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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경제 최대격변기 40여 년의 기록

삼성글로벌리서치 펴냄·강만수 지음·인문 신간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도전실록’(삼성글로벌리서치)은 한국경제 최대 격변기를 경험하고 지휘한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비망록으로서 실전경제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개발연대부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까지, 그리고 다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파고를 넘기까지 한국경제가 격동했던 40여 년간을 경제정책의 현장에서 직접 부딪쳐 체험한 저자의 열정과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1970년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국세청, 재무부, 관세청, 통상산업부, 주미대사관 등을 두루 거치며 재정과 금융, 국내금융과 국제금융, 세입과 세출, 내국세와 관세를 모두 경험했고, 아시아 외환위기 때는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두 번이나 위기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때론 정책입안자로, 때론 정책결정자로 소용돌이치는 한국경제의 한복판을 직진으로 통과해왔다. 책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험난했지만 경탄할 수밖에 없는 한국경제의 궤적을 온전히 보여주고자 저자가 기존에 출간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과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 두 권을 한 데 묶어 정리했다.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도전실록’에서 저자는 현재의 한국경제가 결코 순탄하게 절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크게 재정·금융·국제금융·아시아 외환위기·글로벌 금융위기·위기의 반성·일류국가의 정치경제학 등 7부로 이뤄진 이 책의 구성만 보아도 저자가 올라야만 했던 산들의 험준함을 짐작할 수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8-29

한국 불교 대표선승의 삶을 읽는다

고우 스님. /조계종출판사 제공 한국 불교의 대표 선승으로 꼽히는 고우(古愚·1937~2021) 스님의 열반 3주기를 앞두고 스님의 수행 일대기를 정리한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조계종출판사)가 출간됐다. 이 책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에서 종무원으로 일하며 고우 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던 박희승 ㈔한국명상지도자협회 사무총장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 실천한 스님의 일대기를 담담한 필체로 정리한 기록이다. 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간화선 중흥에 앞장서 온 선승(禪僧)인 고우 스님은 고우 스님은 1937년 경북 고령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1961년 경북 김천 수도암으로 출가했다. 당대의 대선지식 향곡 스님, 서옹 스님, 성철 스님, 서암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정진했으며, 사사로운 문중의 이해관계를 떠나 오로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부대중 공동체를 위해 공심(公心)으로 봉사하고, 간화선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실천한 주인공이다. 특히 고우 스님은 1969년 수좌 도반들과 함께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 들어가 1947년 시작된 봉암사 결사의 전통을 이어서 제2결사를 추진, 지금의 조계종 종립 선원이자 수좌 원융 도량 봉암사를 만드는 초석을 놓았다. 현재 봉암사는 부처님오신날 하루만 개방하며 364일 참선 수도하는 참선 도량으로 유명한데, 이 봉암사의 기반을 다진 스님이 바로 고우 스님이다. 책은 30대 전후의 수좌 10여 명과 1969년 봉암사 제2결사를 이끌어 대한불교조계종 종립선원 봉암사의 기틀을 형성하고, 1982년 도반인 적명 스님과 함께 전국선원수좌회의 전신인 선납회(禪衲會)를 창립해 간화선풍의 대중화에 힘쓴 고우 스님의 행적을 조명한다. 고우 스님은 애초에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에는 반드시 점진적 수행단계가 따른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따르는 승려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단박에 깨달음과 수행을 완성한다는 견해인 ‘돈오돈수(頓悟頓修)’로 생각을 바꾸게 된다. 책은 시간순으로 스님의 출가와 공부 과정, 수행 체험, 공심으로 임한 봉암사·조계사 소임 살이와 10·27법난 수습 이야기, 두 번의 깨달음과 성철 스님과의 짧지만 인상적인 법연, 간화선에 쏟은 애정과 열정 등이 총 4장에 걸쳐 펼쳐진다. 1980년 신군부가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조계종 승려 등을 강제 연행해 수사한 이른바 10·27 법난으로 조계종 총무원이 위기에 빠지자 조계종 총무부장을 맡아 위기를 수습하고 석 달 뒤 산으로 돌아갔다. 그는 2007년 조계종 원로의원에 추대되고 최고 법계인 대종사 품계를 받았으며, 80세가 된 2017년부터 대중을 만나지 않고 홀로 정진하다 2021년 8월 29일 봉암사 동방장실에서 세수 84세, 법랍 60년으로 열반했다. /윤희정기자

2024-08-29

시진핑 1인 독재… 중국의 앞날은?

2018년 국가 주석 임기 제한이 폐지되면서 중국은 사실상 시진핑 1인 독재 체제로 돌입했다. 이후 중국은 소수민족 탄압 정책과 인권 유린 등 세계 질서에 위협적이라 할 수 있는 행적까지 드러내고 있다. 국가가 모든 개인의 정보를 사생활 단위로 수집하고 통제하며 종교·사상 어떤 다양성도 인정하지 않는 나라. 우리는 중국을 이해할 수 있을까?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이자 미국 내 중국 전문가로 꼽히는 야성 황 교수는 저서 ‘중국필패’(생각의힘)에서 과거의 문명국가, 현대의 문제 국가 중국을 읽는 새로운 접근으로 ‘EAST 공식’을 제시한다. 시험(Examination)과 독재(Autocracy)와 안정(Stability)과 기술(Technology) 네 가지 주제의 머리글자를 딴 이 공식은, 현대 중국을 존재하게 한 ‘국가 확장 공식’을 가리킨다. 587년 수나라에서 처음 개발된 이후 오늘날 가오카오(GAOKAO, 高考)까지 이어진 ‘과거(科擧) 메커니즘’은 중국 사회를 지배해오면서 ‘독재’ 체제 속에서 ‘안정’을 가능하게 했고 국가 주도 ‘기술’ 발전을 촉진시켰다. 중국의 야욕이 세계 질서를 흔드는 이때, 역사적 흥망성쇠를 통해 중국의 국가 권력이 확장해 온 비결을 분석하고 대국이 향후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지, 국제사회가 중국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질문한다. 1960년 베이징 출생으로 1985년 하버드 대학교 행정학부를 졸업하고 1991년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저자는 로마 제국과 한나라를 비교하고, 영국 튜더 왕조 헨리 8세의 스캔들과 명나라 만력제의 황태자 책봉 거부를 비교하는 등 동과 서를 함께 살핀다. 무엇보다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 진나라가 나무 몽둥이를 든 농민 반란군의 손에 무너진 진승·오광의 난에서 ‘정치적 중국’의 기원을 찾아 중국 역사 구석구석 뿌리 내린 사료를 남김없이 끌어와 자기만의 데이터로 삼는다. 저자는 시곗바늘을 바삐 돌리며 개혁개방 시대에는 젊은 인재들의 성장과 교육을 어떻게 범위의 땅으로 ‘아웃소싱’했는지, 자유의 땅에서 그들이 키운 결실을 어떻게 국가의 몫으로 돌렸는지도 조리 있게 밝힌다. 1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정책이 어떻게 한 국가의 인식 체계를 지배했는지 탐구·분석해 마침내 오늘날 국제 정세 속 기현상의 발생 원리까지 밝힌다. 저자는 중국이 사실상 시진핑 1인 독재 체제로 전환한 과정에 주목한다. 책에 따르면 중국은 1980년대에 권력 분산, 이념적 다양성, 경제 성장 등의 변화를 보여줬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1989년 톈안먼 사건을 겪은 후 빠른 속도로 국유기업 민영화와 외국 자본 개방을 빠르게 추진하는 반면 농촌의 기업가 정신은 억압하는 일견 모순된 노선을 택한다. 이는 편향된 자유화이며 그 결과 국가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공고해졌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결국 2022년 10월 열린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통해 시진핑은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해 마오쩌둥(1893∼1976)에 버금가는 종신집권 체제에 진입한다. 저자는 특히 과거 제도가 절대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본다. 국가는 과거 제도를 통해 인재를 독점하고 종교 기관, 상인 집단, 지식인 집단이 인적 자원을 확보할 기회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대학을 엄격하게 통제·감독하며 운영에 세밀하게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책은 “엄밀하게 말해서 모든 중국 대학은 관료제의 일부”라고 규정한다. 책은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남한을 지향하고 정치적으로는 북한 모델을 수용하는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면서 “향후 중국을 기다리고 있는 불길한 미래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8-29

공동체의 ‘올바른 윤리성’을 좇다 소설집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

김강(52·사진) 소설가가 3년 만에 신작 소설집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도서출판 작가)를 출간했다.내과 의사이자 책방주인이기도 한 김강은 21회 심훈 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인 ‘우리 아빠’부터 ‘소비노동조합’, ‘그래스프 리플렉스’ 등을 펴내며 작가로서 입지를 다져왔다.이번 소설집은 평범하지 않은 개인과 가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 다채로운 삶의 풍경을 묘사했다. 표제작인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를 비롯해 ‘용의자 A의 칼에 대한 참고인 K의 진술서’, ‘아담’, ‘민의 순간’, ‘으르렁을 찾아서’, ‘검은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나’, ‘그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 등 총 7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됐다.김강은 작가의 말에서 “작은 상처를 주고받아 아픈 날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사랑이었다고, 바람 부는 세상 서로 기대며 살았고 꽃 같은 세상 온전히 서로의 것이었다”며 “지키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 거짓과 진실이 뒤바뀐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밤이 다가오는 지금 우리가 건져내야 할 것이 지난 사랑의 각인뿐인지”를 묻는다.첫 작품 ‘용의자 A의 칼에 대한 참고인 K의 진술서’에서 시작된 그의 비타협적인 질문은 마지막 작품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 마지막 순간까지 끝나지 않는다.‘최초의 인간’이라고 일컬어지는 아담을 표제로 한 ‘아담’에는 김강이 생각하는 인간의 가장 원형적인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죽으면 “한 문장으로 신문에 부고를 내어 주십시오”라는 부탁을 한다. 그 문장은 바로 “부끄러워할 줄은 알았다고. 부끄러워서 그랬다고”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끝까지 ‘그의 부끄러움’을 믿지 못한다. 그러나 이후의 일들을 통해 결국 ‘나’는 그가 가진 부끄러움의 진정성을 믿게 된다.‘용의자 A의 칼에 대한 참고인 K의 진술서’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묻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수십 년의 시간을 격한 두 개의 서사가 나란히 진행된다. 병렬되는 두 개의 서사는 어린 시절에 아파트 공터에서 1동과 2동 아이들이 연탄재를 가지고 벌이던 전쟁놀이와 두 번째는 사소한 일로 동네 사람들이 갈등을 벌이다가 살인사건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재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김강 소설집‘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표지. 표제작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술집에서 자신을 팔아야 살 수 있는 술집 종업원 세희가 주인공이다. 술집을 찾아온 옛 아버지 주치의였던 의사와 과거를 이야기하며 아버지의 인공호흡기를 뽑아달라고 소리쳤던 자신이 담대한 주체로서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린 것이었음을 인식하게 된다.이경재 평론가는 해설에서 “김강은 사르트르가 말한 ‘영구혁명의 담당 기관으로서의 소설가’이자 시대의 스승을 자처하는 ‘문사로서의 소설가’라는 문학사적 전통 위에 서 있다. 그의 소설은 늘 공동체의 올바른 존재 양태에 대한 탐색과 그것을 가로막는 힘에 대한 비판 정신으로 가득하다. 실로 소설의 본령에 해당하는 이러한 영역은 한동안 한국소설계에서는 상당히 결여해 있었던 부분이다. 김강은 맹렬한 기세로 이 결여의 영역을 채우며 한국문단의 중심으로 육박해 들어오고 있다. 그렇기에 김강은 무척이나 귀한 작가”라고 평한다.도서출판 작가 측은 “이처럼 문사의 계보를 잇는 김강의 소설집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 마’는 예민한 감각으로 인간의 원형을 탐구하며 동시에 공동체의 올바른 윤리성을 좇는다. 그의 날카로운, 어쩌면 과도한 윤리 의식이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우선되는 요구는 아닐는지. 김강의 감동이 있는 문학 클리닉에서 잠자고 있던 우리의 빛나는 감수성과 윤리 감각을 깨워보길 권한다”고 전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4-08-27

