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잊은 줄도 몰랐지 뭐야

지난 주말 렛츠락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하는 몇 없는 록페스티벌인지라,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공연도 거의 없었던 터라, 좋아하는 밴드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한 달 넘게 들떠있었다. 비가 오면 어떡하나, 코로나가 다시 심해져 취소라도 되면 어떡하나, 갑자기 혜성이라도 떨어져 지구가 망해버리면 어떡하나 등등 별 생각이 다 들었었다.이렇게까지 들떠있었던 건 반 쯤은 한 밴드 때문이다. ‘실리카겔(Silica gel)’. 너무도 좋아하는 밴드지만, 2017년쯤에 마지막으로 공연을 본 뒤로 밴드의 사정과 내 사정이 겹쳐 5년 넘게 공연을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가까스로 시간과 운이 맞아 이번에는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5~6년 전만 해도 무명의(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세련된 음악을 하는) 팀이었던 이들이 여전히 좋은, 멋진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기뻤다. 멋지지 않은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견디고 버티며 자신들의 음악을 해나가는 사람들이라니.소감부터 말하자면, 너무 감동 받아서 실신할 뻔 했다. 보컬도, 기타도, 베이스도, 드럼도, 모두 너무너무 멋졌다. 조금 멀리서 무대 전체를 바라보며 공연을 즐길 생각이었는데, 흥분한 나머지 무대 바로 밑의 관객들과 섞여 소리를 지르고 호들갑을 떨며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특히 작년에 발표된 곡인 ‘Desert Eagle’이 연주될 때에는, 꼭 물속의 해파리 같은 기분이 되어 눈을 감고 한껏 흐느적거리고 말았다.록페스티벌의 묘미는 이런 것이다. 항상 나의 귀로만, 마치 1인용 오락처럼 들어오던 음악을 바깥에서 큰 소리로, 세상을 모두 찢어버릴 것 같은 굉음으로 ‘함께’ 듣는 것. 모두가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고, 손을 휘젓고, 자기만의 춤을 추고, 하지만 그게 모여서 작은 공동체가 되어 움직이고, 소리를 지르고, 함께 박수를 친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소리를 들으며 같은 속도로 몸을 흔든다. 그건 조금 주술적으로 느껴지는 일이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작은 모임처럼 느껴지는 일이기도 하다.사실 나는 지난 2년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았다. 읽고 쓰는 일이 직업인 나의 입장에서는 귀찮은 모임과 만남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억지 표정과 억지스러운 말들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덕분에 시간을 내 마음대로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고, 논문도, 평론도, 혼자만의 취미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지난 2년은 힘든 시간이라기보다는, 나의 삶을 나의 마음대로 정초해나갈 수 있어 소중한 시간에 가까웠다. 단지 가까운 누군가가 아프거나, 내가 아플 수 있다는 위험이 존재하기에 마냥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뿐. 지난 2년 동안, 무언가를 잃기 보다는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자영업을 하는 분들이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분들, 혹은 공연을 생업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죄송한 말들이다.하지만 록페스티벌에 사람들과 함께 모여 음악을 듣고, 몸을 흔들고, 맥주를 마시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 또한 많은 것을 잃어버린 채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온 것 같다고. 큰 소리로 사람들과 웃고 떠들 수 있는 자유. 큰 목소리로 소리 지르며 음악을 듣고 춤을 출 자유. 햇살 아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볼 자유 같은 것들. 아주 작고 연약해서 때로는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것조차 잊게 되곤 하는 그런 자유들. 그것이 다시 내 손에 들어오고 나서야 나는 그것들을 잃어버렸었다는 걸 알았다.광장에 모인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모두가 이토록 예쁘고도 힘겹게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 그 안에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도,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도, 공부를 하는 사람도, 나처럼 혼자만의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지난 2년간 내가 잊고 있던 건 그런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간다는 것. 스마트폰 어플 너머에 있는 건 프로그램이나 기계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밖으로 나가, 남은 9월의 햇살에 몸을 맡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당신도, 당신이 무언가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건 없었는지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햇살이 당신을 잔뜩 쓰다듬어주고, 잘 버텨왔다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비록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후에 더 큰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인간은 그런 순간들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법이니까.

2022-09-27

순간이 모여 오늘을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이를테면 햇빛이 방사형으로 쏟아지는 어느 오후나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주말 아침과 같은. 이때 느껴지는 모종의 행복감이 끝끝내 지속되었으면 한다. 사실, 이와 같은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달콤한 꿈처럼 끝을 맺고야 마는 일시적인 감정으로 귀결된다. 우리의 일상은 지난하리만치 길고, 대부분의 시간은 현명하지 않은 방법으로 보내기 마련이다.시간이라는 건 그렇다. 모두에게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누군가는 정신없이 수많은 일들에 치여 쫓기듯이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선택을 하고 그것은 인생이라는 타임라인에 새겨져 결코 삭제할 수 없다. 과거를 두고 후회하며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일. 이것은 우리의 현실이지만 어쩐지 전혀 다른 두 세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것처럼 느껴진다.삶이란 때론 즐겁지만 대체로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과정이다. 이따금 이것이 부당하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세상에 기쁨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픔 따위는 하나도 없이 평화와 사랑과 가득한 세상에서 모두가 손을 맞잡고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존 레논의 노래 가사처럼. ‘상상해 봐요. 모든 사람이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탐욕과 굶주림이 필요하지 않고 오직 사랑만이 존재하는 사람들….’그렇다면 현실은 고통이고 행복은 저 너머에 있을까. 영원한 기쁨이란 삶을 살아가는 존재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그러니까 그저 갈망함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근원적 슬픔과 고독을 공유하고 있고 이것은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만히 있는 내가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지는 날. 바뀌어야 해, 지금의 시간에서 벗어나 뭔가 다른 모양으로 변화해야 해, 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은 날. 하루하루를 그저 흘러가는 대로만 보내는 것은 어쩐지 방향성을 잃어버린 상황처럼 느껴진다.새로운 경험이나 먼 곳으로 훌쩍 떠나는 여행과 같은 활동은 우리에게 요동치는 감각을 선물한다. 어쩌면 내가 너무 삭막하게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일부러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를 만나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눈과 귀와 피부가 동원되어 누리는 즐거움이 발생한다. 우리는 그토록 가슴 뛰는 시간을 지속하고 싶고 무한으로 늘리고만 싶다.요동치고 일렁이는 감정은 우리의 감각을 일깨운다. 그러나 삶이 정말 그런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면 우리는 그 순간들을 오롯이 감각으로 느낄 수 있을까? 행복과 기쁨은 모래사장 속에 숨어있는 빛나는 보석과 같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자칫 잘못 밟게 되면 깊은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우리는 그것을 안전하게 찾아내서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넘실대는 파도가 안팎으로 다 빠져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평범한 모래 알갱이가 모여 거대한 바다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인생의 숨겨진 비밀이 아닐까. 우리 삶에 빛나는 보석만 있다면 우리는 오히려 모래 알갱이를 찾아 헤맬 것이다. 일상은 여름 낮의 태양처럼 지난하리만치 길다.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안전하기도 하다. 매일매일 우리에게 찾아드는 고통과 어떤 기억과 냄새와 감촉이 있기에 기쁨이 존재한다. 밤이 가면 아침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사실처럼.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저 그런 책들을 얼마간 읽다가 낮잠이 들고, 나를 찾는 연락은 하나도 오질 않고, 이렇게 하루가 끝났구나, 불 꺼진 방안에서 오늘 하루의 변변치 않은 사건에 대해 생각하는 일, 이토록 사소한 순간들이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것이라고.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찾게 될 빛나는 조각들에 대해 믿어야 한다고. 그러다 보면 문득문득 찾아오는 텅 빈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그러니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지금 이 순간을 응원한다. 창창한 아침 햇빛을 받으며 눈을 떴다면, 밖으로 나와 단 한 걸음을 걸어냈다면, 위로하며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을 느꼈다면, 우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대단한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그 지난하고도 반짝이는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오늘을 만들고 역사를 구성한다. 조금씩 그러나 아주 소중한. 평범한 오늘이라는 시간은 아름답고 귀하다.

2022-09-27

경주와 수학여행

우정구 논설위원 수학여행은 학생에게 현장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가정을 떠나 단체생활 속에서 학습경험을 쌓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주로 명승고적지나 역사적·문화적 의미가 있는 곳을 목적지로 삼아 3∼7일 정도 다녀오는 것이 보통이다.학생은 수학여행을 통해 교과서에서 보던 역사와 문화유적의 현장을 직접 탐방하고 단체활동을 통해서는 협동심과 자율적 도덕심도 배우게 된다. 특히 해외여행 등 여가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60∼70년대 학교에 다녔던 세대들에게 수학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거리로 남아 있다.수학여행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한 때 수학여행이 전면 금지되는 시련도 겪었다. 교육적 효과가 없고 학생들도 만족하지 않는 수학여행을 유지하는 게 타당하냐는 회의론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강하게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수학여행의 취지가 나쁘지 않고 안전성을 잘 담보로 한다면 새로운 대체 방법을 찾아 수학여행의 취지를 살리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전개됐다.교통수단이 원활하지 않던 과거 시절에 가장 인기가 있었던 수학여행지는 바로 경상북도 경주다. 풍부한 역사적·문화적 유산이 있어 학습의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여행과 여가문화가 보편화되면서 경주는 수학여행 코스에서 차츰 밀려났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동안은 아예 학생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 버렸다.9∼10월 수학여행 시즌을 앞두고 전국 초중고교 수학여행단의 경주 방문이 크게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전국에서 91개 학교가 경주를 수학여행 방문지로 꼽아 안심여행 신청을 했다고 한다. 신라천년 고도 경주는 우리 문화가 넘치는 곳이다. 수학여행지로서 이만한 곳은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9-27

TK, ‘지방시대위’ 출범에 대비하라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이 특별법 제정 문제로 주춤해졌지만, 특별법안을 들여다보면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깜짝 놀랄만한 내용이 많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입법예고돼 있는 이 법안을 자세히 분석해서 다른 지자체들보다 한발 앞선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제주도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법안에 담긴 내용을 주제로 세미나를 여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정부는 지난 14일 ‘지방자치’와 ‘국가균형발전’을 총괄하는 ‘지방시대위원회’ 발족을 위해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법안은 지방분권법과 국가균형발전법을 통합한 것이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전 대구시교육감)이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법안에 명시된 국정과제를 총괄하게 된다. 정부는 당초 시행령 개정을 통해 지방시대위원회를 이달 중 출범시킬 예정이었지만, 다른 법률과의 충돌 우려가 제기되면서 새로운 특별법 제정으로 방향을 틀었다.대구시와 경북도가 법안내용 중 눈여겨볼 것은 비수도권지역에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를 지정할 수 있는 근거가 신설된다는 것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이 지방으로 가려면 20대 대기업 본사나 공장,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주요 대학, 특목고를 함께 내려 보내야 효과가 있다”고 언급한 말은 바로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 지정을 놓고 한 말이다.기회발전특구는 비수도권 지자체와 기업이 협의한 후 정부가 지정하는데, 특구로 이전하는 기업과 직원에겐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 등의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준다. 교육자유특구는 학생선발·교과과정 개편 분야에서의 규제 완화와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 확대, 교육 공급자 간 경쟁을 통해 다양한 명문 학교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상민 장관의 말처럼, 지자체 역량에 따라 서울 명문대의 특구이전도 가능해진다.정부가 40일간의 입법예고 기간에 자치단체와 주민, 관계부처,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 이 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야당과 수도권 의원들이 다수인 국회의석을 고려해 보면 특별법안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기업과 서울 주요 대학의 지역 이전과 같은 획기적인 정책은 아직 정부 차원의 세부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미숙성 상태다.윤석열 정부가 지방시대위원회 발족을 위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은 비수도권 지자체로서는 둘도 없는 기회다. 만약 대구·경북이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곧바로 다른 지자체와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물론, 인구소멸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지금 모든 비수도권 지자체가 기업유치에 올인하고 있는 이유는 인구유출을 막아 지방자치단체 소멸을 막기 위해서다. 대구·경북이 ‘특별법안’에 명시된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로 반드시 지정될 수 있도록 이 지역 구성원 모두가 총력전을 펴야 한다.

