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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서 마주한 삶의 풍경과 사색 고스란히 담아”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5-11-27 17:21 게재일 2025-11-2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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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출신 안도현 시인 열두 번째 시집
“일상의 소소한 것들 시가 되어 다가와”
내년엔 동시집···"자유롭게 글 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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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 /연합뉴스

경북 예천 출신의 안도현(64) 시인이 5년 만에 열두 번째 시집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문학동네)를 출간했다. 1981년 등단해 시력 45년을 바라보는 그는 동시, 동화, 산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시집은 2020년 고향 예천으로 귀향한 후 쓴 작품들을 묶은 것으로, 타향살이를 마치고 고향 땅에서 마주한 삶의 풍경과 사색이 고스란히 담겼다.

안 시인은 2020년 4월 전주 생활을 접고 고향 예천으로 돌아왔다. 마당, 텃밭, 연못이 있는 집에서의 일상은 이전과 다른 시적 영감을 선사했다. 그는 “아파트 허공의 둥지에서 살다가 땅에 착지한 느낌”이라며 “새소리, 풀 뽑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시가 되어 다가왔다”고 말한다. 시집에는 닭 키우기, 풀 뽑기, 장에서 열무씨 사기 등 소박한 농촌 생활이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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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펴냄, 안도현 지음, 시집

예를 들어 ‘풀 뽑는 사람’에서는 “책에 밑줄 긋는 일보다 풀 뽑는 일이 천배 만배 성스럽다”며 자연 속 노동의 가치를 되새긴다. ‘꽃밭을 한 뼘쯤 돋우는 일을’에서는 친구가 “시인은 원래 이렇게 쓸데없는 일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시인이 추구하는 ‘쓸모없음의 미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집 제목부터가 그렇다. ‘쓸데없다’는 부정적 의미를 ‘눈부시다’는 긍정적 표현과 병치시켜, 하찮아 보이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안 시인은 “유용성과 경제적 가치만을 좇는 사회에서, 정작 소중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라 말한다. 그는 “무의미한 것 속에도 의미는 존재한다”며 시를 통해 일상 속 사소한 순간들을 재발견하려 했다.

특히 팬데믹 기간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쓴 ‘유리 상자’는 이별의 아픔과 동시에 “죽음이 세상을 털어내는 시원함”일 수 있다는 역설적 통찰을 담았다. 어머니의 부재 이후 “글과 행동이 더 자유로워졌다”는 시인의 말에서, 상실 뒤에 찾아온 창작의 여유가 엿보인다.

안 시인은 이번 시집 작업에 대해 “의도나 결론을 밀어두고 언어 자체를 따라가려 했다”고 설명했다. 과거 사회적 메시지에 무게를 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말의 빛깔과 물기를 자유롭게 마주하는 데 집중했다”는 것. 그는 “시인은 말을 앞질러 가면 실패한다”며 “언어가 이끄는 대로 흘러가게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안 시인은 후배들에게 “남의 시를 분석하지 말고 언어 자체의 차이를 느껴보라”고 조언한다. 그는 “시인을 의식하거나 메시지를 찾지 말고, 시어가 가진 독특한 색채를 즐기라”고 강조한다. 또한 “시적 대상이 사라질수록 더 선명해진다”며 고향의 옛 역 ‘고평역’이나 어린 시절 기억을 소재로 삼은 시편들을 소개했다.

문학관에 대해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은 무용하기에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김현 문학평론가의 말을 인용하며, “무의미와 유의미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 설명했다.

올해 초 단국대 교수직을 퇴임한 안 시인은 텃밭 가꾸기와 글쓰기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내년에 동시집을 출간할 예정”이라며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1996년 베스트셀러 ‘연어’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그는 “한 작가가 한 장르만 고집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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