 보모에게 느꼈던 첫사랑을 말하며 그 이후 자신의 사랑은 모두 두 번째가 되었다고 하면서 더 말하지 않는다.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랑이 뒤에 다가올 사랑의 순서를 규정할 만큼의 의미가 있지만, 그것은 언어로 바뀔 수 없다. 우리의 첫사랑의 기억이 보통 그렇듯이.응접실의 주인으로부터 첫사랑의 이야기를 요청받은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는 좀 더 시간을 요청하고, 2주 뒤에 나타나 수첩 속에 빼곡하게 적어놓은 이야기를 자신의 첫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사랑이라는 감정이 언어화되기 위해서는 그 기억과 마주할 만한 약간의 시간과 작가가 되어 그것을 언어로 옮기는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가 열여섯이던 때, 모스크바의 자기 별장 옆으로 이사온 몰락한 공작의 스물 한 살의 딸 지나이다와 만나 그에게 열정적으로 빠져든다. 사랑에 빠진 그는 지나이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얽매이는 사랑의 노예가 되지만, 지나이다는 결코 그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지 않는다. 지나이다에게서 연적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를 죽이려고 하지만, 그 연적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고, 블라디미르의 첫사랑의 기억은 그렇게 파탄이 나고 만다.이미 마흔 살이 된 블라디미르의 첫사랑은 그렇게 파탄이 되어 끝난다. 다만, 그 기억은 투르게네프 자신의 소설이 되어 남아 읽힌다. 불어오는 가을 바람과 함께./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2-10-03

유병장수(有病長壽), 무병장수, 무병단수(短壽)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죽음에 대한 얘기를 예전엔 금기로 여겼지만 요즘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칠십을 조금 넘긴 필자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얘기한다면 나이 드신 분들은 무엄하다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보험회사의 TV광고에서 ‘유병장수’라는 어휘를 보았을 때 병든 노인에게 저주를 보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필자는 돌아가신 어머님의 별세에 대해 가끔 생각하곤 한다. 당신께서는 잠을 주무시다 조용히 세상을 뜨시겠다고 생전에 자주 말씀하셨다. 사람이 죽는 순간엔 목숨을 편안하고 쉽게 거두어야 된다며 예순이 지난 뒤부터는 보약이나 건강식품 같은 것을 일체 드시지 않으셨으며, 간혹 선물로 받으신 건강식품은 자녀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셨다. 그 이유는 나이든 사람이 보약이나 건강식품 같은 것을 먹어봤자, 새롭게 힘이 많이 솟아나지도 않을뿐더러, 그냥 목숨만 더 오래 유지되게 할뿐이라는 것이었다. 당신께서는 9년 전 만 82세로 세상을 뜨셨는데 평소 말씀대로 밤에 혼자 주무시다 돌아가셨기에 6남매 자녀들 중 아무도 임종을 못하였다. 시골집 텃밭에 심어놓은 고구마를 가을이 되면 수확하여 우리 형제들에게 보내주겠다고 하시던 어머님이랑 전화통화를 했던 동생이 그 다음날 오전 약속시간에 맞춰 어머님을 찾아갔을 땐 이미 숨을 거두신 뒤였다. 일반적으로는 자식으로서 부모의 마지막 임종을 못하면 불효라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솔직히 말해서, 그러한 죄책감은 전혀 없었다. 당신 생전에 장례절차, 49제를 지낼 절, 화장한 유골 모실 곳(가족 자연장지)까지 직접 방문하시며 필자와 함께 모든 의논을 다 해놓은 터였다.필자는 15년 전 대학병원에 시신기증을 하였으며 얼마 전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도 하였고, 현재는 어떤 건강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이며 암이나 중병에 걸려도 항암치료나 연명치료 등은 일체 하지 않기로 하였다. 미소 짓는 나의 모습의 영정사진도 마련해놓았다. 사람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끊어서도 안 되지만 의료기술에 의지해 억지로 연장하는 것도 자연이치에 어긋난다고 본다. 신체와 의식이 건강하면서도 타인이나 사회에 조금이라도 이로운 일을 할 수 있거나 적어도 부담은 주지 않는 정도에서 세상을 살다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통상적 기준으로 세상을 살만큼 살았다면 언제 어디서 쓰러져 죽더라도 전혀 아쉬움이나 문제가 없도록 생전에 모든 조치를 다 해두어야 할 것이다. 오래 살면서 나이 많은 것을 무슨 큰 훈장처럼 자랑하며 내세우거나 그렇게 비친다면 보기 좋은 모습이 결코 아닐 것이다. 유병장수가 가족이나 사회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짐이 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무병장수도 자칫하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질병치료와 건강관리를 적극적으로 하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죽음이 본인과 가족들의 고통과 부담을 없애주는 좋은 수단으로 여기고 자신의 생각, 활동, 주변 등을 잘 정리하면서 노년을 보내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필자에게 무병장수와 무병단수 중 선택하라 한다면 단연코 후자를 택할 것이다.

2022-10-03

경부고속도로에 출구가 수백 개 생긴다면

권영철 영남대 명예교수 우리나라 고속도로 체계는 가두리 식이다. 우선 출구가 일정 규모의 큰 도시 위주로 되어있고, 통행료 징수체제이다. 이러다 보니 휴게소도 사람들을 가두어 놓는 식이다.이에 반해 미국 고속도로는 원칙적으로 무료이다. 물론 대도시 위주로 다리를 건너가거나 민자의 경우 유료도 있다. 출구(Exit)는 동네마다 있다. 만일 Exit 10 다음에 Exit 13이라면 3mile(마일) 후에 출구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출구가 1mile 단위로 있는 곳도 허다하다. 그리고 출구 근처 Rest Area로 불리는 휴게지역에는 반드시 주유소, 햄버거 레스토랑, 편의점 등이 있고 조금 큰 동네나 근처 명소가 있을 경우에는 모텔 등 숙박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미국은 워낙 면적이 넓다 보니 동네 출구 휴게지역 내 업소에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지역 주민들로 채워진다. 시골 같은 지역은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서부 태평양에서 동부 대서양까지 잇는 US 하이웨이 80번 총거리는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 10배인 46만6천636km인데, 거의 모든 출구마다 통행료가 없다.이에 반해 우리나라 사정은 어떠한가? 출구가 일정 규모 도시 위주로 되어 있고 휴게소도 원칙적으로 25km마다 제한되어 있는 독점적 구조이다.이러니 사람들이 붐비고 음식이나 서비스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휴게소에 쓰는 돈은 지역 경제와는 무관하다. 휴게소 운영업체나 임대해 주는 한국도로공사에 귀속된다. 또한 지역 동네나 근처 명소에 갈 때도 바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대도시 출구에서 빠져 나가 우회해서 가야만 한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얼마나 낭비인지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동맥경화에 걸린 것 같다.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몇 년 지난 1975년 당시 우리나라 차량 등록대수는 20만대 정도였으나, 2022년 현재 2천500만대에 이른다. 125배 증가한 것이다. 이런데도 가두리 식으로 가두어 놓으니 주말, 휴가철 및 명절 연휴에는 고속도로 정체가 지옥처럼 변한다. 미국처럼 동네마다 수시로 빠져나가게 하면 고속도로 정체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 될 것이다.또한 대도시 위주 출구에서 빠져나와 소도시나 시골 동네 목적지로 다시 우회에서 가다보니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얼마나 에너지 낭비란 말인가?물론 미국처럼 프리웨이 식으로 변경하려면 통행료 수입이 줄어들어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또한 도로 정비에도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해 오랜 된 고속도로는 이미 투자대비 회수율을 훨씬 넘긴 상태다. 이젠 고속도로 정체 해소, 빠른 접근성, 에너지 절감, 그리고 지역 활성화 측면에서 단기적으로는 동네마다 출구를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투자 대비 회수율을 넘긴 고속도로부터 미국 프리웨이 식으로 바꾸어 나가도 우리나라 경제력으로 충분히 감내할 수준에 이르렀다고 본다.

