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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법정 스님의 인생 살아가는 지혜를 담다

신간 ‘진짜 나를 찾아라’(샘터)는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1932∼2010)이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국 각지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법정 스님이 1994년 만든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미출간 강연 자료를 발굴해 소개한다. 법정 스님은 책에서 고독이 필요한 이유, 차에 담긴 의미, 공덕을 쌓는 삶, 인간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주제를 알기 쉽게 들려준다.“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떤 추상적인 시간이나 공간에서 살아가는 게 아니고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어야 합니다. 그 일에 열의를 가지고 몰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라’ 중에서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법정 스님은 한 번뿐인 인생 후회 없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아 성찰을 위한 고독의 필요성과 그 의미에 대해서도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흔히 고립과 고독을 혼동하기도 합니다만, 고립이 아니라 고독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특성과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걸 깨우려면 자신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응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만의 깊은 고독에 빠져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고독에 이르는 길’ 중에서또 “얼굴은 이력서”라며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꿔 좋은 얼굴을 만들라고 당부한다. “우리는 종종 외모나 외적인 특징에만 집중하여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너그러움과 선량함이 그런 것들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움이 내면에서 발산되어 밝아질 때 아름다운 얼굴이 됩니다.”“맛있는 음식을 대할 때 가족이나 친구를 생각하십시오. 좋은 책을 읽었을 때도 그렇게 하세요.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은 기쁨입니다. 인연이고 또 맺음입니다.”- ‘부처님과 같은 공덕을 이루려면’ 중에서이 책에는 인생을 살아가는 바른길을 알려주는 법정 스님의 가르침들로 가득하다. “행복의 척도를 소유에 두지 마십시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등 무소유와 행복의 관계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대화를 하십시오”, “칭찬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마세요” 등 대화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대화 방법을 일러주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절제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는 거 아닙니까?”라는 일침으로 환경 문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당연히 옳다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외면하고 있는 우리에게 법정 스님의 말씀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죽비로 다가온다. 그 죽비는 우리의 영혼을 맑고 향기롭게 바꿔줄 것이다. /윤희정기자

2024-05-16

우리가 동물의 꿈을 볼 수 있다면

동물도 인간처럼 꿈을 꿀까? 이 흥미로운 궁금증은 오랜 시간 우리를 사로잡은 게 아니다. 사람들은 오직 인간만이 꿈을 꾼다고 믿었으니까. 인류는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에야 그간 인간만 가졌다고 여겼던 여러 정신 능력을 동물도 가졌을 거라고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했다.신간 ‘우리가 동물의 꿈을 볼 수 있다면’(위즈덤하우스·사진)의 저자 데이비드 M.페냐구즈만(미국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인문교양학부 부교수)은 이 책에서 다양한 사례를 들며 동물도 인간처럼 꿈을 꾸는 존재인지를 추적한다.저자는 동물이 꿈을 꾼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그간의 다양한 과학 실험을 전기생리학, 행동학, 신경해부학 등 세 개의 범주로 나눠 보여준다. 깨어있는 상태에서 노래를 부를 때 보여주는 뇌 활동 패턴이 수면 상태에서 일정 기간 보이는 패턴과 완벽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려준 금화조 연구나 잠을 자면서 손동작을 통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수화를 배운 침팬지의 이야기, 또 REM 수면 중에 ‘꿈을 실제로 보여주느라’ 앞발을 휘두르거나 귀를 뒤로 젖히는 등의 움직임을 보여준 뇌교가 손상된 고양이의 실험 등 동물이 꿈을 꾼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든 과학적 증거를 보여준다.사실 다윈 이후 ‘동물의 꿈’이란 주제에 대해 과학적인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만큼 19세기부터 이를 증명하는 실험 결과는 적지 않았다. 그동안 그것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를 저자는 ‘인류학적 자만심’이라고 꼬집고, 역사 속 우리의 ‘실수’도 진중히 되짚는다.동물이 잠자는 동안 꿈을 꾼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말해주는지를 저자는 투명한 장벽 너머에 있는 쌀알을 본 미로 안의 쥐 실험으로 그 답을 알려준다. 깨어있는 상태에서 쌀알을 봤을 때와 이후 낮잠을 잘 때 쥐의 똑같은 해마 세포가 활성화된 것이다. 심지어 활성 순서까지 동일한 패턴을 보였다. 이 결과는 쥐가 쌀알이라는 보상으로 경험한 감정(저자는 이를 ‘정서적 의식’이라고 한다)의 환경 자체를 ‘기억’하고, 이를 꿈속에서 미래 경험으로서 적극적으로 ‘상상’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이는 꿈을 꾸면서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즉 꿈을 꾸는 것은 의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미의 엄니가 잘리는 모습을 본 아기코끼리와 어린 시절 어미가 ‘나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 고릴라가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악몽을 꾼다는 연구 보고는 저자가 말하는 꿈과 의식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꿈은 의식으로 가는 관문이며, 꿈을 꾸는 주체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의식을 통해 주체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동물은 꿈을 꾼다. 고로 존재한다.’그렇다면, 우리는 의식의 존재 여부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할까. 저자는 이것이 도덕적 지위의 여부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 소로, 로리 그루언 등 여러 철학자, 사상가, 동물윤리학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저자는 의식의 표현인 꿈은 ‘도덕적 힘’을 품고 있으며 생물의 도덕적 지위의 기반이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동물은 ‘꿈을 꾸기 때문에’ 도덕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위엄과 존경심을 갖고 대해야 마땅한 동료 생물인 것이다.저자는 “동물이 꿈을 꾼다면, 그들은 결코 인간의 하위 버전이 아니다. 동물은 각각 “생명의 주체”다. 어쩌면 새의 꿈은 보이는 게 아니라 들리는 것일 수도 있고, 개의 꿈은 시각적이 아니라 후각적일 수 있다. 동물은 우리는 알 수 없을 ‘그들다움’을 갖춘 세상의 구성원이며, 그렇기에 인간은 그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5-16

‘경제위기 극복책’ 긴축,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국민연금 개혁안이 21대 국회 임기 내 처리가 불발됐다. “노후 소득보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소득보장론’과 “기금 소진을 늦추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재정안정론’ 사이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경제가 위기일 때마다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법만이 난관을 헤쳐나갈 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긴축이 정말 우리를 구원해줄 유일한 정책일까? 미국의 진보 성향 대학 더뉴스쿨의 경제학 교수인 클라라 E 마테이는 신간 ‘자본 질서’(21세기북스)에서 “긴축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경제정책이라는 말은 헛소리다”라고 비판한다. 긴축 정책에 부정적인 근거는 국민 고통, 부채감소·성장촉진 효과의 불확실성, 그리고 그 배후에 숨어있는 자본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불평등 유발이라는 세 가지 이유에서다.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정부 부채 증가, 주가 폭락, 부동산 경기 침체, 경제성장률 저하. 경제에 문외한인 사람이 얼핏 들어도 경제 위기 상황을 나타내는 용어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와 기업,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까? 바로 긴축이다. 공공을 위한 예산을 삭감하고, 약자에게 배정된 복지를 축소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야 나라가 다시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인위적인 절약으로 모인 돈을 기업에 먼저 투자한다면 이를 통해 고용 안정화가 이루어지고 낙수효과가 작동해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그들은 강조한다.그러나 저자는 긴축 재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소수의 기득권이 만들어 낸 거짓말과 같다고 주장한다. 긴축으로 이익을 보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저자는 정치와 권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긴축이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긴축이란 정부와 엘리트층의 실수와 책임을 다수에게 전가하는 책임 회피이며, 소수의 부유층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다.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자본주의와 파시즘의 역사를 추적하고서 긴축의 의미를 살펴본 끝에 ‘긴축’이란 정부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경제를 장악하고,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긴축은 거시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적이다. 긴축을 알지 못하면 경제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서서히 우리의 숨통을 조이는 이 ‘나쁜’ 정책의 이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다”고 말하는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의 재무부와 이탈리아의 파시즘에서 본격적으로 긴축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밝힌다.저자에 따르면 소득이 낮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높은 세금을 부담하는 ‘역진적 조세 정책’ 탓에 공공재 비용 부담은 오랫동안 불평등하게 돌아갔다.또, 사회 전 계층이 부담하는 소비세가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는 가운데 상위 소득 계층에 대해 수십 년간 어마어마한 규모의 감세가 이뤄졌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재임기(1953~1961년) 동안 91%였던 상위 소득세율은 2021년에 37%로 크게 줄었다. 법인세율은 1970년대 50%였는데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21%로 뚝 떨어졌다. /윤희정기자

