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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수천 년에 걸친 슈퍼리치의 탄생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부자들은 찬사와 분노, 관심의 대상이 돼왔다. 전염병과 기근, 전쟁과 금융 위기 속에서 어떤 이는 몰락했고, 또 다른 이는 부를 축적했다. 슈퍼리치는 단순히 재산이 많은 부자를 넘어, 시대를 주도하고 제도를 구축하며 때로는 국가보다 막대한 자본을 소유한 존재였다. 중세의 왕족과 귀족, 근대의 상인과 금융인, 현대의 테크 재벌까지, 수천 년에 걸친 슈퍼리치의 탄생과 진화, 그들이 사회와 맺어온 복잡한 관계를 탐구한 신간 ‘최고의 부는 어디서 오는가’(미래의창)가 출간됐다. 이 책은 단순히 특정 시대의 억만장자를 나열하는 부자 열전이 아니다. 경제사학자인 저자 귀도 알파니는 “누가 부자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각 시대의 경제·사회 구조를 분석하며, 부의 원천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추적한다. 중세의 왕족과 귀족, 르네상스 시대의 상인과 금융인, 산업 자본가, 현대의 테크 억만장자에 이르기까지, 부자들은 단순한 자산 보유자가 아니라 제도와 권력을 움직이며 사회를 형성해온 주체였다. 로마 시대에는 여섯 명의 부자가 아프리카 땅의 절반을 소유했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팔라스는 당시 황제 네로보다 더 큰 부를 자랑했다. 11세기 잉글랜드의 귀족 앨런 더 레드의 토지 수익은 국민 총 순소득의 약 7.3%에 달했으며, 19세기 제이 굴드는 미국 철도의 15%를 장악했다. 현대의 대표적 부자인 제프 베이조스의 경우, 2020년 3월부터 8월까지 급증한 재산만으로도 아마존 직원 8만7600명에게 각각 10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이처럼 부의 집중은 역사적으로 지속됐으나, 산업혁명 이후 그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됐고, 21세기 들어 다시 한번 정점에 도달했다. ‘최고의 부는 어디서 오는가’에 따르면,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슈퍼리치는 대부분 귀족 출신이었으나, 20세기에는 자수성가한 기업가와 금융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 상속을 통한 부의 세습이 다시 증가하며, 상위 0.1%의 부 집중도는 1929년 대공황 직전 수준을 넘어섰다. 흑사병과 세계대전 시기를 제외하면, 부의 불평등은 수 세기에 걸쳐 점차 심화됐다. 유럽은 14세기 흑사병 이후 일시적으로 계층 간 격차가 완화됐으나, 15세기부터 불평등이 재차 확대됐다. 특히 산업혁명과 금융업의 성장으로 귀족 대신 기업가와 금융인이 새로운 슈퍼리치로 부상하며, 이들은 단순한 부자가 아닌 제도적 권력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미국은 건국 초기 귀족과 세습 특권이 없었으나, 19세기 산업화와 철도 개발, 금융 시스템 발전으로 부의 편중이 가속화되었다. 오늘날 미국은 전 세계 슈퍼리치의 절반 이상을 배출하며, 극심한 불평등 국가로 꼽힌다. 역사적으로 부자는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검열의 대상이었다. 중세 수도사들은 부를 죄악시했고,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시하는 자는 추방당했다. 그러나 전염병, 전쟁, 기근과 같은 위기 시 부자들은 기부, 기반 시설 건설, 대출 제공 등을 통해 공동체의 구원자 역할을 자처하며 사회적 정당성을 얻었다. 그러나 현대의 부자들은 팬데믹과 금융 위기 속에서도 자산을 증식시켰으나, 공동체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알파니는 “부자들이 사회적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이를 이용해 이익을 추구한다는 인식이 퍼질 때,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폭동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심지어 일시적 증세조차 ‘부자 공격’으로 왜곡되며, 공공 세금으로 손실을 메우는 역설적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과거 부자들이 ‘책임 있는 계급’으로서 정당성을 확보했다면, 오늘날 그 기반은 흔들리고 있다. “세금보다 기부를 선택하겠다”는 말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부자들은 여전히 기부를 통해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 하지만, 정작 납세 의무는 회피한다. 저자는 선의와 의무 사이의 역사적 논쟁을 파헤치며, 권력과 사회계약의 변화를 드러낸다. 이 책은 과거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를 향한 경종을 울린다. ‘최고의 부는 어디서 오는가’는 시대별 슈퍼리치의 권력, 정당성, 책임을 분석하며 묻는다. “현대 부자들은 과연 존재할 자격이 있는가?” 사회가 더 이상 기여하지 않는 부자들에게 지배당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8-12

열광하는 팬이 시장을 흔들고 판을 바꾼다

최근 출간된 신간 ‘슈퍼팬의 시대’(페가수스)는 디지털 기술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결합으로 탄생한 ‘슈퍼팬’이 콘텐츠와 브랜드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재편하는지 심층 분석한 책이다. 슈퍼팬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티스트나 콘텐츠와 최소 5개 이상의 접점(앨범 구매, 굿즈 수집, 콘서트 관람, SNS 소통, 뉴스레터 구독 등)을 유지하며 재정적·정서적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집단이다. 엔터테크 분야 전문 뉴스미디어 & 스튜디오 ‘K-엔터테크허브’의 대표인 한정훈 저자는 BTS의 위버스부터 디즈니, 나이키, ‘오징어 게임’까지 실제 사례를 통해 슈퍼팬이 단순한 팬덤을 넘어 경제적·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음을 강조한다. 이들은 단순히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티스트의 세계관에 몰입해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위기 시에도 충성도 높은 지지를 보낸다. ‘슈퍼팬의 시대’는 “과거에는 최대한 많은 대중을 타깃으로 삼았다면, 이제는 소수의 열렬한 팬이 끝까지 밀어주는 콘텐츠가 더 오래 간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전 국민이 잠깐 즐기는 콘텐츠보다 특정 팬층이 반복 소비하는 콘텐츠가 플랫폼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슈퍼팬의 등장은 VR·AR·MR, 빅데이터, AI 등 첨단 기술이 엔터테인먼트와 융합된 ‘엔터테크’ 환경과 맞물려 있다. 유튜브나 틱톡 같은 플랫폼은 콘텐츠 완성도보다 사용자 반응을 실시간 분석해 노출 순위를 결정한다. 이 구조에서 승자는 한 번 보는 다수가 아닌 반복 시청하는 소수, 즉 슈퍼팬이다. 디즈니의 마블 유니버스가 팬들의 열광적 참여로 확장된 것처럼, 기술적 몰입도가 높은 콘텐츠는 슈퍼팬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된다. 책은 디즈니, 메타, 하이브, SM 등 글로벌 기업이 슈퍼팬을 전략의 중심에 두는 방식을 조명한다. BTS와 위버스는 팬과의 직접 소통 플랫폼으로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나이키 앱과 러닝 커뮤니티는 팬 경험을 브랜드 충성도로 연결한다. ‘오징어 게임’은 출연진의 패션 아이템부터 OST까지 팬들이 자발적으로 2차 창작물을 생성하며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한다. 특히 ‘슈퍼팬 이코노미’ 개념이 주목받는다. 불황에도 슈퍼팬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이는 브랜드의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 시즌1 공개 후 반스 슬립온 운동화 판매량은 8000% 급증했고, 시즌2 삽입곡은 10억 회 조회수를 기록하며 문화적 파급력을 입증했다. 저자는 “슈퍼팬은 단순한 팬덤이 아닌, 기술과 문화가 교차하는 시대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열정은 콘텐츠의 생명력을 연장하고, 기업은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얻는다. ‘슈퍼팬의 시대’는 이제 모든 산업이 팬 중심의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임을 경고하며, ‘누가 반복해서 보는가’가 미래의 핵심 질문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8-12

외교는 이념과 이해관계 넘어선 ‘문화·언어·정서충돌’ 고차방정식

신문사 정치부 기자로서 외교·안보 분야를 오래 취재하고 워싱턴·도쿄 특파원을 지낸 이하원 기자가 신간 ‘성공한 외교, 실패한 외교-이하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박영사)를 출간했다. 30년 가까이 외교·안보 현장을 누비며 목격한 국제 관계의 이면을 담은 이 책은 화려한 공식 발표 뒤에 숨은 갈등과 오판, 인간적 드라마를 생생하게 전한다. 책은 한미·한중·한러 외교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과 대립, 남북 관계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사건 등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인 이정표로 꼽히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초안을 만든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전 외무성 사무차관이 들려준 뒷얘기를 통해 양국 관계의 미묘함을 느낄 수 있다. 외교 현장의 숨겨진 갈등과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을 경험하며 ‘외교안보 막전막후’ 연재와 저서를 통해 외교의 복잡성과 정치권의 문제를 고발했다. 책은 윤석열·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부터 문재인 정부의 대미·대일 외교, 한미 간 사드 갈등, 남북 관계까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외교 사건을 재조명한다. 특히 정치권이 외교를 사유화하고 전문가 의견을 배제하는 행태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외교는 이념과 이해관계를 넘어 문화·언어·정서가 충돌하는 고차 방정식”이라고 강조한다. 눈에 띄는 대목은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1998년 방한 당시 일화다. 정상회담 직후 ‘섹스 스캔들’로 탄핵 위기의 클린턴이 동생과 호텔에서 밤새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뒷이야기는 세계 최고 권력자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한일 관계 개선의 상징적 사건인 김대중-오부치 선언 초안 작성 과정에서는 ‘사죄’를 뜻하는 일본어 ‘오와비’ 번역 방식을 둘러싼 양국 실무진의 신경전이 흥미롭게 묘사된다. 저자는 “외교부 공무원과 정치인, 해외 인사들의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결정들이 국가 운명을 좌우한다”며 “이 책이 독자들에게 외교의 복잡성을 체감하고 정책 결정 과정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1대 대통령 취임 시점에 맞춰 출간된 이번 책은 새 정부에 ‘과거 외교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저자는 외교에는 늘 상대국이 있기 때문에 정책을 펼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며 그만큼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어떠한 경우에도 권력이 외교를 사유화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전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8-12

