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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등록일 2023-05-22 18:34 게재일 2023-05-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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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마블의 대표적 프랜차이즈 영화다. 지금까지 총 세 편이 만들어진 이 시리즈는 기발하면서도 삐딱한 상상력으로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의 문법을 해체해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영화의 주요 캐릭터들은 사명감에 불타는 전형적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우주의 부랑자에 가까운 그들은 각각 어두운 과거와 상처를 지녔으며, 냉소적이거나 유머러스한 태도로 슬픔을 감추고 있다. 슈퍼맨처럼 완벽한 초인이 아닌 이들도 팀으로써 힘을 합치면 우주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1편과 2편이 신적 존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태어난 스타로드의 이야기를 통해 혈연의 폭력성과 사회적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유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얼마 전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볼륨 3’는 공감의 대상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확장한다. 3편의 주인공은 ‘말하는 라쿤’ 로켓이다. 완벽한 생물을 창조하기 원하는 생명공학자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동물의 신체를 개조해 지성을 부여하는 실험을 지속하였고, 로켓은 그의 실험 대상이었다. 그 개조 과정은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고 끔찍하게 묘사되며, 부작용으로 인해 미쳐 버리거나 죽는 동물들도 많다.

영화에는 인간에 의해 희생당한 또 다른 동물이 나온다. 우주로 보내졌던 개 ‘라이카’를 모델로 한 ‘초능력 개’ 코스모이다. 미소 간의 우주 경쟁이 치열했던 냉전 시대, 소련은 유인우주선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인간 대신 개나 원숭이 같은 동물들을 태운 우주선을 발사했다. 발사와 대기권 이탈, 우주공간 진입의 과정이 동물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동물들은 모두 발사과정 또는 우주 진입 이후에 고통스럽게 죽었다. 이들은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안전하게 데려올 계획 자체가 없었다. 우주 왕복선이나 달 착륙, 우주정거장 같은 우주 개발의 성과들은 이 동물들의 죽음 위에서 빛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과학문명은 수많은 다른 종들의 죽음 위에 세워졌다.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투구게의 피가 꼭 필요한데, 피를 뽑힌 뒤 방생된 투구게는 약해진 탓에 상당수가 죽게 된다고 한다. 또한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백신 수요가 급증하며 투구게를 남획한 탓에 개체수가 급감하여 멸종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 밖에도 의약품 개발이나 다른 과학적 목적을 위해 희생된 실험동물의 수는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중장기적으로는 동물실험 없이도 인체에 안전한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에 앞서, 과학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희생된 동물들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들에게 죄스런 마음을 갖도록 하자. 인간에게는 다른 종들을 이용하고 죽일 권리가 없다. 우리의 필요와 이득을 위해서 그렇게 합리화할 뿐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수탈자에 가깝다. 이를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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