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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가족 위한 사랑과 희생… ‘엄마의 고물상’에 담아

사람들이 쓰다 버린 온갖 물건들이 모이는 고물상 흙바닥에서 다섯 아이는 맨발로 뛰어다니며 자란다. 엄마는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방을 내어주고, 손수레와 엿판도 마련해 주었다. 그들은 아침마다 밤새 만든 엿을 손수레에 가득 싣고 가위를 흔들며 길을 나선다. “고물 삽니다! 맛있는 엿으로 바꿔 줍니다!” 소란스럽고 어수선해도 따뜻한 정이 흘러넘치는 그곳은 엄마의 고물상이다. 도서출판 비엠케이에서 출간된 그림책 ‘엄마의 고물상’은 다섯 아이를 키우기 위해 고물상을 열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현지영 작가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그림책이다. 한국어린이교육문화연구원의 ‘으뜸책’으로 선정됐으며, 2025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위탁도서로 해외에 소개되기도 했다. 현지영 작가는 다섯 남매 중 넷째로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도 오랫동안 품어온 그림책 작가의 꿈을 이뤘다. 특히 올해 아흔넷을 맞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는 소망을 실현하게 됐다. ‘엄마의 고물상’은 고물상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가족의 사랑과 희생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엄마가 다섯 아이를 키우기 위해 연 고물상은 단순한 폐기물의 집합소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놀이터였다. 작가는 이 그림책을 통해 고난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다. 어머니는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정을 나눴다. 그림책 ‘엄마의 고물상’은 독자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감동과 희망을 전달하며,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의 힘을 일깨운다. 현지영 작가는 “엄마의 희생과 사랑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라며 “이 책이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가치와 희망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3-23

문무학 시인 ‘예술로 노는 시니어’출간

문무학 시인 대구예총 회장을 역임한 문무학 시인이 ‘예술로 노는 시니어’(뜻밖에)를 펴냈다. 이미 어르신 세대가 된 문 시인이 자신의 시니어 일기이자 문화, 예술 섭렵 기록을 담담한 일상 언어로 엮어냈다. 5명 중 1명이 시니어가 된 사회에서, 시니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사는 날이 많아져도, 사는 일에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다고들 한다. 문무학 시인은 고민 끝에 예술에서 그 답을 찾고자 결심하고 직접 실천에 나섰다. 작가는 이미 매주 한권씩 쉰 두권의 책을 읽고 쓴 서평을 모아 ‘책으로 노는 시니어’를 세상에 내놓은 적이 있다. 그리고 ‘책으로 노는 시니어’의 범주를 확장해 이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예술로 노는 한 시니어의 실천기 성격을 띠고 있다. 작가는 한 해 동안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들었다. 한 달 4주를 첫째 주는 영화나 연극, 둘째 주는 공연, 셋째 주는 책, 넷째 주는 전시를 보고 매주 한 편씩 그 관람기를 남겨 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예술로 노는 시니어’는 단순히 한 시니어의 일 년 기록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수백 년을 살아남은 책이,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수준 높은 문화생활과 지역 예술가들의 창작열이 이 한권의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좋으면 좋은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솔직하게 감상기를 펼쳐 나갔다. 단순 예술 감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일화와 자료, 해석 등을 추가해 독자들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돕고, 예술소비에 앞서 미리 참고하면 좋을 것, 찾아보면 좋을 것들을 짚어준다. 저자는 매주 한 장르의 예술을 소비하는 일을 통해 삶에 활기가 돌고 생각이 많아진 것에 더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처럼 문화생활을 향유하며 지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는 삶,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삶,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삶을 시니어들도 찾아보자고 권하고 있는 듯하다. /한상갑기자

2025-03-20

암각화 2-고래의 항변: 황폐해져가는 우리 영혼과 정신을 깨우다

“대관절 사무친 원한을/땅속에 묻고 살았더냐//단칼에 참수형을/당하고도//줄/줄/이/끌려온//영어(囹圄)의/저 몸.”- 손수여 시 ‘무시래기’ 전문 손수여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지금도 시위 중이다’(신아출판사)가 출간됐다. 68편의 시가 4부로 나눠 구성된 시집이다. 손수여 시인은 시집 앞머리 ‘시인의 말’에서 ‘결이 곱고 쉬운 시, 나만의 색깔로 그려볼 수 없을까. 홀아비바람꽃이 불러 모은 천상의 화원처럼 얼마나 더 간절해야 향기 글꽃 나도 피울 수 있을까’라고 쓰고 있다. 표제가 ‘지금도 시위 중이다’인 이 시에서, 시인은 삭막해지는 환경 재해 속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해 암각화의 고래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통해, 황폐해져 가는 우리의 영혼과 정신세계를 지키고자 시를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시 ‘암각화 2-고래의 항변’의 마지막 구절인 ‘경계를 내려놓고 허구 세월을/ 반구대에서 지금도 시위 중이다’는 이러한 메시지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손 시인의 시 세계는 삶의 본질을 직시하는 데 있어 과거와 현재, 개인과 역사, 현실과 초월적 사유를 넘나드는 깊은 통찰과 사색에 기반하고 있다. 일상과 역사적 경험을 소재로 해, 단순한 단어 나열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한국적 정서와 삶의 근원을 탐구하려는 태도가 특징이다. 시 ‘노루 한 마리가’는 아련한 회억이 묻힌 경주 계림과 천년 왕조의 숨결이 일렁이는 반월성을 배경으로 하며, 석굴암과 토함산의 전설을 통해 서라벌의 불국토적 풍경을 묘사한다. 시인은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며 사라진 존재들을 떠올리며, 자연 속에서 시인의 부재를 느끼고 슬픈 노루가 바람의 시를 듣는 장면을 그려낸다. 손수여 시인 ‘홀아비바람꽃’에서는 눈 덮인 땅에서도 피어나는 꽃들과 함께, 사랑하는 이가 없는 봄의 허무함을 표현하며,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도 인간의 감정과 연결됨을 보여준다. 시인은 오랜 시간 숙성된 시를 창작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그리움과 상실, 그리고 회복의 과정을 시로 풀어내고 있다. 김철교 문학평론가는 “손수여 시인의 시 세계는 삶의 본질을 직시하는데 있어서 과거와 현재, 일상과 영성의 경계를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개인적 감정 발산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과 역사,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며 인간 내면의 진정성을 발견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라고 평했다. 손수여 시인은 한국시학, 시세계를 통해 시로, 월간 문학을 통해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제4회 도동시비문학상, 제34회 P.E.N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는 ‘성스러운 해탈’, ‘숨결, 그 자취를 찾아서’ 등 총 8권을 출간했으며, 평론으로는 ‘매헌 윤봉길의 문학사적 위상 조명’ 외 다수를 집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3-20

AI 시대, 지속가능한 기업 성공 방법 제시

포스코에서 20년 넘게 기술혁신 컨설팅을 담당해온 장광일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가 신간 ‘AI 시대, 그래도 사람이 최고다’(퍼플)를 펴냈다. 저자의 풍부한 현장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공을 이루는 방법이 제시된 이 책에는 ‘포스코 현장 혁신 스토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장 교수는 동국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졸업하고, ISO 14001 및 ISO 9001 심사원보 자격을 갖춘 전문가로서 6시그마·통계·TPM 자주보전 등 다양한 혁신 기법을 기업 현장에 적용해 왔다. 그는 경북매일신문에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연재한 칼럼과 20년간의 컨설팅 경험을 바탕으로, 매년 변화하는 시장 환경과 기술 발전 속에서도 기업의 생존과 성장은 운이 아닌 철저한 준비와 전략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 장 교수는 1990년 포스코 제강부에 입사해, 15년 후인 2005년에 혁신지원그룹에 소속됐다. 이 시기에 그는 포스코만의 맞춤형 혁신 활동인 QSS(Quick Six Sigma)를 처음 도입하고 전파하며 회사의 변화를 주도했다. 그는 작은 정리와 개선부터 시작해 현장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쌓아왔다. 장 교수는 “현장에 직접 가서 보고, 문제를 느끼고, 해결책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다”며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시장의 흐름에서 도태된다”면서 변화의 패턴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장 교수는 직장 내 즐거움과 몰입할 수 있는 일터의 중요성을 들어 “기업은 개인의 성장을 돕고, 개인은 기업의 성과를 높인다”는 선순환 구조를 제시한다. 책은 총 8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에서는 혁신과 지속 성장, 안전과 친환경 경영, 현장 개선과 동반성장, 조직 문화와 소통 리더십, 효율성과 낭비 없는 운영, 직장 생활과 개인 성장, 리더십과 협상 전략, 미래를 위한 기술과 방법론 등을 다룬다. 장 교수는 “AI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작은 변화가 큰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 책은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검증된 사례들을 바탕으로 조직이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향과 전략을 제시한다. 장 교수는 “미래는 준비된 자의 몫”이라며 이 책이 독자들에게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데 실질적인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3-20

“시와 밥 사이를 헤매며 혹독한 지금을 뚫고 나가는 희망의 불사조”

신경용사진 시인의 첫 시집 ‘시간의 강 위에 피어난 불꽃’(북랜드)이 출간됐다. 신 시인은 계간 ‘문장’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자신만의 개성적인 감각과 체험의 깊이가 담긴 내용과 직선적이고 단순한 형식을 추구하며 고유한 시 세계를 구축해 왔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금화복지재단 이사장인 신 시인은 지난해 5월 수필가로 먼저 문단에 등단해 수필집 ‘금화의 노래’를 펴낸 바 있다. 이번 시집에서는 신 시인의 유년 시절의 슬픈 이야기와 사모곡, 성공과 좌절 속에서도 교육사업을 일으킨 노정, 비슬산을 둘러싼 수필가, 시인으로서의 따스한 시선에 대한 인간적 정서가 아름다운 시어에 녹아 있다. 특히 감성적 서정시의 빼어난 형상화는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시인의 시는 설움과 고통과 외로움이 흥건하지만, 오뚝이 정신으로 다시 일어서서 걸어가는 힘이 있다. 모호하지 않고 단순하며 직유적임에도 오히려 이런 점이 주제를 명료하게 해 공감이 더 깊고 울림이 크다. 직선적인 시적 기술로 농밀한 시어를 통해 타인과의 공감을 끌어내는 강한 힘이 신경용 시의 장점이다. 김동원 문학평론가는 신 시인의 시를 “국밥처럼 뜨거운 김이 오르는”, “외로운 울음소리가 들리는”, “찬 겨울 골목을 서성이는 붉은 노을의 시”라고 평가했다. 또한 “눈물 젖은 빵을 먹은 자의 설움이자, 생의 쓸쓸함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고독한 시”라며, “꿈과 욕망이 뒤엉켜 현실로 드러나는” 신 시인의 시는 “시와 밥 사이를 헤매며 혹독한 지금을 뚫고 나가는 희망의 불사조”라고 말했다. 신 시인은 시집의 표제작인 ‘침몰하지 않는 배’에서 “나는 침몰하지 않는 배/실패의 능선을 넘어 검은 구름을 지나/폭우가 쏟아져도 뚫고 나가리/군데군데 피 맺힌 상처들 만나도/꺼꾸러지지 않으리/슬픔과 고통을 모두 안고 생을 건너리”라며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표현했다. 신 시인의 시는 오랜 체험과 농밀한 시어로 생활과 정서를 잘 버무려 타인과의 공감을 목적으로 하며, 좋은 시는 리듬이 중요하듯 그의 변주는 음악적이다. 최근 그의 시작(詩作)의 경향은 익숙함에서 새로운 비밀을 찾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단순하고 심플한 구도에서 시의 요체가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인은 드라마틱한 시인의 인생 역전을 노래한 61편의 시편을 1부 ‘늘푸른실버타운’, 2부 ‘어릴 적 나는’, 3부 ‘비슬산 참꽃’, 4부 ‘가을 당신’, 5부 ‘지혜의 문’등 총 5부에 나눠 생생하게 실었다. /윤희정기자