2024-05-16

젖은 눈으로 세계를 보는… 강미정 시인 다섯 번째 시집

“갑자기 그것이 펼쳐졌다/오므린 꽃봉오리가 꽃잎을 쫘악 펼치는 동영상처럼/소복이 쌓인 눈 사르르 녹은 자리//찬바람 맞아 거뭇거뭇 타들어 간 민들레꽃에 앉아/날개도 접지 않고 절명한 나비 한 마리//….//가녀린 꽃대 아래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하얗게 지워 준 눈/아직도 해끗해끗 담 그늘에 남았다….”- 강미정 시 ‘조막만 한 고요’ 일부1994년 월간 시전문지 ‘시문학’으로 등단한 강미정(경주시 안강읍) 시인이 지난 2008년 출간한 네 번째 시집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 이후 16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도서출판 북인)을 출간했다.강 시인은 젖은 눈으로 세계를 본다. 그녀는 복잡다단한 세계를 눈물로 약호화한다. 그녀의 젖은 눈은 주로 가난한 것, 힘든 것, 죽어가는 것, 슬픈 것, 불쌍한 것들의 뒷모습을 향해 있다. 그녀는 그런 세상의 슬픈 뒷꼭지를 보고 운다. 진짜 울음은 슬픔으로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울음은 사유이고 통로이며 대안이다.강 시인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산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는”(‘기꺼이 다른 것이 되어가고 있는 중’)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시 속에 거대 서사나 환상의 세계가 들어올 자리를 만들지 않으며, 대신 삶에서 쪼개져 나온 소소한 하루들이 오글거리도록 한다. 아버지와 엄마로부터 생겨난 피붙이들과 낯 모르는 사람의 식솔들까지 안부를 챙기고 섬겨서 시집에 살게 한다.그녀의 감성과 상상력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들은 이토록 사소한 생활, 새들한 감정이지만, 시로 빚어진 그것은 무한히 자라나는 삶의 모습들이라는 점에서 아릿하게 따뜻하고 갸륵하다. 또한 천성적으로 그녀는 약하고 버려진 것들을 거둬 마음으로 먹이고 입히는 사람인데, 이런 태도는 시의 어조와 어법에 그대로 스며 사랑하라는 속삭임이 시의 저 뒤편에서 들려온다. 묵묵한 견딤의 시간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면, 한 사람이 다른 이를 위해 해낸 최대의 선량을 보고 싶다면 이 시집이 그 대답을 줄 것이다.오민석 문학평론가는 ‘젖은 눈의 글쓰기’라는 해설에서 “강미정은 젖은 눈으로 세상을 읽되 감상에 빠지지 않고, 인간과 세계의 고통을 이야기하되 과장하지 않는다. 눈물의 코드로 세계를 읽으면서도 그는 비개성의 시학을 실천하듯 센티멘털리즘과 거리를 둔다. 그녀는 슬픔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울릴 줄 아는 기술의 소유자다”라고 평했다.강미정 시인은 경남 김해 출신으로, 1994년 월간 ‘시문학’에 ‘어머님의 품’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타오르는 생’, ‘물속 마을’, ‘상처가 스민다는 것’,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 등 네 권을 출간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5-13

문화예술 경영인으로 느낀 소감 잔잔한 에세이로

“예술적 힘의 근원은 예술에 대한 깊은 사랑과 예술가에 대한 존경에서 나옵니다. 예술가들을 돕고 그들을 위한 기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선 예술경영인만이 아니라 예술을 소비하는 이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김형국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이 문화예술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 ‘춤추는 조르바’(학이사)를 펴냈다. 성악가의 길에서 물러나 문화예술 경영인으로 일하며 느낀 점을 예술행위·여행·영화·책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풀어냈다. 작가는 여러 가지 소재와 예화(例話)를 다루고 있지만 방향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문화예술이라는 큰 흐름을 유지하고 전반에서 긍정적 자세를 견지한다. 저자는 풍부한 배경 지식과 뒷이야기를 동원해 공연장의 문턱을 낮추고 독자들이 공연을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 행간에는 지역 예술경영인으로 지내며 느낀 고민도 묻어있다. ‘예술경영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지역 예술가의 성장 발판이 되기 위해서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며 대안을 모색한다. 저자는 성악과와 대학원, 이탈리아 Liceo Musicale ‘G·B·Viotti’를 졸업하고 20여 편의 오페라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5백여 회의 음악회에 출연했으며, 국내외 유명 오케스트라와도 100여 회 협연했다. 한편 오는 17일 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대구 중구 종로)에서는 이번 책 출간을 기념한 저자 사인회와 북토크가 열린다./한상갑기자arira6@kbmaeil.com

2024-05-13

18~20세기 영미 대표 장편소설 ‘한 권에’

영미 장편소설은 읽고 싶지만 어떤 작품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독자들, 평소 영미 장편소설에 관심이 많은 학생, 교사들을 위한 책 ‘강의실 밖으로 나온 영미소설’(도서출판 득수)이 출간됐다.이 책은 30년 가까이 대학 강단에서 영문학 강의를 한 저자 여국현이 강단 밖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대표적인 영미 장편소설의 주요 내용과 본문을 함께 접할 수 있도록 소개해 놓은 저작이다. 18세기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서 20세기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 이르는 대표적인 영국 장편소설 11편과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마지막 모히칸’에서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을 포함하는 10편의 미국 장편소설 등 모두 21편을 한 권에 담아냈다.독자들은 저자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꼼꼼하게 소개된 장편소설의 플롯을 따라가며 작품과 연관된 중요한 요소들,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점, 작품에 반영된 비평적 요소들에 대해서도 읽을 수 있다. 또한 소설 속 중요 본문의 경우 번역문을 제시하고, 원문은 해당 작품의 맨 끝에 첨부함으로써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하며 읽어볼 수 있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저자 여국현은 “번역은 가능한 원문에 충실하되, 문학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문학적 분위기를 전하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옮겼다. 각 작품의 마지막에는 작가의 초상화와 작가 소개에 대한 간략한 정보도 함께 덧붙였다”며 “한 작품을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김미옥 문예비평가는 서평에서 “이번 책이 우리에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문학의 본질에 다가가는 이들을 안내하는 친절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라고 평했다.저자 여국현은 포항 출신으로서 중앙대에서 영문학 전공(문화연구)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18 ‘푸른사상’신인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새벽에 깨어’, ‘들리나요’, 전자시집 ‘우리 생의 어느 때가 되면’이 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종소리’와 케이트 쇼팽의 단편 선집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 ‘그녀의 편지’를 번역했으며 다수의 영문학 전공 교양서적을 공동 집필했다. 올해 ‘강의실 밖으로 나온 영시 1, 2’를 썼다. 현재 대학에서 영문학강의를 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5-02

허구의 자아… 생각할수록 불행해 진다?

부처님이 도를 깨친 것은 사유(思惟)에 의해서였다. ‘왜?’라는 끊임없는 질문의 끝에서 얻은 깨달음이다. 무아(無我)라는 진리도 무상함에서 유추한 결론이다. 실체가 없으므로 고정된 ‘나’라는 존재도 없다는 것이다. 힘든 일상 속 ‘나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 2권을 소개한다.△그레고리 번스 ‘나라는 착각’미국의 세계적인 신격과학자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저자 그레고리 번스는 ‘나라는 착각-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흐름 출판)에서 자아란 게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설명하고자 한다.저자는 뇌과학과 심리학,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실험 등을 활용해 뇌 속에서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고, 현재의 정보가 어떻게 처리되며, 그것이 어떻게 통합되는지, 그래서 자아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책에서 그는 신경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자아 정체성’이란 개념이 실은 뇌가 만들어낸 허구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 기억을 재생할 수 없다. 복잡하고 모순된 과거 기억들은 선별돼 뇌에 저장되기 때문이다.저자는 자아를 ‘수많은 사건 중에서 특정한 부분을 편집하고 맥락을 이어 붙인 기억의 집합’이라고 정의한다. 즉, 내가 나와 세상에 들려주는 ‘나에 대한 편집된 이야기’가 자아의 실체이기 때문에 자아는 태생적으로 허구일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아가 생성되는 뇌의 메커니즘을 알면 ‘내가 원하는 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우리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미디어를 보는가에 대해 어느 정도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 정보의 측면에서 보면, 내가 먹는 것이 곧 내가 된다.”△닉 트렌턴 ‘생각 중독’‘생각 중독-불안과 후회를 끊어내고 오늘을 사는 법’(갤리온)의 저자인 미국의 심리학자인 저자 닉 트렌턴은 현대인이 과도하게 머리를 쓰면서 산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과거를 되새김질하며 끝없이 후회하는 사람, 아주 작은 일에도 거대한 걱정으로 내닫는 사람, 밀려드는 업무에 압도돼 정작 미루기만 하는 사람 등의 생각 과잉은 유전과 자라온 환경이 원인이 되곤 하지만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성향도 한몫한다고 지적한다.책은 개인 삶의 악영향을 끼치며 스스로를 가두기에 이르는 현대 병인의 생각 과잉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생각 과잉으로 인한 불안이 일상을 잠식하지 않도록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췄다.저자는 생각 과잉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당장 생각의 패턴을 바꾸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그 방법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에 집중하기,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하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에 집중하기 등을 제시한다. /윤희정기자