2022-10-03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벗어나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21세기의 문명국가,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부족전쟁’이 한창이다. 부족전쟁을 이끌고 있는 각 진영의 지도자는 물론, 그 진영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부족 구성원들 간의 대립도 심각하다. 전선(戰線)은 내정과 외교를 가리지 않는다. 정부여당은 전 정권에 대한 ‘신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그리고 야당은 현 정권의 ‘편파적 수사’를 이유로 부족의 사활을 걸고 전쟁 중이다.예일대 에이미 추아(Amy Chua) 교수는 ‘정치적 부족주의(political tribalism)’에서 “부족본능은 소속본능인 동시에 배제본능”으로서 “부족주의자들이 위기감을 느끼게 되면 똘똘 뭉치고 더욱 폐쇄적·방어적·징벌적이 되며 ‘우리 대 저들’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패거리 부족주의, 그리고 그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서 내로남불·유체이탈·자가당착 등 온갖 꼴불견 행태를 보이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부족주의에 노예가 된 한국정치의 비극이다.부족주의 정치는 ‘좀비정치’다. 좀비정치는 ‘우리는 선’, ‘저들은 악’으로 규정하고,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해서 상대를 공격하고 물어뜯는 정치다. 분노와 증오의 부족주의 정치는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지배하고 있으며, 부족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정치행태는 폭력적이고 적대적이다. 그들은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고 생각한다. 팬덤(fandom)정치가 위험한 이유는 편향된 인식과 과격한 행태가 결국 ‘좀비정치화’되기 때문이다.정치적 부족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추아가 지적했듯이 “부족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집단의 목표에 유리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만들어서 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부족은 ‘상대를 악마화’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이익공동체’이며, 역지사지(易地思之) 능력을 상실하여 민주정치가 요구하는 대화와 타협을 어렵게 한다. 특히 대통령이 정치적 부족주의에 매몰되면 ‘국민의 리더(leader)’가 아니라 ‘진영의 보스(boss)’로 전락함으로써 나라는 갈등과 분열로 망국의 길을 가게 된다.부족주의 좀비정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대화에 필요한 ‘균형의 힘’을 키워야 한다. 모든 인간은 ‘천사’와 ‘악마’의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능력도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 완벽한 신의 흉내를 내는 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어떤 정치권력이나 정치적 부족도 예외일 수 없다.따라서 정치적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독선과 아집을 버려야 한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로 ‘보수는 진보의 충고’를, 그리고 ‘진보는 보수의 고언(苦言)’을 경청해야 한다. 특히 부족 내부의 문제에 대한 자기성찰, 즉 ‘보수는 보수를 비판’하고 ‘진보는 진보를 비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때 지식인과 언론의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역할이 중요함은 물론, 국민들도 늘 깨어있어야 한다.

2022-10-03

KBS 수신료

홍석봉정치에디터 한전은 지난해 4만8천114건의 TV 수신료 관련 민원을 접수했다. 이중 상당수가 환불요구다. TV 수신료에 대한 국민 불만이 팽배해 있다.한전이 지난달 한 법무법인에 TV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법률자문을 요청했다. 한전이 국민 여론 악화에 따라 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한전은 KBS와 위·수탁 계약에 따라 1994년부터 전기요금과 TV 수신료를 통합징수하고 있다. 현 계약기간은 2024년 말 끝난다.한전은 수신료 징수액의 6.15%인 연 419억원을 위탁 수수료로 받는다. 적잖은 액수지만 지난해 5조8천억원의 적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한전이 TV 수신료를 받지 않더라도 한전 경영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반면 KBS 부담은 큰 폭 늘어난다. 그동안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며 공영방송의 임무를 방기한 KBS의 자업자득이다. KBS는 자체 생존 방안을 찾아야 한다.한덕수 국무총리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수신료 통합징수는 편법이라고 했다. 정치권도 민주노총 언론노조가 장악한 KBS 편파 방송 해결 방안으로 수신료 분리 징수안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했다.국민 여론도 아주 나쁘다. 2천500원에서 3천800원으로 올리는 KBS 수신료 인상안에 대해 국민 10명 중 8명(84.1%)이 반대했다. 2019년에는 KBS 수신료 분리징수 청와대 국민청원이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정부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KBS 수신료 분리징수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도 KBS를 이용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10-03