2025-03-13

어느날 이름이 도망쳤다… 존재권을 상실한 인간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현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아베 코보(1924∼1993)의 출세작 ‘벽’(이정희 번역, 마르코폴로)이 새롭게 복간됐다.‘벽’은 25년 전 소량 번역 출판돼 희귀본이 된 1951년 제2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품집이다. 지난 2000년 한국어판으로 처음 나왔으나 오랫동안 절판 상태였다가 이번에 재발간이 결정됐다. 출판에 앞서 알라딘이 북펀딩을 시작해 단 며칠 만에 목표액을 달성한 것을 봐도 국내 아베 코보 팬들이 복간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알 수 있다. 역자인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는 이번 복간에서 수록 작품 중 화자의 말투를 오리지널 원서에 가깝게 경어체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바로잡았다고 말했다. ‘S. 카르마씨의 범죄’의 주인공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자기 이름이 도망친 것을 알게 된다. 이 순간부터 그는 관습으로 포장된 현실 세계에서 존재권을 상실한다. 존재권을 상실한 인간, 그것은 현실 세계에선 범죄자가 아니면 미치광이 외에는 없다. 주인공은 당연히 읽는 독자들의 시선에 따라 세상으로부터 그 존재를 모두 강탈하려고 하는 흉악 범죄자나 미치광이로 비치게 된다. 존재권을 상실해 어디에도 귀속되지 못한 주인공의 눈에는 현실 세계가 더없이 기상천외하고 부조리한 덩어리로 비친다. 자신과 타인이 서로 각각 또 하나의 자신 혹은 타인으로 변신하는 주인공은 현실 세계 속에서 살고 있으되 자신의 명함이나 번호로 존재하고 사랑하는 소녀는 마네킹 인형으로 변신한다. 이것은 카프카 이상으로 카프카적인 그로테스크한 세계다. 이 때문에 아베 코보는 ‘일본의 카프카’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베 코보는 카프카의 아류가 아니다. 아베 코보의 독창성을 알기 위해선, 독자는 꼭 카프카와 아베 코보를 비교해 본질적인 차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카프카에 비해 아베 코보의 작품이 훨씬 가볍고 밝은 인상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베 코보의 가벼움 내지 밝음은 그의 주인공이 현실 세계의 존재권을 상실해도 그다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으며, 주인공은 상실에 대해 그 어떤 향수도 느끼지 않는다. 사람들은 우연한 계기로 저마다 벽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은 인간의 생활과 우주의 법칙이 교차되는 장소이지만 어느 순간 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베 코보가 ‘마법의 분필’로 벽을 그리면 벽은 존재한다. 작품집 ‘벽’에는 ‘S. 카르마씨의 범죄’, ‘붉은 누에고치’, ‘홍수’, ‘마법의 분필’, ‘바벨탑의 너구리’, ‘사업’ 등 모두 6편의 중단편이 수록돼 있으며, 책의 말미에 역자 이정희 교수의 ‘일본 현대문학의 기수, 아베 코보의 문학 세계’가 실려 있어 독자의 소설 읽기를 돕는다. 역자인 이정희 교수는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아베 코보 연구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 최초 아베 코보 연구자다. 아베 코보의 장편소설 ‘타인의 얼굴’을 번역하기도 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3-13

‘비폭력 저항’이 세상을 바꿀 희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4년이 흘렀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전쟁과 무력 충돌로 인한 무고한 희생이 계속되고 있다. 군사주의가 지배하는 시대, 힘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더 큰 폭력을 불러오고 있다. 한국 역시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지난 5년간 국방비 예산이 정부 재정의 12~14%를 차지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주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평화는 여전히 멀리 있다. 이제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역사 속에서 비폭력으로도 평화를 수호한 사례가 있지 않을까? 덴마크 출신 사회학자 마이켄 율 쇠렌센이 쓴 ‘전쟁 없는 세상’(오월의봄)은 바로 그 해답을 제시한다. 평화주의, 비폭력 시민 저항에 관한 회의론자와의 이 짧은 대화록인 이 책은 군사주의 아닌 평화주의에, 폭력 수단이 아닌 비폭력 수단에, 지배자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시민 저항에 정말로 힘이 있느냐는 가슴속 깊은 우리의 의심을 하나하나 해소해준다. 저자는 200쪽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분량 안에 비폭력 시민 저항의 이론적 토대와 역사적 사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평화주의적 관점, 그리고 구체적인 대안과 실천 방안을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회의론자의 현실적인 질문들2014“이런 시기에 어떻게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까?” “우크라이나에 무장 방어가 아닌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비폭력 저항으로 점령자를 몰아낼 수 있습니까?”2014에 대해 저자는 한 사람의 평화주의자로서 차근차근 답변하며, 독자들에게 평화주의와 비폭력 시민 저항을 현실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특히, 이 책은 도덕주의적 차원을 넘어 실용주의적 차원에서 비폭력 저항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이미 비폭력 저항이 실천되고 있으며, 한국의 평화운동 역시 한국산 무기의 우크라이나 수출 반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반대 등 다양한 연대 활동을 통해 비폭력 저항에 힘을 보태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제3국의 시민들이 이미 비폭력 저항을 실천해왔다. 저자는 그러한 저항의 사례들을 함께 아우르며 이러한 움직임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짚는다. 전쟁이 어떠한 결말을 맞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전쟁을 마주한 당국의 시민들이 아니더라도 비폭력 저항에 힘을 보탤 다양한 연대 활동의 방법들이 있다. 실제로 한국의 평화운동은 한국산 무기의 우크라이나 수출 및 이전에 반대하는 한편,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따른 한국군의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에도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다. 러시아의 병역거부 난민들을 지원하는 활동도 전개 중이다. ‘전쟁 없는 세상’은 군사주의에 대한 믿음을 돌아보고, 비폭력 저항이 만들어낸 과거와 현재의 변화,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들을 알려준다.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오래된 환상에 균열을 일으키며, 군사력 증강이 평화 수호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폭력의 악순환을 초래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윤희정기자

2025-03-06

나 누굴 살아온 걸까?… 중년의 위기 넘어 진정한 자기찾기

인간 심리를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작용 속에서 해석한 카를 구스타프 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중년의 위기는 겉으로는 안정된 삶을 사는 듯하지만 내면은 불안하고 공허한 시기를 의미한다. 이러한 중년의 위기를 ‘진정한 자기를 찾으라는 초대장’으로 해석하며 의미 있고 충만한 삶을 찾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 출간됐다. 바로 세계 최고의 융 권위자로 불리는 제임스 홀리스 미국 세이브룩대학교 교수의 ‘마흔에 읽는 융 심리학’(21세기북스)이다. 저자는 마흔 즈음에 찾아오는 위기를 ‘진정한 내가 되라는 내면의 신호’로 해석하며, 이를 무시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그의 안내를 따르면 타인의 기대나 사회문화적 압박, 트라우마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마흔 이후의 삶은 둘로 나뉜다. 지금껏 살던 대로 살면서 우울한 잠에 취해 있거나, 불안하더라도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 한번 성장을 선택하거나. 내면의 초대에 응답하면 치유의 길을 통과해 더 큰 본연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인생의 전반부는 외적 성취를 좇으며 자아의 만족을 최우선 순위에 두기에 내면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하지만 자아 아래에는 무의식을 포함한 더 큰 전체로서의 ‘자기(Self)’가 있으며, 이 자기는 마흔 즈음부터 ‘이게 정말 내가 원한 삶이었나?’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의문은 혼란, 우울, 무기력, 실망 등으로 찾아오지만, 이는 재난이 아니라 더 큰 ‘자기’가 보내는 초대장이다. 이 초대는 의식과 무의식, 빛과 그림자를 모두 포용하는 전일성(wholeness)을 향한 첫걸음이다. 융은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내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껏 나에게 일어난 일, 축적된 낡은 역사는 자기를 만나는 길을 막아선다. 이제 진정한 성장을 이루고 온전한 나를 만나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해야 할 때다. 인생 후반기에는 용기 있는 선택으로 자기 인생의 각본을 스스로 써야 한다. 완벽해지려고 애쓰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자유의 시작이다. 내면에서는 매일 전진과 퇴행이라는 쌍둥이가 대화를 나눈다. 자아는 안전한 자리에 머물라 하지만, 영혼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라며 재촉한다. 저자 제임스 홀리스는 이 갈림길에서 “이 선택이 나를 확장시킬 것인가, 아니면 축소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라고 제안한다. 진정한 성장의 시작은 두려움을 내려놓고 내면에 귀 기울이며 조금 더 큰 신발을 신어보기로 마음먹는 순간 비롯된다. 이 여정을 이어가며 더 풍부한 경험과 더 넓은 시야, 더 깊은 의미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자 의미로 가득한 충만한 삶의 비밀인 것이다. /윤희정기자

