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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합계 출산율 0.75의 시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추석을 맞아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부모님 집을 방문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대형 쇼핑몰을 찾았다. 반려동물 출입이 자유로운 쇼핑몰에는 수많은 종류의 강아지와 각양각색의 반려견 유모차가 즐비했다. 물론 아이들도 적지 않게 보였지만, 반려견과 반려견 유모차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대기업이 만든 복합 쇼핑몰에서 아이와 반려동물이 뒤엉킨 장면은 기괴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으로 동물을 인식하는 것이 보편화 된 시대이다. 도나 해러웨이는 ‘반려종 선언’에서 반려동물과 인간의 소통은 인간 중심주의를 극복한 새로운 인간, 즉 포스트 휴먼의 탄생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통계청은 지난 달 24일 2022년 2분기 합계출산율이 0.75라고 발표했다. 2018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이 처음으로 1 아래로 떨어졌고, 이로 인한 위기감이 팽배했지만 이후에도 출산율은 급격하게 떨어지기만 한 것이다. 지난 6월 출생아 수는 통계청이 월간 출생아수를 발표한 1981년 6월 이후 가장 최소인 1만8천830명이며, OECD 국가 평균 합계출산율이 약 1.6명인 것을 고려하면 대한민국이 얼마나 빠르게 아이를 낳지 않는 국가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더욱 심각한 것은 출산율 저하 문제를 우리 모두 알고 있으며,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오랜 시간 투입했지만 반등의 여지없이 아이를 낳지 않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소비’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내가 쇼핑몰에서 느낀 기괴함의 정체도 바로 이것이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유모차에 태워진 잔뜩 멋을 낸 반려견과 그 주인의 모습에서 아이를 위해서라면 빚을 내서라도 원하는 것을 해주는 부모를 떠올리는 것은 오독일까? 소비 자본주의 시대에 돈이 사랑을 대리한다는 의식이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정작 아이 혹은 반려동물과 어떻게 깊게 교감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돌봄에 수반되는 헌신이 사회적 관계의 재구성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말이다.최근 오픈 서베이가 발표한 ‘Z세대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의 Z세대 62.7%가 행복을 위해 소득과 재산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반면, 미국의 Z세대는 인간관계와 우정을 꼽았다. 출산이 파산의 지름길이라는 Z세대의 인식을 단적으로 확인시켜준 결과이다. 개인이 체감하는 사회적 관계 혹은 가치를 재구성해야 합계 출산율의 반등을 이룰 수 있다.그 시작은 국가와 사회가 아이를 부모와 함께 키운다는 의식을 젊은 세대가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함께 살아가는 대상이 꼭 구별 짓기를 통해서야 주체성을 드러내는 ‘사람’일 필요도 없다. 이질적인 대상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 문화가 형성될 때 출산율의 반등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돌봄은 이질적인 두 주체가 연결되는 과정이자 새로운 세상을 함께 가시화하는 시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2022-09-14

기후 우울증

우정구 논설위원 2019년의 일이다. 영국의 어느 사회운동가는 “기후변화 해결 없이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출산파업을 선언했다. 그는 “극심한 기후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살기 힘든 환경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아 출산파업 운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출산파업에 대해 한국의 젊은이 상당수가 동조하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온 적도 있다.모 환경단체는 “여름에 내린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 위기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을 호소하는 환경단체의 지속적인 환경관련 계몽운동에도 지구의 기후 위기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지구촌 곳곳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가뭄, 산불 등 다양한 재난이 일어나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지금과 같은 지구온난화가 진행된다면 지구촌 인구의 20억명 정도는 사하라 사막과 비슷한 기후 환경에서 살아야 될 지 모른다는 경고도 나왔다. 기후변화로 먹고 살아가야 할 식량 생산이 줄고 각종 재난이 빈발해지면서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지적에도 세상은 그저 무덤덤하다.유엔 산하 정부협의체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나서 지구의 기후위기 문제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뾰쪽한 묘책이 안 보인다.초강력 태풍 힌남노가 포항·경주에서 10명의 목숨을 빼앗고 엄청난 재산 피해를 입혔다. 지구촌의 기후변화가 앞으로 힌남노보다 더 강력한 태풍을 몰고 올 거란 기상학계의 전망에 갑갑한 마음이 앞선다. 코로나 블루처럼 기후변화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도 늘어난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울증 영역에 기후 우울증이 하나 더 추가된다는 얘기다. 우울한 소식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9-13

TK인구 ‘500만명’ 붕괴의 의미

심충택 논설위원 추석연휴 찾아간 고향마을 골목은 조용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해도 작은 산골동네지만 집집마다 귀성 가족들로 붐볐는데, 올해는 명절분위기가 거의 나지 않았다.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탓이다.정치·경제적 상징성이 강한 대구경북(TK)인구 ‘500만명’이 지난 3월(500만135명)을 마지막으로 무너졌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8월말 기준 대구인구는 237만1천936명, 경북인구는 260만9천356명으로, TK인구는 모두 498만1천292명이다. 행안부 인구현황을 가끔 들여다보면 TK인구가 매달 3천500여명에서 많게는 6천여명씩 줄어들어 아찔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TK인구 500만명은 정치적 지분이라는 무게감과 함께 경제적 의미도 컸다. 기업이 공장입지 선택을 할 때 가장 먼저 보는 데이터가 청년층 유출입 통계인데, 대구·경북은 이제 이 부분에서 매력적인 곳이 되지 못한다. 부산시도 인구 감소 걱정을 하는 것은 대구와 마찬가지다. 8월말 기준 333만1천444명으로 매달 1천400여명씩 인구가 줄고 있다. 청년인구가 살길을 찾아 떠나가는 비수도권 도시의 공통적인 비극이다.반면, 8월말 기준 경기도는 1천359만56명, 인천시는 296만3천117명으로 매달 인구가 2천~4천500여명씩 증가하고 있다. 인천시가 대구시 인구를 추월한 것은 아주 오래됐다. 유정복 인천시장(국민의힘)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서인부대’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서인부대’는 서울, 인천, 부산, 대구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경제 규모에서 인천이 서울 다음가는 국내 2대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뜻이 담겼다.부산과 대구는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지만, 인천은 경제자유구역과 원도심 개발 활성화로 인구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어 국내 2대 경제도시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낸 것이다.TK인구 감소는 곧 청년 인구 감소를 의미한다. 대구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순유출 인구 2만4천여명 가운데 20~29세 청년 인구만 9천여명이다. 청년 인구 감소와 노인 인구 증가는 결국 ‘지방소멸’의 문제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지극히 부정적인 현상이다. 청년층 인구의 중요성에 대해 UC버클리대 엘니코 모레티 경제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청년층 창조계급을 유인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간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모든 권력과 사회적 자원이 지금처럼 수도권으로 몰리는 한 국민은 좋은 직장과 교육 환경을 찾아 서울로 몰려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국토 전체를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인구위기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다.지역균형발전이 제대로 되려면 수도권에 집중되는 국가자산(일자리·교육·의료·교통·문화)을 규제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수도권규제를 완화하면서 비수도권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애초에 불가능하다.다시 강조하지만 사회 모든 분야에서 균형발전이 이루어지려면 최고 권력자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2-09-13

나만 괜찮아

조현태 수필가 추석을 턱 앞에 두고 11호 태풍 ‘힌남노’가 몰려와 엄청난 피해를 남기고 사라졌다. 먼저 소중한 생명을 잃고 침수로 재난을 당한 모든 분께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더구나 민속명절 한가위를 맞아 얼마나 상심이 크겠으며 추석인들 명절로 느껴질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부디 용기 잃지 마시고 이 재난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태풍 상륙 며칠 전부터 역대급 태풍으로 ‘사라’에 버금가는 진로방향과 위력이라고 모든 방송이 재난대비를 반복하여 알렸다. 필자는 태풍이 닥치기 전날(9월 5일) 감포 어느 바닷가에 갔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전촌항 주변에 횟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모든 횟집이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출입문을 제외한 모든 유리창문은 전부 두꺼운 합판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찾아온 손님도 돌려보내며 영업을 중단하고 있었다. 잠시 동안 여러 팀이 횟집에 왔다가 아쉬운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영업이익을 목적으로 횟집을 운영하는데 많은 팀을 돌려보내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영업에 박수를 보냈다. 충분히 그럴 법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니 각종 선박을 도로 위로 끌어올려 단단히 결박해 놓았다. 재난대비 방송을 듣고 충분히 이해한 대책으로 보였다.그런데 막상 태풍이 지나고 보니 예상 외로 피해를 입은 곳이 많다는 보도다. 재난대비 방송을 듣지 않거나 무시했을까. 아니면 ‘나는 괜찮아’로 뭉그적거리고 있었을까. 이도저도 아니면 자연의 위력보다 자신이 더 세다는 자기우월주의에 빠졌을까. 모르긴 해도 나름대로 최선의 대비는 했으리라 여긴다. 만조와 폭우가 겹치면 어떤 상황일거라는 예상을 방송사마다 종일 외쳤으니까. 정보에 가장 민감하게 살아가는 현시대에 재난방송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은 자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우치게 하는 사건이다.그날 양동마을에는 자동화재경보기가 작동했다. 억수같이 비가 퍼붓는 가운데 하룻밤에 세 차례나 소방차가 출동을 했다. 결국 화재경보가 울린 것은 습기로 인한 오작동이라는 설명이었고 경비원이나 소방대원이 완전 밤샘을 했다. 불이 나지도 않았는데 세 번씩이나 출동하였건만 소방대원은 전혀 귀찮아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다.화재감지 센서가 워낙 예민해 화재가 아닌 습기에도 작동했다면 예방효과는 확실하다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하룻밤을 꼬박 뜬눈으로 새웠더라도 불이 나거나 큰 사고가 난 것 보다야 훨씬 다행이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횟집에서 문과 선박을 단속하고 손님을 돌려보내더라도 태풍 피해를 덜 입는 쪽을 택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지 않은가. 태풍 때문이라면, 지하주차장이 침수되는 상황과 바닷가 월파 상황이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얼마만큼 예방에 노력을 하느냐에 달려있지 않겠는가.아직도 12호 태풍 ‘무이파’가 활동 중에 있다고 한다. 꼭 태풍만 아니더라도 살면서 위험하거나 불가항력이 닥칠 때를 미리 대비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잊지 않기만 바랄 따름이다.