‘김영광 가요제’ 포항의 대표 문화콘텐츠

장재권 (사)경북장애인권익협회장 잘있거라 나는 간다/이별의 말도 없이 강승모 ‘무정부르스’마음약해서 잡지 못했네/돌아서는 그사람/짜라짜짜짜짜 들고양이 ‘마음약해서’잠깐만/잠깐만/그발길을 다시 멈춰요 주현미 ‘잠깐만’미안미안해 미안미안해/너를 두고 여길 떠나가니 미안해 태진아 ‘미안미안해’30대 이상이라면 누구라도 한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귀에 익은 추억의 노래가사이다. 이 노래들은 모두 포항이 낳은 천재 작곡가인 김영광(81)씨가 손수 작곡한 대표곡들이다.하지만, 이를 포항사람이 지었다고 알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포항시민들도 노래는 아는데 김영광씨가 누구지(?)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 말이다.실제 김영광씨의 이력은 정말 화려하다. 나훈아, 남진, 이미자, 윤수일, 조용필, 주현미, 태진아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수들과 함께 2천600여곡의 노래를 제작해왔고 1990년 MBC 10대가수 가요제 최고인기가요 작품상, 2003년 제10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야말로 한시대를 풍미한 대한민국 최고의 작곡가로 대중음악계에 큰 획은 그은 인물이다.최근에는 고향 포항을 위한 ‘선창가에서’와 남진의 최신곡을 작곡하는 등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이런 그가 지난해부터 고향 포항을 위해 ‘김영광가요제’를 열고 있고 올해로 2번째 대회가 오는 10월 1일 펼쳐지게 된다.그는 일본과 부산에서 가요제 요청이 있었지만 고향인 포항에서 본인의 이름을 딴 가요제를 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고, 결국 영광문화예술진흥회(회장 김상욱, 히아 영광진흥회)와 손잡고 2년째 ‘김영광가요제’를 이어가고 있다.가요제는 그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지자체 등의 예산지원 한푼 없이 추진위원들과 자문위원, 운영위원, 자원봉사자들의 자비와 일반인, 학생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치러지고 있다.이런 가운데 일부에서 옛 구성원들의 정치적 색깔을 논하며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 참 안타까운 부분이다.이런 우려 때문에 영광진흥회측도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구성원은 올 초 모두 배제했으며 순수 가요제를 위한 사람들로만 새로 추진위원회 모임을 결성했다.일반인들이 십시일반 모아 어렵게 가요제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오해는 참으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김영광씨는 우리나라는 대표하는 작곡가이고 그의 고향이 포항에서 그런 그를 기리는 가요제를 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포항의 경우 ‘철강도시’ 이미지가 너무나 강한 나머지 제대로 된 문화콘텐츠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이런 가운데 ‘김영광가요제’는 문화콘텐츠에 목말라 있는 포항시민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목포시의 선례에서 알 수 있듯이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가수 이난영씨를 추모하는 ‘난영가요제’는 1968년 이후 목포에서 꾸준히 열리고 있고 이는 목포시의 대표적 문화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다.이렇듯 문화콘텐츠는 한 도시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이제 포항도 ‘김영광가요제’를 통해 문화도시 포항, 콘텐츠가 살아숨쉬는 도시로 만들어 보자. 순수한 가요제에 엉뚱한 뒷담화는 없애고 말이다.

2022-09-29

울릉도 공항건설 대표적 전시행정 유감

김두한경북부·울릉 “울릉도공항건설은 대표적 전시행정이자 예산낭비다.”김두관 더불어 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 28일 국회교통위원회에서 이렇게 지적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의 지적은 유감이다. 물론 김 의원이 지적한 내용 중 울릉공항 활주로가 짧아 소형항공기 취항이 어렵다는 지적은 맞다. 본 기자도 지적했다. 하지만, 대표적 전시 행정, 예산낭비라는 지적은 유감이다.울릉도는 러시아, 중국, 북한, 일본의 해안을 아우르는 우리나라 최대 안보요충지다. 주민 1만 명인 울릉도는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는 독도를 지키는 섬이자 공항이 건설되면 연간 100만 명이 다녀갈 우리나라 대표관광지다.울릉공항건설은 박근혜 정부때 시작,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착공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전시행정이라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는 의미가 아닌가. 문재인 정부때 전시행정이라고 지적했어야 옳았다.그리고 김 의원의 지적대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울릉공항을 요긴하게 이용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이제 야당이 됐다고 강 건너 불 보듯 전시 행정이라면 그 전시행정을 김 의원이 여당이던 시절 문재인 정부가 한 셈이 된다.본지도 울릉공항건설에 대해 몇 차례 걸쳐 예산을 조금만 추가로 투자하면 수십 배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기사를 썼고 반드시 활주로길이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따라서 그런 점은 김 의원의 지적에 대해 동감한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울릉공항의 활주로 길이가 1천200m인데 이대로 준공하기보다 활주로 길이를 1천300~1천 400m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대표적인 전시행정, 예산낭비라면 울릉도 공항을 쓸데없이 건설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이 말에는 동의를 할 수 없다. 김 의원이 여당의원이었다면 전시행정이라고 말했을까 의문이다.김 의원은 여당시절에는 울릉공항 활주로 길이가 문제없고 야당이 되니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된다. 동해 유일한 섬 울릉도 주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말이다.김 의원은 울릉도를 다녀갔고 울릉도에 대해서 잘 아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울릉공항건설을 헐뜯으려고 한 말은 아닌 것으로 믿고 싶다.국토부가 2015년 기본 계획 수립 당시 검토한 기종은 ATR-42이다. 현재 해당 기종을 운용하는 항공사는 없다. 운용기종을 통일해 수익성을 높이는 저비용 항공사(LCC)로서도 국내 도입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또 국토부는 소형항공사 ‘하이에어’가 취항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하이에어의 운용기종은 국토부가 기본 계획에서 검토한 ATR-42가 아닌 ATR-72이다. 가장 큰 문제는 ATR-72가 이륙하기 위한 조건조차도 기관마다 제각각이란 점이다고 했다, 모두 맞는 말이다.따라서 울릉공항의 활주로는 분명히 늘려야 한다. ‘울릉공항은 대표적인 전시행정이자 예산낭비 사례’라는 말은 철회해 주길 바란다. /kimdh@kbmaeil.com

2022-09-29

노인의 날

우정구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 정책의 전면 개편을 지시했다고 한다. 지난 16년동안 280조원의 예산을 쏟아붓고도 올해 2분기 출산율이 0.75명으로 떨어진 것을 보고 개탄해서 한 말이다. 국가 출산율 제고는 역대 대통령마다 야심차게 밀어붙여 왔으나 결과는 늘 허탕이었다. 해가 갈수록 되레 출산율이 떨어져 예산 투입 대비 효율은 제로도 아닌 마이너스다.통계청의 인구전망 추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70년이면 총인구가 3천800만명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보다 1천200만명 가량이 줄어드는 대신 60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6.4%까지 늘어난다는 조사다.초고령사회란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통계청은 우리나라도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일본(29.4%)과 이탈리아(24.2%) 등 20여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있다. 10년내 15개국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이란 UN측 전망이다.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1997년 경로효친사상을 앙양하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노인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그해 노인의 날에 100세가 되는 노인에게는 1년생 풀인 명아주의 줄기로 만든 청려장을 정부가 준다. 가볍고 단단해 장수의 상징으로 알려진 청려장을 받는 노인들이 매년 늘고 있으니 반가운 소식이다.삼국사기 등에 의하면 통일 신라시대부터 나라에서 노인들에게 장수 지팡이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경로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장수 노인도 늘고 출생아도 느는 노인의 날이 오길 학수고대해 본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9-29

홍준표의 ‘시간’