대구 학이사 ‘우리 아빠는 무슬림이에요’ 출간

‘여섯 선생님의 아주 특별한 세계 문화 이야기-우리 아빠는 무슬림이에요’가 대구 학이사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2024년 대구지역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으로 외국에 있는 한국학교에서 근무한 여섯 선생님이 모여 만든 것으로, 외국에 살면서 그곳에서 겪은 흥미 있는 이야기 거리, 문화 이야기를 모아 엮었다. 특히, 이집트 카이로한국학교 이창훈, 중국 연변한국국제학교 정재준, 아르헨티나한국학교 김병수, 일본 오사카금강학교 조성근, 베트남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공일영, 러시아 모스크바한국학교 안재형 선생님이 각 나라의 문화를 동화 형식으로 소개한다. 책에는 이집트에 사는 슬기와 아담, 아르헨티나에 사는 다나와 호세, 러시아에 사는 수현이, 중국에 사는 한길이, 일본에 사는 라임이, 베트남에 사는 승준이 등 외국에서 한국학교를 다니는 한국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일상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를 바르게 이해하고 각 나라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게 사진 자료도 수록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고 있거나 잘 알지 못했던 나라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담아 열린 마음으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준다. ‘콕콕 집어 알려주는 문화상식’ 코너를 배치해 읽으며 문화상식도 배울 수 있게 구성했다./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8-21

행복은 선택이다… 우리가 결정한 행복

‘우리가 결정한 행복’(RHK)은 사회과학자이자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아서 C.브룩스와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함께 탐색한 책이다.아서 C.브룩스는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길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그러하겠다고 결정한 사람에게 찾아온다”며 삶을 개선할 실용적인 기술을 널리 알리고자 연구자로서 쌓아온 방대한 자료를 통해 행복의 과학적 면모를 밝혀냈고, 이를 ‘애틀랜틱(The Atlantic)’에 연재하며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이 칼럼으로 아서의 열렬한 팬이 된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그의 메시지에 공감해 함께 집필에 참여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2023년 아마존 최고의 논픽션에 선정되며 대중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행복을 찾기 위해 저자들이 먼저 한 것은 정의 내리기다. 저자들은 의식과 교감이 합쳐질 때 얻는 즐거움, 목표를 달성하며 얻는 만족, 모든 일에 의미를 찾으려는 목적의식을 행복의 세 가지 영양소로 꼽으며 행복을 달성하려면 이들 세 영양소가 고르게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만 이 균형 안엔 일정 수준의 ‘불행’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터스위트(bittersweet)’처럼 행복과 불행은 공존한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며 불행은 적이 아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불쑥 터져 나오는 불행감을 막을 도리는 없다. 그들은 가족, 우정, 일, 믿음 등 삶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네 가지 존재를 삶을 이루는 가장 큰 기둥으로 삼는다.저자들은 우리를 둘러싼 이 초석들을 굳건히 세워놓으면 외부의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초를 다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가족은 가장 가깝기에 제일 어려운 관계다. 가족과의 다툼에서 자주 난항을 겪는 이들에게 아서는 아주 적확한 진단을 내린다. 바로 ‘기대 부조화’다. 사랑하기에 기대하고, 기대하기에 실망한다는 이 단순한 원리는 우리가 가족 관계를 등한시해서는 안 될 이유를 타당하게 설명한다.또한 쓸모에 상관없이 애정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 진정한 우정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아서는 SNS에 둘러싸여 팔로워와 좋아요를 계산하게 만드는 관계에 집착을 멈추고, 어떤 조건에도 관심과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무용한 우정’을 꼭 갖추라고 조언한다.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현실적으로는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 이것이 사랑의 위대한 역설이며 추구해야 할 우정이라며, 직접 살을 맞대고 즐겁게 시간을 허비할 친구를 가지라고 제안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8-15

현존 중심 ‘나눔과 사회적 의무’ 탐구

전 세계 경제가 급격히 글로벌화하는 상황에서 부의 불평등과 분배문제가 화두의 중심에 서고 있다. 초부유층과 기층 서민들의 격차, 부유층 내에서의 간극이 증가하고 중산층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로는 건강한 사회를 담보하지 못한다.게다가 요즘은 최첨단 인공지능의 발달로 사람들의 ‘적절한 일자리’마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우리 주위에 점점 ‘잉여’ 인간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분배정치의 시대’로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 인류학과 제임스 퍼거슨 교수의 신작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여문책)은 단순히 기본소득을 논하는 책이 아니다. 전작에서 문제의식 제기 정도에 그친 ‘현존(presence)’이라는 키워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며 ‘나눔’과 ‘사회적 의무’를 고찰한, 짧지만 강렬하고 묵직한 책이다. “누가 무엇을, 왜 가져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이 시대에 매우 비중 있게 다뤄야 할 도전적인 문제의식이자 사회적 합의 도출이 시급한 화두다.“우리는 100년, 아니 1,000년의 인류 역사를 거치면서 세대를 이은 노동과 희생, 발명으로 건설된 거대한 지구적 생산조직을 통해 그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거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지구 전체적으로 수백만 명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중략) 분명한 것은 적어도 전체 산출물의 일정 부분은 생산조직의 모든 사람에게 소유권이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지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39~40쪽)퍼거슨은 ‘현존’을 “다른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상태”, “살아있을 뿐 아니라 암묵적으로는 적어도 최소한의 인정과 의무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여기, 우리 안에 있다는 구체적이고 사회적인 사실”, “노동이나 시민권에 기반을 두지 않은 (넓은 의미의) ‘소유권’”, “모든 문제점까지 공유한 채 비자발적으로 공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므로 일상에 실재하는 ‘현존’을 기반으로 새로운 정치적 전략을 찾아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한다.퍼거슨은 “사회라는 최소한의 개념이 없다면 ‘사회적 의무’라는 것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사회적 의무는 한마디로 ‘지분(몫)을 나누는 것’이다.여기서 “우리 시대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한 지금, 권한을 부여받은 국민국가 구성원의 집합체와 ‘사회’가 같은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우리는 엄청난 실패를 겪어야 했다”(48쪽)라는 저자의 지적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요즘처럼 심각한 저출생과 인구절벽에 골치를 앓고 있는 한국의 경우, 취업, 이민, 유학, 관광 등의 이유로 주위에서 흔하게 마주할 수 있는 외국인의 수가 전체 인구의 약 5퍼센트에 달해 있고, 앞으로도 그 수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에 포용이 아닌 배제의 속성을 가진 국민국가의 ‘성원권’이나 ‘시민권’이라는 틀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퍼거슨은 “혐오에 대해 연구해온 민속지학자들이 오래전부터 기록해왔던 일종의 사회적 사각지대 때문에 우리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89쪽)고 지적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8-15

헌법으로 보는 자기 이해와 사회적 책임

신간 ‘일생에 한 번은 헌법을 읽어라’(현대지성)의 저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효원 교수는 검사 출신 헌법 전문가로서, 헌법이야말로 인간 삶의 투명한 거울이라고 말하며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헌법을 읽을 것을 강력히 권한다.13년 동안 법조계에서 법 제도를 연구·기획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검사로 지낸 뒤, 서울대 교수로서 법을 가르쳐온 헌법학자인 저자는 헌법 전체를 조문 순서대로 제시하며 그 의미와 핵심 내용을 기술했다. 대한민국이 어떠한 나라가 돼야 한다고 축약해놓은 규범이자, 다양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지닌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만든 기반인 헌법을 공부함으로써 내가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성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이 책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부터 부칙까지, 총 130조항을 깊이 있게 살펴보고 그 안에 담긴 법적 의미를 인생의 가치로 연결시키는 ‘내 삶의 헌법사용설명서’다. 헌법은 우리의 현실에 밀착돼 있다. 원하는 곳에서 살고 이사할 수 있는 자유, 꿈꾸는 직업을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친구나 연인과 나누는 사적인 대화와 일상을 남에게 공개하지 않을 프라이버시까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헌법으로 보호되고 규정된다.고민하며 삶의 허무와 의미 사이를 저울질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일생에 한 번은 헌법을 읽어라’는 ‘지금, 여기’의 구체적인 현실인 사회와 국가를 제대로 보게 하고,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함으로써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해줄 것이다.“나는 헌법을 공부하면서 각 조항이 나의 일상에 어떤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헌법이란 국가의 미래상을 제시하는 핵심 가치를 요약한 근본규범입니다. 한 나라의 최고법인 헌법에 대한 공부는 추상적으로 이론화된 지식인 ‘소피아(Sophia)’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지혜인 ‘프로네시스(Phronesis)’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들어가며: 인생이 허무할 땐 헌법을 읽는 것이 좋다(p.6-7)헌법 조항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여기서 삶의 태도와 철학을 발견할 수 있게 확장해주는 책은 처음이다. 살면서 한 번쯤은 내 삶의 경계를 두르고 있는 헌법이 궁금해진다. 포털 사이트에서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접속하면 대한민국 헌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법학도가 아니라면 단순히 조문을 읽는 것만으로 그 행간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더욱이 헌법 첫 항목인 ‘전문(前文)’은 300자가 넘는 방대한 내용을 단 한 문장으로 늘어놓아 처음 읽는 이에게 위압감마저 준다.저자는 명확하고 간결한 언어로 헌법의 각 조항의 의미와 배경을 풀어내며 독자를 헌법의 세계로 친절히 안내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일상 속 각 조항의 의미와 방향을 곱씹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최소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자연스럽게 얻게 된다.헌법 제16조에서는 ‘주거의 자유’를 다룬다.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라는 구절의 의미와 개념을 설명하고 끝내지 않고 “개인이 주거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자기만의 성(城)을 세우는 일”이라고 한발 나아간다. 우리는 모두 내밀한 자기만의 공간에 있을 때 비로소 나다워진다고 이야기하며, 인파로 가득 찬 출근길 지하철이 자기만의 공간이 되기도 하듯이 공간의 의미는 그곳이 어디든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통찰한다.“우리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이유는 헌법적 가치 때문입니다. 헌법적 가치는 내가 마주하는 ‘너’를 인격적 존재로 인정하고, 제삼자인 ‘그’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328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8-15

