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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음주·폭행… 자질 논란 후보자들...유권자들은 누굴 뽑아야 하나?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은 어느 후보를 뽑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 그 가운데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의 자질 문제는 늘 논란거리이다. 때문에 다가오는 4·10 총선에도 우리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자질을 꼼꼼히 따져볼 이유가 충분하다.사실 이런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들의 자질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또 TV나 언론을 통해 보여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볼 때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이런 모습만 지속적으로 보인다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발표한 21대 전·현직 국회의원 316명을 대상으로 한 자체 자질 검증 결과에 따르면 현역 국회의원 중 적어도 1개 이상으로 자질이 논란이 된 의원이 173명(54.7%)으로 절반 이상이 ‘자질 의심’으로 분류됐다. 검증 분야는 법안 대표 발의 건수, 본회의·상임위 결석률, 사회적 물의, 과다부동산, 과다주식, 전과 기록 등이다.대구·경북에서도 지역구 현역 국회의원 25명 중 대부분이 지질 검증에서 ‘다주택과 음주운전, 폭행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 절반 이상이 문제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동시에 불성실과 부적절하고 부도덕함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자질 논란이 있는 국회의원 후보자는 당연히 처음부터 출마를 할 수 없어야 한다.국회의원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자리이다. 또 입법 기관에서 일하는 국회의원들은 먼저 법을 지키는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자질 의심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특권만 무려 180여 개 가까이 되는 데 이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국회의원이 잘못을 저질러도 매달 세비를 비롯한 특권은 그대로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세비(연간 1억5천500만원, 2022년 기준)와 차량 유지비, 출장비, 식비, 입법·정책 개발비 등은 따로 지급 받는다. 불체포·면책특권, 해외여행 경비 지원, 또 9명이나 되는 보좌관은 대부분 선진국에서 2~5명인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많은 수다.국회의원 스스로가 본인을 국민의 하인이라고 부르며 특권은 없고 국민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법안을 상정하며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스웨덴 국회의원과 비교하면 극명한 차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가지는 이 특권은 국회의원의 직무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신분에 주어진 것이라서 온갖 논란에도 특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게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상식에도 한참 벗어나 보이는 것이다.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상전으로 모시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세비도 앞으로는 국민들처럼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해 입법 활동을 하지 않으면 세비를 받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과 형평성이 맞다. 이러려면 후보자를 검증에 앞서 자질 미달은 스스로가 처음부터 선거 출마를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포항시민 A씨는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의 홍보우편물을 받으면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정치에 관심이 생기는데 우선 정책을 보기 전에 전과 기록부터 먼저 보게 된다. 음주운전으로 벌금을 내신 분들이 꽤 있는 것 같다. 후보자들이 음주운전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런 분들은 내가 판단하기에 무조건 패스다. 입법 기관에서 일하시게 될 분들이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지키기는 후보자가 당선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허명화 시민기자

2024-01-23

달콤한 딸기 먹으며 겨울 이겨볼까요

추운 겨울, 울진에서는 왕피천공원사업소에서 진행하는 딸기 따기 체험행사가 열렸다. 딸기 체험 예약은 12월 26일을 시작으로 매주 화요일 오전 9시에 울진군청 홈페이지 통합예약시스템에서 가능하다.제철인 맛있는 딸기를 먹으며 아이와 함께 직접 수확하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 체험 신청을 했다. 딸기가 많이 열리지 않아서인지 처음에는 5가족만 참여할 수 있었다. 워낙 인기가 많은 체험이라 처음부터 되기란 쉽지 않았다. 매주 도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8가족이 체험할 수 있는 이번 기회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1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마감이 되었다. 여러 가족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체험은 가족당 1번으로 제한한다.딸기 체험은 예약한 주 토요일 오후 2시~3시에 한다. 체험대상은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당 최대 6명, 그 중 어른은 2명이 참여 가능하다. 참여비는 딸기 1kg당 2만원이다. 따면서 실컷 먹고 직접 수확한 것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시중에서 사먹는 것보다 저렴하다는 생각이 든다.체험하기 전 관계자가 친절하게 연락도 했다. 체험 시간이 되자 딸기를 생산하는 관계자로부터 딸기의 특징과 주의할 점, 따는 방법에 대해서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딸기 꽃은 따면 안 되고, 딸기를 딸 때는 인사하듯이 따라고 하였다. ‘똑’하는 소리와 함께 딸기가 손 안에 쥐어졌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딴 딸의 손에는 손만한 크기의 딸기가 쥐어져 있었다.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어달라 포즈를 취한다.재배되는 딸기의 품종은 설향으로 입에 넣으니 설탕을 뿌려놓은 것처럼 살살 녹았다. 딸기를 재배하는 농가의 80% 이상이 설향이라고 한다. 마트에서 사먹을 때는 새콤한 맛이 있었는데 직접 딴 딸기는 단맛이 강했다. 두꺼운 옷을 입고 하우스에서 딸기를 따느라 쪼그리고 앉아있었더니 금방 땀이 맺혔다. 입구에서 받은 플라스틱 통에 반쯤 담았을 쯤, 세척해서 먹으며 잠시 쉬었다. 너무 깨끗해서 굳이 세척을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배를 가득 채운 다음 딸기를 담다 보니 탑이 되었다. 1kg이 어느 정도 되냐고 물었더니 통에 담아서 뚜껑이 닫힐 정도란다.이미 다른 가족들도 뚜껑은 닫히지 않았다. 조금의 여유는 주는 것 같았다. 딸기체험으로 가족들과의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었다. 울진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한 번 참여해보길 바란다./사공은 시민기자

2024-01-23

‘갓생러’

새벽에 집을 나서 문무왕릉이 있는 감포 앞바다로 향했다. 새해 첫날 날씨 탓에 보지 못했던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이다. 어스름 바닷가에 망원렌즈 달린 카메라 여러 대가 삼발이에 의지해 이미 붉게 물들기 시작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소원하기 위해 이들은 새해부터 새벽잠을 설치는가? 삶의 목적은 행복에 있고 행복은 마음의 평안에서 오고 마음의 평안은 본능을 잘 다스림에 있다. 절로 생겨나는 마음과 감정(心情)을 두고 본성이라 이른다. 고(故) 박경리 선생은 본능이 어디서 생겨나는지 그 근원을 증명하기 힘들다고 했다. 자연과 동물은 본능에 충실하며 살고 인간은 그 본능을 다스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성이 본능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소학 가언(嘉言)편에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한다(勝己者厭之).’는 말이 나온다. 질투심은 본능이고 그 본능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이사(李斯)와 한비자(韓非子)는 순자(荀子)의 수제자로 동문수학했다. 이사는 달변가였고 한비자는 말더듬이였지만 학문에 있어서는 한비자에 미치지 못해 늘 시기심이 있었다. 전국시대(戰國時代)를 통일한 진시황제에게 먼저 다가간 이사는 그 명석함으로 법치주의 기반을 확립하며 재상에 오르고, 진시황제가 한비자 저서인 고분(孤憤)과 오두(五8839)에 감명 받아 한비자를 곁에 두고 싶어 하니 자기보다 더 총애 받을 것을 질투해 모함으로 감옥에 가둔 뒤 독살시킨다. 이후 시황제가 죽자 지록위마(指鹿爲馬)로 유명한 환관 조고를 도와 유언장을 조작하여 태자 부소를 자결케 하고 막내아들 호해를 2세 황제로 즉위시키니 결국 조고의 모략으로 요참(腰斬) 형을 당하며 삼족이 멸문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삼국사기 저자 김부식은 당대 시(詩)와 문(文)의 명성으로 쌍벽을 이루었던 정지상을 질투했다. 고려전기 한시문학을 주도했던 시인 정지상은 묘청의 난에 연좌되어 김부식에게 죽임을 당한다.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은 아버지의 보호아래 무신(武臣)들을 업신여김이 극에 달해 연로한 무신 정중부의 수염을 태우는 등 도를 넘는 그의 무례함으로 인해 결국 무신들이 문신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는 무신정변(武臣政變)이 일어난다. 김돈중과 동생 김돈시는 무신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이미 죽은 김부식은 부관참시 형에 처해진다. 이규보는 ‘백운소설’에 김부식이 자기에 의해 피살되어 음귀가 된 정지상에 의해 죽었다는 일화를 실었다.죽마고우였던 관중과 포숙아. 관중은 친구였던 포숙아가 위기 때마다 배려와 도움으로 힘이 되어 준 것에 감사한다. 질투가 아닌 깊은 신뢰로 우정을 다졌던 그들은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사자성어를 남긴다.질투는 여자들의 몫이 아니다. 남녀 구별이 없다. 애완견, 애완묘도 질투를 한다. 본능이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는’ 본능을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본받을 수 있는’ 이성으로 잘 다스려 새해도 행복으로 채우자.‘갓생러’는 God+人生이 합쳐진 신조어다. 손에 닿지 않는 화려한 삶을 추구하기보다 작은 일에 도전과 성실로 소소한 성공을 맛보며 행복을 만끽하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을 말한다. 불행은 비교에서 시작된다는 명언이 있지 않은가. 좋은 기운 가득한 희망담은 붉은 해가 문무대왕릉 앞바다에 떠오르고 쏟아지는 카메라 셔터 음을 들으며 사람들은 갑진년 한해도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나는 조용히 ‘갓생러’를 외친다./박귀상 시민기자

2024-01-18

삼대가 만드는 김장놀이 풍경

“어머니 요번 김장은 오는 주말에 할까요? 이번 수육은 삼겹으로 저희가 사갈게요. 저번 사태는 좀 텁텁 했지요?”“할머니, 이번엔 새얀이가 가서 김치 만들꺼니까 저번처럼 먼저 해 놓지 마세요.”며느리와 여섯살 손녀의 김장부심이 전화기 너머에서 쨍쨍하게 전해진다. 최근 수년 동안 김치를 직접 담가 먹는 가구의 비중이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고 하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몇 년 전 아들이 결혼을 하고, 마침 남편이 시골로 발령받으면서 하던 일을 줄이고 남편을 따라 시골살이를 하게 됐다. 그때 이웃들이 나눠주는 배추로 김치를 어설프게 담가 본 것이 우리 가족 김장의 시작이다. 처음엔 배추를 베란다에 쌓아두고 조금씩 여러 번 나누어서 했다. 제대로 김치를 만들 자신도 없거니와 협소한 관사의 사정상 일을 크게 벌일 수도 없었다. 그러던 것을 다음 해부터 아들 내외가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젠 여섯 살 손녀까지 적극 가담한다.작년에 경주로 이사를 와 이젠 배추를 나눠주는 이웃도 없는데, 어찌된 건지 아들 내외는 김장에 더 적극적이다. 지난 주말에는 이번 겨울 들어 두 번째 김장을 했다.이번엔 김치냉장고까지 장만한 며느리가 가족의 김장놀이 지휘자 노릇을 한다. 김장 날짜며, 역할 배정이며, 김장 후 막걸리, 수육 파티의 디테일까지 계획한다.물론 신선한 재료 구입 및 배추 절임 후 세척은 나와 남편의 몫이다.지난달 첫 김장 때는 아들의 직장일로 약속시간 보다 늦어지기에 남편과 내가 미리 양념을 버무렸더니, 많이 서운했던 손녀가 이번엔 전화로 단단히 다짐을 받는다. 밝고 에너지 넘치는 며느리의 진두지휘 아래 식탁에 옹기종기 둘러서서 김치를 만들며 느끼는 행복감은 그야말로 덤이다. 손녀는 유치원에서 김장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듯이, 아는 척을 하며 커다란 비닐장갑 속 조그만 손을 꼬물거리며 양념을 버무린다. 우리 가족 삼대의 김장하는 날 풍경이다.현대 소비자의 편의성 추구와 1인 가구의 증가로 인해 집에서 아예 김치를 먹지 않는 가구도 많다고 한다. 물론 사 먹는 김치도 맛이 있고, 어떤 면에서는 가성비 또한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 같이 모여서 만든 음식이 매개가 되어 세대간의 소통을 단단히 이어준다면 어떨까? 그 시간을 통해서 할아버지와 손녀의 소중한 추억이 만들어지고, 고부간의 따뜻한 서사도 쌓이지 않을까?김장 후 수육 파티에서 며느리는 벌써 설날 음식을 계획한다. 자기는 언제나처럼 잡채랑 오색나물을 해 온다고 하니 난 이번에도 온 가족이 좋아하는 소고기무국을 한 솥 가득 끓여야겠다. /서영희 시민기자

2024-01-18

화합하는 동네 “묵노골 파이팅!”

