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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위해 자신을 갈아 넣을 때…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5-04-17 20:01 게재일 2025-04-1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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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펴냄,  T.제로니머스 지음, 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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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공정한 사회 구조가 인간의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저명한 공공보건학자 알린 T. 제로니머스 교수는 신간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돌베개)에서 불공정한 사회 구조가 소외된 집단의 건강과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 미시간대 공공보건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30여 년간의 연구를 통해 차별이 신체 건강에 미치는 생리학적 작용을 과학적으로 밝혔다.

 

제로니머스 교수는 대도시에서 사는 흑인이 같은 권역에 거주하는 백인에 비해 일찍 만성 질환에 걸리는 현상을 주목했다. 이 현상은 유전적 차이 또는 생활 습관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주류 백인들의 관점에서 설계된 공공 보건 정책과 차별 및 혐오가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러한 불공정한 사회 구조는 개인의 건강을 서서히 무너뜨리며, 이를 ‘웨더링’(weathering)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웨더링은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생리적 스트레스 반응으로 인해 세포 수준에서 점차 마모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웨더링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경험되는 현상이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고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이러한 과정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며, 결국 노화와 만성 질환, 장애, 심지어 돌연사의 원인이 된다. 

제로니머스 교수는 사회적 요인이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차별과 불평등이 신체에 미치는 생리학적 작용을 연구하며, 불공정한 사회가 개인의 건강을 서서히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통계 데이터와 분자 생물학 연구를 바탕으로, 불공정한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가 노화를 촉진하고 건강과 수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웨더링 개념은 인종, 민족, 종교, 계급, 성별, 성 정체성 등에 따른 차별과 편견에 의한 반복적인 스트레스가 신체에 점진적으로 끼치는 생리학적 작용과 과정을 의미한다. 저자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자신을 갈아 넣을 때 그 스트레스가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차별 시스템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예외로 두지 않으며, 오히려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더 큰 스트레스에 노출돼 건강을 잃는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제로니머스 교수는 “사람의 건강은 유전자보다 사회가 그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더 크게 좌우된다”고 주장하며,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기존 인식을 비판한다. 그는 공정한 사회를 위한 변화가 공공 보건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웨더링 작용을 중단시키는 것이 공평한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불공정한 사회는 몸과 마음을 닳게 하여 소리소문없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끈다”라고 경고하며 “차가운 과학의 이성과 정의를 향한 따뜻한 희망의 결합을 통해 불공정한 사회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차별받는 약자 집단은 편견과 배제의 시스템 속에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더 많은 웨더링의 가능성에 노출된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불공정한 사회가 성실한 사람들을 조기에 죽음으로 내몬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인종화(인종차별주의만을 말하지 않는다. 특정 집단을 사회적으로 차별·배제하는 모든 허구적 이데올로기가 인종화이다)에 의한 차별 시스템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피해가지 않는다”며 “웨더링 작용을 중단시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평한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이 된다”고 역설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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