포항사람 허대만 지역주의 타파 정치개혁의 꿈

“세상은 그를 떠나보냈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된다. 2022년 세상을 떠난 포항 출신 정치인 허대만. 그는 진영을 넘어 모두에게 ‘좋은 정치인’으로 남았다.” 고(故) 허대만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의 타계 3주기(8월 22일)를 맞아 그의 삶과 정치 철학을 조명하는 추모문집 ‘공존의 정치 허대만’(도서출판 BMK)이 오는 20일 발간된다. 이번 문집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그의 헌신과 혁신적 활동을 재조명하며, 유족과 지역사회에 깊은 의미를 전할 예정이다. 허 위원장은 1995년 만 26세의 나이로 전국 최연소 포항시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민주당 소속으로 여러 차례 선거에 도전했으나 지역주의의 벽에 막혀 모두 낙선했다. 하지만 그의 끈질긴 도전과 포항지진 수습 과정에서의 헌신은 지역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많은 이들은 그를 ‘포항사람 허대만’으로 기억하고 있다. 문집에는 허대만이 생전에 출간한 ‘지역을 바꿔야 나라가 바뀐다(2002)’, ‘영일만의 꿈(2011)’의 일부 내용이 실리며,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두관·안민석 국회의원, 박태식 전 포항시의회 의장 등 다양한 인사들이 추모글을 기고했다. 필진들은 “지금 다시 읽어도 허대만의 안목과 혜안이 느껴진다”며 그의 삶과 정신을 되새겼다. 이번 문집은 2024년 11월부터 준비를 시작해 9개월여간의 작업 끝에 발간된다. 발간위원회는 고인의 친구와 후배들이 주축이 됐으며, 임미애·민병덕 국회의원, 오중기 더불어민주당 포항시북구지역위원장, 박희정 더불어민주당 포항시 남구울릉군지역위원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등 고인과 깊은 인연을 맺은 각계 인사들도 참여했다. 발간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은 임미애 국회의원은 “허대만 위원장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3년이 됐다”며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허대만법’ 논의는 다소 주춤한 상황이지만, 지방선거부터라도 다시 논의를 이어가려고 노력 중이다. 이 문집 발간이 허대만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발간위원회는 타계 3주기인 오는 22일 오후 7시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출판기념 문화제를 개최한다. 1968년 태어난 허대만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고향인 경북 포항으로 돌아와 시민운동과 지방의회에 뛰어들었다. 1995년 만 26세의 나이로 전국 최연소 포항시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한 그는 ‘청년이여, 고향으로 돌아가 시장이 되자’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풀뿌리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기초의원 출신 대통령 탄생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비전으로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 개혁을 꿈꿨다. 허대만은 민주당 계열로 출마해 국회의원, 포항시장 등에 7차례 도전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지역주의라는 ‘강고한 벽’ 앞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지만, 그는 ‘총알받이’의 심정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2020년 포항지진 발생 당시 피해 복구와 지원 활동에 헌신하며 지역민의 두터운 신뢰를 얻었으나, 건강 악화로 인해 2022년 8월 24일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치인의 길 외에도 그는 환경 문제 해결에 앞장선 혁신적인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2011년 제철소 현장에서 현재 산업계의 탄소 감축 기술과 맥을 같이하는 CO₂ 활용 설비를 개발해 공장을 설립했다. 저서 ‘지역을 바꿔야 나라가 바뀐다’(2002), ‘영일만의 꿈’(2011)을 통해 지역 균형 발전과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동료와 지인들은 그를 ‘마음이 여린 자의 용기’를 지닌 인물로 기억한다. 일상에서 겸손한 이웃으로 살아온 그는 ‘포항사람 허대만’이라는 별칭처럼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내렸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는 일화는 주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남겼다. 그의 타계 이후 민주당에서는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허대만법’(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 논의가 본격화됐다. 허대만은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정치적 성과를 이루지 못했지만, 공존과 상생의 가치를 실천한 ‘미완의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서로 한발씩 양보하는 것’을 강조했던 그의 철학은 오늘날 갈등과 대립이 심화된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상대가 있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서로 한발씩 양보하는 것이 공존의 정치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나는 지고지순이고 상대는 악의 화신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상대도 완전하지 않고 나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공존의 정치다. 나도 모든 것을 얻을 수 없고 상대도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상대를 빈손으로 만들 수 없고 나 또한 빈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존의 정치다.- 허대만, ‘공존의 정치’ 중에서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8-10

AI 혁명 최전선에서 미래를 개척하는 인간의 이야기

신간 ‘미래를 사는 사람 샘 올트먼’(열린책들)은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기술과 같은 혁신적 AI 시대를 선도하는 대화형 인공 지능 서비스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CEO) 샘 올트먼(40)의 생애와 경영 철학을 집중 조명한 책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키치 헤이기 기자가 올트먼의 가족과 친구, 교사, 멘토, 공동 창업자, 동료, 투자자, 포트폴리오 회사 등 250회가 넘는 인터뷰와 본인과의 심층 대화를 통해 완성한 책이다. 이 책은, ‘AI 시대를 설계한 가장 논쟁적인 CEO의 통찰과 전력’이라는 부제로 단순한 기업가 전기를 넘어 AI 혁명의 최전선에서 미래를 개척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과정에서 드러나는 샘 올트먼은 속도를 중시하고 위험을 좋아하는 영리한 거래 해결사다. 그는 거의 종교적 확신으로 기술 진보를 믿지만, 때로는 주변 사람들이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빠르게 움직이며, 대립을 좋아하지 않아서 가끔 더 큰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쓰러질 때마다 다시 더 큰 힘을 얻고 복귀했다. 이 책에 따르면 샘 올트먼이 세인트루이스에서 보낸 조숙한 어린 시절부터 첫 번째로 시도했다가 실패한 스타트업 경험, 전설적 사업가 폴 그레이엄의 제자이자 후계자로 승승장구하며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Y 콤비네이터 대표가 된다. 실리콘 밸리의 으뜸가는 실세로 부상한 젊은 시절, 오픈AI를 창립한 뒤 소수 정예의 팀을 발탁한 과정, 옛 친구이자 지금은 앙숙이 된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완강한 경쟁자들을 물리치는 한편 계속 인공 지능의 선두 주자를 지키려는 분투에 이르기까지 올트먼이 성장하며 겪은 크고 작은 과정을 한 폭의 세밀화에 담아 펼쳐 보인다. 올트먼은 물론 테크 산업의 변화 과정을 생생하게 돌아본다. 올트먼은 일찌감치 공부보다는 창업을 택한다. 그는 스탠퍼드대 2학년이던 2005년 위치 정보 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업인 루프트를 만들기 위해 자퇴한다. 책은 그의 삶을 4부 17장으로 나눠 세밀화처럼 풀어낸다. 1부(1985~2005)는 조숙한 천재로 성장한 세인트루이스 시절과 IT 세계에 입문한 계기를 다룬다. 2부(2005~2012)는 첫 스타트업 실패와 Y콤비네이터 합류로 이어지는 도전기, 3부(2012~2019)는 실리콘밸리의 중심에서 폴 그레이엄의 후계자로 성장하며 오픈AI를 설립하기까지, 4부(2019~2024)는 챗GPT 성공과 ‘올트먼 축출 사태’, AI 윤리 논쟁까지 최근 이슈까지 포괄한다. 특히 ‘풀려난 프로메테우스’라는 마지막 장 제목은 인류에게 AI라는 불을 전달한 그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아마존 MGM 스튜디오가 ‘올트먼 축출 사태’를 영화로 제작 중이며, 이는 그의 극적인 경영 스토리가 대중문화로도 재탄생함을 의미한다. 책은 한국 출간에 이어 독일·일본 등 12개국 출간이 확정됐으며, 10월 경주 APEC CEO 서밋에 올트먼이 초청되며 글로벌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이 책의 참고할 만한 스타트업 뒷이야기는 실제 경험자들이 솔직하게 답했기에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여러 빅테크 기업가의 소중한 영감도 담았다. 무엇보다 ‘미래는 더 나아질 거’라는 올트먼의 낙관주의적 사고방식은 기업가 영역을 넘어 개인적 삶의 철학으로도 연결된다. 그렇기에 샘 올트먼이 보여 주는 전략과 통찰에서 우리 역시 우리 삶을 어떻게 경영하고 운영할지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8-07

중국사 학자 7명이 선별한 ‘중국사를 꿰뚫는 질문 25’

아르테 출판사의 ‘꿰뚫는 질문’ 시리즈 첫 권인 ‘중국사를 꿰뚫는 질문 25’ 가 나왔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질문의 힘’을 복원하려는 기획으로, 조영헌·윤형진·송진·손성욱·류준형·김한신·고명수 등 중국사 일곱명의 학자가 2년간 머리를 맞대고 선별한 25개의 핵심 질문이 중국사의 맥을 관통한다. 단순한 사실 나열을 넘어, “통일된 중국은 왜 폐쇄적이 되고 분열된 중국은 왜 개방적이 되는가?” 같은 역설적 질문을 통해 중국을 동적인 제국으로 재해석한다. 저자들은 중국사에서 ‘열림’과 ‘닫힘’이라는 상호 모순적 패턴을 발견했다. 실크로드로 서역과 교류하던 당나라가 안사의 난 이후 이민족 배척으로 돌아서고, 해양 무역으로 번성한 송·원이 몽골 침략으로 해금 정책을 강화한 사례 등이 그렇다. 진시황의 만리장성, 명대의 재건, 청 건륭제의 위계적 대외정책은 ‘닫힘’의 극단이라면, 당대 여성 정치 참여 확대나 원대의 종교적 포용은 ‘열림’의 전형이다. 이 모순적 역사는 “중국이 주변과 끊임없이 충돌·교류하며 유동적으로 형성된 제국”이라는 독창적 시각을 제공한다. 책은 논쟁적 질문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예컨대 “시황제는 책을 불태운 폭군인가, 천하 통일의 영웅인가?” “정화의 원정 기록을 명나라가 파기한 이유는?” 같은 질문들은 단순한 흑백논리를 거부한다. 측천무후의 여황제 통치나 당나라 환관의 권력 남용 같은 사례는 역사적 인물의 다면적 성격을 탐구하도록 유도한다. 책의 백미는 현대 중국 분석이다. 시진핑 체제의 중앙집권화와 민족주의 강화가 한편으로는 ‘닫힘’이라면,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한 글로벌 영향력 확대는 ‘열림’의 계승이라는 해석은 신선하다. 이는 과거 분열된 시기에 개방성이 강해진다는 패턴의 현대적 재현으로, 미중 패권 경쟁을 역사적 맥락에서 조망할 통찰을 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8-07

인간 본성의 ‘현실’ 직시할 때, 공존의 길 열 수 있다

‘인간은 왜 싸울까? 기존 국제정치학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갈등 해결의 핵심으로 보았으나, 신간 ‘전쟁하는 뇌’(진실의힘)는 신경과학을 통해 감정과 본능이 분쟁의 근본 원인임을 밝힌다. 저자 마리 피츠더프는 북아일랜드 분쟁 현장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감정과 본능에 기반한 평화구축 전략을 연구해왔다. 중재네트워크 설립자이자 유엔대학교 국제갈등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그는 “기존 정치·국제관계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갈등의 본질을 뇌과학으로 풀어냈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협력하려는 본성을 지니지만, 그 협력은 주로 자기 집단 내에서만 작동한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코끼리와 기수’ 비유처럼, 감정에 해당하는 ‘코끼리’가 이성의 ‘기수’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집단 소속 욕구는 안전을 주지만, 동시에 외집단을 비인간화해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극단주의 집단은 명확한 이념과 소속감을 제공해 오히려 ‘정상적’ 선택지로 여겨지며, 소셜미디어는 감정적 확증편향과 가짜뉴스를 확산시켜 갈등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 뇌의 유연성에 주목한다. 사회적 학습과 제도적 장치로 편도체의 본능을 넘어선 협력이 가능하며, 역사적으로 적대 관계의 전환 사례도 많다. 평화 구축을 위해 저자는 이성 외에 감정적 요인 수용,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수적이며,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기억할 것, 타인의 관점 이해, 포용적 대화 촉진, 사이버 공간의 갈등 관리 기술 개발 등을 제안한다. 인간 본성의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 가능성을 믿을 때, 갈등을 넘어선 공존의 길을 열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인간에게는 타인과 협력하려는 본성도 있다. 집단은 우리에게 안전, 소속감, 의미 등을 제공하고, 집단을 이루는 것은 인류가 존재해온 수백만 년 동안 매우 성공적인 생존전략이었다. 문제는 협력과 공감이 대개 내가 속한 집단에만 작동하며, 집단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와 적대하는 ‘타자’가 필요하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협력하도록 진화했다. 다만 일부 사람하고만 그렇다.”(83쪽) 집단의 일부인 우리는 집단에 이로운 것, 집단이 공유하는 이념을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집단신념은 개인적 견해나 신념을 압도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할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 집단에 소속되면 개인의 태도는 집단의 규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바뀐다. 이전의 신념은 폐기되거나 새로운 신념에 맞게 변경될 수 있다. 집단신념이 신성불가침이 되면 구성원들은 흔히 집단신념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을 잃는다.”(122쪽) 인간에게는 협력을 촉진하는 다양한 규범도 있다. 일례로 국가 간 무역의 활성화는 낯선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고 신뢰하도록 하는 제도 형성을 촉진했다. “시장에는 보통 사회적 장벽을 허물고, 상인 간의 공정성을 강화하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 무역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억제하는 일련의 규제와 행동이 있었다.”(244쪽) 저자는 “우리에게는 타고난 경향이 있을 뿐 정해진 운명은 없다”(264쪽)고 강조한다. 인간 본성에 갈등을 조장하는 측면이 분명 있지만, 조건과 상황에 따라 인간은 충분히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때 다른 집단의 구성원을 아무렇지 않게 해치거나 죽였던 이들이 사회의 생산적인 구성원으로 변모한 사례가 많다. 또한 오랫동안 적대관계였던 나라들이 전쟁을 끝내고 교역하고 협력한 사례도 많다.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고 강화함으로써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정할 수 있다.”(264~265쪽) 무엇보다 사회갈등의 주체인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이 책의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현실에 적절하게 개입하고 현실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의 ‘현실’을 올바로 인식해야만 비로소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 갈등이 해소된 평화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전쟁하는 뇌’는 우리가 그런 ‘이상’에 도달하도록 돕는 여러 통찰과 제안을 제시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8-07