2022-09-27

축제에도 격(格)이 있다

심한식 경북부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갓바위 공영주차장에서 지난 24일과 25일 개최된 ‘2022 경산 갓바위 소원 성취축제’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지적이다.보물 제431호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일명 갓바위)이 대구의 명소가 아닌 경산의 명소임을 알리고자 열리는 갓바위 축제는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갓바위 특성을 살리고자 소원 성취를 테마로 제21회째 열렸다.하지만, 이번 축제에도 수능을 50여 일 앞두고 합격을 기원하고자 갓바위를 찾은 수험생과 학부모, 후원을 하는 선본사 관계자, 등산객 등을 제외하면 축제를 즐기고자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의 모습은 소규모에 불과해 경산을 알린다는 축제 목적에 부합하진 못했다는 지적이다.우린 격(格)을 이야기한다. 국가에 맞는 국격, 사람에게 요구하는 인격처럼 전통이 있는 축제에 어울리는 축제의 격도 필요하다.소원성취 축제 테마에 걸맞게 설치된 소원 연등 만들기 등의 부스보다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달아 달아 달고나 체험’ 부스가 더 붐벼 소원을 주제로 하는 행사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또 부스 대부분이 관계자들의 잡담장소로 활용되어 앞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어 보였다.더욱이 음식다운 음식은 제외하고 어묵 하나에 1천~1천500원에 판매하는 상술이 판을 쳐 축제의 즐거움중 하나인 먹거리흥행은 실패했다는 평가와 함께 소원성취 축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힐 정도로 행사 프로그램 참가자들도 축제를 즐기지 않고 현장을 떠난다는 사실이다.25일 오후에 모인 사람들의 수로 성공했다는 평가도 가능하겠지만, 이들 대부분은 오후 4시 30분부터 진행된 축제 퍼포먼스(내빈 인사)와 오후 6시부터 시작된 갓바위 소원성취 음악회를 보러온 사람들이었다.이번 경산 갓바위 소원성취 축제를 위해 많은 이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나 그 수고에 찬사를 보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이곳 저곳에서 열리는 축제들이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개최되는 축제가 아닌 진정 지역민에게 도움이 되고 지역을 알리는 축제, 다시 찾고 싶은 축제가 되도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shs1127@kbmaeil.com

2022-09-26

바닥에는 검은 진흙이 <Ⅱ>

그날 저녁 잠자리에서 필립의 아내가 물었다.-당신. 하나 물어봐도 돼요?-뭘?-안나 씨 뱃속의 아이. 아버님 아이 맞아요?-당신, 정말.-아니. 안나 씨도 아버님 아이가 맞다 말하긴 했는데. 아버님 나이가 워낙 많으셨으니까. 믿기지가 않아서. 혹시 다른 사연이 있나 하고. 당신하고는 관계없는 거죠?-또 쓸데없는 상상. 제발 그러지 마.-당신이 너무 챙기는 것 같아서.-당신, 나 몰라?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복잡한데, 당신이라도 좀 도와주면 안 돼? 어휴.필립은 베개를 고쳐 돌아누웠다. 필립의 아내도 한숨을 쉬며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날 밤 필립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내 때문은 아니었다. 영권의 일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했다.노마는 필립의 집으로 들어갔다는 안나의 문자를 보며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문자를 받은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틈이 날 때마다 핸드폰을 열어 문자를 확인했다. 오빠로서 할 일을 했다는 뿌듯함, 필립에 대한 감사 등의 감정이 섞여 노마를 웃음 짓게 했다. 안나는 필립의 집에서 아이를 낳을 것이다. 필립은 아이를 자신의 동생으로 인정한다 말했었다. 그리고 안나의 인생은 이제 필립의 선택이 아니라 안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말을 덧붙였었다. 필립이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내 생각을 이야기할게. 안나 씨는 아직 젊어. 그래서 안나 씨를 어떻게 하겠다. 안나 씨는 어떻게 해야 한다. 이런 결정을 미리 내리고 싶지 않아. 안나 씨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 물론 아이는 낳아야겠지. 소중한 생명이니까. 내 동생이기도 하고. 아이는, 아이의 삶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을 거야. 우리 집안의 남자로 인정해 줄 거니까. 내가 우리 아버지의 유일한 아들이었어. 그런데, 내가 아들이 없어. 무슨 말인 줄 알겠지? 노마는 그 아이의 외삼촌이고. 그렇지?만식이 퇴원하기 나흘 전 필립이 오른손으로 아랫배를 문지르며 했던 이야기였다.성공적인 삶에는 몇 번의 운이 필요하지.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절대 아니야. 운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돈이나 의도하지 않게 발생한 기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 다행히 벌어지지 않은 일들, 분노나 좌절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하려 했지만 하지 못한 것들, 마침 그 자리에 그가 없었다거나 누군가 끝까지 말렸다거나, 네가 앉으려는 자리에 주인이 없는 것도 너의 운이야. 이미 그 자리에 누군가 서 있다면, 그것도 네가 맞서 싸울 누군가가 아니라면 너는 그 자리에 갈 수 없는 거지. 결코. 네가 너의 정치를, 그것도 훌륭하게 해내려면 그런 운도 필요해. 하지만 그런 면에서 너는 운이 없어. 일단 내가 비켜주지 않을 거니까. 내가 너의 아비이고 너보다 먼저 정치를 시작했으니까.이 년 전 남해였다. 영권이 인호에게 했던 말이었다. 말을 했던 영권도, 말을 들었던 인호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다음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영권은 인호의 손을 잡았다.괜찮으냐?인호은 영권의 손을 슬며시 떼어냈다.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서울로 올라온 인호는 필립을 만났다. 인호가 필립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많이 섭섭하셨겠네.인호로부터 남해에서의 일을 전해들은 필립이 말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인호가 대답했다.좌절감이 더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섭섭한 것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한잔 마시고 다 잊으시라,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을게요. 하지만 일단 오늘은 한 잔 마셔요.필립이 인호의 잔에 술을 채웠다.형님이라고 해도 되죠? 형님은 제게 말 놓으세요. 제가 한참 어린 동생입니다.필립이 채워주는 술을 받으며 인호가 말했다.그전까지 인호와 필립은 아버지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었다. 인호는 영권과 함께, 필립은 만식과 함께 그렇게 네 명이 라운딩을 가진 적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인호와 필립이 따로 자리한 적은 없었다.힘들지요? 뒷바라지만 하는 것. 언젠가 필립이 인호에게 말했다. 저만치 영권과 만식이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큰 양산을 받쳐 들고 그들 옆에 서 있는 캐디와 웨지 클럽을 들고 그들을 쫓아가는 캐디를 쳐다보며 필립이 인호의 어깨를 툭 쳤다.힘들거나 마음이 편치 않을 때 전화해요. 동병상련 아닌가. 저분들 흉이라도 보게.필립이 먼저 명함을 건넸다.모든 곳에 인호가 있었다.인호는 이십여 년 전부터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의 지역구인 영산시를 관리해 왔다. 많은 행사들에 빠짐없이 방문하여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께서 바쁘신 관계로, 하고 말을 시작하면 노인들은 바쁘시지. 큰일 하시는 분이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김강 소설가

2022-09-26

그 시절, 그 감정, 그 공간으로 이끄는 영화

1789년 프랑스는 구체제인 절대왕정을 무너뜨리는 시민혁명이 일어난다. 바로 프랑스 혁명이다. 그러나 절대왕정이 무너진 자리를 대체했던 정치체제는 쉽게 자리를 잡지 못했고, 세 차례의 입헌 군주정과 짧은 두 번의 공화정, 두 번의 제정 등 80년 간 여러 정치체제를 겪는다.프랑스 혁명 이후 부침이 심했던 프랑스는 1870년에 들어와서 프랑스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이후 1940년까지 약 70년간 안정적인 공화정 체제를 구축한다. 이 시기 프랑스 혁명 때 사용됐던 구호인 ‘자유, 평등, 박애’가 국가이념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는다.1939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프랑스 제3공화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후 북유럽이 나치 독일에 차례로 함락 당하면서 전황은 시시각각 프랑스에 불리하게 전개되더니 마침내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속수무책으로 밀리게 된다. 1940년 6월 13일 수도 파리가 함락되자 당시 부총리였던 전쟁영웅 필리프 페탱이 의회 결의를 통해 전권을 위임받게 된다. 패탱은 독일에 정전을 호소하며 프랑스 전체 국토의 절반 이상인 북프랑스가 나치에게 넘어가게 되고 절반이 되지 않는 나머지 남프랑스 지역의 자치권을 확보하는 것으로, 협상 끝에 굴욕적인 조건으로 정전협정을 맺는다. 페탱의 직속 부하였던 샤를 드골은 이에 반발해 영국으로 망명해 ‘자유 프랑스’라는 망명정부를 세운다.1940년부터 1944년까지 프랑스의 국가이념이었던 ‘자유, 평등, 박애’는 폐지되고, 새롭게 탄생한 ‘비시 정부’에 의해 ‘노동, 가족, 조국’이라는 새로운 구호가 등장한다. 혁명과 공화국을 상징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페탱이 구상하던 새로운 프랑스 건설의 기운이 나치가 일으킨 전쟁의 포화 속에서 일어난다. 분명한 것은 ‘비시 정부’는 프랑스 의회에 의해서 탄생한 합법적인 정부였다는 것이다. 비록 그 행보가 독일 나치에 협력하는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당시 미국과 소련 등으로부터 프랑스의 합법 정부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 전 프랑스가 지배하고 있었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식민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며, 독일도 이를 용인하고 있었다.이 시기 카사블랑카는 프랑스의 해외 식민지였던 모로코의 최대 도시로 대서양에 면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전란을 피해 미국으로 가기 직전 마지막 기착지인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향하는 기항지였다. 비시 정부의 식민지 카사블랑카는 비시 정부의 경찰들과 나치 독일의 게슈타포와 이탈리아 경찰들과 반나치 활동가와 망명가, 밀수꾼과 스파이, 예술인, 지식인, 과학자들이 어우러져 탈출과 탄압, 자유와 억압, 희망과 좌절이 혼재된 곳이었다.돈이 있는 사람들만이 리스본으로 향하는 비자를 얻어 그곳을 떠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과 세월을 탕진하며 비자를 얻기 위해 그곳에 머물게 된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배경인 1941년 겨울의 카사블랑카가 그러했으며, 영화 속 주인공 릭이 운영하는 ‘릭의 카페 아메리카’ 같은 곳에서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밀담을 나누며 전황을 살피며 도시를 빠져나갈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다양한 사연과 목적, 거대한 전란 속에서 현실을 도피할 다양한 욕망이 존재하는 복합적인 감정의 공간이었으며, 거대한 이념과 세력이 팽팽한 긴장감을 가진 채 마주하고 있는 경계지점이었을 카사블랑카. 드러낼 수 있는 것보다 감춰야하는 것들이, 기억해야할 것들보다 다가올 것들을 걱정하고 집중해야하는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해야하는 그 시대 실재했던 공간. 그 속에서 영화 ‘카사블랑카’는 과거를 선택한다.잊혀졌던 사랑과 재회하게 되고, 잊고자 했던 기억 속에서 회한과 아쉬움, 서로의 선택 속에 남아 있던 감정을 확인한다. 과거에 머물렀던 기억과 감정은 다시 현재가 되고, 미래가 된다. 우연히 릭의 손에 들어오게된 비자에 누구의 이름을 적을 것이며, 누가 남고 누가 떠날 것인가의 줄다리기가 펼쳐진다.멋진 대사의 향연과 잊을 수 없는 노래와 풍경, 그 풍경들을 집어삼키던 안개가 8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복합적인 감정의 공간이었던 카사블랑카로 이끈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Here’s looking at you, kid)” /(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2-09-26

