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장 들뤼모 ‘낙원의 역사’
중세 이후 서양 기독교 문명의 공포와 죄의식을 연구해온 프랑스 역사학자 장 들뤼모가 낙원 개념의 역사적 변천을 추적한 책 ‘낙원의 역사’(앨피)가 번역 출간됐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에서 출발한 낙원은 수메르·그리스 신화와 결합해 ‘지상 정원’으로 구체화됐고, 이 탐색 열망이 르네상스와 대항해 시대를 촉발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중세 학자들은 낙원을 아르메니아나 메소포타미아 등으로 지도화해 콜럼버스·마젤란의 탐험을 이끌었다.
당시 성직자들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논증하며 금단의 땅에 대한 집착을 부추겼고, 16~17세기 학자들은 과학적 증거로 낙원의 실재를 입증하려 했다. 그러나 화석 발굴과 다윈의 진화론은 지리적 낙원 신화를 붕괴시켰다. 저자는 “과학적 패배 후 유토피아 사상과 예술적 상상력이 그 자리를 채웠다”며 낙원 상실 서사가 서구인의 죄의식과 멜랑콜리를 심화시켜 루소의 ‘자연 상태’나 칸트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낙원 3부작의 첫 권인 이 책에서 저자는 “서양 문명은 금지된 행복과 잃어버린 낙원을 찾는 순례”였다고 결론짓는다. 단순한 종교적 도피처가 아닌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인간 정신의 투영으로서 낙원의 의미를 재조명한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