세계 과학의 최전선… 혁신적 연구의 뒷이야기

대체에너지 개발로 기후 재앙을 피할 수 있을지, 인공지능 시대에도 민주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령화 사회의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본질적인 고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학이 인류의 난제를 어떻게 일깨우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신간이 출간됐다.   ‘과학의 최전선’(21세기북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막스플랑크협회의 회장 패트릭 크래머가 취임 전 1년 동안 84개 연구소를 직접 방문하며 기록한 특별한 과학 여행기의 형태를 띤다. 기록은 과학이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닌, 인류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도구임을 일깨운다.   저자인 패트릭 크래머는 분자생물학자로, 막스플랑크협회장을 맡아 세계 과학계의 활발한 교류를 강화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와도 지난 2024년 방한을 통해 협업 계획을 공개해 기대감을 높인 바 있다. 저자는 살아있는 노벨상 수상자들을 비롯, 세계 과학의 최전선에서 직접 만난 과학자들과의 대화, 그리고 혁신적 연구의 뒷이야기를 통해 과학이 인류의 난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는지 조명한다. 이 책은 과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여정의 기록이다. 복잡한 과학 이론을 설명하는 대신 쟁점이 되는 질문과 연구자들의 시각을 공유함으로써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며, 이러한 첨단 연구가 우리의 삶과 사회에 미칠 구체적인 변화를 제시한다.   저자는 취임 전 1년간 84개 연구소를 탐방하며 인류가 마주한 난제-기후 위기, 인공지능(AI), 고령화 사회의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적 도전과 혁신을 기록했다. 총 17장으로 구성된 책은 우주의 기원부터 뇌 과학까지 과학사의 핵심 주제를 아우른다. 각 장은 단순한 기술 소개를 넘어,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과학계의 노력을 입체적으로 담아냈다. ‘세포와 생명’, ‘생태계 보존’, ‘시간과 미’ 등의 장은 생명과 환경,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며, ‘공생을 위한 법’ 장에서는 기술 발전에 따른 윤리적 쟁점을 제기한다. 특히 ‘녹색 화학’, ‘수소 에너지’, ‘핵융합’ 장에서는 탄소 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실험적 접근법을 조명한다. 또한 ‘인공지능과 로봇’ 장에서는 기계와 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탐색하며, ‘노화와 재생’ 장에서는 고령화 사회의 의료 기술 발전을 전망한다. 막스플랑크협회는 독일을 넘어 전 세계 과학 발전을 이끌어온 기관으로, ‘아는 것이 적용보다 먼저다’라는 모토로 10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기초과학의 힘이 어떻게 인류의 미래를 설계하고 바꿀 수 있는지 직접 보여주는 과학적 탐구 정신의 상징이다. 막스플랑크협회에서 이뤄지는 기초과학 연구는 복잡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혁신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7-24

“기온 1도 상승에 1인당 소득 8% 감소”… 기후변화가 경제를 바꾸나

데이터를 통해 기후위기 비용을 측정해온 재미 환경경제학자 박지성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기후변화의 경제적 파장을 데이터로 분석한 저서 ‘1도의 가격’(윌북)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빌 게이츠가 자문을 구한 와튼스쿨 소장파 학자인 그는 “기후변화가 실존하느냐”가 아닌 “이미 닥친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라고 강조한다. ‘이미 현실이 된 기후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가 인류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10여 년간의 연구를 통해 기후변화가 사회경제적 시스템에 미치는 미묘하지만 치명적인 영향을 규명했다. 대표적 사례가 “평균 기온이 1도 높은 국가의 1인당 소득은 8% 낮다”는 통계적 결론이다. 시카고대 연구진의 실험에 따르면 공장 내부 온도가 1도 오를 때마다 생산성이 2~4% 하락했으며, 이는 교육·노동·건강 분야로도 확장된다. 폭염(32.2도 이상)이 하루 증가할 때마다 미국에서 3000명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하고, 29도 이상인 날엔 강력범죄 발생률이 9% 높아진다는 데이터도 제시된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산불·홍수 같은 물적 피해뿐 아니라 개인의 정신건강과 신체 활력, 교육적 성취, 직업적 역량 등 개인의 미래 소득을 갉아먹는 인적 자본 손실을 초래한다. 대규모 자연재해(1인당 500달러 이상 물적 피해)는 1520달러 상당의 인적 자본 손실로 이어지며, 학교 교육 중단은 학생들의 장기적 소득 감소로 직결된다. 기후위기는 노동 생산성과 범죄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32.2도 이상인 폭염이 하루 더 늘어날수록 업무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일일 기온이 29도를 넘으면 강력범죄 발생 확률이 약 9% 높아진다. 또 평균 기온이 높은 국가일수록 1인당 소득이 낮다는 연구결과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박 교수는 기후변화가 자본주의 시스템을 극단적 양극화로 몰아갈 것이라 지적한다. 좋은 주거지와 일자리를 찾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빈곤층은 기후 위험 지역에 내몰릴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저자는 동시에 희망도 제시한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이 30% 이상 감소했고, 재생에너지 기술이 급성장 중인 만큼 “아직 늦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다만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선 구속력 있는 정책과 기술 혁신이 병행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자극적 경고 대신 냉정한 데이터로 기후변화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너무 더워 시험을 망쳤다”는 말은 더 이상 핑계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 독자들은 기후위기가 단순한 환경 이슈가 아니라 경제적 의사결정, 정책 수립, 일상적 삶의 방식과 밀접히 연결돼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저자는 컬럼비아대학교와 옥스퍼드대, 하버드대에서 공부했으며 UCLA 교수를 거쳐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과 와튼스쿨에서 강의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경제적 영향을 데이터와 통계를 통해 분석하고 있으며, 미국 의회나 UN, 세계은행 등 기관에 정책 자문을 제공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7-24

에밀 싱클레어 목소리로 엮은 시·편지… ‘싱클레어 노트’ 출간

세계 대전의 깊은 상흔으로 고통받던 사람들과 질풍노도의 계절을 사는 모든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눈부신 등불이 돼 준 ‘데미안’의 작가, 독일의 거장 헤르만 헤세(1877∼1962)가 ‘청춘의 화신’ 에밀 싱클레어의 음성으로 써 내려간 에세이, 시, 편지 등을 엮은 ‘싱클레어 노트’가 민음사 쏜살문고로 출간됐다. 쏜살문고는 손바닥만 한 크기와 가벼운 분량으로 들고 다니며 읽기 편하게 만든 문고판이다. 1918년 독일 제국의 항복으로 마침내 전대미문의 참혹한 전쟁(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정신적 파산 상태로 폐허 위에 남겨진 독일 청년들에게 영혼의 각성을 호소하고자, 헤르만 헤세는 ‘중견의 서정시인’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동시대 청년’ 에밀 싱클레어로서 일련의 글을 집필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꼽자면 단연 ‘데미안’이지만, 헤세는 싱클레어라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가지고 여러 정치적이고 참여적인 글을 꾸준히 발표한다. 하지만 (독일의 패배로 끝난) 전쟁 직후에 반전과 평화를 강조하며, 독일인을 향해 과오를 반성하라고 촉구한 발언은 그 자체로 위험을 감수하고, 또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동이었다. 그런 까닭에 ‘데미안’의 저자, 에밀 싱클레어의 정체는 한동안 베일에 휩싸여 있었고, 그의 이름으로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된 글들 역시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채 흩어져 버렸다. 마치 그러한 아쉬움을 해갈하듯, 한국헤세학회 회장을 지냈던 박광자 충남대 독문학과 명예교수가 각각의 작품을 엄선해 엮고 해설을 붙인 ‘싱클레어 노트’를 펴냈다. 이 책은 ‘데미안‘ 시기의 저자가 (독일 민족에 대한 자기 연민적 여론에 굴하지 않고) 과감한 논조로 기고한 시사적인 글들과 니체의 영향 아래 집필한 철학적 에세이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그리고 나치의 등장을 예견하고 세계 대전의 되풀이를 목도한 뒤 기록한 수필들, 1946년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다채로운 산문들을 아우르고 있다. 정치적 상황을 결코 외면할 수 없었던 헤르만 헤세가 긴박한 심정으로, 가장 열띠게 울부짖은 ‘싱클레어 노트’는 ‘데미안’과 ‘싯다르타’ 등 헤르만 헤세의 구도적(求道的) 문학 세계에 매료된 독자뿐 아니라, 전 세계적 불화와 갈등이 점차 고조돼 가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뜻깊은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7-24

美 수전 케이시의 신작 ‘언더월드’ 과학과 모험이 만나는 심해 탐험기

미국의 언론인이자 베스트셀러작가인 수전 케이시의 신작 ‘언더월드-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까치)은 과학적 탐구와 모험적 서사가 결합된 논픽션이다. 이 책은 독자들을 지구 최후의 미개척지 ‘심해’로 안내한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아마존 필독서 선정 등 주요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출간 즉시 화제를 모은 책이다. 일반적으로 심해는 햇빛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수심 200m 이하의 바다로, 해양의 95%를 차지한다. 저자는 심해를 박광층(200~1000m), 무광층(1000~3000m), 심해저대(3000~6000m), 초심해저대(6000~1만1000m)로 나눠 그곳에 사는 생물과 가라앉은 난파선, 그리고 해저를 탐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들려준다. 책에서는 깊은 바다에 대한 전설, 바다에 잠든 난파선들, 최초의 잠수정 조종사의 이야기와 더불어 심해의 복잡하고 신비로운 과학적 지식들이 저자의 잠수 경험과 함께 등장한다. 특히, 낯선 만큼 기이한 심해생물들과 최첨단 잠수함, 그리고 지구의 가장 깊은 곳으로 과감히 나아가는 사람들을 생생하게 담아낸 사진들은 그간 접하기 힘들었던 심해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책은 1장에서 중세 시대 심해를 ‘괴물의 소굴’로 여겼던 편견부터 시작해, 19세기 챌린저호 탐사로 시작된 과학적 접근법, 20세기 잠수정 기술의 혁신까지 심해 연구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2~4장에서는 윌리엄 비비, 오귀스트 피카르 등 목숨을 건 탐험가들의 드라마틱한 잠수 기록과 첨단 탐사 기술이 교차하며 긴장감을 더한다. 특히 3장의 ‘열수공’(해저 분화구) 생태계 묘사와 5장의 초심해저 생물 연구는 독자들에게 낯선 세계의 신비를 체험케 한다. 6장에서는 스페인 갈레온선 ‘산 호세’ 호를 비롯한 난파선의 수수께끼를 해양고고학적 시각으로 조명하며, 9장에서는 심해 광물 채굴과 생태계 파괴 위험을 경고한다. 저자는 탐사선 ‘파이브 딥스’ 승선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 탐험가 빅터 베스코보의 북극 몰로이 해연 도전기(7장), 트라이턴 사의 잠수정 ‘넵튠’ 개발 과정(8장) 등을 현장감 있게 전달하며, 심해가 지닌 경제적·생태적 가치를 균형 있게 짚어낸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7-17