2024-05-02

김사인에겐 어떤 매력이 있길래…

김사인은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손꼽힌다. 김사인 시인은 1982년 동인지 ‘시와 경제’의 창간 동인으로 참여하며 시 쓰기를 시작했고, 시집으로는 ‘밤에 쓰는 편지’,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어린 당나귀 곁에서’와 산문집 ‘따뜻한 밥 한 그릇’을 펴냈다.시인 김사인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기에 아낌없는 찬사가 쏟아지는 걸까? ‘김사인 함께 읽기’(모악)는 동료이면서 선후배이기도 한 53명의 문인·학자들이 그의 작품에 대한 친절한 해석과 함께 내밀한 인연을 곁들인 책이다. “백석 ‘사슴’ 이후의 절창”(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사인의 문학세계와 작가적 면모를 오롯이 알아볼 수 있다.유용주 시인은 “김사인의 시를 읽으면 무릎 꿇고 용서를 빌고 싶어진다. 착하고 선하다. 부러운 것은 한결같은 그의 마음이다. 어떻게, 그렇게, 곡진하게 시를 쓸 수 있나”하고 감탄했다. 천양희 시인은 “사람 좋기로 치면, 김사인만큼 배려 깊은 사람도 드물 테지만, 김사인만큼 내강외유한 시인도 드물 것”이라면서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십만 번을 뛴다는데 김사인의 시는 그 두 배를 뛰게 한다”고 상찬했다.정명교 문학평론가는 “김사인 시의 형식상의 단정함은 무수히 들끓는 감각의 반란을 통제하기 위한 시인의 혹독한 극기의 산물이다. 그의 시는 시인의 마음속에 들이닥쳐 마음을 들쑤시고 뒤집으며 저희끼리 엉키고 싸우는 감정물들을 이성적으로 진압하였을 때에야 겨우 한 편 나온다. 그리고 그때, 그 시는 엄격하고 단정한 얼굴을 갖지 않을 수 없다.”(48쪽)고 썼다.박명규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김사인은 조용히 다가와 있어 주고 함께 떨면서 만물의 인연과 존재의 오묘함을 깨우치게 하는 매력적인 인간이다. 그는 누구보다 올곧은 인품을 지녔지만 자신을 과시하거나 그걸로 남을 다그치는 법이 없다. 삼라만상의 모든 모습을 말없이 품는 풍경과도 같은 사람이다.”(128쪽)라고 평했다.천양희 시인은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십만 번 뛴다는데 김사인의 시는 그 두 배를 뛰게 한다”고 감탄했다.박연준 시인은 “김사인의 시에는 금 간 백자, 집에서 가장 후미진 곳, 그곳을 기어가는 늙은 거미, 몽당비, 시의 오래된 얼굴, 옛사람의 손금, 냇물의 리듬, 그리고 사랑이 들어 있다”고 했다.책은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던 시인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오랜 벗인 영문학자 이종민 전북대 명예교수의 제안으로 3년에 걸쳐 완성됐다.크게 다섯 부분으로 이뤄진 책의 1~3부는 시인이 펴낸 세 권의 시집에 수록된 작품에 관한 글 모음이다. 대부분 새로 쓴 글이지만 임우기, 장석주, 정명교, 정지창, 최원식의 원고는 이미 발표한 글을 취지에 맞게 정리했다. 3부에는 세 시집에 없는 작품에 관한 글과 최근에 발표한 김지하 시인 추모시에 대한 조용호 작가의 원고가 포함돼 있다.네 번째 부분은 김사인의 시 세계 전반에 관한 총론적 평론이다. 평소 김사인 시작품에 대한 꼼꼼한 읽기를 꾸준히 해온 이숭원 평론가에게 특별히 부탁했다. 부록 형식의 다섯 번째 부분에는 김사인 시인의 연보를 대신한 글과 세 권의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 시선집의 ‘책머리에’, 문학상 수상소감 등을 연대순으로 수록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5-02

13년 만에 출간한 ‘무구의 서정’

이종암 시집 ‘꽃과 별과 총’표지 ‘…. 꽃을 가졌거나 못 가졌거나/몸의 구부러짐과 곧음/색깔의 유무와 강약에도 관계없이/오롯이/함께 숲을 이루는 저 각양각색의/나무, 나무들// 사람들 모여 사는 세상 또한, 그렇다/저마다 꽃이다’- 이종암 시 ‘저마다, 꽃’ 부분포항에서 활동하는 중진 이종암(59·사진) 시인이 최근 네 번째 시집 ‘꽃과 별과 총’(시와 반시)을 출간했다. 13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는 43편의 서정시가 수록돼 있다. 풍속·인물·기후·생태·역사는 물론 지역의 사투리, 공동체의 체험까지 엮어내며 사물과 기억에 겸허하게 귀 기울이는 시인의 서정을 풍요롭게 만날 수 있다.총 3부로 구성된 ‘꽃과 별과 총’은 ‘꽃’과 ‘별’과 ‘총(塚)’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이종암 시의 특징은 자연을 창의적 상상력으로써 들여다보려는 태도로 충만하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자연은 시인의 사유와 인식을 구체화하는 실존적 공간이다.1부 ‘꽃’에서 ‘사월 산길’(‘저마다, 꽃’)을 걷고 ‘바닷바람 드센 호미곶’(‘구만리’)으로 소풍 간 그 여정은 자연에서 얻은 발견과 깨달음을 고스란히 전한다.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미학적 완성도가 높음에도 자유로운 운율을 구사하면서 굳이 분석하거나 설명할 필요 없이 잘 읽히는 시어들을 동원한다.특히 평생토록 가슴에 품은 사랑으로 표현되는 먼저 저승으로 떠난 동생을 언급한 ‘저(오동꽃) 향기 위에 올라타면, 나는/죽은 동생도 만나는 그 찬란이 오는가’(‘오동꽃, 찬란’)라는 구절에서 독자들은 ‘가슴 아픈 찬란’의 역설을 경험한다.‘총(塚)’이라는 부제를 단 2부에서는 ‘마음’의 영원성과 초월성을 노래한다. ‘시총(詩塚·경북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산 78번지, 백암 정의번의 무덤)’·‘개밥바라기총(塚)·충노억수지묘(忠奴億壽之墓)’·‘이총(耳塚·경남 사천시 선진리에 있는 귀무덤)’ 등 각각 다른 무덤 셋을 이야기하면서 ‘심총(心塚)’이라는 개념을 쓴다. 마음은 사람을 움직이게 해 세상의 빛깔을 바꾼다는 것이다.3부 ‘별’에서는 ‘육십 가까이 살면서 내게/뜨거운 사랑을 주던 사람도/견디기 힘든 분노를 안겨주던/세상 그 누구도 다 내게는 별이었다/어둔 길 밝혀주는 동강할미꽃’(‘동강할미꽃과 별’)이 눈에 띈다. 별을 닮은 동강할미꽃의 모습을 노래하며 세상의 모든 것이 시인에게 별과 같은 존재가 됐다는 웅숭깊은 깨달음을 전해 준다. 신상조 문학평론가는 ‘무구(無垢)의 서정’이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무덤(총)을 찾고 꽃과 별을 노래하는 이종암의 시는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시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에게 시란 삶을 체험하고 표현하고 이해하는 불가결한 수단”이라고 적었다.이하석 시인은 “고향 청도와 포항의 구만리·경남 사천·단양 가곡·동강과 서강 어디든 시집 곳곳에 그가 누빈 자국들이 찍혀있다. 꽃과 별과 무덤은 그의 독도법상의 주요 부표다. 우리도 서로의 부표가 되어 ‘내려놓은 채’, ‘서로 사무치며’ 함께 떠돌아도 좋지 않겠는가, 하고 바란다”고 평했다.이종암 시인은 1965년 청도 출신으 로서 영남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포항 대동고 교사로 31년간 재직, 2022년 명예퇴직했다. 1993년 ‘포 항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2000년 시집 ‘물이 살다 간 자리’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물이 살다 간 자리’ 외 ‘저, 쉼표들’·‘몸꽃’ 등이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4-28

‘사람과 관계’ 화두, 인문학적 성찰

‘인간의 품격’, ‘두 번째 산’ 등의 저서를 펴내며 전 세계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올린 데이비드 브룩스의 신작 ‘사람을 안다는 것’(웅진지식하우스)이 번역 출간됐다.미국 저널리스트 출신으로, 저명한 자유기고가·작가로서 이름을 알린 ‘보보스’와 ‘소셜 애니멀’에서 해학과 풍자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날카롭게 포착하던 브룩스의 글쓰기는 언제부터인가 달라졌다. 인간성과 공동체의 회복에 대해 타인과 연결돼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가 꾸준히 탐구한 ‘사람과 관계’라는 화두가 이 책으로 훌륭하게 완결됐다.이 책은 어떻게 하면 우리 삶에서 관계로 인한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사람을 아주 깊숙이 알아가는 일이 상대방과 나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넓혀가는지에 대한 경험과 연구, 사례들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심리학, 철학, 문학, 신경과학을 넘나들며 길어낸 통찰은 한 가지 주제에 깊게 몰두한 저자의 저력을 보여준다.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일수록 서로의 마음을 읽는 정확도가 떨어지고, 그들은 상대방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에 점점 무지해진다. 이 책은 그동안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던, 혹은 회피해왔던 나의 인간관계 경험과 그 경험을 만들었던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끔 한다. “한 사람을 알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 브룩스가 책 전체를 관통해 던지는 이 질문은 다른 사람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일에 관해 한층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브룩스는 이 책을 통해 도덕성의 의미를 새롭게 구축한다. 철학자 아이리스 머독은 “도덕성이란 추상적인 보편 원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도덕적 행위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정의롭고 사랑스러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고 비도덕적 행위란 다른 사람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심은 사소한 행위의 누적으로 점차 위대해진다.브룩스의 전작들과 차별화되는 이 책의 백미는 ‘사람을 아는 것’에 관한 방법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된다는 점에 있다. 상대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정치적 성향과 의견이 다른 사람과는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려면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은 다른 사람을 올바르게 바라봄으로써, 그 사람이 자신을 소중한 존재라고 느끼게 만드는 기술을 능숙하게 구사하도록 돕는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4-18