소설가 김홍신이 전하는 삶의 주인으로 서는 지혜

‘잃은 뒤에 안다, 그것이 참 소중한 걸. 이별하면 안다, 그이가 천사인 걸.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작은 게 행복인 걸.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 걸.’ 짧지만 큰 울림을 주는 이 글은 베스트셀러 ‘인간시장’ ‘인생사용설명서’의 작가로 수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아 온 소설가 김홍신이 인생을 살아가며 수없이 경험하고 깨달은 삶의 소회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낭송됐고, 이후 50초 남짓한 영상으로 만들어져 각종 소셜 미디어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김홍신 작가의 신작 ‘겪어보면 안다’(해냄출판사)는 위 열 줄의 짧은 글에 담지 못한 생의 이야기들을 풀어낸 작품으로, 작가의 139번째 출간작이자 4년 만에 선보이는 산문집이다. 부제는 ‘김홍신의 인생 수업’이다.‘아프고, 잃고, 떠나보낸 뒤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참된 행복’을 주제로 40여 편의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김홍신 작가가 세상과 사람에 대한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을 드러낸 정다운 산문집이자, 삶의 조난자들을 희망의 길로 인도하는 인생 안내서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김홍신 작가는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금 이 순간’ 오롯이 머무르기를, 이를 위해 비교와 계산으로 복잡해진 생각의 창고를 비워야 함을 강조한다. 작가는 “생각을 비틀면 소박하고 자잘하고 가볍고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최인호 작가, 신성일 배우 등 작가와 깊은 우정을 나눴던 지인들과의 추억을 비롯해 삶의 곳곳에서 소환한 다양한 일화들을 통해 특유의 경쾌하면서도 따뜻한 통찰을 전한다. 본문 곳곳에 글의 내용과 어울리는 산뜻한 일러스트를 넣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윤희정기자

2024-08-01

‘인터넷 권력 재편’ 위력 가진 블록체인의 미래는…

인터넷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초기의 인터넷은 누구나 무엇을 만들었든 만든 사람이 온전히 소유했다. 그러나 구글, 애플, 메타와 같은 빅테크 기업이 등장하면서 디지털 권력은 급격히 중앙화됐다. 그들은 사용자에게서 디지털 세계의 ‘소유권’을 빼앗기 시작했다. 사용자의 정보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지만 분배할 생각이 없다. 그야말로 빅테크가 인터넷을 죽이고 있다.세계적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제너럴 파트너이자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투자기업 ‘a16z 크립토’ 설립자인 크리스 딕슨은 첫 책 ‘읽고 쓰고 소유하다(Read Write Own)’(어크로스)에서 ‘블록체인’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고 당초 인터넷이 지향했던 자유와 분권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존재하기 전부터 인터넷을 어떻게 탈중앙화하고 개방된 네트워크로 되돌릴 수 있을지 꾸준히 고민해왔으며, 블록체인 관련 산업에서 가장 큰 규모의 투자금을 움직이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크리스 딕슨은 이 책에서 블록체인이 어떻게 기업뿐 아니라 사용자 커뮤니티에 권한과 경제적 혜택을 부여하는 ‘웹3’라고도 불리는 ‘읽기-쓰기-소유하기 시대’를 맞이할 수 있게 했는지 설명하며 인터넷의 다음 시대에 관한 구체적 전망을 제시한다. 이 책은 출간 전부터 비즈니스·기술 혁신 분야의 주목도서로 많은 이들에게 언급됐고, 샘 올트먼(오픈AI CEO), 무스타파 술레이만(딥마인드 공동창업자) 등 IT 구루의 찬사를 받았으며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에 올랐다.크리스 딕슨은 ‘왜 블록체인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며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다른 네트워크 유형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블록체인의 투명성과 신뢰성, 소프트웨어의 ‘조합성’과 낮은 수수료율의 특징, 광범위한 이해관계자에게 ‘토큰’을 통해 보상을 약속할 수 있는 기술적·경제적 메커니즘을 알기 쉽게 정리한다. “블록체인은 기존 컴퓨터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응용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빈 캔버스다. 네트워크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빅테크 기업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축소될 것이며, 디지털 권력 이동은 필연적으로 수익 모델의 변화, 산업의 구조적 변화, 나아가 사회 체제의 변화를 수반해 기존의 질서가 작동하지 않는 새로운 인터넷의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8-01

경외심은 어떻게 내 삶을 일으키고 지탱해주나

경외심(敬畏心·공경하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신비를 마주했을 때 경험하는 정서다. 아이가 태어나며 울음을 터뜨릴 때, 영화를 보면서 알 수 없는 환희에 휩싸일 때, 음악을 들으며 고양된 감정에 벅차오를 때, 우리는 경외감을 느낀다.수십 년 전만 해도 심리학자들은 공포나 혐오처럼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감정만 연구했다. 그런데 혁명적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며 우리가 어떻게 사회적 기본욕구를 채울 수 있도록 진화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우리는 협력하고 공동체를 꾸리고 공유된 정체감을 강화하는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 덕분에 지금껏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 모든 행동은 바로 경외심에 의해 촉발되고 확장된다.미국의 심리학자인 대커 켈트너 UC버클리대 심리학과 교수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 제작에 자문 역할을 하고 페이스북 이모티콘 개발에 참여하는 등 인간 정서 연구 전문가로 꼽힌다. 대커 켈트너는 최근 펴낸 ‘경외심’(위즈덤하우스)에서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경외심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선보인다.20여 년 전,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가 조너선 하이트와 함께 경외심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의 도덕적·영적·미적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는 논문을 쓰기 전까지는 ‘경외심’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커 켈트너는 15년 이상 경외심을 과학적으로 연구해왔다.수십 년 전만 해도 심리학자들은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몇 가지 감정만 연구했다. 그런데 혁명적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면서 우리가 어떻게 사회적 기본욕구를 채울 수 있도록 진화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협력하고 공동체를 꾸리고 공유된 정체감을 강화하는 모든 행동은 바로 경외심에 의해 촉발되고 확장된다. 대커 켈트너는 이 책에서 경외심이 다양한 사회와 역사와 문화 속에서, 개인의 삶 속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우리 뇌와 신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일상 속 경외심의 경험을 쌓음으로써 어떻게 인간 본성 가운데 가장 인도적 측면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지를 밝혀낸다.“경외심이란 흔히들 삶을 즐기고 ‘문화’를 누릴 충분한 부(富)를 가진 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관념은 틀렸다. 재소자들의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최신 실증적 연구 결과들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한 연구에서는 자산이 적은 사람들이 하루 중 더 빈번하게 경외심을 느끼며 일상 주변 환경에서 경이를 더 많이 발견한다고 보고했다. 보통은 재산이 많으면 호화로운 주택이나 VIP들만 사용 가능한 값비싼 리조트, 최고급 소비재 등을 누릴 수 있으니 경외심도 더 많이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부가 일상 속 경외심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고 다른 사람들이 가진 심적인 아름다움, 대자연의 경이, 음악이나 예술의 숭엄미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인다. 경외심 경험은 부에 의존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경외심을 느끼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욕구이기 때문이다.” (130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8-01

그림책으로 전하는 생명사랑 메시지

포항 문화예술계의 원로이자 ‘지역사 박물관’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포항에 많은 발자취를 남긴 박이득(82) 작가가 신간 ‘복실이 꽃신’(학교앞거북이·사진)을 펴냈다.‘복실이 꽃신’은 소년과 떠돌이 강아지의 애틋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으로 박이득 작가가 글을 쓰고 정미솔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복실이 꽃신’은 떠돌이 강아지가 한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어린이들과 가족들에게 한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동화다.또한 사람만이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넌지시 말해 주고 있다. 독자들은 준배와 복실이가 나누는 우정과 복실이를 지키려는 준배의 따뜻한 마음에 공감하며, 준배가 복실이의 마음이 되고, 복실이가 준배의 마음을 읽을 때 한 가족이 행복해지는 것을 이 그림책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특히 후반부에 이르러 준배가 복실이의 마음을 알아채면서 행하는 작은 반전은 재미와 함께 이 책의 주제가 우정을 넘어 생명 사랑이라는 큰 주제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박이득 작가는 포항에서 교사, 신문, 방송 기자로 활동하면서 지역사회의 문화, 역사, 교육에 관한 글을 많이 써 왔다. 이로 인해 ‘지역사 박물관’이라는 별명까지 갖게 됐다.포항문화원 창립, 포항문인협회, 포항예총 창립 등에 참여했으며, 포항예총 회장, 최세윤 의병장 기념사업회장, 포항문화연구소장 등을 맡아 활동했다.또한 포항시사를 비롯해 지역 관련 도서 집필에 참여하는 등 향토사 기록 사업에도 업적을 남겼다.‘복실이 꽃신’은 1981년 ‘포항문학’ 창간호에 발표했던 작품이다.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넘어서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많은 기억과 기록으로 포항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박이득 작가가 결국 마지막에 깃을 내린 곳은 동화다. 동심을 가지고 어린이처럼 살아온 작가가 이 땅의 어린이와 그 가족들에게 남기고자 했던 말이 ‘가족 사랑’, ‘생명 사랑’임을 이 동화는 보여주고 있다. 정미솔 그림작가는 현재 포항에서 화가, 삽화가, 일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지역 청년 인재다. 정 그림작가는 유기견보호소 홈페이지를 보며 강아지 복실이의 캐릭터를 구상했고, 실제로 강아지를 키우며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또한 “아이의 눈으로 보는 시각과 강아지의 눈으로 보는 시각을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시간이었고, 강아지와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가족들, 그리고 준배의 내면적인 성장을 응원하며 그림을 그렸다. 언어가 통하는 것이 아님에도 마음으로 느껴지는 준배와 복실이 사이의 유대감을 이 그림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보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김일광 동화작가는 ‘복실이 꽃신’에 대해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안데르센은 동화를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놀라운 이야기’라고 하였고, 그림 형제는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 말에 꼭 맞는 동화가 ‘복실이 꽃신’이라고 할 수 있다. 떠돌이 강아지와 함께 엮어가는 한 가족의 애틋한 생명 사랑 이야기. 가족이 함께 읽기 딱 좋은 동화”라고 평가했다. /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4-07-09