30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촌 귀농을 결심하고 시골로 내려온 나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았었다. 당시만 해도 귀촌인의 시골 정착에 최대 장애가 되었던 것은 원주민과의 화합이었다. 그것이 순탄하지 않으면 정착에 애로가 많으며 실제 정착의 변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귀농하여 마을 사람들을 상대하고 보니, 그런 걱정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지금은 하루하루가 즐거움의 연속이다.많은 사람이 시골에 가면 텃세가 심해서 잘못하면 완전히 왕따 되고 어디 갈 데도 없고 말할 상대도 없는 외톨이가 된다고 말하면서 귀농·귀촌을 꺼리기도 하였던 당시의 모습이었다. 우리 부부가 귀농한 봉화군 상운면 문촌리의 한 작은 마을인 ‘묵노골’은 1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모두가 걱정하는 텃세도 없고, 친절하고, 인정이 많은 주민만 모여 사는 덕택에 우리는 짧은 기간의 귀농에 정착하고, 이웃들과 서로 도우며 사이좋게 지내다 보니 시골에 귀농한 것이 얼마나 잘한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을 자화자찬하기도 한다.우리 마을은 위쪽과 아래쪽으로 다소 큰 마을로 형성되어 있지만, 특이하게도 그사이에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바로 ‘묵노골’이다. 내가 와서 본 이 마을은 내 일 남의 일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나도 자연히 그 분위기에 저절로 동화되었고 어느 사이에 나 자신도 내 일 보다 이웃의 일에 발 벗고 나서게 되었다. 서로서로 도우며, 옆집 일을 내 일같이 거들고 항상 웃으며 지내다 보니 일의 속도도 빠르고 힘든 줄도 모르고 마냥 즐겁게 일을 처리한다.때로는 연세 드신 분 집에 도배와 집수리도 내 일 같이 거들고 누구 집의 지붕에 처마를 달아내는 작업도 공동으로 하고 창고를 지을 때도 자기 일같이 걷어붙이고 나선다.특히 농번기의 밭을 갈고 골을 타고 비닐을 입히는 작업도 다 같이 모여서 한 집 일을 끝내고 나면 다음 집으로 옮겨서 하고 동네 어르신의 자그마한 텃밭에도 모두가 가서 후다닥 해치우기도 한다. 그러면서 막걸리 한잔에 농담 섞인 말투로 웃음꽃이 피기도 하고 때로는 이집 저집 모두 모여 삼겹살로 회식도 하고 가끔은 부부끼리 단체로 바닷가나 산으로 나들이도 간다.누구 집에 맛있는 걸 하면 이집 저집 불러서 다 같이 나눠 먹기도 하다 보니 이제는 모두가 형님, 동생 하면서 한 가족같이 지내는 아주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사이좋게 지내다 보니 우리 부부가 귀농한 지 10년이 다 되었지만, 자그마한 다툼도 없었고, 항상 만나면 흐뭇한 농담과 웃음이 넘쳐난다. 그래서 정말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사촌이 낫다”라는 말을 너무도 실감하며 살고 있다.이곳에서는 계절에 따라 주변에 지천으로 널린 쑥, 냉이, 달래, 취나물, 머위, 두릅, 오가피 순, 가죽나무 순 등속으로 나물밥이며 튀김도 맛있게 먹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장아찌를 담아서 1년 내내 먹기도 한다. 각자의 논밭에서 나오는 온갖 작물들도 풍성하니 도시 생활에서 마트에 가는 비용이 안 들고 좋다. 서로 서로 도우면서 일하므로 인부들을 데리는 품삯도 절약이 된다. 고기 파티하는 날에는 인근에서 나는 한우 소고기를 먹게 되는 그야말로 즐겁고 풍요로운 생활의 연속이다.우리 부부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 시골에 잘 정착한 것이라며 마주 보고 웃음꽃을 피운다. 이런 즐거운 생활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우리 마을 ‘묵노골’ 파이팅!/이동주 시민기자

2024-01-18

혁신

현관 신발장이 그들먹하다. 터줏대감처럼 놀고 앉은 신발이 열에 아홉이다.헐어놓은 새해가 헤프기도 하다. 아이고 추워라, 입에 달고 살았더니 하릴없이 보름을 까먹었다. 정초 몇 날은 새초롬한 날이 오늘은 확 풀렸다. 봄날 같은 겨울 햇살이 면경처럼 말간 것이, 아지랑이가 춤출 날도 머잖았겠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한 천년고찰 산행길이 푸근하다. 운람사 주지 스님 털신이 댓돌 위에 가지런하다. 달랑 한 켤레다. 고명한 스님일수록 생활용품이 단출하댔지. 속세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뭉클 솟는다.세간살이가 많아진 건 이사를 해보면 안다. 신발이 한 리어카란 말을 실감할 수 있다. 허드레 신발이건만 차마 버릴 수 없음이다. 새해도 밝았겠다, 오늘은 정리하자. 신발장 문을 활짝 열어젖혔더니 과연 그들먹하다. 슬리퍼, 장화, 등산화, 조깅화에다 ‘빼딱구두’까지 가지각색이다. 칸칸도 모자라서 포개져 있고, 여분의 깔창들이 여기저기 꽂혀 있다. 필리핀 마르코스 전 대통령 부인 이멜다 여사 신발이 3천켤레라더니 우리도 만만찮다. 무려 80여 켤레다. 필요 없을 성싶은 신발을 주섬주섬 집어내는 데 아내가 토를 단다.“이건 당신이 사준 장화고, 이건 들에 갈 때 신을 거고….”이러면 곤란하지, 어금니를 물자 아내가 한마디 한다.“당신 거부터 내놔봐.”그러지 뭐. 아내보다 반의반도 안 되는 내 신발이라 퍼뜩 살폈다. 없다, 버릴 게 없다. 머쓱해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혁신 한번 하고자 했더니 이리 치고 저리 걸린다.짐승의 가죽에서 털을 뽑아 다듬은 것을 혁(革)이라 하고, 그 가죽이 가방이나 신발이 되는 걸 신(新)이라고 들었다. 혁신엔 가죽이 벗겨지고 털이 뽑히는 짐승의 고통과 장인의 노력이 수반될 것이 분명하다. 신발 몇 켤레를 처분하려 해도 이리 쉽지 않은데, 하물며 고래 심줄 같은 토박이들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한 제도 한번 바꾸려면 오죽하랴 싶다.한숨이 절로 나건만 희한하게도 유행가 가사가 스친다.“이제는 정리다. 정리~♪”개뿔, 올봄도 물 건너갔군. 혁신 한번 어렵다./김상영 시민기자

2024-01-18

‘숭문대’,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합니다

경주는 어디를 가나 여기가 경주요 한다. 차를 타고 달리면 둥싯한 능이 곳곳에 엎드렸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페도 경주에 오면 기와를 머리에 이고서야 제모습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사계절 언제 방문해도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다.최근에 문을 열고 실감 나는 미디어아트로 월성의 모습을 재연한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2023년 특별기획전시로 마련한 ‘실감월성해자’라는 제목으로 체험할 수 있다. 교촌마을 건너편에 신라월성연구센터 ‘숭문대’가 있다.문을 열고 들어서니 입구에 앉아서 사진을 찍으라고 마련한 코너가 우리를 반겼다. 사진을 찍는 우리에게 해설사가 다가와 코너에 꾸며 놓은 식물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월성 해자 내부 퇴적층에 대한 정밀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여기에서 나온 흙을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체로 치고 걸러내니 신라시대의 동물 뼈, 식물 씨앗, 목제 유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가시연꽃, 자라풀꽃, 개연, 부들의 모양을 만들었고 30㎝ 작은 나무배와 토우도 함께 꾸몄다.토우의 모습은 동아시아인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는데 신라가 여러 나라와 교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기대하며 1전시실의 커튼을 열었다. 들어서자마자 눈이 환하다. 1985년 1월 19일, 그날의 유적을 조사한 일기를 훔쳐보는 것처럼 영상이 흘렀다. 함께 간 지인이 나에게 1985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았느냐고 물었다. 아직은 중학생이던 시절이었다. 일기를 시작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1천500여 년 전 신라 월성 해자의 건립과 고쳐 만드는 과정, 그 주변의 모습이 지금 내 앞에 펼쳐졌다.가만히 넋을 놓고 보다가 오른쪽에서 물이 쏟아져 해자에 가득 차는 장면에서는 어찌나 실감이 나는지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 여자아이가 ‘꺄악’ 소리를 지르며 반대편으로 도망을 쳤다. 영상이 흐르는 동안 아이들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웃으며 돌아다녔다. 이곳에서는 뛰지 마라, 조용히 해라, 하지 않고 부모님도 함께 뛰놀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가 달려가니 꽃잎이 발걸음 따라 흩날리고 해자의 물고기를 잡으려 아이들이 달리면 물결이 일었다. 고 퀄리티의 영상에 빠져들었다. 조용히 걸으니 내 뒤로 발자국이 새겨졌다.월성 해자는 1984년 주변 시굴 조사 과정에서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후 2021년까지 간헐적으로 조사하면서 규모와 구조 변화 과정을 밝혀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4세기 후반, 해자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땅을 파서 길게 이어진 도랑이었다가 8세기로 넘어갈 무렵에는 가장자리를 돌로 마감한 7개의 연못으로 바뀌었다.2전시실로 가는 통로에도 미디어아트가 있다. 출토된 유물을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해석한 영상으로 토우와 배가 둥둥 떠가고, 가시연꽃 씨앗이 꽃으로 피어나고, 곰 뼈가 귀여운 곰으로 변하는 순서로 상영되며 복숭아 씨앗이 꽃으로 변하며 2전시실로 가라고 꽃화살표로 말한다. 2전시실에는 출토된 동물의 뼈가 개, 돼지, 곰, 말이 되어 자유롭게 뛰놀고 식물 씨앗은 나무로 꽃으로 밀밭으로 일렁인다.숭문대에는 전시 말고도 ‘월성이랑발굴교실’이라는 발굴조사 해설(오전 10시)과 체험(오후 4시)을 할 수 있다. 프로그램 예약은 네이버에서 ‘월성이랑’을 검색해서 신청 가능하다. 오전 9시 30분에 문을 열고 오후 5시 30분에 입장 마감한다. 11시 30분~오후 1시까지는 점검 시간이다.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에 휴관하며 관람료는 무료다. 아직 덜 알려져서 주말에 가도 조용히 즐길 수 있다. 월성 해자에 달이 뜨는 풍경 앞에서 인생샷을 찍길 바란다./김순희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1-16