베일에 싸인 테크 제국 ‘화웨이’ 완전 해부

미국 정부가 가장 신경 쓰는 중국 기업은 어딜까? 인공지능(AI) 선두주자인 반도체기업 엔비디아가 가장 두려워하는 기업은 어디일까? 바로 화웨이다. 중국 기술 굴기의 상징인 화웨이는 미·중 무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미국의 제재를 보란 듯 뛰어넘고 있다. 삼성이 세계 1위로 입지를 다진 폴더블폰 분야에서도 2위로 바짝 추격하고 있는 화웨이를 주목할 시간이다. 신간 ‘화웨이 쇼크’(생각의힘)는 늘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던 비밀스런 테크 제국 화웨이를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창업자 런정페이의 생애와 발전사, 최신 동향이 시간순으로 서술돼 있고 주요 에피소드를 화웨이 내부 자료를 바탕으로 꼼꼼히 묘사해 이 한 권으로 화웨이라는 기업을 깊이 알 수 있다. 워싱턴 포스트’(WP) 테크 전문 기자 에바 더우의 밀착 취재로 완성된 이 책은 5년 만에 나온 화웨이 관련 도서이자 현재 가장 첨예한 이슈인 화웨이를 완벽하게 해부한 첫 책이 될 것이다. 화웨이는 일찍이 중동, 아프리카, 유럽으로 진출해 구축한 통신 장비 세계 1위라는 토대 위에서 자체 개발 스마트폰 ‘메이트’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런칭하고 압도적 내수 소비로 미국의 제재를 극복했다. 2024년 매출 역대 2위를 기록한 화웨이의 행보는 놀라웠다. 매출의 20%를 연구개발비에 쏟은 것이다. 이는 순이익의 3배 가까운 액수였다. 책은 한때 통신장비나 저가 스마트폰 제조업체쯤으로 여겨지던 화웨이가 엔비디아와 직접 경쟁하는 수준까지 성장하게 된 과정을 소개한다.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으로 화웨이를 창업한 런정페이(任正非·81) 최고경영자(CEO)가 최소 100년 정도 지속 가능한 중국 기업을 만든다는 계획을 품고 있었다고 책은 설명한다. 그는 IBM을 비롯한 외국 기업을 직접 찾아가 벤치마킹하고 자신만의 경영 전략을 수립했다. 책은 중국이 1980년대 이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혼합한 독특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인 관리 경제체제를 유지하며 이룬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 바로 화웨이라고 평가한다. 런정페이의 장녀이며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는 2018년 12월 캐나다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현지 경찰에 체포된 뒤 2년 9개월여 만인 2021년 9월에서야 풀려났다. 미 상무부는 도널드 트럼프 1기 시절인 2020년 5월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으며 작년 7월 독일 정부는 자국 주요 통신사들이 화웨이와 ZTE 등 중국 기업의 부품을 5년 이내에 5세대 이동통신(5G)에서 배제하도록 한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서구 국가들의 움직임은 적대적이지만 화웨이는 여전히 5G 장비 판매량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책은 화웨이가 내수 시장에서는 중국인의 애국심 덕을 봤고 신흥 시장에서는 수요가 꾸준히 성장해 악조건에서도 1위를 유지했다고 풀이한다. 2016년 중국에서 열린 화웨이의 P9 스마트폰 홍보 행사 무대에는 할리우드 스타 스칼릿 조핸슨이 직접 등장해 팬들을 열광시켰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7-17

편안하십니까?… 지나친 편안함이 삶을 망친다

현대인은 역사상 가장 안락한 시대에 살고 있다. 실내 온도 조절부터 풍족한 식량, 첨단 의료 기술까지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는 사라졌다. 그러나 미국의 건강 전문기자 마이클 이스터는 신간 ‘편안함의 습격’(수오서재)에서 “과도한 편안함이 오히려 건강과 삶의 의미를 좀먹는다”고 경고한다. 마이클 이스터는 알코올중독에 빠진 건강 전문 저널리스트였다. 자기파괴적이며 모순적인 삶의 패턴을 끊어내고, ‘불편한 도전’이 인간에게 진화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한 대장정에 나선다. NBA 최고의 운동생리학자를 만나 육체적으로 힘든 과제에 도전하는 훈련법의 비결을 배우고, 부탄의 종교 지도자를 만나 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죽음과 행복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 젊은 신경과학자의 연구실에서는 자연이 인간의 창의성을 확장하고, 과부하와 불안을 치유하는 방식을 확인한다. 도시 환경을 벗어나 자연에서 실질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과 연결되는 것의 중요성, 신체 활동 부족이 초래하는 건강 문제들, 배고픔은 단순한 결핍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몸이 더 건강하고 강력하게 기능하도록 하는 생존 메커니즘이라는 연구 결과들, 운동의 이점과 어떤 종류의 운동이 가장 적합한지에 대한 정보들, 그리고 디지털 연결은 증가했지만, 의미 있는 연결이 줄어든 현대인의 삶에 대해 깊이 고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직접 극한의 불편함에 놓이기 위해 33일간의 알래스카 오지 순록 사냥을 떠난다. 인간이 단 한 번도 밟지 않았던 땅이 존재하는 곳,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야생의 땅에서 뼛속까지 얼리는 추위, 힘듦, 배고픔, 더러움, 고요와 따분함 등 ‘야생으로의 회귀’를 몸소 체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불편함이 가진 효용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흥미진진하고 이색적인 사냥기와 더불어 전 세계 전문가들이 수년간 쌓아온 방대한 수치와 연구 결과들이 페이지를 오가며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저자는 자신의 여정을 “‘인간을 더 오래 살게 만드는 요소’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더 쉽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고 고백하며, ‘편안함의 습격’을 변화의 기록이라고 부른다. 이 모든 여정 속에서 이스터는 건강과 행복에 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이해하기 위해 일상에 약간의 불편함과 도전들을 받아들일 것을 권한다. 완전한 편안함보다는 적절한 스트레스와 도전은 오히려 우리를 더 강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든다. 저자는 삶의 진정한 충만함이 편안함의 울타리 밖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무감각해진 사고를 자극하고 동기를 유발해 내면에 숨겨진 야성을 발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1부 ‘아주 힘들어야 한다, 그러나 죽지 않아야 한다’에서는 생존을 위협하지 않는 수준의 고생이 신체적 강인함을 키운다고 주장한다. 2부 ‘따분함을 즐겨라’에서는 자연 속 고요가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적임을 신경과학 연구로 뒷받침한다. 3부 ‘배고픔을 느껴라’에서는 칼로리 제한이 세포 재생과 면역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최신 이론을 소개한다. 4부 ‘매일 죽음을 생각하라’에서는 부탄의 죽음 성찰 문화에서 배우듯, 유한성이 삶의 의미를 깨운다고 말한다. 5부 ‘짐을 날라라’에서는 신체적 부담이 근육과 정신력을 단련시킨다는 인류학적 증거를 제시한다. 이스터는 알코올중독과 운동 부족으로 무너졌던 자신의 삶을 복기한 뒤 “편안함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불편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여정은 자연과의 연결, 신체 활동, 정신적 성찰이 결합된 ‘불편함의 미학’을 실천하는 과정이었다. “불편함을 마주하는 것, 때로는 일부러라도 불편해질 궁리를 하는 것. 그것이 인간 본연의 생명력을 잃지 않는 지혜다.” 존 프랭클의 추천사처럼, 이 책은 기술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경각심을 일깨운다. 삶의 진정한 충만함은 안락함이 아닌, 작은 도전과 불편함 속에서 피어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독자들에게 일상의 틀을 깨는 용기를 촉구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7-17

생활 속 질문으로 풀어낸 경제학 삶 맥락 읽는 실용 도구로 재탄생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앤 루니의 신간 ‘생각보다 이상한 경제 이야기’(베누스)가 국내 번역 출간됐다. 역사, 과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탐구해온 앤 루니는 전작 ‘타임라인으로 보는 지식 대백과’에서 복잡한 지식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호평받은 바 있다. 이번 책에서는 경제학의 핵심 개념을 일상적 질문으로 풀어내며 독자들이 경제 현상을 친근하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화폐를 무제한 발행하면 왜 안 될까?”, “부의 편중은 어떻게 고착화되는가?”, “현금 없는 사회는 진정한 진보인가?”와 같은 도발적 질문들은 우리가 당연시한 경제 상식의 허점을 파고든다. 저자는 시장과 화폐의 기원부터 자본주의 메커니즘, 인플레이션의 역설, 글로벌 경제의 연결고리까지, 경제 현상을 체계적으로 해부하며 독자의 시야를 확장시킨다. 특히 “농사 짓지 않는 농부에게 지급되는 보조금” 사례를 통해 농업 정책의 경제적 함의와 사회적 논쟁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익숙한 현상의 숨은 구조를 드러낸다. 이 책은 경제학의 난해함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데 주력한다. 복잡한 수식과 전문 용어를 배제하고, 실생활에서 마주하는 문제—예컨대 디지털 화폐의 프라이버시 리스크나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 전략—를 통해 이론을 현실과 직결시킨다. 앤 루니 특유의 인문학적 통찰력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단순한 개념 전달을 넘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라는 근원적 탐구로 독자를 이끌며, 경제 활동을 인간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재해석한다. 제1부 ‘경제의 태동과 기본 원리’에서는 화폐의 탄생 배경과 시장 경제의 진화 과정을 추적한다. 세금 제도의 필연성과 국가 재정 운용의 딜레마까지, 경제 시스템의 토대를 이루는 개념들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제2부 ‘화폐의 힘과 사회 변화’는 화폐가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다층적 영향을 조명한다. 인플레이션의 양날 검, 부의 불평등 심화 메커니즘, 금융 소외 계층의 현실을 통해 경제 활동이 일상적 선택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보여준다. 제3부 ‘글로벌 경제의 역학 관계’에서는 국경 없는 자본의 흐름과 그 이면의 모순을 파헤친다. 국제 무역의 승자와 패자, 다국적 기업의 초국가적 권력, 디지털 경제 시대의 새로운 과제들을 통해 현대 경제의 복잡성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앤 루니는 이 책을 통해 경제학을 단순한 학문이 아닌, 삶의 맥락을 읽는 실용적 도구로 재탄생시켰다. 각 장마다 삽입된 일러스트는 추상적 개념을 시각화하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7-10

행복을 좇지 말고 노화를 마주하라

많은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행복’을 목표로 삼고 관련 콘텐츠에 매료되지만, 정작 행복을 추구할수록 불행해지는 역설에 빠진다. 건강한 마음과 육체가 행복의 전제 조건이라지만, 노화를 부정하는 태도는 인생을 답답함과 비애로 몰아넣을 뿐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실마리를 던지는 두 권의 신간을 소개한다. △“젊게 살려면 고집을 버려라”…‘60세부터 머리가 점점 좋아진다’(와다 히데키) 일본 최고의 고령자 전문 정신과 의사 와다 히데키(65)가 신간 ‘60세부터 머리가 점점 좋아진다’(지상사)를 통해 60대 이후 뇌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공개했다. 36년간 6000여 명의 고령 환자를 진료해온 그는 “60대는 자포자기가 아닌 전두엽 활성화를 통해 활력 넘치는 삶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와다 박사는 뇌에서 가장 먼저 노화되는 전두엽을 주목한다. 뇌의 앞부분에 있는 전두엽은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기관으로서 감정 조절, 논리 사고, 창의성을 담당하지만, 40대부터 위축되기 시작해 알코올이나 고탄수화물 식습관, 스트레스 등으로 악화된다. 전두엽 기능 저하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정보 인출 연습(단어를 끝까지 기억해내기), 일기 쓰기, 타인과의 대화 등을 추천한다. 긍정적 사고와 새로운 경험 추구도 뇌 건강의 열쇠라고 말한다. “60세 이후의 똑똑함은 지식의 양이 아닌 지혜와 응용력”이라며 “자기 인생에 희망을 품고 작은 변화라도 가능한 일을 시도하라”고 권한다. 아울러 싫은 것을 참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싫어하는 것, 또는 그런 삶과 거리를 두는 게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마음이 불편함이 생긴다는 말은 뇌에도 똑같이 부정적인 부담이 생긴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완고한 노인’이 되는 것은 전두엽 입장에선 최악이다. “‘절대로 이것만 옳다’, ‘이것 말고는 인정하지 않겠다’와 같은 옹고집은 뇌의 노화를 앞당길 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행복을 좇지 말고 불확실성을 받아들여라”···‘행복 강박’(올리버 버크먼) 영국의 논픽션 작가이자 언론인인 올리버 버크먼은 화제작 ‘행복 강박‘(북플레저)에서 현대인의 ‘행복 추구 문화’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는 행복을 목표로 삼을 게 아니라 불확실성과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할 때 진정한 행복에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30여 권의 자기계발서를 쓴 ‘행복’ 분야 권위자인 버크먼은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니얼 웨그너 교수 등 다양한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행복의 진실을 탐구했다. 이를 통해 그는 긍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실패·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끌어안고 삶의 불확실성을 직면하면 행복과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결과, 재정적·관계적·감정적 안정이 행복의 필수 조건이라는 통념이 허구임을 밝혀냈다. 연구에 따르면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도는 정체되며, 관계 개선을 위한 과도한 노력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또한 고통을 피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고통을 증폭시킨다. 그렇다면 행복으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 저자는 스토아 철학, 불교, 일본의 ‘모리타 요법’에서 해답을 찾는다. 스토아 학파는 “괴로움은 상황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판단에서 비롯된다”며 감정을 객관화할 것을 권한다. 불교는 감정을 날씨처럼 받아들이라 조언하고, 모리타 요법은 “감정 조절은 불가능하니 순응하라”고 말한다. 즉, 행복은 완벽한 상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데 있다. ‘행복 강박’은 ‘현실 도피적 행복론’에 지친 이들에게 날카로운 통찰을 선사한다. 저자는 “가장 두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음을 늘 상기하라”며 역설적으로 “불행을 대비할 때 행복이 찾아온다”고 강조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7-10