시 속의 ‘나’는 내가 되고…

시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한 번쯤, 시에서는 왜 사건이나 인물이 구체적이지 않을까, 시에서는 왜 주로 현재시제만을 사용할까, 시에 나오는 ‘나’는 왜 독자와 쉽게 동일시되는 걸까 등의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질문은 시에 관한 일반적인 질문일 수 있지만, 쉽게 답할 수 없는, 상당히 까다로운 물음들이다.시인이자 시학(詩學) 이론 전문가인 박현수 경북대 교수(국어국문학과·사진)가 이런 일반적이지만, 시학의 핵심을 겨냥하고 있는 근원적인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내놓은 책 ‘시학 개념의 새로운 이해’(울력출판사)를 출간했다.저자는 199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세한도’로 등단한 시인이다. 하지만 시인인 그도 이런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학 연구자로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는데, 이 책은 시학 연구자로서 그가 이뤄낸 시학 연구의 결과물이다.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어렵지 않다. 전문적인 용어를 잘 설명하고 있으며, 차근차근 시의 심연으로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어서 독자들이 시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 가는 희열을 느낄 수 있게 한다.시에서는 왜 사건이나 인물이 구체적이지 않을까? 이 책은 먼저 이 질문부터 다룬다. 저자는 구체적인 지명과 풍경, 그리고 시인의 경험을 다루고 있는 듯한, 서안나 시인의 ‘애월 혹은’이라는 작품을 예로 들고 있다.“애월(涯月)에선 취한 밤도 문장이다 팽나무 아래서 당신과 백년 동안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서쪽을 보는 당신의 먼 눈(….)”‘애월’은 제주도 서쪽에 있는 아름다운 해변 마을, 특히 한담해변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애월’이 ‘바닷가’라는 사실조차 유추하기 어렵다. 그뿐 아니라 ‘나’와 ‘당신’의 정체도 알기 어렵다. 이것은 시적 상황이 외적 맥락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돼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저자는 시의 이런 특성을 ‘범맥락화(pan-contextualization)’라고 부른다. 시는 이런 범맥락화를 시의 기본적인 방법론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시의 내용이 구체성을 잃은 듯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는 그런 범맥락화 상태에 도달할 때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시에서는 왜 현재시제를 주로 사용할까? 이 책의 두 번째 질문이다. 저자는 시에서 사용되는 현재시제를 ‘서정시제’라 부르며, 시인 97명의 시 700여 편을 실은 시선집을 분석해 전체 시의 95.3%가 현재시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런 서정시제로 인해 무시간성, 숭고성 같은 시간 감각을 초월한 시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현재형이 적절하기에 현재시제가 사용된다는 점을 발견한다.이 책의 세 번째 질문, 시적 화자와 독자의 일치감, 즉 독자가 시를 읽으면서 시적 화자 ‘나’에게 손쉽게 자신을 이입하게 되는 현상에 대한 의문도 바로 범맥락성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시적 시공간과 사건, 인물 등에 어떠한 현실적인 정보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도 적용 가능한 보편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텅 빈 주체’라고 부른다. 시적 화자가 이렇게 제한적인 특수성으로부터 벗어나 있기에, 독자는 시 속의 ‘나’와 자신을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앞의 질문은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저자는 그 근원적인 특성을 ‘가상적 연행성’에서 찾는다. 이것은 ‘시 내용의 기준 시점을 시가 공연될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삼는 시적 규범(혹은 관례)’을 말한다. 시는 노래에서 왔으며, 그래서 시는 노래가 지닌 연행성(공연성), 즉 청중(타인이나 자기 자신)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장르적 DNA를 갖고 있다. 이런 시적 특성은 현재 노래 가사에서도 여전히 공유되고 있는 특성이다.저자는 이외에도 리듬, 서정적 동일시(서정성), 이미지, 비유, 숭고의 문제도 다루며, 시가 지닌 특성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주로 형식적인 특성을 다루고, 후반부에서는 내용적인 특성을 다루고 있다. 전반부의 특성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적 특성이 ‘가상적 연행성’이라면, 후반부를 장악하고 있는 특성은 ‘초월 감각’이다. 시는 바로 이 두 가지 특성의 정밀한 교직(交織)으로 이뤄지는 훌륭한 직물, 즉 ‘텍스트’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7-03

지구 그 위, 모든 존재를 향한 마음

포항 지역 출판사인 도서출판 득수(대표 김강)는 환경·에너지·기후 변화 등 인류 위기를 소재로 7명의 작가가 소설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환경앤솔로지 ‘최소한의 나’를 출간했다.하서찬, 이준희, 이경란, 안리준, 박지음, 김도일, 권제훈 작가가 쓴 7편의 소설 안에는 ‘몸속의 미세플라스틱마저 사랑하는 사람’(‘플라스티 베이비’, 권제훈)과 ‘손자를 위해 원전반대 시위를 7년째 하고 있는 할머니’(‘붉은 물고기 되기’, 박지음)가 있고 ‘무분별한 개발로 메마른 대지가 평원 밖으로 밀려났던 옛 주인을 불러 들’(‘아웃빌리지’, 안리준)이기도 ‘농어촌 전형 때문에 시골로 이사 간 k-고딩이 정신 나간 k-부장과 함께 지구 멸망을 맞이’(‘상자’, 하서찬)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본이 사회를 어떻게 통제’(‘은혜로운’, 김도일)하고 ‘자연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소리의 길’, 이준희)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주며 ‘지구를 파괴하는 우리를 고발’(‘최소한의 나’, 이경란) 한다.이경란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우리는 왜 소비에 목숨이라도 걸 것처럼 살고 있는가. 쓰레기로 지구를 망가뜨리기로는 인간이 유일할 것”이라며 이토록 절망적인 현실에서 희망이 있다고 믿어도 될지 반문한다. 안리준 작가도 ‘아웃빌리지’에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다시 일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자연은 망각을 모른다. 개발과 파괴의 역사 속에서 무엇도 잊지 않은 채 가만히 ‘우리’를 응시하는 자연”에 대해 독자들에게 물음을 던진다.이 소설집에 대해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잉여를 만들지 않는 ‘최소한’의 삶을 추구하지 않는 한 지구의 엔트로피는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감응하고 공생하는 지혜를 배우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며 “‘최소한의 나’ 속의 일곱 편 소설은 그 감응과 지혜의 길 위에 있다”라고 말한다.한편, 도서출판 득수는 오는 8월 31일까지 도서 ‘최소한의 나’를 읽고 ‘독서감상화 그리기’ 공모전을 시행한다. 전국 청소년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순수미술과 디지털드로잉 형식으로 진행될 이번 독서감상화 공모전은 도서출판 득수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윤희정기자

2024-07-02

역사와 반복의 궤적서 자유롭지 않은 사상들

“근현대문학사의 거봉인 춘원 이광수에서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 굵직한 명작으로 이름난 김훈까지 한국현대문학 작품의 기저에 깔려 있는 사상을 탐구한 책입니다.”경북매일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이경재(48·사진) 숭실대(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학술서 ‘한국현대문학과 사상의 사계’(도서출판 역락)를 발간했다. 이 교수는 왕성한 연구 활동과 평론으로 널리 알려진 문학평론가다.학술서는 이광수, 신채호, 한설아, 임화, 이효석, 김사량, 손장순, 이민진, 남광우, 이병주, 이창준, 김훈 등 우리 문학사의 빛나는 작가들의 문학 사상에 관한 깊이 있는 사색을 담고 있다. 혼돈의 시대에 광대한 문학적 볼륨을 보여준 작가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논의들도 눈길을 끈다.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학술서의 내용을 간추려 본다.-이번이 20번째 단독 저서이지요.△네. 이번에 책이 나오고 난 이후 20번째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아이 때부터 읽고 쓰는 삶을 동경했습니다. 당연히 제 이름이 박힌 책을 쓰는 것은 가장 큰 꿈이었는데요. 하루하루 쓰다 보니 어느새 스무 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책을 내는 일은 첫 번째나 스무 번째나 설레고 두렵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시간의 파괴력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책,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책을 쓰기 위해 앞으로도 분발하고 싶습니다.-학술서 제목이 특이하던데요.△‘한국현대문학과 사상의 사계’는 ‘역사와 반복’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제목입니다. 신화적 세계관이나 종교적 감각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직선적 역사의식을 대표하는 헤겔이나 마르크스 등도 역사의 반복이라는 문제에 주목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이때의 반복이 나름의 차이를 동반한 것이라 할지라도, 반복이라는 구조적 속성이 폐기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와 삶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사상 역시도 반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국현대문학과 사상의 사계’를 짧게 소개하면.△한국현대문학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상의 모습을 사계절에 비유해 네 개의 장으로 구성해봤습니다. 각각의 장을 대략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한국현대문학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민족주의, 사회주의, 유토피아주의, 보수주의에 해당하는 작가나 작품에 대해 살펴본 것입니다. 한국현대문학을 모두 아우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앞으로의 본격적인 작업을 위한 하나의 시론으로 여기고 싶습니다.-이 중 마음에 드는 장이 있다면.△모든 글이 머리를 쥐어짜며 간신히 써낸 것들입니다. 굳이 답변해야 한다면, 1장의 ‘근대주의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광수’일 것입니다. 김윤식 선생님의 명저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살펴본 글인데요. 이광수와 김윤식이라는 두 정신적 거인이 맞부딪쳐 내는 불꽃과 폭음은 가히 장관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제대로 제가 논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공부하고 쓰는 내내 굉장히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가장 많이 읽고 분석한 자료나 잡지가 있었는지.△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작가나 작품에 관련된 자료는 가능한 모두 놓치지 않고 살펴보려고 노력했습니다.-좋은 문학은 무엇일까요.△일단 문학은 감동을 줘야 계몽이든 혁명이든 혁신이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한국문학의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전망하는지.△문단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한국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듣던 말인데요. 요즘 저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오히려 문학보다도 이 세계의 위기입니다. 아직 6월인데도. 밤에는 더워서 잠을 잘 수 없고, 동해안에는 예전처럼 오징어가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두가 지구 온난화 때문인데요. 모든 전문가가 이렇게 가다 보면 몇 년 안에 임계점을 넘어 파멸이 확정적이라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작금의 한국 정치에 과연 도가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나아가 서로 안 좋은 것들만 주고받는 남북이나 여전히 계속 되는 세계 도처의 전쟁 등을 생각하다 보면, 문학의 위기는 차라리 엄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윤희정기자

2024-06-30

오만의 격변기를 살아온 세 자매

‘천체:세 자매 이야기’(서랍의 날씨)는 아랍 작가로는 최초로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2019)을 수상한 오만 여성 작가인 조카 알하르티의 두 번째 소설이다. 오만 최초로 영어로 번역된 작품으로 2019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의 영예를 안으면서 세계적으로 큰 호평과 찬사를 받았다. ‘천체(Celestial Bodies)’는 1960년대에 산유국이 되면서 부유해진 오만인들의 가치관과 사회 전체가 변화하는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한 소설이다. 오만의 격변기를 살아온 세 자매 이야기를 중심으로, 두 가문의 삼대에 걸친 서사를 다루고 있다.급격한 사회변화와 20세기, 그중에서도 특히 1960년대 이후로 산유국이 되면서 부유해진 오만인들의 가치관이 변화되는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한다. 아랍 세계에서 소설의 하부 장르 중 하나인 역사 소설이 급격히 늘어난 가운데 등장한 이 작품은 독자들을 환기하는 역사를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를 서술한다.‘천체’의 중심에는 오만의 한 상류층 가족이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변화는 잠정적으로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수정한 사회적 행동만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사회적 변화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통제하려고 애를 쓰는 이 가족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이뤄진, 말로 표현하지 못한 역사를 숨기지 못한다.우리는 베두인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한 유부남 가장이 혼인 관계를 파탄 내는 모습을 목격한다.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고루한 가치들을 고수하는 그의 아내는 손녀가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남자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관계를 맺는 식으로 전통적인 가치에 도전하자 그 관계 자체를 부인하는 식으로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 노력한다.이 소설에 나오는 세 딸은 급격한 사회적·경제적 과도기에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여성성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한다. 조카 알하르티. /조카 알하르티 공식 홈페이지 큰 딸인 마야는 부모에게 대들고 싶지 않아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 한 청혼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둘째 딸인 아스마는 배움을 추구하고, 화가지만 친척이라서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과 결혼한다. 막내인 칼라는 어렸을 때 너는 나의 신부가 될 거라고 계속 말한, 캐나다로 이주한 사촌을 기다리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마야의 남편 압달라가 해설자처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아랍 비평가들에게서 각 등장인물의 섬세하고 촘촘한 묘사, 역사적 깊이와 예리한 묘사, 독창적인 서술 구조로 찬사를 받았다.조카 알하르티는 영어로 번역된 소설을 쓴 첫 오만 여성 작가다. 2016년 소설 ‘나린자’로 문화, 예술, 문학 부문 술탄 카부스 상을 받았다. 에든버러대학에서 고전 아랍 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무스카트에 있는 술탄 카부스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오는 29일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해 한국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27