천주교 안동교구 50여 년의 발자취

1969년 설정된 천주교 안동교구의 역사와 자취를 담아낸 역사관이 지난 9일 안동시 목성동에 문을 열었다. 이날 권혁구 주교의 주례로 개관식과 축복식이 열렸다. 안동교구 역사관 개관은 교구 설정 50주년을 훌쩍 넘기며 그간의 교회사와 사료를 정리해 시민들에게 공개한 뜻 깊은 ‘종교 아카이브’ 작업이다.안동 시내 목성산 자락에 자리한 목성동성당이 1949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성당 가는 길 입구에 있는 역사관 건물은 1950년대 세워진 붉은색 2층 벽돌 건물이다. 목성동 51-4번지(현 서동문로 147)에 자리해 파리외방전교회 대목구였다가 첫 안동교구청, 최근까지는 성 바오로딸 서원과 카페 에스포와가 있었다. 시내 중심가에 자리해 근현대사의 물결에 동참하고 불의에 맞서 앞장서고 지역민의 따뜻한 아랫목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역사관은 옛 건물을 고쳐 외관은 소박하나 전시물의 내용은 그렇지 않다. 교구 설정 전후의 역사와 기록을 담아 확장된 안동교구의 역사를 보여준다. 1, 2층 각 방마다 주제관을 마련해 집중력을 높였다. 1층에는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되기 이전에 이미 교리를 받아들여 신앙생활을 시작한 안동교구 신앙의 뿌리인 농은 홍유한을 시작으로 순교역사의 시작, 한국 천주교회 창립, 경북북부지역 본당 설정 등 천주교 역사를 톺아볼 수 있게 했다.2층에는 안동교구 50년사, 교구 사제단, 선교사제와 수도회,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의 역사를 전시했고 특히 첫 안동교구청 2층 교구장 침실이 있던 방에 마련한 두봉 주교의 방이 눈길을 끌었다. 또 검정색 보스톤백과 돌무더기가 전시된 사연이 특별했다. 젊은 나이에 외국인 신분으로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이 된 두봉 주교가 전통 유교 사회 속 척박한 농촌 지역의 산책 기도 중 지역 강변에서 주운 돌에 직접 지역명을 새겨 넣은 것이다.돌에는 안동, 진보, 예천, 다인, 영덕 등이 새겨져 있다. 젊은 외국인 교구장은 젊은 사제들과 강가를 거닐며 어떤 생각과 고민, 번뇌를 가졌을까. 자신의 보물 1호인 돌을 역사관에 기증한 전 안동문화회관 이진구 관장은 “걱정거리가 있거든 이 돌의 의미를 새기며 인내와 겸손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길 바라셨던 것 같다”고 했다. 이 돌은 두봉 주교가 첫 안동교구장의 임무를 다하고 떠나기 전 이진구 관장에게 선물한 것이다.역사관 앞 비석에는 교구 사명 선언문인 ‘기쁘고 떳떳하게’가 새겨져 있다. 두봉 주교의 삶의 모토이다. 안동교구 역사관은 근현대 시기 불의를 참지 않고 지역민과 함께한 안동교구의 지역밀착형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관람 시간은 매주 수~일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 30분./백소애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1-16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예술가를 만나다

섬유예술가 조금진 작가. 섬유예술가 조금진. 태양처럼 붉은 빨강, 한여름의 짙은 초록을 삼킨 그녀의 작품에선 자연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사회적 기준에 잘 맞는 모범생 딸에서 태양을 품은 작가가 된 그녀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대학 교단에 있던 아버지는 딸이 선생님이 되길 바라셨다. 당시엔 당연하다 여겼다. 그렇게 첫 번째 대학이 정해졌다. 아버지가 퇴임을 하고 병으로 이듬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허무함을 느꼈다. 허무함은 그녀를 바꿔놓았다.더 이상 사회적 기준의 착한 딸이 아닌 ‘조금진’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살기로. 근처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간섭 없이 하루 종일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1년쯤 지났을 때 원장이 대학원을 권유했다. 친구가 본교 대학원 진학을 추천했고 당시 이화여대 대학원 원장을 찾아갔다. 마침 대학원 원장 전공이 염색이었다. 따뜻하게 맞아주는 모습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퇴임을 앞두고 있던 교수가 작업실을 준비 중이었는데 덕분에 한 학기 동안 배움의 기회를 얻고 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됐다.대학원 생활은 쉽지 않았다. 다양한 시도를 하기엔 제약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특정 테두리 안에 갇히는 게 두려워졌다. 갇히지 않기 위해 누구와 부딪히는 것이 싫었기에 휴학을 신청했다. 한동안 자유롭게 작업을 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일본에 있던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병간호 하고 있던 그녀를 안타까워하던 언니는 기분 전환 겸 일본 방문을 권했다.어학연수로 체류하게 된 일본 생활은 머지않아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다. 보통 여러 군데 원서를 넣어두고 발표를 기다리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그녀는 단 한 학교에만 원서를 넣었다. 우에노에 있는 학교 캠퍼스 건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 주변에선 특이하다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은 일본 유일의 국립 미술대였기 때문에 진학이 쉽지 않았다. 결과는 다행히 합격이었다.한국보다 더 보수적인 시스템과 전체가 다 모인 앞에서 매학기별 1주일씩 이어지는 평가는 힘들었다. 석사를 마치고 아쉬움이 남아 박사 과정으로 넘어갔다. 어려운 선발 과정을 통과했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박사 과정 중 담당 교수님의 부고는 학과의 존폐 위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향수병까지 찾아들어 한국으로 잠시 돌아왔을 때 경주의 소나무숲을 만나게 됐다. 소나무의 에너지와 이미지를 작품으로 만들어냈고 박사 과정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곧이어 귀국, 결혼, 그리고 남편 직장을 따라 경주로 이주라는 굵직굵직한 일들이 한 해 사이 모두 이뤄졌다. 차례차례 아이들이 태어났다. 셋. 육아만으로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청와 갤러리’를 시작했다. 그곳에선 당시 경주에선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인문학 강좌부터 누드 드로잉 수업까지 이뤄졌다. 6여 년간 고군분투한 시간. 작업 또한 놓지 않았다. 실과 바늘 천을 도구로 본인이 생각하는 자연의 모든 생명체에 내재된 생명력을 표현한다. 통상적으로 실크에 프랑스 염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고 수증기로 쪄내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진다. 수증기로 찌면 염료가 고착되어 발색되는데 그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르다. 그 과정에서 마치 생명이 태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여기에 바느질 작업이 추가되기도 하는데 예상에서 더해진 우연적인 효과가 겹쳐져 나온다.그녀의 작업엔 강렬한 원색이 두드러지는데 빨강, 초록이 대표적이다. 빨강은 태양과 사람의 피에서 차용했다. 붉은 색이 나무의 기둥이라면 초록은 나무의 윗가지다. 다음 작업은 뿌리를 상징하는 노랑이라며 말하는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이는 생명의 에너지와도 연결된다. 작품에서 보여주듯 나무를 좋아하는 그녀는 특히 섬세하지 않은 엄나무를 손꼽았다. 잎이 나기 전 예보하는 느낌과 가시에서 생명력을 느낀다.어느덧 세 아이는 이소(離巢)를 준비 중이다. 다시 ‘조금진’만이 오롯이 기준이 될 그녀의 새 봄. 그녀가 피워낼 새순을 기대한다./박선유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1-16

국내외서 인정받은 ‘경북 농특산물 브랜드’ 인기 지속돼야

포항마켓에서 구입한 쌀과 가공품. ‘영일만 친구’라는 브랜드를 달고 있다. 꾸준한 매출 상승이 이어지고 있는 경북 농특산물 장터인 경북 사이소가 2023년에는 최대 매출을 기록하면서 지역의 브랜드를 단 농특산물도 함께 인기를 끌고 있다.이에 브랜드 가치가 중요한 시대에 경북 도내 각 지자체는 저마다 특색을 가진 브랜드로 지역을 알리고 있다.포항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우수 농특산물에 이어 축산과 수산, 임산물에 ‘영일만 친구’라는 브랜드를 달았다.포항 고유의 브랜드가 된 영일만 친구는 이 브랜드로 2023년까지 총 6번의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1월 30일에 상품 등록을 하고 현재까지 소비자의 관심을 받고 있다.영일만 친구는 고민 많은 소비자들이 망설임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엄선된 신뢰의 제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영일만 친구라는 이름의 상품들이 여럿인 가운데 특히 겨울철인 지금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과메기에도 영일만 친구라는 브랜드를 붙였다. 강원도에서 과메기를 온라인으로 주문한 정모씨는 “과메기를 20년 전에 남동생이 해병대를 다녀서 포항에서 처음 먹어본 기억이 있다. 포항시 인증 브랜드인 영일만 친구라는 이름의 과메기여서 믿음도 가고 맛이 보장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포항시는 영일만 친구로 지역 생산물의 고급화된 가치를 표현하고 있는데 포항마켓에서도 영일만 친구라는 코너를 따로 두고 있다.경주시의 브랜드는 이사금이다. 이사금은 고품질의 경주농산물공동브랜드로 왕을 뜻하는 말로 임금 농산물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특히 경주 이사금 쌀은 2023년 대한민국 쌀페스타에서 K-브랜드 대상을 수상했다. 서울에서 온 한 관광객은 이사금 배와 토마토는 물론 농협에서만 파는 이사금 쌀을 구입하며 “건강한 경주 기념품으로 최고”라며 반겼다.영천은 과일에 스타라는 브랜드명을 붙였다. 복숭아와 포도, 사과 등에 스타를 붙여 과일 하면 영천을 떠올리게 했다. 한우는 별빛이라는 이름이다. 영천시는 매년 여는 영천축제에서 영천별빛명품구이축제와 영천스타과일축제도 함께 열고 있다. 매년 포도가 나오는 시기에는 과일을 판매하는 어디를 가도 영천스타과일을 쉽게 볼 수 있다.문경새재가 있는 문경시는 ‘새재의 아침’이 브랜드명이다. 지난해 말 ‘문경새재의 아침’이라는 쇼핑몰을 오픈했는데 지역의 특산물인 오미자, 사과 등을 비롯해 지역의 특산물에 꾸준한 홍보를 하고 있다.대게의 고장이자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진 영덕은 그 덕에 ‘그래 그리고 영덕’이라는 특산물 공동브랜드를 가지게 되었다. 먹거리 가득한 영덕의 특산물로는 대개와 복숭아, 송이를 들 수 있다. 대게는 택배로도 현지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크다. 특히 대게는 통조림으로도 만들어져 소비자에게 언제나 제철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대게는 김치로도 만들어져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상상주도라는 도시브랜드를 가진 상주는 가공제품 공동브랜드를 ‘자연이 상주’라는 브랜드로 정했다.상주하면 떠오르는 곶감은 한 번 맛보면 계속 손이 가는 겨울 간식으로 온라인이나 마트에서도 쉽게 구입이 가능하다.이처럼 경북 도내는 저마다의 브랜드로 지역의 우수 특산품은 물론 지역의 홍보 효과까지도 함께하고 있다. 고향 장터인 사이소에서는 경북의 다양한 우수 특산물이 온라인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잘 연결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이 이어지기를 바란다./허명화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1-16

틀에 박힌 결혼 문화를 벗어나서

지인의 딸 결혼식이 있어 부산에 갔다. 예식이 오후 5시라 여유롭게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택시로 갈아타고 헤리움 웨딩홀로 향했다. 언제나 웨딩홀에 들어서면 가슴이 뭉클하다. 마치 뮤지컬 공연에 온 듯 빠져든다. 남녀가 2중창, 3중창으로 하모니를 이루어 아름다운 축가를 부른다. 대형스크린에서는 두 주인공의 알콩달콩 인생의 따스한 봄날 같은 영화를 한편 보는 듯 했다. 그렇게 신랑신부는 하객들의 축복 속에서 행진이 된다.예식 문화는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자신들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결혼식을 선호하는 추세가 이어졌고, 주로 하우스웨딩이 호응이 높다. 애완견에게 턱시도를 입혀서 신부의 반지를 입에 물고 레드카펫을 향해 신랑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하객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분위기가 한층 더 업 되었다. 흔히 유아의 남녀 한 쌍이 하얀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등장하는 일이었다. 목사님이나 신부님들이 단상에 서서 덕담을 연설하는 주례 문화는 희미해져 간다. 혼주가 직접 쓴 편지글을 읽으며 축복한다. 사돈끼리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장구를 치고 풍물놀이를 연상케 하는 것도 SNS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본다. 사돈은 남녀 두 사람의 혼인으로 발생하는 인척관계이고, 상대편의 친척을 일컫는 친족호칭이다. 어렵다면 어려울 수 있는 관계이나, 하객들을 웃을 수 있게 설정하니 즐거움을 더해준다.관례적으로 큰일이라고 하면 결혼, 회갑, 초상 따위의 큰 잔치나 예식을 치르는 일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잔칫집의 음식은 잔치국수였다. 혼기(婚期)에 꽉 찬 처녀총각을 보며 흔히 말하기를, 국수 언제 먹여주나? 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며 자극을 주기도 했다. 지금도 식당에 가면 잔치국수라는 메뉴가 있다. 조금 더 잘 한다고 하면 비빔밥이었다. 그보다 조금 더 부유한 집에선 갈비탕이었다. 큰일을 앞둔 집에서는 준비한 떡과 과일, 삶은 문어, 돼지 편육 등을 식당에 가지고 가서 한 접시씩 나누어 먹었다. 요즘은 잔치를 앞둔 집이라도 예전과 같은 분위기는 보기 드물다. 잘살고 못사는 격차도 티 나지 않는다. 대다수 뷔페로 이루어지고 1인분의 가격도 만만치 않다. 축하도 좋지만 가족 수대로 축하객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뷔페에는 음식의 종류가 다양해서 먹을거리는 많지만 낭비도 심하다. 젓가락질 한번 못하는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단 메뉴였던 그 시절의 맛이 그립다. /김영주 시민기자

