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온기로 낯선 방랑객을 맞이하는 마을이 있다. 낡은 것·오래된 것·별것도 아닌 것을 보고 만지고 체험하면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작고 아담한 마을이 품은 온기 한 자락으로 도시 생활에 지친 마음을 쉬어가게 만든다. 군위의 산성면 화본마을은 도시와는 다른 독특한 경관과 문화와 생태 속에서 옛 정감을 방랑객에게 제공한다. 근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화본역 일대와 6~70년대 풍경을 재현해 놓은 ‘엄마 아빠 어릴 적에’ 전시관, 우보면의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를 돌아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다. 낡은 것이 품은 온기가 방랑객의 마음을 녹이는 것이다. 도시민이 바라는 ‘농촌 판타지’, 농촌의 자연 치유력과 재생을 통한 힐링을 군위 화본마을에 가면 찾아볼 수 있다.
화본마을로의 여행은 무궁화호를 타고 화본역에 내리는 것에서 시작하면 좋다. 작고 아담한 플랫폼에 발을 디디면 증기기관차의 냉각수확보를 위해 꼭 필요했던 급수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법 커다란 급수탑은 화본역이 근대에 지역의 거점으로서 활발히 운영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영천이나 대구, 안동 등으로 나가 농산물을 판매하고 생계를 유지하던 당시, 화본역은 이 지역의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고 전해진다.
화본역은 1936년에 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938년에 기차 운행을 시작하였다. 운행 시기에 맞춰 설치된 급수탑 안에는 내부 물탱크와 파이프 관, 환기구와 ‘석탄정돈, 석탄절약’이라는 문구가 당시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어 근대 소도시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오래된 기차를 활용한 레일카페에서 차 한잔하고, 플리마켓을 구경하고, 일본식 관사(지금은 숙소로 활용)를 돌아보면서 옛 정취에 취해보는 것도 좋겠다. 아쉬운 점은 이 역이 2024년 12월까지만 기차가 운행되고 마감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의 플랫폼에 발 디딜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느림의 대명사인 무궁화호를 타고 여행하는 낭만은 ‘역’으로서의 기능을 멈추면 박물관 유리 속에 장식된 유물과 다름이 없어질 것이다.
화본역 부근에는 재밌게도 실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체험형 전시관이 하나 있다. 1953년에 지어져 2009년까지 학생들이 다녔던 산성중학교 건물을 ‘엄마 아빠 어릴 적에’라는 기억 재현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다. 유리 속 장식품이 아닌 실제로 만져볼 수 있는 물품과 체험할 수 있는 옛 놀이로 채워진 이 장소는 주로 가족과 단체 방랑객이 가보기에 좋다. 메인 전시관에서는 방앗간·시골 찻집·전파상 등 향수를 부르는 60~70년대 화본마을의 거리를 볼 수 있으며, 당시의 학교 교실 속 풍경이나 가정집 등의 생활공간이 재현되어 있으며, 지역민의 손때묻은 생활 소품과 포니 차량도 전시되어 있다. 넓은 운동장에서는 꼬마 기차를 타보고, 양은 도시락을 먹고, 달고나를 만들며, 제기나 팽이 놀이도 즐기고, 옛날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보고 만지고 즐기다 보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10월 초에 가을 축제와 12월 초 김장 축제로 지역민과 한시적으로 융화되어 농촌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다. 화본마을은 빡빡한 도시 생활에 상처 입은 영혼이 쉬어가기에 좋은 장소다. 이렇게 도시민이 바라는 추억과 향수는 전시관의 유리 밖에서 소소한 힐링이 되었다.
지친 도시민의 소소한 힐링 이야기라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를 빼놓을 수 없다. 우보면에 있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로 찾아든 방랑객은 영화에서 받은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어 한다. 푸근하고 정겨운 고향마을, 추억과 낭만이 있는 동네 친구들, 자연의 따뜻한 감성이 녹아든 음식,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등 영화에서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고향마을에서 친구들과 보내며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방랑객들은 실제 촬영지에서 주인공이 앉았던 소파에 앉아보고, 요리하던 주방을 살펴보고, 2인용 자전거를 타보면서 영화 속 장면을 되새김질한다. 빡빡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농촌만의 느린 감성이 힐링을 바라는 도시민에게 ‘농촌 판타지’가 되어 치유와 재생을 전달하는 것이다.
낡은 것·오래된 것·별것도 아닌 것은 재해석되기 전에는 쓸모없는 것·외면받는 것·버릴 것에 불과했다. 어느 날 주민들 스스로 이러한 장소와 물품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면서 정겨운 것·추억이 담긴 것·치유와 재생이 깃든 것이 되었다. 화본역과 ‘엄마 아빠 어릴 적에’ 전시관 그리고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와 마을 곳곳의 벽화들을 통해 주민들이 만들어 낸 ‘낡은 것의 온기’가 방랑객을 부른다. 온기가 그리운 도시민이라면 응당 그 부름에 취해 방랑객이 되어 보는 것도 좋겠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