2022-09-13

아름답게 오래되기 위하여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시간은 모든 것을 쓸어가는 비바람 / 젊은 미인의 살결도 젊은 열정의 가슴도 / 무자비하게 쓸어내리는 심판자이지만 // 시간은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거장의 손길 / 하늘은 자신이 특별히 사랑하는 자를 / 시련의 시간을 통해 단련시키듯 / 시간을 견뎌낸 것들은 빛나는 얼굴이 살아난다 // 오랜 시간을 순명하게 살아나온 것 / 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 / 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지는 것 //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노동자 시인이라고 불리는 박노해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 2010)에 수록된 시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의 1연에서 4연까지이다. 인용이 좀 길지만 모두 8연으로 된 시의 앞 절반을 가져와 보았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시간이 흐르면 늙고 낡아지고 때론 썩고 부패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스러지고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오래된 것들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였고, 오래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고 선언한다.지난 9월 8일,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가 세상을 떴다. 1952년 25살의 젊은 나이에 영국의 여왕이 된 그녀는 영국을 포함한 열여섯 개 나라(영 연방)의 군주로서 70년을 통치하였다. 물론 영국의 왕은 정치적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는 입헌군주국의 형식상의 최고통치자이기에 엘리자베스 2세 또한 영국의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비록 정치에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영연방의 수장이면서 영국 성공회의 최고 치리자로서(세계 성공회 전체의 수장은 캔터베리 대주교이다.) 영국뿐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의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일찍 왕위에 올랐고 오래 산 만큼 오랫동안 영국의 왕으로 재위한 까닭에 엘리자베스 2세는 2022년 기준으로 입헌군주제의 나라와 절대군주제의 나라를 모두 포함한 세계의 왕들 가운데서 최고령의 왕이었고, 최장기간 재위한 군주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이런 오래됨이 마냥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영국의 왕이 된 찰스 3세의 아내이자 자신의 며느리였던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비운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고, 남편 필립공을 먼저 보내는 슬픔도 겪어야 했다.제국주의 시대 영국의 왕족을 거쳐 왕이 되었기에 본인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제국주의 폭력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었고, 계속되는 군주제 폐지론에 시달리며 왕권이 흔들리기도 하였다. 실제로 자메이카와 앤티카바부다 등 카리브해의 섬나라들은 여왕의 서거를 계기로 영연방으로부터 탈퇴하여 공화국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한때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기도 했던 영국은 이제 많이 쪼그라든 것이 사실이다. 여왕의 시대가 저물면서 그 쇠퇴가 더 빨라질지도 모른다.오래된 것이 빛을 발하고 가치가 높아지고 고전으로 명작으로 그 삶을 이어가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다. 시인의 말처럼 비바람의 시간을 잘 견뎌내고, 노회하게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낡아가고 늙어갈 때 오래된 것이 진정 아름다울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2022-09-13

88년, 서울

영화 ‘서울 대작전’(감독 문현성)은 80년대 후반의 서울을 배경으로 올드카의 향연이 눈에 띠는 영화이다. 쏘나타, 포니 픽업, 르망, 프라이드, 스텔라, 그랜저, 포터, 프레스토, 베스타, 코란도 등 다양한 올드카들이 멋지게 튜닝된 모습으로 서울 공도를 질주하는 모습은 그간의 한국 영화에서 보지 못한 색다른 재미라 할 만 하다.하지만 보다 주목을 요하는 것은 이 영화가 ‘88년의 서울’을 재현해내는 방식이다. 그 모습은 그간의 작품들에서 그려진 ‘현실감 있는 서울’의 모습과는 다르다. CG를 통해 구현된 서울의 모습은 현실적이라기보다 만화적이라는 느낌에 가까우며, 이는 할리우드가 자신들의 80년대를 재현해내는 방식과 닮아있다. 더불어 극의 초반에 자신의 차를 압류당하고 빌린 차를 튜닝해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는 플롯의 구성은 최근의 카 체이싱 영화 뿐만 아니라 ‘니드 포 스피드’와 같은 게임 속 분위기를 연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채롭다.하지만 이는 ‘서울 대작전’이라는 영화가 80년대의 서울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화 속 서울의 모습은 촌스러움과 ‘힙’한 느낌이 한껏 과장된 채 서로 공존하는 문화적 혼종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대작전’은 재현의 실패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겠으나, 이를 작품의 실패로 간주하는 것은 다소 섣부른 진단이 아닐까 싶다.그렇다면 이 영화가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속에서 자주 노출되는 “서울 바이브”라는 단어를 곱씹어보자. 그때 그 시절과는 맞지 않는 ‘바이브’라는 단어는, 이들이 원하는 바가 충실하게 재현된 과거가 아니라 자신들의 리듬으로 재구성된 문화적 구성물임을 선언한다. 관객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 영화로부터 거대한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영화의 미학적 지향이 그 시절을 그 시절답게 재현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발칙하다고 할 만하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우리가 살아온 과거를 제멋대로 비틀고 찢어 조합했을 뿐인 영화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그간 레트로를 지향해온 다방면의 문화 컨텐츠가 자꾸만 놓치고 마는 과거의 요소를 억지로라도 붙잡고 있기 위해 노력한다. 예컨대, 그간의 레트로를 표방하는 컨텐츠들이 당대의 문화적 요소를 조망하면서 의도적으로 정치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는 흐린 눈으로 지나쳐간 것과 달리, ‘서울 대작전’은 88년 서울의 뒷모습을 영화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88올림픽의 재개발로 집이 사라진 철거민들의 모습과 그 위에 나붙은 세계화, 축제, 올림픽, 발전과 같은 표어들. 독재 정권의 관성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하지 못한 인물들의 모습. 깡패보다 악랄한 정권의 부역자들과 이들을 스쳐가듯 날아가는 검게 그을린 흰 비둘기의 모습에 이르기까지.그와 같은 부분적 요소들을 거쳐 다시 영화를 바라보자면, 이 영화가 원하고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한결 뚜렷해진다. 그것은 과거를 재현하고 곱씹으며 “그땐 좋았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재구성된 문화적 혼종성의 공간을 통해 이들이 욕망하는 바는 관습과 관행으로 물든 한국적 정치경제적 체질과의 단절이다. 이는 영화의 플롯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전 정권과의 단절을 원하는 신 정권과도 단절하길 원한다. 예컨대 이들에게 88년 서울이란 여전히 독재의 관습과 관행을 버리지 못한 채 ‘새로움’과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둘러썼을 뿐인 구시대에 다름없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88년의 서울’이라는 상징적 시공간을 단순한 재현이 아닌 패스티쉬의 방식으로 묘사한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레트로’를 지향하고 표방하는 문화 컨텐츠들이 지향해야 하는 바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도 이어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정치적, 경제적 위험성이 거세되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향락의 대상으로 전락한 과거가 아니다. 과거에 내재된 정치경제적 불안의 요소들마저 새로운 감각을 통해 문화적으로 재현해내는 감각이 필요하다. ‘서울 대작전’이 실패하는 바가 있다면, 그와 같은 재현이 보다 미학적이지 못했다는 점뿐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미학적 실패는 영화 전체를 퇴행적 좌파의 꿈으로 읽어낼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깊은 아쉬움을 남기는 지점이기도 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나름의 의미와 재미를 갖추고 있다. 그 시절을 얼마나 ‘그 시절답게’ 재현하는 가가 아니라 그 시절에 미처 현실화되지 못한 ‘가능성’을 탐문하고자 시도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대작전’이 던지는 메시지란 “그땐 좋았었지”같은 싸구려 노스텔지어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란 “그리하여 우리에게 미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까울 것이다.

2022-09-13

낭만과 실용 사이

아이폰의 새로운 시리즈가 출시되었다는 소식에 괜스레 통장 잔고를 확인해본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잘 쓰던 핸드폰의 속도가 어쩐지 급속도로 느려진 것만 같다. 카메라 화질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건 느낌에, 그립감도 만족스럽지 않고, 액정이 너무 작은 것은 아닌지, 용량이 모자란 것은 아닌지, 쓸데없는 투정을 늘어놓게 된다. 아이폰 시리즈에 추가된 기능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유하기만 해도 금방 편리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내가 얼마나 많은 기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헤아려본다.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펜슬, 에어팟과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헤드폰, 초경량 노트북…… 요리하다가 ‘시리야, 8분 타이머’하고 외치면 정확한 시간에 알람이 울리고 펜과 노트는 물론이거니와 지갑을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다. 이런저런 기기를 용도에 맞게 사용하다 보면 문득 아, 얼마나 편안한 세상인가, 하고 감탄하게 된다.스마트해져 가는 세계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소비하게 되는 것들도 있다. 애플워치를 사고 싶은 이유는 친구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터치 한 번으로 집 안의 모든 것이 제어된다는 리모컨에 눈독 들이는 것은 인터넷에서 마주친 광고 때문이다. 많은 물건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발 빠르게 주시하지 않으면 늦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말도 안 되게 편리하다’는 추천에 구입한 로봇청소기에는 뽀얀 먼지가 내려앉았고 ‘죽은 빵도 살려낸다’는 토스터는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다. 이 모든 소비가 정말 나의 의지는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작년 12월, 나는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 동네로 이사 왔다. 이곳이 마음에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저층 빌라들로 이루어진 단지는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개성 강한 맛집과 카페들이 넘친다는 것도 좋았다. 커다란 마트나 병원처럼 편리에 의한 공간은 부족하지만 산책할 수 있는 거리가 잘 조성되어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우리 집이 꼭대기 층이라는 것이었다. 승강기가 없는 건물의 4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불편하다. 지하 주차장에서 올라가게 되면 숨이 가빠오고 거기다가 손에 든 짐이라도 많은 날엔 팔다리가 바들바들 떨린다. 엘리베이터가 얼마나 훌륭한 발명품인지 여실히 깨닫는 요즘이다.재밌는 점은 승강기가 버젓이 존재하는 건물에서도 사람들은 일부러 계단을 이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건강상의 목적뿐만 아니라 자기 육체를 사용하여 걷는 감각을 느끼고자 할 때가 있다. 온갖 단점이 넘쳐나는 복층 구조가 ‘자취생들의 로망’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자명하다.인간은 실용적인 것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무의미한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고 있다. 그러니까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의 가사, ‘밤늦은 항구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리를 들어’보는 마음이 우리의 시간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어주는지 안다. 편리하고 실용적인 상품보다 다음날 시들어버리고 마는 꽃 한 송이가 주는 설렘도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면서 눈물 흘리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이 때론 우리 삶을 지탱하는 놀라운 힘이 될 때가 있다.물론 인간은 낭만만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 낭만을 꿈꾸는 사람들은 그것이 삶으로 들어왔을 때 예상치 못한 부조화를 겪게 될 것이다. 그것은 쓸데없는 일에 힘을 쏟는 것이며 책임보다 무책임의 영역에 더욱 가깝다. 어슴푸레한 새벽에 만나게 되는 직장인의 무거운 발걸음에서 낭만을 발견하는 사람은 그날 아침 출근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너무 싫은 사람마저도 사랑해버리겠다는 포부를 외치는 사람은 상사의 무차별적인 폭언에 시달리면서도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는 말단 직원이 아닐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현실에 발을 디디면서 살아가는 이들을 마주치면 낭만이라는 단어는 허무하게 휘발되고 만다. 먹고 사는 일은 낭만보다는 실용에 무게를 더 싣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때때로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쉽다. 세상은 숨 쉴 틈도 주지 않는 답답한 곳으로 느껴진다. 모든 것을 쓸모 있음과 없음으로 구분한다면 나 자신의 존재는 과연 유의미한 것인지 고뇌할 수밖에 없다.그러니까 살아간다는 건 낭만과 실용, 이 두 세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에 발붙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들에 타협하면서도 허상에 가까운 관념을 꿈꾸기 위해 갖고 있는 에너지를 아무렇게나 소비하는 것.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분명히 어렵다. 낭만과 실용을 오가며 고민하는 것 자체가 감상적 태도로 현실을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폰과 꽃 한 송이 사이에서 갈등하는 오늘을 지나고 조금 더 선명하게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내일이 올 것이라고 기대해보기로 한다.