2024-01-11

사적연금보다 수령액 ‘월등’… 딜레마 넘어선 ‘국민연금’

국민연금을 꼭 내야 할까? 국민연급 납부 고지서를 받은 가입자의 고민이다.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는 언론보도를 접하면 더욱 망설여지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연금공단 서대구지사 노령연금 담당자인 류동연 대리를 찾았다. 국민연금을 내야 하느냐는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빙그레 웃는다.요즘 국민연금에 대한 가입자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과거에는 연금을 납부하지 않겠다는 민원이 많았지만, 요즘은 연금을 더 받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훨씬 많다고 한다. 연금을 더 받는 방법을 어제 민원 사례를 가지고 대답한다. 민원인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은 120개월인데 예상연금액이 월 25원이었다. 담당자가 전산을 확인한 결과 과거에 찾아가서, 반환일시금을 납부하고 경력단절기간 119개월까지 납부하면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이 월 80만원으로 55만원 정도 더 받을 수 있었다.설명을 들은 민원인은 다음날 바로 소급분을 모두 납부하고 다음 달부터 월 20여만 원을 납부하겠다고 신고했다고 한다.민원인 중 가끔 국민연금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분이 있다고 한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모두 특별법에 시행되는 사회보장제도인데, 1억원 이상 납부한 공무원들은 공무원연금 기금이 부족한데도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반면에 몇 달 납부하지 않은 국민연금 가입자도 연금을 받을 수 없을까 봐 걱정한다. 국민연금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연금을 당연히 받을 수 있다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국민연금 가입대상이 아닌 주부, 학생, 의무복무 군인도 임의로 가입할 수 있다. 현재 임의로 가입하여 국민연금을 납부하고 있는 가입자가 86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국민연금 제도에 높은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정부에서 시행하는 사회보장제도인 국민연금은 사적연금보다 수령액이 월등히 많으며, 물가인상이 반영된다. 올해 국민연금은 전년도에 비해 3.6% 인상됐다. 국민연금 납부는 안정된 노후 생활을 위해 당연히 아니 무조건 내야 한다고 류 대리는 목소리를 높였다./정근식 시민기자

2024-01-11

농부가 된 남편… ‘귀농의 단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청송군 파천면에서 낙원농장을 운영하는 농부, 한겨울인 오늘도 자두농장을 둘러본다. 농부의 일과는 새벽 일찍 농장을 둘러보는 일로 시작한다. 예년에 비해 포근한 1월, 곧 전지를 시작하려고 마음먹는다. 그는 귀농 13년째인 시민기자의 남편 신창영(65)씨다.신혼의 단꿈에 젖었던 어느 날 그가 “나이가 들면 고향 청송에 가서 농부로 살겠다.”라고 말했다. 난데없는 폭탄선언에 수줍던 새댁은 거칠게 항의했다. “무슨 소리 하노, 나는 촌에서는 못 산다. 가려면 혼자 가라.” 당황한 그는 그냥 해본 소리라 했다.우리는 농사철이 되면 주말마다 형님을 도우러 청송으로 갔다. 하지도 못하는 일이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먹는 참과 점심은 꿀맛이었다. 금방 뜯어 온 나물에 된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는 밥상에 반했다. 무청의 푸른 잎에, 들판의 모든 푸른 것에 빠져들었다. 결국 나이 들면 시골 와서 살자고, 된장·간장을 직접 만들고 산으로 들로 나물 캐러 다니며 살고 싶다고, 내가 먼저 말해 버렸다.형님의 주선으로 땅을 사고 촌집도 샀다. 블루베리를 심어 부농을 이루겠다던 꿈은 자두로 종목을 변경했다. 그해 3월 자두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3년 뒤 아직은 직장을 다녀야 할 나이에 그가 청송으로 떠나버렸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귀농은 남은 가족에겐 황당한 일이었다. 농장이 자리 잡기까지 맞벌이를 하기로 했다.삼 년만이라던 시간이 십 년이 걸렸다. 이제 풍족하지 않아도 부족함 없이 산다. 농장의 소득만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가 자유롭게 살다가 갑자기 합가하기는 남편과 나, 모두에게 아쉬움이 남았다. 아직은 직장의 끈도 남아 있어 대구에서 3일, 시골에서 4일 살기로 했다.내가 청송에 오는 날은 남편이 쉬는 날이다. 덩달아 나도 농부의 아내로 농사일을 거드는 일은 어쩌다 한 번씩이다. 귀농 12년이 지난, 청송 주민인 내가 청송에 오는 날은 항상 휴가 오는 기분이다. 이제는 시골 아낙네가 되어있어야 할 만도 한데 아직도 휴가 온 손님처럼 지내다 대구로 떠난다. 자상한 남편은 나의 청송 도착에 맞추어 회덮밥, 매운탕, 국수 등을 해놓고 기다린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은가 보다. 공들인 밥상에서 행복하게 먹는 상대를 보면 안 먹어도 배부른 기분이 우리 둘 다 같다.봄의 시골은 냉이부터 쑥, 등 나물이 지천이다.농장 일 하는 남편 옆에서 일은 돕지 않고 냉이와 쑥을 캔다. 우리 가족의 1년 보약을 캔다. 좀 더 해서 친한 이웃에게 나눠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몇 시간을 공들여 나물을 캘 때면 선물을 받고 행복해하는 이웃을 떠올리며 혼자서 실실 웃는다. 텃밭 가에 심어 놓은 어수리, 부들부들 딱 먹기 좋게 커서 바구니 가득 뜯어온다. 나물 다듬기 선수인 남편과 어수리를 다듬으며 귀한 것은 나눠 먹어야 한다며 몇 봉지 나눠 담는다. 어수리, 머구 잎, 신냉이, 고사리 조금, 된장에 무치고, 간장과 소금에 무치고 향긋한 봄나물 반찬들. 한겨울에 봄날의 풍경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농부가 된 남편, 젊었을 때는 어림없는 소리라 펄쩍 뛰었는데 돌아보니 참 잘한 결정이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에서 은퇴하고 하는 일 없이 지내는 친구들도 있다고 한다. 남편의 경우는 알맞은 나이에 잘 결정하여 농부로 자리잡았다. 하고 싶은 운동으로 건강을 지키고 여가를 즐기면서 자유인으로 사는 삶, 행복이 뭐 별건가. 이렇게 기분 좋게 자연과 더불어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 행복 아닌가 싶다. /손정희 시민기자

2024-01-11

그림·글로 즐기는 ‘예술놀이’

최근 일이다. 지난해 여름 리더십 강의를 통해서 인연을 맺은, 박채연 강사의 초대로 강연회에 갔다. 냉쾌한 가을바람을 느끼며 한적한 황리단길을 가로 질러서 문화센터에 도착했다. 평소 강연회가 있다는 소문을 따라 여기저기 쫒아 다닐만큼 강연회에 목이 말랐던터라, 문화재 답사와 겹치는 날임에도 주저없이 이쪽을 택했다.제일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 강의 제목이 눈길을 끈다.‘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그림도 글도 내겐 쉽지않은 분야인데, 둘이 만나면 어떤 상황이 연출되는 것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수업’의 저자 임지영 강사의 강연은, 재미있고 독특했다. 무엇보다도 수강자 모두가 강연의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 자신을 목소리 낼 수 있음이 흥미로웠다. 특히 강연중에 강조한 ‘예술을 다양하게 이용하는 법’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강사가 말해 준 방법은 다음과 같다.“자신에게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그림 앞에 서서 조금 오래 천천히 응시하라. 가까이서도 보고 조금 떨어져서도 보고, 그림 중간에서부터 시작해서 네 귀퉁이까지 꼼꼼하게 보라. 그러다가 그림속으로 자신이 쑥 들어가 보기도 해라. 그 이후에 그림 그린 이의 마음을 찬찬히 생각해 보라.”강사는 우리에게 여러 편의 그림을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해 주었고, 14명의 수강자 모두에게 하나의 미션을 주었다. 박재웅의 ‘황혼’이라는 그림을 3분 정도 응시한 후에 그 그림에 대한 자신의 감성과 서사를 글로 표현하라는 것이었다. 석양이 아름답게 물들고 있는 들길에서 구부정한 뒷모습의 노부부가 손을 잡고 노을을 향해 걷고 있는 그림사진이었다.10분 후 강사는 수강자의 글을 하나하나 읽도록 했는데, 글 하나하나가 놀라울 만큼 감동적이었다. 같은 그림을 감상하고 제각기 느낀 감성도 특별했고, 짧은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림에서 끌어낸 애틋한 서사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지금 셋째 아이를 임신중이라는 수강자는 그림을 보면서 요즘 부쩍 싸움이 잦았던 남편을 떠올리게 됐다며, 글을 읽는 내내 울먹여서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다. 어떤 수강자는 손잡고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에서 자기부부의 외롭지 않을 노후를 봤고, 또다른 수강자는 자기 부모님의 모습을 그림속에서 만났다며 들길의 끝 지점에 노부부를 기다리고 있을 아늑한 집과 가족이 보인다고도 했다.신기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그림을 매개로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감성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경험이었다. 같이 수강했던 후배 역시 놀라워했다. 나는 가족모임에서 도록을 활용해 이 특별한 경험을 이어가려한다. 신기했던 것은 6살아이부터 80대 할머니까지 세대를 넘나들어 흥미있는 예술놀이가 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그림이 글로 표현되고 있었고, 우리는 그림을 가지고 놀며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었다. 그림과 글이 더이상 어렵고 낯설지가 않았다. ‘그림앞에서 쫄지말고 담대해져라’, 라는 강사의 조언이 크게 와 닿았다.이젠 그림에 대한 거리감이 마법처럼 좁혀져서 생활속의 그림에 스스로 다가가 쉽게 스토리텔링을 하곤한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속에서 멋진 드레스를 입고 카페에 앉아있는 나를 본다.아이들의 겨울방학 동안 온 가족이 둘러앉아 그림과 글을 통해서 예술놀이를 해 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그 놀이를 통해서 가까운 사람들의 속뜻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영희 시민기자

2024-01-11

빈번한 아파트 화재 올바른 대피 방법은?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는 요즘, 아파트 화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전날 아파트 화재로 아이를 구하다 숨진 아버지의 이야기는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파트 화재는 대피 중 연기 흡입으로 질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자칫 대형인명 사고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올바른 대피 방법을 숙지해 둘 필요가 있다.먼저, 화재가 발생하면 집 안에 있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불이 자신의 집에서 난 경우는 계단을 이용해 낮은 자세로 지상층과 옥상 등 안전한 장소로 대피한다. 이때 출입문은 반드시 닫고 엘리베이터는 절대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그러고 난 후 비상벨을 누르고 119에 신고한다.현관 입구에 불이 나 대피가 어려운 경우에는 대피공간, 경량 칸막이, 하향식 피난구 등이 설치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대피공간이 없으면 화염이나 연기로부터 멀리 이동하고 문을 닫아 젖은 수건으로 문 틈새를 막도록 한다.다른 곳에서 화재가 발생하게 되면 자신의 집안으로 연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을 반드시 닫는다. 집안에서 대기하며 화재 상황을 주시한다.만약 연기가 들어온 경우는 계단이나 복도를 통해 낮은 자세로 대피한다. 화염으로 대피가 어려운 경우 문을 닫은 뒤 젖은 수건으로 틈새를 막고, 대피 시설에서 구조를 기다린다. 이를 위해 평소에 대피 시설의 중요성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위급상황을 대비해 대피공간 내에 물건을 적치하지 않도록 평소에도 살핀다.이처럼 아파트 화재가 발생하면 대피 시설이 정말 중요한데 이럴 때 유용한 것이 경량 칸막이이다. 경량 칸막이는 발로 차면 옆집으로 대피할 수 있는 통로로 1992년부터 3층 이상의 공동주택 발코니에 설치가 의무화되었다.발코니가 확장형이라면 이곳에는 대피공간이 있다. 방화문에 의해 일반 공간과 분리된 이곳에서는 연기로부터 30분에서 1시간 정도 보호를 받을 수 있다.발코니 확장형임에도 불구하고 대피공간이 없다면 ‘하향식 피난구’ 설치 여부를 확인한다. 하향식 피난구는 발코니 바닥에서 위아래 층을 연결하는 지름 60cm 이상 간이사다리이다. 아래층에서 위층 피난구를 열 수 없는 구조이고 덮개가 개방되면 건축물관리시스템 등에 의해 경보음이 울린다. 이 피난구도 위에 물건을 쌓아두지 않도록 한다.완강기도 피난기구로 사용법을 숙지하고 있으면 좋다. 피난계단으로부터 가장 먼 곳이나 고립되기 쉬운 곳에 설치되어 있다. 가슴에 안전띠를 조인 후 외부로 내려가면 일정한 속도로 하강하게 된다. 또 아파트 화재 대비를 위해 방독면을 사는 것도 좋다. 방독면을 사용하면 양손을 모두 사용할 수 있고 호흡은 물론 시야 확보에도 효과적이다. 당연히 가정용 소화기 사용법도 익혀둬야 한다.주민 박 모(43·포항시 북구)씨는 “우리 아파트에서도 화재가 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관리사무소에 문의를 하니 그냥 옥상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어이가 없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휴대용 비상 조명등, 소방담요, 숨수건 등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허명화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1-09

