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 GPT에 대한 모두의 관심이 뜨겁다. 2022년 11월 처음 공개된 챗 GPT는 5일 만에 가입자 100만 명을 넘길 만큼 세계인들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반년 정도 지난 지금 챗 GPT가 상징하는 생성 AI의 연구와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가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AI가 열어젖힐 새로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하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지금은 잊힌 감이 있지만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당시에도 ‘인류의 위기’까지 거론될 만큼 시끄러웠다. 많은 대학에서 ‘코딩’을 교양필수로 지정하며 컴퓨터 언어를 익히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일로 홍보했다. 그러자 초등학생까지 코딩 과외가 유행하는 웃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AI가 뒤바꿀 인간의 미래를 질문하기보다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 것이다.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 y)’ 개념이 있다. 리터러시(Literacy), 즉 읽고 쓰는 능력의 디지털 버전으로 디지털 시대의 정보를 이해하고 디지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도 2022년 신입생부터 디지털 리터러시 능력 강화를 목표로 파이썬 프로그램 등을 가르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코딩을 할 수 있는 문과생이 그렇지 못한 학생보다 좀 더 경쟁력이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나의 스펙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생성 AI의 등장은 프로그램 언어를 모르는 프로그래머를 만들 수 있다. 2016년 알파고 이후 AI의 진화는 계속되어서, 지금 이런 형태의 AI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일론 머스크, 유발 하라리 등이 AI 개발을 6개월 중단하자는 서한에 서명했다는 뉴스는 속도전으로 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갖는 위험성을 반증한다. 비록 AI의 진화 속도를 인간의 힘으로 누르더라도 큰 물줄기를 바꿀 수는 없다. AI가 인간과 똑같은 로봇 속에 들어가는 시대가 가까운 미래에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미래를 질문하고 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디지털 리터러시란 단순히 컴퓨터의 언어를 학습하는 것을 넘어서 기술의 빠른 진화로 변화하는 현실문화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으로 좀 더 명확히 정의될 필요가 있다. 기술의 속도, 그 자체를 질문하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문학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의 리터러시 능력 향상에 있었다. 물론 당시는 활자 문화 시대의 읽고 쓰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텍스트를 읽고 비가시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힘들을 인식하고 교직하며 글로 쓰는 행위는 디지털 시대에도 똑같이 이루어진다.
챗 GPT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고 한다.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할지는 고도의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단순히 이공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디지털 세계의 복잡성을 연결하여 근본을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단순하게는 챗 GPT를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