홍석봉 정치에디터 홍준표 대구시장이 취임 3개월이 됐다. 그간 대구 시정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쾌도난마식 일처리는 시민들을 시원하게 했다. 느슨했던 공직사회에 긴장감이 감돈다. 언제 홍 시장의 불호령이 떨어질지 전전긍긍이다. 언론과 의회, 시민단체가 일방통행식 행정을 비난하지만 오불관언이다. 기득권 카르텔을 깨는 것이 대구의 영광을 재현하는 출발이라며 밀어붙인다.K2 부지를 팔아 통합신공항을 이전하겠다는 기부 대 양여 방식을 특별법을 제정, 국비로 건설하겠다는 발표에 시민들이 환호한다. 정부보다 한발 앞선 공기업 구조조정엔 박수가 쏟아졌다. 대구시취수원을 안동댐 물을 끌어다 쓰겠다며 껄끄럽던 구미시를 걷어차 당혹케 했다. 발상의 전환이다. 홍 시장의 안목과 문제 해결 방식이 빛을 발했다.거침 없는 행보에 파열음도 적지않다. 공약이기도 한 제2대구의료원 건립은 의료현장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다며 사실상 무산시켰다. ‘공공의료 파괴’라며 시민단체가 반발했다.대구형 트램(노면전차)은 백지화했다. 대구 교통환경에 부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전임 시장의 역점 계획을 가차 없이 폐기했다.홍준표 시장의 행보를 대구시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대구시가 ‘채무 제로’ 이행을 위해 추진하는 각종 기금 폐지 조례안들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홍 시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채무 제로’ 정책을 시의원들이 거부했다. 해당 기금을 없애면 재정 운영이 불안정해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시 기구 설치 조례안 심사도 상임위서 보류됐다.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이면엔 홍 시장의 일방통행에 대한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언론과의 관계도 매끄럽지 않다. 비판기사를 쓴 한 언론의 대구시 예산을 삭감한 이후 언론은 홍보 및 광고 예산을 건드리지 않을까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기자실을 잘 찾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온다.경남지사 시절에도 의회·언론과 대립각을 보였다. 단체장과 의회·언론은 어느 정도 긴장관계가 필요하다. 행정과 주민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홍 시장은 의회와 언론의 역할을 인정하고 품어야 한다. 꼬이고 있는 경북도와의 관계도 풀어야 한다. 상생이 경쟁이 되어선 곤란하다.홍 시장의 SNS 정치는 빛을 발한다. 정치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쏟아내는 메시지는 청량제다. 메시지의 무게감도 남다르다. 거물급 정치인으로서의 경륜과 안목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지지자들은 환호한다. 정치인 중에 단연 돋보인다. 여기에 힘입어 각종 여론 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과유불급이라고 했다. 홍 시장의 SNS 정치는 어느 정도 자제가 필요해 보인다. 적절한 시기에 한번씩 던지는 절제와 완급조절이 요구된다. 시정에 전념해야 한다. 나머지는 자연스레 따라온다.정치권 일각에서 4년 후에 떠날 사람이 너무 일을 벌인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통은 없고 오만과 독선만 있다는 비판이 더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큰 그림을 그리고, 홍준표의 길을 가려면 소통이 우선이다. 대구시민 앞에도 자주 나서길 바란다.

2022-09-29

코스모스 가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초가을 들녘에 코스모스 꽃이 한창이다. 철없이 서둘러 핀 것도 있었지만 지금부터가 제철이다. 누기 일부러 심고 가꾼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고 자라 꽃피운 야생화다. 요즘은 하도 예초기로 자르거나 제초제를 쳐대는 바람에 들판 한가운데는 논둑에 풀이 자랄 새가 없는데, 용케도 살아남아 꽃을 피웠으니 더 반가운 일이다. 물론 코스모스 혼자서 초가을을 펼치는 역할을 맡은 건 아니다. 이삭이 팬 억새도 있고 쇠어가는 쑥대와 망초도 있다. 도랑가의 여뀌와 물옥잠도 한 몫을 한다. 그것들의 배경으로 높푸른 하늘과 누렇게 벼들이 익어가는 들판이 있어 한 폭의 초가을 풍경을 완성한다.코스모스 꽃이 곱게 핀 초가을 들길을 걸으면서 나는 한 이름 꽃다발을 받아 안은 기분이다. 사람들은 특별히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표시로 꽃다발을 선사하지 않는가. 그것을 받아든 사람은 물론 존경받고 대접 받았다는 생각에 흐뭇하고 행복해지는 것이고. 이 가을 들녘 한복판에서 나는 뿌듯한 행복감과 존재감을 느낀다. 높푸른 하늘과 황금빛 들판, 온갖 풀꽃들이 나를 둘러싸고 환영하고 축복하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림없는 소리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다는데 구태여 누가 말리는가.‘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있지만, 대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건 더없이 마음 편한 일이다. 혼자서 아등바등 할 것 없이 자연의 섭리에 맡기면 되는 것이다. 복잡다단한 세상사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소외감으로 괴로워하던 사람들이 자연의 품에서 위안과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은 그래서이다. 사람의 의지나 욕심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이다. 그것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어리석은 일이고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이것은 결코 무기력한 비관주의가 아니다. 자연에는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도 비관하거나 절망하는 법이 없다.이 가을, 삼라만상이 모두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데 유독 사람들만 정처가 없는 것 같다. 한 떨기 풀꽃이나 벌레 한 마리, 단풍잎 하나에 비해 나는 과연 무엇이고 어떤 모습인가. 사람을 사람에게 물어서는 정확한 답을 들을 수가 없을 터이다. 자연에서 멀어진 만큼 핑계와 구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가을 들판 한가운데서 높푸른 하늘과 풀꽃들에게 물어보는 나가 참 나일 것이다.반성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이 있지만, 반성의 주체인 자아조차 상실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돈이든 권세든 탐욕을 쫓아가다 자신을 잃어버린 군상이 우글거리는 세상이다. 특히나 정치꾼들은 거의 예외가 없는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비열하고 파렴치할 수 있는지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일말의 자존감이라도 있다면 그렇게 자신을 거짓과 사악의 구렁텅이에 팽개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은 함부로 처신하지 않는다. 불의나 탐욕에 빠져들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자신을 더럽히고 모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가을 들길의 코스모스가 일러준다. 너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이니 반드시 제몫을 해야 되는 거라고.