‘한흑구 수필문학의 사상과 특질’ 새 연구서 출간

한국 수필문학과 수필론의 선구자로 꼽히는 한흑구의 문학 세계를 깊이 있게 분석한 새 연구서가 출간됐다. 바로 ‘한흑구 수필문학의 사상과 특질’(아시아)이다. 이 책은 한흑구의 수필문학 연구와 분석을 집중적으로 다룬 4편의 에세이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의 문학적 면모와 수필론적 기여를 조명한다. 방민호 교수 “수필적 예술미의 가장 높은 경지를 개척해 구현” 이대환 작가 ‘한흑구 문학 약전’ ‘1936년 가을, 평양 문인 좌담’ 두 편의 특별한 자료 함께 엮어 서울대 국문학과 방민호 교수는 ‘한흑구 수필의 형식미와 예술성’에서 한흑구의 수필문학이 이론적, 방법론적 기초를 갖추고 있으며, 문학사상에 입각해 있고, 수필적 예술미의 가장 높은 경지를 개척해 구현한 점에서 다른 수필가들과 차별화된다고 평가한다. 또한, 한흑구의 대표 수필 ‘나무’와 ‘보리’를 산문시로 분석하며 그의 시적 수필의 예술성을 입증한다.신재기 문학평론가는 ‘시적 수필의 균열: 1970년대 한흑구 수필 읽기’에서 한흑구가 1970년대에 들어선 후 산문적 표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탐구한다. 그는 특히 ‘바다’라는 소재를 통해 한흑구의 수필문학이 생명과 희망, 인생의 흐름, 문학의 창조적 공간으로서의 바다를 어떻게 형상화했는지를 분석한다.대구대 문화예술학부 이희정 교수는 ‘한흑구 수필의 철학적 사유 분석: 매체와 시대적 변화 양상을 중심으로’에서 한흑구의 수필이 시대와 매체에 따라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살펴본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흑구가 민족주의적 정서를 넘어 자연물을 통한 철학적 사유를 어떻게 펼쳐냈는지를 규명한다. 대구교육대 김종헌 연구교수는 ‘한흑구 수필관의 형성 과정과 창작에의 실천’에서 한흑구의 수필론이 그의 창작 과정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를 추적한다. 특히 해방 이후 발표한 ‘수필문학론-ESSAY 형식의 고찰’(1948)에서 경수필과 연수필의 개념을 도입하고 수필을 시에 가까운 문학 형식으로 이해한 점을 주목한다. 또한, 이 연구서에는 독자들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두 편의 특별자료가 포함돼 있다. 첫째, 이대환 작가의 ‘한흑구의 문학적 약전과 그의 명작 수필 및 포항의 현장’이 수록돼 있다. 이 글은 한흑구의 생애와 주요 작품을 간략히 소개하며, 그가 활동했던 포항 지역의 문학적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둘째, 1937년 1월 ‘백광’ 창간호에 실린 ‘1936년 가을, 평양 문인 좌담’도 함께 실려 있다. 이 좌담은 1936년 가을, 평양 숭실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양주동, 이효석, 그리고 26세의 한흑구를 포함한 8명의 문인들이 참여한 대화로, 당시 조선 문단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특히 양주동이 좌담을 주도하고, 이효석은 얌전한 인상을 주며, 한흑구는 속기를 맡아 활발히 토론에 참여했다. 이 자료를 통해 독자들은 일제강점기 문인들의 고민과 생각을 엿볼 수 있으며, 한흑구의 문학적 위치와 시대적 배경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대환 작가는 “이번 세 번째 연구서는 앞서 나온 두 권과 함께 한흑구의 삶과 문학을 비춰주는, 꺼지지 않는 전등과 같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7-08

49세에 화가가 된 앙리 루소에게 배우는 삶의 태도

피카소와 고갱 등 후대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화가 앙리 줄리앙 펠릭스 루소(1844~1910)의 삶과 예술을 다룬 신간 ‘앙리 루소가 쏘아올린 공’(비엠케이)이 출간됐다. 19세기 말, 마흔아홉의 나이에 세관원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뒤로하고 전업 화가의 길로 뛰어든 루소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화가다. 예술계 인맥 하나 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개척한 그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앙리 루소는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화가가 되겠다는 열정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흔아홉에 전업 화가를 선언하고 직장을 그만둔 그는 주변의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을 추구했다. 결국 그는 예술의 선구자로 재평가되며, 피카소와 고갱 등에게 영감을 주며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미술의 문을 연 화가로 인정받았다. 현직 도슨트이자 예술학 박사인 김지명 저자는 책에서 루소의 삶을 단순히 전기적으로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늦은 시작’으로 상징되는 그의 예술 세계를 꼼꼼히 탐구한다. 루소의 대표작 30점을 선정해 해설을 곁들이고, 그의 예술적 세계를 굴하지 않는 삶의 태도와 연결 지어 풀어낸다 언제 어디서라도 간편하게 휴대가 가능한 포켓북 형식으로 출간된 이 책은 루소의 드라마와 같은 삶을 통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방법 7가지를 소개한다. 용기, 도전, 창조, 긍정, 신념, 자기애, 예술적 순수성만 있다면 언제든 삶의 방향을 다시 정립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루소의 삶은 인생의 전환점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7-03

中 전기차 혁명 심도 있게 분석

2025년,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이 62.2%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전기차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신간 ‘중국 전기차가 온다’(글항아리)는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10년간 신에너지차 개발과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를 주도한 먀오웨이 전 공업정보화부 장관의 통찰을 담아 중국의 전기차 혁명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과거 ‘자전거 왕국’으로 불리던 중국이 어떻게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게 됐는지, 그 배경에는 전략적 선택이 있었다. 내연기관차 기술 축적을 포기하고 전기차에 올인한 결단은 오늘날의 눈부신 성과로 이어졌다. 먀오웨이 장관은 “길이 차를 기다릴지언정 차가 길을 기다리게 해선 안 된다”며 전기차 기술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중국은 스마트 도로와 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이는 전기차 전성시대의 도래를 앞당겼다.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 장에서는 전기차 혁명의 배경, 연구개발, 충전소 혁신, 배터리 및 모터 기술, 다양한 전기차 모델의 특성 등을 다룬다. 또한 신흥 강자와 좀비기업, 배터리 안전 문제 등 현재 전기차 산업이 직면한 도전 과제와 미래 전망도 제시한다. 특히, 중국 정부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어떻게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들을 탄생시켰는지, 그리고 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저자는 수십조 원에 달하는 보조금과 세제 혜택, 토종 배터리 및 부품사 육성이 중국을 세계 전기차 생산·판매 1위로 끌어올린 출발점이라고 진단한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자동차 기업, 관련 단체의 빈틈없는 협력이 급속한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저자는 전기차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배터리 화재 문제, 국제 규제,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중국이 전기차 패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글로벌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전망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7-03

신과 같이 모든 걸 창조한 뇌의 ‘무한 상상력’

인류는 대부분 시간을 종교와 함께 보내온 역사를 지녔다. 인류의 삶에 왜 종교는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걸까? 영국의 진화심리학자인 로빈 던바 옥스퍼드대 진화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신간 ‘신을 찾는 뇌: 종교는 어떻게 진화했는가’(아르테)는 이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을 제시한다. ‘던바의 수’와 ‘사회적 뇌’ 가설로 잘 알려진 진화인류학자이자 인지과학 및 사회성 연구의 대가인 던바는 다학제간 연구를 통해 종교의 진화적 목적을 예리하게 추적했다. 그는 종교가 인간의 생존 전략이며,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종교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밝히기 위해 전 세계 현장 연구와 고고학적 증거를 활용한다. 던바는 종교가 단순히 비합리적이거나 비기능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건강과 복지에 기여하며 사회를 통합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강조한다. 던바는 종교의 진화론적 연구 방법을 통해 ‘왜’, ‘무엇을’, ‘언제’ 믿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종교적 신비주의 요소가 모든 종교 행동의 근간을 이루며, 종교의 사회적 기능이 바로 종교가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될 수 있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던바는 특정 종교의 관점을 취하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인 종교 경험을 대상으로 종교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밝힌다. 전 세계 현장 연구와 임상 증거, 고고학적 기록, 컬트·섹트·카리스마적 종교 지도자의 면모, 추종자의 심리 분석 등을 바탕으로 인간의 믿음에 대한 광범위한 분석을 시도한다. △종교의 진화론적 연구 방법론 던바는 종교의 기원과 진화를 뇌과학적 관점에서 탐구한다. 그는 종교의 신비주의적 요소에 주목하며, 샤먼의 예지 능력, 치유 행위, 공동체 의식 등이 삶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종교가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해 다양한 형태의 의례와 신비주의적 경험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미래를 예측하거나 치유를 제공하고, 공동체의 통과의례를 주관하며, 리더로서 공동체를 이끄는 샤먼의 역할은 전 세계적으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종교의 사회적 기능론 던바는 종교가 사회적 수준에서 인간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종교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나 환경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건강상의 이점도 있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종교 예배에 자주 참석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사망 위험이 19배나 낮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사회적 측면에서 종교는 공동체 결속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배 참석 빈도가 높을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구성원 간의 유대감이 증폭된다. 또한, 종교적 의례와 활동은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규모가 약 150명이라고 주장하며, 이 숫자가 종교 공동체의 결속력과 교회의 크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종교의 역사 던바는 인류의 종교적 성향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고고학적 발굴과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탐구한다. 그는 이라크의 샤니다르 동굴 유적지 등 다양한 유적지를 통해 초기 인류의 종교적 흔적을 추적한다. 샤먼 종교가 오랜 기간 존재하다가 약 1만2000년 전 신석기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인구가 급증하면서 교리 종교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예리코, 아인 가잘, 린도맨, 늪지 사람들, 아메리카 평원 인디언들의 사례를 통해 인구 통계학적, 경제적 변화와 함께 공동체 의례의 성격이 변했으며, 특히 도덕적 고위 신의 출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종교 분열의 메커니즘 던바는 중세의 카타리파와 베긴회, 셰이커 공동체, 20세기에 메이블 발트럽이 창설한 천년왕국 공동체 파나세아 소사이어티, 나카야마 미키의 덴리교, 짐 존스의 인민사원, 로크 테리오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캘리포니아의 천국의 문 등 다양한 컬트와 섹트 집단을 사례로 종교가 분열하는 경향과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의 역할, 그들의 열정과 동기에 숨은 어두운 본질을 연구한다.   열 장에 걸쳐 던바는 여러 역사적 증거와 과학적 증거를 활용해 종교의 진화를 다루며, 종교는 인간 사회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매우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한 ‘우정의 일곱 가지 기둥(출생지, 현 거주지, 민족성, 음악, 정치, 도덕, 종교)’에 따르면, 서로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감정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매우 강력한 요소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6-26