봉화에서 ‘따뜻한 고향의 맛’ 느껴볼까요

봉화군은 삼국시대엔 고마현, 신라 때는 옥마현, 고려 때는 봉성현, 조선시대 후기부터 봉화군으로 불렸다. 봉화엔 고려 현종 때부터 전승되어 오는 돼지숯불구이가 있는데, 토속음식으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봉화군 봉성면 봉성장터에서는 돼지고기를 소나무 숯불에 요리한 토속음식을 맛볼 수 있다. 지금은 산골의 작은 면 소재지지만 고려 때는 봉성현 관청이 있던 유서 깊은 곳에 봉성장이 있었다. 봉성 돼지숯불구이는 이때부터 봉성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팔기 시작해 현재도 전문음식점이 10여 군데 있다.순수한 소나무 숯불만을 이용해 부채로 부쳐가며 구운 요리는 소나무의 독특한 향이 스며들어 맛이 담백하다. 이곳 소나무 숯불구이는 잡내가 적은 암퇘지를 쓰는 것이 특징이며, 구울 때 봉화에서 자라는 소나무 즉, 춘양목(금강송)을 숯으로 사용한다. 굵은 소금을 뿌려가며 적당하게 익었을 때 솔잎과 함께 다시 구워 잡내를 없애고, 솔향을 흠뻑 머금은 고기는 손님상에 바로 올라간다.주방에서 구워 나오기 때문에 번거로움이 없고 깔끔하게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어 좋다. 기름기가 빠져 쫄깃하고 담백한 맛은 고려 현종 때부터 이어온 비법으로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봉성장은 우시장이 있는 큰 규모로 장이 섰다고 한다. 지금은 예전 장터가 사라졌고 장도 서지 않지만, 숯불구이는 남아 전문점이 되고 단지화 돼 그때의 명성을 대변해주고 있다. 식사 때가 되면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솔향과 함께 진동한다.봉성 돼지숯불구이 전문식당 거리에는 옛 봉성현 관아의 문루인 봉서루(경북문화재 418호)가 돌거북과 나란히 있다. 봉서루는 봉성현 관아 건물의 일부다. 지역의 선비들이 교류하던 곳으로 구한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봉성현 인근 금륜봉을 뒤에 두고 객사와 아사 전면에 추봉루와 봉서루라는 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또한 예전 봉성현 소재지에는 자연적으로 조성된 연못과 인공으로 조성된 연못이 열 곳 이상 있었다 한다.불과 물은 상극으로 물만 있으면 불이 자주 나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예방책으로 물에 사는 거북을 상징하는 바위를 모시고 있었다. 그 기에 눌려 불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 한다. 봉성장터 앞에 있던 연못에는 십장생의 하나로 무병장수와 잡귀·잡신을 쫓는다는 돌거북이 있었다는 전설도 전해온다.2005년 장터 정비 중 돌거북이 발견돼 전설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로 나타났다. 이후 돌거북은 봉성장터에 안치되었다. 식사 후 역사적 장소를 돌아볼 수 있기에 좋다.전통음식, 장터음식하면 국밥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봉화 봉성장터에는 천 년을 이어온 봉성 숯불돼지요리가 있기에 지역민이나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류중천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1-09

왕피천 케이블카서 즐기는 겨울 풍광

울진군 근남면에 위치한 ‘울진 왕피천 케이블카’가 잠시 운영 중단되었다가 지난해 12월에 재개장했다. 매표소 앞에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 케이블카를 이용하기가 편리하다. 건물 1층에는 특산물 홍보판매장과 커피숍이 있어 특산물 구경과 함께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총연장 715m, 높이 55m로 왕복 또는 편도 코스를 이용할 수 있으나 차가 있어서 대부분 왕복 코스를 이용하게 된다.케이블카의 캐빈은 크리스털과 일반 캐빈이 있으며, 출입구를 분리해서 이용할 수 있다. 이용객들의 대부분은 바닥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아래쪽이 훤히 보이는 크리스털 캐빈을 이용하는 듯하다.겨울이라 그런지 산타 인형이 캐빈마다 있었다. 아이는 산타와 함께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사진도 찍는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강과 바다가 만나는 왕피천을 하늘에서 즐기며, 멀리 보이는 동해를 눈에 담을 수 있다.캐빈 아래를 보면 여러 조류를 볼 수 있다.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바다색이 진한 파란색이다. 10월에는 동해로 회귀하는 연어떼의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해맞이공원 하차장에 도착하면 고양이 한 마리를 볼 수 있는데 사람의 손길이 익숙한지 도망가지 않고 애교를 부린다.울진이라는 알록달록한 영문 레터링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도 즐거워 보인다. 줄이 길게 늘어진 두 개의 그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으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네를 밀어보지만 줄이 길어서인지 힘이 든다. 높이 올라가는 그네를 보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한 생각이 들지만, 그네를 타는 사람은 즐겁기만 하다.해맞이공원을 천천히 산책하다 보면 사슴과 여러 동물의 조형물들도 볼 수 있다. 탁 트인 바다로 인해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겨울 여행 장소로 울진 케이블카를 추천해본다./사공은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1-09

“포항 ‘숲강아지’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보세요”

유강에서 효자교회 방향으로 철길숲 산책 중이었다. 어디선가 아기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너무 작은 소리라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함께 걷던 친구는 고양이 두 마리를 오랫동안 키우는 집사라 더 잘 들렸다. 아기 엄마들이 자신의 아기 우는 소리에 늘 귀를 열어 둔 것처럼 말이다.손이 닿지 않을 거리라 우리가 구해주기는 힘들어서 근처 철물점에 가서 긴 장대를 사서 다리를 만들어 주었지만 소용없었다. 매미채로 도와주려고 하다 계절이 지나서인지 찾을 수 없어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손이 닿아 구조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없어서 애만 태웠다. 얼마 전 북천수에 산책하러 갔다가 구조한 아기 고양이도 좋은 집사 구해서 ‘포도’라는 이름을 얻게 해주었었다.그냥 두고 가면 목숨을 잃을 것이고, 우리는 힘이 모자랐다. 포항시 동물보호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가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냈다. 어미가 찾으러 올 수도 있으니 24시간 후에도 그대로면 구조하러 오겠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동네도 아니고 다음 날엔 다른 일정이 있어 어쩌나 하는데 산책하던 동네 주민이 선뜻 내일 이 시간에 확인하고 신고해주시기로 했다. 두 시간여를 애쓰는 모습을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며칠 후, 포항시 동물보호센터 홈페이지에 그 고양이 사진이 올라왔다. 구조된 것이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또 며칠 후 좋은 곳으로 입양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데려간 집에서 ‘별’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사랑받는 모습을 SNS를 통해 알게 되니 기뻤다.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곳이 포항시 동물보호센터이다. 포항시 흥해읍 덕장길 224에 주소지를 둔 센터를 찾아갔다. 찾아간 시간이 마침 낮 12시∼오후 1시 사이라 점심시간이었다. 오후 1∼2시 사이에 자율 방문이 가능하다. 오후 2∼4시 사이는 예약 방문 시간인데 예약하면 30분 정도 1대1 상담도 가능하다니 입양을 원하면 예약하고 방문하면 좋겠다. 하루 전날이나 당일도 예약 가능하다.(054-262-8295)오전 내내 유기견과 유기묘를 돌보던 직원들이 점심을 먹는 사이 시설을 돌아보았다. 아주 깨끗한 견사에 어린 강아지들과 대형견이 따로 있었다. 고양이 시설도 따로였다. 마음만 급하게 방문하느라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고 갔는데 유기 동물들이 사용할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이불, 수건, 용품들을 기부할 수 있다고 하니 며칠 내로 정리해서 다시 방문해야겠다.이곳은 160마리 수용 가능하다고 한다. 직원 한 명이 돌봄 가능한 것이 스무 마리라 8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라고 했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주말에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주로 견사 청소와 강아지 산책시키기, 목욕시키기와 견사 외부 청소를 도울 수 있다. 1365 자원봉사 포털사이트에서 당일 신청도 가능하다고 전했다.어느 약사 한 분이 10년간 자비로 센터를 운영하다 지금은 포항시에서 운영 중이다. 위치가 도시와 떨어져 있어서 입양하기에는 접근성이 좀 떨어진다. 그래서 2023년 10월에 포항시 동물보호센터에서 기본접종·치료가 완료된 유기 동물들을 포항시 흥해읍 대련리에 ‘숲강아지’에서 보호하며 분양을 도와주고 있다. 공고 기간 기다렸다가 신청서 낸 분들에게 입양되고, 입양하면 시에서 25만 원을 보조해준다. 중성화나 접종할 때 도움을 주기 위한 보조금이다.포항 숲강아지는 미리 예약하지 않아도 점심시간 낮 12~오후 1시를 제외하면 어느 시간이나 방문 가능하다.(대표전화 : 070-4001-8715) 숲뷔페에서 식사도 하고 숲강아지에서 강아지와 산책해보고 새로운 가족을 원한다면 사지 말고 입양하길 바란다./김순희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1-09

죽도시장은 포항의 얼굴이다… 고객 서비스 수준 높여야

제사 장을 보기 위해 죽도시장으로 향했다. 큰 마트 가려니 휴업일이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은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의 보호목적으로 2012년 개정된 이후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재래시장은 다소 번잡스럽긴 해도 큰 마트에서는 사용불가인 지역화폐 포항사랑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아니나 다를까 죽도시장은 주차부터 힘들다. 2004년 대구·포항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대구에서 40분이면 죽도시장에서 싱싱한 활어 회를 즐길 수 있어 주말이면 외부 방문객들로 북적이는데다 더구나 지금은 대게와 과메기 맛이 제철이라 여행객이 전국에서 찾아오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8월 죽도 어시장 앞도로의 땅 꺼짐 현상이 쉽게 복구가 되지 않아 교통 체증이 더 심화되어 시장의 진입도로가 그야말로 거대한 주차장이다. 죽도시장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는 차량도 보인다.힘들게 주차를 하고 곧장 어시장으로 가 생선을 고르고 포항사랑카드를 내미니 카드기기가 없단다. 현금이 없다하니 송금 가능한 통장번호를 내민다. 카드를 내민 손은 민망하고 현금을 송금하는 손은 시리고 성가시다. 신선도를 확인하려는 듯 생선을 뒤적이는 손님에게 “안 살 거면 건드리지 마소!!”라는 일부 상인의 퉁명스런 응대가 손님과 시비로 이어지고 지켜보는 방문객들은 불편하다. 미역을 사면서도, 소라를 사면서도, 도넛 가게에서도, 달인 반줄 김밥 가게에서도 포항사랑카드는 쓸 수 없었다. 이들 가게도 카드기기 자체가 없다고 했다. ‘카드기기가 없어서’‘나이가 들어서’ ‘난전이라서’ 등 많은 이유로 상인들은 카드를 외면했다. 다행히 과일가게와 식육점 등은 순순히 카드를 받아주니 그 당연함이 외려 고맙게 느껴진다.지역화폐는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매출 향상을 위하고 재래시장을 살려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발행되었다. 그러나 정작 죽도시장은 지류는 받지만 카드는 받지 않는 상인이 많다. 전국에서 몰려든 방문객들로 시장 골목골목은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붐비고 시장을 찾은 그 많은 사람은 상인들의 현금 요구가 당연하다는 듯 폰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송금을 한다. 카드를 거부하고 현금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재래시장만의 권리인가?죽도시장은 50년 전 갈대밭이 무성했던 포항 내항의 늪지대의 노점상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형성되었고 1969년 10월에 죽도시장 번영회가 정식 설립되었다. 1천여개에 달하는 점포수를 가지게 된 지금의 죽도시장은 경북 동해안에 있는 전통시장 중 단연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재래시장 상인들을 위해 대형마트가 주기적인 의무 휴업 규제 속에 있고, 죽도 어시장 땅 꺼짐 현상으로 심화된 교통체증과 주차난으로 인한 시장 상인들의 영업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등 포항 시에서도 죽도시장 상인들을 보호하려 힘쓰는 정책들이 많다. 그러면, 죽도시장 상인들은 시장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친절하려고 진정 노력하고 있는가?타 지역 방문객들로 붐비는 죽도시장은 포항의 얼굴이다. 먹을거리 볼거리가 많은 죽도시장은 지금 시설이 현대화 되고, 서비스 마인드로 무장한 젊은 상인이 늘어나는 등 세대교체가 한창이다. 시장 상인들의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보다 친절하고 따뜻한 고객 응대로 누구나 다시 찾고 싶은 시장의 이미지로 구축해 나간다면 포항의 이미지도 더불어 제고(提高) 될 것이다.무거운 장바구니를 싣고 죽도시장 공영주차장을 빠져나오며 포항사랑카드를 내미니 일반 카드만 사용가능 하단다. 재래시장 상인들을 위해 발행 된 카드를 시에서 운영하는 주차장에서 받으면 되겠냐는 것이다. 왠지 마음이 씁쓸했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4-01-04

