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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 대통령 별장들의 유감

등록일 2023-06-11 19:38 게재일 2023-06-1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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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지난달 ‘고교 졸업 50주년 기념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50주년은 이미 지났지만.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연기됐고, 그래서 뒤늦게 친구들과 함께 기념 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100여 명이 참여한 2박3일의 여행은 남해안으로 그리고 해외에서 온 동문 부부들이 함께한 부부여행은 1박2일 동해안으로, 그렇게 여행은 두 번에 나누어져 이뤄졌다.

“고등학교 친구는 평생 친구”라는 말이 서양에도 있듯이 틴에이저 시절 사귀고 같이 공부한 고교친구는 가장 친밀감을 느끼고 평생을 가는 친구인 것 같다. 여행은 지난 50여 년의 진한 우정을 다시 음미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부부여행 첫날은 월정사 숲길 산책과 길가의 여러 박물관 관람 등이 주문진으로 이동하면서 이뤄졌다.

문제는 둘째날 일어났다. 고성 통일전망대를 관람한 후 화진포로 이동하면서 한국 건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별장을 관람하고, 그리고 김일성 별장이라는 곳을 관람하게 되면서 일어났다.

이승만 별장을 구경 하면서 생각보다 낡은 모습의 별장이 유지되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구현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나,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 관리 자체가 부실해 보였다. 옛 역사를 구현하려면 어쩔 수 없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김일성 별장을 관람하면서 이상하게 바뀌어 갔다. 그곳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남북한 교류의 사진들과 홍보로 가득하고 이승만 별장보다는 훨씬 최신식 건물로 지어져 있었다. 과거 역사의 건물이라기보다는 홍보관 같은 느낌이었다.

왜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하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옛날 모습이 구현되지도 않았고 구현할 필요도 없는 건물이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돼 있었다. 누구에 의해서 어떤 정부에 의해서 이런 건물이 세워지고 이렇게 명명 됐을까?

원래 그곳은 셔우드 홀의 예배당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1890년경 ‘로제타 홀의 일기’를 남긴 로제타 여사의 아들 셔우드 홀은 서울 출생이며 우리 나라에 대한결핵협회를 설립시킨 주인공이다.

당시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결핵을 퇴치시키 위해 크리스마스실을 판매하기 시작한 2대에 걸친 캐나다 선교사 가족이었다. 이 예배당은 1938년 선교사 셔우드 홀의 의뢰로 독일 건축가 베버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본래 셔우드 홀의 예배당으로 지어졌는데 공산치하에서 잠시 김일성 일가가 휴가를 보냈다고 하는데 그래서 김일성 별장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참으로 그러한 명명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 캐나다 선교사들의 예배당으로 명명하는 게 맞지 어떻게 김일성 별장으로 이름을 지었을까? 김일성이 잠시 머물렀다고 하여 김일성 별장으로 명명하는건 정치적 상업적인 냄새가 너무 나는듯했다. 실제로 당시 모습도 구현되지 않았고 남북교류의 홍보물로 가득한 건물이었다.

진보정권 시절인 2005년 새단장을 하고 그 예배당을 김일성의 별장이라고 명명했다고 하는데 전쟁의 원흉인 김일성을 기념할 아무런 이유도 없어 보였다.

6세 꼬마 김정일이 계단에 앉은 사진이 뭐가 중요하다고 전시까지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참으로 희한한 나라에 현재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승만 별장은 호흡이 곤란한 정도로 습한 냄새 나는 건물로 남겨두고, 김일성 별장은 에어컨이 돌아가는 시설로, 두 별장은 운영조차 차별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2022년 취임하면서 이제 그러한 잘못된 개념을 청산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곳곳에는 그러한 흔적이 아직도 그대로다.

6·25전쟁으로 수 백만명의 사상자들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김일성을 기념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 보였다.

같이 간 친구 한 명은 공산당의 흔적조차 보기도 싫다고 건물에 들어가지도 않고 화진포 해변으로 혼자 내려가 바닷물에 발을 담구는 모습을 보았다. 오죽 속상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도 대강 훑어 보았지만, 자세히 본 아내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시설과 운영은 먼저 찾았던 이승만 별장과는 확연히 달라서 해외에서 30여 년 살다가 귀국한 동기생 부부들에게 공연히 미안한 마음만 앞섰다. 대통령실이든 강원도지사든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든 누군가 이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일성 이름을 지우는 게 좋겠다. 그곳은 김일성의 별장이 아닌 선교사 셔우드 홀로 명명되고 다만 김일성이 잠시 지냈다는 역사만 기록하면 될 것 같다.

일반인들이 별칭으로 김일성 별장이라고 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공식 명칭을 그렇게 부르는 건 역사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전쟁의 원흉 김일성을 그렇게 대접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이의 상황을 알기 전에는 독일 건축가가 지었다니 동독의 공산주의 건축가가 김일성에게 아부하며 지어진 건물로 오인까지 했었다.

지금도 서울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누워있는 셔우드 홀 가족 6명의 영혼들이 평안히 잠들 수 있도록 기도해 본다. 또한 모든 곳에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 반하는 흔적들을 말끔히 없애버린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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