2022-09-13

책 읽기의 미래, 미래의 책 읽기

독서하는 노인의 모습을 묘사한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 요즘 주변에서 더 이상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세대들의 등장과 그로부터 초래된 문해력의 위기에 대한 우려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곤 한다. 한 세대 내에서 일상적으로 쓰던 말들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말들로 채워지는 것은 한 세대가 스러지고 다음 세대가 등장하는 당연한 시대의 변화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이 위기에 대한 예감을 단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것은 이 위기가 자연스러운 변화라기보다는 인류가 지금까지 세워 올리고 영위해왔던 문명들이 본질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진단에서 비롯된다.지금 우리에게 제기되고 있는 문해력의 위기에 대한 진단은 인류가 구축해온 문명들이 동시에 변곡점을 지나가고 있는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전세계적인 상황으로 당연히 책이라는 미디어가 이끈 문자와 서사의 문명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적인 상황으로 한자라는 중국에서 기원한 문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자 문명의 변화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 층위의 문명들이 지금 여기 한국에서 어딘가 그 형태를 드러내지 않는 새로운 문명을 향해 전이해가고 있는 상황이 지금 제기되고 있는 문해력의 위기의 문명적 기반이다.종이가 낱낱으로 흩어지지 않게 한 쪽 끝을 묶어 고정시킨다고 하는 간단한 아이디어에 불과했던 책이라는 미디어가 기반이 되어 쌓이기 시작한 인류의 지식은 지금 우리의 인간다운 문명을 보증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로 작용해왔다. 사실 이는 문자의 문명이라기보다는 서사의 문명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데, 종이 낱장이 아닌 3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길게 이어붙여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지적 능력을 축적하고 확인하는 과정은 이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처럼 빠르게 정보를 습득하고 반응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에 책 한 권을 읽고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내가 원하는 정보에 닿기 위해 서론부터 읽어야 하는 것 역시 비효율적이다. 지금 책이라는 미디어 문명이 겪고 있는 위기와 변화의 요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동아시아적인 상황에 국한해서 한자 문명이 겪고 있는 위기는 조금 국면이 다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개념들은 대부분 한자어로, 조선시대 이래로 내려온 개념들과 서구의 새로운 문명의 개념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한자표기가 아니라 한글로만 표기되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개념을 받아들일 때 그 한자어의 한자 의미를 떠올려 의미를 파악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영어를 떠올려 파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이해할 때 ‘可能性’이 아니라 ‘possibility’를 떠올리면 오히려 이해가 더 분명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한자교육을 강화한다는 식으로 문명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하나의 책을 읽는 데는 자주 어려움이 발생한다. 툭툭 튀어나오는 어려운 단어들 때문에 사전을 계속 찾아봐야 한다는 문제가 비교적 사소한 것이라면, 책을 쓴 사람의 생각, 이른바 주제를 알아내기 위해 길고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긴 독해의 과정을, 서사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은 본질적인 어려움이다. 그 힘든 과정을 견뎌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판단의 변화가 바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명의 변곡이 가지고 있는 요체이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언제나 바로 접할 수 있는 시대에 그 길고 지루한 과정을 참아내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비효율성만큼 지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는 또 없는 것이다. 매클루언이나 플루서 같은 미디어 학자들이 진단하고 있듯, 문자와 책, 글쓰기 같은 문명들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책’, 혹은 ‘책읽기’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2-09-12

그 길밖엔 없어 <Ⅹ>

허 형사는 아내가 죽던 날이 생각난 듯 왼손으로 턱을 괴었다.-그렇지요. 대부분 그렇다 하더라고요. 이게 현금을 바로 주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죠. 상처 입은 사람들 손에 현금을 쥐여 주니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좀 그렇지요. 그게 어떤 돈입니까? 자기 가족들이 달고 있던 장기를 판 돈 아닙니까? 살아 있는 사람 마음을 긁기에는 충분하지요. 얼마 되지는 않지만.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 더 그렇게 만들지요. 하룻밤에 써 버리기에 딱 적당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현금으로 안 줍니다. 계좌로 쏘지요. 이게 그런 것이. 통장에 들어온 돈을 다시 뽑아 쓰는 게 의외로 힘들거든요. 하하.웃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우현은 어쩔 수 없었다.-웃어서 죄송합니다.우현이 말을 덧붙였다.-아니야. 이젠 괜찮아. 시간이 좀 지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웃어도 돼. 그건 그렇고. 뭐 들은 것 없어?허 형사가 물었다.-네? 올더앤베러 회장 사건 말입니까?-내가 우현 씨 만나서 물어볼 것이 다른 게 뭐 있겠어? 뭐라도 들은 게 있거나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말 좀 해줘.허 형사가 우현의 입을 바라보았다.-하아.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 일단 저에게 들어온 물건은 없습니다. 보통 물건이 들어오면 이식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바로 수술을 받거든요. 사건 후로 인공 장기 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지 싶습니다. 방금 말씀드렸지만 사건 이후에 제가 연결했던 수술들은 그 사건하고는 관계없는 것입니다. 괜히 엮지 마십시오. 또 보자. 뭐가 도움이 될까요. 수사 내용을 조금 알아야 제가 말씀드릴 것이 더 있지 싶은데요. 제게 말씀해주실 것은 없습니까?허 형사가 담배 한 개비를 새로 입에 물었고, 우현이 불을 붙였다.-음. 별로 진척된 것이 없으니까 우현 씨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시체가 발견된 차량이나 그 주위가 범행 장소는 아닌 것 같아. 시간이 안 맞아. 인공 폐가 신제품이라 그 폐에서 보내오는 신호가 있는데 정확하지는 않아도 대강의 거리를 알 수 있다 하더라고. 추정해보니 남해안 쪽 어딘가에서 범행을 했던 것 같아.우현이 붙여준 담배의 끝이 발갛게 타들어 가는 것을 보며 허 형사가 말했다.-그래요? 보통 GPS나 그런 것은 없는데.-그렇지. 그런데 이번에 그 폐는 신제품이라 작동이 잘 되는지 어떤지 모니터링을 하려고 달아 놓았다 하더라고. 기계가 작동을 멈추면 신호가 오지 않고, 기계가 켜지면 신호가 오고. 그렇지 않아도 저번 주에 제조회사에서 연락이 왔어. 다시 기계가 켜졌다고.허 형사가 담배 끝을 후 하고 불었고 우현은 물을 마셨다. 그리고 말했다.-그러면 끝난 것 아니에요? 신호를 따라가서 찾으면 되겠네요.-그게 아니야. 신호를 분석하면 대강의 거리는 나오는데 정확한 위치를 말해주지는 않거든. 거리로 보면 중국이나 일본이라네. 그런데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거지. 신호 추적기 같은 것을 가지고 일본이나 중국으로 건너가 돌아다니면서 찾으면 몰라도. 말이 쉽지. 그걸 어떻게 하나. 어딘지 알아서? 설령 가까이 가더라도 누군지 알기 힘들다네. 대강의 위치만 아는 거지.허 형사가 코끝을 찡그리며 대답했다.-어쨌든 물 건너간 거네요.-그렇지.-으음. 제가 요즘은 국내 일만 하다 보니 그쪽으로 주로 누가 하는지 잘 몰라요. 다만 하나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일본이나 중국 쪽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거. 일본은 중고 물건을 잘 안 쓰는 나라고, 중국은 이 년 전부터 경계가 워낙 삼엄해서 물건들이 들어가기 어렵거든요. 공안들이 뜯어가는 것이 많기도 하고. 제가 중국 쪽 비즈니스를 접은 이유도 그겁니다. 오히려 그 정도 거리라면 러시아나, 몽골 뭐 이런 곳도 염두에 두실 필요가 있을 겁니다. 말하고 보니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네요.우현은 말을 하면서 허 형사를 살폈다. 우현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했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아니야. 좋은 충고야. 일본, 중국이 어떤지는 나보다 우현 씨가 더 잘 알잖아. 고마워. 그런데 지난번 내게 보낸 문자 말이야. 무슨 뜻이야?우현의 말이 끝나자말자 허 형사가 물었다.-아. 네. 다른 뜻은 아닙니다. 제가 뭐라고 보냈는지 기억도 잘 안 나네요. 허 형사님이 제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나 싶어서 좀 강하게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허 형사는 아이스 커피의 얼음을 어금니로 부숴 먹었다. 뿌드득.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아닙니다. 문자로 보내다 보니까 좀 딱딱해졌었나 봅니다. 오해하기 딱 좋지요. 이래서 마주 앉아 애기를 나눠야 한다니까요. 그래서 제가 연락드린 것 아닙니까? 하하. 우현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허 형사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허 형사가 입을 열었다.-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가지고 있던 콩팥이 어디서 온 건데?-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언제 어디서 수술했는지도 기억이 안 납니다. 그냥 기억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뿐입니다. 이미 지난 일을 뭘 알려고 그러십니까?우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허 형사의 눈을 피해 천장의 선풍기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이어서 덧붙여 말했다.-안 바쁘십니까? 저도 형사님과 오래 앉아 있으면 안 좋습니다. 그만 일어나시지요. 커피값은 제가 내겠습니다.허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현은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했고, 허 형사는 커피숍의 문밖에서 우현을 기다렸다. 우현이 문을 열고 나오자 허 형사가 말했다.-잘 마셨어. 참고할 만한 이야기도 고맙고.-별말씀을. 그러면 저 먼저 가겠습니다.우현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돌아서서 가려는 우현을 허 형사가 불러 세웠다. 그리고 물었다.-참. 우현 씨. 전에 그렇게 말했었잖아. 이식 수술할 때 의사 옆에서 보조를 직접 선다고. 말이 보조지, 자기가 거의 다 한다고 했지 않나?-아, 예. 그거요? 제가 그냥 허세를 좀 부린 거지요. 제가 감히 어떻게.-아니야. 그런 게 아니고. 그러면 뗄 줄도 아는 거지?-네?/김강 소설가

2022-09-12

뱃살 다이어트 운동법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남녀노소 할 것없이 다이어트를 하는 최대 목표는 뱃살을 빼는 데 있다. 상당기간 다이어트를 해도 뱃살을 빼는 것은 쉽지않다.뱃살을 빼는 데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뭐니뭐니해도 걷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이다. 특히 짧은 시간 빠르게 걷는 것보다 오랜 시간 천천히 걷는 게 뱃살을 빼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다.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은 50~70세 폐경 여성 42명을 대상으로 특정 걷기 방식이 복부 피하 지방(피부 바로 아래의 뱃살)과 내장 지방(신체 깊숙이 저장돼 장기를 감싸는 지방)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분석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을 무작위로 오랜 시간 천천히 걷는 그룹과 짧은 시간 빠르게 걷는 그룹, 두 그룹으로 나눠 30주 동안 일주일에 4일씩 걷게 했다. 오랜 시간 천천히 걷는 그룹은 30주 동안 시속 5.5킬로미터의 속도로 하루에 약 54분 운동했으며, 짧은 시간 빠르게 걷는 그룹은 시속 6.6킬로미터로 하루에 약 45분 운동했다.연구 결과, 천천히 오래 걷는 그룹의 참가자들만 지방이 크게 감소됐다. 천천히 오래 걸은 그룹은 3.9%의 지방 감소를 보인 반면, 빠르고 적게 걷는 그룹은 1.8%의 지방만 감소됐다. 또한, 천천히 오래 걷는 그룹은 피하 지방뿐 아니라 내장 지방 수치도 감소됐다. 이는 천천히 걸을 때 혈액 속 지방산이 먼저 중요한 에너지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국제학술지‘뉴트리언츠(Nutrients)’에 최근 게재된 이 연구는 “오랜 시간 천천히 걷는 것이 격렬한 운동 없이 체지방을 줄이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효과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오랜시간 천천히 걷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뱃살빼기에 더 좋다니 건강상식에 꼭 추가해둘 가치가 있는 건강상식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9-12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추석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 6일 11호 태풍 힌남노가 포항, 경주지역에 할퀴고 간 큰 상처를 회복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 추석연휴가 끝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위해 달려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4~13일 10일간 발생한 울진지역의 대형 산불재난에 이어 올해만 경북지역에 벌써 두 번째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대형재난이다. 울진 산불은 극심한 산림 가뭄이, 태풍 힌남노는 높은 해수면 온도가 원인이다. 두 재난 모두 석유, 석탄 등 화석에너지 사용에서 배출되는 온실효과가스로 심화된 기후변화가 원인이다.이런 온실효과가스의 배출이 지속돼 지구 평균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해 인류가 되돌릴 수 없는 기후재난으로 인한 지구파멸을 막기 위해 전세계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량(탄소예산)을 시간으로 환산하니 7년도 되지 못한다. 작년 2021년 4월 22일 ‘지구의 날’에 동대구역 광장에 세워진 기후시계가 최근 보여준 탄소예산 시간은 이제 6년 이하다.우리 인류의 생사를 결정지을 최소한의 시간인 골든타임이 무심하게 줄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2015년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참여하여 자국의 온실가스 배출책임과 감축역량을 고려한 자발적 감축계획을 제출할 것을 약속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 ‘파리협정’이 체결됐다.여기에 더해 유럽연합과 미국 등 선진국을 필두로 온실가스로 대별되는 탄소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고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탄소는 제거·흡수해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빠르게는 2040년 늦어도 2050년까지 달성할 것을 약속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20년 10월 대통령 국정연설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했다.그리고 지난 2021년 9월 ‘2050탄소중립’과 환경과 경제의 조화를 비전으로 한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전세계 14번째로 제정되었으며, 금년 3월에 시행되었다. 이 법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대비 35%이상 감축을 명시함과 동시에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라는 획기적 제도를 도입했다.‘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는 국가와 지자체가 예산이나 기금을 짤 때 온실가스 감축효과를 평가하여 온실가스를 줄이는 사업은 키우고, 그 반대는 예산을 줄이는 방향으로 재정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제도다. 국가재정법 개정(2021년 6월)과 함께 2023년 회계연도부터 국가재정에 우선 적용되었고, 지방정부는 관련 법령 정비와 제도 도입을 위한 관계기관 협의체를 구성하고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많은 지자체가 관망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 경기, 경남과 대전 대덕구 등은 선도적으로 시행 중이다.9월 2일 정부가 국회에 제안한 2023년도 예산안에 포함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를 보면, 기재부를 포함 13개 중앙정부의 288개 사업, 11조8천828억원 규모이다. 이들 사업에는 상하수도 혁신기술개발이나 환동해 블루카본센터조성과 같이 대구경북이 주도해야 할 사업이 주목된다.