봉화의 유일한 국보 ‘마애여래좌상’

봉화의 조용하면서도 유서깊은 사찰 한곳을 소개하고자 한다.우리나라에서 절이라고 하면, 산세 좋고 물 좋은 아늑한 곳에 자리잡은 산사를 연상하게 되지만,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에 자리잡은 지림사는 뒤로는 나즈마한 산이 있고, 들어가는 입구와 절 앞쪽으로는 논과 밭이 있는 평지에 위치한 아주 이색적인 절이다.봉화읍에서 물야 쪽으로 15분 정도 달리면 지림사라는 작은 절이 있는데 이곳은 그다지 크지도 않고 계곡이 있고 산세좋은 산속에 자리잡은 유명고찰도 아니다. 하지만 봉화에서 유일하게 국보가 있는 사찰이다.절 입구로 들어서니, 진입로 양쪽으로 도열한 벚꽃나무와 나즈막히 길게 쌓여있는 기왓장이 눈길을 끈다.하지만 지금이 겨울이고, 겨울이 유난히도 추워 ‘봉베리아’라는 별칭을 가진 봉화에는 앙상한 가지와 여기저기 얼음만 보여 썰렁함 그 자체다.그렇지만, 해가 바뀐 지금은 목련이 엄지손가락 마디만한 봉오리를 맺고 머지않은 봄을 예고하고 있다.대웅전도 아주 큰 대궐같은 웅장함은 없지만, 아기자기 하면서도 그림같이 아름다운 자태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지림사는 진덕여왕(7세기)때 창건하여 한때는 500여 명의 수도승이 있었던 아주 큰 절이었으나, 조선 중기에 불에 타서 없어졌다가 해방 후에 이곳의 마애여래좌상이 국보 제201호로 지정이 되고 이 국보를 관리보호하는 차원에서 옛 지림사의 명칭을 이어받아 현재의 사찰이 지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비구니들이 거처하고 있다고 한다.이곳의 하이라이트인 국보를 보러갔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노상에 방치되어 있었으나, 최근에 석불전을 지어 우리의 자랑스런 국보를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조선 중기의 임란을 거치면서 이곳의 절도 불에 타서 없어지고, 관리가 안되는 채로 방치가 되다보니 아주 심하게 훼손이 되어, 코도 없어지고, 머리도 일부가 잘려나가고, 가슴과 어깨도 파손되었다.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그러나 해방 이후인 1947년에 부지를 정리하는 도중에 발견되어, 군데군데 균열이 가고 훼손된 부분이 많지만 아직도 부처의 위용이 여전히 남아있고 높은 도드락 새김으로 거의 원각불에 가깝게 새겨 위엄스러움이 더욱 돋보이는데다 불상 주위에 새긴 화불들과 함께 7세기 중엽의 위엄스럽고 자비로운 불상미를 잘 보여주고 있음을 인정받아 1980년 9월 16일에 국보 제201호로 지정되면서 늦게나마 더 이상의 훼손을 방지하고 선조들의 우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는게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진다.불상의 양쪽 옆과 위쪽으로 또다른 작은 불상을 양각으로 새겼는데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느낌이 든다.이곳의 또 다른 특징은 여느 절과는 달리 산속이 아닌 평지에 자리 잡고 있어서 다소 몸이 불편하신 분이나 연세드신 분 그리고 어린아이들도 쉽게 다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가까운 곳에 오전약수터, 축서사, 부석사 등도 있으니 누구나 한번쯤은 나들이를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동주 시민기자

2024-01-04

체증 특효약 ‘등 밟기’

이웃 마을에 체증을 잘 내리는 할머니가 살았다. 풍년초 봉지 담배를 수고비 삼아 손수건에 싸든 엄마 손에 이끌려 사립문을 들어서면 싫은 내색 없이 반겨주시던 분이었다. 나를 바르게 앉히고 등뼈 마디를 하나하나 엄지손가락으로 눌러보며 아픈가 하문하였다. “아이고 거기요.” 하면 옳다구나 싶은 듯 그 부위를 집요하게 주무르기 시작했다.손가락 끝으로 원을 그리듯 돌리다가 주먹으로 두드리기도 해서 얼얼할 정도가 되면 당신이 연신 “꺼르륵”대며 트림을 유도하셨다. 그런 다음 어깻죽지로부터 툭툭 때리듯 피를 내리훑어 엄지로 몬 후 손톱 위 부위를 바늘로 톡 따는 거였다. 되게 체할수록 피가 진홍으로 탁해져 콩알처럼 솟기 마련이었다. 힘들여 주무르는 할머니나 걱정스레 지켜보는 엄마도 그제야 ‘후유’하며 화색이 돌았다. 답답했던 분위기가 헤실헤실 풀릴 즈음이면 내 여자 동창이 참기름병과 숟가락을 슬쩍 들여놓곤 했다. 그 애가 쌕 웃으며 곁눈질하고 섰으면 참기름이 미끈거릴 뿐 도통 무슨 맛인지 몰랐다.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체했다 하면 따고 살았다. 찔러댄 부위 살집이 도톰해져 설컹댈 지경이었다. 독하달지 모르겠지만 내 손 내가 찔렀다. 아내에게 맡겨봤으나 오히려 내가 벌벌 떨렸다. 피를 훑어 모은 엄지손가락을 거머쥐면 될 텐데 실로 탱탱 감으려 드는 통에 헛수고이기 일쑤였다. 그런데 체하면 바늘이라는 사연 깊은 등식이 깨지는 날이 올 줄이야.“사돈요, 뻗쳐 누우소.”체기로 멍멍한 내게 안사돈이 말했다. 안사돈이 절친 몇 분을 동석시켜 한턱 거하게 쏜 술자리에서 채신머리없이 들떠버린 후과(後果)였다. 면구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사돈집 안방에 차렷 자세로 엎드렸다.“사도온, 턱도 똑바로 고이소.”근엄한 어투로 더욱 경직된 등에 솥뚜껑 같은 여장부 발바닥이 묵직하게 올라섰다.‘우두둑’뻣뻣한 등뼈가 누그러졌는지 금세 속이 편해지자 사돈 한번 잘 봤네 싶었다. 그렇게 전수한 비법이 진가를 발휘한 날이 있었다.고속도로가 놓이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강구항을 들락거렸다. 회를 너무 바삐 드셨을까, 아랫마을 아주머니가 속이 더부룩하다며 하얗게 질렸다. 휴게소는 멀었다. 도로변에 차를 세워 내리자 엎드려 뻗치시라 했다. 맨땅에 넙죽 엎드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 속이 치받는 형국이었다. 턱을 지면에 밀착시키고, 팔은 차려 자세를 지탱토록 했다. 아내가 얼른 수건을 턱밑에 받쳤다. 아주머니 두툼한 등에 맨발을 가로로 올리며 주문했다.“아줌마, 좋게 말할 때 힘 빼소.”시험 삼아 가볍게 몇 번 밟자니 점차 누그러지는 느낌이 왔다. 순간 내 몸무게를 묵직하게 실어 밟았다. 어긋난 등뼈가 정렬되는 툭박진 소리가 났다. 그러면 그렇지, 오지게 체했구나 싶었다. 아주머니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박수가 터지고, 차는 노래방을 향하여 경쾌하게 달렸다. 그러고 보면 밟기가 따기보다 훨씬 낫다. 주무를 수고가 필요 없고 피를 볼 일도 없으며 참기름 축낼 까닭도 없다. 갈비뼈가 부러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12쌍이 골고루 받치는 뼈가 의외로 강하다. 척추가 탈골되지 않을까 싶은 이도 있을 거다. 허리와는 달리 등뼈는 튼실하다. 보리밭 밟아 겨울나듯 등 밟혀 속 편한 나날을 만끽해 보자. /김상영 시민기자

2024-01-04

가정 밖 청소년들의 쉼터를 찾다

어린 시절, 학교까지 거리는 아이 걸음으로 한 시간이나 걸렸다. 등교할 때는 지각할 것 같아 한눈팔지 못하고 곧장 학교로 향했지만, 하굣길은 달랐다. 30분 걸으면 나타나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 터줏대감인 그 나무는 이웃 동네 어귀에 서서 너른 그늘을 만들어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쉬게 했다. 하굣길에 잠시 공기놀이하고, 여름엔 땀을 식히는 우리들의 쉼터였다.포항시 육거리에도 쉼터가 있다. YMCA에서 운영하는 ‘포항시 여자 단기 청소년 쉼터’다. 가족 안의 갈등, 폭력, 방임 등으로 돌봄을 받을 수 없는 9∼24세 가출한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쉼을 제공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상담과 진로지도, 문화활동,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지원을 통해 청소년의 자립을 돕고, 가정과 학교로 또 사회로 복귀를 돕는다. 그래서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보호시설이다.5층에 자리한 이곳에 도착해 벨을 누르니 밝은 미소의 상담원께서 맞아주었다. 여자 청소년이 머무는 시설이니 미리 전화를 드렸기 때문에 가능한 방문이었다. 첫인상은 따뜻함이다. 입구에 책꽂이 가득 입소자들이 읽고 싶은 책이 가득 꽂힌 책꽂이를 지나 거실 공간으로 따라 들어갔다. 며칠 전 크리스마스 행사를 했다며 작은 트리가 반짝였다. 운동기구와 요가 매트가 창가 한쪽에, 반대편 창가에 청소년들이 체험하며 만든 여러 작품이 놓였다. 탁자 옆에 쉼터의 역할을 소개하는 배너가 보였다.포항시여자단기청소년쉼터를 풀이하자면 포항의 여자를 위한, 기간은 단기로 9세에서 24세까지의 청소년 7명을 돌보는 쉼터란 뜻이다. 포항에 3개의 쉼터가 있다. 단기는 3개월이 기본이지만 3개월 뒤 회의 후 1-2차 연장 가능해서 최대한 9개월까지 머물 수 있다고 한다. 쉼터는 말 그대로 잠깐 살다 가는 곳이다. 가정이 위급한 상황이면 하루만 머물 수도 있다. 단기와 달리 중장기 쉼터도 있다고 했다.쉼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생활보호다. 처음 들어오면 선린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해서 전염성 있는지 확인 후에야 머물 수 있다. 그 외 심리검사, 상담, 트라우마 같은 것은 외부 기관에 상담을 연계해 자세히 살핀다. 개인 상담도 필요하면 주선해서 심리적으로 안정되도록 돌본다. 여가와 문화생활로 원예, 영화, 공예 등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감성적으로 풍성해지도록 돕는다. 최근에 요가 강사를 초청해 몸에 소중함, 몸의 균형을 자기 스스로 느끼게 일주일에 한 번 진행 한다.대부분 입소자가 학생 신분이라 교육을 강조했다. 학교는 기본, 학업을 유지해서 졸업하는 게 사회생활에 얼마나 필요한지 아직은 모르는 아이들이라 제일 힘든 부분이라고 소장님은 안타까워했다. 학업에 필요한 문제집부터 학용품 다 지원하고, 검정고시 공부부터 과정을 잘 지날 수 있게 도와주려고 애쓴다고 했다. 특히 인권 교육, 안전교육, 아동학대, 성교육에 관한 것을 습득하도록 지도한다. 그다음으로 입소자의 자립을 돕는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다면 컴퓨터 및 취업에 필요한 뭐든 지원한다. 이곳은 24시간 운영한다. 원장님과 상당원 5명 조리사 1분, 7명의 아이들을 7명의 어른이 돌본다.이곳은 네이버에 ‘쉼터, 가출’ 연관어를 치면 알 수 있고, 경험한 친구를 통해, 담임선생님께 말하면 이곳으로 알려주시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단체생활에 필요한 규칙을 못 지키거나 해를 끼치면 퇴소시키기도 한다. 여성가족부, 경상북도, 포항시의 보조금으로 운영하고 후원도 받는다./김순희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1-02