장송곡 시위

홍석봉정치에디터 장송곡은 상여 행렬이 행진할 때 부르는 곡이다. 사회변화에 따라 상여와 장송곡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간혹 유림의 거목이 숨졌을 때나 언론에 등장하는 판국이다.그랬던 것이 어느 순간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의 단골 메뉴가 됐다. 스피커로 소리를 증폭시킨 장송곡은 사람의 귀를 자극한다. 특히 주택가 등의 장송곡 시위는 주민들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다. 혐오감과 위압감을 주기 때문에 시위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데는 그만이다. 근로자 등이 애용하던 방법이 일반화됐다. 집단의 이해 주장에 주요 수단이 됐다.소음 기준을 초과하는 집회와 시위는 법으로 막고 있지만 집회·시위 현장에서 소음 기준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사례가 많아 사실상 이 규정은 무용지물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경남 양상 사저 앞 장송곡 시위로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할 정도다.법원이 장송곡 시위에 제동을 걸었다. 최근 대구 서부지법이 한 재개발사업조합과 조합장이 사무실 인근 등에서 장송곡을 튼 지주 등 4명을 상대로 낸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사무실과 주거지 반경 100m 내에서 음향 증폭기기를 사용해 장송곡을 트는 행위는 정당한 업무와 평온한 사생활을 누릴 권리를 현저하게 방해하는 것으로 판단, “집회·시위 및 표현의 자유를 넘어 사회적 상당성을 결여한 행위로 보인다”고 판시했다.경찰도 해결책 마련에 나섰다. 주택가 인근에서 일상생활에 피해를 줄 정도의 심한 소음을 내는 집회·시위를 제한하고 조치를 따르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도 가능하도록 ‘집시법’을 개정하기로 한 것이다. 늦었지만 상식 밖의 시위는 제재 받는 것이 당연하다./홍석봉(정치에디터)

2022-09-26

‘924대구기후행동’

남광현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9월 24일 토요일 오전 9시, 동대구역 광장에는 세계기후행동과 함께하는 ‘924대구기후행동’, “기후행동, 지금 당장!”이라는 구호가 적힌 무대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몰려들었다. 동대구역에서 두산오거리와 들안길 삼거리를 거쳐 동대구역으로 되돌아오는 자전거대행진 행사에 참가하기 위한 사람들이었다.화창한 가을 날씨 아래에서 기후행동에 동참하려는 사람들의 열의는 매우 높았고, 남녀노소를 망라한 다양한 참가자들의 모습이 경이로웠고 이들 속에서 간간히 보이는 외국인들까지 동대구역 광장에서의 ‘924대구기후행동’의 시작은 역동적이었다.세계기후행동은 2018년 스웨덴의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를 위한 학교파업’ 1인시위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기후파업 이후 2019년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맞춰 전세계에서 일주일 동안 기후 관련 시위가 이어졌다. 2019년 9월 20일 기후파업시위는 세계 154개국, 400만명이 함께 참여한 첫 번째 대규모 기후행동이었다. 우리나라도 2019년 처음으로 ‘기후행동’ 행사가 열렸는데,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5천명 규모로 참가하여 역대 기후 문제와 관련한 최대의 행사로 평가받았다. 그로부터 3년만에 다시 서울광장 주변에 3만명 늘어난 3만5천명 규모의 ‘924기후정의행진’이 열렸다.‘924대구기후행동’은 2022년 3월 탄소중립기본법, 7월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의 시행에 따른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가능발전 이행을 위한 지역단위 시민행동의 확대 차원에서 개최되었다.지난해 12월 선언한 대구시 2050탄소중립의 이행계획 수립과 추진에 따른 시민 공감대 형성과 다양한 이해관계자 협력 강화를 도모하고자 했다. 대구시 온실가스 배출원 중에서 비중이 가장 높은 수송과 가정상업 부문에서 획기적인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서 생태교통과 자원순환 등의 친환경 실천확산을 위해 우리나라 최초 기후시계가 설치된 동대구역 광장에서 행사를 개최했다.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더 거세게 올라오는 여러 태풍들이 지나간 평온한 주말에 나들이를 위해 동대구역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할 많은 전시·체험 부스도 동대구역 광장에 세워졌다. 에너지전환, 자원순환, 기후변화교육 등 매우 다양한 주제로 마련된 부스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고, 직접 체험하고, 아주 저렴하게 녹색제품 구매도 할 수 있었다.금년 7월에 지정되어 운영을 시작한 대구광역시 탄소중립 지원센터에서는 대구광역시 기후대응을 위한 2050 탄소중립 ‘8G’전략소개와 탄소줄이기 ‘1110’ 참여서약 행사가 열렸다. ‘새숨’에서는 안 입는 청바지를 짤라 예쁘게 디자인한 그림과 글자를 새겨 마우스 패드로 다시 업사이클링 하는 행사도 열렸다.2018년 기준으로 대구광역시 연간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약 1천655만t인데, 이 값을 대구광역시 총 인구 약 249만명이 1주일간 배출하는 양으로 환산하면 약 128kg이다. 2050년까지 한사람이 1주간 성인 몸무게 2배나 되는 온실가스를 완전히 줄이기 위한 ‘924대구기후행동’은 계속될 것이다.

2022-09-26

생산현장의 7대 낭비와 개선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생산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원가를 낮추어 기업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라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경제의 흐름을 보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생산기술을 선도하는 국가에서 후발 주자들로 이전되면서 확대 전파되어 왔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산이 가능한 제품은 시장에 과잉으로 공급되기 시작한다.이렇듯 기술이 일반화되어 제품이 과잉으로 공급되기 시작하면 기업의 이익은 판매가에서 원가를 제한 값으로 결정되므로 잉여 제품들을 서로 싸게 팔려고 하기 때문에 판매가가 낮아진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원가를 낮추지 않고서는 이익을 창출할 수 없으므로 시간이 지나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결국 제품이 과잉으로 공급되면 판매가는 시장에서 결정되므로 기업은 원가를 낮추어야 만 이익을 창출하고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생존원가’라고도 한다.그래서 기업은 이익창출을 위해 원가를 낮추려고 노력하며 결국 생산과정의 낭비를 제거하여 제품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과정의 일과 낭비에 대한 이해와 낭비를 유발하는 요인에 대하여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생산과정에서 일은 ‘고객입장에서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재료가 고객의 요구하는 제품에 가까워지도록 가공하는 상태를 말한다. 반대로 낭비는 ‘고객입장에서 돈을 지불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산과정 중 재료가 이동 정체되면서 원가를 상승시키는 상태를 말한다.제조현장에서 이러한 이동과 정체를 일으키는 요소를 7대 낭비로 정의하고 있다. 첫째가 과잉생산으로 고객이 요구한 제품을 필요 이상으로 생산하거나 수요를 미리 예측하여 생산하는 것으로 공정내 반제품과 제품 재고의 증가를 초래한다. 둘째는 공정 또는 사람 간의 편차나 트러블 등에 의한 대기의 낭비이며 셋째는 과도한 공정 분할이나 분업 공장 Lay-out Lot생산 정위치 불량 등에 의한 운반의 낭비이다. 넷째는 가공의 낭비로 고객의 주문한 규격 대비 필요 이상을 가공하는 것이고 다섯째가 재고의 낭비이다. 여섯째는 잡고 들고 놓고 하는 동작의 낭비이며 마지막 일곱 번째가 불량으로 인한 재가공의 낭비다.이러한 낭비는 고객이 주문하는 제품의 종류와 양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생산 제 요소인 설비 사람 재료 방법이 대응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고객 주문량 변동 시 생산 4요소의 대응능력이 현장 관리력이며 회사의 수준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지도하는 P사도 설비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활동을 전원참여 위드마이머신으로 하고 있으며 사람은 작업을 표준화하고 작업상의 위험요인을 제거하고 재료에 대해서는 어디에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를 5S활동을 하며 방법은 과제활동으로 개선하고 있다.결국 기업은 이익을 창출해야 하므로 생산현장을 운용하는 사람이 고객의 수요 변동이 있어도 낭비없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본인도 일을 통해 성장하고 회사의 경영에도 기여하여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는 활동이 개선인 것이다.

2022-09-26

철옹성의 신음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느새 가을이다. 들판의 곡식이 익어가고 열매가 영글어 가는 9월이 가고 있지만, 월초에 들이닥친 태풍 힌남노로 인한 상흔과 시름은 깊기만 하다. 삶의 터전이 하루 아침에 물에 잠기고 생계 현장이 송두리째 초토화된 현실은 비애의 갈퀴 마냥 서럽기만 한데, 피해복구와 재난수습은 막막해 암담하다. 문명은 발달해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다지만, 부지불식 간에 엄습하는 자연재난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때가 허다하니 좀더 주의와 경계, 신중하고 치밀한 대응과 중장기적인 풍수해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사시사철 하얀 목화송이 같은 증기를 피우며 거친 숨을 내쉬던 포항제철소가 수해의 몸살을 앓고 있다. 태풍이 몰고온 폭우로 오천읍 지역을 관류하는 냉천이 범람하면서 인접한 제품생산 공장이 순식간에 침수되어 조업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로 한없이 신음하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 같이 조업 개시 49년간 한번도 멈춘적 없는 철옹성 같은 제철소가 수마의 손아귀에 휩싸여 여지없이 주저앉다니, 참으로 어이없고 불가항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형산강 너머 밤이면 오색영롱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며 지역과 나라의 희망을 밝게 비추던 제철소가 한동안 암흑천지로 돌변했으니, 이 어찌 억장이 무너지고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랴.“미래의 꿈을 위해/모랫벌에 혼을 심었던 우리/모진 바람 불어도/거친 파도가 쳐도/신새벽 雄飛의 빛살로/도약의 비전/원대한 꿈을 키워온/도전자 아니었던가//….혼신의 몸부림/껍질 벗기는 아픔이 있었기에/제철소는 사시사철/하얀 목화송이를 피워대질 않는가!//靑春의 산맥을 넘으면서/영일만 신화를 창조했고/壯年의 강을 건너면서/바야흐로/변화와 혁신의 물꼬 트는 포항제철소!” -拙詩 ‘포항제철소장 헌정시’중포항제철소의 냉천범람 피해는 집계조차 어려울 정도로 막대하고 극심하다. 노도(怒濤) 같은 황토물이 비좁아진 냉천교 교각 사이를 원활하게 흘러가지 못하고 제방을 넘어 시내 쪽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 동해안로와 오천지역으로 연결되는 해병로를 따라 거센 물길이 생기면서, 그 주변이 설마 하던 홍수로 대부분이 잠겨버렸다. 특히 제철소 압연라인의 특성상 단층건물과 지하설비가 많은 걸 감안하면, 사람 키 높이 이상 물밀지듯 속속들이 파고드는 물살로 공장전역은 무참히 뻘물로 찰 수밖에 없었다.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전무후무한 참사에 포스코는 창사 이래 크나큰 위기에 처해 있다.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듯이 아무리 어려운 일에 부닥쳐도 살아나갈 희망이 있다. 재앙을 당하면 서로 도와주듯이(患難相恤) 포스코의 선제적이고 발 빠른 수해복구 대처와 임직원들의 전력투구에 민관군의 손길이 더해지니, 복구작업에도 한결 속도가 붙는 듯하다. 지역사회를 위해 베풂과 나눔을 실천하던 회사가 공전의 수난과 곤경에 처하자 포항은 물론 멀리 광양에서까지 자매마을과 자생단체들의 도움과 물품지원이 답지하고 있어서 아름답고 고맙게만 여겨진다. 하루 빨리 포항제철소의 침울한 신음이 환한 웃음으로 피어나길 학망해본다.