2025-03-06

현재의 기원을 미래에 놓는 새로운 철학적 접근

오스트리아의 대표 철학자인 아르멘 아바네시안의 ‘미래’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뒤집고 현재의 기원을 미래에 두는 독특한 시각을 제시한 신간 ‘미래의 형이상학’(한울엠플러스)이 출간됐다. 아바네시안은 이 책에서 미래가 우발적이며, 가능성과 필연성의 양태로 이미 현재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원초적인 과거 역시 우발적인 기원을 허용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미래로부터 현재를 바라보며 문제를 파악하고 도전하며, 어떤 미래를 실천할지 선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기후 위기나 난민 위기는 이미 도래한 미래로서, 인류의 생존과 새로운 지정학 및 정치 주체의 형성 등 해결책에 대한 구상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아바네시안은 현재의 기술적, 사회적, 정치적 변화 속에서 형이상학이라는 철학의 핵심 분야를 통해 미래를 분석하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사유를 제시한다. 형이상학은 존재, 세계, 지식의 근본을 탐구하는 철학의 한 분야다. 아바네시안은 실체와 우유성, 형상과 질료, 진리, 사변 등 형이상학의 중심 개념들을 동시대인들이 마주치는 다양한 문제들에 접목하여 설명한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소셜 미디어, 과학기술, 전쟁, 좌우 갈등, 난민, 기후 위기 등 현대 사회의 주요 이슈들과 이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고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그는 나쁜 형이상학이 항상 나쁜 정치에 봉사한다고 경고하며, 형이상학의 언어를 통해 미래를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철학적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옮긴이(한정라)는 ‘미래의 형이상학’을 통해 아바네시안이 의미하는 ‘미래’가 미리 정해진 고정된 이상향이 아니라, 허구이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예상치 못한 것과 낯선 것에 항상 열려 있는 미래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이 미래는 인식론적으로 계속 탈주하고 형이상학적 사변의 힘으로 끊임없이 구상돼야 하며, 실천을 통해 실재가 되는 허구로서의 미래라고 설명한다. 나아가, 이 미래는 기후, 동물, 해양, 지적 기계와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뿐만 아니라, 비가시적인 난민들, 아직 존재하지 않은 후손들,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것들을 새로운 정치 주체로 참여시키는 미래라고 강조한다. 아바네시안이 제시하는 미래는 다분히 이질적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3-06

‘민족어의 보석’ 조지훈의 시 29년 만에 전집으로 재출간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머언 산이 다가서다” - 조지훈 시 ‘낙화’ 부분 ‘지조와 멋의 시인’ 조지훈(1920∼1968)이 남긴 모든 시 작품들을 망라한 전집이 29년 만에 다시 출간됐다. 조지훈은 ‘승무’, ‘낙화’, ‘고풍의상’, ‘바위송’ 등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과 서정을 담은 여러 시를 발표했다. 박목월·박두진과 함께 시집 ‘청록집’을 발표해 ‘청록파’로 불리기도 했다. 출판사 나남이 펴낸 ‘조지훈 시전집’은 1996년 출간된 ‘조지훈 시 전집’의 30주년, 2000년 제정된 지훈상 25주년을 앞두고 조지훈 시를 온전히 한자리에 모은 신간이다. 시집은 1996년의 ‘조지훈 전집’을 기반으로 조지훈의 모든 시 작품들만을 새롭게 한 권에 엮은 전집이다. 이번 전집은 시집과 발표지 원본, 시인이 남긴 육필원고를 검토해 시의 정본을 만들고, 기존의 한자 표기도 한글로 바꿨다. 지훈상 운영위원장이자 박목월, 윤동주, 이육사 시인의 시집을 엮었던 이남호 고려대 교수의 책임 편집 하에 오늘날의 어법을 존중하면서도 조지훈만의 시적 언어를 보존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조지훈이 생전에 시에 대한 자신의 이론과 감상을 담은 글인 시론 ‘나의 시의 편력’과 새로이 만든 시 연보 등도 수록했다. 한편 조지훈 시인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아버지다. 경북 영양 출신인 조지훈(1920 ~1968)은 한국 현대시의 주류를 완성함으로써 20세기 전반기와 후반기의 한국 문학사에 연속성을 부여해 준 큰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박두진, 박목월 시인과의 3인합동 시집 ‘청록집’을 포함해 총 5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시론집 ‘시의 원리’, 수필집 ‘지조론’ 등을 펴냈다. 그가 남긴 시집들은 모두 민족어의 보석으로 평가되며, 전통적인 운율과 선의 미학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결합한 것이 조지훈 시의 특색이다. 현대의 선비였던 조지훈은 진리와 허위, 정의와 불의를 준엄하게 판별하고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엄격하게 구별했다. 특히 1960년에는 잡지 ‘새벽’에 ‘지조론’이라는 논설을 발표해 당시 정권을 준엄하게 꾸짖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지훈 시인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수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전통과 자연에 대한 서정을 그려냈다. 또한 혼란의 시대에는 첨예한 언어로 현실을 직시하며 역사 속 상실과 고뇌를 생생히 기록했다. 본명은 조동탁(趙東卓)이며 1920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1939년과 1940년에 ‘문장’지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월정사 불교강원 강사를 지냈으며 조선어학회 ‘조선말 큰 사전’ 편찬 위원으로도 일했다. 1948년부터 고려대 문과대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종군 문인으로서 6·25 전쟁을 겪었다. 이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국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고 ‘한용운 전집’ 간행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다양한 저술 및 편찬 활동을 펼쳤다. 조지훈 시인은 한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으며, 그의 시와 수필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윤희정기자

2025-03-05

해양과학기술 연구 성과와 역사 한눈에 본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원장 이희승·KIOST)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원장 허은)이 공동으로 ‘한국해양과학문화사대계’(바다위원정원)를 출간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해양과학의 연구 성과와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학술총서로, 전 10권 중 첫 번째 권인 ‘총론: 한국해양과학문화의 현재와 미래’사진가 먼저 출간됐다. 이번에 출간된 ‘총론’에서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강정극 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장, 김웅서 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장, 고철환 서울대 명예교수, 장순근 극지연구소 명예연구원, 장창익 부경대 명예교수, 이형대 고려대 교수 등 국내 최고의 해양 전문가들이 참여해 해양의 미래, 해양 진출, 해양과학과 기술, 해양자원, 해양환경, 해양영토와 해양정책, 해양산업, 어업과 수산, 해양과 민족문화, 해양사, 해양법, 해양교육과 진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특히, 이 책은 해양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자연과학과 응용과학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해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한국해양과학문화사대계’는 KIOST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됐으며, 앞으로 3년간 해양자원, 해양사, 해양문화, 해양개척, 해양공학, 해양환경, 해운항만, 어업·수산, 해양정책과 관리 등 9개 분야를 순차적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이 책은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에 따른 ‘통합해양’ 선택과목과 개정 교육과정 진로선택 과목인 ‘해양문화와 기술’의 내실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해양학 및 인문사회과학 등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유용한 참고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한국해양과학문화사대계’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이희승 원장은 발간사에서 “오늘날 해양은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환경정의 등 지구촌의 실존적 위협 문제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해양에 대한 우리의 성찰적 인식과 대중적 관심은 부족하며, 어렵게 얻은 해양 관련 성과도 대중에게 쉽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 KIOST 창립 50주년을 맞아, 두 기관이 해양과학과 해양문화를 아우르는 역사적인 학술총서를 발간하게 됐다”라며 “이번 작업은 해양과학기술의 성과와 그 문화적 역량을 되새기며, 국가의 해양정책 수립과 실행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KIOST는 ‘한국해양과학문화사’를 집대성하기 위해 올해부터 3년에 걸쳐 해양자원, 해양사, 해양문화, 해양개척, 해양공학, 해양환경, 해운항만, 어업·수산, 해양정책과 관리 등 9개 세부 분야를 발간할 계획이다. /윤희정기자

2025-02-27

슬픔과 허무함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포항에서 활동 중인 중진 작가인 서숙희(서빈) 시조 시인과 신국향(국향) 화가가 그림에세이집 ‘꽃을 놓고 돌을 쥐다’(도서출판 득수·사진)를 출간했다. 두 작가는 예술적 관능미와 날카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수식어 같은 이름을 지우고 서빈, 국향이라는 예명으로 책을 출간했다. ‘꽃을 놓고 돌을 쥐다’에서 글을 쓴 시인 서빈은 인생 2회차를 사는 이처럼 삶에 관조적이다. 그의 글은 몸부림치듯 현란하기보다는 솔직하며, 독자로 하여금 너무 아파서, 너무 아려서 다음 행간으로 건너가지 못하게 한다. 거기 밑줄을 그으며 오래 생각에 잠기게 하며, 맑은 눈물을 그 문장에 바치고 싶은 밤을 만나게 된다. 또한 이 책을 펼치는 순간 화가 국향의 물감 냄새와 섬세한 붓질로 마음까지 채색된다. 그의 그림에는 일상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것 같은 흔한 여자도 있고 살면서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굵은 감정선들이 난립해있다. 도서출판 득수 측은 “2024년 문학기반시설 상주작가지원사업을 통해 책방 수북의 상주작가로 선정됐던 서숙희 시인이 8달 동안 책방에 있으면서 집필한 결과물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독자들은 살면서 겪은 다양한 슬픔과 그리움, 운명에 관한 단편적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감정의 기복을 아름답게 타 넘을 것이고 그렇게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알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그림에세이집은 1부 가지런한 슬픔을 보았다, 2부 하루를 백 년처럼 떠돌다가 신발도 없이, 3부 운명이라는 말을 더듬어 볼 때가 있다 등 총 3부로 구성됐으며 52편의 글과 35점의 그림을 담았다. “아득히 다 흘러간 줄 알았던 지난날이/가시 같은 아픔으로 되돌아와 그게 사람의 일이라고 너는/내게 가만히 속살댄다.”(p.14) “너무 아파서, 너무 아려서 다음 행간으로 건너가지 못하게 하는 문장./거기 밑줄을 그으며 오래 생각에 잠기게 하는,/맑은 눈물을 그 문장에 바치고 싶은 밤이 있다.”(p.84) 서숙희 시인은 1992년 매일신문과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고, 1996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소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조집 ‘아득한 중심’부터 작년에 출간된 ‘빈’까지 모두 여섯 권의 시조집을 출간했으며 백수문학상, 김상옥시조문학상, 애린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신국향 작가는 영남대학교 대학원 한국회화과를 졸업했으며 오랫동안 순지에 먹과 색채를 사용해서 현실과 이상향의 중간을 찾기 위해 끈질기게 작업하고 있다. 지금까지 11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서울 대구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광개토왕 미술대전 최우수상 수상, 포항 불빛미술대전 등 다수 수상했다. 경상북도 도청 안민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28일까지 갤러리 수북에서 출간기념 원화 전시를 만날 수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2-27

