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인류 번영은 멸종의 씨앗이 되었나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5-10-23 16:14 게재일 2025-10-24 14면
스크랩버튼
번영의 정점 찍은 호모사피엔스
기후 위기·자원 고갈·질병 만연
선진국 중심 출산율 감소 가속화
"1~2세기 안에 달이나 화성 등 
우주 식민지 개척 유일한 대안"
Second alt text
까치 펴냄, 헨리 지 지음, 인문

영국왕립학회 과학도서상 수상자인 영국의 저명한 고생물학자 헨리 지는 신간 ‘인간제국 쇠망사’(까치)에서 인류의 흥망성쇠를 거시적 시각으로 조망한 역작을 통해  “인류는 멸종할 수밖에 없다”는 도발적 주장을 펼치며 이를 체계적으로 논증한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 종(種)으로서 번영의 정점을 찍었지만, 로마 제국이 그랬듯 화려한 성공이 오히려 쇠퇴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책은 ‘로마 제국 쇠망사’를 집필한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의 통찰을 인류사에 적용해 “한 종이 멸종하는 시점은 정점에 올랐을 때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는 충격적 메시지를 전한다.

△제1부: 인류의 부상-정점으로 향하는 질주
저자는 약 5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인간 종들과 경쟁하던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직립보행과 도구 사용, 사회적 협력 능력으로 무장한 인류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를 비롯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유일한 인간 종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농업혁명(약 1만 년 전)은 인구 폭발과 문명 발전의 기폭제가 됐다. 식량 생산이 안정화되면서 인구는 급증했고, 기술과 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성취가 ‘생태계에 대한 과도한 착취’의 시작이었음을 지적한다. 농업은 토양 침식과 생물 다양성 감소뿐 아니라 질병의 온상이 되었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제2부: 쇠락의 징후-번영의 대가를 치르다 
인류의 황금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저자는 기후 위기, 자원 고갈, 감염병 확산을 현대 문명의 3대 위기로 규정한다.
저자는 1만 년 만에 처음으로 둔화된 인구증가율을 예로 들며, 우리가 몰락의 길 어디쯤에 와 있는지 파악하려면 번영의 절정 직후부터 나타난 균열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농업혁명이 풍요와 인구증가를 이끌었지만 동시에 건강 문제, 사회적 불평등, 작물 종 다양성 감소 등 예상치 못한 희생을 강요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출생률 감소, 정자 수 감소, 기후변화와 자원 고갈 등 복합적 위기들이 사회 구조 전반을 뒤흔드는 경고 신호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이미 시작된 인구증가율 하락세가 금세기 말까지 인구 급감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러한 추락이 현실화되면 인류는 절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농업의 역설과 인구 감소, 환경 파괴의 악순환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농업은 풍요를 가져왔으나 정착 생활로 인해 질병이 만연해졌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출산율이 급감하며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이 필요하지만, 노벨상 수상자나 혁신가를 배출하려면 수십억 인구의 문명이 필요하다”는 말로 문명 쇠퇴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화석 연료 의존과 탄소 배출이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며, 이는 극단적 기상 재해와 생태계 붕괴로 이어진다. 저자는 “자연에 이토록 광범위한 위협을 가한 종은 인류뿐”이라며 “멸종의 낫질이 더 빨라질 것”이라 강조했다.

Second alt text
헨리 지는 신간 ‘인간제국 쇠망사’에서 로마 제국 비교, 농업 역설, 기후 위기로 인한 복합적 멸망 경고를 제기하며 우주 식민지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사진은 우주비행사들이 외계 행성을 탐사하고 있는 모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제3부: 탈출구 모색-우주에서 미래를 찾다
헨리 지는 인류가 멸망을 피하려면 새로운 진화적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구 내에서 종 다양화를 이루기에는 이미 호모 사피엔스가 단일 개체군으로 고착화된 상태다. 그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우주 진출이다. 저자는 “우주 식민지 개척을 1~2세기 안에 준비해야 한다”며 “달이나 화성 등 다른 행성에 고립된 개체군을 형성해 새로운 종으로 분화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 강조한다. 이는 SF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생명의 역사가 위기 속에서 길을 찾아온 기록”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이라고 덧붙인다. 다만 이 과정은 막대한 기술적 도전과 사회적 결단을 필요로 한다.

“우주 개척은 말처럼 쉽지 않다. 아직 태동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신기술과 인간이 가진 남다른 상상력과 생명력만이 그 돌파구를 열어줄 수 있다. 생명의 역사는 곧 위기 속에서 길을 찾아온 기록이며, 우리 눈앞에 펼쳐진 상황도 그러한 위기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이미지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