갤러리를 찾은 ‘스무 살 청춘’을 응원하며

청춘의 꿈을 이야기하는 권정민 양.새해를 며칠 앞둔 12월의 오후, 새로운 날들에 대한 희망과 설렘을 얼굴 가득 담은 손님이 전시중인 갤러리를 방문했다. 2023년 수능을 치룬 경주여고 3학년 권정민 양이다. 정민 양은 수능을 마치고 인근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곧 20살이 될 터이지만 아직도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한 얼굴이 가득 남아있다. 처음 하는 일이라 몸도 마음도 조금 고되지만 월급날을 기다리며 버킷리스트를 작성 중이다. 가만히 둬도 예쁠 나이지만 대학생이 된 기념으로 파마를 하고 화장품도 구입하고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도 갈 예정이다. 그곳에서 먹을 흑돼지구이가 기대된다며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ISTJ답게 꼼꼼하게 계획 중이라고 한다.다행히 원하던 대학과 학과에 합격했지만 수험생으로 지낸 1년은 꽤나 힘들었다. 활동 부족으로 생기부에 마땅히 적을 게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면 활동폭을 넓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했다. 지금은 부족한 잠도 원 없이 자고 OTT를 통해 보고 그간 보고 싶었던 드라마 영화를 모두 섭렵 중이다.대낮에 소파에 누워있을 수 있는 자유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젠 야간 자율학습과 어려운 수학을 안 해서 매우 좋다는 솔직한 답변도 덧붙였다.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운 정민 양은 중국어에 흥미를 느껴 전공은 중국어로 선택했다. 지금도 틈틈이 중국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중국에 대한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중국 학교에는 낮잠 시간이 있다며 굉장히 흥미를 보였다.혹시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면 낮잠 시간을 최대한 누려보고 싶다 했다. 대학에 입학하면 여러 자격증도 취득하고 열심히 공부해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는 그녀. 쓰촨을 방문해 마라탕을 먹고 하얼빈의 엄청난 추위를 겪어보고 싶다, 그리고 아름다운 항구도시 상하이의 풍경을 만끽할 거라는 19살만의 통통 튀는 감성이 이어졌다.물론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만으로 마냥 설레기만 한 건 아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보니 혼자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엄마가 갑자기 보고 싶어지면 어쩌나, 대학에 가면 시간표도 본인이 직접 짜야한다는데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그러면서도 하루만큼은 수업 없는 날로 만들어 학교 근처 맛집을 투어하겠다는 야무지면서도 귀여운 계획도 함께 말했다.친구들과 소개팅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땐 쑥스러워하기도 했다. 또한 좋아하는 아이돌 엑소의 콘서트도 가야하고 뮤지컬도 감상하고, 대학 축제도 즐겨야 한다는 희망도 덧붙였다. 인생의 봄 20살을 맞이하는 권정민 양. 그녀가 희망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길 응원하며 바라본다./박선유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1-02

초저출산 시대, 원아 수 급감으로 문 닫는 어린이집

우리 사회는 저출산을 넘어 초저출산을 직면하고 있다. 그 여파로 원아 수가 급감해 문 닫는 어린이집이 늘어나고 있다.대구와 경북에서도 최근 10년 사이 1천200여 곳 넘는 어린이집이 문을 닫았다. 그중 국공립 어린이집보다 민간이나 가정어린이집이 원아 수 급감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 대구는 민간과 가정어린이집이 2012년 722곳, 643곳에서 2022년에는 407곳과 316곳으로 나타났다. 경북에서는 2012년 911곳이던 민간어린이집이 2022년 594곳으로 34%(317곳)으로 줄었고 가정어린이집도 2012년 1천81곳에서 2022년에는 495곳으로 54%(584곳)나 줄어 급감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충원율 또한 마찬가지다. 대구와 경북이 2012년과 2022년을 비교하면 대구는 83%에서 71%, 경북은 80%에서 68%로 떨어졌다. 이는 수치로 보면 원아 수가 두 곳 모두 2만여 명 이상 줄어든 상황이다.포항시 북구에서 20여 년 넘게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 이모(54)씨는 “원래 만 0~2세 가정어린이집과 만 3~5세 어린이집 두 곳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수년 전 아파트에서 운영하던 가정어린이집은 더이상 운영하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남편과 두 곳을 운영하며 차도 3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1대로 아이들의 등원과 하원을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어린이집원장 조모(50)씨는 “아파트 단지가 커서 가정어린이집이 3곳이 있었는데 한 곳은 버티다 결국 작년에 문을 닫았다. 앞으로 어린이집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저출산이 아닌 초저출산 시대로 가면서 문을 닫는 어린이집이 더 많이 생길 것이라 예상된다. 이는 단순히 어린이집을 문 닫는 것뿐 아니라 시설의 유지는 물론 어린이집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도 사라진다. 첫 번째는 원장이 될 것이고 뒤를 이어 어린이집 교사들이 그렇고 차량 기사와 조리사 등 그 규모에 따라 10여 명 안팎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포항시 남구에 거주하는 유 모(48)씨는 “주부로 지내다가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다. 어린이집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데 이제는 필요할 때만 사람을 쓰다 보니 앞으로 계속 못 할 수도 있겠다 싶다. 무엇보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이 확연히 줄어든 게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하지만 막상 보육이 필요한 곳에서는 제대로 어린이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포항시 북구 송라면에 거주하는 정 모(31)씨는 “남편 직장 때문에 떨어져 친정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는데 이제 돌 지난 아들을 맡길 때가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흥해에 있는 가정어린이집에 맡기고 있다. 내가 일을 포기해야 하나 여러 번 고민을 한다. 아이를 더 낳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했다.포항에서 오랜 기간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한 원장(65)은 “까다로운 규정을 충족해서 어린이집을 개설했는데 이런 시설들이 원아 수 급감으로 인해 문을 닫으면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손실이라고 생각한다. 출산율 감소에 따라 고용도 불안해지고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까지 부족해지면 시설유지도 어렵다. 갈수록 아이들이 줄어들겠지만 소규모 맞춤형의 가정어린이집을 원하는 부모는 많다고 생각한다. 이런 곳에 보육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살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허명화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1-02

시내버스로 안동 여행 떠나볼까요?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봤던 적이 언제였던가. 내려야 할 곳이 어디인지 길게 고개를 빼기도 하고, 한 정거장 전에 하차 벨을 눌러 버스 기사의 눈치를 봤던 기억.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던 인심 좋은 아주머니와 교복 입은 학생들로 꽉 찼던 만원버스. 짧은 구간 승하차를 거듭하며 사람들을 내려주는 시내버스에는 서민들의 삶과 애환, 추억이 가득하다. 버스의 종점인 오지마을에 들러 사람을 만나고, 이름 모를 풀꽃을 보고, 스러져가는 빈집과 낡은 점방을 사진으로 남기고, 동네를 지키고 있는 노인들의 삶에 귀 기울이는 글을 모은 책 ‘종점 기행’이 나왔다. 시내버스를 타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안동 골골을 누빈 서미숙 작가의 신간이다.‘종점 기행’에는 2015년 봄부터 2019년 봄까지 안동 시내버스를 타고 스물네 곳의 종점 마을을 여행한 기록이 담겼다. 계졀 별로 나누어 총 4부로 구성된 책에는 살강마을, 절강, 무실, 서미, 월애, 오미 등 자연부락 명이 등장해 정겨움을 더한다.서미숙 작가는 “종점에는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다시 돌아와야만 했던 사람들의 사연이 굽이굽이 서려 있다”며 “서미 고샅길에 비녀 지른 할머니는 마실을 가실까, 임동 아지매는 올겨울에도 손두부를 만드실까, 사과꽃이 지천이던 백자리 아지매네 청계는 여전히 알을 잘 낳고 있을까?” 모두가 궁금하고 보고 싶다고 한다.서미숙 작가는 안동이 고향으로 2015년 계간 ‘문장’으로 등단한 수필가이며 저서로는 수필집 ‘남의 눈에 꽃이 되게’가 있다. 장대비에 처마 아래서 비를 피하게 해준 할머니, 막차가 올 때까지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준 할아버지, 징검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진 운동화를 말려준 청년을 기억하는 따뜻한 마음을 또박또박 성실히 기록해두었다.지역 소멸의 시대, 변죽만 울리는 프로그램이 아닌 생활밀착형 스토리텔링으로 지역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하나둘 사람은 떠나고 동네는 없어지고 버스 노선도 없어져, 마침내 마을 이름조차 없어질지도 모르기에. /백소애 시민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4-01-02

맨발걷기의 최적지 청송정원

영하의 한파가 몰아치는 오늘도 맨발로 걷는 부부가 있다. 발바닥만 오려낸 실내화를 신고 걷고 있다. 청송군 파천면 청송정원의 풍경이다. 중평마을 배 여사 부부다. 7월에 시작해서 한겨울인 지금까지 150 여일을 꾸준히 맨발걷기를 지속하고 있다. 저녁 시간에 걷던 것을 동절기인 요즘은 오전 11시에 나온다. 처음 며칠은 마사토에 발이 아파 양말을 신기도 하고, 한두 바퀴에 그만둔 일도 있었다. 거칠어지던 발바닥도 다섯 달이 지난 지금은 말랑말랑해졌다고 한다. 7월 초 공영방송에서 맨발걷기의 효능에 대해 방송했다. 며칠 후 저녁 운동을 나왔다가 암을 앓았다는 이웃 마을 어르신을 만났다. 그는 서울 병원에서 힘들다 하여 퇴원했다. 그 후 통원 하면서 친구와 맨발 걷기를 시작했는데 걷기 시작한 두 달 만에 건강 상태가 좋아지고 암도 호전되었다고 했다. 효과를 보았다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배 여사 부부도 이왕에 걷는 것 맨발로 걷기로 했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 부부 몇 쌍과 함께 시작한 맨발걷기는 점점 참여 인원이 많아졌다. TV 방송 효과도 더해져 7월 청송정원의 저녁은 꽃구경 온 인파와 맨발걷기를 위해 나온 사람들로 넘쳤다.자두 수확이 한창이던 9월, 동네 사람들이 매일 저녁 맨발걷기를 위해 청송정원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필자도 녹초가 된 저녁 시간, 태산 같은 일을 두고 청송정원으로 달려갔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청송정원, 9월엔 4만 평 부지에 백일홍이 활짝 피었다. 꽃향기 가득한 꽃밭에서 기분 좋게 운동하는 시간, 피곤함도 잊고 맨발걷기에 몰입했다. 발바닥이 아파 눈물이 찔끔찔끔 나는 것을 꾹 참고 걸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부지런히 청송정원으로 차를 몰았다. 내 몸의 나쁜 기운을 말끔히 처리해 줄 것 같은 믿음으로 2주가 넘도록 걸었다. 조금 편해진 듯하던 발바닥의 통증이 갈수록 심해져 결국 바쁜 일 핑계 삼아 걷기를 중단하고 말았다.맨발걷기가 과연 무엇에 좋으며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이 추운 겨울에 걸어도 괜찮은지 알고 싶었다. 맨발학교 창시자 권택환 교수, 맨발로 걸으면 불면증은 단 하루 만에 고쳐진다고 장담하던 그의 기사를 찾아보았다.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운동, 맨발걷기에 특별한 방법은 없다. 자신의 보폭에 맞추어 최대한 발바닥이 땅의 기운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천천히 걸으면 된다. 모래밭이나 황톳길, 마사토길, 산길 등 주변 환경에 맞게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불면증 해소, 무좀, 습진 등 발의 질환 완화, 소화 기능 향상, 뇌의 활성화, 스트레스 해소 등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돈 안 드는 최고의 운동이다.또 겨울철에 하는 맨발걷기가 다른 계절보다 10배나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체온과 겨울의 낮은 온도 차이로 인해 발바닥의 혈액순환이 좋아진다고 한다. 옷을 따뜻하게 입고 발만 맨발로 하되 최적의 시간은 40분 이상이라 한다. 단, 걷고 난 뒤에는 반드시 찬물로 발을 씻어야 한다. 춥다고 바로 따뜻한 물로 헹구면 동상에 걸릴 위험이 있다.땅의 기운을 받아 우리 몸의 활성산소를 중화시켜주는 맨발걷기, 요즈음 지방자치단체에서 앞다투어 맨발걷기 육성책을 내고 있다. 우리 청송도 지역민의 삶의 질과 관광객 유치를 위해 조성한 청송정원이 맨발걷기의 메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일거양득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군민의 건강도 챙기고 관광명소로도 굳건히 자리할 수 있도록 군에서도 신경을 썼으면 한다. 백일홍이 지고 나면 황량해지는 정원에 청송 꽃돌이나 소나무 등 지역의 자원을 이용해 좀 더 많은 볼거리와 편안히 쉴 수 있는 공원으로 가꾸었으면 한다. 더하여 해마다 여는 청송정원 음악회 즈음 맨발걷기 대회도 열어보면 어떨까 싶다. /손정희 시민기자