탈북작가 공동 창작집 ‘사람이 운다’ 출간

탈북작가 공동 창작집 ‘사람이 운다’(예옥)가 출간됐다. 이 책은 북한 현실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넓히고, 탈북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자 서울대 국문과 방민호 교수가 2016년부터 추진한‘남북 작가 공동 창작집’, ‘탈북작가 공동 창작집’ 출간 작업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이번 창작집은 (재)통일과 나눔의 후원을 받아 기획됐으며,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김정애, 김유경, 도명학, 설송아, 송시연, 위영금, 이지명 작가 등 7명이 참여해 소설 7편, 시 10편 등 총 17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작품들은 탈북 이전 북한에서의 삶과 탈북 과정, 그리고 한국 정착 이후의 생활 전반을 다루며, 보편적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들은 사랑과 배신, 체제와 예술, 자유와 억압이 교차하는 인간의 갈등과 선택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김정애 작가의 ‘나비’는 고난의 행군 시기, 극심한 기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비와 곤충을 먹으며 연명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도명학 작가의 ‘여행자 집결소’는 길주군의 악명 높은 집결소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와 강제노동,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리얼하게 묘사한다. 송시연 작가의 ‘사람이 운다’는 북한의 정치적 숙청과 연좌제로 인해 한 가정이 겪는 비극을 조명하며, 이지명 작가의 ‘배신’은 세 남녀의 얽힌 인연을 통해 사랑과 배신, 기다림과 현실, 그리고 인간관계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김유경 작가의 ‘마지막 쇼’는 예술을 향한 갈망을 끝까지 놓지 않은 성악가가 마지막 공연에서 최후를 맞이하기까지의 비극적인 운명을 조망한다. 설송아 작가의 ‘내 사랑은 강남스타일’에서는 학생들에게 한국 춤을 가르치다 체포당한 한 여인이 자신을 심문하는 공안조사관이 된 과거 연인과 재회하여 겪은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젊은 세대가 겪는 문화적 갈망과 체제의 억압, 그리고 사랑과 자유를 향한 용기 있는 선택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위영금 시인의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에는 분단으로 인해 생이별을 겪은 이들의 슬픔과 재회에 대한 간절한 바람과 같은 길고도 복잡한 마음이, 간명하게 압축된 시어들을 통해 제시되는 독특한 미학이 드러난다. 예옥 관계자는 “탈북작가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보다 입체적인 ‘탈북민’이라는 존재를 만날 수 있다. 또한, 탈북작가들의 언어적 자원을 통해 변화하는 북한 사회의 현재적 상황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며 “그들의 서사는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2-26

사랑과 고통, 삶에 대한 두 철학자의 대답은

최근 한국에서는 열풍이라 불릴 만큼 쇼펜하우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니체 역시 서양 철학자 중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사랑받는 인물이다. ‘쇼펜하우어가 묻고 니체가 답하다’(21세기북스)는 고통의 문제와 직접 대결한 두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사상과 통찰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철학자의 저서는 주로 명언을 모아 전달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신간은 잘못된 해석을 거부하고 두 철학자의 철학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룬다. 쇼펜하우어가 당대 지식 체계를 거부하며 자신의 염세주의를 어떻게 주장했는지, 니체가 100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켰는지 정확하게 짚어낸다. 저자인 크리스토퍼 재너웨이 영국 사우샘프턴대 철학과 교수는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이 그동안 너무 쉽게 다가온 것은 누군가 그들의 사유를 납작하게 찍어 눌러 판매하기 쉽게 만든 결과라고 말한다. 그는 니체가 쇼펜하우어와 타협했던 문제들, 예컨대 신의 죽음, 존재의 의미, 고통, 연민, 의지, 기독교적 가치, 삶의 긍정이나 부정 등이 니체 철학에서 가장 성과 있고 핵심적인 측면이자, 철학사에서 쇼펜하우어가 가장 강력하게 참여하는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이 책이 듣기 좋은 문장만 추려 전달하는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유의지, 사랑, 고통의 의미 등에 대한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답이 이 책에 수록돼 있다. 독자는 이에 동의하거나 반대하고, 반대한다면 어떤 근거로 반대할지 생각하게 된다. 저자 크리스토퍼 재너웨이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정통한 영국의 철학자로서 이들에 관한 연구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명성을 갖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두 사상가를 한데 묶어 논하는데, 이는 니체가 쇼펜하우어와 타협해야 했던 문제들이 니체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철학사에서 쇼펜하우어가 가장 강력하게 참여하는 영역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책은 쇼펜하우어 철학 전체의 중심 개념인 ‘의지’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한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행복이 좌절되거나 실현 불가능해지는 많은 상황을 묘사하며, 의지가 우리의 의식적인 삶에 침투해 훼방을 놓는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는 오직 관점적인 앎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이 단순히 학문적 연구 대상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불안과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철학자의 유명한 문장만을 나열하는 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존의 철학 도서들의 방식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또한 철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개념을 풀어서 설명한다. 특히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와 니체의 실천적 철학을 단순히 대립적인 개념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두 철학자가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한다. 쇼펜하우어가 인간의 욕망과 고통을 냉철하게 분석했다면, 니체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저자는 이런 분석을 통해 철학이 단순히 비관적이거나 낙관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와 니체라는 두 사상가를 한데 묶어 논하는 것은 니체가 쇼펜하우어와 타협해야 했던 문제들, 즉 신의 죽음, 존재의 의미, 고통, 연민, 의지, 기독교적 가치, 삶의 긍정이나 부정 등이 니체 철학에서 가장 성과 있고 핵심적인 측면이자, 철학사에서 쇼펜하우어가 가장 강력하게 참여하는 영역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P. 14)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2-20

스타트업 흥망성쇠 ‘인간관계’에 달렸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성공 여부는 기술, 시장 적합성, 자본이라는 3가지 요소에 따라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버드 경영대학원과 매킨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타트업의 65%는 인간관계 때문에 실패한다. 사람 간의 문제는 신제품 개발이나 자본 유치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뒷전에 물러나 있다가 서서히 조직을 갉아 먹곤 한다. 문제가 눈에 보일 정도로 커졌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모닥불 타임’(원제: The Bonfire Moment·김영사)의 저자 마틴 곤잘레스와 조시 옐린은 구글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구글 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의 책임자로서 전 세계 수많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강의와 코칭을 진행해왔다. 책은 9년 동안 70여 개국의 스타트업 팀에서 실행하고 입증한 1일 워크숍 ‘모닥불 타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마틴 곤잘레스는 구글 ‘유능한 창업자 프로젝트(Effective Founders Project)’의 창시자로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성공하는 이유를 밝히고 그 성공 공식을 전 세계에 알렸다. 70여 개국에서 수천 명의 기술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리더십을 가르쳤으며 현재 구글에서 조직 및 인재 개발을 책임지고 있다. 경영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2024년 세계 최고의 경영사상가 50인에게 부여하는 상인 Thinkers50 Radar Award를 수상했다. 조시 옐린은 구글 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의 공동 창립자. 구글 액셀러레이터 팀에서 근무하는 동안 전 세계 300개 이상의 스타트업과 긴밀히 협력하며 구글 액셀러레이터가 글로벌 8개 지점으로 확장하는 데 일조했다. 세계 최고의 스타트업 사이에서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2015년 마틴과 함께 구글의 ‘유능한 창업자 프로젝트’를 출범시키며 팀 내 인간관계 개선을 위한 1일 워크숍 ‘모닥불 타임(Bonfire Moment)’을 개발했다. 현재 구글 딥마인드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능력은 있지만 독단적인 리더, 포용력은 있지만 결단력이 없는 리더 둘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전자의 리더를 채용하고 싶어 하는 반면, 후자의 리더 밑에서 일하고자 한다. 이 역설은 인간관계가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 보여준다. 이 책은 1부에서 조직이 겪는 인간관계의 함정을 4가지로 분류해 사람 문제가 얼마나 일반적인지를 설명한다. 대표적인 인간관계의 4가지 함정은 인간관계가 더 긴급해 보이는 다른 문제에 밀려버린다는 속도의 함정, 집단사고로 인한 이너서클의 함정, 위계질서 등 기존 관행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이단아적 마음가짐의 함정, 창업자의 자신감이 지나치게 많거나 부족하거나 혹은 양쪽을 오가며 생기는 자신감의 함정을 일컫는다. 두 저자가 이러한 인간관계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개발한 것이 ‘모닥불 타임’이라는 워크숍이다. 2부부터는 모닥불 타임의 실제 프로세스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모닥불 타임의 핵심은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팀원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전체 일정은 4타임으로 나뉘며, 현실 인식에서 문제 해결로 나아간다. △1타임: 냉엄한 현실을 직시한다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다. 모든 참가자는 자기 평가를 시작하고, 다른 리더들의 데이터와 비교하여 자신의 성과를 측정한다. 마지막으로 동료 코칭을 통해 문제의 해결책을 논의한다. △2타임: 숨겨진 역학을 인식한다 팀원들의 개인적 동기, 업무 스타일, 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각자 자신의 사용설명서와 같은 유저 가이드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 간의 공통점을 찾는다. △3타임: 가면을 벗는다 하루 중 가장 꾸밈없고 거침없는 시간이다. ‘가식 고백 모임’이라 불리는 주요 활동을 통해 각자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그간 숨겨왔던 자기 회의와 불만을 드러낸다. △4타임: 암묵적 문제를 해결한다 공통의 해결책을 만드는 시간이다. 스타트업이 흔히 직면하는 갈등의 20가지 요인을 살펴보고 팀에서 즉시 대처해야 할 3가지 문제를 투표로 선정한 후,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다. 모닥불 타임은 리더로서, 또는 팀원으로서 숨기고 있던 불만과 어려움을 토로하고 해결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한 번의 워크숍으로 모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책은 워크숍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는 물론 모닥불 타임을 이상적인 루틴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까지 제시한다. 어떤 조직도 인간관계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미뤄두지 말고 바로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이 책은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조직 내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밝혀내고 효과가 입증된 워크숍을 통해 실제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리더를 위한 지침서다. “겸손한 리더와 자신감이 과하고 나르시시스트적 성향이 강한 리더를 비교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겸손한 리더들이 성과 면에서 명확한 우위를 보였다. 그들의 팀은 보다 협력적이고, 정보 공유에 한층 적극적이었다. 또한 공동 결정을 좀 더 잘 내렸고, 개인적 성공보다 집단적 성공에 열성적이었다. 다른 한편, 겸손과 높은 자신감을 겸비한 리더는 겸손하지만 자신감이 부족한 리더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였다.”-188, 189p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2-20

장은재 작가 시·수필집 ‘綠花, 푸른 꽃’

본지에 ‘명품 노거수와 숲 탐방’을 연재하고 있는 장은재 작가가 자연과 생명의 조화를 노래하는 시수필집을 출간하며 독자들과 새롭게 만났다. 수헌(須軒) 장은재의 신간 ‘綠花(녹화), 푸른 꽃’은 이전 책 ‘노거수 물음에 답하다’의 후속편 격이다. 나무와 숲, 산과 생명의 터전인 자연을 노래하며, 그 속에서 인간이 공존해야 할 가치와 의미를 탐색하는 ‘산림문학’ 작품으로 읽힌다. 장 작가는 이학 박사이자 수필가로 자연과 환경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탐방하며 얻은 통찰을 다양한 저서와 신문 연재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왔다. 본지에 ‘명품 노거수와 숲 탐방’을 연재하고 있는 장은재 작가. 이번 신간은 그의 여섯 번째 시수필집으로, 나무, 숲, 산, 생명, 자연이라는 다섯 개의 주제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글에는 저자가 직접 경험한 자연의 모습과 그 속에서 깨달은 삶의 철학이 녹아있다. 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숲과 산을 지나, 생명과 자연이라는 커다란 순환으로 이어지며, 독자들에게 자연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우리 삶의 본질적 터전임을 일깨운다. 특히, 이번 책에는 관련 사진과 음악 QR코드가 삽입돼 있어 독자들이 글을 읽으며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첫 번째 장인 ‘나무’ 편에서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의 선율이 소개되며, 독자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장은재 작가는 “자연은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우리가 자연을 이해하고 보호할 때 비로소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하다”며 “이번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자연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생태 보전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2-18