2022-09-12

MZ세대와 인적자원관리 문화

정상철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미래의 기업과 사회는 MZ세대가 만들어 간다. 요즘 어디를 가나 MZ세대가 조직관리의 이슈가 되고 화두가 된다. 개인의 성장과 개인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초개인화 시대를 사는 새로운 세대와 함께 하는 과도기적 시대로 볼 수 있다. MZ세대를 변화시키려는 것은 시대의 흐름과 특징을 파악하지 못한것이고 이것은 흘러가는 인류의 역사인 것이다.MZ세대는 1980년대 초~199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엄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 세대가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인구 비율이 17세부터 40세까지 1천700만으로 약 35%를 차지하고 있고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이기도 하다. 조직의 방향에 맞춰 하나의 지침을 내리면 따르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지만 MZ세대는 팀원이 5명이면 5가지 리더십을 필요로 할 정도로 개인 취향과 개성이 각기 다르다.MZ세대 특징을 살펴보면, 경제관념이 밝고 돈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어 정보를 찾을 때는 가성비를 비교하지만 자신을 나타내야 할 때는 플렉스(Flex)를 한다. 자신의 워라벨을 중요시하기에 1년안에 퇴사하는 경우가 많고 미래보다 지금 현재에 포커스를 둔다. 개념적으로 보면, 자기애가 강하고 희생보다는 내 감정, 나의 만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이다.우리사회도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후 MZ세대를 중심으로 대퇴사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MZ세대의 일자리 선택 기준은 연봉이 1위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개인의 발전가능성, 업무량, 출퇴근 거리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주52시간 시대에 기성세대는 잔업을 하면 돈을 벌어 좋다지만 젊은 세대는 거부하는 경향이 높은데, 돈 벌어서 부자 되는 것보다 삶의 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직장에서 삶의 터전을 위해 ‘회사 인간’으로 살아온 기성세대와 달리 본인 생각과 맞지 않으면 쉽게 이직을 한다.우리 사회도 선진국과 같이 집은 소유에서 삶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등 국가복지제도 흐름도 변해가고 있다. 달라진 세대에 뒤처진 조직과 사회의 흐름이 이어진다면 발전의 한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기업에서도 MZ세대 분포가 점점 늘어나고 주세대가 바뀌고 있어 기성세대에 맞는 인사운영제도로는 효율적인 시너지가 나오기 어렵다.선진기업에서는 인사관리보다 인적자원관리 문화로 진화해가고 있다. 즉, 100의 능력을 갖춘 사원이 그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150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고 Team Care보다 Individual Care로 개인 성장을 위한 동기부여의 인적자원관리 문화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선진기업은 입사하면 나의 성장비전이 내 직속 상관이 상세하게 수립해주어 함께 움직이고 성장하는 조직체계로 운영되며, 상사는 부하직원의 성장플랜수립이 인사평가의 20% 차지한다. MZ세대에 연계하여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발전에 맞는 인적자원관리문화가 미래사회의 시너지를 창출하는 일류기업이 되는 것이다.

2022-09-12

자연재난의 경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1주 전 포항지역을 강타한 태풍 ‘힌남노’의 상흔은 깊고도 참혹했다. 하천과 강물은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금세 평정을 되찾아 유유하게 흐르고 있지만, 역대급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는 상상을 초월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피해와 손실을 가져왔다. 가증스러운 불청객 가을태풍이 영남의 남동부지역을 휩쓸어 예기치 못한 인명피해와 수많은 풍수해를 입어 그 어느 때보다도 시름겹고 망연자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을의 길목에 들이닥치는 태풍은 가공할 위력으로 삶의 터전을 위협하며 여지없이 사람들을 곤경과 실의에 빠져들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추석날 오후, 자전거를 타고 둘러본 태풍피해의 현장은 쑥대밭이 따로 없을 정도로 비참하기만 했다. 과연 어디까지가 하천이고 도로이며 주거시설과 공장지역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수마(水魔)는 인정사정없이 엄습하고 파고들어 삼키고 휘젓어 댔으니, 도저히 믿기지 않은 현실 같았다. 뿌리채 뽑히거나 줄기가 꺾어진 나무들이 즐비하고, 가로등이 엿가락처럼 휘어지거나 육중한 콘크리트 하천 둘레길이 끊어졌는가 하면, 흙탕물을 뒤집어쓴 차량이 인도 차도 구분없이 뒤엉키고 부딪쳐 있으니, 정말 몸서리 쳐지고도 남을 기현상이었다.더욱이 냉천 하류의 범람으로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대들보라 할 수 있는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압연지역 대규모 침수사태는, 포스코 49년 조업 사상 초유의 전 공장 조업중단과 물류 마비를 초래해 실로 천문학적인 피해와 최악의 위기에 처해 있다. 필자의 라이딩 코스로도 자주 오가는 포항제철소 앞 6차선 도로가 성인 키 높이 이상 뻘물로 잠겼으니, 다품종의 철강제품을 마무리 생산하는 냉천 인근의 제철소 내 공장 곳곳은 얼마나 아수라장이었을까? 지하실 설비로 진흙탕물이 유입되고 공교롭게도 전기실 화재까지 발생돼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재해와 재난 앞에 아연실색할 따름이었다.지하주차장 침수로 7명의 인명피해 참사가 발생된 곳을 숙연한 마음으로 찾았다. 작년 6월 그 아파트 경로당에서 어르신들께 장수사진 촬영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 필자로서는 더욱 애절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군데군데 진흙탕과 쓰레기 더미, 침수라인이 역력한 차량 수십대가 발 묶인 아파트 단지는 참담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지울 수 없었다.순식간에 너무나 많은 피해와 슬픔을 당해 안타깝기만 하다. 작년 8월 하순경의 죽장수해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에 또 다시 걷잡을 수 없는 자연재난을 겪게 된 포항시민으로서는 침울함과 함께 분통을 터트리기도 할 것이다. 태풍이나 집중호우로 냉천의 범람위험이 수차례 지적·제보되고 구룡포 등 연안 재해방지 사업 등이 시급한데도 예산타령과 주민 편익사업에 우선순위가 밀리니 말이다. 포항지역이 ‘연안 위험지도’ 최고등급인 5단계임을 감안하면 주저하거나 미뤄서는 안 될 일이다.자연재난의 경고는 이처럼 엄중하고 혹독한데, 철저한 대비나 선제적인 조치를 소홀히 하게 되면 또다시 악순환만 되풀이될 뿐이다.

2022-09-12

맞이하다, 슈룹(우산의 옛말) 아래서

양태순 수필가 곧 추석이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태풍이 지나간다. 늘 탈이 없이 지나가길 바라지만 올해는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추석맞이를 준비하고 있었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슈룹이 간절하다.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자리는 끔찍하다. 시간당 쏟아부은 폭우로 포항의 일상이 마비되었다. 뉴스 화면에서 확인하는 곳곳의 침수 지역과 하천 범람, 정전 상태 등이 놀랍고 무섭다. 이맘때면 수확 직전인 과일, 막바지 힘을 내는 벼농사와 고추 농사가 재해 앞에 속수무책 당했으리라. 떨어지고 잠기고 무너진 처참한 모습에 망연자실도 잠시 모두가 원상복구에 손을 보탤 것이다.어감의 차이가 미묘한 말이 있다. 사전에 찾아보면 어떻게 다른지 차이를 모르겠는 단어가 있다. 평안과 안녕처럼 맞이하다와 맞다가 그렇다. 맞이하다는 오는 것을 맞다, 맞다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오는 어떤 때를 대하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엇비슷한 경우 둘 다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태풍을 맞이하다와 태풍을 맞다가 아리송하다. 지금껏 맞이하다는 기쁘고 좋은 일에만 써왔는데 말이다.그래서 맞이하는 일에는 가벼운 설렘이 따라온다. 손님을 맞이하려면 집을 깨끗이 하고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쁜 중에도 기분이 좋다. 새해를 맞이할 때면 지난해를 돌아보고 반성할 것은 하고 잘한 것은 뿌듯해하며 새날을 향한 다짐으로 희망에 부풀기도 한다. 생일이나 승진, 기념일에는 마음껏 축하하기 위해 작은 선물과 꽃을 준비하며 대상자보다 준비하는 사람이 더욱 설레게 된다. 일련의 과정이 번거롭긴 하지만 함께 하는 즐거움이 더 크기 때문에 기꺼이 행한다.맞다는 불시에 찾아오는 불청객인줄 알았다. 예정된 것이 아니라 갑자기 맞아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혼란한 상황을 만든다고 믿었다.이번 태풍이 그런 상황이었다. 며칠간 뉴스에서 태풍 ‘힌남노’를 대비해야 한다, 어마무시한 초강력 태풍이라는 둥 엄청 열심히 홍보했다. 어디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당황하면서도 나름 대비를 했다. 일 층에 가게가 있는 사람들은 모래주머니를 쌓고 중요한 것은 높은 곳에 올렸고 집에는 창문 테이핑을 하고 자동차를 지하 주차장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태풍은 상상하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악질인 태풍을 맞다고 해야만 할 것 같다.인생에서 맞아야 할 것은 많다. 자연재해가 일부이긴 하지만 더 많은 경제적 감정적 문제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픔, 사고로 인한 정신과 신체의 어려움,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한 불안, 좌절, 사회생활에서 맞는 관계의 복잡성이 맞서 싸워야 할 문제다. 이럴 때마다 최선을 다해 견디다 보면 지나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혹독한 태풍이 지나고 파란 하늘에 건재한 태양처럼.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으면 씁쓸하다. 사실 우산을 쓴다고 비를 다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신발이나 종아리는 축축하게 젖기 십상이다. 덩치가 큰 사람은 어깨도 젖는다.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은 우산이 걷는데 방해가 되는 듯해도 쉽게 우산을 접지 못하고 살대가 부러지거나 찢어져야 포기가 된다. 아마도 붙잡은 우산이 미약하지만 의지가 되는 든든함이지 싶다.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는 일이다.부모님은 우산같은 존재다. 아주 어릴 때는 친구와 싸웠을 때 무조건 내편이 되어 우는 나를 어르고 달랬다. 친구를 혼내주지 않아도 힘이 되고 든든했다. 살면서 궂은일, 험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기댈 수 있는 뒷배가 되어주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나보다 더 기뻐하는 바보다.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어도 내리사랑은 변함없이 비를 맞지 않도록 기꺼이 우산이 되어준다. 언제나 자식을 향한 마음길을 열어두고 눈비 걱정하며 그 그늘로 몸을 들여 쉬어가라 무언의 눈길로 어루만진다. 슈룹, 이름 안에 사랑을 내주고 가없는 사랑을 품는 뜨거움이 묻어난다.올 추석에도 보름달이 뜰 것이다. 어깨가 젖을 것을 알면서도 두 사람이 쓰기도 하는 우산이다. 그것은 서로를 생각하는 따뜻함이다. 사랑이 가득한 우산 아래서 얼굴을 맞대고 상처를 보듬으며 오순도순 맞이하는 추석을 그려본다.