2022-09-29

성범죄 처벌의 현주소

윤영대수필가 요즘 스토킹 범죄가 늘어나며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지하철 신당역 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던 사이였는데 피의자가 작년 10월부터 협박하고 계속 따라다니면서 스토킹을 하여 피해자가 2차례나 고소했으나 법원에서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음’으로 기각된 사건이었지만 결국 보복살인으로 이어진 것이다.지난 7일에는 40대 남성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10대 여학생을 승강기 안에서 흉기로 위협하며 납치를 시도하다가 붙잡혀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는데도 이 또한 ‘재범의 우려가 없다’고 기각되었다. 이에 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일자 불법촬영 혐의를 추가하여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다는데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에는 위배되지는 않는지….어린이 성폭행 범죄로는 2008년 ‘조두순 사건’이 잘 알려져 있다. 교회 안 화장실에서 만8세 여아를 강간 폭행한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나이 많고 술 취한 상태 즉, 심신미약이 참작되어 12년으로 감형받았다. 그러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안고 살아갈 텐데 안타깝다.여성 스토킹 행위로 접근금지 조치를 받은 남성이 4개월 후 재범을 한 사건, ‘그만 만나자’는 통보를 받고 협박을 하며 흉기를 휘두른 30대 남자에게 경고는 했지만 입건하지 않은 사건 등 2021년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후 지난 8월 말까지 입건된 7천152명 중 구속된 것은 254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물론 법상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다’는 ‘반의사 불벌죄 규정’이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은 아닐 테고 그 집요한 접근이 다음에 더 큰 폭력이 될 것이라는 염려를 한 때문일 것이다.스토킹도 ‘형사적 처벌 대상’인 범죄로 규정하고 있고, 성폭력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상대방 의사에 반하여 접근 또는 연락하여 불쾌감, 굴욕감 등을 주는 행위 즉,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모두를 포함한다. 이렇듯 성범죄 행위는 일반 형사 사건과 많이 달라 심리분석과 아울러 초기대응이 중요하며, 구속수사 원칙 등 법원의 판단도 좀 더 숙고해야 한다고 본다.군 내부에서의 여군 성폭력 사건 등 성 관련 위반사항이 연간 1천 건을 넘고 있고, 직장 내에서의 성범죄도 사회를 혼탁하게 만든다. 그동안 사회적 물질적 풍요로움만 추구하여 오면서 인간성 교육이 멀어진 탓이리라. 사랑의 표현은 모두 다를 수 있지만 서로를 배려하며 진정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이라야 된다.어릴 때 동네 여동생을 툭 쳐서 ‘오빠, 왜 때려!’하고 울먹이면 ‘너를 좋아하기 때문이야.’라고 하던 기억들이 비정상적으로 성장하여 성폭력의 씨앗이 되지는 않았을까? 성 윤리에 대한 새로운 시민교육이 절실하다.

2022-09-29

사라질 것인가, 살아남을 것인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 디지털세상이다. 사이버와 온라인,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은 세상을 바꾸어 놓는다. 어떤 세계가 펼쳐질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상상과 추측을 해 보지만 그리 선명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어느 사회설문조사에서 10년 내에 사라질 직업으로 번역가, 경리직원, 공장근로자, 비서 등을 꼽으면서, 앞으로도 생존할 직종으로 연예인, 작가, 영화감독, 운동선수, 화가, 조각가 등을 선정했다 한다. 실제로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이들 직업군에는 나름 관통하는 유사점이 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들은 기계가 대신하게 되고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일들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예측이 아닌가. 산업화의 물결 속에 넘치듯 부족했던 인적요소를 앞으로는 대체로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예견이다.인공지능은 법률, 의료, 회계 등의 전문직에도 도전한다. 과정의 정교화와 예측의 최적화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예측도 빗나가는 셈이다. 아무리 복잡하다 해도 수학적으로 모델링이 가능할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인공지능이 잠식할 터이다. 살아남으려면 상상을 뛰어넘는 변칙과 변화를 담았거나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나만의 그 무엇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니, 4차산업혁명의 물살에도 든든하게 생존할 직군으로 ‘문화’와 관련된 일들만 떠오르는 게 아닐까. 하기야, 창의와 상상조차 인공지능의 앨고리즘이 곧 따라올 것이라 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일전도 이미 보지 않았는가. 상상을 초월하는 상상력과 창의는 넘는 창의가 필요한 셈이다. 그런 상상과 창의는 놀랍게도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나만의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우리만의 이야기, 즉 우리 문화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스토리를 찾아야 한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놀이문화는 향수어린 우리만의 옛 기억을 오늘의 좌절과 느낌에 절묘하게 연결하였다. 문화원형이란 그런 게 아닐까. 우리에게만 그리고 내게만 있는 모습과 이야기를 세상이 공감할 스토리로 끌어낼 때 함께 공유하는 성공으로 이어져 간다. 생각해 보면, ‘미나리’도 그랬고 ‘기생충’도 그랬다. 나만 품고 있었을 이야기 줄거리를 남들과 나눌만한 주제와 연결시키는 능력, 스토리텔링의 힘이 아닌가.‘디지털’을 극복하는 힘은 놀랍게도 ‘아날로그’에서 나온다. 일과 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만들고 발전적으로 관리해 가는 일이 인공지능에게 가능할까? 기계적이며 디지털적인 분석과 예측, 작업과 진행이 가능하다 해도 ‘관계’를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일을 기계가 할 수가 없다. 기계가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4차산업혁명시대에 살아남는 길이 아닐까.디지털환경에도 잘 적응하면서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인간적 관계형성능력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수준의 창의와 혁신을 만들어야 한다. 전통적인 산업직군들이 인공지능의 심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문화’ 관련 영역들이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문화로 강한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사라지는 것들과 살아남을 것들을 잘 구분해야 할 터이다. 문화가 강해야 모두가 산다.

2022-09-28

군위 대구 편입과 선거구 조정

홍석봉 정치에디터 군위군의 대구 편입이 벽에 부딪혔다. 우여곡절 끝에 경북도의회 문턱을 넘고 국회 상임위 상정을 앞뒀었다. 그러나 국회의원 숫자가 줄 것을 우려한 경북 국회의원의 거부로 상정조차 못했다.국회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획정 작업에 들어갔다. 선거구 획정은 행정 및 생활구역, 교통 등을 종합, 고려해야 해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과 다름없다. 그 중 중요한 것이 인구다. 인구 편차가 지나치게 크면 평등선거 원칙에 어긋나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 여야는 매번 자당에 유리한 선거구 조정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 선거구 획정은 정당과 해당 지역 정치인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선거구를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당락이 좌우되기 때문이다.차기 총선에서도 지역구 획정은 관심사다. 군위군의 대구 편입시 선거구 조정은 불가피하다. 경북지역의 경우 인구수 기준으로 선거구를 조정하다 보면 자칫 국회의원 숫자가 1명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의원 수 축소는 지역 영향력 감소를 의미한다. 지난 총선 때는 선거구가 기존 상주시와 군위·의성·청송군에서 군위·의성·청송·영덕군으로 변경됐다. 경북도내 중·북부 시군 대부분 선거구가 조정됐다.문제는 인구수 기준으로 조정하다 보면 대구는 군위군이 편입돼도 의원 수가 늘지 않는 반면, 경북은 최악의 경우 의원 수가 준다. 준 만큼 경기도 등 인구가 많은 곳에서 혜택을 본다. 지역 의원들은 이 같은 사태를 우려, 군위군 편입을 차기 총선 이후로 미룰 것을 바란다.이 경우 군위 편입을 전제로 한 통합신공항 건설은 물 건너간다. 군위군민들은 군위 편입이 안 되면 통합신공항도 없다는 입장이다. 군위군민 설득이 과제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09-28