‘1인가구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방식 소개

‘솔로 에이저(Solo Agers)’는 기꺼이 혼자이기를 선택해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이러한 삶의 형태는 대한민국에서도 주류가 됐다.인생 2막 설계 전문가인 저자 사라 제프 게버의 신간 ‘솔로 에이저-혼자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어떤 미래를 준비하는가’(천년의상상)는 우리가 언젠가 직면하게 될 삶의 단계를 준비하고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혼자의 시대’를 살고 있는 솔로 에이저들의 삶을 진솔하고 명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솔로 에이저’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나이들 수 있도록 큰 방향과 다양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세세한 실천 목록을 제안하고 있어 자립적인 삶에 가까이 다가서는 데 많은 통찰력을 준다.2023년 한국의 1인 가구 비율이 40%를 넘었다. 이 중 여성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50%에 달한다. 결혼했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들도 늘고 있다. 비혼 인구의 증가, 감소하는 출산율, 증가하는 이혼율…. 혼자 영화 보고, 혼자 콘서트 가고, 혼자 삼겹살 먹어도 전혀 ‘뻘쭘’하지 않는 시대다.‘혼자가 익숙한 시대’는 앞으로의 노년 풍경도 바꿀 것이다.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자식이 있든 없든, 전적으로 가족에게만 의지해 나이들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설령 자식이 있더라도, 내가 부모에게 했듯이, 자식이 나를 돌봐 준다는 보장은 없다. ‘혼자라는 미래’는 누군가에게는 이미 와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다.하지만 ‘홀로 나이 들어갈’ 솔로 에이저들은 점차 다가오는 노후를 막연하게 불안해할 뿐,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준비해 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외면하고 있다.저자 사라 제프 게버는 ‘솔로 에이저’에서 자신의 상황, 능력, 욕망, 의지를 자세히 성찰하는 ‘가치 설계’를 시작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주거 설계’ 그리고 주도적으로 돌봄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돕는 ‘돌봄 설계’, 이렇게 세 축을 중심으로 미래의 삶을 설계하라고 제안한다. 그에 따라 ‘가능한 모든 선택지에 대한 장단점과 적용 가능성’을 상세히 설명해 준다. 또한 옮긴이 배상윤은 부록으로 ‘한국의 솔로 에이저를 위한 제도와 법규, 참고 자료와 사이트’를 실어 현실 적합성을 더욱 높였다. 여기에다 적절한 경험 사례들을 추가해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두 번씩이나 큰 재정적 타격을 입은 후 트레일러 주택을 구매해 멕시코 바하 반도에 정착해 예전보다 적은 수입으로도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부부 이야기, 30년 결혼생활을 끝내고 고향 프랑스로 재이주를 한 전문 그래픽 아티스트가 자신의 결심을 현실화했던 과정들을 보여준다. /윤희정기자

2024-04-18

‘불공정 사회’에 시달리는 청년들 분노·무력감 고발

소설가 성혜령(35)의 첫 소설집 ‘버섯 농장’(창비)이 출간됐다. 성혜령 소설가는 지난 2021년 창비신인소설상에 단편 ‘윤 소 정’으로 등단했다.성 소설가는 능수능란하게 펼쳐지는 서사적 긴장감, 분열과 고립의 현대사회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데뷔 당시부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소설집 ‘버섯 농장’에는 특유의 서스펜스와 독보적인 스타일의 힘을 보여준 2021년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이자 등단작 ‘윤 소 정’과 “이 시대의 하드보일드 소설”(정이현, 심사평)이라는 찬사를 받은 2023년 젊은작가상 수상작이자 표제작 ‘버섯 농장’, 2024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간병인’을 비롯한 여덟편의 단편이 수록됐다.성혜령의 작품들은 범상한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 고강도의 긴장을 선사하는 독특한 스릴러 문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건조하게 직시하며 묘한 카타르시스와 묵직한 고민거리를 제시하기도 한다.‘윤 소 정’은 세명의 단짝 ‘윤’ ‘소’ ‘정’의 이야기다. 셋은 유럽여행을 가기 위해 계를 통해 돈을 모았지만 통장관리를 맡은 정이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 여행경비를 모두 날린다. 윤과 소는 정을 탓하지 않지만 정은 계속 심하게 자책하더니 급기야 잠적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5년이 흐른 뒤 정이 대뜸 연락해 윤과 소를 집에 초대하고, 둘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정의 집에서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의 정과 수상하기 짝이 없는 그의 남자친구를 만난다. 작품의 제목이자 나란히 적힌 세 친구의 이름은 하나의 이름처럼 단숨에 읽히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완고한 띄어쓰기가 비극적으로 자리해 있다.이처럼 서로의 지근거리에 있을 뿐 완전한 이해에 육박하지 못하는 셋의 모습은 현대인이 절감하는 단절과 고립감을 떠올리게 만드는 동시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강도 높은 긴장감을 유지”(창비신인소설상 심사평)하며 독자를 사로잡는다.창비 측은 “대체로 청년서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집에서 우리는 한없이 부당한 사회에 시달리는 오늘날 청년들의 분노와 무력감을 목격한다. 이러한 원한의 감정은 절제된 묘사와 개성적인 리듬을 만나 눈을 뗄 수 없는 성혜령식 하드보일드 소설로 승화된다”고 전했다.성 작가는 “저는 지금까지 저에게 왜 소설을 쓰게 되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왔다. 열일곱살 때 다리에 암이 생겼고 그후로 열시간이 넘는 수술을 세 번을 받았다. 뼈를 잘라내고 누워 있는 동안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소설 속 이야기를 굶주린 사람처럼 탐구했다. 그 이야기에 빠져서 잠시 제 고통은 잊고 숨을 쉴 수 있었다”고 적었다. /윤희정기자

2024-04-18

미국 ‘경제 봉쇄’에도 미소·여유 잃지 않는 쿠바인들의 삶

‘쿠바에서는 사랑을 구걸하지 않는다’(마음의숲)는 냉전 시대 미국을 압박하는 소련의 전초기지였고 북한의 ‘형제국’ 지위를 오랜 기간 유지해 온 쿠바가 지난달 한국과 전격 수교한 것을 계기로 쿠바 사회를 소개한 책이다.쿠바에서 미술관 해설자와 여행 가이드로 활동하는 저자 장희주씨는 1960년대부터 이어진 미국의 경제 봉쇄에도 미소와 여유를 잃지 않는 쿠바인들의 가치관을 여러 사례를 통해 들려준다.지금 쿠바는 최악의 시기를 관통하고 있다. 미국이 쿠바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막고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한 정책으로 인해 점점 사람들의 형편이 어려워지고 많은 사람이 쿠바를 떠나고 있지만 그럴수록 살아있는 쿠바의 모습을 찾아내며 타자인 쿠바인들의 삶이 아니라 오히려 저자 본인의 삶이 돼 쿠바 친구들과 이웃들과 함께 씩씩하고 건강하게 오늘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특히 저자는 미술사학 전공자답게 미술과 역사를 통해 독자들의 시각을 넓히고 이해를 돕는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쿠바의 대표적 미술작가 요안 카포테의 그림 ‘바다’를 설명하며 바다를 통해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과 기약 없는 미래, 좌절, 분노를 이야기한다.쿠바라는 섬의 지형적 특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섬에 사는 사람들의 고립감, 바다를 바라보고 살아야 하며 때로는 바다를 넘어서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그들의 숙명적 삶의 원형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또 다른 시각에서 쿠바를 바라보게 한다. /윤희정기자