격동의 시대, 전쟁 같은 사랑 이야기

1차대전 직전 유럽의 문화사·정신사를 독특한 필치로 담아낸 ‘1913년 세기의 여름’으로 세계적 격찬을 받았던 독일 언론인이자 작가인 플로리안 일리스의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문학동네)이 출간됐다. 전작이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시간의 시작점”인 1913년으로 되돌아가 모더니즘의 찬란한 태동을 생동감 있게 보여줬다면, 이번 신작에선 제1차세계대전~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1929~1939년까지의 10년의 기간을 다룬다. 플로리안 일리스는 일기, 편지, 잡지, 신문, 그림, 사진 등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이 격동의 10년을 문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풀어냈다.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같은 소설가들,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오토 딕스 같은 화가, 한나 아렌트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아인슈타인 같은 철학자와 과학자, 마를레네 디트리히나 레니 리펜슈탈과 같은 영화계 인물, 요제프 괴벨스와 콘라트 아데나워와 같은 정치인 등 다채로운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가 마치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진다.여러 인물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말 그대로 ‘전쟁 같은 사랑’이다. 자유연애를 선언한 사르트르의 끝없는 바람기 때문에 보부아르는 남몰래 괴로워하고,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아내 젤다가 동성의 연인과 사랑에 빠진 사이 알코올에 빠지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미쳐버린 젤다는 정신병원을 전전한다. 배우, 예술가, 정치인 등 수많은 명사들의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근친애, 지고지순한 사랑, 이기적인 사랑, 불같은 사랑, 권태로운 사랑 얘기는 잿빛 과거에서 생생한 현재로 데려다주는 흥미진진한 시간 여행을 제공한다.1920~30년대를 대표하는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토 무질의 “세계의 역사는 적어도 그 절반은 사랑의 역사”는 참으로 적확하다. 자기중심적인 사랑, 상대의 재능 때문에 빠져든 사랑, 식어가는 사랑, 너무 뜨거운 사랑, 은은한 사랑, 미칠 것 같은 사랑, 심연보다 깊은 자녀에 대한 사랑 등 사랑의 종류는 다양하고 이야기는 깊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27

자연과 함께하는 소박한 삶…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 출간

“단순하게 살고 번거로움을 피하는 것이 단단해지는 비결이다. 특별한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내게는 가장 큰 혜택이다. 사람들이 나의 약점으로 여기는 것이 내게는 강점이다.”-‘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 본문에서생태주의 철학의 기반을 세운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1855∼1857년 3년간 쓴 일기를 선별해 묶은 책 ‘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갈라파고스)이 나왔다.생태주의적 삶의 ‘바이블’인 ‘월든(walden)’을 집필한 소로는 한평생 삶과 자연에 대한 깨달음을 일기로 남겼고, 그의 일기는 100년이 넘도록 살아남아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그는 “일기는 좋았던 일이나 그럴듯한 말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경험과 성장을 적는 그릇”이라고 여겼다.소로는 20대 때부터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위치한 월든 호숫가에 혼자 힘으로 집을 짓고 세상과 떨어져 살 정도로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다. 월든 호숫가를 떠나 마을로 돌아온 후에도 매일의 일상을 관찰하며 단단한 삶을 꾸려가는 법을 일기에 기록했다. 하버드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지만 마을 곳곳에서 푼돈을 받고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고, 손수 텃밭에 감자 따위의 먹을 것을 키우고 옷을 지었다.일기 속 소로의 온갖 자잘한 노동과 소박한 생활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직한 리듬을 만끽하게 된다. 놀랍게도 소로는 어수선하고 복잡한 생활 양식을 권하는 현 사회 시스템은 오직 무딘 사람들만 좋아할 뿐, 사실 다수는 그렇게 사는 것을 내키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사람이라면 더 많은 부, 더 많은 편리함을 소유하길 원하며 그것이 사람의 본성이라는 통념이 만연한 세상에서 이러한 발언은 통쾌함과 해방감을 안겨준다. 소로는 노예처럼 사는 데 지쳤을 뿐 아니라 인간의 진정한 조건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된 우리 내면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어 본 사람이었다.그에겐 단순하게 살고 번거로움을 피하는 것이 단단해지는 방법이었다. 일기에 “적막함이나 가난함이라고 세상에서 부르는 것들이 내게는 단순함일 뿐이다”라고 밝혔고, 자신을 살찌우지도 못하는 값비싼 무언가를 추구하기보다는 평범한 매일의 생활에서 영감과 즐거움을 얻기를 바랐다. 과연 그의 말대로 와인과 브랜디의 맛 때문에 물맛을 잃게 된다면, 우리는 삶이 얼마나 불행해질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그의 일기를 읽으면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숲, 들, 늪지 등을 쏘다니는 산책자 소로의 부지런함과 왕성한 호기심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근심 대부분이 우리가 실내에서 살기에 생겨난다면서 ‘실내 생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싶다고 적었다. 안개비가 내리는 날에 산책하면 맑은 날보다 시야가 좁아지고 사방이 고요해져서 “생산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다고도 읊조린다.소로는 “돈을 들이지 않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큰 부자다”라고 주장한다. 채도 높고 풍성한 그의 자연관찰 기록에서는 즐거움과 호기심이 퍼져 나와 매번 읽는 이의 마음을 크게 뒤흔든다. 자연을 다각도에서 관찰하며 발견의 기쁨을 누리는 소로의 눈을 통해 독자 또한 자연과 일상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 방법을 체득하게 된다.‘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은 소로의 글솜씨가 최고조에 올랐지만 건강을 많이 잃고 여러 우정의 위기를 겪은 1855년~1857년 사이에 쓰였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겨울에 해당하는 시기였다고 추측할 수도 있으나, 소로는 겨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겨울 속에 “영원한 여름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눈과 얼음의 세계에서도 그 세계만이 가진 미와 미덕을 봤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27

황제와 교황의 갈등… 진짜 원인은 ‘돈’이었다

‘로마를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서기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배경에는 재정난이 있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재정 악화로 국가 통치마저 어려울 지경이었다. 황제는 기독교에 수익의 10분의 1을 내는 ‘십일조’의 전통이 있음을 눈여겨보고 기독교를 받아들여 세제 개혁을 이뤘다.’‘인류 역사를 통틀어 종교, 이념, 민족, 지역을 초월했던 유일한 매개체는 돈이다. 부(富)에 대한 갈망이 인류를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신간 ‘역사는 돈이다’(잇콘)는 저자인 강승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한국은행 감사·전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가 돈이라는 동력을 축으로 삼아 세계사의 여러 장면을 해설하는 책이다.강 교수는 1077년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용서를 구한 ‘카노사의 굴욕’ 등 역사적 사건 56가지를 돈의 관점으로 분석하면서 명분과 위선으로 포장된 역사의 진짜 의도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사 여러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악연은 무엇에서 비롯됐을까?, ‘하멜표류기’는 조선과 일본의 역사를 어떻게 뒤바꿔 놓았을까?, ‘카노사의 굴욕’, ‘아비뇽 유수’ 등 황제와 교황의 갈등, 환전상에서 유래한 ‘은행’의 어원, ‘성전’(聖戰)을 내세웠지만 ‘성전’(聖錢)을 위해 변질한 십자군 전쟁 등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며 정치, 민족, 종교, 사상 등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진짜 원인은 바로 ‘돈’이었다고 주장한다.부(富)에 대한 갈망이 인류를 움직였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범위는 우리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폭넓고, 그중에는 절대 아닐 것 같은 숭고한 사건도 많다. 아직 순진한 인류애를 품은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경악하게 될지도 모른다.잇콘 출판사 측은 “대한민국은 거대한 돈의 역사에 희생된 약소국 중 하나였고, 지금도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는 위태로운 국가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 명분과 위선으로 포장된 진짜 의도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 이 책은 그러한 통찰력을 키우기 위한 오답 노트가 되어줄 것”이라고 전했다.저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동기가 어떻게 역사를 바꿨는지 고찰하고서 이권에 따라 움직이는 국제사회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라고 촉구한다.“내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세계사는 힘의 논리로 흘러왔고, 그 힘이 작동하게끔 한 동인은 ‘돈’이라는 것이다. (중략) 아무리 좋은 이념이나 명분도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안 되면 가차 없이 버리는 것이 승자의 습성이다.”(540쪽)/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20

‘너와 세상 사이의 싸움에서’ 카프카 100주기 잠언·일기집

환상문학의 대가인 체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쓴 일기와 잠언을 한데 엮은 ‘프란츠 카프카 잠언·일기집-너와 세상 사이의 싸움에서’가 민음사 문고판 ‘쏜살 문고’시리즈로 출간됐다. 카프카 100주기를 맞아 펴냈다. 이 책은 카프카가 1909년부터 1922년까지 쓴 일기의 일부와 1920년에 친구인 작가 막스 브로트가 발간한 잠언집 ‘죄, 고뇌, 희망과 참된 길에 대한 성찰’에 수록된 잠언의 일부가 포함됐다. 또한 자전적 성찰, 글쓰기에 대한 카프카 자신의 견해뿐만 아니라 소설 초안과 단편들도 포함돼 있다.카프카는 1917년부터 1918년 봄 사이에 걸쳐 8절지 노트에 자신의 사상, 세계관, 종교관을 담은 아포리즘을 기록했는데, ‘프란츠 카프카 잠언·일기집-너와 세상 사이의 싸움에서’에서는 모두를 수록하지 않고, 카프카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될 만한 내용을 중심으로 발췌했다.그의 일기를 통해 카프카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로우면서도 고통스럽다.카프카가 남긴 일기의 키워드는 ‘불안’이다. 병에 대한 불안뿐만 아니라 고향을 상실한 유대인으로서의 불안, 형이상학적인 삶의 불안 등이다.카프카의 잠언과 일기를 통해 독자는 카프카의 전체적인 실제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흔히 알려진 카프카의 인상과는 다른 면모를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일기에서는 카프카의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기괴하고 부조리해 종잡을 수 없는 모습 대신 진지하면서도 낭만적이고 서정적이며 열정적인 사랑꾼의 모습을 볼 수 있다.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난 카프카는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꿔 1904년 ‘어느 투쟁의 기록’, 1906년 ‘시골의 결혼 준비’를 집필했고, 1908년 노동자상해보험공사에 취직한 이후로도 14년 동안 직장생활과 글쓰기 작업을 병행했다.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에 대한 통찰로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았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아 여러 요양원을 전전한 끝에 병이 악화돼 1924년 빈 근교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20

