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초 출현한 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은 고대 로마 건축을 닮았다. 비록 지금은 폐허가 되어 옛적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클뤼니에 세워진 수도원교회는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위용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우선 로마네스크 교회는 크고 높고 우람하다. 로마네스크를 뒤따르는 고딕은 더 높고 더 웅장하지만 육중하거나 우람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돌의 무게를 극복하고 시각적으로 상승하는 듯 보인다. 로마네스크와 고딕은 건축을 올린 방식과 꾸미는 장식이 달랐다.
고딕이 공학적 기술력으로 높이를 추구할 수 있었다면 로마네스크 건축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제한적이었다. 고딕교회의 겉은 마치 피부에 문신을 새긴 듯 갖갖이 문양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로마네스크는 그렇지 않다. 아주 단순하다. 자전거 바퀴 창살모양의 큰 창이나 외벽에 움푹 들어간 벽감을 마련하여 조각 작품을 올려놓은 정도다. 고딕교회는 섬세하고 복잡하고 현란한 문양으로 빈틈없이 꾸며졌다. 로마네스크는 기껏해야 완만한 아치 장식이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로마네스크는 화려하지 않다. 그 대신 명료하다. 단순한 만큼 정갈하다. 나름의 규칙을 지킨 꾸미는 요소들에서 잔잔한 리듬감도 전달된다.
중세건축은 암호화된 상징코드이다. 지상에 세워진 하늘의 집. 죄악 된 세상을 이긴 승리의 상징이자 죽음의 해방과 구원의 약속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런 의미가 녹아 있는 교회건축은 위엄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로마네스크 교회가 우람하고 견고한 요새의 모습을 지닌 이유다. 강한 요새, 안전한 피난처, 악과 맞서 마침내 거머쥘 승리와 구원의 약속. 중세 교회건축에는 이러한 상징과 메타포가 담겨 있다. 기독교의 종교성을 집약적이고 종합적이고 직관적이고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높고 웅장한 건축이 필요했다.
제한된 기술로 높이 있는 건축을 완성해야 한다면 벽을 두껍게 쌓고 굵고 튼튼한 기둥으로 하중을 바치는 것 이외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로마네스크 건축가들도 이 방법을 취했다. 높이 올릴수록 벽은 두터워졌고 벽이 두터워진 만큼 지탱하는 기둥의 크기 역시 비례해 늘어나야 했다. 그 결과 로마네스크 교회는 육중한 무게감과 우람한 몸집을 가지게 되었다.
앞선 시대와 비교했을 때 로마네스크 교회건축에서 관찰되는 큰 변화 중 하나는 천장이다. 로마네스크 이전에는 주로 평평한 목조천장이 사용되었다.
어떤 경우 천장 없이 지붕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 경우도 자주 있다. 이런 천장은 로마네스크가 완성한 장엄한 석조 건축에 어울리지 않았다. 석조 건축의 보임새에 걸맞는 천장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안된 것이 석조로 된 교차 궁륭(groin vault)이다. 궁륭은 둥그스름하게 만든 석조 천장을 말하는데 이미 고대 로마시대의 건축에서 반원통형 궁륭이 사용되었다. 교차 궁륭은 좀 더 발달된 것으로 반원통형 궁륭 두 개를 서로 교차 시켜 만들어 졌다. 건축의 여러 요소들은 유기적으로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다른 요소들의 구조적 변화를 야기한다. 건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적 안정성이다. 형태나 구조의 변화는 역학적 변화를 수반하고 새로운 힘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관계된 요소들에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천장의 형태 변화는 벽면 구조의 변화 그리고 건물 층의 분화에 영향을 주었다. 건축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건축가들이 치밀하게 계산해야 하는 기본적인 힘은 하중이다.
석조 궁륭으로 천장이 바뀌면서 또 다른 힘이 중요해 졌다. 좌우로 팽창하는 힘은 물론이고 기온 변화에 따른 재료 성질의 변화로 발생할 수 있는 변수까지 예측해야 했다. 십자형 교차 궁륭의 하중은 네 모서리로 집중된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분산하기 위해 건물 내벽과 외벽에 벽기둥이나 부벽이 마련되었고 그 결과 로마네스크 교회의 보임새 또한 달라졌다.
/미술사학자 김석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