2022-09-07

참치(다랑어)가 전하는 메시지

최근 항·포구에 버려지는 참치에 관한 뉴스가 심심찮게 들린다.정치망(바다에 고정해놓은 그물)에 걸리는 참치의 양이 어획 쿼터량을 넘어서자, 어민들이 참치를 바다에 버리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버려진 참치는 해류에 떠밀려 항·포구, 해수욕장 등에 밀려들고 부패하면서 사회적인 이슈로까지 부상했다.참치(다랑어)는 남획을 방지하고 지속가능한 어업을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인 ‘지역수산관리기구(egional Fisheries Management Organization)’의 어획할당량 협약 대상이다.우리나라는 지역수산관리기구 중 WCPFC(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estern and Central Pacific Fisheries Commission)와 IATTC(전미열대참치위원회·Inter-American Tropical Tuna Commission)에서 매년 약 3만t 가량의 참다랑어 등의 어획량을 할당받고 있다. 이를 넘어설 경우 국제적인 제재가 가해진다.문제는 기후변화로 동해 수온이 높아지면서 따뜻한 바다에 사는 다랑어의 개체수가 급격히 늘었다는 데에 있다.원양어업으로 할당량을 채우던 과거와 달리 본국에서 할당량 보다 더 많은 참치가 잡히면서 어민들이 참치를 버리는 상황까지 발생한 것이다.우리나라 어족자원의 변화는 벌써 수십 년 째다. 찬 바다에서 서식하는 대구와 명태는 이미 자취를 감췄고, 일본 등에서 인기 어종인 다랑어는 양식뿐만 아니라 어업으로도 매년 할당량을 넘어선다.기후온난화로 바다가 따뜻해지는 것은 어족자원의 변화만 수반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기상이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특히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북서태평양의 기후변화는 예사롭지 않다. 우리나라의 해수면 상승과 어족 자원의 감소, 해양 환경의 변화 등이 북서태평양의 환경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실제 우리나라 해양과학자들은 2006년부터 포세이돈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북서태평양 환경을 연구한 바 있다.포세이돈 연구에서 지적한 환경변화로 ‘태풍’이 먼저 손꼽힌다. 북서태평양에서 만들어지는 태풍의 진원지가 점점 북쪽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자 태풍 역시 점점 북쪽으로 올라오는 중이다. 이 경우 한반도가 더 강한 태풍을 맞이할 확률이 높아진다.이유는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의 강도 때문이다. 태풍은 바닷물의 온도가 높은 열대 해역에서 상승 기류가 발생하면서 만들어진다.그런데 최근 기후변화로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면서 태풍에 전달되는 에너지가 아주 커졌다. 태풍의 크기와 세기가 점점 강해지는 이유다. 실제 최근 태풍 피해 집계를 보면, 2000년 이후 발생한 태풍의 위력이 과거에 비해 훨씬 컸다는 점을 알 수 있다.태풍이 발생, 한반도에 올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에 방점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에 관한 고민이 있어야 점차 강해지는 태풍에 대처할 수 있다.올해 11호 태풍 힌남노 같이 순간최대풍속 40m/s가 넘는 태풍은 대처만으로는 역부족이다.어족자원의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어족자원을 지속가능성보다는 소비의 개념으로만 받아들인다.흔히 어족자원의 변화는 경제의 대체재 관점으로 해석된다.값비싼 다랑어가 대거 잡히니 수출효자 노릇을 할 수 있고, 또 국내에서도 원활히 유통돼 국민 먹거리로 등극할 수 있으니, 우선 어획허용량을 풀어달라고 요구한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막을 수는 없으니, 지금의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여 상황을 풀어나가자는 논리다. 이는 멸종위기 어족자원이 다른 어종으로 대체가 가능하고, 양식이나 다른 방법을 통해 수산물을 조달할 수 있다는 용기의 발로로 보인다. 정현미 작가 대체재를 통해 수산물을 섭취할 수 있는 자유는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하지만 지금 바다가 내주는 어족자원은 자연의 한 모습이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다양한 바다생물들이 멸종의 위기에 내몰리고 동시에 양식을 통해 특정 개체만 인위적으로 독점된다.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달라지고,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문제들도 촉발된다. 대응과 대처 역시 보호해야 할 생물로의 지위보다는 폐기처분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이뤄진다.앞으로 힌남노와 같은 태풍이 더 자주 발생하고 더 큰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한다. 결국 자연은 순환이고 흐름이며, 전 지구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물고기 한 마리, 바람 한 점에도 자연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한 시점이지 않을까.모쪼록 힌남노가 남긴 상처가 빨리 아물기를 바라본다.

2022-09-07

태풍유감 명절유감

장규열 한동대 교수 지나갔지만 너무 아프다. 밤새 소동이었지만 금세 맑은 하늘이다. 밖은 거짓말처럼 멀쩡한데, 병든 포항이 되고 말았다. 자연 앞에 약한 게 인간이지만, 이렇듯 깜쪽같이 할퀴고 내뺀 힌남노는 해도 너무했다. 하필 하늘의 비바람이 바다의 만조기와 겹쳐 이 동네만 아수라장이었다. 돌아가신 님들의 명복을 빌고 다친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 밤을 꼬박 새운 북새통에서 깨어나 마주친 현실에 지역은 한동안 몸살을 앓을 터이다. 아프지만 다시 일어서야 한다. 추석명절이 코 앞이라 더욱 힘들다. 명절 식탁에 올릴 이야기를 만드느라 정치권이 별 소릴 다 하지만, 지역의 추석 밥상은 태풍이 먹어치울 판이다.지난 놈을 어쩌랴. 사람이라면 쫓아가 붙들고 하소연이라도 하겠지만, 자연이 부린 조화에 어쩔 도리가 없다. 회복과 복구, 위로와 공감은 온통 사람의 몫이다. 태풍이 남긴 뒷 소식은 온통 포항소식 뿐이니, 나라가 지역을 또 얼마나 챙길지 두고 보아야 한다. 지역에서 먼저 일어서는 용기를 찾아야 한다. 사람의 사정을 뒤집어 놓고 돌아서면 나 몰라라 하는 게 정말 태풍 뿐일까. 온갖 약속으로 표심을 흔들어 자리를 차지하고는 당선 후엔 나 몰라라라 하는 게 닮지 않았을까. 힘없는 사람들을 힘들게만 하고, 오늘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있는 당신은 반성해야 한다. 자연에는 끝끝내 어찌할 바가 없겠지만, 당신이 쌓았을 거짓과 기만은 속았던 이들이 반드시 갚아줄 터이다. 거센 비바람은 높은 하늘로 표변하지만, 당신 탓에 허물어진 가슴들은 내내 상처투성이가 아닐까.태풍이 저지르고 도망간 걸 보고, 추석 앞에 우리는 마음을 다듬어야 한다. 반드시 지킬 약속만 할 것. 아쉬운 무엇에 건 약속만 남긴 채 돌아서서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 믿은 건 당신의 약속이었지 다음에 벌어질 사정이 아니었지 않은가. 정치에서 흔하게 보이는 거짓말이지만, 보통사람도 이따금씩 약속을 쉽게 여기는 실수를 한다. 힘들었을 밤새 했던 이야기가 새파란 하늘 아래서 달라지면 어쩌란 말인가. 약속은 언제나 무거워야 한다.한가위에 가신 어른들을 생각하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듯, 태풍 뒤에 우리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아야 한다. 배려와 공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피해와 상처가 오래 남지 않으려면, 공동체의 배려깊은 위로와 회복을 향한 공감어린 협력이 있어야 한다. 포항시는 물론 나라도 힘껏 도와야 한다. 재난지역 선포는 당장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올 추석이 명절 다우려면, 태풍이 남긴 상처를 함께 잘 보듬어야 한다.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되고, 어려움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지진이나 태풍이나 낯선 단어들에 포항이 익숙해져 버렸다. 난관을 딛고라도 새롭게 일어서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태풍 다음날 푸른 하늘이 야속하긴 했지만, 기대와 희망의 빛줄기를 보여준 건 아닐까. 태풍마저 슬기롭게 이겨내는 지역을 기대한다. 태풍, 갔지만 밉다. 명절, 하필 지금이냐.

2022-09-07

명절증후군

추석명절을 앞두고 명절증후군으로 괴로운 이들이 적지않다. 명절증후군은 명절 때 받는 스트레스로 정신적 또는 육체적 증상을 겪는 것을 말한다.장시간에 걸친 귀향 과정, 가사노동 등의 신체적 피로와 성 차별적 대우, 시댁과 친정의 차별 등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가 스트레스로 이어져 명절증후군을 유발한다. 이는 산업화 이후 전통적 가족제도가 사라지고 핵가족의 개인주의 문화가 정착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증상으로는 두통, 어지러움, 위장장애, 소화불량 등과 같은 신체적 증상과 피로, 우울, 호흡곤란 등의 정신적 증상이 있다. 명절증후군을 겪는 대상은 대부분 주부였지만, 최근에는 남편, 미취업자, 미혼자, 시어머니 등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명절 증후군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비법은 휴식이다. 틈틈이 휴식을 취해 육체의 피로를 줄여야 한다. 특히 하루 종일 쭈그려 앉은 채로 일하다 보면 허리가 아프기 쉽다. 이럴 때는 한번씩 양손을 어깨 위로 모아서 온몸을 쭉 펴는 등 간단한 체조와 스트레칭이 도움이 된다. 음식 준비를 하면서 흥미 있는 주제로 실컷 수다를 떨거나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일하는 것도 좋다. 명절증후군 예방에는 가족의 배려가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가족들 모두가 편을 갈라서 고스톱이나 윷놀이로 내기를 해서 진 편은 상차리기나 설거지하기, 심부름하기 등 일을 나누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족들 모두가 명절 준비에 참여함으로써 가족 공동구성원으로서의 유대감도 키울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도한 일에 시달리는 여자들에 대한 남편을 비롯한 전체 가족들의 이해와 배려, 그리고 자발적인 협조의식이 중요하다. 올 추석은 가족 모두가 즐거운 축제같은 명절이 되길 기원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9-07

교육아, 잘 있느냐?

김규인 수필가 휴대폰을 충전하며 교단 위에 드러누워 휴대전화를 만지는 영상이 온라인에서 퍼지며 여러 사람의 우려를 자아낸다. 이 과정에 학생은 다른 아이들에게 보란 듯이 행동하고 교사는 수업만 진행한다.교사나 학생의 행동으로 보아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자주 일어난 것 같다. 경험으로 학생과 실랑이해 보았자 마음만 상하고 수업은 수업대로 못하니 말이다.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지 듣지 않아도 말하지 않는 교사의 뒷모습이 많은 것을 전한다.심지어 윗옷을 벗고 수업에 참여한 같은 반 남학생의 모습은 여교사가 벌거벗은 모습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혹시라도 옷을 입을까 기다리며 흑판에 판서하였을 것 같다. 언론이나 방송에서 그토록 떠들던 벌거벗은 학생 인권의 참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학교 내 최상위의 헌법과도 같은 학생 인권 앞에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잃는다.파장이 커지자 학교와 교육청은 교권 침해 여부를 조사한다고 뒷북을 친다. 관련 영상을 조사하기 위해 경찰에 휴대전화 조사를 의뢰하고 해당 학생들을 분리 조치하고 교권 침해 여부를 조사한다. 어쩌면 파장이 커지지 않기를 바랄 뿐 답도 없는 조사를 하는지도 모른다.교권 침해 문제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학생 인권이 다듬어지면 다듬어질수록 교사는 설 자리를 잃는다. 학생의 문제로 학교를 찾는 학부모는 담임선생은 안중에도 없고 교장부터 찾는다.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가 어려우면 교육청이나 상위 기관을 찾아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만을 주장하며 기어이 교사를 파출소로 불러낸다.수업 중에 자는 학생을 깨우는 교사에게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다 의자를 던지고 나가는 학생, 학부모의 심한 욕설로 인격모독을 당하는 교사, 교육활동 중 일어난 사소한 일로 교사를 고발하고 수천만 원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학부모, 교사에게 욕하며 달려드는 학생들을 보는 것은 흔한 일상이다. 교사가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더는 할 수 없는 세상이다.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휴대폰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학교가 휴대폰을 일괄적으로 걷어간 뒤 일과시간 내내 못 쓰게 하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고 판단한다. 국가인권위의 판단은 학생들이 자기 억제력으로 수업 시간에는 휴대폰을 만지지 않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학생들에게 가능한 일이다.학교 내에서 정해진 규칙을 지키고 하고 싶은 휴대폰을 학교에 맡기고 참는 것을 배우는 것도 교육이 아닐까. 모두가 귀한 자식이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의 방향인지에 의문이 든다. 오락하기 위해 어린 자식을 방치하여 굶어 죽게 하고 잔소리한다는 이유로 부모를 죽이는 일이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지금 존중을 바라는 교사는 없다. 그저 편하게 수업하기만을 바란다. 좋은 수업은 학생 인권과 교권의 조화 속에 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새삼스레 수천 년을 이어온 교육의 안부를 묻는다. 교육아, 잘 있느냐?