지방에서 산다는 것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내가 사는 혁신도시는 전형적인 계획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 지역이 아파트 단지별로 구획되고 단지와 맞닿는 상가에는 마트와 음식점, 병원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차로 10분만 나가면 거짓말처럼 넓은 들판과 산이 펼쳐진다. 젊은 사람들은 혁신도시에서 살려고 하지만 혁신도시의 아파트 가격은 2년 만에 100%가 급등해버려서 이제는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분할된 공간은 도시의 경제 양극화를 의미한다. 혁신도시에는 (수도권에 비하면 한참 저렴한 가격이지만) 호가 10억이 넘는 아파트에 살며 외제 차를 운전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지만, 구도심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규모의 아파트도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의 비어 있는 공간에 아파트를 올리는 작업이 진행 중이고, 그 아파트가 완공되면 경제 양극화는 더욱 심화 될 것이다.올해 여름 아이들을 데리고 잠자리를 잡으러 다녔다. 근처의 어느 공원을 가도 잠자리 떼를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 아이들도 잠자리 잡기가 어렵지 않은 환경이다. 매달 보름달을 마치 망원경으로 당겨온 듯한 크기로 관찰하는 즐거움도 여전하다. 내년에는 시에서 텃밭 분양을 받을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아이들을 언제 서울로 유학 보낼지 고민하고 있다. 지방의 30만 도시에서 아이 키우기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자 엄마와 함께 수도권으로 올라가서 주말 부부가 된 동료 교수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나 같은 수도권 출신들에게는 공간의 분할만이 아니라 마음의 분할도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지난 24일 서울에서 ‘기후정의 행진’이 있었다. 주최 측 추산 3만5천명이 운집한 집회에는 청년, 노동, 장애, 농민 등의 단체가 동참했다. 한때 ‘자연보호’라는 추상적 명제로 기후위기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기후위기는 불평등과 착취의 문제로 우리의 삶에 깃들어 있다. 지난 8월 기록적인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사람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던 것처럼 기후위기는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을 먼저 공격한다.기후위기가 일국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위기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불과 1년 전 대홍수로 큰 위기를 겪었던 유럽은 올해에는 전례 없는 폭염을 견뎌야 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파키스탄에서는 40일간 비가 멈추지 않고 내려서 국토의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기고 1천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기후위기는 경제 성장 중심의 정책을 펼쳐 온 국가 권력과 나의 신체와 욕망을 물질을 좇는 것으로 귀속시킨 주체에 대한 경고이다. 기후위기는 효율성과 편리성, 그리고 자산 증식만을 추구했던 우리 삶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포괄하는 삶의 습성을 인식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것이 당장 필요하다. 지방에서 산다는 것은, 자기 분열의 메커니즘을 뚜렷이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 분열을 어떻게 봉합할 것인가? 기후위기가 삶에 파고든 시점에서 실체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말이다.

2022-09-28

이상한 선택과 집중

김규인수필가 재수 열풍이 분다. 대학 도서관에는 재수하는 학생들이 자리를 채우고 신문에는 재수에 관한 기사가 지면을 메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의과대학과 SKY 대학을 선택한다. 그 선택을 통하여 젊은이들은 1년이라는 시간과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힘든 시간을 보낸다.재수를 위해 자퇴하는 학생들이 해마다 늘고 대학의 중도 탈락율이 높다. 지방대학교의 중도 탈락 비율은 더 높다. 경북대, 부산대 등 9개 지방국립대학교의 중도 탈락 비율이 평균 4.3%에 달한다. 서울의 대학이 3%대인데 비하여 훨씬 높다. 자퇴로 인하여 해당 학교의 운영도 어려워지고 우리 사회의 사회적 비용 또한 늘어난다.대학 정원은 줄지 않는데 인구 감소로 고3 수험생은 줄어든다. 이것이 재수하는 학생들이 시간과 돈을 써 가면서 선택하는 요소 중에 하나다.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재수를 선택하는 것은 학생의 문제이지만 사회적인 틀을 만드는 것은 국가가 한다.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젊은 사람들의 서울 집중이 심하다. 취업이 될만한 대학은 수도권에 많고, 대학에 갈 때도 웬만한 서울의 대학이면 지방의 역사 깊은 국립대학보다 합격선이 더 높다. 이 합격선은 단순한 점수 차이가 아니다. 서울로의 집중의 정도를 나타낸다.선택과 집중은 경영전략 학자 마이클 포터가 확립한 경영전략이다. 특정한 한 분야를 선택하고, 거기에 자원을 집중시키는 경영전략을 말한다. 기업 경영과 국가 경영을 포함하여 개인의 자기개발이나 자산 관리도 적용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수도권에 몰린 의과대학이나 SKY 대학 진학을 선택하고 결과적으로 서울로 집중하는 현상이 심하게 일어난다.우리는 세계 최저 출산율에 따른 인구절벽을 맞고 있다. 인구절벽 시기에 사람들의 서울 쏠림은 더 크게 느껴진다. 국가의 중요 수출 품목인 반도체 관련학과의 신입생 정원이 늘어나는 대학은 수도권의 대학들이다. 서울로의 집중을 바라보는 비수도권의 입장은 참담하다. 하루하루 조여드는 도시 소멸의 위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젊은이들이 수도권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각종 문화시설이 즐비하고 우수한 대기업들도 수도권에 몰려 있다. 지방에서는 돈을 벌기도 문화를 누릴 시설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실에도 정부의 정책은 수도권 중심이다. 고 이병철 회장의 미술관이나 각종 문화시설은 이런저런 이유로 수도권에 배치한다. 정부가 실시한 실질적인 공기업의 지방 이전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저녁이면 퇴근 버스에 올라 서울의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지방에 사는 것이 유배당하는 느낌이다.지하철 역세권이라 외치는 수도권 아파트 분양 광고 문구를 접하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지방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낀다. 편의 시설이 잘된 서울로만 가려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 없다. 하지만 국가의 균형 발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중요시설의 지방 분산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절실함을 이상한 선택과 집중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낄 뿐이다.