‘아는 만큼 보인다’ 이창민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

유명 관광지 앞에서 인증 사진만 얼른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도장 깨기식 관광의 시대가 지나간 지 한참이다. 이제 사람들은 알려지지 않은 작은 미술관에서 호젓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낯선 도시의 특색 있는 이벤트에 적극 참여하기도 하며 자신만의 여행을 만들어 간다. 30여 년 동안 70개국 이상, 270여 도시를 방문하고 경험하고 연구한 이창민 유럽도시문화공유연구소장이 밀도 높은 도시 이야기를 열 권의 책으로 정리한 ‘도시의 얼굴’ 시리즈(도서출판 비엠케이)를 출간했다. ‘도시의 얼굴’ 시리즈는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도시를 다시 한번 주목하게 만드는 책으로, 다양한 해외 도시 경험을 가진 저자가 각 도시의 다양한 면모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그 도시만의 고유한 얼굴을 보여준다. 시리즈는 뉴욕, 파리, 런던, 도쿄, 샌프란시스코, 베를린·함부르크, 밀라노·베네치아, 암스테르담·로테르담 그리고 스위스, 스코틀랜드를 각각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단순한 관광을 넘어 도시의 다양한 이면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어떤 책에서도 만날 수 없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저자인 이창민 소장은 30년 넘게 세계 여러나라 도시들의 개발 및 재생 사례를 면밀히 조사하며 도시 경제와 부동산 분야를 연구해 왔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도시가 처음 태동한 이래 현재 모습을 갖기까지의 역사를 간략하고 알기 쉽게 정리했으며, 문학과 예술, 음식과 패션 등 도시가 만들어 온 문화를 소개한다. 또한, 도시의 모습과 성격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켜 온 주요 랜드마크와 한 번은 꼭 방문하기를 추천하는 명소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주요 백화점과 쇼핑센터의 특징을 정리하고 도움이 될 만한 쇼핑 팁도 추가했다. △ 도시의 역사, 경제, 문화, 랜드마크, 주요 명소, 쇼핑 스토리까지 한 권에 담다 한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담았다. 먼저 도시가 속한 국가의 간략한 역사와 개황을 살펴보고 행정구역과 경제적, 문화적 특징을 알아본다. 그리고 도시가 처음 태동한 이래 현재 모습을 갖기까지의 역사를 간략하고 알기 쉽게 정리한다. 문학과 예술, 음식과 패션 등 도시가 만들어 온 문화를 소개하고, 도시의 모습과 성격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켜 온 주요 랜드마크와 한 번은 꼭 방문하기를 추천하는 명소를 조목조목 친절하게 짚어 준다. 주요 백화점과 쇼핑센터의 특징을 정리하고 도움이 될 만한 쇼핑 팁도 추가했다. △ 도시재생과 개발의 역사를 상세하게 서술한 획기적인 책 1600년대 네덜란드가 아메리카 원주민으로부터 사들인 땅 맨해튼은 뉴 암스테르담으로 불렸으나 이후 영국에 흡수돼 오늘날의 뉴욕이 됐다. 뉴욕은 빠르게 발전을 거듭하며 남북으로 12개의 애비뉴와 동서로 155개의 스트리트로 구성된 격자형 도시 블록인 그리드 시스템을 갖추게 됐고, 용도지역 지구제인 조닝 코드 등을 통해 개발의 폭을 넓혔다. 뉴욕의 도시재생과 개발의 역사를 상세하게 서술한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 저자는 이외에도 런던의 ‘런던 플랜 2021’, 파리의 ‘일드 프랑스 2030’, 도쿄의 최신 복합 개발 프로젝트, 밀라노 2030 PGT까지 각 도시가 최근 거쳐 왔거나 진행 중인 주요 개발 프로젝트를 상세하게 기록했다. △ 여행이 교양이 되도록 각종 미디어 매체의 발달 덕분에 수많은 자료를 앉은 자리에서 취합할 수 있는 시대다. 동시에 정보를 잘 모으는 것보다 잘 버리고 고르는 것이 미덕이 됐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이야기를 엮을 것이냐가 중요한 이유다. ‘도시의 얼굴’ 시리즈는 철학과 중심을 가지고 잘 정리한 정보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준다. 도시를 방문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미리 알아 두고, 도시를 방문해서 반드시 봐야 할 것을 보고 온다면 여행은 책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화려한 이미지가 담긴 간편한 핸디북 책에는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 도시에서 보내는 저자가 직접 찍은 생생한 사진을 보기 좋게 배치했다. 또한 적절한 인포그래픽을 사용해서 각 나라와 도시를 한눈에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책의 크기 역시 여행할 때 들고 다니기에 부담 없는 고려했다. 해외여행을 할 때 가까운 곳에 두고 수시로 펼쳐 본다면 즐거운 여행길을 함께하는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이창민 소장은 도시 개발 및 재생 연구자이자 한국부동산개발협회 최고경영자과정(ARP)과 차세대 디벨로퍼 과정(ARPY) 주임교수다. 그동안 ‘스토리텔링을 통한 공간의 가치’, ‘도시의 얼굴’, ‘사유하는 스위스’, ‘해외 인턴 어디까지 알고 있니’ 등을 집필했다. 현재 (사)공공협력원재단 원장과 이창민유럽도시문화공유연구소를 운영하며 지속 가능한 지역 개발, 글로벌 인재 양성, 나눔 실천,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2-17

치밀한 고증으로 그려낸 연암 박지원의 마지막 생애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이자 ‘열하일기’와 ‘허생전’의 저자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1737∼1805)의 마지막 생애와 그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역사소설 ‘안의, 별사’(파람북)가 출간됐다. 이 소설은 ‘안의에서 이별하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연암이 1792년부터 4년 2개월 동안 안의현(현재의 경남 함양군 안의면) 현감을 지냈던 시기를 배경으로, 가상의 여성 이은용과의 만남과 이별을 그린다. 연암은 아내와 사별한 후였고, 이은용은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과 사별해 수절하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작품은 두 주인공이 번갈아 화자가 돼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소설은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에 맞게 두 사람의 관계나 애정을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만 간직한 채 이별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제목 ‘별사’(헤어지는 이야기)의 의미를 잘 살린다. 저자인 정길연 작가는 연암이 쓴 글과 연암에 대한 연구서들을 찾아 읽다가 소설을 구상했으며, 8년 만에 집필을 끝냈다고 밝혔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연암에 대한 일종의 연모의 정으로부터 시작되고 마무리된 작품”이라며 “위대한 문사에 대한 거대한 사심으로 올곧게 집요하지만, 플롯을 쌓아 올리면서는 치밀한 문헌 고증으로 객관성을 놓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소설은 연암의 혁신과 애민 정신, 절제와 수양의 자세를 치밀한 문헌 고증을 통해 객관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철학적인 고민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특히, 불의하고 무도한 시대에 맞서는 그의 도저하고 돌올한 정신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땅덩어리가 참말 둥글다면 이 강물도 공처럼 굴러 굴러 한곳에 가 모이지 않을까요. 엉터리없는 말인 줄 알지만, 그렇게 믿으면 그런 것이지요. 음양의 인연만 인연이겠는지요. (중략) 저 글씨들처럼 이전의 저를 지우려 합니다. 비웠으니, 비었으니, 다시금 새로이 채우며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지요. 그리하려고요. 모쪼록 그리하려고요.”(559쪽) 연암이 말년에 안의현에 부임했다는 사실은 그의 대표작들에 비하면 덜 알려져 있다. 연암의 비분강개함과 우울증 역시 그의 골계와 정신에 비하면 덜 알려진 개성이다. 조선 후기 사회의 한계에 대한 연암의 절망감을 차분히 파헤치면서도, 그가 남긴 안의현에서의 선정을 빠짐없이 디테일하게 조명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2-13

광복 80주년 맞아 되새기는 ‘신채호 정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 언론인인 단재 신채호(1880∼1936)의 삶과 사상을 다룬 실록 소설 ‘네 칼이 센가 내 칼이 센가’(달빛서가)가 출간됐다. 이 책은 90%의 사실과 10%의 허구를 섞어 신채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저자인 역사학자이자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박사는 2005년 ‘단재 신채호 평전’, 1995년 아홉 권짜리 ‘단재 신채호 전집’을 펴냈지만, 여전히 담지 못한 사연을 다루고 싶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러시아, 만주, 중국, 대만을 거치는 긴 망명 기간과 8년여의 혹독한 감옥살이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특히, 을사늑약 체결 당시의 울분부터 조선 민중 계몽을 위한 언론 활동, 망명 이후 중국과 러시아, 만주 등지에서 전개한 독립운동까지 신채호의 중요한 사건들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신채호는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이지만 투철한 언론인이기도 했다. 그의 글은 오늘날에도 사회적 부조리와 지식인의 역할을 돌아보게 하며, 역사의식을 북돋우고 현대 사회의 지식인과 언론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출간된 이 책은 신채호가 추구했던 ‘진리’와 ‘진실’의 가치를 일깨운다. 신채호의 선비정신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깨닫게 하면서 단재 정신이 왜 필요한지, 왜 시대정신이 돼야 하는지를 각인 시킨다. 신채호가 쓴 소설 ‘꿈하늘’의 한 부분을 제목으로 가져온 이 책은 신채호의 삶을 대부분 사실에 근거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소설 속 그의 삶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극적이다. 신채호가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있을 때 안중근을 구출하려 했다는 이야기는 저자의 바람을 담은 허구다. 저자는 “한 개인의 역량으로는 도저히 버티기조차 힘겨웠던 망국의 시대에,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청고한 기품과 만고의 기상을 지녔던 단재 선생의 선비정신의 근원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것이 “이 실록 소설이 찾고자 하는 방향이고 목적지”라고 말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2-13

‘신서정파’ 장석남 시인의 ‘벼락 같은 울림’