2022-09-07

문해력과 공감 능력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불편 끼쳐 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얼마 전 문해력(文解力)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과문이다.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자 주최 측이 공식 SNS에 올린 것이다. 그런데 ‘심심(甚深)하다’란 표현이 문제가 됐다. “난 하나도 안 심심해”, “어느 회사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를 줌” 등의 댓글이 달린 것이다. 이 내용은 언론에 보도되면서 MZ세대의 문해력 저하 논란을 촉발시켰다.문해력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교육부는 2024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 국어 시간을 34시간 늘리기로 했다. 고등학교 선택과목에도 ‘독서 토론과 글쓰기’같은 과목을 개설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 학기 한 권 읽기’개념이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는 빠져 있다. 국어 교사들은 이를 다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육 당국의 정책이 앞뒤가 맞아 보이지 않는다.2018년에 조사된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만 15세 학생의 문해력은 OECD 국가의 평균보다 높았다. (37개국 중 5위) 그런데 한국 학생들의 읽기 능력이 조사 때마다 하락하고 있는 것은 주목을 요한다. 또한 사기성 전자 우편(피싱 메일)을 판별하는 역량이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난 것에도 유의해야 한다. 디지털 세대임에도 디지털 문해력이 낮게 평가된 것이다.서영아 국가문해교육센터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문해력은 단어 실력 테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 센터장은 최근 문해력 논란을 ‘소통력 저하’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모르는 것을 묻고 서로 협력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문해 교육의 본질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필자는 이에 더해서 ‘공감 능력’을 강조하고 싶다. 하버드의과대학교의 헬렌 리스 교수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공감을 정의한 바 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태도는 인문학의 중요한 방법론이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면서 독서력이나 문해력을 과시하는 것은 모순일 수 있다.서영채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는 ‘왜 읽는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이 말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현재 우리들의 삶, 그리고 그러한 여러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기 자신의 삶을 읽는 것임을 뜻한다. 문학 작품 읽기가 공감 능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문해력 향상을 위해 읽기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한자어를 중심으로 한 어휘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물론 타당한 견해이다. 그렇지만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문해력은 독해 능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타인과의 공감을 통해 진정한 문해력은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2022-09-07

기업 핵심인재 양성의 해법, 일학습병행

김정희한국산업인력공단 경북동부지사장 코로나19와의 힘겨운 사투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를 에너지와 식량 대란 속으로 이끌고 있으며,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은 우리나라의 환율과 금리에도 막강한 영향을 미쳐 기업들의 수출 등 생산활동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도 우리 기업들은 생산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필요인력을 구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우리 기업들의 적극적인 구인노력에도 불구하고 채용하지 못한 미충원 인원은 17만4천명으로 1년 전 10만2천명보다 70%나 급증했다. 기업의 인력난은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해결 방안 또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대기업과 달리 인적, 물적 인프라가 열악한 중소기업은 일시적, 단편적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기업 스스로의 가치와 생존력을 성장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그 해법으로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운영 중인 일학습병행을 소개하고자 한다.지난 2014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일학습병행은 기업이 구직자를 채용한 후 직무능력표준(NCS)에 기반한 현장훈련(OJT)과 사업장 외 훈련(OFF-JT)을 체계적으로 병행하는 일터 기반의 교육훈련 제도다. 일학습병행은 상시근로자 50인 이상(공동훈련센터형 참여시 20인 이상) 기술력을 가지고 CEO의 인력양성 의지가 높은 기업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일학습병행 참여기업은 교육훈련 프로그램 과정 개발과 학습도구 및 컨설팅 지원을 받을 수 있고, 훈련비와 기업현장교사 및 인사교육담당자에 대한 수당, 근로자의 수업 참여에 따른 기업의 생산성 손실 보전과 훈련 독려를 위한 훈련장려금 등 다양한 비용 비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정부 지원을 통해 일학습병행 참여기업은 신규직원 채용에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채용 후 핵심 인재로 육성시키고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등 강점을 가지게 된다. 더욱이 일학습병행에 참여하는 신규 채용 근로자는 업무 현장에서 선배인 기업현장교사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기 때문에 실무를 빠르고 쉽게 익힐 수 있으며, 현장 외 훈련을 통한 이론교육도 함께 받아 이론과 현장성을 모두를 익힐 수 있으므로 업무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이렇듯 일학습병행은 2014년 사업 첫 시행 후 현재까지 포항, 경주 등 경북 동부권 산업의 근간이 될 핵심 인력을 양성해오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산업인력공단 경북동부지사는 철강산업, 2차 전지 등 지역의 주력 산업 기업의 일학습병행 참여를 확대해 나가고자 한다. 어서 빨리 코로나와 전쟁이 종식되어 경기가 회복되고 고용시장이 활기를 되찾음으로써 보다 많은 기업들이 일학습병행을 통해 핵심인재 육성과 미래 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22-09-06

폭력을 특별하게 하기

군 복무 당시 후임병들을 상대로 가혹행위를 일삼은 20대 해병대 예비역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해병대 제1사단에서 군 복무를 한 그는 후임병 3명을 폭행하고 상해를 가했는데, 횟수만 200여회에 달하고, 성고문도 일삼았다.재판 과정에서 “후임병들을 제대로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랬다며 혐의를 인정했고, 이에 재판부도 “군대를 지옥으로 만들었다”며 꾸짖었다. 하지만 “피고인 본인도 후임병 시절 상급자로부터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 이를 감안하면 이 사건 책임은 피고인에게만 돌리기 어렵고, 상급자들에게 군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드라마 ‘D.P.’는 군대 내 가혹행위와 성폭력, 온갖 부조리함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남성 시청자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드라마에서 조석봉 일병은 폭력의 피해자다. 입대 전 순박한 미술학원 선생님이었던 그는 선임들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면서 점차 폭력을 학습한다. 폭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폭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부당한 힘에 동조하는 것, 그것이 양심과 정의에 반하는 일이라도 구조에 편입하는 것만이 폭력의 피해자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이다.조석봉은 후임 병사들을 집합시켜 얼차려를 준다. 그러자 이등병 중 고참인 안준호 이병이 만류한다. 폭력의 대물림을 끊자는 안 이병의 말에 조석봉이 답한다.“네가 뭘 얼마나 맞았다고. 디피라서 부대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조석봉의 대사는 군대의 위계질서, 나아가 폭력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구동되는지를 잘 드러내준다. 군대에서 남성들은 함께 구타당하면서 공동체의 유대감을 획득한다.“맞아야 정신차린다”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으려면, 그 자신이 먼저 충분히 맞아야 한다. 군대 내 구타와 가혹행위는 통과의례 성격을 띤다. ‘마음의 편지’를 쓰거나 탈영을 해서 학대를 회피하는 것은 낙오자가 되는 일이다. 맞아야 때릴 수 있다. 폭력을 유지시키는 메커니즘이란 결국 ‘폭력을 특별하게 하기’다.얼마 전 국방부의 홍보 영상이 논란을 일으켰다. 문제가 된 건 “군대라도 다녀와야 어디 가서 당당하게 남자라고 이야기하지”라는 대사다.군대에 다녀오지 않으면, 혹은 군대를 갔다 하더라도 ‘제대로’ 군 생활을 못하면 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통념이기도 하다. 한국 남자들은 어릴 적부터 ‘용인된 폭력’을 배운다. 동생이 두드려 맞고 오면 보복해줘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 친구를 지켜야 한다. 이때 폭력은 정당화된다. 보복하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면 ‘쪼다’가 된다.군대는 ‘보복할 수 있는 남성’, ‘지킬 수 있는 사나이’를 양성하는 곳이다. ‘적’을 응징하는 합법적 폭력을 체화한 ‘전사’를 길러내기 위해 ‘순수한 폭력’이 권장된다. 김현은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에서 “순수하고 합법적인 폭력의 초월성은 나쁜 폭력의 내재성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어야 한 사회는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군대는 때때로 불순하고 비합법적인 폭력을 순수하고 합법적인 폭력으로 만들면서 초월성을 부여한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초월적 폭력의 피해자로 남지 않으려면 방관자, 가해자, 투사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데, 가장 쉬운 게 가해자 되기다. 조석봉은 가해자가 되는 쪽을 택했으나 가해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한 채 투사로 전환한다. 부대를 탈영해 전역한 선임을 찾아가 복수하지만, 투쟁의 결말은 비참한 총기자살로 맺어진다. 폭력의 대물림에서 이탈하고, 폭력의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 몸부림치며 저항했지만, 결국 스스로를 가장 끔찍한 폭력의 과녁으로 만들며 죽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속죄양은 공동체를 통합시킨다. “상호적 폭력에서 일인에 대한 만인의 폭력으로의 이행이 바로 모든 문화의 기원”이라는 김현의 말을 상기해본다. 상급자들의 성폭력과 피해 사실을 은폐하는 공군 내부의 거대한 부조리함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예람 중사를 비롯해 군대에서 남성에게 학대당한 여성들의 사례를 추가하자면, 군대라는 집단의 특수성은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남성중심의 젠더 권력으로 확장된다. 이 남성중심의 젠더 권력, 페니스 파시즘이 속죄양을 도륙하는 섬뜩한 제의를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故 변희수 하사에게 쏟아진 댓글의 십자포화, 일인에 대한 그 만인의 폭력은 참으로 잔혹하지 않았나.

2022-09-06

최소한의 일만 하고 살기?