“다시 눕혀진들 어떠리!” 86세 원로시인의 말

시력(詩歷) 66년의 황동규(86) 시인이 새 시집 ‘봄비를 맞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1958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월’, ‘동백나무’, ‘즐거운 편지’를 차례로 발표하며 등단한 황동규는 묶어낸 시집마다 특유의 감수성과 지성이 함께 숨 쉬는 시의 진경은 물론 ‘거듭남의 미학’으로 스스로의 시적 갱신을 궁구하며 한국 서정시의 새로운 현재를 증거해 왔다. 미수(米壽)를 두 해 앞두고 펴낸 열여덟 번째 시집은 쉼 없는 시적 자아와의 긴장과 대화 속에서 일궈낸 삶의 깨달음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2020년 10월 ‘오늘 하루만이라도’가 선보였으니 근 4년 만에 다시 새 시집으로 독자들을 찾은 셈이다. 전작에 이어 이번 시집 역시 그간 꾸준히 쓰고 발표한 시 59편과 함께 시 편 편의 주요한 처소(處所)이자 생의 후반 이십 년 가까이 시인의 발걸음과 감각을 붙잡아두고 진한 즐거움을 안겨준 공간에 대한 소회를 담은 산문(‘사당3동 별곡’) 한 편을 더했다.이번 시집에서 황동규는 녹록지 않은 노년의 삶을 이어가는 노정에도 여전히 시적 자아와 현실 속 자아가 주고받는 대화를 포기하지 않고 생의 의미와 시의 운명을 함께 묻고 답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걸으리,/ 가다 서다 하는 내 걸음 참고 함께 걷다/ 길이 이제 그만 바닥을 지울 때까지”-(‘그날 저녁’), “다시 눕혀”지더라도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시인의 말’) 이어가는 것이 자신의 삶임을 명료하게 의식하는 그의 시는 누구나 열망하나 쉬이 넘볼 수 없는 여유와 온기와 다감함 역시 잊지 않는다. “끄트머리가 확 돋보이는 시”-(‘사월 어느 날’)를 향한 한결같은 열정과 함께, 삶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긍정의 진술이 가닿는 환한 깨달음, “그렇다, 지금을 반기며 사는 것”-(‘겨울나기’)이란 시인의 다짐을 거듭 곱씹게 된다.영하의 겨울, 아파트 발코니에 사이좋게 세를 든 소철과 알로에, 문주란의 바랜 색과 빛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적적해하던 심중도 잠시, 붉게 움튼 제라늄 몇 송이와 고사할 줄로만 알았던 고무나무가 석양을 향해 번쩍 쳐든 잎들의 광경에서 시인은 “지금을 반기며 사는” 삶의 태도(‘겨울나기’), 그 아름답고도 절실한 생의 의미를 환기한다.이번 시집의 서시로 자리한 ‘오색 빛으로’는 시집을 통틀어서 유일한 미발표작이다. 시인이 공들여 벼린 가장 최신의 작품으로 전복 껍데기의 이미지와 운명에 빗댄 시론으로도 읽히는데, 그 시적 사유와 삶의 통찰이 깊고 눈부시기만 하다. 황동규 시인 황동규 시 특유의 극서정시(劇抒情詩)는 고목의 속삭임으로도 그 진면모를 드러낸다. “‘이런 일 다 집어치우고 싶지만/봄비가 속삭이듯 불러내자/미처 못 나간 것들이 마저 나가는데/어떻게 막겠나?’” 그렇다. 별것 아닌 사소한 삶의 전경은 살아 숨 쉬는 시인의 열정으로, 삶의 경이(驚異)로 이어진다. 맞다.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링 위에 서는 (다시 눕혀진들 어떠리!) 한 인간의 기록이”-(‘시인의 말’) 숭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황동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4년 전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를 상재할 때 앞으로는 좀 건성건성 살아도 되겠구나, 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늙음이 코로나 글러브를 끼고 삶을 링 위에 눕혀버린 것이다. 이 시집의 시 태반이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링 위에 서는 (다시 눕혀진들 어떠리!) 한 인간의 기록”이라고 적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20

방언학자가 수집한 맛깔난 문학작품들

이상규 경북대학교 명예교수(전 국립국어원장·사진)가 최근 저서 ‘문학방언’(한국문화사)을 출간했다.국어학자이자 방언학자, 또한 시인으로서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이 명예교수는 40여 년 넘게 방언 수집과 연구에 매진해 왔다.이 교수는 우리나라 시문학사에서 토속적인 언어를 선호했던 시학 발전을 새롭게 정리해 책에 담았다. ‘우리말의 곡진한 결, 방언으로 쓴 문예’라는 부제가 붙은 해당 도서는 100여 명이 넘는 전국 각 도별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방언의 문학적 효과와 시사적 의미를 분석한다. 이 교수의 그간의 방언 자료와 기록을 총집결한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사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저자의 오랜 연구와 노력 끝에 나온 책으로서 독자들은 각 지역의 토속적인 언어를 녹여낸 문학 작품을 통해 국어의 다양성과 지역 고유의 특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고, 방언 연구자들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이 책은 총 3장과 부록인 참고문헌으로 구성돼 있다.1부 ‘시의 행간에 둥지를 튼 방언’은 시 작품에 방언의 옷을 입히다, 방언은 한국전통 예술미학의 뿌리, 방언 시의 미학이 포함돼 있다.2부 ‘문학 방언의 풍경’은 정원에 한 가지 꽃만 피어 있다면, 시 그릇에 방언을 담아낸다, 이상화의 시에서 방언의 해독, 대구방언으로 걸쭉하게 쓴 상희구의 시 등 4장으로 구성돼 있다.3부 ‘방언고고학’은 방언과 우리들의 삶, 방언은 토착 지식의 창고, AI 시대에 제주어 연구 확장과 보전이 포함돼 있다.저자는 머리말에 “돌이켜 보면 내 삶의 거의 대부분 시간을 우리말의 곡진한 결을 가진 방언 수집과 연구에 공을 들였다”며 “방언 자료조사와 정리 그리고 해석이라는 연구 목표와 이러한 연구가 갖는 철학적 함의로서 언어의 다양성과 다원공존이라는 한 시대를 꿰뚫는 사유에 깊이 천착하였던 시절을 돌이켜 본다”고 적었다.한편, 이상규 교수는 1979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에 발맞춘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적 방언조사 사업에 조사연구원으로 첫 발을 디딘 후에 일본 동경대 객원연구교수로 방언지도 연구를 통해 컴퓨터를 활용한 K-mapmaker라는 방언지도제작시스템을 우리나라 최초로 구축한 바 있다. 국립국어원장 재직(2006~2009년) 중에는 폐쇄적인 표준어 정책의 깊이와 폭을 확장하기 위해 남북방언조사사업을 비롯한 일상생활전문용어 조사사업 추진과 더불어 한국시인협회를 통해 전국 방언으로 쓴 시집 간행을 도와 ‘시인 101명, 내 고향말로 시를 쓰다’라는 부제를 단 방언시집 ‘요 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가 출간됐다. 올 초부터는 본지에 ‘이상규의 시와 방언 이야기’를 연재 중이며, 몇몇 칼럼은 이번에 간행된 ‘문학방언’에도 게재됐다.대표 저서로는 ‘방언학 개설’, ‘방언의 미학’, ‘국어방언학’, ‘문학 속의 경상 방언’, ‘경주지역의 삶과 언어’, ‘위반의 주술’, ‘시와 방언’, ‘시어방언사전’ 등이 있다. 지난해 말 출판한 ‘프네우마 시편’ 등 다수의 시집도 펴낸 바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19

한국 수필 선구자, 한흑구의 문학적 일대기

‘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 표지 ‘단 한 편의 친일문장도 쓰지 않은 영광된 작가’로서 20세기 한반도와 대공황기 미주대륙에 새겨진 ‘한흑구의 문학과 삶’을, 그의 문학적 일대기를 93편의 이야기들로 엮어낸 책이 나왔다. 포항 출신의 중진 이대환(66) 작가가 최근 펴낸 ‘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다. ‘Han’s Aria 한흑구 아리아’라는 부제가 붙었다. 매 편에 인용한 한흑구의 작품과 그 상황을 통찰한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면서 마치 해설을 곁들인 아리아 93곡을 감상하듯이 읽을 수 있다.1950년 8월 15일, 광복 5주년에 41세 한흑구는 아내와 같이 어린 자녀 넷을 데리고 포항에서 출발해 꼬박 한 주일을 걸어 부산의 동래 다리 밑에 닿았다. 곧바로 수영비행장에 주둔한 미군 지휘부의 통역관이 되어 공초 오상순, 조지훈, 청마 유치환 등 종군 문인들의 저녁 술자리를 책임지는 임무에 충실히 나선다. 그해 10월 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을 수복하고 문인 대표들도 평양으로 날아가게 되자 조지훈은 평양 토박이 한흑구에게 동행을 강권한다. 그러나 한흑구는 이렇게 사양했다. “나는 모란봉에 모란꽃이 피면 평양에 가겠네.” 책 제목으로 삼은 이 장면이 첫 번째 아리아 애인보다 가까운 조지훈과 함께/다시 모란봉에 올라보고 싶지만이다.두 번째 아리아 아버지는 창끝에 찔려 넘어졌고/나와 동무는 도망하여 나왔노라는 한흑구가 열 살 때(1919년) 경험한 3·1운동을 24세의 미국 유학생이 돼 1933년 3월 9일 ‘신한민보’에 발표한 시 ‘3월 1일’을 인용하고 있다. 세 번째 아리아는 ‘함박눈 내리는 날 지게꾼이 오고/어머니는 소리 없이 울었네’로, 한흑구가 일곱 살이었던 어느 날에 아버지(한승곤)가 중국(상하이)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 떠나는 장면이다. 이후로는 그의 유년 시절부터 1979년 11월 그의 임종과 장례를 담은 아흔세 번째 아리아 흰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러/검은 갈매기는 영일만 바닷가 흙 속으로까지가 시계열에 어긋남 없이 그의 작품을 현장의 증언처럼 인용하면서 정연하게 이어진다.서른아홉 번째 아리아 식민지 조국에 돌아와/문학의 길로 정진하겠다는 한흑구의 자화상까지는 주로 그의 시를 인용하고, 마흔 번째 아리아 ‘헐어지는 집’에 돌아와 휘트먼을 호출하고/16만 평양시민의 종합지 ‘대평양’을 창간하다부터 마지막(아흔세 번째)까지는 주로 그의 산문을 인용한다. 쉰아홉 번째 아리아 문학의 장르로서 수필의 독자적 가치와 양식을/한국문학사에 개척하고 정립하다에서는 영미 에세이의 역사와 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통찰한 지식을 바탕으로 단단한 ‘수필문학론’을 피력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한국 수필문학의 선구자로서 한흑구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해방된 평양이 ‘붉은 도시’로 돌변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탈출해 서울 문단에 합류하고 미군정청 통역관을 지냈던 한흑구가 1948년 늦가을에 세속적 명리를 멀리하고 낯선 땅 포항에 출현하는 모습은 예순한 번째 아리아 포항시 남빈동의 낡은 집을 둥지로 삼는/검은 갈매기에 담겨 있다. 포항에 정착한 그는 월트 휘트먼, 칼 샌드버그, 랭스튼 휴즈 등 미국 대표 시인들의 시를 번역해 번역시집 ‘현대미국시선’을 펴내고, 세계적 음악가로 ‘애국가’와 ‘코리아 판타지’를 작곡한 안익태를 가형처럼 도와주며 함께 지냈던 필라델피아 템플대학 유학 시절을 A와 K라는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소설 ‘젊은 예술가’도 발표하지만, 1955년 4월 18일 동아일보에 발표한 시적 수필의 명작 ‘보리’가 보여주듯이 문학적 정혼을 수필 창작에 기울이며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문 영남일보 현대문학 시문학 수필문학 등 다양한 여러 매체에 많은 수필을 발표했다.마흔 살을 앞두고 솔가해 포항에 정착한 한흑구는 ‘향수’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으로 일관했다.전후 폐허의 포항을 재건할 때는 미군의 도움을 불러오는 일을 조용히 해내고, 다시 일어서는 포항의 기상을 전국에 알리는 글을 쓰는가 하면, 포항수산대학 교수로서 후학을 길러내며 이명석, 김대정, 박영달, 최성소, 김녹촌, 손춘익 등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흐름회’를 조직해 문학운동의 활기를 불어넣었다.그러나 70세에 다가서며 생의 종점을 예감하는 한흑구는 가슴 깊이 봉인해둔 향수 주머니의 실밥이 터져 버린다. 이대환 작가 그래서 글로 만든 ‘평양 안내지도’라 불러도 손색없을 ‘모란봉의 봄’ 같은 수필을 쓴다. 아흔 번째 아리아 꽁꽁 봉인해둔 침묵의 향수(鄕愁)에/속절없이 그만 실밥이 터지고다. 1979년 11월 지상의 마지막 음식으로 냉면을 맛보고 나서 자택에서 숨을 거둔 그는 영일만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포항시 죽천리 언덕에 묻혔다. 아흔세 번째 아리아 흰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러/검은 갈매기는 영일만 바닷가 흙 속으로다.이대환 작가는 “포항 육거리에서 서울까지 363킬로미터고 백두산까지래야 두 배도 못 되는 672킬로미터인데, 언젠가 평양 사람들이 포항에 와서 선생을 기억해주고 남녘 사람들이 모란봉에 올라가 선생을 추억해 주는 그날이 올 것이라 믿고 기다리며 이 책을 선생의 영전에 바친다”고 말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17