2024-04-18

일제 식민지를 거부한 절명 시인 황현의 일생 ‘매천 황현 평전’출간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무궁화 우리 강산이 망하였구나/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난 역사 헤아리니/인간 세상 식자(識者) 노릇 참 어렵구나”- 황현 ‘절명시’부분한말사대가는 강위(1820~1884)와 김택영(1850~1927), 이건창(1852~1898), 황현(1855~1910) 네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이들은 한문학이 공식 문장으로 활용되던 마지막 시기에 하나의 문학 그룹을 이루며 활동했으며, 높은 수준의 한문학으로 자신의 시대를 기록한 명망가들이었다.매천(梅泉) 황현이 살다 간 시대는 국내외에서 패권 충돌이 끊이지 않던 위망과 격변의 시기였다. 일생 동안 지역과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과 교유했고, 그들과 함께 굴곡진 역사의 노정을 헤쳐 나갔다.멀리 외딴섬에 유배된 벗을 찾아가 밤새 위로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벗을 조문하러 천 리 길을 떠나고, 일제에 맞서 저항한 사람들을 위해 거침없이 붓을 들었던 황현의 모습은 그에게 내재된 휴머니스트의 면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정감의 발로는, 스러져가는 조선 왕조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고자 절명의 선택으로 이어졌다.‘매천 황현 평전’(소명출판)은 국망의 위기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인간 황현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구한말의 대표적인 우국지사·일제에 목숨으로 항거한 강직한 선비정신의 표상·냉철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한 근대사의 보고 ‘매천야록’의 저자로 각인된 황현의 인생을 풀어낸 책이다.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그가 1864년부터 1910년까지 약 47년간의 역사를 서술한 ‘매천야록’(梅泉野錄)은 구한말 상황을 이해하고 근대사를 연구할 때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저자인 정은주 영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황현과 관련한 여러 사료를 재구성하며 천재 시인이자 우국지사 황현의 면면을 좇는다. 굴곡진 역사를 헤쳐가면서도 멀리 외딴섬에 유배된 벗을 찾아 위로하고, 밤새도록 시국에 대해 토로하기도 했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4-03

사람 모으고 동네 살리고 도시를 바꾼 빌딩들

엔데믹 이후 국가가 아닌 도시 간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곳이 도쿄다.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가장 높은 330m 빌딩인 아자부다이 힐즈의 오픈 등으로 컴팩트 시티로 거듭나고 있다. 그들은 ‘도쿄대개조’야말로 경제불황을 타개할 최선의 해법이라고 이야기한다.‘도쿄를 바꾼 빌딩들’(북스톤)은 도쿄에서 꼭 가봐야 할 10개 지역과 그 중심이 되는 빌딩을 통해 도쿄라는 도시의 미래와 경쟁력을 분석한다. 최근 도쿄가 달라졌다. 인구문제와 오랜 불황을 극복하지 못하며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평을 듣던 도쿄가 엔데믹 이후 글로벌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 4위에 올랐다.눈여겨볼 포인트는 단순한 여행객이 아닌 글로벌 기업을 비롯해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도쿄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콤팩트 시티’로 향하는 도쿄의 치밀한 플랜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의 수도 이미지를 바꾼 현대적 건물로 평가받는 롯폰기힐스를 설계한 부동산 개발회사 모리빌딩 최초의 한국인 직원으로 활동한 박희윤 저자는 이를 ‘도쿄대개조’라는 전략의 성과라고 이야기한다. 도쿄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도시재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는 것이다.이 책은 이러한 관점에서 도쿄에서 꼭 가봐야 할 10개의 지역(동네)과 도라노몬힐스, 긴자식스, 도쿄역 등 그 중심이 되는 빌딩에 대해 다룬다. 여기서 빌딩이란 단순한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건설적인 빌더(builder)를 뜻하며, 그만큼 의미 있는 존재감을 품은 곳들이다.시부야, 긴자, 롯폰기, 오모테산도, 마루노우치, 니혼바시 등 도쿄를 대표하는 지역의 진화와 매력을 담은 이 책은 도시를 발판으로 기획하는 사람들을 위한 최적의 안내서이자, 도시를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최초의 사례집이다. 도시여행자들에게도 다른 관점으로 도시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계기를 제공해줄 것이다.‘도쿄를 바꾼 빌딩들’에서 10개의 지역(동네)과 빌딩을 선정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꾸준히 변화해왔는가? 그 지역 고유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성장해왔는가? 사람을 모으고 동네를 바꿀 정도로 파급력 있는 장소나 빌딩이 존재하는가? 그 장소나 빌딩을 만든 명확한 주체와 사람이 있는가? 지역의 정체성을 꾸준히 유지하며 주민과 함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는가?이러한 기준으로 도쿄를 들여다보고, 나누고, 묶었다. 가장 먼저 시대의 변화와 함께한 ‘제3의 도심’ 탄생을 다룬다. 도라노몬에서 아자부다이를 거쳐 롯폰기에 이르는 도쿄 중심부가 새로운 도시 모델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과정과 파급력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최근 화제가 되는 힐즈 시리즈의 완성형 ‘아자부다이 힐즈’와 모리빌딩의 스토리도 여기서 다룬다. 다음으로는 에도 시대부터 도심지였던 마루노우치와 니혼바시, 그리고 상업과 브랜드의 중심인 긴자가 역사적 콘텐츠를 기반으로 어떻게 재탄생했는지 살펴봤다. 마지막으로는 오모테산도, 시부야, 후타고타마가와 등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개성 있는 동네들의 진화와 현재를 담아냈다.각자의 정체성에 맞게 진화한 동네와 개발의 뒷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도쿄라는 ‘도시’가 어떻게 ‘글로벌 브랜드’가 됐는지를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일관된다. “저성장 시대는 만들면 무조건 팔리는 시대가 아니며, ‘제대로’ 만들어야 팔리고 기업이 유지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인재와 기업, 자본이 모여야 하고, 일하고 살기 좋은 도시, 문화와 환경이라는 인프라를 갖춘 도시가 글로벌 경쟁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도시는 유기체와 같아서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그 가치와 가능성이 달라진다. 도시만큼 다양한 기회와 배울거리가 존재하는 곳도 없다. 이 책은 지금 왜 우리가 도쿄라는 도시를 들여다보아야 하는지, 나아가 우리에게 맞는 도시 모델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안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2024-04-03

자유에 대한 저항과 타협… 보수주의 역사 재조명

신간 ‘보수주의:전통을 위한 싸움’(글항아리)은 영국의 정치 전문 언론인이자 좌파 자유주의자인 에드먼드 포셋(78)이 프랑스 혁명 이래로 본격화하기 시작한 보수주의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인 중심부를 대표하는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의 보수주의에 초점을 맞춘다. 포셋은 또 과소 평가된 보수주의 인물을 재평가하고, 오늘날 강경우파의 시초가 되는 오래전 인물도 찾아내어 재조명한다. 전작 ‘자유주의: 어느 사상의 일생’으로 ‘권위, 명확성, 간결성’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은 포셋은 ‘보수주의: 전통을 위한 싸움’에서 다른 반쪽의 이야기를 한다.“자유민주주의가 번창하는 것은 차치하고 생존이라도 하려면 우파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구절로 시작되는 책은 18세기 혁명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보수주의를 연대기에 따라 네 시기로 나눠 기술한다. 하지만 보수주의 자체가 오른쪽에서 중간, 다시 더 왼쪽으로 움직여왔기 때문에 내용은 보수주의자끼리 서로 엎치락뒤치락 생존해온 역설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보수주의자에는 두 부류가 있다. 1945년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만들고 떠받치는 데 많은 일을 한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가 한쪽이고, 초시장주의를 견지하면서 동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국민(대중)’의 이름으로 대변하는 비자유주의적 강경우파가 다른 한쪽이다. 후자는 타자에 대한 낙인 찍기, 사회적 다양성의 부정과 내부 적에 대한 사냥, 배타적 민족주의 등을 보여왔다.오랫동안 보수주의에는 좌파에 표준 문헌에 상응하는 문헌이 없다고 여겨졌다. 지적인 면에서 보수주의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천성적인 지배자였던 그들은 다스리는 데 익숙한 터라 ‘왜’ ‘무엇’을 위해 통치하는지를 대중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하여 우파는 자유민주주의의 사회적 비용과 태만, 실패를 지적하는 데 주로 자신들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왔을 뿐 사상을 설명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다.이 책은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보수주의자들의 면모를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잘 듣는 귀’를 가졌다는 것이다. 포셋은 단언한다. 정치 관행과 이데올로기의 성공은 잘 듣는 귀에 달려 있다고. 정치인의 자질은 음역대가 다른 목소리들을 다 들을 수 있는 귀에서 결정된다. 예컨대 영국 총리 디즈레일리는 보수적 유권자의 핵심인 잉글랜드 중산층의 정서를 파악하는 ‘완벽한 귀’를 가졌고, 레이건 대통령은 분열된 나라의 목소리를 듣는 ‘섬세한 귀’를 가졌다. 또 고(古)보수주의자 가운데 미국 우파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패트릭 뷰캐넌보다 더 ‘밝은 귀’를 가진 이는 없었다.이 책의 후반부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힘을 얻고 있는 강경우파를 조망한다(저자는 ‘극우’보다 ‘강경우파’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강경우파는 끝자리를 벗어나 정상적인 정치적 경쟁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다). 강경우파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의 후퇴를 의미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4-03