섬세한 감성과 감각적인 시어로 서정시의 지평을 넓혀온 장석남(60·한양여대 교수) 시인의 아홉 번째 신작 시집 ‘내가 사랑한 거짓말’(창비)이 출간됐다. 지난 2017년 편운문학상·지훈상·우현예술상 수상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이후 8년 만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오랜 정진을 통해 도달한 시경(詩境)을 활달하게 전개하는 원숙함과 깊고 투명한 철학적 사유가 빛나는 74편의 시를 선보인다. 198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장 시인은 그동안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주요 시문학상을 받으며 주목받아왔다. 전통 서정에 바탕을 두면서도 참신한 감각을 빚어내는 ‘신서정파’의 대표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시집에서는 자연을 향한 진득한 응시가 자아와 본연의 인간에 대한 웅숭깊은 탐색으로 아득하게 이어진다. 작금의 현실을 예견한 듯한 풍자와 알레고리가 서정에 바탕을 둔 시인의 고유한 개성과 정교하게 맞물려 독자들에게 벼락같은 울림을 선사한다. 자연과 교감하는 아름다운 서정의 풍경을 그려내는 장석남의 시는 이제 무심지경에 이른 듯하다. “삼월 마지막 날이 사월 첫날을 맞아들이는 듯한 순전한”(‘느티’) 마음이 피어나고, 아침 해가 “굶주린 호랑이처럼 쏟아져 들”(‘대숲 아침 해’)어오는 고즈넉한 풍경 속에는 생명의 신운(神韻)이 생동한다. 시인의 시선에 담긴 풍경은 ‘물에 심은 노래’처럼 은은하고 아름답다. ‘언덕’과 ‘느티’, 그리고 ‘노을’을 비롯한 1부의 시에는 오랜 사유 속에서 찬란하게 영근 시인의 사유가 편편이 녹아 있다. 한편, 시인은 또 “살아온 내력의 울음 섞인 이야기”(‘느티’)를 담담하게 노래한다. 세대를 아우르는 기억과 해후하며 삶의 이력을 곰곰이 되짚는 이러한 시편들에서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순간을 감각적으로 포착해낸 시인의 미학적 성취가 눈부시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오늘날의 현실을 내다본 듯한 날선 현실 인식과 예리한 풍자가 돋보이는 ‘정치시’다. “유골함을 받아 안듯/오는, 봄/이 언짢은 온기로 시작하는 ‘서울, 2023, 봄’은 시참(詩讖)으로 전율이 일 만큼 오싹하다. 진실을 가려내는 법정을 거짓과 조작의 마술을 상연하는 극장에 비유한 ‘마술 극장’ 연작과 가전체를 새로운 시법으로 패러디한 ‘법의 자서전’은 풍자시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득과 기득을 좋아하고 양심 같은 건 우습게 여기는 법부의 허울 좋은 법을 작심하듯 신랄하게 비판한다. 산송장들을 만드느라 관청의 서류마다 죄가 난무하고, 거짓들이 끝도 없이 거짓들을 모으는 부조리한 현실을 직시하며 시인은 “파아란 입술을 달싹”이며 “김수영의 방 말고 혁명”을, “최제우의 개벽 자유 자유 자유”(‘대기실’)를 외친다. 탁월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자아와 인간에 대한 질문을 거듭해온 시인은 이제 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선다. 폐허가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의문과 숙제를/평생 풀지 못할까”(‘숙제’) 두려워하면서도 “무섭도록 서러운 노래도 좀 부르면서”, “사람 사는 땅”(‘쾌청’)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사랑이 보이는 그 긴 언덕”(‘언덕’)을 느릿하고 “희끗한 걸음”(‘다시 언덕’)으로 넘어오는 한 사람, 시인의 모습이 숙연하다. 고유한 서정성과 더불어 ‘시’로써 더 나은 현실로 나아가겠다는 시인의 굳건한 믿음이 수 놓인 이번 시집은, 현실에 발 디딘 굳건한 시의 소리에 목마른 독자들의 갈증을 단숨에 해소해줄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2-13

세상을 설명하는 흥미로운 수학 이야기

신간 ‘수학의 발견 수학의 발명’(베누스)은 수학의 역사와 철학을 아우르며, 일상에서 접하는 수학적 개념을 흥미롭게 풀어내는 책이다. 수학이 발견인지 발명인지, 수학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수학이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가 되는 이유를 다양한 예시로 설명한다. 저자 앤 루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뉴넘 칼리지에서 왕립 문학 기금 특별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며, 영국 왕립 문학 기금 수혜 작가이자 영국 학교 도서관 협회 정보 도서상 수상자다. 그는 이 책에서 부제 ‘세상을 설명하는 26가지 수학 이야기’로 고대 수 체계부터 팬데믹 모델링, 외계 생명체와의 교신 가능성, 생일 역설 등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다. 책은 수학이 어렵고 먼 학문이 아닌, 일상 속 필수 도구임을 일깨우며 수학에 대한 편견을 바꾼다. 독자는 이를 통해 수학적 사고의 힘을 얻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작가는 수학의 원리를 쉽고 생동감 있게 풀어내면서 수학이 우리 일상과 우주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 철학적이고 실질적으로 탐구한다. 바빌로니아인의 60진법 체계부터 팬데믹 확산 분석, 외계 생명체와의 교신 가능성, 생일 역설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수학이 단순한 계산을 넘어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얼마나 유용한지를 보여준다. 1장 ‘수학은 발견되었나, 발명되었나’에서는 수학의 기원에 대한 논쟁을 다룬다. 피타고라스와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은 수학이 인간의 이성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진리라고 본 반면, 수학이 발명됐다고 보는 입장은 수학을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언어로 본다. 이 두 관점은 수학의 현실 세계 적용성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6장 ‘바빌로니아인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에서는 바빌로니아의 수 체계인 60진법을 소개한다. 이 수 체계는 오늘날 시간과 각도 단위 체계에 남아 있으며, 우주의 거리를 측정하는 데도 쓰인다. 이를 통해 수학적 상상력이 시간을 초월해 현대 과학 기술에 미친 영향을 탐구한다. 9장 ‘통계는 순 엉터리에 사기일까’에서는 숫자 뒤에 숨은 진실을 파악하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인지 오류는 통계가 판단을 왜곡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인, 광고주, 언론인이 통계를 조작하는 방법도 다룬다. 17장 ‘팬데믹, 우리는 이대로 죽는 걸까’에서는 팬데믹의 확산과 종식을 R0(기초감염재생산수) 값의 변화로 분석한다. R0 값은 질병의 전염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으로서 전염병의 전파와 대응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준다. 18장 ‘외계 생명체는 과연 존재할까’에서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통해 은하계 내 지적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추정한다. 수학이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21장 ‘두 사람이 같은 생일일 확률은 얼마일까’에서는 생일 역설을 통해 직관을 넘어선 확률의 세계를 다룬다. 30명이 있는 공간에서 두 명 이상의 생일이 같을 확률이 50퍼센트를 넘는다는 사실을 통해 확률의 세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한다. 이 책은 수학의 본질을 탐구하는 동시에 수학적 사고의 세계를 열어준다. 복잡한 원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풀어내는 저자의 스토리텔링은 수학을 어렵게 느끼는 독자에게도 수학의 매력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2025-02-06

“관찰하고 그리다” 새로운 시각으로 본 자연

생물학자 마거릿 코훈과 환경 예술가 악셀 이월드가 함께 쓴 ‘식물을 보는 새로운 눈’(안그라픽스)은 자연을 관찰하고 그리는 연습을 통해 사계절을 여행하면서, 자연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예술과 과학과 철학이 한데 어우러져 있지만, 쉬운 말로 쓰인 글과 일러스트레이션을 함께 엮어 책 속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법’을 익힐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예술에서 과학으로 전환함으로써 또는 과학을 할 때 예술을 사용함으로써’ 식물을 관찰하는 방법을 발전시킨 작가이자 자연과학자였던 괴테의 총체적인 접근 방식을 기반으로 하며, 이를 통해 예술로서의 과학을 실천하는 새로운 방법의 문을 열어주고자 한다. 우리는 서로를 보완하는 두 활동, 즉 자연을 관찰하는 활동과 그리기라는 예술 활동을 통해 사물을 깊이 있게 인식할 수 있다. 책 속에는 식물에 관한 상세한 과학적 사실과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통찰을 비롯해 씨앗부터 새싹, 꽃과 열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물을 아름답게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이 어우러져 있다. 저자 마거릿 커훈은 이 책의 효용이 ‘적극적인 참여’에 있으며 이 책은 워크북(실습서)임을 밝힌다. 책 곳곳에 식물을 관찰하고 그리는 방법뿐 아니라 흐름꼴이나 빛과 어둠 등을 그리는 방법에 관한 유용한 제안이 있어 독자들은 직접 그리기 연습을 해볼 수 있다. 책의 계절은 감자를 캘 무렵인 늦가을 혹은 초겨울에서 시작하며, 한겨울과 봄과 여름을 지나 탐스럽게 열린 열매를 수확하는 가을로 돌아와 끝난다. 계절의 순서를 따르지만 읽는 순서는 고정돼 있지 않다. 지금 계절에 맞춰서 읽어도 되고, 처음부터 읽은 뒤 지금 계절에 맞는 장으로 돌아와도 된다. 마지막에는 식물표본집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흥미로운 부록과 옮긴이 이정국 번역가의 글이 수록돼 있다. 이 책과 비슷한 과정을 수행한 적 있는 옮긴이는 막연하고 지루한 느낌과 씨름하다가 봉오리가 터진 순간의 충격과 큰 울림을 글로 공유한다. 저자들이 여는 글에서 말한다. “만일 이 책으로 인해 독자들 마음 안에 살아 있는 식물의 세계를 향한 경이로움과 적극적인 관심, 그리고 그 성장과 발전에 창조적으로 참여하는 마음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새로운 인식 기관을 위한 씨앗, 즉 ‘식물을 보는 새로운 눈’으로 성장할 씨앗 하나를 독자들에게 심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2-06