2022-09-26

윤 대통령은 주제를 좀 파악하라

김진국 고문 얼마 전 인터넷에 “임영웅, 주제 파악해줘”라는 글이 올랐다. 임영웅 씨의 안티팬이 악성 댓글을 올렸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임 씨가 1만석 규모인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를 했는데, 입장권 구하느라 전쟁을 치른 팬들이 아우성친 것이다. 이제 무명 가수가 아니라 10만명을 수용하는 올림픽 주 경기장이 어울리는 인기 가수라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말이다.윤석열 대통령도 임영웅처럼 ‘주제 파악’을 좀 해야 한다. 그는 이제 검사가 아니다. 친구들과 막걸릿집에 잡담하고, 말실수가 소탈해 보이던 시절은 끝났다. 좋은 남편, 인정 많은 친구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다. 어제의 윤석열과 오늘의 윤석열은 달라야 한다.윤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난 뒤 행사장을 나서면서 뱉은 말로 시끄럽다. MBC가 22일 윤 대통령이 ‘이××’ ‘쪽팔려서’라고 비속어를 쓰는 영상을 공개했다. 같은 영상인데 들은 말은 조금씩 다르다. 1차 보도한 MBC와 민주당은 “국회에서 이××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한국)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믄’(날리면)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회에서 이××들이 승인 안 해주면, 날리믄,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했다는 것이다.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서 만났다. 에이즈·결핵·말라리아의 예방과 치료 재원을 조성하는 협력기구다. 미국은 전체 목표액의 3분의 1인 6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했고, 한국은 1억 달러를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웃으며 대화한 직후 바이든을 조롱하는 말을 했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더군다나 절대다수 야당이 ‘국회’에서 예산안을 심의 중인 점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이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라는 말은 한 것 같다.바이든을 겨냥한 말이라면 이런 외교적 결례가 없다. 미국 정부는 한미동맹이 튼튼하다는 말로 비껴갔지만, 욕설을 들은 당사자는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한국 대통령실이 아니라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부득부득 우기며 사서 욕을 먹으려 하지는 않을 거다. 우리도 외교 문제로 번지는 건 막아야 한다.사실 여부를 떠나 윤 대통령은 언행을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사석이라고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손짓, 눈짓 하나까지 주목받는다. 국민의힘에서 문자 파문이 계속되는 걸 봐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이 자기를 겨냥해 ‘이××, 저××’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그런 표현을 남자답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건 건달문화다. 더군다나 대통령이라는 자리에는 너무 안 어울린다.윤 대통령은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 ‘변변하지 못한 처지’를 말하는 ‘주제’가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그렇지만 임영웅 씨에게 재미있게 비틀어 쓴 표현대로 자신의 처지에 맞은 언행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국가의 대표로서 그 품격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 말만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다. 대통령에 앉고도 범부 시절 고치 안에 갇혀 있어선 곤란하다. 가정집 실내 공사하던 경험으로 국가사업에 아는 척 끼어들 일이 아니다. 가까운 친구들과 의기투합하던 시절처럼 의리에 기대 인사해서도 안 된다.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두환 대통령이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는 분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에게 맡긴 것”을 이유로 들었다. 자신도 “최고의 전문가들을 뽑아서 적재적소에 두고, 저는 시스템 관리나 하면서 국민과 소통하고 아젠다만 챙기겠다”라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머리는 빌리면 된다”라고 말했다. 바보라서 빌리는 게 아니라 국정은 최고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설픈 지식은 독이 된다.윤 대통령은 보고받을 때 듣기보다 말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고 한다. 분수에 맞게 눈과 언행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주변 관리와 조직도 습관의 틀을 깨고 다시 볼 때가 됐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 고문

2022-09-25

‘RE100’ 지원이 기업유치의 필수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지난 6월 지방선거에 나온 대부분 후보들의 공통된 제1공약은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서울대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가 최근 A 광역시에 가서 탄소중립 특강을 한 뒤 경제 부시장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 부시장이 말하기를, 해외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협의를 마친 뒤 마지막 단계에서 그 기업이 “한국의 그 도시에 가면 RE100은 해 줍니까”라고 해서 공장 유치 계획이 마지막에 무산되었다고 한다.이제 공장을 유치하고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로, 전기, 상하수도 시설이 잘 정비된 싼 공단 부지만 제공해서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RE100까지 지원해야지 기업하기 좋은 도시의 조건이 되고 기업이 올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다는 것이다.최근 미국에서 600조 원의 인플레 감축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그중 468조 원이 기후대응 즉 태양광, 풍력 발전에 대한 투자와 송배전망 구축, 전기 충전소 투자, 전기차 보조금 지원 등인데 현대자동차가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고 난리가 난 상황이다. 미국에서 하나의 완결된 미래형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468조를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를 100% 생산해서 완벽한 새로운 전력망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공급하고 물류도 전기차로 담당하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세상이 다가왔다.RE100을 국가 간의 규제로 인식해선 안된다. RE100은 2050년까지 기업이(공장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다국적 기업들의 자발적인 약속이다. 기업과 국제단체가 주도한 자발적인 세계적 기후대응 협약이다.2022년 2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구글, 애플, 이케아 등 349곳의 다국적 기업이 RE100에 가입하였으며, 한국도 SK그룹 계열사와 LG에너지솔루션, 고려아연 등 14개 기업이 가입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9월에 들어서야 가입을 선언했다. 지난해 중국, 유럽, 미국에서 삼성전자는 RE100을 달성하였으나 한국에서는 재생에너지를 2.7% 조달하는데 그쳤다. 이유는 태양광, 풍력을 설치할 땅이 없어서이다. 온갖 규제에 막혀 어디에도 마땅히 태양광·풍력을 설치할 부지가 없다는 것이다.태양광 설치에 관한 지자체(시·군)의 조례를 보면, 마을에서 300~500m 이상 떨어져야 하고, 군도 이상의 도로에서 또 300~500m, 심지어 1km 이상 떨어져서 설치해야 한다는 시·군도 있다. 거기다가 상수도 보호구역은 안된다는 환경부 규제까지 있어서 태양광이 자꾸 산으로, 저수지로 가고 있는 것이다.가장 깨끗하고 앞으로 지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태양광 발전 시설이 우리나라에서는 ‘혐오시설’ 취급을 당하면서 산으로 가는데 기업이 어떻게 RE100 달성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OECD 38개국 중 38등으로 지난해 기준 7.2%다. OECD 평균은 31%다. 우리가 후진국 취급하는 중국은 28% 이상, 우리와 기후여건이 비슷한 일본도 20%를 달성했다. 468조를 들여 미래형 산업 생태계를 만든다고 야단인 미국은 22% 수준이다.EU는 내년부터 3년간 계도 기간을 거친 뒤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한다. CBAM이 시행되면 EU에서는 탄소세가 t 당 10~11만 원이고, 한국은 3만 원이므로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알루미늄 제품들은 7~8만 원의 탄소세를 더 부담하게 되어 이제 EU에 팔지 말라는 말과 같다. 미국도 같은 법안이 계류 중에 있다.우리나라는 무역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나 되는데 수출국 2·3위에 해당하는 EU와 미국에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알루미늄 제품을 팔지 않고 경제가 돌아가겠는가.이제 기업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는 RE100을 지원해 주어야 하고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방정부 시민이 똘똘 뭉쳐 RE100이 갖춰진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줘야 한다.RE100 달성을 위해서 우리나라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공장과 기업이 신재생에너지로 100% 가동될 만큼 신재생에너지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태양광 발전을 대폭 늘리는 것이 해답이다. 우리 국토의 3.5~4%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2050년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70~75%를 재생에너지로 담당할 수 있다는 통계가 있다.우리나라는 농지가 국토의 18%이다. 태양이 가장 잘 비치는 곳에 논·밭이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주곡인 쌀은 남아돌지만 그 외 모든 곡물은 95% 이상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기계화된 영농을 통해 쌀농사를 지을 수 없는 모든 농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도록 법과 제도를 바꿀 경우 충분한 재생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그리고 산업단지 주변의 모든 농지는 우선적으로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해서 공장과 기업의 RE100 달성이 손쉽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2022-09-25

대학 재정의 딜레마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수시모집을 시작으로 다시 새로운 대학입시의 시즌이 돌아왔다. 이제 새내기들은 입시가 끝나면 자기가 선택한 대학에 등록금을 납부해야 한다.그런데 대학 등록금을 신용카드로 받지 않는 대학이 있다고 국회에서 의원들이 호통을 친다는 소식이 들린다.신용카드 등록금 납부는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작년 2학기 7만630건에서 올해 1학기 6만3천106건으로 감소했고, 올해 2학기에는 6만497건으로 더 떨어졌다고 한다.한 카드 업계 관계자는 “대학들이 현금 수납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카드사와 제휴를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했다고 한다.문제는 국회의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지금 대학들이 카드수수료를 걱정할 정도로 재정에 쪼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대학재정 문제를 탁상공론으로 다룰 상황이 아니다. 대학 등록금은 투표를 의식하는 정치적인 이유로 10년 넘게 동결되어 왔다. 이 기간 동안 당연히 물가는 올랐고 등록금이 동결된 대학들, 특히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대학들은 지금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교직원 임금을 미루고 있는 대학도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대학생들의 높은 학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든든학자금 대출제도와 국가장학금 제도가 2010년과 2011년에 도입되었다.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하는 경우 정부의 학자금 지원이 학생 부담 완화로 이어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등록금에 대한 규제가 함께 도입되었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 투자는 OECD 평균의 3분의 2 수준으로 하락했다고 한다.행정적 정치적 이유로 동결된 등록금은 대학의 목을 죄여오고 있다.그런데 이런 와중에 진보성향의 한 언론은 사립대 적립금이 많은데 돈을 풀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올해 2월 기준 전국 4년제 사립대의 적립금이 8조1천437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천억원 가까이 늘었다는 주장이다. 대학들은 재정난을 이유로 등록금 인상의 길을 터주길 요구하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우선 대학들은 쌓인 적립금 활용 방안부터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터무니 없는 지적이다.4년제 사립대 151곳 가운데 적립금을 1천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는 대학은 20개교, 100억 이상의 적립금을 가진 대학은 84개교라고 한다. 포스텍은 주가가 좋았던 시절 기금 2조원으로 한국에서 단연 1위였던 시절이 있었다. 여전히 한국 1위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 반이하로 줄어들었다.진보 언론이 지적한 이러한 한국대학의 기금은 서구의 대학들 특히 미국대학들에 비하면 정말 초라할 정도이다.오늘날 세계를 이끄는 대학들 중 미국의 사립대학들은 모두 수십조원 단위의 발전기금을 가지고 있다. 동부 하버드, 예일, MIT의 발전기금은 60∼70조원에 달하고 있으며. 프린스톤과 서부 실리콘밸리의 스탠퍼드도 50조원의 기금을 확보 하고 있다. 기금 2조 이상인 대학은 50여개가 된다. 기금에 의한 대학운영비 투자도 한국과는 천지 차이이다. 한국의 사립대들은 기금에서 불과 몇억 많아야 몇십억 정도의 지원을 받는다, 대학 전체 예산의 퍼센티지로 불과 한자리 숫자에 불과하다.포스텍이 수백억으로 예산의 10∼20퍼센트 정도를 기금에서 지원 받는 건 아주 예외적인 경우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이러한 퍼센티지도 미국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미국 발전기금 상위 5개 대학 예산의 발전기금의 기여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하버드가 20억 달러로 39%, 예일이 15억 달러로 35%, , 프린스턴이 14억 달러로 62%, MIT가 8억 달러로 30% 라고 한다.돈의 액수도 크지만 기여도도 대부분 30%를 넘는다. 심지어 60% 가 넘는 대학도 있다.미 사립대 발전기금 10년 평균 수익률 12%이고 이들 사립대학들은 매년 발전기금의 5% 정도를 대학 예산으로 쓴다고 한다. 물가상승률이 3%라고 가정하면 발전기금의 수익률이 최소 연 8%는 되어야 원금을 까먹지 않고 키울 수 있는데 이를 12% 수익률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대학 발전기금 운영을 최적으로 운영하면서 고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대학의 수준은 발전기금 규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철저하게 믿고 있고 실제로 미국대학의 랭킹은 발전기금 규모와 비례한다.우리나라가 미국에 있는 대학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재정적으로 미국 선도 대학 같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금액도 중요하지만 기여도의 증가도 중요하다.한국대학의 재정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등록금은 동결되고 기금은 적은데도 기금이 많다고 그걸 풀지 않는다고 비판하면 기금의 원금을 까먹어야 하는 악순환이 생긴다. 그나마 연구비로 버텨야 하는데 주요대학을 제외하면 그것도 쉽지 않다.대학 재정의 딜레마. 언제까지 정부는 이를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까? 등록금 인상을 불허한다면, 대학 기금 확충을 위한 정부의 대책과 도움은 무엇일까. 대학의 시름은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더 깊어지고 있다.