소설가 함정임의 유럽 묘지 순례기

소설가 함정임(60) 씨가 유럽 묘지 순례기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현암사)를 펴냈다. 함 씨가 지난 2020년 등단 30주년을 맞아 펴낸 아홉 번째 소설집 ‘사랑을 사랑하는 것’(문학동네)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저작이다.이번 책은 작가 특유의 유목민적 상상력, 애도의 글쓰기를 고스란히 이어간다는 점에서는 친근하지만 묘지를 순례하는 형식으로 쓰였기에 완전히 새롭다.스무 살 때부터 저자를 사로잡았던, 유럽의 시인, 소설가, 화가, 음악가, 극작가, 영화감독들이 생전에 살던 곳과 영면에 든 공간을 찾아간 문학적 묘지 순례기다.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의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합장묘, 200만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개선문에서 장례식을 치렀던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 빅토르 위고가 묻힌 국립묘지 팡테옹, 묘석도 비석도 없이 묘를 사이에 두고 가느다란 길만 나 있는 톨스토이 묘 등을 찾은 저자는 문학과 예술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살았던 시대와 역사, 삶과 예술을 문학적 단상들과 함께 들려준다. 저자가 직접 찍은 다채로운 풍경과 여행 사진도 실렸다.그는 작가의 말에서 “지중해 바닷가 언덕,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에 다시 갔다. 스무 살 때 처음 그곳 꿈을 꾸었고, 스물여덟 살 때 꿈을 실현했고, 32년 만에 그 앞에 다시 선 것이었다. 이런 행위, 이런 삶은 무엇일까. 설렘도 황홀도 슬픔도 덧없음도 한갓 한순간. 무엇을 붙잡으려 했던 것일까. 이것이 문학, 순정인가. 돌아와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적었다.함 씨는 1990년 등단한 이래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여행하는 인간) 작가’라는 수식어를 달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그간 소설집 아홉 권, 장편 네 권, 중편 한 권을 냈고 여러 산문집과 동화, 번역서도 펴냈다. 현재 동아대 한국어문학과에서 연구·강의와 소설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13

데뷔 60주년 남진, 그의 인생을 책으로 만난다

가요계를 대표하는 트로트 레전드 남진(80)의 가요계 데뷔 60주년을 맞아 그의 인생 전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출간됐다.상상출판은 1960년대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남진의 음악 인생과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오빠, 남진’을 최근 출간했다. 책은 ‘원조 오빠에서 영원한 오빠로’란 부제가 붙었다.전남 목포 출신으로 지난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한 남진은 1967년 작곡가 박춘석의 ‘가슴 아프게’로 대히트를 치며 20대 초반 나이에 스타덤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당대 최고의 배우인 문희와 신영균이 주연한 ‘미워도 다시 한번’이 한국 영화 역대 최다 관객을 불러 모으면서 영화 주제곡을 부른 남진은 뜨거운 인기를 얻는다.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남진이 베트남 참전을 자청해 해병 2여단 청룡부대 일원으로 월남으로 출병할 때는 많은 국민이 거리로 몰려나와 눈물을 흘리며 무운을 빌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베트남에서 3년 복무를 마치고 월남에서 돌아온 남진은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인기 절정을 구가했다. 흡인력 있는 외모와 박력 있는 목소리, 하반신을 흔드는 현란한 춤동작 등 여러모로 프레슬리와 닮았기 때문이었다.뜨거운 인기를 얻은 슈퍼스타 남진은 1970년대 한국 가요계의 아이콘으로서 라이벌인 가수 나훈아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다. 발라드풍의 독특한 트로트 히트곡 ‘마음이 고와야지’, ‘님과 함께’, ‘목화 아가씨’, ‘빈 잔’, ‘둥지’ ‘당신이 좋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던 그는 국민 가수이자 60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한 영화배우이기도 하다.책은 남진의 데뷔부터 영화배우로서의 활동, 해병대로 월남전 파병, 도미, 대한민국 톱스타에 이르기까지 그 화려했던 시대를 차례로 정리한다. 남진의 가수 인생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 100년사를 함께 조망하고 있다.직접 작사와 작곡에 참여하며 노래를 만들어갔던 과정, 영화배우로 활동할 때의 에피소드 등 이제껏 풀지 않았던 국민가수 ‘남진’의 이야기들이 △프롤로그-왜 이제 와서 ‘남진’인가 △1장 오빠는 풍각쟁이-한국 대중음악의 태동…. △14장 제2의 전성기와 트로트 열풍 부활 △15장 가수 남진과 인간 남진 △에필로그-남진의 마지막 무대는 등 총 15장에 나뉘어 고스란히 담겼다.남진은 에필로그를 통해 “시간이 갈수록 음악은 내 인생의 전부인 것 같아요. 예전에도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너무 바빠서 절반쯤만 몸을 담갔다면, 지금은 노랫말 한 소절 한 소절에 몸 전체를 푹 담그고 싶어요. 그래야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상상출판 측은 “남진의 음악 인생은 우리 가요사와 그대로 겹친다. 가수 남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를 탐구하는 일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2024-06-13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폭염의 참상 낱낱이 기록

신간 ‘폭염 살인’(웅진지식하우스)은 미국의 기후과학전문기자 제프 구델이 ‘열국 열차’를 타고 한 바퀴 돌아본 달궈진 지구의 모습에 대한 폭염 르포르타주다. 대폭염 시대를 맞아 세계 방방곡곡이 해마다 ‘역대급 더위’를 경신하는 가운데 지구는 점점 더 빠르고 더 뜨거운 멸종을 향해가고 있다. 20년간 기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해 온 저자는 지구촌 곳곳의 폭염 실태를 토대로 기후 변화가 몰고 오는 파국적인 결과를 경고한다. 원제목이 ‘더위는 당신을 먼저 죽일 것이다’(The heat will kill you first)인 책은 기후 변화의 영향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살인적인 폭염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이 책은 산업혁명 이후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된 2023년을 예견한 책으로 미국 사회에서 큰 화제를 일으키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저자는 평균기온 45도를 웃도는 파키스탄부터 시카고, 사라져가는 남극에서 파리까지 가로지르며, 우리 일상과 신체, 사회 시스템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폭염의 참상을 낱낱이 기록한다.2019년 기준 48만9000명에 달하는 전 세계 폭염 사망자는 허리케인과 태풍, 수해 등 모든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의 합계를 훨씬 웃돈다. 그중 자신이 ‘더워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상상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자는 폭염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쉽고 빠르게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경고한다.저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더위’가 여름의 낭만이 아니라 지구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열’ 그 자체라는 점에 주목한다. 대기와 해류뿐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일종의 ‘열 관리 시스템’이며 열역학의 원칙에 따라 열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변환된다. 열을 내는 유기체인 인간의 몸은 한계치인 습구온도 35도를 넘으면 고체온증을 겪다가 순식간에 열경련과 열사병으로 치닫는다.열은 우리의 사회 시스템마저 붕괴시킨다. 통계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자살과 유산(abortion)이 늘어난다. 혐오 발언과 강간 사건을 비롯한 각종 강력범죄 빈도가 높아진다. 저자는 지구상 모든 존재의 생존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적 문제가 골딜록스 존(Goldilocks zone), 즉 생존 가능 영역 밖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며 우리의 폭염 불감증에 경종을 울린다.저자는 한때 풍요의 땅이었으나 이제는 죽음의 땅으로 변모한 ‘매직 밸리(Magic Valley)’, 리오그란데 계곡과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어버린 텍사스 옥수수 경작지를 찾아가 절망하는 농부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우리가 받아든 폭염이라는 청구서에 자비는 없다. 이 책에 따르면, 평균기온 1도씩 상승할 때마다 미국의 GDP의 약 1퍼센트인 3000억 달러(약 4조 원)가 증발한다. 이 손실액은 2050년 5000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더위를 피하기 위한 야생의 대탈출도 벌어지고 있다. 육상 동물들은 현재 10년마다 약 20킬로미터씩 북상하고 있으며, 대서양대구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160킬로미터, 산호마저도 매년 약 32킬로미터씩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따뜻해진 해류로 해수면이 상승하며 해안 도시의 주민들도 집을 버리고 이주를 택한다. 인천, 부산 등 한국의 해안 도시들도 전 지구적 기후 이주 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저자가 만난 수많은 기후과학자가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지구 열탕화의 원인이 ‘화석연료 사용’에 있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 화석연료 사용 비중은 2024년 현재 82%로 여전히 증가세다. 2023년 미국의 주요 석유 및 가스 생산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절망적이다. 저자는 특히 폭염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위험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허리케인 ‘카트리나’처럼 폭염에 이름을 붙이고 이미지화하는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불과 20년 뒤면 전 세계 인구 70%가 살게 될 도시의 모습에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강철 그리고 실외기로 가득 찬 도시는 열을 가두는 찜통 그 자체다. 뉴욕시는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도시에 그늘을 만들었고, 세비야는 지하수로 기술을 활용해 도시를 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13

