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도자기는 사랑받아왔다. 도자기에는 역사·예술·삶이 어우러져 녹아있다.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과 맑고 투명한 빛깔과 그 위를 수놓은 그림과 이를 완성 시키려는 전문가의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나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한국의 도자기는 예술품으로서 그 가치가 일품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현재 도자 제작 기술은 옛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부족하기만 하다.
일제강점기에 왜사기가 대량 생산되고 개인 공방이 금지되면서 백자 전승의 맥이 많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1960년 중반 일본과 교류하면서 문경에 남아있던 도자 제작 기술이 현재까지 잊히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
태토와 소성용 목재를 구하기 쉬운 문경은 예로부터 관요가 아님에도 도자기로 생업을 잇는 경우가 많았다. 16~19세기 문경읍의 옛 가마터에서는 주로 서민들이 애용하던 백자나 청화백자 식기류가 발굴되었다.
한때는 ‘막사발’로 불리던 그 도자기를 사려고 밤새 줄을 서는 등짐장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백색도가 낮고 두꺼워서 관요에서 생산된 도자기에 비할 수는 없지만 서민들의 식탁에서는 유용하게 애용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고 소비자의 취향이 변하면서 도자기의 인기는 급속도로 하락하게 된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로는 도자기를 대체할 편리한 그릇이 인기를 끌면서 문경의 가마터에서도 식기류보다 요강과 화분·칠기를 주로 생산한다. 수요가 없는 만큼 도자 제작을 생업으로 삼기에 힘들었다.
가마터를 떠나 탄광으로 간 사람들도 많았는데, 1960년대 이후 문경에서 성황을 이루던 석탄산업의 역사는 ‘문경석탄박물관’에 가면 그 흔적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거의 명맥만을 이어가던 문경 도자 제작 기술은 1960년대 중반 일본의 애호가들과 미술상들이 찾아오면서 전환기를 맞는다. 다기의 수요가 높았던 일본에서는 고려다완(찻사발)을 최고라 여겼고, 최대한 똑같은 찻사발을 갖고 싶어 했다. 찻사발은 식기용 대접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대접보다 굽이 높고 좁아 말차가루를 녹진하게 풀어낼 때 사용하기에 적당하다.
일본 다도에서는 자주 활용되는 편이나 찻잎을 우려 마시는 한국 다도에서는 생소한 물품이기도 하다. ‘막사발’이라 불렸던 문경 도자기는 찻사발을 만들면서 예술품으로 인정받는다.
찻사발의 다채로운 색조는 예술적 가치로 여겨졌고, 백색만을 추구하던 시선도 점점 사라져 갔다.
현재 문경은 전통적인 백자가 아니라 일본에 수출한 ‘찻사발’을 문경 도자기의 대표 아이콘으로 삼고 있다. 그만큼 문경 도자기 역사에 있어서 일본과의 교류는 중요했고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 전통 기술을 보존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해진다. 이를 바탕으로 1996년 김정옥이 최초로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그의 가문은 7대째 도자 제작 기술을 이어왔고, 간결하고 절제된 포도 넝쿨 문양을 고유의 문양으로 삼고 있었다. 그를 기점으로 4명의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를 발굴하고, 1999년 ‘문경찻사발축제’를 열어 널리 문경 도자기 문화를 알린다.
매년 문경새재에서 축제가 열리는데, 명장들의 뛰어난 작품뿐만 아니라 신예들의 창조적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모든 작품은 전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망댕이 가마’에서 제작된 것만 출품할 수 있다고 한다.
망댕이 가마는 문경 도자 제작 문화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가마로, 약 20~25cm 정도 높이의 원통 모양 흙덩어리(망댕이)를 돔 형태로 쌓아 올려 만든다. 관음리에 남아있는 옛 가마터에서 최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망댕이 가마는 만드는 시간이 짧고 저렴하며, 내구성이 높고, 단열효과가 좋아서 적은 장작으로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다.
문경도자기협동조합에서는 망댕이 가마로 도자 제작하려는 노력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잊혀져 가는 전통 기술의 보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노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망댕이 가마는 현대의 전기 가마나 가스 가마처럼 아주 정확한 온도의 불꽃을 유지하기 어려워 일정한 품질의 도자 제작이 힘든 것도 사실이다.
전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도자 제작의 다양한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흙으로 빚어온 시간’을 슬기롭게 이어가는 방법일 것이다.
문경의 도자기는 서민과 함께 성장하고, 쇠퇴하며, 변화하였고, 현재는 예술품이 되었다. 시대적 취향이나 기호와 같은 문화가 녹아있으며, 오랫동안 이어온 시간이 깃들어 있으며, 대대로 이어온 도공의 삶도 숨겨져 있다.
도자기를 빚어온 시간 안에는 역사와 예술과 삶이 녹아있다. 다도와 차에 관심이 있다면 문경에 들러, 푸르른 말차가루를 녹진하게 풀어낸 찻사발에 담긴 시간의 온기를 음미하는 것도 좋겠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