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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

등록일 2023-06-07 19:41 게재일 2023-06-0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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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경 수필가
배문경 수필가

얼마 전 응급실로 할머니가 구급차에 실려 왔다. 쓰러진 채 삼일을 꼼짝도 못한 채 견뎠다고 했다. 대퇴부 골절이었고 딸이 집에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자 집으로 찾아가서 발견되었다. 움직이지 못한 며칠은 지옥이었으리라. 물 한 모금, 휴대폰을 할 수도, 살려달라고 해도 들리지 않을 암흑의 밤낮을 보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사월 초파일 백률사를 딸아이와 찾았다. 날이 날인만큼 사람들로 북적였고 대웅전까지 등을 달 생각으로 이름표가 없는 등만을 쫓아 가파른 길을 올랐다. 그때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고 70대쯤으로 보이는 노인이 고함을 지르며 뒷걸음으로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머리를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나는 환자의 의식 상태를 체크했고 주위사람들에게 119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뇌출혈과 경추손상이 걱정되었지만 목을 조금 움직이는 상태였고 두통을 호소했다. 외출혈은 없었지만 뇌출혈은 충분히 의심스러웠다. 환자는 두부(頭部) 밑 통증을 계속 호소해서 옆 사람에게서 손수건을 얻어 밑에 깔아주고 상태를 체크하며 안정을 유도했다. 119 구급차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아, 이제 거의 다 되었다는 생각에 걱정 말라는 말로 계속 도닥였다. 구급대원이 구급차에서 내려 환자이송을 준비할 때 맥박과 호흡, 경추 손상 없음, 뇌출혈이 우려된다는 소견을 119대원에게 전했다. 신경외과가 있는 종합병원으로 가줄 것을 요청했다. 환자는 들것에 의해 구급차에 옮겨져 사이렌소리를 내며 사라져 갔다.

나는 다행이란 생각에 흙이 잔뜩 묻은 치마를 툭툭 털며 일어나 대웅전을 향해 걸었다.

곁에 있던 딸이 존경하는 눈빛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 난 엄마처럼 못했을 것 같아. 119부르세요” 이 정도는 했겠지만 침착하게 할 수 없었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쳐다보는데 약간 기분이 좋았다. “할 수 있어. 너도, 이제 봤으니까.” 나는 웃었다. 사고를 지켜보며 서있던 많은 사람들이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

비슷한 일이 생각난다. 작년 지인이 하는 세계적인 행사에 의무실을 담당했다. 이틀의 일정이었고 날이 흐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정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부르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달려갔더니 참가자 한 사람이 빗길에 미끄러져 옆으로 쓰러져있었다. 전체적인 상황이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목이 옆으로 비틀려 있었고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의식을 확인하고 움직이지 말라는 말과 함께 119를 불러달라고 주위에 요청했다.

곁에 본인이 갖고 있던 옷가지가 있어 몸을 고정시키고 맥박과 의식을 체크했다. 귀에 피가 나는 것이 걱정이었다. 병원에 이비인후과 의사가 없을 수도 있고 뇌에 문제가 심각한지 여러 가지 고민이 들었다. 환자를 다독이며 구급차를 기다렸고 경추손상 우려가 있으니 조심히 이동시켜달라고 얘기하고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구급대원은 함께 병원에 가서 상태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근처에 있던 자가용으로 병원으로 가서 응급실 직원들에게 상황과 상태설명을 다시 진행했다.

뇌CT에서 뇌출혈 소인은 없다고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귀에서 피가 나는 것은 알 수가 없다며 연휴기간이라 닥터가 없으니 이비인후과가 있는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집이 울산인 환자와 친구가 울산에 있는 병원을 연결했고 나는 사설 구급차를 연결해서 급하게 환자를 다시 이송시켰다.

며칠이 지나고 그 환자는 고맙다며 전화로 안부를 전해왔다. 다행히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은 것 같다며 다음에 찾아뵙고 식사 대접하겠다는 말을 덤으로 주었다.

작년의 사고와 올해의 사고를 통해 정말 작고 사소한 행동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119구급대가 있어 너무 감사했다.

나는 늘 죽음 가까이에 선 간호사다. 오늘처럼 삶의 경계에 선 사람들이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진 역량으로 최선을 다해 삶에 더 머무르도록 돕는다. 희미해져 가던 그들의 삶이 조금 더 눈부시게 빛나도록 거든다. 내 직업의 힘이다. 딸도 눈부신 직업인이 될 것이라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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