시인 이우근의 어른을 위한 동화

포항 출신의 중진 이우근(60·사진) 시인이 어른을 위한 동화 ‘지나가는 기차를 보는 사람’(나눔사)을 펴냈다. ‘이우근 시인의 스무 살 동화’라는 부제가 붙은 책은 이상진 씨의 삽화를 곁들인 동화책 형식으로 꾸며졌다.책에는 낮고 작고 소외되고 눈물 나는 사소한 것들의 존재에 대해 천착해온 이 시인의 장시에 가까운 에세이들이 담겼다. 작품 속에는 세월이 흘러도 풋풋하게 남은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삶의 자세와 방법에 대한 따스한 시선으로 가득 차 있다.이우근 시인은 “이 책을 무엇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중년의 나이의 사람들이라면 천천히 읽어볼 수 있는 하나의 ‘꺼리’는 될 듯도 싶다. 시간이 지나 젊은 날의 치기와 방종이 어떻게 융숭하게 익어가는지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아프고 즐거우며 반추하며 성찰의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누군들 처음부터 훌륭한 사랑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아쉽고 안타까워서 첫 사람이고 첫사랑이다. 오히려 젊은 세대들이 읽으면 부작용이 먼저 작용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으면 삶의 전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그 마음은 아련한 가스등이 아니라 백열등인 게 다행이다. 장명등(長明燈)이라면 출신을 의심하게 만들 것이다. 분명한 것은 마지막 버스를 타는 마음의 기록이다. 그런 시절을 지나온 아련한 기억은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그 분위기를 끌어당겨 본질의 시간으로 다가가 보자는, 억지에 가까운 친절일지라도, 한 번쯤 생각의 정거장에 머물고 싶게 만든다.사람은 떠나지만, 추억은 남아 화톳불로 마음에 불을 지핀다. 지나가는 기차를 보는 사람은 과거에 잠시 머물기는 하지만 더 먼 미래로 시선을 두고 있다는 명료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좁쌀 같은 남은 생이라도 모두에겐 그것이 소중하고 최선의 시간이길 바라기 때문이다.거두절미하고 책은 추억의 발전적 해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옛사랑의 기억을 소환하는’ 책이다.이우근 시인은 포항에서 태어나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3-20

언론인 이대현 출간 ‘박정희 윤석열 두 대통령의 대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영화가에 화제를 뿌렸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사회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건국전쟁’ 영화가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의 뒤를 돌아보게 했고 좌경화로 치닫던 우리사회에 경종과 함께 큰 울림을 주고 있는 요즘이다.기자 출신 언론인이 지역과 나라의 장래를 고민하는 글을 엮어 책을 냈다. ‘박정희 윤석열 두 대통령의 대화’(도서출판 중문)라는 제목의 책이다. 최근 매일신문사에서 퇴직한 이대현 전 논설실장이 33년 2개월의 기자 생활을 정리하며 쓴 글이다.그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을 돌아보면 과오가 없지 않지만 훌륭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들도 많다. 그러나 정치 진영이 양극화하면서 자기 진영 출신 대통령은 극도로 찬양한 반면 상대 진영 대통령들은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잘못된 현상이 판을 치고 있다’고 작금의 정치 현실을 비판했다. 이 전 논설실장은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예우가 근본적인 문제라며 역대 대통령들의 리더십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이를 통해 후임 대통령들이 교훈과 지침을 얻는 일이 절실한 시점이 됐다며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서문에서 언급했다.이 책의 1부에서는 박정희·윤석열 대통령의 가상대화를 실었다. 두 대통령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대통령 리더십의 실체를 더듬어보고자 했다.2부에서는 매일신문 논설실장과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쓴 박정희 대통령 관련 등 칼럼을 모아 정리했다.3부에서는 2014년 이 전 실장이 3인 공동으로 출간한 저서 ‘21세기 대한민국 세 거인에게 길을 묻다’에 실린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을 다룬 내용을 현재 시점에 맞춰 개작해 실었다.그는 이 책 후기에 기자로 일하면서 화두로 삼았던 대한민국과 대구·경북발전, ‘보다 더 나은 세상 만들기’라는 명제에 계속 천착하겠다며 글을 마무리했다./안병욱기자 eric4004@kbmaeil.com

2024-03-19

원로 오피니언 리더 이성환 ‘뿌리 깊은 나무’ 출간

포항지역의 원로 오피니언 리더 이성환(83·사진) 포항뿌리회 명예회장(전 포항세무서장)이 최근 그동안 지역신문에 기고한 글을 한데 모은 칼럼집 ‘뿌리 깊은 나무’(도서출판 아르코)를 펴냈다. 책에는 지역사회 발전과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혜안이 담겨있다.83세 생일을 맞은 저자는 지난 20여 년간 경북매일신문과 경북일보 등 지역신문에 꾸준히 칼럼을 기고해왔다.2002년 2월 지역 중·장년 애향 단체인 포항뿌리회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고 회장을 역임한 이후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는 저자는 지금까지 포항 지역사회의 어른 역할을 해왔다.이 명예회장은 그밖에 ‘포항시 인구 늘리기 운동’을 비롯한 ‘시민화합 대잔치’, ‘포스코 주식 한 주 갖기 운동’, ‘포항스틸러스 사랑 운동’ 등 애향 운동과 함께 안보 현장 방문과 선진지 견학 등을 통한 지역 발전 활동에도 꾸준한 열성을 보였다. 지난 2006년 포스코 건설노조 사태 등 각종 지역 갈등 상황 해결에도 적극 앞장서는 등 지역 상생에 일조하고 있다. 책에는 당시 지역의 현안 사항들을 신문에 기고한 38편의 칼럼과 부록으로 ‘나를 끔찍이 사랑하셨던 누님, 이영희(동화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의 시와 칼럼, 이영희 교수의 육필 원고, 생전에 이영희 교수가 동생 이성환에게 보낸 생일축하 카드 등을 담았다.또 이영희 교수의 ‘만엽집’을 기리며 쓴 서상은 시인의 ‘그대 내 조국 기둥 뿌리시여’라는 시도 실려 있다.김유복 포항뿌리회 8대 회장은 추천사에서 “이성환 선배님은 포항뿌리회 활동을 통하여 지역사회의 크고 작은 현안에 앞장서서 길을 열고 이끌어 가시는 열정으로 지역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계시는 지역의 큰 어른으로서 지금껏 20여 년을 한결같이 솔선수범하고 계신다”라고 밝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3-18

아베 신조가 풀어 낸 국제정치와 국내 과제

지난 2022년 총격으로 사망한 풍운의 정치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회고록 ‘아베 신조 회고록’(마르코폴로)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일본에서 지난해 2월 8일 출간된 ‘아베 신조 회고록’은 100일 남짓한 기간 동안 수십만 부가 팔렸다. 원래 이 책은 재작년 봄에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소위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 때문에 아베 본인이 브레이크를 걸어 출판이 연기됐다. 그해 7월 8일 아베 신조가 총에 맞아 사망한 후, 부인(아베 아키에)의 동의를 얻어 출판한 것이다.요미우리 신문의 기자들인 하시모토 고로와 오야마 히로시는 아베 신조가 총리직을 사임한 한 달 후부터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횟수로는 총 18회, 기간은 약 1년, 인터뷰 시간은 36시간에 달했다. ‘아베 신조 회고록’은 이 모든 인터뷰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일본어 원서에는 ‘알려지지 않은 총리의 고독, 결단, 암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회고록은 자기변명의 요소들이 곳곳에 암초처럼 남아 있다. 한 나라를 이끌었던 전직 총리로서의 아베 신조가 무슨 생각으로 국제정치 무대에 섰고 또한 국내의 산적한 과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아베 신조가 만난 세계 지도자에 대한 평들이 흥미롭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 그는 “아무렇게나 1시간 동안 얘기합니다. 길면 1시간 반도 되고요. 중간에 이쪽이 지칠 정도예요. 그리고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하면 본론은 전반 15분 만에 끝나고 나머지 70~80%는 골프 이야기나 다른 나라 정상의 비판 등이죠”라고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선 “한국 대법원의 판단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반일을 정권 부양 재료로 사용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제 앞에서 사법부의 판단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표정으로 ‘어떻게든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2024-03-14

전쟁사와 그 뒤에 있던 과학의 발전사

북한이 ICBM 기술에 집착하는 것은 세계 패권을 뒤바꾼 전쟁의 뒤에는 언제나 과학이 있었기 때문이다.1770년대 초반, 프랑스 군대는 최고 수준의 신무기체계를 갖추고도 화력의 관건인 화약 품질이 떨어져 고전하고 있었다.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독립전쟁에 엄청난 재정·군사지원을 강행한 프랑스 정부의 재무장관 튀르고는 화약 성능 개량의 막중한 임무를 라부아지에에게 맡겼다. 라부아지에는 1775년부터 1791년까지 프랑스군 전체의 화약 개량뿐 아니라 병기창 운영과 보급행정의 총괄책임자가 됐다.신간 ‘과학이 바꾼 전쟁의 역사’(교보문고)는 과학이 개입하기 시작한 근대 전쟁에서 출발해 과학으로 인해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를 거듭했는지, 또한 전쟁의 승패, 국가의 선택으로 어떻게 세계 패권이 이동해 왔는지를 24가지 결정적 사건들을 통해 소개한다. 미국 독립 전쟁부터 프랑스 혁명, 1, 2차 세계대전을 거쳐 걸프전까지, 화약 개량부터 원자폭탄, ICBM과 비교적 최근의 현대 무기체계 방향까지 전쟁사와 그 뒤에 있던 과학의 발전사를 훑다 보면 세계정세 변화를 단숨에 읽어 낼 수 있다.과학사를 전공하고, 국방 과학 기술을 연구해 온 저자 박영욱 군사학자는 화약 개량을 위해 화약 국장으로 임명된 ‘근대화학의 아버지’ 라부아지에를 시작으로 전쟁의 고비마다 결정적 장면을 만들어 승패를 가르고 세계 패권을 바꿔 놓은 과학적 발견과 발명 주인공들의 역할을 열거한다. 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구한 비료 원료를 개발해 놓고 독가스에 이를 활용한 화학자 하버,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기관총을 발명한 의사 개틀링, 원자를 쪼갤 수 있다는 과학적 발견을 원자폭탄으로 완성시킨 물리학자 오펜하이머, 원자핵을 융합해 원자폭탄 이상의 파괴력을 가진 수소폭탄을 개발한 물리학자 텔러 등이 망라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3-14