일본 건축물서 삶·생각을 읽다

신간 ‘일본이라는 풍경, 건축이라는 이야기’(따비)는 건축 전문가인 저자 최우용이 일본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 중 15개 도도부현에 있는 26개의 건축물을 통해 설계자의 정체성, 삶의 방향성, 건축물과 사회의 상호작용이 빚어내는 의미를 고찰한다. 일본이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소개하는 나라현의 호류지(法隆寺)부터 구마 겐고와 같은 현대 건축가가 공들여 만든 개성 있는 스타벅스 매장인 다자이후텐만구오모테산도점 건물까지 과거와 현대로 독자를 안내한다. 다양한 건축을 두루 살피기 위해, 저자는 네 개의 주제를 채택한다. 첫 번째 주제는 ‘서로 다름’이다. 서로 대립되는 혹은 조화를 이루는 여덟 개의 개념 쌍에 빗대 일본 건축을 바라보며, 일본의 건축가(현대의 유명 건축가든 이름을 남기지 않은 옛 기술자든)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런 건축을 했을까를 묻는다. 두 번째 주제는 ‘일본의 역사 속 일본 건축사’다. 거의 30년 터울로 지어진 도쿄국립박물관의 네 개 전시동은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09년에 개관한 효케이관은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시대정신으로 서구화와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당대 일본을 보여주며, 1938년 지은 (현재의) 본관은 탈아입구에서 탈구입아(脫歐入亞)로 진로를 변경하고 전통을 과시하려 했던 일본의 충만한 자신감을 반영한다. 1968년에 개관한 동양관은 보편으로서의 모더니즘과 특수로서의 일본성을 어떻게 결합하느냐를 고민하던 시대정신에 대한 건축적 대답이며, 1999년에 개관한 막내 호류지보물관은 더 이상 보편과 특수의 대비 또는 일본적 서사 등에 구애받지 않는 일본 건축의 수준을 보여준다. 도쿄국립박물관은 자체로 건축박물관이자 역사박물관인 것이다. 일본 근대 건축가 계보의 맨 위에 있는 단게 겐조는 일본 건축사를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의 건축물-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가가와현청, 국립 요요기 실내종합경기장-을 통해 건축이 시대적 요구-패전의 피해 극복, 전통의 현대적 해석, 국력의 과시-에 어떻게 응답했는지 설명한다. 세 번째 주제는 ‘지역’이다. 아열대의 섬 오키나와부터 설국(雪國) 니가타까지, 일본의 자연 및 지역성은 건축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있을까? 나고야시청에서 콘크리트블록이라는 몰개성의 건축 재료를 남국의 자연에 맞게 풀어낸 동시에 오키나와의 전통과 접목시킨 건축가들의 고민을 엿보는 한편, 니가타의 큰눈에 버티기 위해 오래전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목조의 뾰족지붕이 철근콘크리트조의 평지붕으로 바꾸고 있는 풍경에서 자연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는 건축과 기술을 성찰한다. 건축이 지역을 받아안는 방식이 그저 풍경에 안착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한국 건축물도 여럿 설계한 구마 겐고가 (아직 덜 유명했던 시절) 설계한 도치기현의 작은 뮤지엄들을 찾는다. 네 번째 주제는 ‘만남’이다. 작은 운하 위에 세워진 나가사키현미술관의 다리는 기능적으로는 운하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지만, 또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의도하고 있기도 하다. 서로 다른 문명의 만남은 새로운 양식을 만든다. 하코다테의 의양풍(擬洋風) 건물 ‘구 하코다테공회당’은 그림과 사진으로만 서양의 석조건축물을 접한 일본의 목수들이 그 외양만 흉내 내 만든 과도기적 결과물이다. 1979년에 시작돼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이 있다. 2025년까지 매년 수상자를 발표해온 이 상에서 일본은 총 8회, 9명의 수상자(2010년 공동 수상)를 배출한 최다 수상국이다. 이 책에 소개된 건축물 중에도 이 프리츠커상 수상자의 작품이 여럿 있다. 그러나 저자는 대단한 건축가의 대단한 성취를 분석하기보다 다양한 건축물이 어떤 삶의 틀이 되고 있는지를 살핀다. 건축을 관찰하면 삶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확인하게 된다.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많은 문학과 영화, 역사적 사실과 저자 자신의 일상을 엮은 이야기가 저자가 살필 건축과 어우러진 이 책은, 여행기이면서도 역사에 대한 성찰이고, 건축 비평이면서도 삶에 대한 에세이다. 건축에 관심 있는 독자는 물론, 일본 여행에 깊이를 더하고 싶은 독자에게 권한다. 저자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건축물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느끼면서 인생을 관조하는 기회를 얻어보라고 제안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6-26

“때로는 무계획도 필요해”

‘대충’이란 사전적 의미는 ‘대강을 추리는 정도’로, 완벽하지 않아도 큰 틀에서 얼추 마무리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 삶을 너무 완벽하게 하려 하지 않고, 중요한 것만 대강 챙기며 산다면 얼마나 가벼워질까? 30만 베스트셀러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하완 작가는 완벽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대충’의 의미를 재평가하며 에세이 신작 ‘대충의 자세’(웅진지식하우스)를 출간했다. 그는 첫 책 이후 7년 동안 자신에게 꼭 맞는 인생의 자세를 ‘대충’에서 찾았다고 말한다. ‘잘해야 해. 실패하면 안 돼’라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일을 망치게 했고, 저자는 이러한 경직된 자세 때문에 실패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인생이 힘든 이유는 잘못된 자세 때문이 아닐까?’라고 스스로 질문했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 하다’는 생각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던 자신을 움직이게 한 것은 ‘대충이라도 하면 다행’이라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저자는 완벽주의와 귀차니즘 사이, 최선을 다하기는 싫지만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 사이, 인생 곳곳의 실패와 이득 사이에서 얻은 깨달음을 공유한다. 남들과 비교하고 성과를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쉽게 조급해지곤 한다. 노력해도 항상 정당한 결과가 따르지 않기에 저자는 무리하지도, 게으르지도 않은 ‘대충의 자세’를 권장한다. 완벽보다 조금 흐트러진 모습이 진정한 멋이며, 애쓰지 않고 중요한 것만 잘 챙겨도 충분히 괜찮은 인생이라고 말한다. 조선의 화가 김홍도와 이탈리아 사람들의 공통점은 틀린 부분을 굳이 고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일부러 틀리게 연출하기도 한다. 김홍도의 작품 ‘씨름’에는 손이 바뀐 인물이 등장하며, 이는 단순한 실수로 보이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는 정장을 잘 차려입고 일부러 야구 모자를 쓰거나 셔츠를 삐딱하게 넣는 패션 기법으로, 완벽함보다 자연스럽고 애쓰지 않는 것이 멋이라고 여긴다. 체스터턴은 “무거워지는 것은 쉽고 가벼워지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저자는 인생을 그대로 두면 자연스럽게 무거워지며, 사람은 의식하지 않으면 진지하고 심각해진다고 말한다. 인생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힘을 빼고 가볍게, 경쾌하게 살아야 한다. 20대 시절,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야’,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야’, ‘절대 빚을 지지 않을 거야’ 등의 절대적인 결심을 했지만, 저자는 대부분 이를 지키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좋아하는 것과 가치관은 변했고,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도 시들해졌다. 계획도 마찬가지로, 1년 또는 10년 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실망만 커졌다. 그래서 저자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인 ’무계획’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인생의 변수 앞에서 좌절하지 말고, 갈대처럼 흔들리며 유연하게 살아가자고 저자는 조언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과는 달리, 변화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요소다. 변화는 유연하고 자연스러우며 갇혀 있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고쳐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원하는 대충 살기는 균형감입니다. 내가 보기에도, 남이 보기에도 적당한 정도를 아는 것. 너무 무리하지도, 너무 게으르지도 않은 절묘한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 때로는 무계획도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6-19

AI가 만든 노동착취 구조 벗어날 수 있나

마크 그레이엄 옥스퍼드대 인터넷연구소 교수와 제임스 멀둔 에섹스대 정치학과 교수가 공동 집필한 신간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흐름출판)가 출간됐다. 10년에 걸쳐 전 세계 AI 산업 현장을 추적한 두 영국 학자는 전 세계를 휩쓴 인공지능 혁명의 이면을 조명한다. AI가 ‘기술 혁신’이 아닌 ‘노동 착취 시스템’에서 발전했음을 지적하며, AI의 편리함 이면에 데이터 주석자, 콘텐츠 검수자, 물류 노동자 등의 희생을 드러낸다. 저자들은 AI를 ‘추출 기계’로 정의하며, 자본, 권력, 자원, 노동, 데이터를 흡수해 이윤을 창출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AI 훈련의 80%가 데이터 세트 주석 작업에 소요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첨단 기술의 시작점이 이상적인 연구소가 아닌 현실의 노동 현장임을 밝힌다. 저자들은 AI가 어떻게 노동을 소외시키고 창의성을 빼앗는지, 그리고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를 7명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인간은 AI에 의한 새로운 노동 착취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들은 ‘기술 감시에 대한 시민사회의 권한’, ‘알고리즘 설계에 대한 민주적 통제’, ‘플랫폼노동의 법적 보호’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우간다 굴루의 데이터 주석 작업자들: AI의 보이지 않는 노동 우간다 굴루에서는 매일 단순하고 반복적인 데이터 주석 작업이 이뤄지며, 노동자들은 시간당 1.16달러의 저임금으로 일한다. ‘갱 시스템’이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착취하며, AI는 이러한 노동을 기반으로 발전한다. AI 기술의 혜택은 고르게 분포되지 않는다. △영국 런던의 머신러닝 엔지니어: AI의 한계와 두려움 런던의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머신러닝 엔지니어는 AI가 우리를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AI에 대한 공포는 ‘알고리즘 공포증’으로 나타나며, AI의 판단이 최종적인 ‘최후의 심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러한 두려움 속에서 ‘디지털 우생학’이 발생할 수 있다. AI 시스템의 편향성과 차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다. △아이슬란드의 데이터 센터: 냉각과 전력의 중요성 아이슬란드의 데이터 센터는 AI 운영에 필수적인 냉각과 전력을 제공하며, 전 세계를 연결하는 데이터의 대동맥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구글과 같은 대기업이 아이슬란드의 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AI 군비 경쟁에서 희귀 광물 확보, 데이터 센터 건설 등이 필수적이며, 이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의 자원이 착취될 위험이 있다. △아일랜드 예술가의 고민: AI와 창작의 경계 아일랜드의 예술가는 AI가 예술에 미칠 영향을 깊이 고민한다. AI가 진정한 창의력을 가질 수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모방에 그칠지 질문한다. 예술가들은 AI가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탄생시킬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인간만의 독창성과 감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영국 코번트리의 물류 노동자: AI 감시의 현실 영국 코번트리의 물류 창고에서는 AI 감시가 일상화돼 있으며, 물류 노동자들은 AI 시스템에 의해 철저히 관리된다. 아마존의 물류 시스템은 대표적인 사례로, 노동 강도를 높이고 자율성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 이에 맞서 노동자들은 기계를 멈추고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케냐 나이로비의 노조 활동가들: 데이터 노동자의 권리 찾기 케냐 나이로비에서는 오픈AI와 같은 테크 기업의 아웃소싱 회사 전·현직 콘텐츠 검수원 150여 명이 모여 ‘아프리카 콘텐츠 검수원 노조’를 결성했다. 이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으며, 국경을 넘어 연대해 데이터 산업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노동 전략: 기계 재설계하기 AI 시대를 맞아 노동 전략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노동조합과 노동자 조직의 집단적 힘을 강화하고, 시민사회가 기업을 견제하며 책임을 묻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엄격한 규제를 도입해 AI 기술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기술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6-19