2022-09-25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방 생존 전략

김하수 청도 군수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봤던 일들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무인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고 자율주행의 퇴근길 차 안에서 집 안의 냉방 시스템은 물론이고 온갖 가전 기구를 최적의 상태로 맞춰둔다. 그것도 말 한마디로써 말이다.인공지능 바둑기사 일파고가 세계 최고의 인간 바둑기사를 이긴 것도 벌써 오래전 일이다.기업 간,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에서 거리와 공간의 장벽은 벌써 넘어섰다. 진열해 놓은 물건이나 제품을 직접 눈으로 보거나 만져 보지 않아도 가상의 공간에서 더 많은 거래가 이루어진다. 물론 결제도 이전의 화폐가 아니다.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기업, 국가 등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곳에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오며 최근 일련의 국가 간 분쟁에서는 드론이 강력한 군사 무기로 활약하기도 했다.인류가 걸어온 1·2·3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지나 바야흐로 4차 혁명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이전의 산업혁명들이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로 대표되는 새로운 생산, 기술 수단의 개발을 통해 생산성의 획기적 증대와 영역의 확장을 가져왔다면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수단이었던 컴퓨터와 인터넷을 그대로 활용해 매우 빠른 속도로 공간의 장벽을 무너뜨리며 진행되고 있다.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의 이러한 핵심 수단과 기술을 상호 연결하고 융합해서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킨 소프트웨어적인 혁명이다.공간의 장벽을 무너뜨리며 진행되는 새로운 기술의 연결과 융합을 통한 소프트웨어적인 혁명!, 바로 여기에 지방의 생존과 발전에 대해 고민하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수도권에 집중된 산업과 기술, 자본과 인구, 교육과 문화 인프라의 시대가 지금까지의 모습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발전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기술 문화적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바탕으로 한 신산업 육성 및 관련 기업 유치,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활용한 농업, 교육, 의료, 문화, 관광 인프라 구축 등 국가의 적극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그러나 사실 이러한 외부의 변화에만 의존하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방 스스로 변화와 혁신에 대한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4차 산업혁명의 요체가 ‘자기 혁신’이고 ‘기존의 수단과 기술을 연결하고 융합해서 더욱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세상을 진보시키는 것’이라면 지방 행정에도 스스로 혁신을 위해 기존의 자원과 인력을 활용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이는 스스로 한계 지어놓은 틀을 깨고 새롭고 과감한 도전에 나서 전통적인 업무분장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게 한다.수도권과 대도시와 비교하면 매우 힘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어려운 여건이지만 지방 스스로 먼저 나서야 할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지방 소멸이라는 생존의 위기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하는 모든 지방 행정의 영역에서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적용하는 노력은 물론이고 연결과 융합의 가치를 지방 행정에 도입하고자 하는 4차 산업혁명형 인간으로의 변화를 꾀해야만 한다.세상이 1·2·3차 산업혁명을 거쳐 눈부신 발전을 이룰 동안 행정 시스템도 발전해 왔다.왕권 시대로부터 관료들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관치행정, 법의 잣대로만 집행하는 법치행정, 주민과 함께하는 지방자치 행정, 이를 보완한 거버넌스 행정으로 거듭 발전하며 오늘에 이르렀다.그러나 한때 ‘지방화가 세계화’라는 구호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지 30년이 된 지금 지방은 점점 더 쪼그라들고 위축되었다.이런 지방 소멸 위기를 맞은 지방의 공직자는 ‘위기가 기회’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마인드로 무장하고 각오를 더욱 굳게 해야 한다.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지방의 생존 전략은 바로, 기존 역량에 ‘변화와 혁신’을 더해 ‘초 효율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2022-09-25

교차로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면 네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서남북에서 밀려온 차들이 붉은 신호에 멈춰 선다. 잠시 기다리는 그 짧은 사이에도 내달리고 싶은지 차들이 쿨럭거린다.오늘은 교차로가 시끄럽다. 대형트럭 한 대가 교차로 한가운데 서 있고 그 주변으로 차들이 끼어들어 꼬리를 문다. 신경전을 벌이듯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며 으르렁거린다. 차들로 뒤엉킨 교차로를 바라보니 생각이 복잡해진다.내가 처음 운전면허증을 따고 도로에 나갔을 때, 핸들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도로 위, 차들의 물결에 떠밀려 곁눈질도 못 하고 앞만 보고 달렸다. 어깨가 뻐근해지고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방향지시등을 켜고도 제때 차로를 바꾸지 못해 몇 바퀴를 돌기 일쑤였다. 운전이 서툴러 설설 기면서도 질주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이 뿌듯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차를 부리는 데 조금 익숙해질수록 내 자동차 속도계도 점점 올라갔다. 탁 트인 도로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자동차가 도로에 착 붙는다는 느낌의 쾌감은 짜릿했다.그러나 내 자동차의 속도는 한없이 올라갈 수만은 없었다. 어느 날, 앞선 화물차를 바짝 뒤따르다가 교통경찰에게 붙잡혔다. 질주를 막은 교통경찰에게 짜증이 났다. 신호를 보고 진행했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따졌다. 내가 목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히자, 웃음으로 대하던 경찰관이 음주 측정까지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면허증을 보여주고 범칙금 통지서를 받았다. 며칠 내내 기분이 찜찜했다. 그것이 내 인생에 주는 빨간 경고장인지 몰랐다.운전에 재미가 붙어 자동차를 몰 듯 나의 일상에도 점점 속도가 붙었다. 일하는 보람도 있었다. 더 좋은 차 더 넓은 집, 욕망이 커질수록 속도도 빨라졌다.마음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몸이 따라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점점 숨이 가빠왔다. 아니나 다를까, 종합검진을 받았더니 여러 군데 고장이 나 있었다. 의사는 호르몬의 균형이 깨진 게 큰 문제라고 했다.“그동안 빨간불이 몇 번 켜졌을 텐데….” 의사는 안타깝다는 듯 내뱉었다.인생에 건강의 빨간불이 켜지자 내 질서가 뒤엉켰다. 일하거나 청소하는 소소한 일상까지 혼돈에 빠졌다. 평소 잘 다니던 골목길도 얽히고설킨 미로처럼 보였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저만치 이탈해버린 시간이 뽀얀 먼지처럼 흩날렸다.사람의 몸도 기계처럼 고장 난 부품을 바꿔 끼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큰 수술을 했다. 이순혜 수필가 수술하고 시골집에서 잠시 쉼표를 찍었다. 와글와글한 생활의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병원 특유의 냄새에서 멀어지고 싶었고, 달릴 줄만 알았던 나에게 호흡의 정리가 필요했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적적하다 싶으면 길섶 돌멩이에 말을 걸고 키 작은 풀꽃에 웃음을 보냈다.날마다 집 근처 숲에 들어갔다. 숲에 있는 표정 있는 것들이 느낌표로 다가왔다. 손바닥만 한 땅 움켜쥐고 들풀은 꽃을 피우고 알곡 몇 톨만 먹고도 새들은 노래를 불렀다. 많은 것을 차지하려 않고 순서도 다투지 않았다. 주어진 조건에서 생명을 꽃 피우고 열매를 만들면서 제 몫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작은 풀꽃들도 저러한데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숨차게 달려 온 것일까. 다짐과 다짐을 거듭한 뒤 어설프지만, 나만의 답안지를 들고 돌아왔다.세상의 시간은 잠시도 멈춤이 없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도 건물이 올라가고 도로가 확장되고 있었다. 나란히 달렸지만, 앞서간 사람이 많았다. 누구는 그동안 큰상을 타고 작품집을 출판했다. 봄꽃이 있으면 가을꽃도 있고, 먼저 피는 꽃도 있고 나중에 피는 꽃도 있지 않은가. 큰 숨 한 번으로 마음이 그득해졌다. 그래, 멀리 가야 하니 내 속도를 잃지 말자. 어우렁더우렁 덜컹거리는 것에 익숙해져야겠다.

2022-09-25

자투리 미리 남기기

강길수 수필가 ‘자투리’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사전적 뜻은, 필요한 것을 ‘쓰거나 팔고 남은 작은 부분’ 또는, ‘기준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작거나 적은 조각’을 말한다. 그런데 미리 남기는 자투리를 뜻하는 단어는 생각나지 않고, 웹상에 찾아보아도 없다. 왜일까.필요한 것을 쓰기 전에 조금 떼어놓는 일은, 예나 이제나 있을 것이다. 우리 선인들과 국어 연구자들은 왜 이 경우의 말을 만들지 않았을까. 그 말을 알지도, 찾지도 못하니 답답하다. 옷, 이부자리 등 천 제품을 공정(工程)에서, 불량품 방지를 위해 재단 전 일부러 자투리를 남기는 경우가 있다. 또, 성당에서는 사순절에 이웃을 돕기 위해, 밥 짓기 전 쌀 한 숟갈 모으기 운동을 ‘사순절 성미(誠米)’란 이름으로 한다. 천 자투리 남기기는 용어를 못 찾았고, ‘사순절 성미’는 표현 적절성이 떨어진다.수년 전,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배운 것이 있다. 한 나이 지긋하신 분이, 소변을 본 후 주머니에서 휴지 쪼가리를 꺼내 뒤처리하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남자의 소변 뒤처리는 상상도 하지 않았었다. 남자도 소변 뒤처리를 하면, 위생 면이나 대인 관계상에도 좋겠다고 생각이 바뀌어 따라 하였다. 뗀 대변용 휴지에서, 소변용 작은 자투리 쪼가리를 미리 남기는 버릇도 이어 생겼다. 그 후, 일상생활에서 사전 절약, 용도 늘리기, 물, 공기 오염 줄이기 같은데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생각을 바꾸고 보니, 연쇄 반응처럼 다른 것들이 보였다. 저절로 이것저것 자투리 미리 남기기 거리를 찾게 되었다. 어떤 화장실엔 손 씻은 후 닦는 제법 큰 크기의 1회 용 휴지가 있다. 씻어 깨끗한 손의 물기만 닦고 아까운 종이를 버리는 것은 자원 낭비이자, 자연 훼손과 기후 악화와도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손 닦은 휴지를 가져 와 다른 용도로 더 쓰고 버린다. 아이들이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물티슈도 우리 부부는 씻어 몇 번 재사용 한다.자투리 미리 남기기의 마음은 ‘아나바다 운동’의 정신과 궤를 같이한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간 정신일 것이다. 아나바다운동은 외환위기를 맞은 다음 해인 1998년 등장했다. 정부 주도의 이 운동은 소비지출 줄이기가 요체였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구호를 내건 아나바다 운동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다.‘아나바다’가 소비 줄이기에 역점을 둔 개념인 반면, ‘자투리 미리 남기기’는 소비를 줄일 뿐만 아니라, 새 용도를 창출하고 나아가 생태계보호까지 염두에 둔 개념이 된다. 물론, 소비를 줄이면 생태계보호에 이바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새 용도가 창출되지는 않는다.지구의 환경과 자원은 유한하다. 이는 지구가 부양할 수 있는 생명체도, 감당할 수 있는 오염물도 유한하다는 증거다. 지구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다. 우리 어머니다. 인간이 일으킨 환경오염으로 지구 어머니는 중병에 걸렸다. 중병을 낫게 하는 처방의 하나로 ‘자투리 미리 남기기 운동’이라도 제안하고 싶은 마음이다.자투리 미리 남기기가 온 지구촌에 퍼지면 좋겠다.