2022-09-28

식혜

정미영 수필가 식혜를 만들기 위해 무명 자루를 꺼냈다. 엿기름을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주둥이를 꽉 조여 맸다. 따뜻한 물에 담가 조물조물 만져 보니 감촉이 좋았다. 우러나온 물이 뽀얀 젖빛이었다.나는 아기를 낳으면 모유를 먹이고 싶었다. 아기를 보듬어 안고 눈을 맞추는 엄마의 모습, 실컷 먹고 활짝 웃는 아기의 얼굴, 얼마나 행복할까 기대했다. 아기의 작은 몸짓조차 흘려버리지 않으려면 엄마와 아기가 교감해야 된다고 믿었다. 그 첫걸음이 모유를 먹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다. 첫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했다. 환경이 낯설었는지 입맛이 없었다. 산모가 잘 먹어야 젖이 나온다고 했지만 미역국조차 먹기 힘들었다. 결국 초유마저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배고파 보채는 게 안타까워 분유를 먹였다.조리원에 있던 산모 중에 나만 모유를 먹이지 못했다. 첫 출산이라 내가 유독 예민했는지, 아니면 체질 때문이었는지, 모유를 먹이는 엄마들이 부러웠다. 때때로 나 자신에게 서운했다. 다른 엄마들의 모유 먹이는 모습은 왜 그리도 당당하고 쉬워 보였는지. 남들은 잘도 젖을 물리는데 나는 왜 내 아이에게 못해 줄까. 안타깝고 미안했다. 모유를 못 먹이는 것이 마치 자식 사랑이 부족해 그런 것만 같아 자꾸만 스스로를 괴롭혔다.미안함 때문일까? 엿기름을 물에 담가 우리다보면 젖먹이를 둔 엄마처럼 가슴이 찌르르해진다. 뽀얀 엿기름물이 마치 모유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엿기름물을 받아 식혜를 만들어 내 아이에게 먹이는 일이 즐겁다. 엄마 젖을 먹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처음 식혜를 만든 것은 아이의 돌 무렵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고열에 시달렸다. 마침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나에게 식혜를 만들어 보라고 하셨다. 엿기름의 찬 성질이 열을 금방 떨어뜨린다며 만드는 법을 대강 알려 주셨다.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아이가 나을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곧바로 엿기름을 사다가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해 보았다. 아이가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다음 날 아침, 밥솥을 열었다. 여섯 시간 정도 지나면 밥알이 서너 개 떠오른다고 했는데 밥알과 함께 엿기름이 빼곡히 떠 있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어머니, 밥알 아닌 것도 많이 떠있어요!”“밥알 말고 떠 있는 게 뭐꼬, 밥솥에 엿질금 물만 넣었제?”“엿질금도 깨끗이 씻어서 같이 넣었는데요.”어머니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흘렀다. 아차, 싶었다. 나는 어머니의 설명을 잘못 이해한 것이었다. 깨끗이 씻은 엿기름을 버리기가 아까워 쌀 안치듯이 물과 함께 밥통에 넣었다. 곡진하게 삭을 줄 알았다.결국 다시 식혜를 만들었다. 두 번째는 성공이었다. 그 걸 먹고 아이의 열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나을 때가 되어서 그랬는지, 엄마의 서툰 솜씨가 안쓰러웠는지, 아무튼 나았으니 다행이었다. 그 때 맛을 본 탓인지 아들은 음료 중에 식혜를 가장 좋아한다.아이가 식혜를 좋아하니 자주 만든다. 시장에 갈 때면 아예 엿기름을 서너 봉지씩 사다 놓는다. 아이에게 먹일 것이므로 엿기름을 사면서 꼼꼼히 따져본다.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제조일자는 최근인지. 요즈음은 봉지에 만든 사람의 얼굴 사진까지 박아 놓는 경우도 있다. 믿고 사라는 말일 테다.예전에는 집집마다 엿기름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엿기름을 만들 때 싹을 내기 위해 시루에 보리를 넣고 물을 주며 길렀는데, 기른다고 해서 ‘기름’이라 불렀단다. 집집마다 만들었으니 장맛이 다르듯 엿기름에 따라 식혜 맛도 달랐으리라. 그래서 이왕이면 엿기름 봉지를 고를 때 손맛 좋게 보이고 연륜이 묻어나는, 할머니 사진이 찍힌 것으로 고른다. 식혜 맛을 내기 위한 나름의 묘책이다.식혜가 알맞게 식었다. 단내가 은은하다. 아들이 연신 입술을 달싹인다. 엿기름으로 빚은 내 마음의 모유, 한 그릇 넘치게 퍼 담는다.

2022-09-28

신사(辛巳)