‘3루’서 태어난 부자들이여 ‘공공 경제’를 위해 일하라

신간 ‘억만장자가 사는 법’(한국NVC출판사)의 저자 척 콜린스(65)는 26세에 50만 달러의 신탁자산을 기부하고 불평등 해소를 위해 평생을 바친 실천가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 불평등 문제 전문가다. 그의 활약은 약탈적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활기찬 선물경제와 건강한 상거래가 작동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련의 활동이기도 하다.그는 이 책에서 2008년 경제 침체로 인해 더욱 분명해진 불균등한 부의 분배 문제를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상위 1퍼센트가 따라야 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부자들에게 ‘집으로 돌아와서’ 투자를 약속하고, 지분을 내놓고, 모든 사람을 위해 작동하는 경제를 위해 일할 것을 요청한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부를 분배하고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내는 것을 의미한다.오늘날 점점 커지는 불평등에 대한 해법을 둘러싼 논쟁은 양극단으로 나뉘면서 계급적 정당성과 적대감이라는 틀에 박힌 이야기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저자는 이러한 낡은 틀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이 책의 원제는 ‘Born on Third Base’다. ‘어떤 사람들은 대(代)주자로 3루를 밟고 있으면서 마치 자신이 3루타를 친 것처럼 행동한다’는 날카로운 비판 속 주인공은 남들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이렇게 태어난 부자들의 부와 행복의 주된 원천이 ‘공공의 부’ 또는 공유지나 공유자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부가 전적으로 개인적 행위의 결과라는 신화에 압도당하고 만다고 말한다.저자의 문제의식은 과연 어떻게 해야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역학 관계를 바꾸는 일을 도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미국의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부유층 사람들은 지구상의 그 누구보다 결과를 바꿀 수 있는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1부 ‘3루에서 태어나다’에서는 저자가 겪은 일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글로벌 육가공 기업 오스카마이어의 창업주 손자로 태어나 상위 1%의 일원으로 자랐지만, 26살 때 모든 상속 재산을 기꺼이 사회에 기부했다. 이후 불평등 완화와 공동체성 회복, 사회 공동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공공선을 위한 부, 공정 경제를 위한 연합 등 사회운동 단체를 설립해 활동했다.2부 ‘공공의 부란 무엇인가’는 상속세를 없애려는 시도에 맞선 빌 게이츠 시니어와의 여정 이야기를 포함해서 부자들의 부와 자기 정당성 신화의 문제와 관련된 많은 사례를 살펴본다.3부 ‘남보다 유리한 조건에 있다는 것의 의미’는 어떤 사람은 부를 소유하는데 어떤 사람은 왜 그렇지 못한지 그 이유를 이해하고자 할 때 특권이 그 문제의 쟁점을 흐리는 방식에 대해서 훑어본다. 저자는 소수의 부자는 어떻게 점점 더 유리해지고, 대다수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점점 더 불리해지는지를 살핀다.4부 ‘불필요한 샛길로 빠지다’는 자선이 과연 치유책이 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부자 중에는 전통적인 자선기관들을 통해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다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저자는 일부 자선활동이 기존의 불평등을 어떻게 악화시키는지를 보여준 뒤, 자선활동의 개혁을 주장한다.5부 ‘부(富), 집으로 돌아오게 하기’는 오늘날 우리의 경제 및 생태계의 현실과 시스템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접근을 시도한다. 나아가 글로벌 투기 자본주의와 탈세를 위한 해외 자금 도피가 아닌, 지역의 새로운 경제를 위해 애쓰는 사업체들에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소개한다.6부 ‘초대장’에서는 두 종류의 초대장으로 마무리한다.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약탈적이고 착취적인 자본주의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회 운동을 조직하고, 기업의 침해에 저항하기 위해 계급과 인종을 초월하는 동맹 관계를 구축하는 데 공감하고 손을 잡기 위한 초대장이다. /윤희정기자

2024-03-14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13년 만에 재출간

조해진의 신동엽문학상 수상작 ‘로기완을 만났다’(창비)가 13년 만에 ‘리마스터판’으로 새롭게 선보인다.2004년 문예중앙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조해진은 대산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백신애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거머쥐며 탄탄한 작품성을 입증해왔다.이번 리마스터판은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오리지널 영화 ‘로기완’의 공개(3월 1일)에 맞춰 일부 표현을 다듬었다.‘로기완을 만났다’는 “이방을 떠도는 탈북인의 운명에 대해 놀랄 만큼 차분한 공감을 자아내는 넉넉한 품과 세심한 결”이 돋보이는 한편 “올올이 살아 있는 반성의 문체와 서럽도록 몽환적인 여로를 결합해, 소설에서 보편성이 어떻게 획득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입증해냈다”(권여선)는 평으로 2013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2021년에는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선정한 ‘우리 시대의 소설 50’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시간이 지나도 빛바래지 않는 한국문학의 중요한 성취로 꾸준히 거론돼왔다. 몰입감 넘치는 서사와 거기서 파생되는 보편적인 감동으로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혈혈단신으로 벨기에에 밀입국한 탈북인 ‘로기완’의 행적을 추적하며 타인에 대한 공감과 애정을 탁월한 솜씨로 그려낸 ‘로기완을 만났다’는 조해진 문학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2-28

더 나은 인생을 위한 그만두기의 기술

누구나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을 때, 들이는 노력에 비해 보상이 너무 적다고 느낄 때,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른 결과를 얻었을 때 우리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느낀다. 인생에 새로운 것을 채워 넣기 위해서는 지금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을 비워내야 한다. 두 손에 가득 들고 있는 것을 내려놔야만 다른 것을 쥘 수 있다.미국 시카고 트리뷴지 기자였던 저자 줄리아 켈러는 ‘퀴팅’(다산북스)에서 진정으로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한 결심으로 ‘퀴팅(Quitting)’, 즉 ‘그만두기’를 조언한다.책은 저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영문학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저자는 오랜 고민 끝에 대학원 생활을 그만두고 탐사보도 전문 기자를 보조하는 인턴으로 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작은 마을의 신문사에서 일했고, 이직 끝에 ‘시카고 트리뷴’에서 기자로서 최고의 이력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저자는 다시 기자를 그만뒀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그의 첫 소설은 우수한 데뷔작에게 시상하는 배리어워드(Barry Award)를 받고 드라마로도 제작됐다.저자는 특유의 취재력을 발휘해 전 세계에서 150여 명에 달하는 신경과학자, 진화생물학자, 심리학자 등의 전문가에게 ‘퀴팅’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헤쳤고, 퀴팅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략적 선택으로써 ‘퀴팅’의 유용성을 이야기한다. 그만두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그만두는 것이 도망이나 회피가 아닌 더 나은 인생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1부에서는 ‘퀴팅’이 얼마나 중요한 생존 전략인지를 새와 벌, 체조선수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려준다. 퀴팅이 단순히 패배자의 마지막 선택지가 아닌 뇌가 보내는 구조신호에 대한 합당한 반응임을 알려준다. 또한 제브라피시, 생쥐, 집쥐 등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퀴팅’이 단순히 스위치 ‘OFF’ 상태가 아닌 뇌에서 얼마나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 결정되는 것인지를 다룬다. 저자는 퀴팅은 뇌에 있어서 에어로빅과 같다고 말한다. 뇌를 민첩하고 유연하게 유지하고 싶다면, 새로운 방향으로 가라고 요구하는 행위를 자주 해야 한다.2부에서는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을 비롯해 그릿(Grit·끈기)을 설파하는 자기계발 산업의 논리를 파헤친다. 그릿만을 최상의 성공 조건이자, 인간을 평가하는 항목으로 제한해 버리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그릿에 대한 담론이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분석한다.3부에서는 퀴팅이 단순히 지금 하는 일을 내팽개치고 완전히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퀴팅은 망설이는 행위일 수도 있고, 새로운 목표를 좇기 전에 심사숙고하는 기간일 수도 있으며, 잠시 멈춰 서서 방향을 전환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그러니 퀴팅의 기술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퀴팅에 이르기까지 나만의 서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려준다.사실 그만둔다는 결정에 대한 주위 사람의 시선과 기대, 평가 또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특히 내가 그만둠으로써 죄책감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들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2-28

