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맥도나 감독의 ‘이니셰린의 밴시’
아일랜드의 가상의 섬 이니셰린에서 막역했던 두 사람이 갈등을 빚는다. 절교를 선언한 사람과 느닷없이 절교를 당한 사람. 농담이거나, 알지 못하는 말실수이거나, 기분 탓이려니 이유를 찾아 보지만 알 수 없고 그 사실이 와닿지 않는다. 이제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이 펼쳐진다. 추측이 난무하고 어정쩡한 주변의 조언이 이어지지만 관계는 더욱 더 악화되어 간다.
갈등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대수롭지 않은 이유는 첨예한 가치관의 세계로 퍼져나간다. “이유는 없어. 그냥 자네가 싫어진 것뿐이야”라고 시작했던 절교. 남은 삶을 사색하고, 작곡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절교를 당한 사람에게 와닿지 않는다. 지루한 이야기들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절교를 당한 상대는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왔던 사이에 그러한 결심이 무슨 의미를 지니며 왜 그러해야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절교를 당한 쪽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문제없었던 ‘현재’를 이야기하고, 절교를 선언한 쪽은 지금까지 변화없었던 삶이 싫다며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 ‘미래’를 이야기 한다.
‘현재와 미래’라는 갈등에 “다정함은 역사적으로 기억되지 않지만 예술(음악)은 오랫동안 역사에 기록된다”는 ‘다정함과 예술’이라는 전선이 펼쳐진다. 아일랜드 본토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고 아름다운 섬 이니셰린에서 발생한 두 사람의 갈등은 일상을 흔들고 물러설 수 없는 각오와 결기로 치닫는다.
영화 속 이 사건이 시작된 것은 1923년 4월 1일이다. 80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여러 차례에 걸친 독립운동을 시도했으나 번번히 좌절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16년 4월 부활절을 맞아 봉기한 아일랜드의 독립전쟁은 1921년까지 이어졌고, 그해 12월 영국 런던에서 ‘대영 제국의 지배하에서 아일랜드의 자치’를 인정하는 휴전조약이 체결되게 된다.
이 조약으로 아일랜드는 남북으로 갈리게 되고,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굳어지게 된다. 영국이라는 공통된 적과 싸웠던 아일랜드는 조약을 찬성하는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려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된다. 이것이 1922년 6월부터 시작해 1923년 5월까지 이어진 ‘아일랜드 내전’이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아일랜드 내전이 끝나갈 무렵으로 본토와 가까웠던 이니셰린에서는 간간히 전쟁의 포성이 들려온다. ‘다정함’을 무기로 친했던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예술’과 ‘미래(남은 여생)’의 방향성을 달리하면서 본토에서 일어나는 내전과 이니셰린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간의 가치관의 전쟁이 점점 수위를 더해간다.
우리는 절교의 이유가 궁금하지만 영화는 절교의 이유를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서운함과 분노, 거부와 결기가 팽팽하게 맞부딪치며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자와 그를 쫓는 자와의 일상이 강도를 더해간다. ‘다정함’과 ‘예술’이 각자의 신념이 되고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전쟁의 양태와 닮았으며, 역사적 사실이며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아일랜드 내전의 은유가 된다.
아일랜드 독립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졌던 친구가 이해를 달리하면서 서로를 적대시하며 한쪽을 파멸로 몰고가는 내전에 이르러서는 서로에게 소중한 것들을 하나둘씩 잃어 갔듯이, 절교를 선언한 두 사람 사이에 남은 것은 소중한 것들을 잃고 다시는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신념은 상대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해와 양보를 구하지 않으며 결기로 대처한다. 결기는 비극을 부르고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같은 신탁이 내려진다. 모호한 신탁은 갈등이 강도를 더해가면서 구체화되고, 역사적 은유와 흥미로운 상징들이 작고 아름다운 섬에 가득 펼쳐진다. 1923년 4월 1일. 이 모든 것들이 만우절 농담처럼 시작된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