AI가 탄생하기까지의 다섯 번의 혁신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AI 기업가인 맥스 베넷은 인간의 지능 너머 AI가 탄생할 수 있었던 비밀은 인간 계통의 뇌에서 일어난 다섯 번의 혁신에 있다고 말한다. 그의 저서 ‘지능의 기원’(더퀘스트)은 뇌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 인간의 본질을 알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AI 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과 미래의 변화를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베넷은 인간의 지능이 출현하기까지 그리고 인간이 새로운 지능을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전체를 요약하면 다섯 번의 혁신이 누적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진화적 관점과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통합해 새로운 통찰을 전하며, 뇌과학의 현주소를 만나는 최적의 안내서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는 최초의 지능이 탄생한 순간부터 인간의 지능이 출현하기까지, 그리고 인간이 새로운 지능을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전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조종(Steering): 5억5000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은 뇌를 갖춘 좌우대칭동물로 바뀌면서 조종을 통한 탐색이라는 혁신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신경학적 변화를 이뤘다. △강화(Reinforcing): 약 5억 년 전 등장한 물고기처럼 생긴 척추동물은 강화학습이 가능해지면서 미래의 보상을 예측하고 호기심이 생겼으며 패턴을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시뮬레이션(Simulating): 초기 포유류에서 새롭게 등장한 뇌 구조인 새겉질 중 감각새겉질이 바깥세상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이마엽새겉질이 자기 모델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만든 결과 초기 포유류는 대리 시행착오, 반사실적 학습, 일화기억 등을 통해 포식자를 따돌리며 시뮬레이션을 무기화해갔다. △정신화(Mentalizing): 초기 영장류에게는 마음이론, 모방학습, 미래의 필요예측이라는 큰 세 가지 축이 등장하면서 성공적으로 과일을 채집하면서도 정치공작을 벌이는 능력을 동시에 촉발시켰다. △언어(Language): 초기 인류는 아프리카 사바나 숲이 사라지면서 도구를 만들고, 육식으로 생존하는 생태적 지위로 내몰렸다. 이런 생태적 지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세대를 거쳐 도구 사용법을 정확하게 전파할 수 있어야 했고, 그 결과 원시언어가 등장했다. 이 가능성을 위해 뇌의 오래된 구조물들이 재조정되면서 뒷담화, 이타주의, 처벌의 되먹임고리를 바탕으로 한 퍼펙트 스톰이 야기됐다. 이 다섯 번의 혁신이 이 책을 구성하는 지도이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험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각각의 혁신은 뇌가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거나 강력한 되먹임고리에 갇혔던 시기에 등장해 동물들을 새로운 지적 능력의 포트폴리오로 무장시켰다. ‘지능의 기원’은 인간 지능의 진화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미래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에 대한 비전도 제시한다. 저자인 베넷은 언어모델들이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받으며 크기를 키워나가더라도, 외부 세계나 마음에 대한 내부 모델을 통합하지 않으면 거대한 언어모델(LLM)이 인간의 지능에 대한 본질적인 무언가를 담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한, 저자는 AI와 인간의 상호작용이 완전해지면 뇌의 여섯 번째 진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인공 초지능’이라고 불리며,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디지털 매체에서 새로운 형태의 지능을 창조하는 단계로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공 초지능의 발전 속도와 방향은 기존의 진화 과정과는 다를 것이며, 심지어 기존의 진화체계 자체도 폐기될 가능성이 있다. 즉, 인공 초지능은 기존의 패턴을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진화를 이뤄낼 것이라는 의미다. /윤희정기자

2025-02-06

짐 로저스가 전하는‘글로벌 투자법’

“지금껏 보지 못했던 최악의 경기 침체에 대비해야 한다.”(짐 로저스) 워렌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자로 손꼽히는 짐 로저스사진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신간 ‘2030년 돈의 세계지도’(알파미디어)를 출간했다. 짐 로저스는 이 책에서 향후 10년간 쇠락할 나라로 한국을 꼽았으며, 성장할 나라로는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등을 지목했다. 세계 경제는 지금 대전환기에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미중 무역 갈등, 그리고 오는 20일 트럼프 2기 출범은 이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것이다. 짐 로저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10년 넘게 지속된 글로벌 호황이 끝나가며, 최악의 경기 침체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역사적 패턴과 현재의 경제 데이터를 근거로 미국, 일본, EU 같은 전통적 경제 강국의 쇠퇴를 예견하며,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등 새로운 경제 성장 지역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책은 단순한 공포나 경고에 머무르지 않는다. 저자는 각국의 경제적 조건과 지도력, 인구 구성 등을 분석하며 미래를 대비할 구체적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생존 방법은 역사를 통해 배우고, 흐름을 읽으며,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짐 로저스에 대한 시각은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그가 지나치게 비관적이며, 또 한물간 인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과거 닷컴 버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트럼프 당선 등 그의 예측은 큰 흐름을 읽는 능력을 입증한 바 있다. 이번 책에서 그는 단순한 투자 전략 제시를 넘어, 세계정세를 통찰하며 돈의 흐름을 읽는 법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그는 역사적 패턴과 현재의 경제 데이터를 근거로 미국, 일본, EU 같은 전통적 경제 강국의 쇠퇴를 예견하며,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등 새로운 경제 성장 지역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10년간 4200%라는 놀라운 수익률을 기록하며 ‘세계 3대 투자자’로 불려온 짐 로저스. 그는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세계를 뒤흔들었던 경제 위기를 정확히 예견해 시장의 주목을 받아왔다. 세계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우크라이나 전쟁, 대만 분쟁 등 혼란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짐 로저스는 이 책에서 당황할 필요가 없으며, 역사를 통해 배우고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키우면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짐 로저스는 성장하는 국가들의 공통점으로 일본의 경우처럼 낮은 가격과 극적인 변화를 꼽는다. 차세대 패권국으로는 중국을 꼽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기간 산업인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 개방적인 정책으로 관광산업의 중심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또한 우즈베키스탄, 르완다, 베트남, 콜롬비아 등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향후 10년 이내에 저무는 나라로 분류됐다. 하지만 짐 로저스는 남북 사이의 국경이 열리고 통일이 실현되면 한국이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관측하기도 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1-30

급속한 기술 발전에 대처할 교육의 역할은

많은 이들이 현대 경제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불평등을 꼽는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이후 그 이전에 비해 불평등이 심화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난 30~40년간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원인은 무엇인가? 202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와 로렌스 카츠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자의 숙련을 중시하는(숙련 수요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숙련 기술 보유자(고학력자)들의 소득 비중이 늘어나고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통념을 반박한다. 이들에 따르면 오히려 숙련 기술 보유자의 공급, 즉 교육 측면이 약화됐던 것이 미국의 불평등 확대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들은 ‘교육과 기술의 경주’(생각의힘)에서 불평등의 장기적인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간단하면서도 유용한 ‘교육과 기술의 경주(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RBET)’라는 개념 체계를 제시한다. 이 책의 세 가지 키워드인 기술 변화, 교육, 불평등은 일종의 ‘경주’에서 서로 복잡하게 관련을 맺어왔다. 20세기의 첫 세 분기 동안에는 교육의 진전으로 인한 숙련 노동자의 공급 증가가 기술 변화로 인한 숙련 노동자의 수요 증가를 능가했다. 그리고 실질소득이 증가하는 동시에 불평등은 감소했다. 하지만 20세기의 마지막 20여 년 동안에는 반대의 일이 벌어졌고 불평등이 빠르게 증가했다. 불평등의 급격한 증가는 테크놀로지 요인의 결과라기보다 대체로 교육 성장의 둔화 때문이었다. 이 책 1부 ‘경제성장과 분배’에서는 20세기 미국의 경제성장 배경에 교육을 통한 인적자본 향상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 축소되던 경제 격차는 1980년대부터 확대되기 시작했는데, 이 중 하나의 요인으로 기술혁신 자체의 질이 ‘숙련 편향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2부 ‘교육 대중화를 향한 세 번의 대전환’에서는 미국의 교육 확대가 빠르게 시작된 까닭을 미국 교육 제도를 지탱하는 여섯 가지 미덕으로 설명한다. 이 여섯 가지 미덕은 공적으로 제공되는 교육, 재정적으로 독립적인 수많은 학교 지구, 무상교육, 비종파적인 공교육, 성별에 상관없는 공교육,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시스템으로, 모두 미국 특유의 평등주의적 요소를 담고 있다. 이러한 교육 제도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생애에 걸쳐 직업을 바꿀 수 있게 해주고, 기술 변화에도 빠르게 반응할 수 있게 해줬다. 3부 ‘경주’에서는 교육 확대로 인한 노동력 공급과 기술혁신으로 인한 수요의 속도 경쟁으로 격차의 확대·축소가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1915년부터 2005년 사이 대졸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했으며, 1915년부터 1980년 사이 대졸 노동력 공급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대학의 임금 프리미엄을 낮췄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대졸 노동력의 공급 증가가 크게 둔화되면서 대졸 임금 프리미엄이 증가했고, 이는 교육 확대 둔화로 인한 고학력 노동력의 공급 부족이 격차 확대의 원인임을 시사한다. 저자들은 20세기 초중반까지는 교육 발전이 기술진보에 앞서 있었지만, 20세기 마지막 30년 동안에는 교육의 진전이 기술진보에 뒤처졌다고 지적한다. 이는 자녀의 학력이 부모의 학력을 뛰어넘는 세대 간 학력 상승의 추세가 멈추고, ‘아메리칸드림’의 핵심인 ‘자녀가 부모보다 잘살게 된다’는 전제가 흔들리게 된 원인 중 하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들은 양질의 취학 전 교육 확대, K-12(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단계 교육의 질 향상, 장학금 확충 등을 정책 제언으로 제시한다. 또한, 급속한 기술 발전이 노동의 성격과 일자리 수요를 어떻게 바꿀지, 이에 대처할 수 있는 교육의 역할은 무엇인지 모색하는 데에도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생각의힘 출판사 측은 “한국 역시 불평등과 계층 간 격차 확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교육과 기술의 경주’의 시점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진 경제 불평등의 양상을 설명하는 데에도 유의미하며, 미국을 성장 모델로 삼았던 한국 사회에서의 격차나 교육 문제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1-30

세상을 변화시킨 리더들 꼼꼼히 ‘해부’

리더가 역사를 만드는가, 아니면 역사가 리더를 만드는가? 경제가 주저앉았을 때 필요한 리더는 누구인가? 사회를 개혁하려면 기성 권력과 협상해야 하는가, 맞서 싸워야 하는가? 독재자의 폭정에 도전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똑똑했던 리더가 어리석은 무리수를 두는 맥락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역사는 어떤 가르침을 주는가?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어크로스)의 저자인 역사학자 모식 템킨은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전 세계의 미래 지도자들을 가르치며 리더십에 관한 핵심적이고 보편적인 질문들을 탐구해왔다. 이 책은 템킨 교수의 하버드 케네디스쿨 강의 ‘역사 속 리더들과 리더십’을 기반으로 쓰였다. 90여 년의 전통을 지닌 하버드 케네디스쿨은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전 총리,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등을 배출한 최고의 공공정책대학원으로 손꼽힌다.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는 더욱 풍성해진 사고실험과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오늘날 리더들이 더 나은 선택, 최선의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저자는 특히 극심한 경제난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리더의 정치적 이념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위기에 정면으로 맞서 상황을 설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가다. 저자는 대공황 시절 미국을 이끈 두 대통령에 주목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취임 100일 만에 뉴딜을 비롯한 76건의 법안을 통과시킬 만큼 엄청난 추진력을 발휘했고, 초고소득층에게 최대 75%의 세금을 부과하는 부유세를 도입하는 등 급진적인 행보를 보였다. 반면 허버트 후버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4선에 성공한 대통령이지만, 미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꼽힌다. 후버는 굶주린 참전용사들의 시위에 무력 진압으로 일관했고, 정부 지출을 대폭 줄이는 등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인지하거나 인정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저자는 리더로서 후버와 루스벨트의 성패를 가른 가장 결정적인 차이를 위기 대응 방식과 공감 능력에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적 어려움과 절망감에 시달리는 민심 앞에 얼마나 진정성 있게 화답할지, 이들의 생계에 얼마나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시행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짐승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그리고 리더는 유산을 남긴다. 영국의 전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는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만큼이나 대처주의(Thatcherism)로 유명하다. 대처주의는 정치적 노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세계관에 가까우며, 대처는 ‘사회 같은 것’은 없으며 오직 개인과 가족만 존재한다고 여겼다. 그녀의 유산이 지금의 세상을 지배하는 담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한편, 이렇다 할 대의나 사명감 없이 리더의 자리에 오른 로버트 맥나마라 같은 사람도 있다. 맥나마라는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는 자신의 장기인 데이터를 앞세워 확전을 밀어붙였고, 이후 그 데이터가 틀렸음을 깨닫고도 정권 유지와 명성을 지키고자 임기 내내 전황이 순조롭다는 거짓을 일삼았다. 그 결과 베트남전쟁으로 5만8000명의 미군과 300만명 이상의 베트남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 책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역사 속 리더들의 유산을 면밀하게 탐구한다. 이들이 남긴 유산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판가름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려면 어떠한 사명을 가진 리더가 필요한지 분별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다. “훌륭한 공직자는 언제나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다. 훌륭한 공직자는 그 자신이 세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지 않는다. 공직자는 그게 국민을 위하는 길일 때만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것이 바로 공직자가 훌륭한 리더가 되는 길이다.”-456쪽.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1-09