문장으로 비추는 인생이라는 무대

신간 ‘버나드 쇼의 문장들’(마음산책)은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로 불리는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의 삶과 문학의 정수가 담긴 책이다. 버나드 쇼는 세련된 위트와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명언을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책에는 그의 빛나는 명언뿐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인생, 그의 희곡 작품 속 명대사가 원문과 함께 총망라돼 있다.하나의 문장은 그 작가의 삶과 연결될 때 완성된다.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묘비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그의 삶은 ‘우물쭈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버나드 쇼가 쓴 문장들에는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온 이방인, 젊은 시절 소설가로 실패했으나 뒤늦게 비평가이자 극작가로 인정받은 예술가, 무수한 시대적 풍파를 거치면서도 더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정치 활동가 버나드 쇼의 모습이 담겨 있다. 버나드 쇼는 94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60편이 넘는 희곡을 남겼으며 1925년에는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위대한 극작가이지만, 국내에는 아직 소개된 작품이 많지 않다. 이 책에서는 버나드 쇼의 희곡 작품에서 인상적인 대사를 다수 발췌해 소개하고 있다.허를 찌르는 신랄하고 예리한 풍자와 다크초콜릿처럼 쌉싸름한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명언들로 쓴웃음과 감탄을 동시에 자아내는 작가 버나드 쇼를 만나볼 수 있다. /윤희정기자

2024-02-28

분노·냉소의 미국서 도덕의 거처를 묻다

신간 ‘나의 미국 인문 기행’(반비)은 미술사학자이자 디아스포라 학자인 서경식 도쿄 경제대학 명예교수의 유작이다. 서 교수는 1991년 출간된 ‘나의 서양미술 순례’로 잘 알려진 재일 조선인 작가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은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영국 인문 기행’에 이은 ‘나의 인문 기행’ 시리즈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책이다. 이번 미국 편에서는 저자가 전작에서 다뤄온 주제들에 더해 자유와 환대의 가치를 내건 미국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세계가 마주한 암울한 현재에 대한 사유가 들어있다. 그렇게 저자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재난과 전쟁 범죄, 국가 폭력의 끔찍한 현실 속에서 ‘도덕의 거처’를 묻는다.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예술 작품을 떠올리며 ‘선한 아메리카’, 더 나아가 ‘선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루하루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인간 그 자체에는 절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이 책에서 서경식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직전인 2016년과 학생운동을 하던 중 수감된 두 형(서승·서준식)의 구명 활동을 위해 미국을 오갔던 1980년대,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2020년을 반추한다. 그는 세 시간대를 오가며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가 극심해지며 ‘전쟁 도발이 먹구름처럼’ 드리운 세계에 대한 깊은 염려를 표한다.옥고를 치르던 형들의 구명운동을 위해 방문한 뒤 3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미국은 자기중심주의와 불관용이 극심해지는 곳이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적인 언행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자로 부상하고, 여러 문화가 뒤섞여 ‘서로 갈등하고 항쟁’하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보다 ‘단일’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는 곳이다. 그런 미국에서 서경식은 자신에게 선의를 가지고 다가와 준 이들과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진실’을 용감하게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만난다.자본주의의 대명사인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로서 대중에게 침투하려던 디에고 리베라, 참혹한 현실을 그려내며 자신의 그림을 저항과 연대의 무기로 삼았던 벤 샨,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에 항의하며 미국으로 망명한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와 미국의 국가 폭력과 감시를 문제 삼아 도발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로라 포이트러스…. 서경식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미술관 복도를 거닐며 부정의에 저항하며 해방의 씨앗을 심으려고 했던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암담한 현재를 똑바로 응시하며 ‘쓰고 그리는 일’의 의미를 묻는다.서경식은 1951년 다섯 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와세다대 재학 중이던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한국에서 공부하던 두 형이 구속된 뒤 구명 운동을 벌였고, 한국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2-22

개인의 자유, 물화한 자유에 대한 성찰

신간 ‘상처받은 자유’(에코리브르)는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들이 펴낸 사회학적이고 시대 진단적인 신간이다. 책은 비판 이론에 기대어 개인의 자유와 주권에 대한 요구가 민주주의 사회에 위협이 되는 후기 근대의 항의 유형을 분석한다. ‘상처받은 자유’에 따르면 자유는 모호한 측면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진보’라는 말과 손을 잡고 갔다. 그러나 최근 ‘자유’를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은 인류 진보와는 무관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독일 문학사회학자인 카롤린 암링거와 바젤대 사회학과 사회구조분석학 교수인 올리버 나흐트바이 두 저자는 이들을 ‘자유 지상주의적 권위자들’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자주 사회적 권위를, 무엇보다도 국가와 전문가를 거부한다. 그들이 인정하는 유일한 권위는 자기 자신이다.저자들은 “자유를 오직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자기의 유일한 권리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자유를 ‘물화적 자유’라고 규정한다. 저자들은 자유지상주의와 권위주의가 결합하는 양상을 독일의 현실 정치를 자료로 삼아 분석한다. 저자들은 자료를 분석하는 가운데 막스 호르크하이머·테오도어 W.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테오도어 W. 아도르노·엘제 프렌켈브룬스비크·대니얼 J. 레빈슨·R. 네빗 스탠퍼드의 ‘권위주의적 성격 연구’,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을 참조하며, 그 과정에서 고전적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킨다.책에 따르면 자유를 둘러싼 갈등의 전개는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정점에 도달했다. 그 갈등은 개인의 행동을 극도로 제한하는 개입주의적 국가의 복귀를 특징으로 한다. 오늘날 시위 현장에 나온 사람들은 전통적 우익과 달리 강한 국가가 아니라 약하고 거의 없는 듯한 국가를 원한다.“하지만 그들의 때때로 경박한 전복 행위와 다른 견해에 대한 광적인 거부는 동시에 권위주의적 태도를 증명한다. 그들은 취약한 집단과의 연대를 거부하며, 자신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장본인으로 지목한 사람들에 대해 언어적으로 무례하고 매우 공격적이다. 그들은 우파적 음모론을 제기하지만, 우파라는 비난은 단호히 거부한다. 개인의 무조건적 자율을 고수하는 이러한 권위주의는 기존의 정치적 좌표가 혼란에 빠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다.”저자들은 “이러한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를 사회적 의존성을 배제하는 개인주의적 자유 이념의 징후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유는 공유된 사회 상태가 아니라 개인의 소유물이다.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는 후기 근대 사회에 반기를 들지만, 그 핵심 가치인 자결과 주권의 이름으로 반항한다”. 책은 ‘계몽의 아포리아’, ‘의존성 속의 자유’, ‘무질서의 질서’, ‘사회적 상처’, ‘자유지상주의적 권위주의’, ‘진리 추구자의 몰락’, ‘세계의 재주술화’, ‘파괴적 원리로서 전복’ 등 총 8장으로 구성됐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2-22

시와 산문은 따로 떨어질 수 없는 ‘한 몸’

등단 50년을 넘긴 한국 서정시의 거장 시인 정호승(74·사진)이 직접 가려 뽑은 자신의 시와 그 시에 얽힌 이야기를 쓴 산문을 엮은 산문집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비채)를 펴냈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는 ‘우리가 어느 별에서’, ‘슬픔이 기쁨에게’,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등 시인의 대표 시가 다수 수록됐으며, 시를 창작할 당시의 사연을 풀어낸 산문들이 짝지어 펼쳐진다. 어린 시절 모습부터 청년기와 군 복무 시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운 부모님의 모습 등 시인이 소중히 간직해온 20여 컷의 사진이 함께 실렸다.1972년 등단해 50년 넘도록 시를 써온 정호승. 그는 일상적인 언어를 쓰는 친근한 시인으로서 모든 세대에 사랑받는다.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등 현실에 예민하게 감응하고 심오한 성찰을 빚어낸 시집을 펴내며 명실공히 한국 서정시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등 산문집 역시 출간 후 18년이 넘도록 꾸준히 읽히고 있다.시인은 시와 산문이 따로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라고 말한다. 시든 산문이든 일상에서 길어 올린 한순간에서 출발한다고, 시와 산문이 하나로 엮인 책을 오래도록 소망해왔다고 고백한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은 이러한 시인의 소망으로 탄생했다. 2020년 처음으로 출간한 ‘시가 있는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모든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그 사랑에 힘입어 2024년 두 번째 ‘시가 있는 산문집’,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가 독자들을 만난다.김수환 추기경의 말씀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에서 빌려온 책 제목처럼, 정호승 시인은 그동안 겪어온 사랑과 고통에 관해 적으며 그것이 빼어난 시로 피어나는 광경을 보여준다. 청년기 시부터 최근 시까지 망라해 엄선했기에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에는 정호승이라는 한 인간의 삶이 문학적 형태로 응축돼 있다. 어둠을 두려워하고 책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 사랑하는 사람과 눈길을 걷던 밤을 지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노년까지 ‘인간 정호승’의 사연이 ‘시인 정호승’의 시로 피어남을 보여주면서 누구의 삶이든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먹먹한 위로를 전한다.정 시인은 등단 52년간 사랑의 기쁨과 피할 수 없는 생의 고독, 깨달음을 노래해 왔다.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로 시작하는 시 ‘수선화에게’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시인이 등단 52년을 돌아보며 전하는 산문집 ‘고통없는 사랑은 없다’가 새로운 울림을 줄 것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