재무철학자가 전해 주는 ‘삶의 속도 조절법’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고 싶은 이들에게 따뜻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는 에세이집이 출간됐다. ‘조금씩 가는 삶 멀리 가는 삶’(남경우 지음, 도서출판 학이사)은 저자 자신의 꾸준한 실천을 통해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만드는 삶의 태도를 진솔하게 담아냈다. 저자는 안정된 은행 과장직을 과감히 내려놓고, 정년이 없는 보험설계사의 길을 택해 30년 넘게 한 분야를 걸어왔다. 고령 사회로 접어든 시대에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무너지는 현실 속에서, 그는 100세 시대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 위한 실천적 해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단기간에 성공한 사람들의 책 100권을 분석하며, 그들 삶의 공통점으로 ‘새벽 기상’, ‘조깅’, ‘독서’를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일상에 적용했다. “닭이 울기 전에 하루를 준비한다”, “하루 한 번 땀을 흘린다”, “내 밥그릇은 내가 챙긴다”, “백 살을 살 것처럼 산다”, “은퇴는 없다”라는 다섯 가지 삶의 원칙을 세우고 이를 꾸준히 실천해 온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보험영업인’이 아닌 ‘재무철학자’로 정의한다. 학이사 신중현 대표는 “이 책은 ‘재무철학’이라는 짧은 팁을 곁들여 독자들에게 실용적인 경제 상식과 자기경영의 힌트를 함께 전한다”며 “잔잔한 문체를 통해 백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기 삶을 어떻게 설계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남경우 재무철학자는 보험영업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퇴직 예정 경찰공무원, 대학생, 중소기업 직원 등을 대상으로 한 재무교육과 자기경영 특강을 통해 사회적 환원의 삶도 함께 실천하고 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5-06-18

한국 수필문학 거장 한흑구 유고집 발간

‘단 한 편의 친일문장도 남기지 않은’ 작가로 유명한 한흑구(1909~1979)의 수필집 ‘뻐저리 아저씨’가 출간됐다. 이 산문집은 오래된 잡지와 신문에 흩어져 있던 글들을 모아 한 권으로 묶었다. 생전에 출간된 수필집 ‘동해산문’(1971), ‘인생산문’(1974)에 이어 반세기를 넘어 세상에 나온 ‘한국 수필문학과 수필론의 선구자’ 한흑구의 제3 수필집이자 유고집이다. 수록 작품은 모두 50편으로, 전반부에는 평양이나 미국 유학과 관련된 수필을 배치하고, 후반부에는 포항의 삶에서 우러난 수필을 거의 발표한 시계열에 맞도록 앉혀놓았다. 평양 안내지도를 그렸다고 평해도 좋을 ‘모란봉의 봄’이나 첫사랑의 스웨덴계 여대생 ‘루스 알바’ 를 회억하는 글에서 만나게 되듯이 전반부의 작품들에는 돌아갈 수 없는 평양과 청춘 시절이 내면의 호수에 잔잔히 물살을 일으키고, 후반부의 작품들에는 동해바다, 영일만 갈매기, 수평선, 하 늘, 구름, 나무 같은 자연의 체온이 고독한 은둔의 사색을 감싸고 있다. 문학인의 시선은 맨 앞에 놓은 ‘1936년 11월 중순의 소설가 이광수·이기영·이태준’에 한참 머물 것이다. 미국 유학을 중도 하차하고 평양으로 돌아온 창창한 스물여섯 살의 한흑구가 주도하여 전(全) 조선을 상대로 펴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평양의 문예중심 종합 월간지 ‘백광’ 창간호(1937년 1월)에 실린 글이다. 특히 이광수와 이기영, 그때 우리 소설문학을 떠받친 두 작가의 생활 실태는 마치 고대광실과 초가삼간을 나란히 세운 것처럼 대조적이다. 아직은 친일문학으로 미끄러지지 않은 조선 문단의 대표 작가 이광수, 해체된 KAPF의 대표 작가로서 감옥을 드나들고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고항’으로 문명을 떨친 이기영···. 그러나 그러한 대조적 실태의 전후 맥락과는 또 무관하게 포항의 한흑구가 노년기에 소환해온 일제 때 평양의 ‘뻐저리 아저씨’ 같은 무명 존재도 제대로 만나봐야 못난이처럼 비치는 사람의 떳떳한 긍지와 그를 대하는 참된 겸손에 대하여 새삼 헤아리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흥사단을 조직하고 상해임시정부 초기에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를 맡았으며 1937년 이광수, 한승곤(한흑구의 부친), 주요한, 한흑구 등과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병을 얻어 이듬해 서거한 도산 안창호(1878~1938), 미국 유학생 한흑구가 선생의 로스앤젤레스 자택에 머물렀던 기억을 정리한 ‘안창호(安昌浩)씨 가정 방문기’는 이번 수필집에서 들머리 부분을 ‘전략’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남겼다. 저자 흑구(黑鷗) 한세광(1909~1979)는 평양에서 태어나 보성전문학교를 거쳐 미국에서 영문학 등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고향 평양에서 문예지 ‘백광’을 창간해 운영하다 광복과 함께 남하해 1948년 포항에 둥지를 틀었다. ‘현대미국시선’을 펴냈고, 포항수산초급대학(지금의 포항대학) 교수를 지내며 시·소설·평론 글을 썼다. 이효석·유치환·조지훈·서정주 등과 교유했다. 편집을 맡았던 이대환 작가와 김도형 작가는 “국회 도서관, 서울대 규장각, 고서적 전문 서점, 고서적 수집가 등 뒤져볼 만한 곳은 다 뒤져서 간신히 1937년 2월에 나온 ‘백광’ 제2호 한 권을 찾았는데, 거기 실린 한흑구 선생의 그 글에서 하필 시작하는 첫 장만 도둑맞은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6-16

급변하는 에너지 정세와 우리의 자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취임 이후 매일같이 뉴스를 쏟아내며 전 세계 질서를 흔들고 있다. 그는 세계 70여 개 나라에 상호 관세를 부과하며 이를 ‘미국 해방의 날’이라 명명했다. 이러한 조치는 달러화 가치 하락과 무역수지 개선을 목표로 하며, 궁극적으로 미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부활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트럼프 2기는 국제 유가를 배럴당 60~70달러 수준으로 고정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그의 주요 기부자들 중 상당수가 석유 및 천연가스 개발 기업이라는 점에서 지나치게 낮은 유가가 오히려 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간 ‘트럼프 2.0과 에너지 대전환(석탑출판)’은 격변기를 맞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대한 심층적인 해석과 전망을 제공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와 제안을 담고 있다. 국내 에너지경제 분야의 권위자인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 융합학과 교수와 에너지와 산업 분야를 20년 넘게 담당한 이재호 내일신문 전문기자가 오랜 기간 쌓아온 지식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에너지 정세와 우리나라의 대응 방안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펼친다.  이 책에 따르면 에너지는 생존의 문제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은 에너지 안보, 탄소 중립, 성장이라는 삼각 편대다. 첫째,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93.6%에 달하므로 에너지 안보는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가치다. 둘째, 파리협정 이후 2020년 팬데믹을 거치면서 탄소 중립 과제가 급부상했다. 그 어느 국가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으므로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실용적인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셋째, 2025년 시작된 트럼프 2기 정부는 우리에게 위기 속 성장이라는 과제를 던져줬다. 우리나라는 ‘고탄소 시대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저탄소 시대 선도자(First Mover)’로 나아갈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에너지 공급 측면에서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의 역할을 실용적으로 재조명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원자력발전의 신규 원전 건설 지연 및 노후 원전 수명 연장 등의 어려움을 고려하면 LNG 발전을 브리지 연료로 잘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  또한 트럼프 2기 정부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역내 국가와의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 청정 수소·암모니아 공동 개발, 동북아 ‘슈퍼 그리드(거대 규모의 전력망)’의 출발점으로 한일 전력 계통 연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저자들은 트럼프의 복고적 에너지 정책에 발맞출 필요도 있지만 파리협정 이후 2020년 팬데믹을 거치면서 탄소 중립 과제가 급부상한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특히 에너지 공급 측면에서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의 역할을 실용적으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아울러 트럼프 2기 정부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역내 국가와의 협력 강화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과 사람들’에서는 트럼프 2.0 시대의 에너지 정책 목표와 미국의 에너지 시장 현황을 다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서명한 행정명령들을 분석하며, 특히 석탄 산업 부활과 에너지 독립을 목표로 한 정책들을 설명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주요 인사들, 더그 버검 내무부 장관,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등의 역할과 비전을 소개한다.  2부 ‘에너지 안보·에너지 전환·보호무역주의 시대’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주요 동향과 시나리오별 전망을 제시한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 러시아, 중동 등 주요 국가들의 에너지 정책과 전략을 비교 분석하고, 각국의 에너지 패권 변화를 설명한다.   3부 ‘대한민국 에너지 산업의 도전과 과제’는 한국의 에너지 시장 현황과 문제점을 진단하며, 2024년 기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3.6%에 달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한국과 일본의 에너지 여건 유사성을 바탕으로 공동 사업 필요성을 강조하며, 청정 수소와 암모니아의 공동 개발 및 도입 방안을 제안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6-12

활기차고 독립적인 ‘인생 후반전’을 위한 조언

스스로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구나 인생의 끝자락에 결국 혼자인 삶을 마주하게 된다. 노년에도 비혼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거나 자녀가 곁에 없는 상황도 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3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1인 가구는 무려 213만8000가구에 달한다. 누구나 언젠가는 혼자가 될 수 있고 따라서 혼자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홀로 나이 든다는 것’이 반드시 고독하게 나이 든다는 뜻은 아니다. 건강과 경제적, 심리적인 부분에 대해 충실히 준비해두면 ‘나를 위한 인생 후반전’을 멋지게 보낼 수 있다. 대만에서 치매 치료의 권위자이자 4050세대의 롤모델로 인기가 높은 류슈즈는 전문적인 의학 지식과 직접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며 쌓은 연륜을 신간 ‘혼자 사는 연습을 합니다’(미래의창)에 함께 녹여냈다. 저자는 노년의 혼자 된 삶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활기차고 독립적인 인생 후반을 위한 따뜻하고 유쾌한 조언을 건넨다. 또한 노년을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노년에 걸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질병이나 건강 관리에 관한 의학 지식도 상세히 담았다. 1장에서는 노년에 혼자 지내도 외롭지 않은 생활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저자는 컴퓨터, 휴대폰, 가전제품 등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노년 생활의 질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꾸준히 친구들과 교류하면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기존의 취미를 즐기면서 새로운 취미도 만들어보기를 권한다. 2장에서는 노년에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인 치매에 대해 자세히 다룬다. 저자는 ‘인지 예금’을 충분히 저축해두면 뇌에 알츠하이머 병변이 있어도 생전에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인지 예금’이란 후천적인 교육 수준, 활발한 두뇌 활동 등의 지적 활동, 운동, 양질의 수면, 사교 활동 등 건강한 생활 방식을 가리킨다.  3장에서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노년의 운동법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움직일수록 활력이 넘친다’고 말하며 무엇보다도 ‘걷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 야외 활동이나 여행을 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4장에서는 노년의 강력한 보호막이 돼줄 긍정적인 마음가짐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나이가 드니까 여기저기 아프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이 들어서야 아프기 시작하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마음가짐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고 이야기하며,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긍정하는지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5장에서는 요통, 불면증, 당뇨, 뇌졸중 등 노년에 걸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질병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친구가 아플 때와 내가 아플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나 의료에서의 나이 차이, 남녀 차이에 대해서도 다룬다. 특히 저자는 약물 작용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므로 절대 약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서는 안 되며, 병에 대해 혼자 추측하지 말고 반드시 의사에게 진료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인 류슈즈는 타이베이룽민 종합병원 신경과 전문의, 양밍자오퉁대학교 신경과 교수로 30년 넘게 일하며 치매 치료의 권위자로 이름을 알렸다. 59세에 은퇴한 이후에는 의사와 환자의 소통을 돕는 다리가 되는 것을 모토로 삼고, 건강과 노년의 삶에 대한 칼럼과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니며 바쁘게 살고 있다. 젊을 때 못지않게 왕성하게 활동 중인 그는 팟캐스트 채널을 운영하며 녹음부터 편집까지 혼자 도맡아 한다. 2018년에는 소설을 발표하고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류슈즈는 70대인 지금도 혼자이지만 편안하고 멋진 삶을 즐기고 있다. 그는 다음의 ‘활기차고 독립적인 노년을 준비하는 여섯 가지 방법’을 제시하며 이를 충실히 준비하고 연습하면 혼자 나이 들어도 즐겁다고 말한다. 첫째. 경제적 독립을 이뤄 남에게 손 벌리지 않아야 한다. 둘째, 몸을 건강하게 가꾸고 아플 땐 꼭 치료를 받는다. 셋째, 오랜 우정을 유지하되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넷째,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다섯째, 기존의 취미를 즐기면서 새로운 취미도 만들어본다. 여섯째, 노년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6-12

