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이 내리는 도심 속의 정원에서 한바탕 놀이판이 열렸다. 꽹과리와 장구 등의 장단에 바람소리 같은 파도소리가 간간이 철썩이고, 갈매기 날갯짓따라 흰구름이 떠가는 구룡포 바닷가를 배경으로 조곤조곤 해녀이야기와 몸동작이 사뿐사뿐 이어졌다. 때로는 느긋하고 다급하다가도 때로는 긴장되고 애절하기까지한 연희(演戱)가 시종 재담과 해학으로 흥미롭고 드라마틱하게 펼쳐진 것이다. 이 같은 공연은 전통연희컴퍼니예심 단원들이 포항철길숲 오크정원에서 보여주고 들려주는 지역의 향토역사 구룡포 해녀이야기 ‘명랑바다-숨비소리’ 마당극이다.
해녀라는 고단하면서도 숙명적인 물질을 통해 여인의 삶, 어머니의 삶, 고령화돼 가는 위기의 해녀를 오롯이 지켜가는 사람들의 질박하고 따스한 이야기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마당극 특유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다양한 춤사위, 폭소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대사와 노랫말에 곡을 붙여 간절한 듯 신명나게 부르거나 연주하고, 출연한 배우들의 열연과 사물(四物)의 장단, 관객의 추임새까지 더해진 흥겨운 한마당이었다고나 할까? 거기에 즉석에서 샌드아트로 그려지는 평온한 바닷가의 풍경과 물질의 미래 이야기 등이 영상으로 비쳐지니 한결 이채롭기까지 했다.
일찌감치 공연장 주위에 둘러 앉은 관객들은 이색적인 마당극에 젖어 들어 저절로 감흥이 일고, 철길숲을 오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춰 서서 삼삼오오 넌지시 마당극에 빠져드는 분위기였다. 연극 같으면서 창극(唱劇) 같고, 뮤지컬 같으면서도 독창적인 마당극으로 펼쳐지는 해녀의 레퍼토리가 궁금해선지 지나가던 바람도 주변에 맴돌고 별빛마저 서둘러 내려앉는 듯했다.
시민들의 쉼터이자 만남과 소통의 공간인 포항철길숲에서 펼쳐진 ‘구룡포 해녀이야기’ 마당극이 작게나마 해녀들의 실태와 척박한 해녀 환경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경북은 제주도 다음으로 해녀가 많아 1천300여 명이 동해안 중심으로 나잠(裸潛) 어업활동을 하고 있으며, 경북 최다의 해녀도시인 포항은 타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해녀문화의 정체성을 띄고 있다. 그러나 해녀는 연안어업의 주요한 생산자이자 해양생태계의 수호자 역할을 하고 있으나, 종사자의 64%가 40년 이상 나잠어업에 종사한 것으로 나타나 고령화, 소득감소 등으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의 위기에 어촌의 소멸위험은 어촌 주민들의 삶을 크게 위축시키기에 해녀들의 복지환경 개선과 실질적인 대안제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공연 시작 전 35년 동안 바닷속을 텃밭 삼아 온 구룡포리 어촌계장의 화두처럼 해녀의 존재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젊은 해녀, 해남을 위한 ‘해녀 비즈니스타운’ 건립추진 등으로 보다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말이 결코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구룡포 해녀의 역사와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해녀들의 애환을 대중적인 문화콘텐츠로 담아낸 걸작이었다. 이를 계기로 재조명된 해녀들의 실상과 처우가 보다 전향적으로 개선되어 포항의 해녀문화가 차츰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