빛바랜 그대로… 박목월 미발표 육필 詩 노트 출간

경주 출신의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박목월(1915~1978)의 미발표 육필 시(詩) 166편이 종이책 10권으로 출판됐다. 책 총 10권의 제목은 각각 ‘생활’, ‘사람’, ‘신앙’, ‘가족’, ‘기념’, ‘제주(경주 외)’, ‘사랑’, ‘자연’, ‘동심’, ‘시인’등이다. 시인이 등단한 1938년 초부터 타계한 1978년 3월까지 활동하던 40년의 창작 생애가 담겨 있다.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 우정권(단국대 교수) 위원장은 “독자들의 요청으로 종이 책까지 출판하게 됐다”며 “박목월 시인의 미공개 시 노트 80권에 있는 400여 편의 작품 중 엄선한 166편을 감성 주제별로 1종 10권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우 위원장은 “실제 노트에 있었던 것과 같도록 노트의 색이 바래지고 찢어진 흔적들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며 “독자들이 실제 노트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갖기 위해 활자본이 아닌 육필로 된 복각본으로 출판했다”고 설명했다.앞서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는 지난달 박목월 시인의 미발표 친필 노트 80권(총 400여 편)에 담긴 166편을 원본 이미지와 낭송 음성 등이 결합한 디지털북을 발간했다. 위원회는 저작권 보호를 위해 플랫폼 ‘피카펜’도 출범시켰다.각각의 작품에는 수록작을 선정한 박목월육필시발간위원(박덕규 단국대 명예교수, 우정권 단국대 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 전소영 홍익대 초빙교수)들의 해설이 모두 실렸다.디지털북은 피카펜에서, 종이책은 일반 서점에서 구매해 볼 수 있다.한편 피카펜은 이번에 박목월의 개인 첫 시집 ‘산도화’도 1955년 초판본 형태로 복원해 디지털북과 복각본으로 각각 발행했다.‘산도화’는 박목월 시인의 대표작인 ‘나그네’를 비롯해 ‘윤사월’, ‘청노루’, ‘산도화’ 등이 수록된 한국 서정 시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집이다. 자연친화적 서정의 절정을 보여주는 시들로 구성돼 있다. 1940년대부터 1950년대 초기 목월 시의 집대성이자, 그 시기 모국어로 도달할 수 있는 한국 서정시의 절정을 보여준다.한편 박목월은 ‘나그네’를 비롯한 수작을 남긴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으로, 조지훈·박두진과 함께 청록파로 불렸다.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경북 경주에서 자랐고 대구를 거쳐 서울에서 오래 살았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24-06-12

한진욱 ‘어머니의 참깨밭’ 시집 출간

한진욱 시인. “풀 뽑고 이랑 세우다 거칠어진 고운 손손톱 밑 검은 때 씻을 틈 없이솔가지 연기 피워 차려낸저녁상 한 모서리에밤하늘 깨알 같은 별들이내려앉았다하얀 꽃 갈바람에 흩어져 가고참깨 씨앗 저리도 여물었는데울 엄마 지친 몸은 병이 깊어져문풍지 바람에 우는 겨울 어느 날내 마음도 바람 따라 함께 울었다” - 한진욱 시‘어머니의 참깨 밭’ 중에서. 포항의 한진욱(62) 시인이 첫 시집 ‘어머니의 참깨밭’(생각나눔)을 출간했다.시집에는 1부 ‘길’, 2부 ‘세월’, ‘풍경’, 4부 ‘먼산’으로 나눠 모두 66편의 주옥같은 시들이 담겼다.‘어머니의 참깨밭’,‘코스모스 들녘’, ‘봄비’, ‘나의 살던 고향’, ‘산사의 밤’, ‘유월의 아버지’ 등의 시편은 고향, 향수, 정 등 어릴 적 살던 고향에 대한 향수와 부모님의 정 등 들풀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간절하고 순정한 눈빛으로 형상화했다는 평을 듣는다.표제작 ‘어머니의 참깨밭’은 깨 농사를 지으며 손이 거칠어지고 손톱 및 검은 때 씻을 틈 없이 힘들고 가난한 시기를 지나온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다.시인 강대환(자필문학회장)은 서평에서 “‘어머니의 참깨밭’ 시는 서정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강가에 노을이 물들어 가고 있는 것처럼 맑고 깨끗하다. 시인은 그리움의 전형, 그리움의 화산이다. 사유와 사색이 가물거리는 기억의 끝을 붙잡고 사색의 통로를 개척해 나가는 그 모습은 물질만능화로 자칫 사장될 수 있는 휴머니티를 꽃피우는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마로산성’에서는 백제 시대에 축성된 전남 광양의 4대 석성 마로산성에 대해,‘아버지의 마당’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애잔함에 대해, ‘다시 찾은 학교 길’은 어렸을 때 다녔던 초등학교, 꿈을 키웠던 공간에 관해 이야기했다. ‘어머니의 참깨밭’시집 표지. “살아도 살아도 낯선 도시의 불빛/ 흐느낄 수조차 없는 고달픔이 밀려올 때/ 기억 속에 어둑한 강둑길 찾아가면/ 달빛 물든 코스모스 어서 오라 손짓하였다….”-‘코스모스 들녘’. 그밖에 ‘달맞이꽃’, ‘능소화’ 등에서는 젊은 시절 힘들었던 시인의 마음을 고향처럼 위로해 줬던 꽃들에 대한 추억을 노래했다. 한진욱 시인은 “모두가 힘들고 가난한 시기였지만 자라고 성장하는 동안 세상은 넓은 황금빛 들녘과 푸른 강, 그리고 맑고 높은 하늘이 어우러진 아름답고, 사람들 사이에는 정이 넘쳤다. 그러다 보니 어른이 된 후에도 마음속에는 늘 그런 풍경들이 잔상으로 남아 있었고, 시의 방향성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며 “물밀듯 밀려드는 말들, 다 소화하지 못해 밀리고 밀리다가 내 서랍에 갇혀 있던 말들을 이제야 세상에 내보낸다”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한 시인은 경주에서 태어나 포스텍 대학원을 졸업한 뒤 포스코 니켈 법인 SNNC 전무, 포스코 EC 전무로 재직하다가 지난 1월 퇴직했다. 현재는 포스코 EC 자문위원으로 있다. 2017년 ‘어머니의 참깨밭’으로 ‘지필문학상’ 신인상을 수상, 등단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6-10

이도국 작가 ‘영남좌도 인물 문중 풍습으로 보는 우리 역사 조선의 얼굴’ 발간

역사연구가 이도국 작가가 ‘영남좌도 인물 문중 풍습으로 보는 우리 역사 조선의 얼굴’(학이사)을 펴냈다.조선시대 영남지방의 인물, 문중, 역사, 풍습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조상의 정신과 씨족의 미담을 보여준다.작가는 역사의 한 축인 씨족을 소재로 삼아 스토리를 펼친다. 씨족의 구심체이자, 중심인 종가를 ‘조선의 얼굴’이라 표현하며 의미를 부여한다.스토리의 주 무대는 영남 좌도다. 좌도는 낙동강 동쪽을 이르는 말로 안동 영주 봉화 영양 등을 말한다. 이 책에서는 좌도의 인물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 전반을 알기 쉽게 펼쳐간다.영남 좌도에는 문집과 목판, 비문, 왕조실록과 내방가사 등 위대한 기록 유산을 한문, 이두, 언문, 한글로 기록한 이들이 있었다.이들의 기록을 따라 독자들은 ‘독립의 별이 된 여인들’, ‘영의정과 대제학’, ‘제주의 전설이 된 영남 목민관’ 등 조상들의 행적을 더듬어 간다.작가는 역사의 한 축인 씨족의 중심, 종가를 ‘조선의 얼굴’이라 말한다. 왕조멸망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번화한 한양과 그 인근에 거주하던 경화사족(京華士族)은 급격히 사라졌지만 세거지 중심으로 농토를 넓히며 깊게 뿌리내린 영남 재지사족(在地士族)은 굳건히 살아남았다는 것이다.작가는 “역사는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과거는 먼저 온 오늘이요 조상은 앞서 산 우리들이다.”라며 이 책을 통해 생활 속에서 낮은 자세로 역사를 마주할 것을 강조한다.◆저자 이도국은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KB은행원으로 일했다. 조상의 삶을 깊이 있게 알기 위해 국내외 오지로 역사 현장을 찾아 탐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여행작가, 역사연구가로 활동했다. 2020년 10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3년 2개월간 영남일보에 ‘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을 연재했으며, 현재 ‘뉴스로’에 역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히말라야 언저리를 맴돌다’, ‘영남좌도 역사산책’ 등이 있다./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5-23

목조건축물 30년 수리경험 ‘목업’에 담다

한국 전통 목조 건축물 수리 기능자인 신효선 도편수가 자신의 30년간 문화재 수리현장에서 체득한 관련 지식과 기술을 엮은 책 ‘목업(木業·궁편책 刊)’이 나왔다.전통건축사무소 ‘예조’ 대표이자 도편수인 신 씨는 업계에서 괴짜라고 불린다. 한국 전통 목조 건축물을 제대로 고치는 일에 30여 년을 쏟아부은 문화유산 수리 기능자인 그는 그동안 보물 제1746호 논산 노강서원 강당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수했다.이 책은 충북 괴산군 감물면에 거주하며 목수 일을 가업으로 하는 집안에서 성장한 신 씨가 1997년 11월 본격적으로 ‘목업’에 발을 들여놓은 뒤 30여 년간 종사한 과정을 상세히 담았다.신 씨가 보유한 전통 건축 관련 특허 기법과 수리현장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들려준다. 신 씨는 제천 청풍 한벽루(보물 제528호)를 비롯한 열네 채의 목조 건물을 도편수로서 해체하고 수리, 조립했다. ‘목업(木業)’ 표지. 논산 노강서원 강당(보물 제1746호)의 복구, 석조 배흘림기둥을 사용해 팔작집 다포계 양식의 일주문과 육각형 다포계 양식의 종각을 시공했다. 해당 문화재 수리는 석조 기둥을 사용한 국내 최초의 사례로 전해진다. 그는 2017년 자신이 보유한 특허 기법인 H빔을 활용해 신개념의 한옥을 건축하기도 했다.신 씨의 작업 방식은 다른 도편수들과 차이를 보인다. 추녀 작도법의 경우 조선 후기 이승업 도편수의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6년의 연구 끝에 완성해 연목을 시공하는 데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신 공법을 창안해 수리에 적용하는 등 전통기법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롭게 시도한 독특한 도편수로 알려져 있다. 전통 목조 건축물의 해체와 보수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돼 있지 않은 지금,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전례 없던 기준점을 만들었다. 책에는 조사 주기표와 분류 야장 등 소중한 자료들이 수록돼 있다.신 씨는 저자의 말에서 “이 책을 사용하는 당신께 제 경험과 지식을 드립니다”며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는 일이기에 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대와 세대를 넘어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다. 이 책이 그 창구가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고 적었다.궁편책 측은 “목업을 생업이자 3대째 가업, 조상의 유업, 민족의 과업으로 삼은 그는 현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전통 건축을 꿈꾼다. 저자가 자신이 보유하고 출원 중인 전통 건축 관련 특허 기법까지, 그 모든 현장의 기록을 본서에 남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