일상의 순간, 사진작가의 섬세한 시선으로 ‘포커스’

사진 에세이스트 이호준 작가의 신작 흑백 사진집 ‘직조’(궁편책)가 출간됐다. 이 책은 사진이라는 도구를 통해 포착한 일상의 순간들을 섬세한 시선으로 엮어낸 포토 에세이다. ‘직조’는 기계나 베틀로 천을 짜는 일이자, 곧바로 비춘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일상의 풍경을 흑백으로 담은 이 사진집의 제목은 빛과 그림자라는 씨줄과 날줄로 만들어낸 사진과, 그 흑백 사진으로 곧게 비춘 일상을 뜻한다. 작가는 평범한 사물과 풍경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사진으로 담아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통해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다. 이 책은 단순히 사진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마다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담은 글을 함께 실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사진의 색감과 구도가 매우 뛰어나며, 페이지마다 다양한 질감과 형태의 종이를 사용해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빛과 그림자의 섬세한 교감, 흑백의 농담이 만들어 낸 시각적 내러티브다. 책을 펼쳐 사진 한 장 한 장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일상적 시간 감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오늘날, 이호준 작가에게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의 집적이 아닌 시간의 결을 읽어 내는 창이다. 책은 ‘1전시실: 점선’부터 ‘2전시실: 평행선’, ‘3전시실: 겹선’, ‘4전시실: 직각선’, ‘5전시실: 동선’, ‘6전시실: 포물선’까지로 구성돼 있다.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갖가지 풍경을 담은 사진을 제각기 다른 ‘선’이라는 주제로 묶었다. 제목과 설명 없이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사진과 피사체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적 표현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40편의 에세이와 107장의 사진으로 가득 채웠다. 이호준 작가는 “평소 흑백 사진을 고집하지는 않지만, 이번 책에 담긴 사진은 모두 흑백이다. 컬러 사진과는 다른 호소력을 지녀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매료되는 중이다. 최근엔 아끼는 단일 초점 카메라의 촬영 모드를 모노크롬으로 고정하고 출사에 나가고 있다. 삶의 본질이 묻어나는 생생한 사진을 얻고 싶어서다. 이 책은 그런 흑백 사진의 세계로 나아가는 발걸음이라고 여겨도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1-09

‘필사’로 읽는 나태주 대표시 88편

‘오늘도 이것으로 좋았습니다’ (열림원)는 ‘국민 시인’나태주 시인이 엄선한 그의 시 88편을 모아, 독자들이 시를 읽고 나서 그대로 따라 쓸 수 있게 구성한 ‘라이팅북’이다. 올해로 등단 55주년을 맞는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로 시작하는 시 ‘풀꽃’을 선보이며 대중들이 시와 친숙해지는 계기를 만든 주인공이다. 이번 책에서 시인은 ‘독자들이 꼭 한번 따라 써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시 88편을 위로와 사랑, 행복, 희망이라는 4개 키워드로 나눠 곱다라니 한 권에 담았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에서 영감을 받아 쓴 그의 시는 독자들에게 웃음과 위안을 주며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준다.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기에, 누구나 품은 마음이기에, 누구나 인생을 사는 동안 지니고 싶은 시선이기에, 나태주 시인의 시는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며 감동을 선사한다. 나태주 시인은 이번 시집 출간을 두고, 읽고 베끼는 과정을 통해 “나태주의 시집을 떠나 시집을 베끼는 독자분의 시집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글을 베끼다 보면 그 글이 나의 마음 안으로 들어와 안기는 것을 느끼는데, 이것은 참 신비로운 경험”이라면서 이번 시집을 통해 그런 ‘신비한 경험’을 해볼 것을 권한다. “자 오늘은 이만 자러 갑시다 / 오늘도 이것으로 좋았습니다 / 충분했습니다” 시인의 아내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들고 시인은 방에서 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시인은 거의 매일처럼 이어지는 이와 같은 일상의 풍경을 이렇게 시로 옮겼다. “오늘 하루 좋았다 아름다웠다 / 우리는 앞으로 얼마 동안 / 이런 날 이런 저녁을 함께할 것인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더 사랑하고 알뜰히 살피고 마음 깊이 감사하는 시인은 독자로 하여금 세상을 더 깊고 아름답고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과 귀를 열리게 한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시집 ‘대숲 아래서’, ‘풀꽃’을 비롯해 총 150여 권의 책을 출간했으며 작년 제9회 윤동주문학대상을 받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1-09

‘혁명’의 의미는 아직 유효한가

현대 정치 이념인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기원은 어디서 왔는가? 학자들에 따라 여러 견해가 있지만 ‘프랑스혁명’을 빼놓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은 전 세계 정치와 사회에 큰 변화를 일으킨 역사적 사건으로, 서양 정치사와 민중사에 큰 획을 그었다. 사회 제도, 인권 사상, 정치 체제 등 수많은 유산을 남겼고 그 여파는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아직도 학자들은 230여 년 전에 일어난 이 사건에 대해 수없이 많은 연구를 하며 논문과 책으로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윌리엄 도일 영국 브리스톨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의 저서 ‘프랑스혁명’(교유서가)은 ‘프랑스혁명’에 관한 훌륭한 개괄서로서,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펴낸 입문서 총서인 ‘첫 단추’ 시리즈의 한 편인 ‘THE FRENCH REVOLUTION(A Very Short Introduction, 개정 2판)’의 번역서다. 책은 1장 반향, 2장 왜 일어났는가?, 3장 어떻게 일어났는가?, 4장 혁명이 끝낸 것, 5장 혁명이 시작한 것, 6장 혁명의 위치 등 총 6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책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정치·경제·사회적 등의 재정 위기, 사회적 불평등과 계몽주의 사상의 확산 등의 배경과 함께 입헌군주제 수립에서 나폴레옹의 등장까지, 루이 16세, 로베스피에르, 당통 등 핵심적 인물들의 역할과 활동을 통한 혁명의 전개 과정, 혁명이 남긴 유산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면서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군주제의 종말과 단두대의 칼날,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의 죽음과 공포로 점철된, 2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람들은 왜 프랑스혁명을 이야기하며 기념할까? 저자가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더 큰 지식을 얻는다 해서 사람들이 마음을 바꾸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역사적 사실에 관해 알고 있으면 무작위적인 축적보다는 더 건전한 판단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어 그 유용성에 빛을 더한다. 분명 프랑스혁명에는 배울 점이 많고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시대, 특히 민주주의의 퇴행을 밟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직 낡지 않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프랑스혁명의 시대를 다시 한번 통찰해 보길 추천한다. 저자는 어느 역사가보다 세심하게 프랑스혁명의 원인과 전개 과정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짧은 분량의 역사서이지만 독자들에게 거대한 한 사건을 통찰하게 한다. 원인, 과정, 결과, 인물을 분석하고 혁명에서 행한 그들의 역할을 설명한다. 또한 혁명이 끝낸 것과 출발시킨 것에 대해 조목조목 상세하게 설명해 좀 더 큰 의미를 찾아내고 전달하려고 했다. 프랑스혁명이 유럽과 세계에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어떻게 현대의 정치 이념인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기원이 됐는지, 혁명은 과연 성공인지 실패인지에 대한 논쟁도 요약해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조한욱 교수는 이 책의 특징으로 “영국인이면서도 프랑스혁명에 대해 낮추어 평가하려는 영국적 전통과는 거리를 두고 본질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면서 프랑스혁명의 공과에 대해 엄정하게 평가한 책”이라 밝히고 있다. 윌리엄 도일 교수는 서문에서 “나의 관심은 프랑스 혁명이 왜 중요했고, 왜 그것이 발생한 지 두 세기가 지나도록 계속하여 수많은 방식으로 중요했는지 논하는 것이었다. 18세기 말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정신에 새겨진 관념과 이미지와 기억으로 프랑스 혁명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그 복합성을 보여주는 현저한 사례이자 역사의 중요성에 대한 강력한 논지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12-26

법조문·책 통해 세상을 통찰하는 법조인의 시각

신간 ‘책 속을 걷는 변호사’(궁편책·사진)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 변호사’를 자처하는 조용주(52) 법무법인 안다 대표 변호사가 이 시대를 함께 걸어가는 이들에게 독서의 묘미를 전하는 책이다. 인천 출신인 조용주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부장판사를 역임한 엘리트 변호사다. 현재는 전국을 걸으며 사색하는 ‘순례길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주변 법조인들과 함께 독서회도 꾸려나가고 있다. 또한 어려운 이웃들에게 쌀을 기부하는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책 속을 걷는 변호사’는 판사 출신 변호사인 조 변호사가 30여 년간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읽어온 책들을 큐레이션해 소개한 독특한 서적이다. 이 책은 법조문과 책을 통해 세상을 통찰하는 법조인의 시각을 담고 있으며, 총 58권의 책을 주제별로 나눠 소개한다. 조 변호사는 ““책만큼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있을까. 좋은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삶의 근본을 발견하고, 궁극적으로 발전한다.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 세상에서 독자들과 함께 읽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며 “오늘의 변화를 만든 책들과 내일을 그리는 책들을 소개해 독자들이 더 나은 길을 찾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199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대전지법 판사로 시작해 대전지법 천안지원, 인천지법, 서울남부지법 등에서 판사로 근무했다. 현재는 법무법인 안다의 대표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4-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