여러 군데 회사 면접을 보러 다니다 보면 공통적으로 받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야근에 관련된 질문이다. 야근이 종종 있을 텐데 해낼 수 있는지, 본인 업무 말고 추가 업무가 주어진다면 잘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사실 나는 이전에 이런 질문에 “저는 퇴근 이후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일과 쉼이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할 때에 일을 더 열심히 잘 하는 것 같다”라는 답변을 한 이력이 있다. 당연히 면접관의 마음에 들었을 리 없다. 분명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면접관의 인상이 급격히 찌푸려지고 있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최근 미국 청년 세대에선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 신조어로 떠오르고 있다. ‘조용한 사직’은 실제로 직장을 그만 두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직장에서 자신의 업무 범위 외에 희생은 거부하겠다는 뜻으로, 회사에선 나에게 주어진 일만 행하고 퇴근 후엔 회사 바깥에서의 삶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를 뜻한다.‘조용한 사직’의 시작은 미국 20대 엔지니어 자이들플린의 틱톡 계정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17초 분량의 영상에선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두겠다.’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자이들플린은 ‘조용한 사직’이란 업무 시간 내 최선을 다해 일을 한 다음, 근무 시간 이외에는 일과 다른 본인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며 강조한다. 위 동영상은 340만회라는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기록하였고, 각종 SNS에선 #조용한 사직이 달린 헤시태그 게시글이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청년 세대 사이에서 ‘조용한 사직’이란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자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생겨났다. 아리아나 허핑턴 스라이브글로벌 CEO는 자신의 SNS에 “조용한 사직은 단지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삶을 그만두는 것”이라며 일침을 가했고, 캐나다 억만장자라 알려진 케빈 오리어리는 “원하면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성공하는 방법”이라며 ‘조용한 사직’을 추구하는 청년 세대를 비판한 바 있다.돌이켜 나는 왜 전 직장을 그만두었는지 떠올려보았다. 사직이유서엔 건강상의 이유라고 모호하게 써내려갔지만, 사실 목적 없이 습관처럼 행해지는 야근 때문이었다. 나는 1년도 안 된 신입이었고 내가 맡은 업무는 강도가 세지 않은 단순 업무에 불과했다. 굳이 야근을 해야만 끝낼 수 있는 업무가 전혀 아니었지만, 그 시간까지 자리에 묵묵히 앉아 있으면 인정받는 분위기가 존재했고 이윽고 야근이 정말 당연시하게 되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상사의 피드백을 기다리기 위해 2시간 내내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고, 늦은 시간 귀가길 마저 업무 연락에 답하기 위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휴대폰 진동이 끊이질 않으니 잠은 또 얼마나 설쳤는지. 이 모든 걸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경험이라던가, 일의 노하우를 배운다거나, 성취감이 따랐다면 그리 쉽게 퇴사를 외치진 않았을 것이다.‘조용한 사직’을 두고 세대 간 주장이 엇갈리지만, 사실 조용한 사직을 추구하는 것은 그저 개인의 취향에 가깝다. 세대를 떠나 일과 승진, 급여를 중요시하게 생각한다면 본인의 개인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회사에 희생하며 기꺼이 일을 배울 것이다.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해내며 에너지를 조절하고, 회사 이후의 삶에 힘을 쏟고 취미를 즐기고 자기계발에 몰두할 것이다. 개인의 취향이고 선택의 문제이지 굳이 한 세대를 꼬집어 무날카롭게 비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사실 야근이 당연시하게 행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조용한 사직’을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에게 주어진 업무는 1인분이 아닌 2-3인분의 일이라 내게 주어진 것만 해도 야근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사실 난 야근은 얼마든지 해도 된다. 그저 나의 업무 범위 이상으로 일할 때 승진이나 급여 보상 등의 혜택이 따라왔으면 한다.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과 통제권 그리고 적절한 보상과 체계라는 경험이 따라온다면 그 누구도 발 벗고 나서서 회사에 ‘희생’하지 않을까. ‘조용한 사직’을 생각하다보면 조금 씁쓸해진다.

2022-09-06

남의 기준

조현태수필가 선천성 일안실명이란 의학용어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한쪽 눈을 실명했다는 말이다. 필자가 그런 예에 속한다. 그러나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처음부터 한쪽 눈은 멀쩡했으므로 무엇이든지 볼 수 있고 크기와 색깔 구분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무슨 까닭인지도 모르면서 완벽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글 읽기였다. 동화책을 비롯하여 만화, 소설 등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 가장 재미있고 편했다.단 한 가지, 어떤 물체와의 거리감을 식별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은 중학교 시절에서야 느꼈다. 친구들과 유료탁구장에 갔는데 탁구 게임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탁구공이 내 쪽으로 얼마만큼 날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똑바로 보면서 공을 받으려 해도 자꾸 라켓을 허투루 휘둘렀다. 거의 울면서 이를 앙다물고 연습해도 별 진전이 없었다. 축구이든 탁구이든 왜 그토록 공을 맞히지 못하는지는 더 커서야 알았다. 동물의 눈이 둘인 것은 바로 이 거리감 식별 때문이란 것을. 그래서 일안실명인 사람은 군대도 면제요 운전면허도 제한을 받으며 굴삭기 같은 중장비면허도 자격미달이다.성인이 되어서는 애꾸라는 이유로 연애도 취업도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한쪽 눈이 없다는 사실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1998년, 어느 대학병원 안과에서 의안 수술을 했다. 그리고는 양쪽 눈이 다 있는 것처럼 이력서를 제출하여 용접공으로 취업했다. 겨우 일 년 남짓 용접공 월급을 받다가 자영업을 택하고 말았다.오늘 필자가 하려는 말은 개인의 일생 소개가 아니다. 피트니스 선수였다는 여인이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끝내 왼팔을 절단하고 일 년 넘게 입원치료를 했단다. 여러 차례 수술과 재활치료를 거듭하여 겨우 퇴원하고 수 년 동안 걷기 같은 일상생활 훈련을 거쳐 텔레비전에 강사로 나타나기까지 과정을 들었다. 그 사고로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었으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 그녀가 전하고 싶은 말은 ‘감사함’이라고 했다. 오른손잡이였는데 왼팔만 없어졌음에 감사하다는 마음가짐. 수없이 많은 감사의 조건들을 여기에 나열하기보다 한 가지 핵심적인 말을 듣고 감동하였기에 이 글을 쓴다.그녀도 없어진 왼팔을 대신하여 의수를 했단다. 그러나 화면에는 없는 팔 그대로 연설했다. 온 국민이 보는 텔레비전에서 의수를 집에다 두고 외팔로 출연한 까닭이 있단다. 모든 것에 감사하다면서도 의수를 주문하게 된 원인은 자기기준을 무시했기 때문이란다. 다시 말하면 남의 기준에 맞추려는 태도란다.필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렇구나. 나도 마찬가지다’하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녀의 없어진 팔이나 원래 없는 필자의 눈을 있는 것처럼 가짜로 만들어 착용하는 것은 남의 기준에 따르기 위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남이 보기에 진짜처럼 보여도 기실 진짜가 아님은 본인이 가장 확실하게 알지 않는가.자기 기준이 명확하면 불평불만이 사라진다. 온통 아귀다툼으로 뉴스가 종일 시끌벅적한데 남의 기준에 너무 민감하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2022-09-06

인문학의 중요성, 필요성, 교육방법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인문학은 인간의 삶, 사고 또는 인간다움 등 인간의 근원문제를 탐구하는 공부다.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과학 자연과학은 인간을 둘러싼 사회와 자연계의 현상에 대해 경험적 접근이나 보편적 원리를 통하여 어떤 법칙을 유도하려 하나, 인문학은 인간 본질에 대해 분석적이고도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종합적 성찰과 이해를 목표로 한다.미국 명문대학인 컬럼비아 대학의 학부과정에서 훌륭한 저서읽기인 ‘인문교육 프로그램’(코어)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한다. 문학과 철학, 윤리학과 정치학, 미술과 음악, 과학을 망라하여 지정된 도서를 읽고 토론하는 필수 공통학습과정이다. 이 과정은 학습량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엄격하기로 소문난 프로그램인데도, 이 과정을 이수한 졸업생들은 이 강좌가 자신의 인생을 바꾼 강좌로 손꼽는다고 한다. 이 강좌는 명 교수의 명 강의가 아니라 다양한 전공과 이력을 가진 교수들이 대화와 토론의 조력자로서 참여할 뿐 수업진행의 주축은 20여 명 정도로 이루어진 학생들 각자의 활발하고도 집중적인 참여이다. 이러한 수업참여로 학생들 각자는 시간적 역사와 공간적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설정하는 방식을 구축해가게 되며, 지식은 주입식 강의나 암기가 아닌 스스로의 탐구와 성찰의 공유과정을 통해 축적된다. 이 프로그램의 책임을 맡았던 몬타스 교수에 의하면, 첨단과학기술이 발달한 새로운 세대의 학생들도 존재론적 불안에 시달리고 무의미함의 위협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고 진단한다. 몬타스 교수는 학생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성찰하면서 내면의 힘을 함양하는 방법과 지혜를 습득하기를 권하는 동시에, 컴퓨터 과학자, 회계사, 사업가, 법조인, 의사 등 모든 유형의 전문직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교양교육이 특히 필요함을 강조한다.최근 필즈상 수상으로 유명한 허준이 교수는 “수학은 저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가는 과정이고, 일반적으로는 인간이라는 종(種)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또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18세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리스트의 피아노곡 ‘단테 소나타’를 좀 더 이해하려고 단테 ‘신곡’의 국내번역판을 모두 찾아 읽었다 한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인문학적 감성과 소양을 명 강의를 통해 쌓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득(體得)하였으며 그것이 그들의 재능의 원천이 된 것이다.첨단과학기술의 고도발달사회에서 전문직이나 지도급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겐 인간의 삶의 현상들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종합적 분석력이 더욱 필요하다. 컬럼비아 대학의 인문교육프로그램 같은 과정이 힘들어서 미국의 많은 대학들도 포기한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대학들도 전문가양성 교육과정에서는 밀도 있는 인문교육프로그램을 필수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프로그램 담당교수들은 추상적 용어나 개념을 들먹이며 사변적 얘기로 자기과시나 하려는 전달식 강의보다 조력자 내지는 사회자 역할을 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022-09-06

가을 태풍

우정구 논설위원 “가을 태풍이 여름 태풍보다 독하다”는 속설이 입증됐다.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후유증으로 전국이 뒤숭숭하다. 과거 역대급 태풍으로 일컬어졌던 사라(1959년)와 루사(2002년), 매미(2003년) 등은 모두 가을 태풍이다.기상청 통계에 의하면 1951년부터 작년까지 발생한 태풍은 모두 1천916개며 그 중 7∼8월 발생한 태풍은 661개, 9∼10월 발생한 태풍은 638개다. 여름철 태풍이 수적으로 조금 많으나 피해는 가을 태풍이 훨씬 컸다.문제는 대형 태풍인 가을철 태풍이 앞으로 더 많아질 거라는 전망이다. 기상학적으로 가을 태풍이 더 강력한 것은 하지와 추분 사이 해수면의 온도가 연중 가장 높은 데 원인이 있다. 태풍은 해수면 온도가 높아질 때 더 강한 바람이 발생하고 세력도 증대한다.2013년 11월 4일 필리핀을 강타한 초강력 태풍 하이옌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필리핀은 하이옌 태풍으로 430만명의 이재민과 1만2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재산 피해는 집계가 곤란할 정도였다고 하니 태풍의 위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당시 하이옌이 발생했던 북위 5도의 해수 온도가 31도를 넘었다고 한다.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받았다. 태풍의 힘을 약화시킬 저기압이나 차가운 공기는 만나지 않았다. 지구 표면의 3분의 2를 이루는 바다의 수온을 측정하여 28도 이상 되는 지역을 웜풀(warm pool)이라 부른다. 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웜풀지역이 확대돼 강력 태풍 발생이 잦아질 거라 한다.인간이 품어내는 각종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로 이어지고 그 반대 급부가 강력한 태풍으로 되돌아온다. 지구 환경에 대한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기후 재앙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9-06

국가균형발전, 대통령생각이 중요

심충택 논설위원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이 지난주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됐다. 지난 1일부터 업무를 시작했으며, 임기는 2024년 7월 14일까지다. 우 위원장은 조만간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를 합친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다. 지방시대위원장은 비상근으로 겸직이 가능하지만, 우 총장은 위원장직에 충실하기 위해 조만간 대구가톨릭대 총장직을 사퇴할 예정이다.우 총장의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취임으로 대구·경북으로선 대통령과 소통할 수 있는 핵심적인 창구를 얻어 경사를 맞게됐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수도권 초집중화’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통령 자문기구로 보면 된다. 이 위원회는 노무현 정부 때 수도권 비대화를 막기 위해 긴급하게 설치됐다. 장관급인 우 위원장의 결재라인은 대통령밖에 없다. 대통령의 지역 공약 실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 혁신도시 지역인재 의무채용을 관리하는 게 이 위원회다. 앞으로 국가균형발전사업을 평가하고 비수도권 소멸을 막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대통령에게 직접 내놓게 된다.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지역균형 뉴딜정책을 ‘대통령 어젠다’로 채택해 다양한 과제를 발굴했지만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직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역시 이 지역 출신인 김사열 경북대 교수가 맡았지만, 위원회 성격이 자문기구라 실질적인 권한행사와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우동기 위원장은 이와관련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한만큼, 대통령이 지방시대를 구현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을 철저하게 하겠다”고 말했다.지금은 권력과 재화를 비롯한 모든 자원의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하면서 온갖 분야에서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 의석수가 국회를 압도하면서 과거에는 그래도 비수도권 눈치를 보면서 시행됐던 수도권 규제완화가 속수무책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도권 여야 의원들의 막강하고 조직적인 파워는 이제 누구도 막아설 수 없는 상황이 된 듯하다. 그들의 의사결정은 블랙홀처럼 모든 자원을 수도권으로 빨아들이고 있다.지방시대를 선언한 윤석열 정부의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인식도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지방과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시절 대구·경북을 비롯해 비수도권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지역균형발전은 국가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었다. 대통령 인수위원회 시절에도 역대정부와는 달리 지역균형발전특위를 별도로 설치해 지방정부의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친기업·친시장’ 정책을 표방하면서 수도권 규제를 거침없이 풀기 시작했다.지역균형발전은 반드시 수도권 정치인들의 반발을 수반하기 때문에 정권 초기 대통령이 직접 밀어붙여야 성과를 낼 수 있다.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이 법률이나 경제성 논리에 막혀 추진할 수 없는 현안은 국가균형발전 논리로만 풀 수 있다. 우 위원장이 꼭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2022-09-06