육십갑자 중 열여덟 번째에 해당하는 신사(辛巳)다. 천간(天干)은 신금(辛金)이요, 지지(地支)는 사화(巳火)다. 신금(辛金)은 음간의 금(金)이다. 다이아몬드처럼 예리하고 빤짝이는 것으로, 원석덩어리 경금(庚金)과는 완전히 다르다. 사화(巳火)를 만나서 불빛이 보석을 비쳐주니 아름다운 형국이다.신사일주(辛巳日柱)는 합리적이며 성실하고 품격이 넘치는, 말 그대로 신사(紳士) 숙녀(淑女)다. 사회의 법과 질서, 규칙을 잘 지키려고 하는 깔끔한 스타일이다. 남녀 공히 반짝이는 보석같은 존재로, 흠집이 나는 것을 제일 싫어하고 남의 시선을 많이 인식하기 때문에 체면이 구겨지거나 자신의 품위가 손상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일지(日支) 신사(辛巳)는 정관(正官)으로 반듯한 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올바른 사고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여자는 배우자 궁으로 정관이 남편에 해당되므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기에 자신도 반듯하고 남편도 올바르고 좋은 성품의 남편을 만나니 좋은 일지다.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기 때문에 콧대가 높고, 외모적으로는 미인들이 많은 일주에 해당된다.60갑자 중 정관(正官)에 해당하는 일주는 신사, 정해, 경오, 병자. 네 가지 밖에 없다. 물론 일주만 보고 말하기 때문에 다른 년주, 월주, 시지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여성에게는 참으로 행운의 일주이기도 하다.옛날에 결혼 적령기의 딸을 가진 제(齊)나라 사람에게 두 집안으로부터 동시에 청혼이 들어왔다. 동쪽에 있는 집의 아들은 못생겼으나 돈이 많고, 서쪽에 있는 집의 아들은 잘생겼지만 매우 가난하였다.부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딸에게 스스로 결정하라고 하면서 “만약 누구라고 분명하게 이름을 밝히기 거북스러우면 한 쪽 팔소매를 걷어 올려라. 그러면 우리가 알아차리겠다”라고 말했다.그러자 잠시 망설이는 딸이 두 팔의 소매를 모두 걷어 올렸다. 부모들은 이상해 하며 “그것이 무슨 뜻이냐”라고 물었다. 딸이 “저는 밥을 동쪽 집에 가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자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풍속통의 ‘예문유취’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미인이라지만 자기 스스로에 도취되어 사리분별을 하지 못한 결과이다. 인생에서 불가피하게 양자택일 할 경우를 평소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신사일주(辛巳日柱)는 대기업, 공기업처럼 안정적인 직장생활에 잘 맞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 할 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인정을 받는다. 자영업이나 사업은 잘 맞지 않는다. 육체적인 일보다는 좋은 머리를 이용하여 정신적인 일을 하는 것이 좋다.신사일주(辛巳日柱)에 신금(辛金)은 방위로는 서쪽이요, 색깔로는 흰색이다. 일명 백사(白蛇)라고 한다. 사화(巳火)는 권력의지가 강하다. 활동적이며 정열적이다. 개성이 뚜렷하나, 끈기가 약한 편이다. 간교한 지혜로 남을 모함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혼자 괴로워하는 경향이 많다. 여성은 자식에 대한 집착이 강한 면을 보인다. 신금의 날카로움은 대인관계에 있어 갈등을 일으킬 여지가 많다. 진정한 용기는 관용이다.중국 작가 루쉰(1881∼1936)의 잡문 ‘뇌봉탑이 무너진 데 대하여’에서 백사(白蛇) 이야기가 나온다. 허선이라는 사람이 푸른 뱀과 흰 뱀, 두 마리를 구해주었다. 나중에 흰 뱀은 여인으로 변하여 은혜를 갚으려고 허선에게 시집을 왔고, 푸른 뱀은 여복(女僕)으로 변하여 함께 따라왔다.법해선사라는 득도한 스님이 허선의 얼굴에 요사한 기운이 도는 것을 보고, 허선을 금산사의 불상 뒤에 숨겨 두었다. 백사 낭자는 남편을 찾으러 오자, 마침내 법해의 계책에 말려들어 자그마한 바리때 속에 갇히고 말았다. 바리때를 땅 속에 묻고 그 위에 짓누르는 탑을 하나 세우니 그것이 바로 뇌봉탑이다.루쉰은 생각한다. 스님이라면 제 염불이나 하면 될 일이다. 흰 뱀이 스스로 허선에게 반했고, 허선은 스스로 요괴를 아내로 맞이했는데, 다른 사람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스님이 기어이 불경을 버려두고 공연히 시비만 일으켰으니 아마도 질투심을 품었기 때문일 것이다. 류대창명리연구자 나중에 옥황상제도 법해가 쓸데없는 짓을 했고, 무고하게 생명을 해쳤다고 나무라면서 법해를 처벌하려 했다. 법해는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가 마침내 게 껍질 속으로 숨어서 화를 면하게 되었는데, 감히 나오지 못하고 그렇게 지낸다고 한다. 루쉰은 옥황상제가 한 일 가운데 마음 속으로 불만을 품은 것이 매우 많았지만, 오직 이 일만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뇌봉탑(벽돌 탑)이 무너진 까닭은 시골 사람들이 미신에 따라 그 탑의 벽돌을 자기 집에 가져다 놓으면 모든 일이 평안하고 뜻대로 되며, 흉조가 길조로 바뀐다고 믿고서 너도나도 파가는 바람에 무너졌다. 나라의 초석을 몰래 파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얼마나 되는지 모를 일이다.지금 중국 절강성 성도 항주에 경치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서호(西湖)에는 무너진 뇌봉탑 잔해 위에 새롭게 7층탑으로 복원되어 있다.인생의 성공이나 실패는 운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운은 단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노력이 따르는 탁월한 행동이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요행만 바라는 행동은 불행을 불러올 것이다. 인간의 미덕 가운데 꾸준히 행동하는 미덕만큼 안정성을 갖는 것도 없을 것이다.

2022-09-28

일단 제철소 먼저 살려 놓고…

정종식 전 포항시의원 포항이 인구 5만의 작은 어촌에 불과할 당시 포항종합제철이 태동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 주변에는 가로림만, 울산, 아산, 영덕 등 포항 이외의 도시를 적극 추천하는 인사들이 있었다. 지역차원에서 대대적인 유치 활동을 펼친 결과 종합제철소가 포항에서 탄생하게 됐다. 초기 늘어나는 철강재를 적기에 공급하고자 일면 건설 일면 조업의 돌관 비상 작업이 한창 진행될 때 지역사회 주민들은 두 팔을 걷어 적극 도왔다.지역사회와 지역기업의 공동운명체 의식은 9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자리를 잡아왔고, 한 때 포항 지역 경제산출액은 전국 평균의 두 배 가까이 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지역 정치인이 자신의 선거 전략으로 종합제철과 지역사회를 대립 구조로 몰아간 적이 있었고, 그때부터 선거철만 되면 지역사회와 기업이 마찰을 일으키는 모양새가 연출되기도 했다. 최근에도 포항시 전역에 현수막이 걸려 시민들을 안타깝게 만든 일이 있었다.고대 전쟁사를 보더라도 상대국에 전염병이 돌거나 흉년이 들거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는 잠시 휴전하고 먼저 재난 극복에 힘을 쏟은 사례가 있다. 지금 포항이 그런 경우다. 포스코 경영을 둘러싸고 이런 저런 얘기들이 있긴 하지만 지금 일단 제철소부터 살려 놓고 보자는 의견들이 많다.최근 포항 대표적인 시민단체에서는 ‘그간 포항의 긴급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앞장서서 극복해 왔는데, 이번 제철소 침수 복구 사태에도 현명한 대안을 모색하며 불필요한 포스코 때리기는 잠시 중단하는 게 마땅하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시내 곳곳에 포스코 수해 조기 복구를 기원하고 철강 산단, 지역사회 간 협력에 대한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이와 함께, 포항제철소 수해 복구에 오랜 친구들이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포스코와 10년 넘게 인연을 맺어 온 지역 자매마을 주민들이 떡, 삶은 계란, 생수 등을 실어온 훈훈한 이야기가 들려왔고, 타 도시에서도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다.전통적으로 투쟁의 DNA를 자랑하는 화물연대도 제철소 복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항운 노조에서도 도울 일이 있는지 의사를 밝혀 왔다고 한다. 거의 전 영역에서 제철소 살리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이번 기회에 지역사회와 기업이 다시 화합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지역사회는 글로벌 기업 경영의 특성을 이해하고 기업은 지역사회 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안을 모색하는 그야말로 상생 협력의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먼저 제철소부터 살려 놓고 따지고 논의할 것은 추후에 해도 늦지 않다.

2022-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