2022-09-25

유익함과 해로움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작년 3월부터 ‘맛지마 니까야’라는 불교 경전을 읽고 있다. ‘니까야’는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등에서 사용하는 상좌부 불교 경전을 부르는 이름인데, 석가모니 사후 제자들이 모여 7개월간 결집했다고 한다. ‘니까야’는 빠알리 어로 되어 있어 빠알리 경전이라고도 한다.우리가 많이 들었던 ‘소승불교’라는 용어는 상좌부 불교를 깎아내려서 부르는 표현이라서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테라와다 불교라고 한다. 현대 정신의학 치료와 심리치료에서 사용하는 알아차림 명상, MBSR 방법은 테라와다 불교의 대표 수행법인 위빠싸나를 현대적으로 응용한 것이기도 하다.‘니까야’에는 모두 5부가 있다. ‘맛지마 니까야’는 그중 두 번째로 편집된 경전이다. 같은 내용의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한역한 이름은 ‘중아함경’이다. 5부를 읽는 순서는 개인의 필요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내 경우는 종교적인 색깔은 별로 없어서 신앙으로 읽는 것은 아니지만, 교양 도서에는 없는 내용에 매력을 느껴 같이 읽고 있다. 처음에는 온라인 모임으로 진행하다가 지금은 주 1회 20쪽 정도의 범위를 정해서 각자 읽고 후기만 모아서 카페에 올리고 있다.여자는 깨달은 자가 될 수 없다거나 깨달은 자의 초능력을 열거하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지혜를 배우게 되기도 한다. 지난주에 읽은 대목이 바로 그런 내용이다.바른 사람과 바르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은 그의 행위가 유익함을 늘리는가 해로움을 늘리는가로 나뉜다고 한다. 유익함과 해로움은 너무나 자명해서 이런 설명은 얼핏 보면 싱겁고 당연해 보이지만, 일상에서 이것을 놓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자신의 행위가 해로움만 늘리는데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중독자라고 한다. 그런 특별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로움을 늘리는 행위를 자주 한다.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탐하거나 쇼핑 목록을 만드느라 시간을 죽이기도 한다.이렇게 누가 봐도 해로움이라고 인식하는 큰 문제라도 막상 현실에서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때 유익함을 늘리는지 어떤지 숙고해서 선택하지 않고 유행이나 감각의 즐거움만을 좇거나 경제적인 이익만을 좇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게다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사람이 유익함을 늘리고 있는가 아닌가를 알기는 더 어렵다. 이런 문제에 대해 ‘맛지마 니까야’에서는 몸에 좋은 행위는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단순한 답을 제시하는데, 무릎이 저절로 쳐진다. 아무리 비싼 옷이어도 입기 불편하거나 피부에 문제를 일으킨다면 해롭고, 아무리 큰 집이라도 사람이 우울해진다면 유익하지 않다. 정의를 외쳐도 그것으로 자기 몸이 상한다면, 그런 정의가 세상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는 어렵다.지난 한 달간, 내 나름대로는 옳은 일을 한다고 동분서주했으나 성과는 없고 머리카락만 한 움큼 빠지고 보니, 이런 구절에서 내 행동이 정말 유익함을 늘리는지 숙고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022-09-25

말 말 말

김규종 경북대 교수 공자와 동시대인이었던 진항(陳亢)은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교육자인 공자가 아들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어느 날 공자의 외아들 백어(伯魚)에게 아버지에게 특별한 무엇을 배운 게 있는지 묻는다. 골똘히 생각한 백어가 답한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제게 시를 공부하느냐고 물으시길래 그렇지 않습니다, 대답했더니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不學詩 無以言)고 하셔서 시를 공부했습니다.” (‘논어’ 계씨편)여기서 시는 공자가 당대에 엮은 ‘시경’에 들어있는 305편의 작품을 가리킨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시는 서정시에 한정되지만, ‘시경’의 시는 범위가 넓고 다채롭다.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도 있지만, 신과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노래와 군왕들의 전쟁과 사냥, 부패한 귀족들의 모습과 백성들의 일상을 그려내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따라서 시를 공부함은 언어를 넘어서 풍속과 제례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춘추시대에 시를 공부함은 ‘시경’에 담긴 305편의 시 전체를 기억하여 자유자재하게 활용함을 의미한다. 모방이 창조의 바탕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와 인식을 선행한 공자의 혜안이 우뚝하다. 오늘날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 극작가들이 앞선 시대 문필가들의 작품을 필사하면서 나름의 글쓰기 방식을 체화해가는 작업과 같은 방식이다.1965년 출간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을 대량학살한 전범(戰犯) 아돌프 아이히만에 관한 기록을 남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꿈도 꾸지 않은 채 아이히만은 그에게 부여된 과업을 기계적으로 수행한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악행을 ‘악의 평범성’ 개념으로 규정하면서 그에게 결여(缺如)된 세 가지 무능을 삼단논법으로 거명한다.생각의 무능, 언어의 무능 그리고 행동의 무능이 그것이다. 제대로 생각할 능력이 없기에 자신의 사유와 인식을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고, 그 결과 행동 역시 올바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으로 유추해보면 행동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언어가 그릇되며, 언어가 그릇되는 이유는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말은 생각과 행동의 중간 정거장에 자리하면서 양자의 결합점이자 중추적인 구실을 한다고 하겠다.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깊이가 있고 신중하며 무게가 있다면, 그것의 출발점은 깊이 있는 사유에 있으며, 그것은 자연스럽게 언어로 표출된다.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실행할 때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사유와 언어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튀어나오는 말은 그의 평소 생각을 드러낸다. 그런 생각과 언어의 구체적인 결과물이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는 얘기다.지난 며칠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대통령의 말은 수많은 말로 다시 해석과 재해석, 오해와 또 다른 오해를 증폭시키면서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국정 책임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와 의미를 지닌다. 당연한 일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말에 담긴 생기(生氣)와 살기(殺氣)를 두루 살펴 신중할 일이다.

2022-09-25

김치대란

우정구 논설위원 김치는 우리나라 음식의 대표 아이콘이다. 무, 배추, 오이 등의 여러 채소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버무려 발효시킨 김치는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도 손꼽힌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김치의 종류만 해도 200여 종에 이르고 있고, 지방에 따라 각양각색의 김치들이 만들어지고 있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김치 종주국이다.김치의 가장 큰 특징은 유산균이 많은 발효식품이라는 것이다. 냉장고가 개발되기 전 우리의 조상은 김치 제조법을 고안해 겨우내내 싱싱한 채소를 먹으면서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C를 섭취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했다.2013년 한국의 김장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위원회에 등재되면서 김치는 한국인의 오랜 전래식품이라는 것을 세계 만방에 알렸다.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95%가 하루 한 번 이상 김치를 먹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인의 90%가 아직까지 직접 김치를 담그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배추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시중에는 김치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김치가 품절이 되고 포장김치 가격이 추가로 오를 기미가 보이면서 소비자들 사이엔 사재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장마와 태풍 등 불순한 일기 등의 영향으로 배추 값이 폭등한 때문이다.배추 한포기 소매가가 1만원을 육박하니 올 겨울 김장김치는 못해 먹겠다며 일찌감치 김장김치 담기를 포기한 ‘김포족’도 늘고 있다고 한다.한국인 식단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김치가 값이 비싸 금(金)치가 된 적은 있으나 지금처럼 마트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김치대란에 소비자 마음도 심히 불편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9-25

일상의 회복을 위해

윤영대수필가 23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秋分)이다. 한여름의 더위가 사라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씨의 변화에 벌레가 땅속으로 숨고 누른 벼 이삭은 풍요로운 결실을 위한 기도를 하듯 고개를 숙인다. 텃밭에는 빨간 고추가 익고 마을 골목에는 홍시가 탐스럽고 과수원에는 사과가 알알이 태양을 닮아 붉게 익어가고 있다.20여 년 만에 밀어닥친 최강 태풍 힌남노가 폭우와 강풍으로 주택 8천 가구와 상가 3천 동을 물바다로 만들어 2천여 수재민을 내며 초토화했던 상처의 기억 속에 포항도 이제 한숨을 돌리고 복구작업에 여념이 없다. 이러한 특별재난지역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주민들에게 국가의 발 빠른 지원과 함께 국민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음이 감사하다. 오천 냉천의 범람으로 인한 안타까운 인명손실과 시내 저지대 상가의 침수로 추석특수를 잃어버린 상인들의 슬픔도 씻어줄 응원도 절실하다. 흙탕물에 잠겼던 포스코와 제철산업 단지는 숨이 멎은 듯 그 피해가 엄청나게 커서 복구에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만 최선의 노력으로 빠른 기간 내에 생산을 회복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이제 온 시내에 폭우를 퍼붓고 흙탕물로 뒤덮던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천고마비의 계절을 노래하기에 깨끗하게 치워진 바닷가를 거닐어 본다. 김경숙 작가의 ‘2022 영일대 샌드페스티벌’의 모래 작품들이 자유롭다. 소라와 화환을 들고 웃는 ‘바다를 품은 인어’상 뒤로 ‘푸른 꿈의 말’ 4마리가 달리고 사자와 사슴과 백로가 어울려 태풍의 기억을 씻고 있다. 또 강아지를 안고 있는 소녀와 비치볼을 던지려는 아가씨,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가을의 평화를 가슴에 품어본다. 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에서 환한 웃음으로 사진을 찍는 연인들의 모습 또한 정겹다.가을은 축제의 계절. 전국 곳곳에서 인삼, 고추, 오미자, 포도 등 특산물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포항의 ‘국제불빛 축제’는 잠정연기되었고 태풍으로 피해를 본 모든 분들의 빠른 일상회복을 기원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호박이랑 박이랑 따서 얇게 썰어 말리고 깻잎도 따서 절이며 귀뚜라미의 맑은소리 들으며 가을을 즐겨야겠지. 누른 벼 베어 햅쌀밥 해 먹으며 음력 8월의 농가월령가도 부르며 폭우 피해를 입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어 보자.일교차가 큰 환절기에 아직도 기죽지 않은 코로나에도 마음을 단단히 해야 한다. 들판에는 코스모스가 가을을 노래하고 하얀 개망초가 웃고 있는 계절에 우리 국민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야 할 텐데, 정치계는 아직도 마음의 쓰레기를 치우지 못하고 서로의 탓만 하고 있다. K2014pop 등 우리의 문화예술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오늘날, 과학, 무기 등 ‘한국의 힘’을 보란 듯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이제 가을걷이를 해야 할 때, 뜨거운 여름 폭염과 폭우 속에서도 잘 가꾸어온 결실을 추수하는 감사의 마음으로 계절을 맞이하자.

2022-09-22

삼성전자의 친환경 경영

심충택 논설위원 최근 포항지역을 휩쓴 태풍 때문에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물에 잠겨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나오고, 포항제철소와 인근 철강공단이 마비되는 것을 보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실체적인 위협을 경험하면서 앞으로 기후위기가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드물 것으로 보인다.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유럽의회는 지난 6월 탄소국경조정제도(탄소국경세) 도입 법안을 통과시켰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수입되는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미국도 탄소국경세 도입을 추진중에 있다. 탄소국경세는 수출업체뿐만 아니라 해당제품 생산에 참여한 모든 협력업체에게도 적용된다. 온실가스 실질 배출량 제로를 의미하는 탄소 중립 달성이 이제 모든 기업에게 ‘신(新)무역장벽’이 된 것이다.삼성전자가 지난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 ‘RE100’에도 가입했다. 지난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이슈가 된 RE100은 전 세계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약속하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지난 2월 기준으로 구글, 애플, 이케아 등 349곳의 다국적 기업이 RE100에 가입하였으며, 한국도 SK그룹 계열사와 LG에너지솔루션, 고려아연 등 14개 기업이 이미 가입했다.삼성전자는 그동안 탄소중립 또는 기후위기 대응분야에 있어서는 미온적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세계증시에 밝은 상당수 전문가는 삼성전자의 환경문제에 대한 소극성이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뒤늦었지만 RE100 가입을 통한 삼성전자의 친환경 선언이 향후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심충택(논설위원)