어머니의 추억, 끝없는 사랑 담은 이재춘 시인 첫 시집 ‘엄마를 입다’

“엄마도 여자였다/ 고운 옷 입고/ 얼굴에 동동구리무 바르고/ 꽃밭 가꾸며 예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보리 까끄라기 살갗 파고드는/ 아픔은 참을 수 있어도/ 자식들 배고픈 것은 못 참는다// 곳간에 양식이 간당간당할 때면/ 어머닌 머릿수건 둘러쓰고/ 청보리밭으로 달려간다// 야속한 세월/ 야속한 보릿고개// 봄바람에 출렁이는/ 청보리밭 푸른 파도에/ 어머니 청춘이 실려 간다/ 헐렁한 몸빼 바지 바람에 펄럭인다” -이재춘 시 ‘청보리’ 경주에서 공인중개사로 활동하는 이재춘(72) 시인이 첫 시집 ‘엄마를 입다’(생각나눔)를 펴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 활동을 해온 그는 10년 넘게 지은 시 중 100편을 모아 이번 시집을 구성했다. 이 시집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주제로 하며, 시인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어머니의 따뜻한 온기를 시로 표현했다. 시인은 ‘엄마를 입다’, ‘밥상에 피는 행복의 꽃’, ‘향수’, ‘봄 향기’, ‘들어내지 못한 바윗돌’ 등 5장에 걸쳐 10여 년간 다듬어 온 시어를 통해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을 묘사하며, 자식이 부모의 진정한 마음을 깨닫기까지의 여정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이재춘 시인은 보릿고개 시절을 살아오며 가족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백한 시어로 담아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시인은 ‘엄마를 입다’, ‘엄마는 즉결 판사’, ‘시효 지난 효도’, ‘엄마는 만능 의사’ 등의 시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무한한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깨달음은 자식의 숙명이라고 시인은 강조한다. ‘엄마를 입다’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 속에서도 정신적인 감성에 굶주린 현대인들에게 부모의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시인의 진솔한 기억과 감정이 녹아 있어 독자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은 단순한 독서 경험을 넘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한다. 이재춘 시인은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도 자식들에게 새 옷을 입히기 위해 자신의 털옷을 풀어 옷을 짜주셨고, 그 안에 따뜻한 사랑을 함께 담으셨다”며 “세월이 흘러도 그 온기는 여전히 내 몸을 감싸고 있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5-22

왜 자꾸 먹고 싶을까… 뇌 과학으로 풀어낸 식탐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감정적으로 불안할 때, 우리는 종종 음식에 대한 강한 욕구를 느낀다. 이러한 식탐은 단순한 배고픔 이상의 것으로, 특정 음식에 대한 갈망이나 충동을 포함한다. 이는 뇌가 스트레스나 감정 상태에 반응해 특정 음식을 찾도록 학습한 결과다. 따라서 의지력만을 탓하며 억지로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뇌의 습관 회로를 이해하고 이를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적 중독 심리학 분야의 권위자이자 신경과학자인 저드슨 브루어 박사의 ‘식탐 해방’(푸른숲)은 식습관이 형성되는 기전과 이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다룬다. 그는 뇌 과학 및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식습관의 기전을 설명하며, 식품 산업이 어떻게 우리의 식습관을 조작하는지, 그리고 칼로리 제한이 왜 항상 효과적이지 않은지를 지적한다. 또한, 마음챙김을 통해 현재 순간에 집중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인식함으로써 식습관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식탐 해방’은 크게 이론 파트와 실전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Part 1. 식습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는 뇌과학과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우리 뇌가 식습관을 결정하는 기전을 먼저 살펴보고 소위 블리스 포인트를 자극해 우리를 음식 중독으로 이끄는 식품산업계의 꼼수와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칼로리 제한 식단 계획, 측정 및 추적 행위의 역설을 짚어주면서 ‘다이어트와 건강한 식습관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의지력’이라는 통념을 깨부순다. ‘Part 2. 식습관을 재설정하는 21일간의 도전’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비롯해 그간의 임상 사례를 바탕으로 기존의 식습관 대신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식습관을 구축할 솔루션을 제시한다. 문제가 되는 식습관 회로를 분석한 다음 이를 대체할 건강한 식습관을 새롭게 설정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안내하는데, 특히 ‘마음 챙김’의 효과를 연구와 임상을 통해 입증해 예일대학교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마음 챙김 센터에서 교수직을 역임한 바 있는 저자가 소개하는 구체적인 실천법들은 지금 바로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만, 그 효과는 탁월하다. 저자가 제안하는 식습관을 바꾸기 위한 3단계는 △현재의 식습관 패턴을 분석하고 도식화한다 △뇌에서 식습관의 보상 가치를 바꾼다 △더 높은 보상 가치를 가진 행동을 찾아 새로운 식습관을 설정한다 등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친절이다. 자신을 책망하기보다는 몸의 신호를 잘 듣고,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마음챙김과 자기 친절을 통해 우리는 식탐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5-22

부와 권력으로 기울어진 세상… 우리는 평등한가

‘부와 권력은 왜 불평등을 허락하는가.’ 지난해 5월, 세계적인 두 사상가 토마 피케티와 마이클 샌델이 파리경제대학에서 만나 가진 토론 내용이 책으로 정리돼 나왔다. ‘기울어진 평등’(와이즈베리)이라는 신간이다. 두 사상가는 ‘평등과 불평등, 진보’를 키워드로 평등의 가치를 성찰하고, 불평등이 왜 문제인지, 우리를 둘러싼 각종 격차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토론을 펼쳤다. 두 저자는 불평등의 세 가지 측면, 즉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을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지금 우리를 둘러싼 세계화와 능력주의, 불평등한 기본재 접근권, 기울어진 정치 참여, 사라진 노동의 존엄성 등 다양한 문제를 심도 있게 파헤친다. 책에 따르면 샌델과 피케티는 토론을 통해 100년 전, 200년 전의 평등을 향한 여러 사회 운동이 사회의 진보를 불러왔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자유 무역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경제체제와 삶의 지나친 상품화가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등을 향한 움직임이 더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샌델과 피케티는 세 가지 차원의 불평등과 관련해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심도 있게 파헤친다. 책에 의하면 교육과 의료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기본재가 돼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지나치게 상품화되면서 아무나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워졌다. 주택과 공공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능력주의를 통해 헤쳐나가라고, 즉 학력을 높이는 것으로 개인의 상향 이동을 꾀하라고 권한다. 그러면 경쟁에서 승리해 필요한 것들을 얻을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과연 대학 학위만 있으면 우리는 모두 잘살고 능력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과거의 수사가 돼버렸다. ‘개천룡’은커녕 샌델과 피케티가 지적한 대로, 이제 우리는 학위가 없는 사람들을 게으르고 능력 없다고 낙인찍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두 사람은 말한다. 지금 시대는 ‘노동의 존엄성’은 인정받기 힘들며, 우리 사회를 지탱해왔던 연대의 개념은 사라지고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사회의 여러 계층이 섞이는 기관들은 갈수록 감소하고, 부자들과 가난한 이들이 평소 살아가면서 마주칠 일도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샌델과 피케티는 경제적 격차와 정치적 격차보다도 사회적 격차가 제일 문제라고 진단한다. ‘노동의 존엄성’이 사라져 대학 학위 없이도 공동선에 값진 공헌을 하는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인정이 부족하고, 명예와 존중이 부족한 것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선 앞선 경제적 격차와 정치적 격차를 해결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격차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샌델과 피케티는 교육과 의료를 포함한 기본재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투자, 더 높은 누진 과세 체제, 부유층의 정치력 통제, 기업에서의 노조 역할 확대, 대입과 선거에서 추첨제 활용, 시장의 과도한 확장 억제 등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러한 해결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추진할 수 있을까? 실제로 두 사람이 내놓는 대안들은 대담하다 못해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5-22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다

“침묵은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다. 말은 비우고 마음을 담아라.” ‘무소유’로 깊은 울림을 남기고 떠난 법정(1932∼2010) 스님의 글을 엮은 ‘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열림원)가 출간됐다. 이 책은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깊은 울림을 전하는 법정 스님의 글 중 일부를 엄선해 담아낸 것으로, 책 제목부터 우리에게 깊은 사유를 건넨다. ‘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는 역설적인 문장은 말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말 이전의 고요함과 존재의 본질을 성찰하라고 권한다. 이 책은 단순히 침묵의 미덕만을 말하지 않는다. 법정 스님은 침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단순한 삶을 실천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통해 인간 본연의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침묵을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라고 말하며, 침묵을 통해 말의 무게를 되새기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법정 스님은 이러한 침묵의 태도와 맞닿아 있는 삶의 자세로 ‘단순함’을 강조하며, 비움과 절제를 통해 진정한 풍요를 일구는 길이라 말한다. 그리고 자연은 말없이 존재함으로써, 인간에게 삶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고요한 스승이라 여긴다. 침묵은 사색을 가능하게 하고, 진실한 말이 자라나는 공간이 된다. 법정 스님은 “침묵은 말의 뿌리이며, 진정한 말은 침묵 속에서 여문다”고 강조한다. 침묵 속에서 태어난 말은 소음이 아닌 메아리로 남는다. 침묵은 외부로 향한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고, 마음속 불필요한 소음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그 고요 속에서 새로운 생각과 감정이 여물고, 말은 줄어들되 더욱 깊어진다. 침묵은 우리에게 조용히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삶의 속도를 늦추고 진실한 존재로 살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스님은 물, 나무, 꽃, 새, 바람, 하늘 등 자연의 요소들을 자주 인용하며 그 안에 담긴 생명의 지혜를 전한다. 예컨대 물처럼 낮은 곳에 머무르며 다투지 않고, 조용히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는 삶은 그가 말하는 이상적인 삶이다. 스님은 말한다. “자연 앞에 다시 무릎 꿇고 겸손해져야 한다.”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존재의 뿌리를 인식하고 생명의 근원 앞에 자신을 낮추는 깊은 철학적 태도다. 자연과 가까이하는 삶은 인간을 정화하고,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회복시킨다. 산길을 걷고, 숲에서 반딧불을 바라보고, 바람 소리를 들으며 스님은 자연과 함께 살아왔다. 자연은 법정 스님에게 명상의 공간이자 깨달음의 경전이었고, 무엇보다 언어를 초월한 침묵의 스승이었다. 이번 책에는 ‘빛의 화가’로 불리는 세계적인 예술가 김인중 신부의 미공개 작품 30여 점이 실려 법정 스님의 글과 깊은 공명을 이룬다. 그는 법정 스님의 정신에 깊이 공감하며, 그 뜻을 담아 정성껏 작품을 선별하고 작업에 참여했다. ‘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는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지만, 결국 단 하나의 답을 향한다. 덜어내고, 멈추고, 그리고 귀 기울이라는 것. 우리가 잃어버린 고요함을 되찾고, 복잡한 삶에서 잠시 물러설 때, 비로소 자연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짜 삶의 의미에 가까워진다. 법정 스님은 “수행자는 말을 하려고 할 때 먼저 세 번 돌이켜보아, 자기 자신이나 남에게 득이 된다면 말을 하라. 그러나 자신과 남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면 입을 열지 말라”고 옛 선사의 가르침을 들려준다. 스님은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 말을 해서 후회되는 일이 훨씬 많다”는 스님의 질문은 긴 여운을 남긴다. 말이 많아질수록 진정한 소통은 사라지고, 마음은 오히려 공허해진다. “삶은 소란한 언어가 아닌 고요한 침묵 속에서 자라고, 지나친 욕망이 아닌 단순한 자족 속에서 꽃피며, 인공의 세계가 아닌 자연의 품에서 충만해진다.” 말이 넘치고, 물질이 범람하며, 속도가 지배하는 오늘날, ‘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는 우리를 정반대의 삶으로 이끈다. 멈추고, 비우고, 귀 기울이며, 감사하는 삶으로.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