2023-12-28

계묘 가고 갑진 오는데

실베스터 스탤론은 영화 ‘로키’와 ‘람보’로 유명한 배우다. 얼마 전에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 ‘슬라이’를 넷플릭스에 올렸다. 험난한 유년기의 탈출구로 영화를 사랑하게 된 남자다. 보잘것없던 무명 배우에서 할리우드의 전설이 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946년생으로 80이 내일모레니 지난 시간을 반추할 만하다.“휘리릭.”영화 속에서 그가 세월을 말하였다. 차창 너머로 스쳐 간 풍경처럼 무심한 세월이 그리도 빠르게 흘러버렸다는 거다. ‘long time ago’ 정도일 줄 알았지, 미국 사람도 휘리릭으로 표현하는 걸 보면 인생의 무상함은 국적을 초월한다. 일세를 풍미한 사람이거나 부자들도 세월 앞에 평등하다.마을회관 어르신들은 농사일 틈틈이 민화투를 치며 논다. 종일 따나 잃으나 일이천 원이면 좋은 말 한다. 고스톱에 비하면 단순한 게임이며 푼돈인데도 심심찮게 파투가 난다. 약이나 단을 좀 해서 내 돈이 수월찮이 나갈성싶을 때가 그러하다. 손에 든 패를 슬며시 내려놓거나, 판에 깔린 무주공산 알짜배기 화투를 슬쩍 끌어와 챙기는 거다. ‘들키면 말고.’ 식이다. 판 깬 낌새가 뻔한데도 언제 그랬냐며 우겨댄단다. 본동 댁이 길을 냈으니 안평 댁도 덩달아 파투를 내는 사태가 빚어질 수밖에 없다. 누구를 나무랄까, 도긴개긴이다.“미친다, 미쳐.”비교적 젊은 측에 드는 아내가 쪼잔하기 그지없는 화투판을 설명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죽으나 사나 ‘십 원 빼이’에 올인하는 어르신들이 짜장면인들 쉬 사 잡숫겠는가. 대동아전쟁 시절부터 허리띠를 졸라맸으니 안 먹고 안 쓰기에 이골이 난 게다. 평균수명이 83.6세에 불과한데도 백 세 시대라니, 저승은 머나먼 남의 일인 줄 알고 무조건 아끼고 보는 것이다. 세월 헤픈 줄 모르고 허리띠 다잡는 꼴이다.의성읍내 오리 집은 단골 음식점이다. 전화번호조차 9252니, 천상 오리구이 집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맛집인데도 가물가물해질 무렵에야 친구와 다시 발을 들였으니 반갑지 아니하랴.“해갈을 위하여!”뙤약볕 아래 고추 딴 저녁나절 바짝 단 입에 소맥 두어 잔을 단숨에 쏟아붓든 게 엊그제 같건만 가을 넘겨 겨울로 건너뛴 것이다. 우리는 흡사 이산가족 만난 듯 그간의 안부 묻기에 바빠 말이 다 엉키었다. 안 주인은 “혹시 내가 잘못한 점이 있었나?” 돌이켜 봤다고 한다. 바깥양반은 불판 주물럭을 연신 뒤적여 주는 등 전에 없던 서비스를 하며 사람 좋게 웃는다.바람 찬 어스름 저녁이어선지 자리가 파할 때까지 손님은 친구와 나뿐이었다. 마중 손님이 되어서 빈 테이블이 채워지기를 바랐으나 아쉬웠다. 치아 수리한다는 핑계로 술을 일병씩만 마시고 당뇨가 겁이 나서 국수 주문조차 거르게 되어 미안하였다. 한 그릇 시키면 둘로 나눠 대령하는 후덕한 아줌마인데 말이다. 살펴 가시라 온정 어린 인사를 받으며 거리로 나서니 겨울밤이 푸근하였다. 돈 쓰는 맛이 쏠쏠하다.북원 로터리에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세모(歲暮)를 알린다. 계묘년은 또 이렇게 속절없이 가고 말 것이다. 새해엔 늙어지면 못 노나니, 부지런히 산을 타고 지갑도 열자. 세월은 휘리릭 가고 만다. /김상영 시민기자

2023-12-28

팥죽이 배달되었어요

대구 팔공산의 날씨는 영하 10도. 체감온도는 영하 15도 이상이다. 바람 쌩쌩 불고, 옛날의 문고리 쩍쩍 얼어붙던 시절이 생각나게 한다. 올 겨울 들어서 가장 추운 날이다. 12월이 다 갈 즈음인데도 철없이 핀 진달래꽃도 보았다. 엊그제부터 한파가 몰아닥쳤다. 출근해야 하는 일이 없다면 따뜻한 방안에서 게으름 피우고 싶은 날씨이다. 이런 날에도 부지런을 떠는 정분 씨를 소개한다. 그녀를 안 지는 약 3년. 그녀는 대략 일흔 줄에 들어선 나이로 알고 있고, 정이 참 많은 사람이다. 출근하니 가게 앞에 검은 비닐봉지가 배달되어 있었다. 바람에 날려갈까 벽돌로 비닐봉지를 고우고 있었다. 팥죽과 동치미였다. 팔공산 자락의 바람은 대단했다. 사전(事前)에 전화나 문자 한통 없어도 그녀의 손길인줄 단번에 알았다. 가게 앞을 지나가면서 놓고 가신 것이다. 휘몰아치는 강추위의 날씨에도 배달된 검은 봉지를 보는 순간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가 있고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어느 날엔 가게 앞을 지나가다 문득 손에 쥔 비닐봉지를 들이밀며, 이런 것 먹느냐고? 물어보았다. 텃밭에 키운 풋고추, 어린 상추를 솟궈서 나누어 먹을 만한 이웃이 없다며 건네주셨다. 그녀는 별로 말이 없으시다. 서로의 눈빛을 마주보지 못할 만큼의 겸손함이 배어있다.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그래서 더 진정한 인간애를 끌게 하였다.12월 22일. 연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24절기 중의 동지(冬至). 풀이하면 겨울에 이르렀단 뜻이다. 밤이 가장 긴 동지는 음의 기운이 세다고 여겨져,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민간 풍속에 따라 동짓날 팥죽을 먹으면, 팥의 붉은 색이 액운을 쫒아내고, 좋은 기운을 부르는 무사한 한 해를 기원 하는 뜻에서 팥죽을 먹어 왔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조상들이 해오던 관습에 이어 팥죽을 끓여 먹기도 하고, 편리하게 준비 해놓은 죽 집에 가서 사 먹기도 한다.날씨도 추워진데 길거리는 더욱 한산해지고 자영업자들은 고개를 숙여야 하는 무거운 맘이 크다. 한해를 보내는 끝자락에서 그녀의 정성 가득 담긴 따뜻한 나눔으로 인해 훈훈하다. 가까이 있는 가족 간에, 이웃 간에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는 넉넉한 사람이 되도록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영주 시민기자

2023-12-28

할머니들의 손자보기

16개월 손자를 두고 출산휴가가 끝난 며느리가 복직을 걱정하니 어쩔 수 없이 양가 할머니가 번갈아 상경하여 봐 주기로 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힘들게 공부해서 시작한 사회생활이 경력단절로 이어져 재취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1986년 ‘여성의 정년 55세’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여성에게 결혼은 곧 퇴직이라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었다. 이 판결로 ‘25세 여성조기정년철폐운동’과 ‘결혼해도 취업 할 권리’를 주장하게 되고 2005년에는 철통같던 부계혈통중심주의 해체로 여성도 세대주로 인정되며 호주제가 철폐된다.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가사노동과 육아의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2022년 기준 초·중·교 교사 중 남교사가 없는 학교가 전국 107개 교이며 유아를 돌보는 어린이집 선생은 98%가 여성이다. 예전에 비해 가정문화가 많이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결혼과 출산은 경력단절로 이어지고 결국 여성일수록, 고학력자일수록, 젊은 세대일수록 결혼을 당위(當爲)로 생각지 않는데다 이혼에 대해서도 개방적이다 보니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되고, 이는 낮아지는 출생률과 함께 인구 감소라는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문화는 시대마다 특정한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다. 불교 문화권이었던 고려 시대는 재산을 아들·딸이 동등하게 나누어 받으며 제사도 형제자매가 돌아가면서 절에서 재(齋)를 지내는 윤행(輪行)의 문화였으나 유교 문화권에 들었던 조선 후기가 되면 장자우대 풍습이 만들어지며 제사를 지내는 장자를 위한 ‘장자우대차등상속제’가 생겨나고, 결혼은 여성이 남편 가문의 문화를 익히고 적응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친영제(親迎制)가 형성되어 오래된 부계전통을 더욱 강화하며 철저하게 남성중심 계보를 따르게 한다. 조선시대 유교적 여성상은 효를 강조하는 열녀효부(烈女孝婦)였다. 근대 이르러 19세기말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억압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신여성 등장으로 구여성과 구분되기 시작했고, 1930년 식민지 상황에서는 일본이 일제에 충성하는 황국신민을 키워내는 어머니이자 내조하는 아내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현모양처(賢母良妻)’를 앞세워 신여성을 뒤로했다. 이후 1981년 가정복지국, 1983년 한국여성개발원 등에서 시작된 여성정책들은 여성들의 삶을 바꿔놓았고 더불어 남성들의 삶도 달라지며 가족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성평등은 일과 가사노동이라는 여성의 이중부담을 덜어주는 정책만으로는 안 된다. 가부장제 문화가 여전히 강고한 지금, 직장에서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보다 더 과도하게 일해야 하는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남성 역시 힘들어져 우리 사회 전체가 힘들어질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여성정책은 남·여 모두를 포용하는 성평등정책으로 확장되고 있다.시대에 따라 다른 문화는 옳고 그름의 기준도 다르다. 가부장제와 장자우대, 열녀효부라는 전통문화에 익숙한 할머니 세대는 이제 남성과 여성이 모두 평등해지는 성차별 없는 달라진 사회를 받아들여야 한다. 편안한 노후를 즐겨야 할 할머니들이 아들·딸을 대신해 손자를 돌보며 제2의 육아활동을 시작하니 체력적으로 힘이 들지만 손자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이 할머니 행복의 한 부분이기도 하므로 도와주지 않을 수도 없다. 달라지는 문화를 이해하고 잘 적응한다면 귀한 손자를 돌봐주는 일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박귀상 시민기자

2023-12-28