2022-09-22

거울 앞에서

오낙률 시인·국악인 알고 보면 세상은 온통 거울투성이다. 그 거울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이 나와 마주하게 되는 순간부터 생성되며, 한 사물과의 관계에서 나라는 존재가 어떠한 형태로든 인식될 때 필자는 그것을 거울을 보는 행위라 정의하고 싶다. 그렇게 거울이란 내가 보려고 노력해야만 비로소 그 역할을 나에게 베푸는 존재로서 인간의 발길이 닿는 곳곳에 존재하는 나를 의식할 수 있는 모든 그곳에 걸려 있는 것이다.현대인의 삶에서 선거라는 것과 무관하게 살기 어렵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구성원 몇 명이 모여서 거수를 하는 선거에서부터 오래전부터 달력에 붉은 글씨로 지정해놓은 선거까지, 실로 인간의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선거를 통해서 조직화 되고 그 짜임새가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거에는 반드시 승패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정인의 선출을 위한 일시적 수단에 그쳐야 함이 마땅함에도, 종종 나와 의견을 달리했던 소속원과의 관계를 집요하게 악화일로로 몰고 가는 사람 혹은 집단을 볼 수 있다. 그러한 행위는 선거에서 패한 사실이 상황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의견이나 판단이 옳다는 뜻도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비교육적 사고에서 오는 무지함의 폭로쯤으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가만히 주위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다수의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선망을 한 몸에 받는 몇몇 정치인의 입술에서까지 상식적으로 인내 불가한 자기중심적 망언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볼 때면 그런 사람을 두고 고민하며 선거에 임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인간 존중이니 이웃 사랑이니 하는 말은 입버릇처럼 하면서 선거 결과에는 승복하지 못하고 집요하게 비방 일색으로 자신의 주장이나 심리상태를 피력하는 행위는 참으로 반사회적이고 비인륜적이며 지성인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아주 먼 비인간적인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여당이건 야당이건 간에 상대의 작은 결점도 놓치지 않고 가혹하게 물어뜯는, 가히 볼 성 사나운 정치권의 모습에 우리 국민은 너무나 익숙해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엔 자신이 지지하는 집단이나 정당의 일이라면 무조건 편을 들거나 어떤 잘못을 해도 침묵하는, 그러한 비지성적인 행위를 하고도 일말의 양심적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 탓에 정치는 뒷전에 미루고 맨날 싸움질만 한다며 아예 정치판에서 완전히 고개를 돌려버린 국민 또한 너무 많은 것이 우리나라의 정치적 현실이다. 무릇,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은 국민의 대표이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은 곧 그 나라 국민의 모습이 된다. 정치인이 포악하고 야비한 인성을 지녔다면 그 나라 국민성이 그러하다는 얘기가 되고 정치인이 품위 있고 지성미가 넘친다면 그 나라 국민 또한 그러하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인의 모습에서 우리 또는 나 자신의 모습을 인지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누워서 침 뱉기식의 막말에 부끄러움도 느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인과 국민은 서로의 거울이 되어 자신의 모습에 빗질하고 보다 말끔한 모습으로 세상 앞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22-09-22

혼란정국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정국(政局)이 매우 혼란스럽다. 경제계는 물가와 금리, 환율이 모두 상승하는 ‘3고 현상’으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늪에 빠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정치권에서는 최소한의 양심이나 이성도 팽개친 무리들의 난동과 패악질로 국력낭비를 가중하고 있다. 여당은 대표란 젊은이가 끊임없는 해당행위로 징계를 당하고도 오히려 당과 대통령에 대해 비난과 악담을 일삼고 있고. 야당은 전과 4범에다가 온갖 비리의 혐의와 의혹으로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는 인물을 대표로 뽑아 놓고 그를 수호(?)하기 위해 마치 자폭테러꾼들을 방불케 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대한민국은 지금 이런 정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위기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을 가르게 될 기로에 서 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왜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고, 왜 동족을 살상하는 무리들의 침략으로 누란의 위기에 몰리게 되었는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우리는 종북 좌파들의 민낯이 과연 어떠한지를 똑똑히 보았다, 그들은 무엇보다 민주화투쟁 전력을 구국의 훈장처럼 달고 살지만, 막상 그들의 목표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였다. 좌파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나라 전반에서 자행된 독단과 전횡은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특히나 그들 정권을 지지한다는 패거리들은 중공의 홍위병들을 연상케 했다. 몽둥이나 죽창 대신 문자폭탄 같은 디지털 무기와 온갖 악의적인 선전선동이 다를 뿐이었다.다음으로 드러난 것은 좌파들의 무능이었다. 그들에게 능한 것은 오로지 투쟁뿐이었다. 누구든 일단 적으로 간주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해를 가하는 능력(?)은 자타가 공인을 하는 터이다. 훼방하고 때려 부수는 데는 이골이 났지만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것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다는 것이다. 원전건설을 파기하고 4대강 보를 파괴할 궁리나 했지 새롭게 무얼 만들어낸 능력은 없는 자들이었다.가장 심각한 것은 반지성과 도덕적 파탄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유전자에는 반성이나 성찰이란 없다. 마치 무오류성의 신이나 된 것처럼 저들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법이 없는 것이다. 같은 일이라도 상대가 하면 적패지만 내가 하면 정의요 혁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면서도 일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를 못한다.정국이 혼란할수록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바로미터 역할이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선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택일의 문제이지 화합이나 공조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대세력들을 압도하거나 배격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우파 세력과 지지층을 넓혀나가는 게 필수다. 우선은 정권이 제몫을 해야겠지만, 애국심과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헌신적이 노력이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다. 좌파노조가 장악한 공영방송 대신 자유우파 유튜버들이 밤낮으로 맹활약을 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2022-09-22

‘어촌마을-소멸 위기의 시대’

소멸위기란 이야기가 자주 회자된다. 서울과 지방 간 인구격차를 논하거나, 인구절벽 등 인구감소 문제를 지적할 때 종종 사용된다. 이를 지표로 나타내는 용어도 있다. ‘소멸고위험지역’과 ‘소멸위험지역’ 등으로 분류해 지역이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는 긴박함을 알려준다. 그런데 그 지역의 분포가 참 특이하다.전국 시군구 소멸지수(2021년 5월 기준)에 따르면, 강원도 고성군과 속초시 등 동해라인을 시작부터 경북 포항시와 경주시까지 모조리 시뻘건 소멸위험지역이다. 부산 동구에 이르러서야 주의단계로 낮아진다. 즉,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항·포구 등 어촌마을을 끼고 있는 지역은 전부 사라질 위치에 처했다는 진단이다. 소멸위험지역은 65세 이상의 고령층이 20~39세 사이의 여성인구 비율보다 2배 이상 많은 경우를 뜻한다. 소멸이 시간의 문제라는 의미다. 소멸위험도까지 면밀히 살펴보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전국 탑텐(Top 10)에 속하는 지역으로 단연 1위는 경북 군위다. 그 뒤를 경북 의성, 봉화, 청송, 청도가 잇고 있다. 전국 소멸위험도 상위 10위 안에 경북의 5개 지역이 차지하고 있는 뼈아픈 현실이다.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어촌 마을은 이와 처지가 다르다. 오히려 전남과 경남은 농촌소멸지역이 더 많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진단이 가능하다. 먼저 이 지역은 연근해어업과 양식업이 발달한 곳이다. 완도의 전복과 통영의 굴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다도해가 가진 천혜의 자연경관, 즉 해양관광자원이 풍성해 전국의 관광객들이 몰린다. 먹거리와 구경거리가 있는 지역에 사람이 운집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인구소멸을 막기 위한 대안 역시 이 같은 현실에서 착안해야 할 것이다.2021년 기준 전국의 어가인구는 9만7천명이다. 그리고 그 인구의 약 40%가 만 65세 이상 노인이다. 수십만 명에 달하던 어업인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소멸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제 상식이다.그 상식을 현실화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업이 있다. 바로 해양수산부가 추진하고 있는 ‘귀어지원프로그램’이다. 해양수산부는 어가인구의 상당수가 고령층인 점을 감안해 귀어인구를 늘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먹거리와 구경거리를 만들고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어촌에 인구유입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먼저 귀어의 전 과정을 컨설팅해주는 ‘귀어닥터’ 프로그램이 있다. 정착 초기의 혼란과 어려움 등을 해결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창업 등 일자리 지원 뿐만 아니라 금융과 행정절차 등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두 번째는 귀어학교다. 해양수산부는 2018년 경상대학교(경남 통영시 위치)를 귀어학교로 지정, 귀어를 희망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연근해어업과 양식어업 등 현장 중심 실무 교육을 6주간 실시했다. 2022년 현재, 전국에는 6개의 귀어학교가 있다. 교육 프로그램도 알차다. 창업절차와 귀어실태 등 기본적인 소양을 다루는 교과과정부터 어업, 양식, 수산가공, 수산물 유통 분야까지 두루 다룬다. 특히 3주간 현장 실습이 핵심이다. 실제 승선 후 어업활동 전반을 배울 수 있어 귀어인들의 호응도가 특히 높다.세 번째는 주거플랫폼 사업이다. 해양수산부는 현재 ‘어촌뉴딜300’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어촌과 어항의 사회기반시설(SOC) 인프라를 확충하고, 지역 특화 자원을 활용해 개발에 나서는 사업으로 3년째 이어오고 있다. ‘어촌뉴딜300’ 사업에 더해 국토교통부와 함께 하는 사업이 바로 주거 플랫폼 사업이다. 주거플랫폼은 어촌뉴딜사업으로 사회기반시설이 확충되고 지역특화산업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지면 여기에 임대주택 공급을 통해 주거안정까지 이뤄내겠다는 포부로 시작됐다. 일자리와 주거문제까지 해결되면 귀어인구는 차츰 늘 것이라는 게 정책입안자들의 판단이다. 정현미작가 인생 2막을 여유 있는 시골 마을에서 보내려는 이들에게 귀어는 아직 생소하다. 실제 귀농·귀촌 인구가 수만 명에 달하는 것에 비해 귀어인구는 한 해 1천 명을 넘지 못한다. 2020년 귀어인구는 967명이었다. 이에 비해 귀농인은 1만2천570명이었다.귀어인을 위한 정책적인 지원도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상태다. 귀농인을 위한 다양한 제도와 지원, 홍보 등은 이미 십수년을 지나왔다. 귀어 역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장년층이 인생 2막을 시작할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좀 더 촘촘한 지원과 그 지원이 현장에 스며들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우리나라 인구는 앞으로 더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가장 약한 고리부터 끊어낼 것이다. 어촌마을이 그 대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젊은 어업인들이 몰려 어장을 가득 메우고, 관광객들로 붐비는 어촌마을은 아직은 상상 속 현실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제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정책적 지원과 홍보, 인식 전환 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경험하는 어촌마을은 지금보다 훨씬 활력 넘치는 장소가 되길 희망해본다.

2022-09-21

그 후

배문경수필가 녀석의 눈이 훑고 지나갔다. 덩치가 커서 드리운 그늘도 넓다. 팔을 사방으로 펼치고 지나면 큰 나무도 쓰러지고 다 지어놓은 과실도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칼날같이 매서운 입김으로 집을 삼키고 강의 너비를 넓혀놓는다. 지나간 자리마다 새로운 길이 생기고 있던 길은 사라진다.방에서 자던 오빠도 처음엔 빗물이 방으로 들어오자 걸레로 슬슬 닦았다고 했다. 불어난 개울물이 안방으로 들어올 때도 이 정도야 뭐라고 심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둔 여수로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촌집의 앞뒤가 포위당했다. 낮은 곳에 있는 논들은 벼들이 고스란히 물속에 갇힌 수생식물이 되었다. 마당으로 내려서자 허리까지 물이 차올랐단다. 오빠는 어둠 속에서 겁이 덜컹 났다고 했다.그래도 추석 차례상을 차렸다. 집을 떠나 가까운 거처에서 밤 대추 곶감 잘 구워진 생선과 삼색 나물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매와 탕이 오를 즈음 바깥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 햇살이 서서히 빛을 발한다. 술을 한 순배 돌리고 다시 모두 절을 했다.친정이 있는 곳으로 향할 때까지도 이렇게 난리가 나 있을 줄은 몰랐다. 세간은 육이오전쟁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 물건들이 길바닥에 나와 구정물에 절여졌다. 냉장고며 주방용품, 옷장과 옷들이 흙탕물과 섞여 널브러져 있었다. 오빠는 연신 호스를 연결해서 흙탕물을 씻었지만, 밖에 설치된 수도 하수구가 막혀 애를 먹었다.옛 기록을 보면 ‘태풍’이란 단어 대신 ‘영풍폭우(獰風暴雨·거센 바람과 거친 비), 대풍우(大風雨·큰 바람과 비), 구풍(98B6風·회오리치는 세찬 바람) 등으로 기록했다. 자연재해를 온전히 겪은 당시 선조들에게 바다는 더욱더 공포의 대상이었다. 바닷길로 떠난 중국 명나라 사행길 기록을 담은 ‘죽천이공행적록(竹泉李公行蹟錄)’도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위한 사명감과 숭고한 업적을 위해 떠났을 것이다.“회오리바람이 급히 일어나 산 같은 물결이 하늘에 닿으니…. 배가 물결에 휩쓸려 백 척 물결에 올라갔다가 다시 만 길 못에 떨어지니 어찌할 방책이 없어 하늘에 축원할 뿐이라. 밤이 깊은 후 바람의 기세 더욱 심하여 배 무수히 출몰함에 지탱하지 못하네. 부사가 탄 배가 가장 험한 곳에 정박해 배 밑 널빤지가 부러져 바닷물이 솟아 역류하여 배 안으로 들어오니 사람들이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더라. 부사가 복건을 쓰고 심의를 입고 뱃머리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축문을 지어 깨끗한 비단에 싸 바다에 넣고 군관과 노졸로 하여금 옷을 벗어 틈을 막고 또 막게 하더라.”과학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자연현상은 두려운 존재이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곳곳에 기후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국지성 폭우가 유럽의 도시를 휩쓸고 태풍도 점점 강해진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머지않아 사라지고 북반구 빙하도 사라진다. 그러면 해수면이 올라가 해안은 물에 잠기게 된다. 그 두려운 존재는 점점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누런 벼가 가득하던 곳이 태풍이 지나자 돌밭으로 변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손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어 하늘만 바라보았다. 하늘이 답을 하듯 곳곳에서 사람들을 보내왔다.돌이 덮인 논밭에는 세상의 포클레인은 다 이곳에 집결한 것처럼 돌을 밀어내고 있다. 길거리에 덮인 진흙을 씻어내려고 다른 지역의 이름표를 단 소방차들이 달려와 물을 뿌렸다. 자원봉사자들이 건네는 도시락으로 속을 채운다. 물이 쓸고 간 자리에 사람들의 훈기가 들어앉았다.정신을 차리고 집을 돌아보니 그나마 이가 나가지 않은 밥공기와 국그릇이 의지하듯 포개져 있다. 접시들도 흙탕물을 씻고 겹겹이 서로 떨어지지 말자고 눌러 앉아있다. 어제의 좌절을 벗고 씻고 닦은 바닥과 높은 곳에서 잘 버틴 몇 벌 옷을 까슬한 바람에 옷걸이에 걸어 말린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바람에 온몸이 한 점씩 꾸덕꾸덕해지고 있다. 물에 젖어 쓸 수 없게 된 삶터를 사람들이 일으켜준다.