태풍피해 예방법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역대급 세기로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관통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태풍 피해예방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기상청에 따르면 힌남노는 5일 오전 9시쯤 ‘매우 강’ 상태로 제주서귀포시 남남서쪽 400㎞해상을, 6일 오전 9시에는 ‘강’ 상태로 부산 남서쪽 90㎞해상을 지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태풍은 과거 태풍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사라와 매미보다도 더 강한 상태에서 상륙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피해예방을 위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우선 태풍이 오면 강한 바람으로 유리창이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샷시와 창틀을 고정해야 한다. 창틀이 헐겁다면 신문지를 끼워 틈을 최대한 좁히는 것이 좋다. 또한 창과 창틀사이를 테이프로 붙여주는 것도 파손 예방책이 될 수 있다. 유리창 파손이 우려되면 창문에 테이프나 신문지 등을 붙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파손시 유리파편 흩날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분 등 강풍에 의해 날아갈 수 있는 물건들은 실내로 미리 들여놓고,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배수구 상태도 점검해야 한다. 침수 우려지역에 있는 차량등은 안전한 곳으로 미리 이동시켜놔야 한다.특히 풍속 50m/s 이상의 대형 태풍에는 젖은 신문지나 테이프를 X자 형태로 붙이는 것이 큰 효과가 없는 만큼 비규격·노후 창호를 교체하거나 유리창에 PE(폴리에틸렌) 재질의 안전 필름과 에어캡을 붙여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안전 필름과 에어캡은 외부의 강한 충격으로부터 유리를 안전하게 잡아줌으로써 파손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고, 깨진 유리의 비산을 방지해 2차 사고를 막는다. 천재지변으로부터 인명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는 언제나 최우선적으로 실행돼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9-05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보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 ‘권력’인가 ‘국민’인가.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시작도 방향도 목표도 국민”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집권당에서 계속되고 있는 권력싸움은 “시작도 방향도 목표도 권력”때문이 아닌가.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표리부동의 전형이다.‘백언불여일행(百言不如一行)’이라고 했다.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대통령의 말은 ‘정치적 수사(修辭)’일 뿐이다. 대통령은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철학자’가 아니라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공직자’이다. 대통령의 ‘국민만 보고 가는 정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한다.국민은 정부여당에 묻고 있다. 대통령이 권성동에게 보낸 ‘체리따봉’ 문자가 국민을 위한 것인가? 법원이 지적했듯이 이준석을 쫓아내기 위해서 ‘억지로 비상상황을 만든 것’도 국민을 위한 것인가?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꼼수로 갈등을 심화시킨 것이 국민을 위한 것인가? 당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내분의 빌미를 제공한 대통령은 왜 ‘강 건너 불구경’인가? 이 모든 정치행태에는 ‘국민의 관점’이 아니라 ‘권력의 논리’가 지배되고 있다.윤석열 정부는 지지기반이 약한 연합정권이다. 2030과 6070, 윤석열과 안철수, 그리고 윤석열과 이준석의 연합으로 간신히 0.73% 승리했다. 하지만 권력투쟁으로 연합정권은 붕괴위기다. 정권의 표리부동을 경멸하는 중도는 이미 떠났고 2030은 분열되고 있다. 20년 장기집권을 장담했던 문재인정권이 민심을 잃고 5년 만에 무너진 사실을 벌써 잊은 것 같다.무엇보다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권력싸움을 멈추라. 정치력이 없어서 ‘정치의 사법화’를 초래한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법원이 가처분 인용의 근거로 지적한 ‘정당민주주의 침해’, ‘가짜 비상상황 조작’ 등은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이 거짓이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권력밖에 모르는 ‘꼰대’와 ‘싸가지’의 전쟁에서 승자는 없다. 국민은 ‘대결이 아니라 대화’의 정치를 바란다. 당내 갈등도 수습하지 못하면서 여야협치와 국민통합을 말하고 있으니 ‘소가 웃을 일’이다.권력의 그 음흉한 속내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국민은 이미 ‘권력의 잔머리’를 꿰뚫고 있다. 오죽하면 당내에서조차 “새 비대위는 불가능하고 옳지도 않다”(안철수), “억지와 집착에 빠졌다”(홍준표)는 비판이 나오고, 서병수 의원이 당헌·당규개정에 반대하며 전국위원회 의장직을 사퇴했겠는가? 정기국회는 시작되었는데 민생을 책임진 집권당은 권력싸움으로 날을 새고 있다. 윤 대통령의 당선 지지율 48.5%가 9월 2일 현재 27%(한국갤럽)로 추락했다. ‘국민’이 아니라 ‘권력’을 선택한 ‘배신의 정치’ 때문이다.‘문명의 정치는 국민’을 보지만 ‘야만의 정치는 권력’을 본다. 정권은 교체되었지만 ‘정치의 야만성’은 여전하다. 권력남용과 정치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야만의 한국정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2022-09-05

기업 경쟁력의 핵심요소, ‘최적공간’

장광일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이번 주는 민족 대명절인 추석(秋夕)이다. 추석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니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추석에는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서 맛있는 송편도 먹고, 잔치도 벌이고, 웃음 꽃도 피우면서 가족 간의 유대감을 쌓는 날이다.고향이란 기본적으로 태어나고 자란 땅에 대한 경건한 마음이 있어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다. 오랫동안 살던 집은 공간을 넘어 장소가 된다고 한다. 필자는 ‘최적공간’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공간을 나누어 보면 크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집의 공간,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직장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공간을 최적으로 가꾸어 놓는 것이 마음의 공간을 변화시키고, 창의역량 향상에 도움이 된다.사람과 기업의 미래 경쟁력에 초석이 되는 공간에 있어서 첫째 아늑하고 따뜻한 집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지난주 테니스 동호회(윈윈클럽) 회원들과 함께 울진에 있는 지인집으로 놀러갔다. 그 분은 정년퇴직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고즈넉한 분위기에 고풍스러운 느낌이 풍기는 한옥을 지어 살고 있었다. 백 년의 역사가 흐르는 감나무, 나지막한 황토방, 따스함이 느껴지는 부뚜막, 편백나무로 지은 사랑방, 항아리 속 부레 옥잠, 멋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백일홍 등 하나하나 정성이 안간 곳이 없고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곳에서 있는 시간 만큼은 마음의 평화가 오고, 마음의 공간이 넓어지는 것 같았다.둘째 창의성이 절로 발산되는 최적의 직장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최근 사무실이 바뀌고 있다. 어떤 카드 회사는 직원들에게 백만원이 넘는 고급의자를 제공하기도 하고, 어떤 IT회사는 회의실 리모델링 비용으로 수십억의 거금을 들여 멋지게 탈바꿈하기도 하였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유한킴벌리는 그리드(Grid)를 파괴한 ‘스마트 워크’ 사무실 도입 및 실내녹지율 2.53%의 ‘그린 오피스’ 도입으로 업무 효율을 15%이상 향상하였다. 또한 포스코는 직원들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2009년 창의 놀이방인 ‘포레카’를 개관하였다. 일터와 놀이터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유분방한 공간에서 직원들이 창의성을 발산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집의 공간과 직장의 공간은 곧 사람 마음의 공간에 큰 영향을 미친다.빅터 프랭클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여기에 자신의 성장과 행복이 달려 있다” 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자극과 반응 사이를 오가면서 살고, 습관화된 일상적인 패턴의 삶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공간이 있음을 모르고 산다. 자신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서는 우선 주변 환경변화를 바꾸어 마음의 공간을 넓혀 나가야 한다고 본다.공간은 삶과 기업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구성원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척도이며, 창의성의 가치가 떠오르는 현 시점에 매우 중요한 핵심요소가 됐다.

2022-09-05

태풍에 대비하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가을의 길목에 달갑지 않은 태풍이 들이닥쳐 온나라가 바싹 긴장하고 있다. 그것도 한반도에 가장 큰 피해를 준 1959년의 사라호나 2003년의 매미를 능가할 강도의 ‘역대급 초강력 태풍’ 힌남노가 오늘 새벽 남해안에 상륙할 전망이라니, 불안과 걱정이 커지고 있다.늦여름에 돌연한 집중호우의 상흔이 아직 채 가시기도 전에 폭우와 강풍을 동반한 엄청난 위력의 회오리가 한반도를 할퀴면서 또 어떤 피해와 상처를 남길지 착잡하기만 하다. 벼나 과일 등 여러 농작물이 무르익어가고 민족의 명절 추석을 목전에 둔 시기에 이 무슨 자연의 내습이며 변고란 말인가?태풍은 자연현상의 한 부분이지만, 근자에 들어서는 발생빈도와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도 지구 온난화에 기인한 부분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실제로 태평양보다 평균적으로 수온이 1~2℃ 높은 대서양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은 태평양의 태풍보다 훨씬 집중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 2013년 이후부터는 기후 변동으로 인해 태풍 시즌이 늦어지면서 여름 태풍이 줄고 가을 태풍은 늘고 있으며, 대체로 가을 태풍이 더 큰 피해를 남기곤 한다. 태풍이 몰고 올라오는 무덥고 습한 북태평양의 열기가 남하하는 시베리아의 냉기와 충돌하면서 거센 바람과 함께 폭우를 뿌릴 가능성이 높고 농작물들의 수확을 앞둔 시기라 도복, 낙곡, 낙과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음력 7월 15일을 전후한 시기는 해수면이 연중 최고로 높아지는 시기라 해일이 일어날 위험이 어느 때보다 커진다.이러한 불가피한 태풍의 내습 앞에서는 선제적인 대응과 적극적인 준비태세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태풍의 진로와 시기는 얼마든지 예측 가능하고 상황에 따른 조치와 대비는 사전에 충분히 할 수 있다. 저지대 가옥 침수나 하천 범람에 따른 농경지 유실, 강풍으로 인한 시설물 파손과 절개지의 산사태 등의 위험개소에 대한 사전 점검과 배수로 청소, 둑 보강, 방류, 결속, 유도 등의 예방조치가 필요할 것이다.그에 따른 국민행동요령과 사전대응을 정부에서도 강조하며 자연재난에 대비한 태풍상황 점검과 확인을 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준비하면 근심이 없다(有備無患)하지만,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하고 대응해도 돌발적인 상황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도 있으니 간곡하고 적극적인 태세로 풍수해의 대비와 사전조치, 상황에 직면한 적절한 대처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특히 재난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피해와 고통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니, 반지하 주택지와 해안가 저지대 등 취약지역에 대한 점검과 조치가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태풍 전야는 고요하기 마련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나무랄 수도 없는 자연현상이지만, 그저 태풍 전의 고요함처럼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12시간 동안 국립보호구역이라는 ‘힌남노’처럼 한반도를 보호하며 사뿐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22-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