2022-09-21

전쟁의 명분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우크라이나 교과서에 ‘한강의 기적’이 실린다. 며칠 전 우크라이나 주재 한국대사관은 전쟁 뉴스가 아닌 교육 소식을 타전했다. 우크라이나 교육과학부는 9월 20일(현지 시간) 한국의 발전상을 교과서에 포함하도록 10학년 ‘세계지리’, 11학년 ‘세계역사’ 교육과정 가이드라인을 변경하고 홈페이지에 공지했다.러시아의 침공으로 7개월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전후 재건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달라진 전황이 이러한 생각을 우크라이나에 가져다준 것으로 보인다. 개전 초기에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속전속결 승리를 예견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현재 다윗은 잘 버티고 있고, 골리앗은 고전하고 있다.이번 전쟁처럼 전문가들의 예측이 빗나간 경우는 드물다. 이는 군사력의 우세와 열세라는 프레임으로만 이 전쟁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사력 세계 2위의 러시아와 22위인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숫자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극단적인 전쟁에서 군사력의 숫자를 넘어설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실리에만 집착했다. 그가 내세운 전쟁의 명분은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평화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국제 사회에 호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평화를 원한다.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평화라는 가치에 세계의 여론이 움직이면서 푸틴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올여름에 개봉한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전쟁의 명분이 왜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보통 이순신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나라와 임금에 대한 ‘충(忠)’의 주제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今臣戰船尙有十二)”는 충직함을 강조하는 스토리텔링이다. 그런데 ‘한산’에서는 ‘의(義)’라는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순신은 자신이 참전하고 있는 임진왜란을 “의와 불의의 싸움”으로 해석한다.이 영화는 한산도대첩에서 대승한 이순신의 전략과 전술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순신과 조선 수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불의에 맞선 의로운 항전에 있었음을 부각시킨다. 당시 조선에 항복한 일본인은 항왜(降倭)로 불렸다. 이 영화에서 항왜 병사가 조선의 의병들과 같은 편으로 싸우는 장면은 매우 낯설다. 그렇지만 그가 들었던 깃발에 새겨진 ‘의(義)’라는 명분은 국가의 경계마저 무화시킬 힘을 갖고 있다.방공호 교실에서 수업하는 우크라이나 학생들이 6·25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선 한국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얻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우크라이나의 오늘은 평화가 아닌 전쟁이다. 폭격으로 깨진 유리창으로 들이닥치는 찬바람을 시민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국제 사회는 두 나라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의 희생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의로운 대의명분만이 폭력적인 전쟁을 멈출 수 있다.

2022-09-21

따스한 눈으로 세상을 보자

김규인수필가 화살을 몸에 맞은 개가 제주의 한 마을회관 인근에서 발견됐다. 신고한 주민은 개가 아주 지쳐있고 헐떡이고 많이 아파한다고 했다. 병원에서 수술하여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신경계통에는 문제가 있을 거라는 의사의 말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말을 못 하는 개에게 화살을 겨누어 쏘다니 왜 그랬을까.동물을 학대한 경우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제주에서 코만 밖에 나온 상태에서 생매장당한 강아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구조된 강아지는 뼈밖에 없었고 사람을 보고 벌벌 떨고 있었다. 상처 난 발로 잘 걷지도 못했다. 이 강아지는 자신을 키운 주인에 의하여 생매장당했다.주둥이와 앞발이 노끈에 묶인 채 발견된 유기견. 19마리의 푸들을 입양하여 물과 불로 고문하며 잔인하게 살해하고 아파트 화단에 묻거나 유기한 사람도 뉴스에 나왔다. 자신에게 아무런 득도 없는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보는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세상은 빠르게 바뀐다. 어제 산 물건의 설명서를 살펴보고 있는데, 오늘 새로운 상품이 나온다. 문명의 빠른 변화는 사람들이 느긋하게 쳐다보고 대처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적응하지 못한 상태로 엉거주춤 따라가기 바쁘다. 깊이 생각하며 돌아볼 시간을 주지 않는 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휴대폰은 이러한 속도전의 선봉에 선다.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틈만 나면 휴대폰을 펼쳐 든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각종 매체는 선정적이거나 잔혹한 영상으로 사람들을 모은다. 이러한 영상을 보며 사람들은 웬만한 자극에도 무심해지는 것 같다. 오늘도 사람들은 더 자극적이고 더 빠른 그 무엇을 찾는다.60대가 책을 읽는 마지막 세대라는 말도 나온다. 젊은 세대들은 종이책을 잘 사지 않는다. 전자책을 사거나 간단한 짧은 글만을 읽는다. 긴 글은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에 다 읽을 수가 없다.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글만을 읽는다. 책도 마음 놓고 읽을 수 없는 요즈음의 빠른 문명을 탓할 수밖에.이제라도 조금 더 사람다움을 찾아야 한다. 오늘 하루는 휴대폰 없이 살아보자. 마음을 통째로 빼앗아가는 휴대폰의 횡포에서 벗어나자. 얇은 책이라도 들고 다니며 시간 나는 대로 책을 읽자.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한 줄의 문장에 빠져보자.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찾아 평생 마음을 지키는 호신부로 삼아보자.하루에 한 번은 해가 지는 서쪽 하늘을 쳐다보자.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노을에 자신을 적셔보자. 노을빛 물든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자. 따스한 눈으로 세상을 보면 감사하지 않은 것 없으니. 애정 어린 손으로 꽃을 쓰다듬어보면, 사랑스럽지 않은 꽃이 없으니. 한 박자 느리게 살다가 보면 사람의 삶은 거기서 거기임을 깨닫게 된다. 세상이 빠르고 각박하게 돌아가도 우리는 더운 피가 흐르는 사람임을 잊지 말자. 반려견과 강가에 나란히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사람을 본다.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춘다. 그렇게 우리는 노을빛 품은 풍경이 된다.

2022-09-21

모방은 가라, 창의가 온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아일랜드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선언하였다. “모든 유행은 틀려먹었다”남들을 따라하는 일이 처음에는 설사 그럴듯해 보여도, 나만의 무엇을 좀처럼 가지지 못하게 함으로 틀려먹었다는 의미. 남의 모습을 따라만 하게되어, 과감하게 도전하며 새롭게 만들어내는 열정을 죽여버린다. 식어버린 감각은 끝내 무디어지고 나만의 세계를 드러낼 방법을 잃게 만든다. 유행을 좇으며 흉내만 내는 일은 예술가에게는 금기인 셈이다. 그 뿐 아니다. 일본 소니(SONY)의 공동창업자 이부카마사루(井深大)는 ‘비즈니스나 과학기술의 세계에서 진짜 성공에 이르려면, 남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였다.‘효자손’을 경계한다. 관광지마다 똑같은 효자손이 어르신의 등을 시원하게는 하겠지만, 지역의 독특한 관광효과를 드러내는 데에는 빵점이다. 도시마다 도심재생을 한다면서 서로서로 닮은 모습의 시가지를 끝없이 반복하며 조성하는 모습은 애처롭다. 상상과 창의의 부재라기보다 추격과 모방에 붙들리다 보니 생겨난 결과가 아닐까. 지역에는 그곳에만 있는 그 무엇이 틀림없이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우선 내가 가진 이야기를 찾아야 하고 이를 오늘의 모양으로 다시 빚어야 한다. 동네마다 마을마다 이야깃거리는 한가득이다. 문화와 예술이 똑같은 이야기로 수렴한다면 웃음거리가 아닐까. 우리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야 하고 다음세대와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오늘의 모습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미국 가수 리 안 워맥(Lee Anne Womack)은 “세상을 정말로 놀랍게 하고 싶다면, 무엇인가 다른 시도를 반드시 해야하고 실패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하였다.다른 곳에는 없는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을 반복하면 안 된다. 여기서만 만날 수 있어 이곳으로 사람을 끌어올 꿈을 가져야 한다. 내게는 있으나 남들에게는 없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사람들이 모두 남들이 되어간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경고는 섬칫하다. 남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찾고 살피며 그들의 삶을 모방하고 추격만 하느라 나의 모습은 잃어간다는 게 아닌가. 끝내 나 자신이 아니라 남이 되어가는 현대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아프게 꼬집는다.도시마다 지역마다 특색있고 풍성하게 다른 모습들을 만나고 싶다. 포항의 색깔은 무엇일까. 지역의 이야기는 어떤 스토리라인을 가져야 하는지. 시가지의 저녁 풍경은 어떤 빛을 발해야 할까. 이곳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향기가 느껴지는지. 끊임없이 찾고 물으며 살펴야 한다. 독특하고 새로운 그림이 그려져야 하고,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색깔이 피어올라야 한다. 포항만의 삶이 있다. 여기에서만 발견하는 기쁨과 슬픔이 있고 우리만 느꼈던 즐거움과 상처가 있다.문화와 예술이 관광자원이 되고 지역이 도시브랜딩으로 성공하려면 우리만의 상상과 창의가 살아나야 한다. 우리만의 향기와 그림을 피우고 그려야 한다. 구경꾼을 부르고 사람이 모이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2022-09-21

구애 아닌 명백한 범죄 스토킹

홍성식 특집기획부장 상대방 의도와 무관하게 장기간 쫓아다니면서 피해자의 정신과 신체를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스토킹(Stalking).얼마 전에도 스토킹이 살인으로 이어진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지난 14일 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31세 전주환 씨가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인 28세 여성 역무원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스토킹 피해자가 신고한 지 1분 만에 동료들과 사회복무요원이 도착했고, 10분이 지나지 않아 구급대가 출동했지만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피의자 전 씨는 불법촬영과 스토킹 혐의로 살해된 피해자에 의해 고소된 상태였고,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 충격은 더 컸다.스토킹 피해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경찰의 대처와 피의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비등하고 있다.피의자는 이미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과 카메라 등 이용 촬영물 소지 혐의로 기소된 전력이 있음에도 이를 간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스토킹에 의한 피해는 이전부터 있었음에도 1999년 발의된 ‘스토킹 처벌법’은 20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법이 시행된 건 지난해 10월.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흉기 또는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스토킹을 저지른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게 스토킹 처벌법의 골자. 그러나, 이 법만으론 피해자 보호 조치가 미흡하다는 의견도 많다.스토킹에 있어 법 제정과 시행 이상으로 중요한 건 상대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의 접근은 구애가 아닌 범죄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아닐까./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2-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